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n Infrastructure Bank)는 2016년 출범 이후, 18개 회원국에서 45개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회원국이 100개국에 이르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AIIB는 회원국 수에서 세계은행(World Bank)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다자개발은행(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이 되었다.
AIIB에 가입하는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이 기관이 기존의 다자간 자금조달의 규범, 표준, 관행 등을 통합하거나 이에 대해 논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AIIB의 가장 가까운 다자간 경쟁상대이자 협력자인 아시아개발은행(ADB, Asian Development Bank)과의 관계가 이같은 의문의 중심에 있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에는 68개의 회원국이 있으며, 총 가입자본금은 1000억 달러 규모다. 2018년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자금지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215억8만 달러의 신규 유, 무상 차관이 도입됐으며 민간부문 공약은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AIIB는 설립 4년 만에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동일한 수준의 가입 자본금을 보유하게 됐지만, 투자포트폴리오의 경우 2019년 15~20개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은 총 35억~45억 달러 정도로 더 작은 규모다. 이는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2018 포트폴리오의 6분의 1 수준이다.
AIIB에 2020년 이전 필요한 자금은 약 26조 달러로 추정된다. AIIB이 아시아개발은행 ADB와의 경쟁 없이 신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AIIB는 개발 및 인프라 자금조달이라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협력적 관계를 빠르게 발전시켜 왔다. AIIB는 올해 ADB, 세계은행, 12개 기타 개발은행 및 기금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AIIB는 ‘국제 개발은행의 일원’이라는 지위를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AIIB의 고위간부 중 다수는 아시아개발은행과 세계은행에 몸담았던 인물들이다.
아시아개발은행 ADB와 AIIB간의 협력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 기관 주주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긴장 역시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는 AIIB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미국 및 일본의 결정과 AIIB에 대해 가입의지를 보인 정치 경제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비판을 통해 입증된다.
미국과 일본은 아시아개발은행의 2대 주주로서, 각각 총 가입 자본금의 15.6%를 출자하고 있으며, 12.8%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 기관은 항상 이 두 나라, 특히 일본의 지리적 이해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돼왔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역대 총재는 모두 일본인이며, 일본인 직원들이 기관 내 고위직책을 장악하고 있고, 아시아개발은행이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일본의 지정학적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시아개발은행을 주로 일본이 주도한다면, AIIB는 중국의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은 AIIB의 최대 주주로서 뒤이은 5개 국가의 의결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26.6%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중국은 다수결에 의한 모든 결정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갖게 됐다. 중국은 이미 대만의 가입신청을 거부하는 데 이 권한을 행사한 바 있다.
중국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국가군)의 주요 인프라 자본국이며, AIIB는 중국이 중국개발은행이나 상하이협력기구와 같이 인프라 자금조달을 확충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많은 기관 중 하나다. 이들 기관은 세계 정치경제 환경에서 중국 주도로 아시아 미래 개발 궤적을 구체화하는 역사적 변화를 보여주는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
AIIB는 중국 공산당에 다른 수많은 혜택들을 제공하는데, 외교적 이익을 취하며 중국 건설회사를 지원하는 새로운 투자 프로젝트에 자본준비금을 투입하는 수단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다자개발은행의 성공적 운영을 통해 지리적,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지역화를 형성하고, 동시에 중국의 위상과 차용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다자개발은행은 채권국들과 긴밀히 연계돼 있지만, 이같은 관계와 거리를 둘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자개발은행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쌍무 원조 관련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할 수 있다. 일본, 미국, 중국의 동맹국이 아닌 국가들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해 온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의 대출 패턴이 이를 반영한다. 2019년 4월 현재, 인도는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부상국가임에도 불구하고 AIIB 전체 대출금의 28%를 할당 받았다.
그러나 인프라 자금조달과 건설이 지리경제학 및 지정학적 권력을 투영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 간의 어느 정도의 경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은 아시아개발은행과 AIIB의 미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두 기관 모두의 대주주이자 아시아개발은행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대출을 받은 수혜국이다. 또 중국은 관련국들을 진정시키고 광범위한 회원국 확보를 위해 AIIB의 초기 계획안을 상당부분 수정했다. 다시 말해, 다자개발은행을 이끄는 리더십 측면에서 미국을 뛰어넘는 타협의지를 보인 것이다.
키어런 심스(Kearrin Sims)
케언즈연구소 연구원 겸 호주 제임스쿡대학(James Cook University)의 개발연구 강사
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합중국이 지속적인 퇴보의 행각을 보이면서, 정치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결국 중국이 제1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걱정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일부는 여전히 미래의 세계도 과거와 유사하며 코로나 위기는 예전의 질서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서방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반중혐오감은 서구사회가 경제적 측면에서 점차적인 약세를 지속하고, 정치적으로는 포플리즘과 극우주의의 발호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더하여, 수세기 동안 유지하였던 국제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일방적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서구사회의 구조적 약점과 자기분열을 현실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번 위기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충격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동양국가인 일본의 승리는 피식민지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취약점에 눈을 뜨게 만들면서 혁명적 독립운동을 고무시켰다. 사안의 결과가 다르고 인종차별이 덜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서구사회에 대한 국제적 회의를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질서에 서방의 일방적 지배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소위 재정복再征服(Reconquista)사건이라고 불리는 유태인과 무슬림을 서구사회에서 추방했던 15세기 말의 역사에서 출발하였는데, 이후 서구사회는 유럽의 문명에서 오리엔탈적인 요소와 비기독교적인 내용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은 인류사 전체에 대한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고, 이러한 자기확신을 백인우월주의라는 문명으로 전환시켜 발전하여 왔다. 이러한 백인우월주의 문화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유색국가의 강력한 세력이 형성되면서, 이러한 확신에 대한 회의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서구에 대한 회의가 점차 확산되면서 때로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합중국은 자신의 역할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면서, 소위 ‘자유세계 – free world’ 수호자로 임무를 수행하여 왔다. 대전 과정에서 명백한 두 개의 세력이 타협할 수 없는 이념을 기반으로 양축을 형성하여 왔는데, 전쟁의 결과로 유럽이 황폐하여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미합중국이 소비에트라는 가공된 또는 실존한 팽창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수호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1991년, 후자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이 경쟁상대가 없는 단극체제의 패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형성되었고, 국제사회의 모든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모델로서 행위의 규칙을 결정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를 두고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실제의 세계는 그의 선언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 중국의 굴기가 이루어졌고, 이제 미국은 중국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대결국면이 지구중력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미합중국이 모든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일방적 세계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에 이른다.
트럼프에 대한 문제와는 별도로, 반중전략에 대해서는 미국 내 양당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이와는 전혀 별개이며, 문제는 누가 패권을 차지하는가 또는 절대적 힘을 보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세력의 재균형을 어떻게 형성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더구나 떠오르는 신형세력 특히 중국은 패권다툼이라는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미합중국과 유럽국가들이 세계질서의 변화과정을 인정하고 국제적 현안들의 분담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타협하기는커녕, 지난 40여 년간 개혁을 통하여 성장해온 중국의 힘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낙후한 것이지만 지난 세기를 지배해온 소프트-파워조차 미합중국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대결과 제재 그리고 자신이 주도하는 동맹이라는 구조를 동원하여 중국을 억압하고자 한다.
어느 프랑스의 중국전문학자 역시 이와 비슷한 발상으로 최근 프랑스 일간지에 기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반중 동맹을 주도할 것인가?”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유럽국가들 공히 비슷한 감정으로 미합중국과의 역사적 연대감을 유지해야 하며, 중국이 강력하여지는 원천을 봉쇄하여야 한다는 판단을 광범하게 공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자신들에게 화근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이전과는 매우 판이할 것이며, 부분적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보건의 위기는 미합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간의 신뢰에 지속적이며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대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양당간에 형성된 합의점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세력을 봉쇄하고자 하는 필요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격렬한 반중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결국 미합중국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포함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재형성하는 일에 어려움을 격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미국 행정부의 접근에 대하여 사안별 선택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서구의 쇠퇴는, 설령 트럼프가 재선되어 정치적인 혼란이 지속되더라도, 나쁜 방향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여온 유럽과 미합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과 세력 재균형에 대하여 새롭게 대화하고 협상을 주도할 위치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워싱턴의 과거식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솔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를 진행하면서 복합적 대결과 투키디데스 함정과 같은 술수를 피해가야 한다. 혹시나 폭군스러운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중국과 유럽연합은 연대하여 미합중국에게 상기와 같은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가야 한다.
출처: Syndicate via CGTN on 2020-06-18.
Lionel Vairon
현재 북경에 있는 국제관계 및 공공외교정책의 자문기구인 CEC Consultant 대표이며,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기자출신으로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이라크 주재 외교관을 역임했다
베를린 –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구세력간의 대결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있다. 갈등의 영역은 기술과 교역,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공급사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가치관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제적인 동시에 이념적 경쟁을 부추기는 배경에는 21세기 세계질서의 주도권 쟁탈이라는 목표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까? 중국의 굴기라는 현상을 서구가 갑자기 인지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레닌 방식의 일당독재라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1970년 이래 미국이 주도하여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무역과 경제적 관계를 발전시켜오면서도, 이를 중단하지 않은 것 역시 서구사회 자신들이다.
한편에서, 중국의 지도자들은 인권문제와 소수민족의 탄압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오랫동안 무시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시장과 저렴한 노동력에 접근하기 위하여 중국의 일상적인 산업스파이 활동과 서구의 기술과 지적재산권의 도용에 대해서 서구사회는 수십 년간 묵인하여 왔다.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학살사태를 서구의 정부들과 투자자들은 낙관적으로 바라보았으며, 사태가 수습되자 곧바로 서구 기업들은 밀물 듯이 중국으로 몰려 들어갔다.
과거의 진행은 그렇다고 치고, 서구의 지도자들은 중국사회가 현대화되고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 자연스레 민주주의를 수용하여 인권을 존중하고 법치를 도입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잘못이었다. 중국의 공산당은 여전히 일당독재를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갖춘 경제체제와 대중적 소비사회라는 병렬적hybrid개발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하여 왔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추세는 매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력은 공산주의자들의 손안에 단단히 장악되어있는 채, 중국사회는 매우 선진적인 기술과 거대한 소비시장이라는 자본주의 동력을 갖추어 왔다 소련이라는 정치경제적 체제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었던 일이다.
대단히 인상적 일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인류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결과이다. 수억 명에 달하는 인민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 중산층의 대열에 가담하였다. 불과 한세대 만에 일어난 일이다. 과거의 중국은 기술과 과학 분야에서 후진적이었으나, 현재의 중국은 21세기를 규정하는 다양한 첨단영역 즉 디지털화 인공지능 양자기술을 결합한 수퍼-컴퓨터 등 분야에서 세계적 주도국가로 변신하였다. 상기의 영역 등에서 중국은 미국을 따라 잡으면서, 이제 핵심적 분야에서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이제야 가열되는 이유는 한마디로 간단하다 – 서구의 지배가 종말을 보이고 있다.
18 세기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서구는 국제권력을 효과적으로 독점하여 왔지만, 이제 우리가 모두 인지하듯이, 아시아의 거인이 조만 간에 서구의 지배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단순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탓만이 아니다. 서구지배에 대한 중국의 도전은 트럼프가 사라진 이후에도, 이번 11월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지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점점 강해질 것이고 서구의 세력은 약화될 것이다. 2008년 월 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인해 세계인이 바라보는 미국의 역할과 중국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서구사회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에 더하여 코로나-19 사태가 미국의 취약점과 국내적인 결함을 노출시켰다. 미국은 중국의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하였듯이, 팬데믹 상황을 혼란스런 대처하면서 2008년 위기에서 발생하여 아물지 않은 세계의 상처를 더욱 심화시켰다.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여전히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평가할는지 내부적으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 대부분은 중국의 기술과 경제적 분야에서의 굴기를 방해하고 지연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조치이다. 14억 인구를 지닌 세계경제의 지도국가를 봉쇄한다는 전략이 가당한 것인가? 모두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에 서구가 방심한 탓으로 중국에게 적응과 수용과 경제적 기회를 부여한 것이 분명하다. 이를 지속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우선적으로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철 지난 패권정치와 전략적 순진함에 기초한 미망을 버려야 한다. 서구사회는 중국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함께 공존할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탕과 채찍의 양동작전을 펼치면서 서구의 가치와 이해가 중국에게 지침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과 교역을 지속하되 새로운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중국의 굴기는 서구국가들에게 각자 자신들의 산업정책을 자신들의 이해에 맞게 추구하도록 압박한다. 어떤 종류의 기술을 함께 공유하고 어떤 성격의 중국투자를 수용하거나 거부할 지를 정해야 한다
중국과 서구 간에 기본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바로 이 지점에서 서구사회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근본적인 원칙에 대한 타협과 양보, 예건데 문화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적 입장이 설사 경제적인 불이익을 초래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 동시에 서구사회는 중국을 압박하고 위협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습의 민주주의 국가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오만(가식)을 버려야 한다.
물론 서구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로써 중국과 국제정치 영역에서 협력하는데 일정한 한계를 설정해야 하며, 중국이 팽창주의적 행동으로 주변의 이웃국가들 특히 남중국해 지역과 대만을 위협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 반면에 지구적인 현안인 기후위기와 팬데믹 대응 등에서는 함께 협력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중국과 서구 간의 갈등과정에서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어떠한 양보도 타협도 해서는 안된다. 21세기의 평화와 공존 그리고 자신의 이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구사회는 자신이 지닌 힘(영향)의 원천을 제대로 인지하고 방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08-24.
Joschka Fischer
독일녹색당 창립지도부의 일원으로 1998-2005 동안 연립정권 하에서 외무부장과 부수상을 지냈으며, 코소보에 대한 나토개입을 지지하는 한편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우리 농촌은 최고령 사회로 진입하였다. 필자가 사는 춘천의 사북면 별빛마을은 6개 리(里)에 929명의 주민들이 등록되어 있다. 주민들 중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331명으로 전체 인구의 35.6%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2018년 통계이니 지금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20대, 30대 인구가 100명으로 10%가 넘으니 ‘아직 젊은이들이 있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주민등록만 남겨놓고 도시에 나가 있다.
이들이 가업인 농업을 이어받을 때까지 대대로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자식에게 농사를 물려주었다. 수렵채취생활에서 농경정착생활로 바뀐 이후 이 세대들에 이르기 까지 이렇게 농업은 대를 이어 전해져 왔다. 이런 농업계승의 마지막 세대가 이들 고령 농민들이다.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농업을 물려받았지만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서 노부부가 가족농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대부분 자기 땅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도시로 나간 집들이 남겨놓은 땅들을 소작짓기도 하였다. 소 한 두 마리, 염소 십 여 마리 키우고 벼농사와 밭농사를 골고루 짓는 농사. 자급을 기본으로 하고 소득작물을 키워 삶을 영위하는 그야말로 영세가족농 들이었다. 이들이 힘써 농사를 짓던 30여 년 전 만해도 우리 농촌에는 대부분 농민들이 살았고 그들은 서로 힘을 보태 농사를 지었다.
이제 아버지가 짓던 농사를 아들이 이어서 하는 승계농의 비율은 5%가 안된다. 그나마 대농이나 축산을 하는 목장주의 자녀들로 주로 조수익이 1억원 이상 되는 농가들이다.
조수익은 농가에서 1년동안 농사지어서 나온 농산물과 부산물에서 얻는 수입으로, 매출액이라고 보면 된다. 조수익 1억원 농가를 억대 농부라고 하는데 매출 1억원이면 순소득은 사실 얼마 안된다. 이 정도라도 되어야 자식이 농사를 물려받을 생각이라도 하는데 대부분은 농사지어서 얻는 농업소득이 천만원 남짓이니 누가 부모의 농사를 물려 받겠는가?
아래 지도는 지난해 11월에 한국고용정보원의 이상호 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이다. 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로 나눈 값이다. 이 값이 1이면 돌아가시는 분과 태어나는 아이가 비례하니 그 지역은 인구 변동이 없을 것이고 이 값이 1보다 크면 태어나는 아이가 더 많을 테니 인구는 늘어난다는 통계상의 가정을 지표화 한 것이다.
지도에서 보면 빨간 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황토색은 소멸위험진입단계 지역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2005년 만 해도 「소멸위험진입단계 지역」은 일부 있었지만 「소멸고위험 지역」은 없었다. 그런데 2018년에 11개 시군이 고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지난 해에는 다섯 개 지역이 더 늘어 16개 지역이 소멸 고위험 지역이 되었다.
올해는 또 몇 개의 농촌 시군이 빨간색 지역으로 편입될지…
황토색과 빨간색지역은 이 땅의 마지막 승계농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자식들은 대부분 연두색과 녹색지역에 살고 있다.
사람만 녹색지역으로 몰리는게 아니고 농촌의 땅도 녹색지역으로 몰리고 있다. 이미 농지의 50% 이상이 비농민 소유로 넘어가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농사짓고 있던 고령농민들이 돌아가시면 농지는 자식들에게 상속될 것이다. 이로 인해 앞으로도 비농민들의 농지소유는 더 늘어나게 된다.
인구지도에 색을 쓴 사람들은 자연의 이치를 따라 색을 선택한 것 같다. 초록의 봄과 단풍이 지는 가을의 색을 사용하여 현재의 우리나라 인구 상황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더 서글픈 농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국토의 상당부분이 비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인구가 늘어날 때는 행정구역이 분할되지만 인구가 줄어들면 통합을 하게 될 것이다. 통합되는 지역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지로 주민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인구 수에 따라 책정되는 정부 예산은 인구가 없는 지역의 예산을 줄일 것이다. 주민들이 받는 공공서비스는 축소될 것이고 지역에서 사는 삶은 더욱 초라해 질 것이다. 그러면 남은 마지막 사람들 까지 도시를 향해 짐을 싸게 될 것이다. 악순환이 이어지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만 녹색으로 남고 나머지 지역은 전부 빨간색이 되는 날은 머지 않다.
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국민의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국토의 균형적인 활용을 위해서는 문재인정부의 시간이 우리 농업의 골든 타임이고, 심폐소생의 시단을 놓치면 우리 농업은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황혼이 지는 농촌에 초록의 기운을 불어넣는 최소한의 토대라도 놓아야 다음 정권에서 지역과 농업을 살리는 정책을 세울 수 있다.
농지를 농업으로만 이용하는 농지법의 개선과 도시에서 이주해 오는 새로운 농업후계자의 안정적 정착 지원 그리고 농촌과 지방의 공공일자리 확보를 통한 지역의 인구유입정책은 국회와 행정부, 지방정부와 정부 산하기관들이 융·복합 협력으로 위기극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과 국내만연은 일상생활과 경제활동, 국제관계, 국가안보 등 모든 세상을 바꿔놓았다. 특히 국경봉쇄나 지역차단이 없이 의료진의 희생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경기침체를 덜 받으면서 돌림병 위기를 잘 막아냄으로써 한국은 K-방역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8월 15일 일단의 방역 파괴집단의 출몰로 돌림병 위기가 재발하는 듯한 고비를 넘겼다. 이때를 전후하여 이 불온한 방역파괴자들은 정부의 방역조치가 과도하여 국민기본권이 침해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주장과 행동이 얼마나 황당하며 무모한 것이었던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COVID-19는 지난 2월 29일부터 10월 16일 오후 3시까지 세계적으로 적어도 3천8백88만2천9백96명이 감염환자로 확인되었고, 1백9만7천5백54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같은 날 한국의 총 누적 확진자수는 25,035명이며 누적 사망자는 441명(치명률 1.76%)이었다. 처음 바이러스 감염증 환자가 출현했을 때 한국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환자가 많은 나라였다. 그 뒤에 영국 수상과 브라질 대통령도 걸렸고, 미국 대통령 부부도 감염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8만5천명 선에서 방역 성공을 선언했다. 이미 32만(320,000)명 이상 환자가 발생한 나라는 23개국에 이르고 있으나 한국은 고작 2만5천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위험하고 불행한 시기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료 :질병관리청 2020. 10. 16일 현재
말 그대로 한국은 온 국민들이 간호사와 의사, 임상기사, 검진약 제조회사 연구원들과 함께 항바이러스전쟁(Anti-virus war)을 치루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선제적으로 그리고 선진적으로, 선도적으로 검사와 추적, 처치(Test, Treat and Track, T3)를 함으로써 바이러스 감염증의 공포와 위험, 고통에서 물러설 수 있었다. 국가 차원에서 북한 등이 중국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유럽 각국에서 이동 제한 등의 강력한 차단조치를 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2월 이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항바이러스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총력을 다해왔다. 특히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거쳐 간 동선을 추적하여 2차, 3차 감염을 차단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고, 모든 행사가 취소, 포기, 연기됨으로써 가장 위험한 숙주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접촉을 회피해야만 했고, 많은 이들이 이런 착용 불편과 감염불안, 거짓뉴스의 불신을 감수했다.
아직도 아찔했던 대구 신천지교회로부터 시작된 대규모 집단 발생 사태를 그나마 잘 수습할 수 있었던 것도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의 선제적 대응이었다. 여기에서만 5천2백14명의 환자가 대구(4,512), 경북(566), 경남(32), 경기(29), 강원(17), 서울(12), 광주(6), 충북(6), 인천과 대전(각 2), 세종과 전북, 전남(각 1)에서 발생하였다. 일부 야소교(耶蘇敎)도 문제였다.
특히 <대규모 집단 주요 발생 사례>를 보면 2020년 8월 15일 이후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관련 환자는 지금까지 1,173명으로 서울 646명, 경기 394명, 인천 52명, 충남 22명 등이다. 그리고 문제의 8월 15일 서울도심 집회 관련 환자는 647명으로 서울 142명, 경기 134명, 대구 103명 등이다. 아래 <그림 1>과 <그림 2>를 들여다보면 8월 15일 이후 국내발생 일별 신규 확진자가 매우 가파르게 급증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때는 너무나 위험했다.
그런데 이런 감염폭발사태가 얼마든지 예상되고, 정부당국이 경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행정법원 판사는 무슨 생각을 얼마나 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8월 15일 집회가 적법하다고 판시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이 서울행정법원 판사는 아무래도 국민보건에 대한 몰상식과 무식, 몰염치를 지적받지 않을 수 없는 꼴이 되었다. 특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사망자 441명중 60, 70, 80대 이상 사망자는 무려 414명이었다. 이 가운데 70대 이상 사망률은 83.22%였다. 60대 이상으로 치자면 93.88%나 되었다. 즉 이번 COVID-19로 인한 사망자들은 연로한 세대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이들 노년세대의 보수반공우파 지지자들은 10월 3일 개천절과 10월 9일 한글날 공휴일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재 광화문광장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들은 방역조치보다 집회의 자유가 더욱 귀중하다는 참으로 황당한 말을 반복했다. 경찰이 차벽을 세우자마자 과잉조치라고 반발했다. 국민건강을 위한 방역조치인 사회적 거리두기를 사실상 정쟁화함으로써 사태악화를 도발하는 반문명적 자세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였다. 특히 이런 방역파괴 언동은 매우 의도적이며 조직적·계획적·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가 다른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전면적으로 침해하고 유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직시했어야 마땅하다. 사회질서와 안녕을 정면으로 위협하면서 국가방역전선을 붕괴하려는 음모와 야심을 여지없이 징치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를 조장하고 두둔하면서 인권 운운하는 이들 역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수를 위한 방역과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동시에 보장할 수 있으려면
어느 경우에도 대한민국 헌법 제19조는 완벽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COVID-19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이번의 돌림병 대위기국면에서 항바이러스전쟁을 승리하고, 아픔과 슬픔에서 견뎌내려면 매우 제한적 수준에서 정교하게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개인들이 이용하고 있는 정보통신기구에 부착된 부품과 장치에 이미 수많은 개인정보들이 쌓여있고, 제3자가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어떤 사전 허락이나 양해가 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필자의 구글 타임라인을 짚어보면 지난 시기 전국을 싸돌아다닌 동선이 시간대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년 추모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여의도에서 버스를 얻어 타고 경남 봉하를 내려갔다 온 적이 있다. 그날 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직접 찾아와 추모사를 했다. 그런데 이날 나의 구글 타임라인을 찾아보니 하행선 노선과 상행선 노선이 달라져 있었다. 이날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던 고속도로가 각기 달랐었다. 이 구글 타임라인 역시 그 달라졌던 동선이 그래도 기록되어 있었다.
현재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정보통신기구의 기술 수준이 그렇다면 방역당국 역시 감염 의심자 추적과 차단, 격리에 꼭 필요하다면 동선 파악 등 개인정보를 우선 조치하고 사후 통보하는 게 필요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런 조치를 우선 시행하는 한이 있더라도 감염예방과 차단, 사회적 격리조치에 필요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방역과 인권의 긴장관계를 회피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양자의 접점을 찾으려는 대화가 필요하다. 개인정보 노출로 식당문을 닫아야 했던 이와 방역을 위해 동선을 찾아야 했던 공직자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 돌림병을 앓고 어려운 위기를 지냈던 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위기 속에서 위험한 길을 걸었던 이들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돌림병 위기를 정쟁화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자들이 회개, 반성, 전향하는 시간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본디 우리나라도 제헌헌법 제정 당시 감사원 설치에서 미국 방식을 검토하였다. 미국 방식이란 의회에 감사원을 설치하고 감사원이 감사를 1년 내내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인 한국의 특성으로 결국 미국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감사원(심계원)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1962년 헌법에 감사원을 헌법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의 ‘명목상의’ 허울 좋은 헌법기관일 뿐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이런 감사원은 지구상에 한국 외에 없다.
모든 감사보고서 일반에 공개, 독일 검사원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헌법기관으로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어느 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1948년 제정된 독일연방기본법 제114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상 최고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연방회계검사원 원장은 임기가 12년이고 단임제이며, 연방정부의 제청으로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연방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표를 득표한 자가 선출되고, 대통령은 선출된 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공공기관 감사에 있어 연방회계검사원 및 그 직원의 임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건은 요구일로부터 일정한 기한 내에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이때 자료제출 의무는 문서가 현존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행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경우에 있어 그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감사 대상기관은 요청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료의 제출을 단순히 거부할 수 없고 이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만약 감사직원의 정보요청 요구에도 불구하고 감사대상기관이 이를 무시하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감사직원은 즉시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직원회에서 조치를 결정한다. 감사 기준은 적법성,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능률성이다.
감사보고서는 모두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로써 일반 국민들의 감시가 활성화될 수 있고, 감사 직원에 대한 로비활동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감사기관에 대한 개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감사원,모든 공공기관이 지출계산서와 증빙서류 제출, 전수 감사 효과
프랑스 감사원은 입법, 행정,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존재한다.
감사는 행정 각부 기관으로부터 모든 지출계산서 및 증빙서류 원본을 제출받아 실시한다. 원칙적으로 3~5년 동안의 회계집행 사항을 전수 감사하도록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인력 및 시간적 제약으로 전체의 1/4 정도를 표본 추출하여 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계산서 및 증빙서류를 제출받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전수 감사를 받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프랑스 감사원의 구성원은 판사와 동등한 신분 보장을 받으며 봉급도 일반 공무원의 두 배 정도를 받는다. 이들은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오직 감사 업무의 성과에 의해서 자신의 고과(考課)가 평가된다. 자크 시라크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도 일찍이 재무감사 직군으로 활동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이는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프랑스의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미국은 회계감사원의 존재로 국가가 제대로 돌아간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원래 재무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견제 및 행정부의 국가운영 상태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마침내 입법부에 이전되었다.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회계감사원장은 상하 양원 각각 5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 동의를 거쳐 임명하며 임기는 15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추가 후보를 추천할 권한이 없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업무의 10%가 회계 감사이고 나머지 90%는 사업 평가가 차지하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시끄럽게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의정활동을 펼친다.
회계감사원은 자료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감사원의 권고는 4년 내 70%가 받아들여져 집행되고 있을 정도로 권위를 지닌다.
제대로 된감사원이 존재하면, 나라도 제대로 돌아간다
감사원이 진정한 감사원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려면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독립적인 기관으로 되거나 혹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의회 소속으로 되어야 한다. 의회 소속의 경우에도 ‘감찰’의 기능은 행정부에 그대로 남겨두면 된다. 참고로 미국은 행정부에 감찰국과 공직자윤리국을 설치하고 있다.
아울러 모든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에 준하는 감사와 철저한 자료제출, 감사보고서의 완전한 공개 그리고 감사원장 임기의 연장 등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감사 시스템을 도입, 강화하여 국제 기준에 부합시켜야 할 것이다.
코로나와 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
흔들리는 자본주의 제국의 향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전망한다!
코로나19로 세계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의 향방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미국에게 가장 파괴적인 태풍, 퍼펙트 스톰이다. 강력한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날아가고 감추어졌던 흉물들이 드러나듯 코로나는 미국의 감추어졌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을 단 한마디로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선망하던 외국인의 입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의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절망의 유령이 미국 전역을 휘감고 있다.
그 와중에 치러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트럼프나 바이든은 이 사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인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던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퍼펙트 스톰으로 드러난 미국의 충격적인 실상을 파헤치며, 이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의 나라가 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지난 10월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낙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판결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후속 조처였다. 그런데 정부의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충실히 따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판결 이전으로 역행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반응이다.
이 정부의 근간이 되었던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낙태죄 반대 ‘검은 시위’가 시작되었고,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 20-30대 여성이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이러한 역행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혜화역 시위 등과 관련하여 여론에서 소위 ‘20대 성 대결’ 담론을 확산시켰을 때에도, 현 정부는 주요 지지층이던 젊은 여성들을 나무라며 청년 남성층의 표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의 집요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형성되는 등, 청년 대중 페미니즘이 한국 정치에 미친 효과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 침묵을 지키는 경향이라면, 젊은 여성들은 정치적 주체화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왔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정치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닥친 집합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시민으로, 정치적 주체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온갖 다양한 불평등이 겹쳐지고 누적되어 생겨나는 복잡한 불평등의 양상 속에서 유독 ‘성 대결’의 논리를 부각하는 언론의 관점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세력은 여성의 목소리를 먼저 탓하는 관성을 보여왔다. 마치 정치세력에 대한 청년 여성의 지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남성 표의 이탈만이 핵심적인 문제인 양 야단법석을 떨어왔다.
어쩌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발표된 낙태법 개정안 역시,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정부 여당이 생각해낸 묘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시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시함으로써 남성 표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겠다는,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의심스러운 관성적 태도에 불과하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정치는 왜 계속 이런 관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성 표는 셈을 할 필요도 없는 휴짓조각이라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낙태 합법화에 대한 여성의 요구가 소수 페미니스트의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인구의 18% 정도를 이루는 천주교 교리로 한국 인구 전체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천주교의 논리: 태아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미국이나 한국은 천주교 신도가 다수를 이루는 사회가 아님에도, 낙태 문제로 가면 천주교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천주교 논리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에서는 천주교 논리가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태아와 그 태아를 임신한 여성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낙태는 태아를 죽이는 것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제 몸 안에 있다고 해서 여성이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하나님이 인간 생명을 만들기 위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므로, 여성에게는 주체적 결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주체적’ 교리해석을 정당화한 개신교의 논리를 급진화한다면, 여성의 주체적 성경해석이 완전히 부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구의 소수만을 차지하는 천주교의 논리가 늘 전면에 나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발맞춘 근대 정치사상 역시 여성을 합리적 결정능력을 갖는 주체로 설정하지 않았다. 근대적 주체는 가족 속에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남성이고, 여성은 남성의 가부장적 ‘보호’―라고 표현되는 ‘지배’―를 받으며, 사랑으로 가족에 헌신하는 사생활 속에 숨겨진 존재로서 규정되었다. 즉 여성은 사생활 속에서 신분제적으로 얽매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주체적’ 해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애초부터 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는 사생활의 주인이자 공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 즉 가장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적 공동체주의에 기반해서 근대 개인주의를 죄악시해온 한국 사회에서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생명체를 낳고 낳는 우주의 중심 섭리로 재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밭’이고 생명의 본질인 ‘씨’는 남성의 핏줄이므로, 여성의 몸은 역시 남성의 혈통집단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다. 여성은 자기 몸속의 생명에 대해 어떤 결정권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 중세 종교였던 천주교든, 서양의 근대적 정치사상이든, 한국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든 상관없이, 다소 일반적으로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해서조차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숙명적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논리가 매우 심각하게 약화하면서, 한국에서도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천주교 교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성이 이제는 사생활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공적 행위도 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이러한 논리가 유지되어야 하는가? 언뜻 보아도 이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여전히 여성이 가족이나 공적 영역 속에서 신분제적이라고 할 가부장적 규정에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 결정능력이 과도하게 요구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주체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 여성이 자녀 돌봄 부담으로 직업 세계에서 남성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에 몰입하지 못하면, 여성의 개인주의적 태도나 선택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은 신분제적으로 가부장제에 종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풀려나지 못한 비자유인의 처지면서도 동시에 수퍼히어로와 같은 주체성 발휘를 요구받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여성에 대한 요구가 모순적이라서, 논리적 정당화가 아닌 ‘종교적’ 가치의 문제로 낙태 문제가 환원되는 경향이 계속될 것이다. 말하자면 천주교의 논리가 ‘세속적’ 생명권의 문제로 번역되면서, 낙태가 태아의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간의 이분법적인 적대관계의 구도 속에서 다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과 태아가 이렇게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면, 여성에게 태아의 성장을 맡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생명체의 적에게 생명체를 위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여성의 폭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기술발전에 기대어 태아가 여성의 몸에서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단축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과 함께 태아를 어머니로부터 격리하여 그때부터 ‘사랑방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녀 양육과 돌봄은 여성의 일로 규정되어 있다. 이 모든 모순을 볼 때,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 또는 종교의 영역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는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 내에서만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다문화주의는 타 문화에 기이하게 보이는 문화도 문화상대주의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런 가치의 인정은 해당 공동체 내부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인가?’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 공동체는 신분제적 귀속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선택의 문제, 즉 입장과 탈퇴의 문제이다. 출생과 함께 한국 사회에 귀속되었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특정 공동체 질서로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균질한 공동체가 아니라 가치 다원화 및 다양성 속에서 분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어떤 가치와 신념을 공동체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헌법 질서에 어긋날 뿐이다. 이것이 낙태문제를 가치와 신념의 문제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물론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에서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헌법적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헌범재판소는 낙태 문제에서 가치를 여성인권의 가치로 규정했고, 그것이 태아 생명과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부는 다시 근거가 불명확한 유사공동체적 가치―생명권 대 여성 인권의 이분법에서 생명권을 우선시하는―로 회귀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여성 인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상호 적대적인가?
근대적 주체 개념에서는 개인과 의존관계가 상호 명확히 분리되고 또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구미 사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며,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적인 자율적 주체 개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상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할 논리가 없어서, 구미에서는 사회적 봉쇄와 봉쇄를 푸는 단순하고 극단적인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서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채 행정적 조치들이 서둘러 수행되는 등 인권 차원에서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것은 단순히 공동체주의적 미덕이라고 얼버무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인권 보호의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듯이, 서구의 근대적 주체 개념에 대한 근본적 재고 역시 필요하다. 근대적 주체 개념, 특히 인간의 의존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강조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 방향에서 문제 제기가 존재했다. 하나는 공동체주의이다. 여기서는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를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따라서 자칫하면 과거의 위계적 공동체로 회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대의 기능분화한 사회 원리와 공동체적 가치 공유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여기서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에서 주장하는 ‘가치의 공유’를 가부장적 가치의 지배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3의 관계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의 내용에 대한 청사진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태적 관점에 서 있는 신유물론에서는 근대적 주체가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지구 위에서 다른 물질 및 생명체와 의존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데, 근대적 주체 개념은 인간을 물질과 무관한 정신적 존재로만 규정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와 비교해서 페미니즘과 신유물론이 갖는 강점은, 관계적 존재론을 기존의 ‘공동체’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아직 그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수행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공동체주의는 경험적인 공동체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위계관계와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공동체는 늘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관계를 공동체의 가치로 정당화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가부장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에서는 관계성 강조를 공동체주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는 가부장적 지배보다는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강조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는 명백히 근대적 개인주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일단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 개념은 임신한 몸을 포괄할 수 없다. 임신이란 여성과 태아가 일정한 물질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의 주체적 결정은 태아라는 생명체에 영향을 주고, 태아에 대한 담론적 규정은 여성의 주체적 결정에 영향을 준다. 여성과 태아는 상호관계 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인간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공동체의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이들이 한 몸속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공동체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 관계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태아는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관계는 공동체보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 주장하는 관계성 개념에 훨씬 가깝다. 태아는 생명체이기는 하나 법적 인격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낙태 문제는 상호 적대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 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의존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의 문제가 된다. 특히 하나의 몸으로 연결된 상호의존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자율적인 주체의 결정과 다른 점은, 결정이 단순히 ‘자유’나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책임’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러웨이는 낙태는 서로가 죽여야 하는 생물체들의 세계 속에서 등장하는 죽이기의 문제와 같다고 보았다.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먹이 등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의 결정과 낙태의 결정이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와 불가피하게 연결된 타 생명체에게 응답하는 행위로서의 선택이다. 또 생명체 역시 주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낙태는 이런 상호 응답의 관계 속에서 책임 있는 응답을 하는 것이다. 즉 낙태는 여성이 자신의 요구와 태아의 요구 모두에 응답하는 결정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여성과 태아의 구체적 관계로부터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일반적인 해답을 외부로부터 제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체가 장차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졌다는 사실 역시 구체적으로 그 몸적인 관계를 체현하는 당사자가 응답할 문제이지, 외부로부터 특정 응답을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에게 낙태의 자유는 단순히 자율적인 개인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수행되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여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가치나 제도적 지원 등은 여성의 결정에서 고려되는 조건으로 작용할 뿐, 법적으로 강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5년에 진행된 이 인터뷰 내용은 세가지 의미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신향촌건설 운동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시대적 역설이 잘 드러나는, 초기 역사와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배석한 회의에서 원테쥔 선생이 삼농문제를 직보하여,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지게 된 장면은 상당히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 2005년부터 실행한 ‘신농촌건설’이 여전히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투자, 즉, 도시의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자 ‘발전주의’에 기반한 실천인데 반해서, 그에 앞서 진행된, 신향촌건설 운동은 농민과 청년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문생태주의적인 실천이라는 것은, 당대 중국사회가 삼농문제를 받아들이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 정부의 신농촌건설은,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론되는, 새마을운동을 상당히 참고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원톄쥔 선생은 삼농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음에도, 막상, 주류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향촌건설운동은 20여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량슈밍향촌건설 센터는 아직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조직은 아직도, 베이징 교외의 매우 허술하고 영세한 시설속에서, 젊은 이상주의 청년 활동가들의 열정과 몇몇 선도적 민간/국제 기금의 지원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중국 NGO와 자선단체의 주류를 이루는 관방 혹은 대기업이 지원하는 거대 단체들의 지원을 통한 안정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시진핑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이 보다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으로 이행함에 따라서, 여건이 다소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여러 정책 사업들에 신향촌건설 운동에 속한 풀뿌리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몇몇 기층 지방정부와 협력하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역으로 지나치게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참가자는 운동진영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은 20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과 입장을 가진, 수많은 참여자들이 등장하면서, 참가방법도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난고투를 피할 수 없는, 순수한 민간사회의 운동노선과 사회적 자원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주류 대중운동사이에서의 선택에 긴장과 고민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교육과 청년문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 교육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매우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동아시아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 인터뷰가 진행된 2015년보다 훨씬 심각해진, 2020년 현재, 대졸자들의 취업난, 학벌지상주의와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학력에 의한 계급분화문제 등이 있다. 최근, 급증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우울증, 경쟁지상주의에 기반한 학교 폭력, 매우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명문대학 엘리트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 중국 일선一線도시의 청년들은 한국의 동시대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하던 암울한 시대의 문턱에 이미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출생한 대졸자들은, 폭등한 집값 때문에, 졸업직후, 거주하는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했느냐 하지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중산층 진입여부가 갈라지게 됐다. 당연히, 9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애초에 자력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결국 부모의 경제 능력이 계층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주로 삼농의 관점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 됐는데, 실제로, 중국에서도 고등교육 전단계에서는 소위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실은 별수 없이, 주류사회에서의 경쟁에 몰입하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다. 원톄쥔 선생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향촌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자연교육’ 등을 보다 보편적 해결책의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원톄쥔 선생이 열망하는, 탈엘리트주의와 대중민주주의 추구,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 신향촌건설의 사상적 노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젊은 시절, 10여년에 걸친, 그의 하방(상산하향) 경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 중국 사회의 격변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경험을 개인적인 비극과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양분으로 삼아, 현실에 기반한 지식과 활동으로 승화한, 몇몇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경험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성장지상주의에 물든, 중국 주류 엘리트사회의 흐름을 좇지 않고, 신향촌건설 운동에 투신해, 이상을 좇아 분투하는 모습도 여기서 배운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7년 중국공산당 19대 보고에서 향촌진흥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일동양애一懂兩愛 (농업을 이해懂하고, 농민과 농촌을 사랑愛하는)’ 인재의 육성을 천명했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국가의 향촌진흥전략을 관철함에 있어서, 농민대중과 협력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일을 우리가 이미 수십년해왔기 때문이다. 향촌건설운동을 통해 길러내고 삼농문제에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 시기를 맞아서, 생태문명체제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낡고 병든 현재의 교육체제안에서 이런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서구 분과학문의 교조주의와 학벌주의의 폐해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의사과학적 형식주의가 유지하는 제도권 교육체제는 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고 여전히 겉만 번드르르할 뿐이다 ! 그러니, 향촌진흥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1.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열어가는 농촌지원하향운동의 시대적 배경
2001년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나는 (장쩌민)총서기가 주재하는 삼농문제 좌담회에 참석할 것을 통보받았다. 회의석상에서 총서기에게 직접 삼농문제를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이 농업정책 방향을 바꿔 삼농정책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나는 비교적 젊고 지위가 낮은 편이었기에, 더 단도직입적으로 주저없이 발언할 수 있었다. 나는 농촌의 형세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삼농문제가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고 내가 기탄없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중앙의 리더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총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책임지고 당신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국에서 토론하겠소”. 나중에 중앙은 우리가 90년대부터 계속 외롭게 목소리를 높여온 삼농문제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삼농문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기반이 된 배경이다.
<그림 1> 2004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매년 1호 문건에서 삼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내어 놓고 있다.
원래 중국 정부는 90년대초부터 대략 10년간, 서방의 농업정책과 사상을 참고해서 농업문제에 임해왔다. 방향이 다르니, 방침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90년대 농업정책을 비판하면서, “눈에 숫자만 들어오고, 마음속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왔다. 삼농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농업’을 일순위로 놓고, ‘농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삼농의 첫자리에는 바로 농민이 와야 한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민조직화이다. 왜냐하면, 농민이야말로 중국의 원주민이고, 중국 인민의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생산, 생활과 자연생태의 결합은 매우 밀접한 것이고, 농민의 문화적 실천은 언제나 일종의 다양성의 원칙을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이야말로 삼농중 첫째자리에 놓이게 된다. 마음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근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농민이 지켜온 농업문명을 진흥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다. 과거에는 농업생산만을 중시했다.
두번째가 농촌이다. 실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려면, ‘농촌소멸’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반대해야 한다. 만일 농촌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면,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농업경제, 생산 그리고 농민이 문화전승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개념들은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림 2> 원톄쥔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중국개혁 (농촌판)>> (2002) 잡지는 신세기 향촌건설운동의 플랫폼과 선전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형세가 안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농의 삼위일체적 지속가능성이 바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다.
2001년부터, 중앙은 삼농문제를 주요 의제로 받아들이고 2005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당대회 이래 신농촌건설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고, 우리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향촌건설을 재개했다. 향촌의 부흥이라고 부를만하다.
“마을(촌락)주의”는 1894년 청일전쟁 패배이후 장지엔張謇이 난통南通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실험지역을 만들고 실천할 때 내놓았던 구호이고 바로 향촌건설의 기본 이념이다. 민국시절 지식인들도 이를 신조로 삼아 1920~30년대에 농촌으로 내려갔다. 이 흐름에는 거대한 국제적 배경도 있다. 영문으로 번역하면 rural reconstruction인데 향촌 혹은 농촌의 재건으로 번역할 수 있다. 나중에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역시 이 개념으로 대만에서 농촌부흥을 꾀하고, 농촌부흥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2001년부터 향촌건설을 재개하면서, 향촌재건, 향촌부흥, 향촌건설 대신, 향촌문명의 부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백년 운동사를 이어받기 위해, 최종적으로 향촌건설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 민국 시절의 운동과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신향촌건설이라고 불렀다.
<그림 3> 중국개혁 편집장 원톄쥔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2년).
당시의 대학생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농촌지원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인데, 바로 중앙이 이미 삼농문제 개념을 받아들였던 그 시점이다. 하지만 각 지역과 부문은 아직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농민문제, 농촌문제와 농업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들과 마주하고 협력할 것을 권했다. 삼농문제를 해결하려면, 삼농에 복무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중국 사회의 인민들이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소수의 지식인들만 현실을 비판하고, 소수의 각성된 청년들만이 이에 호응한다면, 이는 소수만이 참여하는 소수의 일에 머물뿐이다. 일단 21세기 초에 전국민이 삼농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때만, 규모를 갖추고 지속가능성을 가진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향촌건설운동이 21세기초에 다시 시작된 배경이다.
2001년 다시 시작된 향촌건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 혹은 주요한 내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이미 많은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촌의 조사, 연구, 지원 활동에 참여하게 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신하방(상산하향)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속에서, 키워낸 인재들이 천천히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자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농촌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모델을 차용하는 대학들은 이런 식으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
<그림 4> 제1기 중국향촌건설교육, 스태프 (오른쪽: 류라오실劉老石, 중간: 치우졘셩邱建生)들과 농민이 함께 찍은 사진 (2003년 1월, 베이징).
2. 청년 지식인의 농촌지원 사명
2001년 신향촌건설 운동이 재개된 이래, 20세기 초반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활동가들은 농민을 움직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는 농민들이 조직화하여 스스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지위를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만, 농민들은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농민조직이 없으면, 의견이 분산돼, 농민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편 그 상대방인 사회의 다른 주체들도 수많은 각각의 농민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다. 즉,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의미있는 사회적 계약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시장경제는 계약이 기초가 되고, 이것을 신용경제라고 한다. 시장경제조건하에서 신용사회를 만들게 되는데, 농민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이것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
<그림 5> 2003년 겨울방학기간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 교육과정 (앞열의 왼쪽 두번째: 류라오실 왼쪽 아홉번째: 치우졘셩, 세번째열 오른쪽 아홉번째: 원톄쥔).
그리하여, 신향촌건설의 주요목표중 하나는, 농촌에 내려가 기층 농민들의 조직화를 돕는 것이었고, 이렇게 생겨난 농민조직들이 당시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은 정부에서 협동조합법을 제정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계약관계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조직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류의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당연히 농민들을 움직여야 했다.
다시 문제가 생겼다. 누가 농민을 움직일 것인가 ?
1980년대이래,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의 농촌방문 활동을 조직해왔다.
<그림 6> 2003년 1월 류라오실이 서남지역의 농촌지원방문단의 간부로서 농촌방문활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당시 농촌정책수립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내가 소속된 팀의 주요 임무중 하나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고무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조직해서 농촌으로 보내고, 농민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조사연구를 진행하면서, 현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청년의 열정과 능력을 활용해, 농민을 돕게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크든 작든 농촌의 발전을 촉진하게 하고 싶었다.
80년대이래, 중앙의 농촌정책중 주요한 업무중 하나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지원을 하는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내 상사는, 나중에 내 박사논문을 지도한 두룬셩杜潤生 선생이었는데, 그는 중앙재경업무 영도소조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중앙농촌정책 연구실의 주임이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70세를 넘었는데, 노년에 접어든 혁명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이다. 만일 이를 성공시킨다면, 그렇게 청년학생들을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다” 그때 두선생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80년대의 농촌정책은 상대적으로 유효했고, 농민들에게 환영 받았다. 그 당시의 1호문건을 지금의 1호문건보다 농민들이 더 좋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인 청년 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서, 현황과 민심을 제대로 살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구의 모델이 농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농민의 권익과 농촌발전문제는 경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청년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겠다는 중앙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맞아, 중앙이 다시 삼농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이래, 다시, 청년학생들의 하향농촌지원활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서 국무원영도하에, 이 흐름을 지지하고, 공개 서신을 보내는 형식으로 청년들의 농촌 지원 활동을 격려했다.
이때, 다시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협상지위를 제고하며, 사회계약 관계를 안정시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경제사회기초가 되도록 하기 위해, 누가 다시 농민들의 조직화 문제를 도울 것인가 ? 그래서 우리는 다시 대학생들을 훈련시켜 농촌으로 보내고, 80년대 농촌정책부문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여,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삼농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그래서 농민조직화를 위해서 반드시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림 7> 2016년 농촌지원하향, 제8회 여름 캠프.
<계속>
2015년 8월에 진행된 인터뷰내용으로, 2020년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된 <<향촌필기:신청년과 향촌의 생명대화 鄉村筆記:新青年與鄉村的生命對話>>라는 저서에 수록됐다.
예전에는 대학 내부의 양극화 현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고, 농촌 출신의 학생들이 상당수를 점했다. 이들은 자신의 고향의 가족, 친척, 이웃의 농민들이 사회적 약자이고, 농업과 농촌이 쇠퇴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삼농이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알고, 대학내의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촌 지원 동아리를 조직했다. 그때, 마침 중앙이 삼농문제를 중대 국가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전환을 맞아, 동시에 우리는 신향촌건설을 통해, 농민위주로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하향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두가지 과업이 신향촌건설의 키가 된다. 하나는 농민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학생 동아리를 통해 농촌지원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 이 두가지가 시대배경하에 만들어진 신향촌건설 운동의 좌우 방향타였다.
2000년에 나는 농업부에서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國務院體改辦로 자리를 옮겨, 중국경제체제개혁잡지사의 사장겸 총편집인 역할을 맡게 됐다. 나는 조직의 법인대표 신분을 활용하고 ‘중국개혁’이라는 매체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100년전 진행됐던 향촌건설을 부흥시키게 된다. 당시 삼농문제에서 내가 관심을 갖은 것은, 역시 주로 농민조직화와 청년농촌지원의 두가지 업무였고, 잡지사내에 농촌지원연구를 하는 소조직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각지의, 향촌건설사업에 뜻을 둔,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들게 된다. 그중에는 톈진과학기술대학에서 온 류샹보劉相波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역자 주 – 농민들이 주로 그를 부르던 류라오실劉老石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학생농촌지원동아리를 만들고, 이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실제 활동에 힘을 많이 기울였다. 그와 함께 협력한 치우졘셩邱建生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농촌에서 농민이 참가하는 커뮤니티대학社區大學(역자 주 – 대만에서 시작된 지역사회운동으로, 대만과 교류가 많은 푸졘성福建 출신인 치우졘셩 등이 이를 참고하여 푸졘성의 농촌마을에서 실험적으로 운영하였다), 협동조합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그들이 잡지사 농촌지원연구팀의 이 두가지 방면의 실체 책임자였다. 민국시절 량슈밍梁漱溟, 옌양추晏陽初, 루쭤푸盧作孚와 같은 선배들의 일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나중에 류샹보는 량슈밍향촌건설센터를 만들었고, 치우졘셩은 옌양추평민교육사상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림 8> 2004년 12월, 량슈밍 향촌건설센터가 베이징에서 정식으로 설립돼, 중국개혁 잡지사의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프로젝트를 이어 받게 된다. 전국 대학생농촌지원연구 십주년 토론회 겸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설립5주년 행사(2009년)에서, 안휘성 푸양남탕흥농협동조합 발기인 량윈뺘오가 발언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해, 우리의 프로젝트와 당시 주류 사회가 추진하던 시장화개혁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소위 당시의 ‘경제체제개혁’은, 시장화를 통해, 불가피하게 빈부격차를 확대할 수 밖에 없다. 또 시장화개혁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조절 위기현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시장경제는 어떻게 위기에 빠지는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구조를 파괴하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기만 할 뿐, 좁히지 못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양극화이다. 그래서, 중국은 이런 개혁과정에서 주로 도농이원화 구조를 통해, 명확한 도농간의 격차를 초래했고, 이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당시 나는 월러스타인의 발언을 빌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행복한 도시는 다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농촌은 각양각색의 불행한 양태를 보인다. “ 지금 생각해도 도농이원구조의 폐해를 드러낸 적절한 표현이다.
도시에 대량의 자본이 집중되면서, 그 효과로 도시 수입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농촌의 세가지 생산요소 유출현상이 나타난다. 자금, 토지, 노동력 이 삼대 기본요소가 모두 장기적으로 대규모로 농촌에서 빠져나가고, 사람들은 농촌을 외면하게 된다. 어떤 영역이든, 삼대 요소가 장기적으로 빠져 나가면, 쇠락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종합적인 삼농문제를 간과하고, 주로 시장경쟁력을 중심으로 농업문제만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농민의 빈곤화, 농촌의 쇠퇴, 농업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은 객관적 결과이고, 시장화를 통해 나타나게 됐다. 그러므로, 시장화 개혁을 주장하는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의 목소리가 주류가 되어, 우리가 강조하는 삼농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일 이를 받아들이면, 자본이 도시와 산업으로 집중화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개발 속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발전주의가 주류 개혁이론과 개혁정책의 신념이 돼, 일반적으로 우리의 삼농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내가 주도하는 잡지사가 삼농 문제에 주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당시의 주류 시장화개혁노선과 점차 갈등을 빚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도 그들의 눈밖에서 벗어나 주류 체제안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림 9> 대학생 농촌지원활동 참가자들의 모습. 2000년 이래, 량슈밍향촌건설센터와 전국 240여개 농촌지원 관련 동아리들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10년에 걸쳐 전국 200여개 대학 300여개의 동아리를 훈련시켰다.
그외에도, 당시 전국의 매체가 시장화 개혁에 발맞추어, 독립 재정을 요구 받았다. 거기에다 벌어들인 소득중 일부는 다시 주관 기관에 관리비로 납부해야 했다. 관영 잡지사임에도 국가에서 전혀 재정지원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돈을 벌어 살림살이를 꾸려야 했다. 경영 독립을 위해서는 결국 광고가 필요하고, 기업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즉, 자본가의 입맞에 맞는 기사를 생산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명의 잡지사 직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나? 잡지사 내부의 편집자들과 기자들도 점차 농민 편에 서고자 하는 우리들의 논조에 반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 향촌건설 자원활동가들은 그렇게 다시 적수공권 상태로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처음에는 잡지사의 자원을 활용했으나, 약자인 농민 편에 서려는 우리의 움직임은, 기업가들과 농민의 권익 보호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지방정부의 반감을 샀다. 잡지사는 더 이상 광고를 실을 수 없게 됐고, 자금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내가 잡지사에서 향촌건설 운동을 진행한 결과로, 외부 주류 세력의 반발을 샀고, 잡지 내부 인력의 밥그릇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잡지사 법인 대표였으나,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염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대표직을 사임하게 됐다. 그렇게 향촌건설은 다시 제도권에서 밀려 났다.
잡지사에 재직한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대략 3년간, 향촌건설은 어쨌든 백년후 새출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후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겪는 어려움을 스스로 체감할 수도 있었다. 2004년 전후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잡지사에서 쫓겨 나면서, 의탁을 할 기관이 따로 없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다행히도 삼년간, 우리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상당수의 학생동아리를 키워냈고, 십여개의 농민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대학생들은 청년 자원활동가로서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협력하고 있었고,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어, 우리는 객관적인 존재감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류샹보의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둥지를 잃었음에도 나름의 생존방법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허베이河北성 띵定현의 자이청翟城마을에 옌양추향촌건설학교를 만들고, 치우졘셩의 옌양추평민교육연구회가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주로 마을안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림 10> 2003년 7월19일 옌양추향촌건설학원이 중국향촌건설의 발원지인 허베이성 띵현 자이청마을에 설립됐다. 이 학교는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교육’이라는 원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농민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의 영역에서 실천과 교육, 연구를 실행했다.
량슈밍 향촌건설센터의 주업무는 대학생들이 교육에 참가하고 농촌으로 가서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당시 사무실을 빌릴 여유가 없었고,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테이블을 놓아 둘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베이징 교외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초기에는 안정되기가 힘들었지만, 이후에 후원기관들이 조금씩 생겨나서, 프로젝트 경비지원을 받고,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농촌에서 실천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자리잡았다. 이것이 농촌인재육성계획, 줄여서 인재계획이라고 부르는 프로젝트이고, 청년 자원활동가를 매년 농촌으로 보내서 일하게 한다.
이처럼, 당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나와 류샹보 모두, 이 운동이 ‘신시대상산하향운동’으로 발전해서, 지금과 같은 큰 사회적 흐름과 영향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4. 제도권 교육의 전복
청년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도록 독려하면서, 우선 이들 지식인들의 지식체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이들은 과연 농민들과 두 손을 맞잡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 이 문제는 청년, 학생들 혹은 교사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백년간의 산업화 역사의 유산이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산업화의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
산업화시대의 요구란 무엇인가 ? 내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다. 아마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란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생기넘치던 채플린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기계에 맞춰, 표준화된 동작을 취하게 된다. 이 희극은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것을 비판하는데,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기계화에 다름아니다.
소위 현대 교육은, 인류를 인력자원으로 보고, 인력자본의 도구로 삼는다.
<그림 11>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및 토론회 사진 (2004년 1월, 베이징) 2016년까지 베이징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23회에 걸친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회를 열었고, 누계 3,500여명의 우수한 청년 자원활동가를 키워냈다.
현대교육에서 중요한 이론중 하나가 교육을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다. 인력자원을 성인노동력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성인노동력자본이란 무엇인가? 산업자본에 협력하고, 산업자본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교육체계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기타속성, 사회속성, 자연속성 등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산업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자본 속성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교육이 훈련시킨 청년학생의 지식구조는 근본적으로 농촌의 다원화된 사회적 존재 형성에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농촌은 지역마다 특성이 상당히 다르고 농업은 자연, 자원, 기후, 지리 등의 조건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농업 지식은 근본적으로 로컬화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천차만별의 농업에 통일된 표준 지식체계를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중심의 제도권 농업학문지식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이 농업관련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꺼리지만, 학문지식을 표준화하면 할수록,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농촌에 가서 사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농촌은 다양성이 기본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르침과 배움간의 대립과 갈등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나 학교를 탓할 수 없다. 그보다는,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하나의 표준화된 지식체계를 좇아온 과거 백년 역사를 탓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초등학교도 모두 표준화된 제도권 교재를 사용하고, 그것도 전국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교재를 사용한다. 이곳은 고산지역이고, 저곳은 비옥한 흑토, 또 여기는 붉은 흑, 저기는 황토, 이곳은 석회암 지역, 저곳은 해안가, 임업지대, 초원, 습지 이렇게 지역마다 로컬한 지식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체계는 당연히 이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림 12> 제5회 전국농민협동조합조직포럼 및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십주년 기념 촬영 (2015년 전국농업전시관).
그렇게, 우리가 청년지식인들을 조직해서 농촌에 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 향토사회속에서 실천을 하려할 때, 무용지물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첫번째 문제이고,
두번째 문제는, 90년대 후반부터 소위 교육 대약진을 시도하면서 이루어진 교육의 산업화이다. 애당초 원인은 당시의 생산과잉문제였다. 불경기속에, 대량의 청년들이 취업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정부가 정원을 늘려, 홍수예방을 위해 댐에 물을 고수위로 저장하듯, 잠재적 취업예비군을 학교에 잠시 머물게 했다. 당시 대학이 정원을 늘리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됐다. 그래서 과거의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학교가 4년제 대학으로 승격이 됐다. 이러한 학교들은 4년제 대학으로서 학생들을 교육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이 돼버렸다. 동시에 정부가 민간이 투자한 사립대학을 설립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사립대학들은 교육 산업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우후죽순처럼 학교가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에 준비된 교수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고등교육의 질은 저하하면서, 학비는 증가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또, 저소득층인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의 진학률이 떨어졌다. 학력이 낮아서 다시 경제적 하층민이 양산되는 사회불평등과 이원화 구조가 심화됐다.
현재 중국에는 수천만명의 대학생이 있다. 매년 7~8백만명이 졸업하기 때문에 세계 최대규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실업자가 된다. 특히, 비명문대학 학생들이 그러하다. 이런 학생들은, 명문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문대학들은 이들에게 기회를 잘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입학력고사가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반드시 정부의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엄격한 표준화 교육이 전제가 된다. 이렇게 중국의 학생들은 암기에 능한 사람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혁신능력은 어느정도, 남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질, 또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데, 이런 학생들은 이렇게 융통성없는 과정을 거치는 제도권 교육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교육계는 내부적으로 매우 심한 배타성을 지니게 된다. 교육계 내부에 양극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최고 명문대학에 정말로 우수한 인재가 입학할 수 있을까 ? 그저 암기능력이 좋은 학생이 훌륭한 학생인가 ?
그리고 중국의 대학교육은 90년대부터 서방의 교육 체제를 그대로 카피해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수입, 번역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일본이나 한국, 유럽의 학문적 성과도 참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중국이 미국과 같은 사회인가 ?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다시 정리해보자, 모두가 중국 교육이 제대로 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첫째,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표준화된 제도권 교육만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교육산업화가 초래한 악성 부채와 교육비 증가가 만들어낸 매우 복잡한 난맥상을 아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제도권 교육으로 배운 표준화된 지식을 들고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농민들과 쉽게 협력할 수 있을까? 그래서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후에는, 매년 농촌으로 갈 인재를 육성하는 계획을 실행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갈수록, 이런 고학력 청년들이 농민, 농촌, 농업과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농의 객관적 필요와 고등교육 시스템이 배출한 인재의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갭이 존재한다.
이 일을 수행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다. 많은 기업가들이 내게 말한다. “원교수님, 이런 식으로 배출된 인재들이라면 얼마든지 저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량슈밍 향촌건설 센터에서 지금까지 2백명이 넘는 인재를 육성했지만, 실제 수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급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낼 때, 우선 대학에서 배운 쓸모없는 지식은 한켠으로 치워두라고 요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들이 머리에 금테두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명색이 대학생인데라며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마라. 사실 머리 속의 지식들은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발밑의 뜨거운 대지가 요구하는, 향촌생활에 적합한 것들이 아니다. 역으로 청년들이 일단 삼농의 요구에 맞출 수 있게 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특권의식 따위는 내려놓고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뒹굴면서 일년을 보내고 나면, 무슨 일에 임하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림 13> 농촌지속가능발전 인재계획은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내용으로 향촌건설 운동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일년간 지원하게 된다. 2005년부터 매년 1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하고있다. 제1기 참가자들 교육과정 수료 (인민대학교).
이런 각도로 보자면,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농촌우수인재계획은 실질적으로 현재의 교육산업화가 만든 모순과 형식주의적인 제도권 교육체제가 만든 폐해에 대해서 일종의 돌파구를 여는 혁신을 일으킨 셈이다. 상대적으로 완전히 서구화되고, 표준화된 지식으로 제도권 주입식 방법을 통해 인력자본화한 교육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혁신이다. 오늘날 모두가 혁신에 참여하는 시대에, 정말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급진적 혁신이다. 인재계획은 사회의 광범위한 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재계획은 실천, 중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농민과 결합된 ‘일동양애’형 인재의 교육방식이다.
5. 탈엘리트주의의 향촌건설
적수공권으로, 대사를 치르기 위해 나설 때, 균형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인이 되고,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다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사실,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만일 한 사업의 성패가 특정인 한명에게 달려 있다면, 이것은 매우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 거버넌스 이론에 의하면, 이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 아니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시작할 때부터, 매우 명확한 집단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수십년간 이렇게 많은 청년학생들을 동원해서 농촌의 삼농사업에 참여하게 하면서, 늘 생각해온 것이 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일이 아니라, 대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강연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향촌건설의 큰 특징중 하나가 탈엘리트주의이다.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 세대는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경험했고, 적지 않게 고생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남아 사회적 발언권을 갖게 된 사람들은 5%에 불과하다. 이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도 있고, 외국으로 간 이들도 있고, 기업가가 되는 등, 모두 중국 사회의 엘리트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나머지 95%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의 동년배 지식인 청년들이 하방의 경험이 있다. 함께 대중운동에 참여했고, 나중에 도시로 돌아와서 일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중에 정리해고를 당한 이들은,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이게 95%가 겪은 일들이다. 승자가 된 5%는 주위의 95%를 잊어서는 안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 95%에 농촌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말하자면, 탈엘리트주의 사회를 실현하고 싶다. 이를 실현할 여유가 없고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에 탄식할 뿐이다. 나는 주위의 훌륭한 인재들에도 못미치고, 공부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원히 분투할 수 밖에 없다.
<그림 14> “즐겁게 생활하며 이상을 좇는다” —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신청년공사 웹자보.
이 과정에서 나는 탈엘리트주의를 자각하게 됐고, 내 주위의 95%를 잊지 않게 됐다, 역으로 5%의 주류 엘리트 사상을 좇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사상을 인정하면, 세상의 재화를 인정해 버리게 된다. 이 부는, 엘리트 그룹이 사회를 이끌며 만들어낸 수익이다. 당연히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엘리트들이 분배한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2차분배를 통해 남은 몫으로 약자를 지원한다. 이것이 제도의 역할이며 주류적 사고이다. 나는 여기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 엘리트가 승자가 됐지만, 이러한 방법밖에는 없을까?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방법, 공정한 방법이 없을까 ? 95%가 함께 누려야 할 부분을 엘리트가 독점하고, 그저 나머지를 다시 재분배해야 하나 ?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기에 대중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일종의 다원성 공생 사회이다. 일종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식이고, 인류의 생계와 생태가 결합된 생태문명이다. 이는 현재의 주류 사상과는 구별되는 대안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향촌건설 사상이 일종의 탈급진화(역자 주 – 저자는, 서구적 산업화를 급진화로 표현한다. 그의 대표 저서 “100년의 급진”은 이를 뜻한다.)를 추구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옛 문명의 계승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삼성오신三省吾身, 음양지도陰陽之道,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일단 탈엘리트주의를 받아들이면, 자연히 상대적으로 생태환경과 조화하면서, 지속가능한 포용적 발전사상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사회에는 비록 수많은 악이 존재하지만, 사람됨을 갖춘다는 것은, 성악설을 믿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상선약수를 실천할 수 있다. 나쁜 짓은 사소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되고, 선한 일은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일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서로 의지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검찰권력’의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검찰의 ‘권력 남용’과 인사권을 둘러싸고 매일 같이 논란의 연속이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개념이 철저히 누락된 채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기구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 기제의 부재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지닌 가장 큰 허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었다.
검찰조직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권력기관이다. 지금 검찰은 법치를 말하면서 독립을 강조하지만,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 국가의 기반은 국민이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검찰조직을 포함한 모든 권력기구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권력기구의 독립과 존재를 위하여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진정 ‘시민의 대표’라면, 지금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검찰권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입법해야 한다.
검찰 기소독점주의,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검찰 권력’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 권력’이 부각되는 시기는 이른바 ‘87 체제’ 이후 들어선 문민정부부터였다. ‘법치’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치군인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검찰조직이 점차 접수해나가면서 마침내 현재와 같은 ‘검찰 권력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검찰 권력’의 막강한 힘은 바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이 보유한 이 기소독점주의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말 그대로 일제잔재에 속한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전혀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를 결정한다. 그리해 시민들은 대배심, 혹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직무집행명령제도(mandamus)를 통하여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한다. 미국의 검사는 연방검사와 지방의 지방 검사장(District Attorney)으로 구분되는데, 연방검사는 모두 94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당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지방 검사장은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사인(私人) 소추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가 소추주의만이 관철되면, 범죄 피해자의 피해 배상과 정당한 응보 감정을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형사소송 절차는 또한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소추를 할 수 있는 사소권(私訴權, Action civile)을 인정함으로써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남용에 대한 제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도 2차대전 패전 후 미군정 하에서 미국의 대배심 제도 대신 검찰심사회가 설치되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검찰심사회는 각 관할 지역에서 무작위로 추첨된 주민 11명의 심사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8명 이상의 동의로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하여 기소 의결을 하게 되면 기소를 강제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연간 약 7,300명이 검찰심사원으로 선발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심사회는 검찰 사무의 개선에 대한 건의, 권고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검찰에도 말로는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참고해 검찰시민위원회라는 제도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할 뿐이다.
‘공적(公的)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지닌 독일의 검찰
‘검사(檢事)’라는 명칭도 일본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그런데 독일에서 ‘검사’라는 용어에 대응하는 용어는 ‘Staatsanwalt’로서 ‘국가의 법률가’ 혹은 ‘국가의 변호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여 ‘체포’나 ‘검속’의 의미를 연상시키는 우리나라의 검사와 근본적으로 달리 ‘공적(公的)’ 의미를 지닌다.
독일에서도 검찰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오랜 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쳤다. 그 논의의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검사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검사의 “객관 의무에 관한 규정”의 명문화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에서 검찰은 “공적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우리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2.‘검찰 권력’ 통제를 위한 법적 장치, ‘법왜곡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다스와 BBK 사건이 마침내 13년 만에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특검팀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러나 법치란 그렇게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법의 정의’는 진실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 ‘법의 정의’ 실현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러나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공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솔선수범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리를 추구하여 법을 왜곡”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하는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일반 범죄보다 범죄성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 농단’ 관련자들에게 예외 없이 모두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적용시켰던 이른바 ‘직권남용 혐의’란 사실상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의 유명무실한 잣대일 뿐이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거나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법왜곡죄다.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노르웨이, 중국 등 적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법왜곡죄의 신설에 대하여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론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독점’ 혹은 ‘농단’의 상황 하에서 이뤄지는 그런 ‘법적 안정성’이라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정작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사법부 판결에 도전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적지 않은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법원이다. 이명박 사건이나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검찰이 명백하게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시킨 사건에 다름 아니다. 법원 역시 예를 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 무효로 결정해놓고도 이후 대법원 소부나 하급심에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이를 뒤집어 “긴급조치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법적 안정성’을 극적으로 동요시킨 바 있다.
사실 법왜곡죄가 존재하고 있는 독일 등의 국가에서도 해당 조항이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매우 적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법왜곡죄의 존재는 법왜곡 행위의 방지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관계자들로 하여금 법왜곡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작동되는 ‘상징적 법적 기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법왜곡죄는 이미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필자는 일찍이 한 신문에 법왜곡죄 도입을 주장하는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고 노회찬의원이 법왜곡죄 도입을 위해 입법토론회를 갖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되기를 바란다.
농민의 날은 참 묘하게 정해졌다. 한자로 十과 一을 합치면 土(흙 토)자가 되니 흙을 기반으로 일하고 흙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국민에게 공급하는 농민과 농업을 기억하며 土월 土일을 농민의 날로 정했다. 계절적으로는 농사가 끝나가는 시기이니 적당하다. 다만 묘하다고 한 것은 농업과 관련해 여러 기념할 만한 날들이 많이 있는데 이렇게 숫자맞추기 식으로 정한 것은 국민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기념하는 중요한 날을 정하는 방법으로는 좀 억지스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각설
올해 농민의 날은 17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17년 만이라고 하면 그 사이의 대통령들은 농민의 날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17년 전은 노무현대통령이 취임하는 해 였으니 노무현 대통령도 그 뒤에는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농민의 날 행사는 코로나 감염 우려로 청와대에서 농민들과 관계자 2백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는 농업이 매우 어려운 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다른 중소 상인들과 자영업자들도 큰 고통을 겪었지만 농업은 54일이나 이어지는 장마와 3개나 몰아친 태풍으로 생산량이 줄고 맛과 품질도 떨어지는 2중 3중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어려운 해의 농민의 날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농민들을 격려하고 감사를 표시하여 농업의 중요성을 확인한 건 잘한 일이다.
문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농업은 생명산업이자 국가기간산업이며, 농촌은 우리 민족공동체의 터전”이라고 하고 “코로나 이후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대의 농정을 과감하게 펼쳐가겠다”고 하였다.
이날 기념사를 조금 더 살펴보면
– 식량안보를 위해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콩은 45%까지 높이겠다.
– 살맛나는 농촌을 위해 도서관과 체육시설을 갖춘 생활 SOC 복합센터를 올해 700개에서 2025년까지 1200여 개로 늘리겠다.
– 푸드플랜 참여 지자체를 현재 예순 일곱 개에서 2022년까지 100개로 늘리겠다.
– 농촌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귀농인들이 농촌에 혁신과 활력을 불어놓고 있다.
– 우리 정부 출범 전, 20년 전 수준까지 떨어졌던 쌀값이 회복되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날 기념사는 우리 농업의 현실과 과제를 제대로 반영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선 식량안보를 위해 2030년까지 밀 자급율을 10%까지 올린다고 했는데 현재 국산밀 자급율은 1%를 밑돌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밀 생산 농민과 소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가 고작 이정도인데 아무 준비도 없이, 밀농업에 대한 지원계획이나 예산반영도 없이 10%로 늘린다? 또 콩 자급율 역시 5%를 밑도는데 논 대체작물로 콩 심는 것도 막으면서 무슨 수로 45%로 올릴지 가늠이 안된다.
살맛나는 농촌을 위해 도서관과 체육시설을 갖춘 생활SOC 복합센터가 이미 700개 만들어진 것처럼 얘기했지만 실은 일반농산어촌 개발사업의 누적 실적이고 이런 시설은 경북 고령에 한군데 있다고 하며 그것도 2018년에 완공되었고 그 이후에는 실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2025년까지 1,200개소로 늘린다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또 젊은이와 귀농인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지만 2019년 현재 만 30세 미만 청년 농사꾼은 전국에서 다 합쳐봐야 5백명도 안되고 귀농인도 한해 만명도 안되는데 그 나마 대부분 소득작물 중심이고 식량작물은 늙은 노인들에게 맡겨져 있는데 무슨 활력을 불어놓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방의 푸드플랜 계획은 특정 컨설팅 업체가 독점을 하고 B지역 푸드플랜을 컨설팅하면서 A지역에 이미 세운 계획을 ctrl+C, ctrl+V 하여 짜깁기하고 있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그걸 100개 지역까지 확대하겠다는 건 각 지자체들은 알아서 시행하라는 강요에 다름 아니다. 그 컨설팅 업체 대표를 하던 사람이 지금 청와대 농수산비서관으로 들어가 있다.
쌀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건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밥먹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쌀소비가 늘어난 탓이지 정부가 한 일은 거의 없는데 숟가락 얹을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1년간 먹는 쌀 소비량이 5백5십만 톤 정도 된다. 올해 장마와 태풍으로 인해 쌀 생산량은 360만톤으로 평년의 절반 가까이 감소하여 쌀 수급을 걱정해야 할 시기에 태평한 자화자찬은 심해도 한참 심했다.
농업계에서는 도대체 이 기념사를 누가 썼냐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농식품부 장관을 5개월동안 공석으로 방치하였고 농업과 농촌은 수치상으로도 곤두박질 치고 있는데 너무나 안이하고 장밋빛 그림만 제시하고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것과 거짓 수치를 제공하여 환상을 심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이 평소 농업에 관심을 두기 어려울 것이고 올해는 코로나 방역과 남북문제, 미 대선에 촉각이 서 있었으니 농민의 날 기념사의 문구를 세세히 검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대통령에게 하게 한 자는 더 이상 대통령과 국민과 농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농업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대통령을 만들게 된다.
많은 농민들과 농업계 인사들은 남은 임기 1년 여 라도 대통령과 정부가 우리 농업 회생의 토대라도 만들고 마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족 : 농민의 날을 정부 행정기관들은 ‘농업인의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농민과 농업인은 다른 말이다. 1년에 90일 동안 주말농사를 해도, 120만원의 농산물을 생산, 판매해도, 300평의 농지를 소유하고 조경수 나무를 심어놓아도, 농업회사나 영종조합에서 회계, 포장, 배송을 해도 농업인이다.
그런데 행정기관에서는 땅을 매개로 땀흘려 농사짓는 사람인 농민을 지칭하며 농업인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농민과 농업인은 다른 개념이지만 계속 농민을 농업인이라 쓰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국회(國會)’의 ‘나라 국(國) 자’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민의 대표”이지 결코 “국가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국회(國會)’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난 곳은 중국 고전『관자(管子)』로서 “국가의 회계(會計)”라는 뜻으로 쓰인 용어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현대적 의미로서의 ‘국회’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한 곳은 1861년 출판된 중국의『연방지략(聯邦志略)』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국회’라는 용어가 ‘Congress’의 번역어로서 채용되어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일반화되었다. 한편 우리 한국에서는 일본을 방문한 수신사의 기록인『일사집략(日槎集略)』(1881년)에 그 용례가 처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국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직 일본 그리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를 계속 ‘모시면서’ 사용하고 있는 한국에만 ‘국회’라는 용어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용어로서의 ‘국회(國會)’
본래 ‘의회(議會)’라는 용어는 라틴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담화(談話) 방식의 변론”으로서 처음에는 ‘대표들의 집회’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나라마다 그 명칭이 달라 영국은 의회(議會: Parliament), 프랑스는 삼부회 (三部會: Etats gen raux), 스페인은 코르테스(Cortes), 러시아는 두마(Duma) 등으로 칭해지고 있다.
원래 ‘Congress’는 ‘come together’로부터 온 용어이고, ‘Parliament’는 프랑스어 ‘parler’에서 비롯된 단어로서 ‘말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Etats gen raux’는 ‘세 나라의 대표’라는 의미이며, 러시아 ‘Duma’는 ‘둥근 천장이 있는 재판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의회’라는 용어의 어원은 ‘모이다’, ‘대표’, ‘말하다’, ‘재판정’ 등이며, 결국 이러한 개념들이 의회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라는 용어는 ‘국(國)’ 자를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견제 대상으로서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거꾸로 차용하여 마치 “국가의 대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결국 “시민으로부터 벗어나 거꾸로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권력자의 이미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만약 ‘국회’의 ‘국(國)’을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 파악하여 ‘국민의 대표’라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이 역시 ‘국가 신민(國家 臣民)’으로서의 ‘국민’, 즉, 통치 대상으로서의 ‘국민’으로만 간주하는 전 근대적 봉건적 시각, 결국 차별하고 군림하는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결국 ‘국회(國會)’라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시대착오적 용어이다. 국회를 바꾸려거든 그리하여 국회를 조금이라도 개혁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당장 ‘국회(國會)’라는 그 이름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 대신 어떤 용어가 타당할 것인가?
원래의 ‘실질’과 개념, 의미를 반영하여 “시민 대표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민회(民會)’로 바꾸거나 ‘공민(公民)’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공회(公會)’라고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하여 정부 권력(=국가 권력)이나 대통령을 견제하는 3권 분립의 한 축으로서 ‘국가의 대표’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반드시 “시민의 대표”라는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민회(民會)’라든가 ‘공회(公會)’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강하다면, 가치중립적인 용어로서 최소한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의논하고 회의한다.”라는 의미의 ‘의회’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게 관행화된 두 글자로 된 단어 사용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즉, 아예 ‘대표(자)회의’이나 ‘대표모임’ 등으로 원래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씌었다. 희망이란 말은 ‘위기, 희망,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부제에도 들어있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그 와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더욱 심해지는 불평등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쳐선 안 된다. 그리고 그런 희망의 총합이 바로 ‘생태문명’이다.
17명의 공동저자들은 현재 산업문명의 문제를 진단하고 생태문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지구 전체로 시야를 넓히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자고 촉구한다.
“19세기까지는 다른 모든 문명을 정복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 즉 글로벌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지역적 형태를 띨 때는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문명들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문명의 붕괴에 따른 위험성은 낮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과학, 기술, 국가, 전지구적 소비자들에 기반한, 현대문명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문명이다. 이 단일 문명이 과거 다른 문명들처럼 붕괴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앤드류 슈왈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교수)
“지구는 단 한 번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기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산업문명은 지구의 자원이 무한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생물종도 멸종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것도 멸종한 생물종을 다시 복원시킬 수 없다.”(이재돈, 천주교 신부))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우리는 현재 궤도대로 살면서 소수 사람들이 일시적 과소비를 즐기도록 도와주는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다가 멸망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생태문명이라는 비전을 수용해서 모든 인간이 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화, 제도, 사회 인프라의 전환을 이루자는 공동의 목적에 동참할 수도 있다.”(데이비드 코튼, 경제학자)
그런데 이런 궤도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도대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걸까. 생태문명 진영에서는 정책적∙기술적 해법과 함께, 근본적인 개념의 수정을 제시한다. 자연고갈, 멸종, 기후위기에 이른 현대 산업문명의 기초에 놓인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어떤 생각들이 현재의 문명을 만들었는지 밝힘으로써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통제 아래 놓인 지구와 생태계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 ‘과학’은 이런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인류는 자동차에서부터 화력발전소, 핵무기에 이르는 많은 기술을 통해 지구의 미래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런 기술은 폭발적인 과학지식을 통해 발명되고 실용화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를 바꿈으로써만 우리는 자연과 과학을 다르게 이용하게 될 것이다. … 오늘날 과학, 기술, 산업이 ‘몰가치적’이라는 생각은 지구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종을 위험에 빠트렸다. 이제 과학은 자연을 단지 ‘움직이는 물질’의 연구로 해석하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인간 사회도 수많은 생태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생태계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생태과학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필립 클레이튼, 생태문명연구소 대표)
생태문명에 대한 대표적 오해는 첨단 과학기술을 거부한 채 과거 농경사회로 ‘퇴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생태문명은 과학이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계를 계승하므로 전근대가 아니라 후현대라는 목표를 갖는다. 과학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 과학을 통합시킨다. 생태문명은 ‘탈과학’이 아니라 현대가 가진 해로운 가정들에서 벗어나 자연과 과학을 보다 유기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필립 클레이튼) 이 책에는 과학지식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요청하는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최근 생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이고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믹스(omics, ‘체학’이라 번역되며 생명과학에서 분자나 세포 등의 집합체 전체를 뜻함)라는 분야가 등장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후성유전학, 대사체학, 연결체학 등이 그 세부 학문분야들인데 단백질, 신경세포 등 몸속의 여러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접근법이다. … 이미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은 환원주의와 기계론을 넘어서 전체적 관점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구현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가고 있다.”(김홍기, 서울대 교수)
문제는 생태과학, 생물학 등에서 두드러지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사회제도와 시스템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관계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심층에서 충돌하거나 모순된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시스템 붕괴를 향해가는데, 대표적으로 경제와 교육이 그렇다.
“우리는 유한한 생태계에 속해 있고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 지구 자원의 소비가 변곡점에 이르면 지구 시스템의 회복력이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한다. 특히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용하는 자원흐름의 규모가 커지고 독성이 강해질수록 자연 생태계의 부담과 피해는 커진다. 그럼에도 경제학은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의 미래세대는 생태와 경제가 하나의 동일한 과정임에도 당시 세대가 왜 그렇게 생태와 경제의 연관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놀라움과 의문을 가질 것이다.”(정건화, 한신대 교수)
“나는 현재 형식의 대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학문분과, 철학적 유물론, 그리고 경제주의(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믿음)에 대한 헌신 때문에 그렇다. 대학이 세계의 공동선을 위한 세력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넘어서야 하며 인간의 삶이 갖는 의미, 지구의 모든 서식자들의 내재적 가치, 생명이 갖는 상대적 속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이 중에서도 학문분과는 매우 강력한 동시에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특별한 방식의 구조적 사고이다. 대학이 분과 형식의 사고에 매진하는 한, 대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학문분과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기 어렵다. 한 분과의 다양한 전제와 발견은 다른 분과의 전제와 발견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점검되지 않는다.”(마커스 포드, 철학자)
따라서 현재 문명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는 서로 연결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 세계, 우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통합적으로 사유해온 인문학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인문학의 협소화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목표인 ‘인간다움’이 갖는 의미는 인간과 다른 존재의 연관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때문에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좁은 정의를 벗어나 상호 연결된 존재로서의 진정한 인간다움을 탐구해야 한다. 환경인문학은 전지구적 생태위기에 대한 인문학의 응답으로, 2000년대 이후 환경철학, 환경사, 생태비평, 문화∙생물 인류학, 문화지리학, 정치생태학,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연구, 젠더연구, 종교학 등 다양한 인문학과들 사이의 연결을 추구하는 지적 프레임워크로서 등장했다. 환경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점차 고조되는 생태위기와 생태적 인식의 중요성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위기라는 두 가지 문제는 과학기술이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려우며, 인문학이 환경문제에 개입하고 대중의 의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한윤정, 문화연구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재설정된 세계,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가 생태문명이라는 대의에 맞춰 스스로의 존재가치와 목적을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작업을 거쳐 탄생하는 세계를 저자들은 ‘아름다운 공동체’ 혹은 ‘커먼즈’(공유)라고 부른다.
“아름다움의 경험에 수반되는 마음과 정신의 성질은 인간의 ‘정신적 알파벳’을 구성하는, 폭넓은 감정들로 이뤄진다. 주목(attention), 연결(connection), 헌신(devotion), 열광(enthusiasm), 신념(faith), 용서(forgiveness), 감사(gratitude), 관용(generosity), 환대(hospitality), 상상(imagination), 정의(justice), 친절(kindness), 경청(listening), 사랑(love), 의미(meaning), 양육(nurturance), 개방성(openness), 재미(playfulness), 호기심(question), 삶에 대한 열정(zest for life)… 생태문명은 교육과 예술, 건강한 가정생활과 시민으로서의 삶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런 감정적 성질들을 느끼고, 알고, 실제 그렇게 살도록 돕는다. 또한 이를 통해 타인이나 보다 큰 생명공동체에 존중과 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생태문명은 아주 이상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위한 온실이라 할 수 있다.”(제이 맥다니엘, 철학자)
“커먼즈는 우리의 비분리성, 상호의존성, 공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물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서로에게 연결되는 방식이다. 협동조합과 풀뿌리 조직을 결합한, 잘 조직된 커먼즈는 투명성, 평등, 존중을 실천함으로써 다양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신뢰를 만들고 책임을 실천하는 것은 성공적인 자기조직과 운영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우분투(Ubuntu)의 사상처럼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이를 초기 불교의 보살사상에 응용한다면, 세속적이고 영적인 운명의 결합으로서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에서 생겨난다. 포용성의 확장은 다른 사람을 주변화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의식은 물질적 인프라와 욕망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물질의 전환과 의식의 전환은 함께 이뤄진다.”(잭 월시, 독일 포츠담 고등지속가능성연구소 연구원)
『생태문명 선언』은 미국 생태문명연구소와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목적으로 주최한 컨퍼런스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마커스 포드의 경계한 바, 각자 다른 전제를 가진 분과학문의 대표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기존 학계의 컨퍼런스와는 다르다. 대부분 발표자는 서로의 삶과 생각을 잘 알고 이해한다. 그래서 생태문명이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그것이 성립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관계성과 연결성을 의식하면서 각자의 분야와 관심사 속에서 사려 깊게 펼쳐놓는 대안들이 조각보처럼 모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태문명’이란 “환경운동단체, 시위, 행동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 모두에 깊이 의존하면서도 ‘큰 그림’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이를 보완하는, 장기적으로 확장된 현실주의”이며 “뭔가 하도록 만드는 빅 아이디어”(필립 클레이튼)이다. 문명적 변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이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런 공부와 실천의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독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현대 문명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는 위기감이 만연했고, 자멸로 치닫는 인류의 비극적 서사가 매체를 점령했다. 과연 대안적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근대문명과 첨단기술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요청을 다시 소환하며 생태문명이란 무엇인지, 생태적 원리로 우리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과 생태학에서 배우는 상호의존성의 철학과 역학은 무엇인지, 나아가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명주의가 중요한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또 하나의 지구는 없기 때문이며, 우리 곁에 바싹 다가온 대안적 미래는 생태문명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디렉터이자 문화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한윤정 박사가 엮고 옮긴 『생태문명 선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을 제공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17년 11월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2018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열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 컨퍼런스’ 그리고 201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선별해 재구성한 것이다. 세 번의 컨퍼런스는 과정사상연구소, 생태문명연구소, 중국후현대발전연구원, 지구와사람, 서울대-한신대 포스트휴먼연구단 등이 공동 주최했다.
저자소개
앤드류 슈왈츠(Andrew Schwartz)-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조교수, 생태문명연구소 공동창립자이자 부대표, 과정사상연구소 사무국장. 종교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며 생태문명을 향한 연대활동을 조직한다.
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막강한 칼잡이 집단의 어지러운 검무(劍舞)에 매일의 신문과 방송을 보기가 두려워질 정도다.
법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검(檢)이라는 칼과 진실의 전달이라는 사명의 허울 뒤에 ‘진실을 제조’해내고 ‘사실을 가공’해내는 언(言)이라는 칼, 이 두 개의 칼이 한 몸으로 어울려 불러대고 추어대는 이중창과 2인무의 파열음과 광무(狂舞)가 귀를 찢고 눈을 산란케 한다.
검란(檢亂)과 언란(言亂),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과이자 원인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낳고 그 다른쪽이 다시 상대를 키워주는 상인상과(相因相果)의 관계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의 두 개의 칼의 등등한 기세는 또한 그 전성(全盛)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치닫는 것이기도 하니, 그 점에서 우리는 애써 낙관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각오하듯 가질 필요가 있다.
‘亂’에 어지럽다는 뜻과 함께 다스리다는 정반대의 뜻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은 어떤 문제든 그것이 극성해질 때 비로소 해결의 길로 나아가게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의 이치다.
다만 亂이 어지러움에서 다스려지는 상태로 저절로 바뀌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난(亂)을 난(亂)으로 보는 눈이 없이는 난은 거의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 개의 위험한 칼의 난무(亂舞)에 홀리지 않으면서 결국 우리 사회는 어떻든 진일보의 궤도를 걸을 것이라는 낙관, 그리고 그 길을 여는 것은 저 두 개의 칼잡이 집단의 광포한 흉기로서의 칼에 맞서고 제압할 수 있는 보통 시민들의 이성의 칼, 양식의 칼, 그럼으로써 모두를 살리는 활인(活人)의 칼을 벼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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