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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장을 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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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의 장을 열면서

admin | 월, 2019/11/04- 20:15

편집자의 글:

올해도 예외 없이 기후변화에 따른 온갖 재난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모두를 열거할 수 없는 엄청난 재난현상들이 해가 갈수록 정도를 더하고 있고, 연전(年前)부터 국제회의마다 기후변화를 넘어서 생태위기와 인류세의 멸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사회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무감하고 무책임으로 일관해 오고 있다. 에너지 과소비의 산업구조, 일인당 폐비닐 배출 세계 1위 국가, 탄소배출량을 감소하기는커녕 화석연료발전소 건설을 금융 지원하는 악당국가, 겨울과 봄철이면 찾아오는 미세먼지의 공습 등이 오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다.

근본적인 성찰과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개 평범한 시민들은 일상에 빠져있는 가운데 무능한 정부는 성장률과 GDP수치만 타령하고, 무지하고 시대역행적인 의회는 자신들의 정치적 셈법에만 빠져 있다.

<다른백년>은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연구해온 한윤정 박사와 함께 한국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고 깨어있는 시민 여러분들의 연대를 통하여 미래세대를 위한 실천적 좌표를 제시하고자 <생태문명전환> 프로젝트라는 주제의 글들을 매주 연재하기로 하였다.


[1] 현재 우리 문명은 어떤 토대 위에 세워졌을까

기후변화는 잘못된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전환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만연한 위기와 불안이다.

가장 큰 위기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이다. 이미 지난 세기부터 나온 진부한 이야기, 아직 극단적 상황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이야기로 여기기에는 심각한 상황들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다. 매년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대형산불이 나고 경작지가 줄고 수많은 종이 사라진다. 플라스틱이 바다를 뒤덮고 가축전염병이 국경을 넘어 창궐한다. 이른바 인간이 지구의 대기와 지질을 바꿔놓은 ‘인류세’로 접어들었다.

이렇듯 병들어가는 지구 위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힘들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는 중산층부터 빈곤층까지 모두 시스템의 노예가 돼서 어디로 향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모호한 미래를 향해 달린다. 불평등은 점점 심화한다. 불안을 가져오는 두려움의 대상은 때로는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때로는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로, 때로는 무역전쟁과 마이너스 경제로, 나아가서는 계층 갈등과 정치적 혼란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대책 마련에 부심한다.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기후붕괴에 대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상상해 거기에 맞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저성장 나아가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맞춰 청년이나 노인 수당을 신설하거나 복지제도를 개편한다. 모든 이해관계가 모이고 조정되는 정치에 관한 한 대안 마련이 더욱 쉽지 않지만, 분권이나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현재는 대안과 혁신을 모색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데 우리의 고정관념은 과감한 혁신이나 도전을 어렵게 한다. 고정관념이란 다른 말로 하면 사고의 프레임, 지식의 패러다임,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존재론과 우주론, 즉 철학과 과학이다(과학이라고 하면 실험과 수치에 입각한 실증과학을 가리키기 때문에 실재를 질문하는 자연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가 어떤 토대 위에 형성됐는지 그 사고의 뿌리를 파고들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화석연료가 우리 문명의 기반이다

현재 우리 문명은 어떤 생각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까.

경제주의: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모든 가치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우리는 돈 없이 절대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다. 그 규모와 운영원리가 공공의 통제범위 바깥에 있는 글로벌경제, 특히 금융경제의 시스템 속에서 현상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닥치며, 이는 모든 사람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믿는다. 경제주의적 사고방식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미국 민주당이 월 스트리트와 결탁한 것처럼 한국 민주당도 재벌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긴다. 생산과 소비인구를 늘리려는 출산장려 정책은 물론, 소득주도성장처럼 진보적으로 보이는 정책의 배경에도 지독한 경제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개인주의: 돈이 절대적인 이유는 남이 나를 돕거나 책임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지어 가족관계에서도 금도가 됐다. 성인이 된 개인은 재정적으로, 정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전통사회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개인의 자유를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이란 관계의 구성물이다. 사람은 가족, 친구, 이웃,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삶의 의미와 행복은 관계와 인정감에서 나온다. 아무리 복지사회를 위한 재원과 제도를 마련하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관념과 믿음이 없다면 이는 시혜와 수혜의 일방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분과주의: 오늘날 대학의 전공분야는 놀랍도록 세분화돼 있다. 직업의 세계도 그렇다. 지식인, 전문가는 한 분야를 좁고 깊게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분야만 탐구하는 데도 시간과 능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는 아예 귀를 닫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가치와 당위를 말하는 거대담론에 대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는 냉소적 반응을 보인다. 학벌주의, 능력주의와 합쳐진 분과주의는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폭넓은 사고를 가로막는다. 학문간 융합은 시장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며,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조차 문화콘텐츠나 테크놀로지를 위한 실용성을 갖추는 수단으로서 스스로의 지위를 유지한다.

실증주의: 실증주의는 이른바 객관적, 과학적 사고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않는다. 세속화한 세계에서 종교는 초월적 세계와의 교감이라기보다는 오랜 관습과 제도의 관성으로 남아있다. 때로 자연에서 에너지와 영감을 얻지만, 그것은 지구 자원을 개발과 이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대 경제시스템에서 더욱 유능하게 일하기 위한 휴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관심은 희망과 가치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절실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사람 사이의 에너지나 우주와의 교감으로부터 설명하기보다 심리학과 뇌과학이 발견한 인간 내면의 사건으로 환원시킨다.

서구에서는 이삼백 년, 한국에서는 백 년 이상 사회를 지탱해온 이런 사고들이 합쳐져 현재의 생태위기, 인간의 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주의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서구 산업문명을 세계화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 결과는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나타났다. 파국적 결과가 눈에 보이는데도 에너지 전환은 여전히 경제적 이익과 연관돼 논의되고, 탈성장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된다.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물론, 자연과의 교감조차 어려운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며, 넓은 시야를 비전문성의 증거로 간주한다. 사회의 엘리트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며, 경제적 수요에 부응하는 교육이 이를 부추긴다는 것은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소 위악적으로 서술한 우리 문명의 토대는 그러나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자신의 근시안적 이익만을 위해 행동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이타성이 최고 수준의 이기적 선택임을 밝혀주는 생물학적, 역사적 증거들이 나타나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 지식이든 재산이든,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은 과거의 유산과 동시대인들에게 빚진 것이라는 자각과 함께, 산업문명을 탄생시킨 사유화(인클로저)에 저항하는 공유화(커먼즈)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청년세대는 대학이 가진 권위와 대학 자체의 경제주의에 저항하면서 비제도권에서 폭넓은 지식을 탐구하는가 하면, 유목민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실천한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은 아직 비주류에 머물고 있다. 주류의 사고와 행동은 여전히 과거의 철학적 토대 위에 서 있으며, 그만큼 전면적 변화는 요원하다.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마저 현재 궤도에 결박된 삶과 이를 거부하는 앎 사이에서 자기분열을 겪으며 조금씩 열정을 소진해간다. 문명의 전환은 명백한 시대적 과제이지만, 그것을 분명한 언어와 힘찬 주장으로 제시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할 때만효과적으로 이행될 수 있다. 경제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틀 짓는 개인주의와 분과주의, 실증주의를 극복하기는 훨씬 어렵다.

 

생태문명은 전환의 방향이다

생태문명은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개념으로 제안됐다. 생태는 지구상 모든 존재와 생명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뜻이며, 문명은 사회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분야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생태문명은 기후변화나 환경파괴의 문제와 연관이 깊지만, 그것을 넘어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지구 전체의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말이다. 생태문명은 생태와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전환의 방향을 가리킨다. 경쟁하고 배제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공유함으로써 적절한 물질적 수준과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문명을 만들자는 이 주장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유토피아적인 관념인지도 모른다.

생태문명이라는 단어는 여러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지구헌장: 2000년 유엔총회에서 발표된 지구헌장은 “지구는 우리의 집이며 지상 모든 것의 집이다. 지구는 그 자체로 살아있다. 인간은 훌륭한 삶의 형태와 문화를 가진 지구의 한 부분이다”라고 선언했다. 또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지구를 보호하거나 우리 자신과 다양한 생명을 파괴하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자신과 지역사회, 소유와 존재, 다양성과 획일성, 단기와 장기, 사용과 육성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산업기술문명사회를 재고찰해야 한다”고 했다. 지구헌장은 1992년에 열린 역사적인 리우 환경회의 이후, 유엔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영성적 지도자와 NGO들이 제시한 환경보존과 지속가능개발 원칙을 바탕으로 1994년 초안을 마련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네덜란드 정부의 지원으로 1995년 30개국 대표와 70개 이상의 단체가 모인 가운데 첫 번째 국제워크숍이 열렸고, 1996년 지구의회가 조직돼 5년간의 검토와 보완과정을 거쳤다. 리우 회의의 성과인 ‘아젠다21’의 점검과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형성에 깊이 관여해온 지구의회가 발표한 2002년 보고서는 지구헌장의 원리를 “생태문명의 원리”라고 명시했다.

중국정부: 중국은 1997년 제15차 당대회에서 지속가능발전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채택했다. 지속가능발전은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1987년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에서 “미래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한 개념이다. 그런데 10년 뒤인 2007년 제17차 당대회에서는 지속가능발전 대신, 생태문명을 건설하자는 제안이 등장한다. 이는 지속가능발전이 제시하는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상호관계를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생태문명은 2012년 공산당 당헌에 포함돼 정치기본노선이자 국가통치전략으로 격상하며, 이때 권력을 승계한 시진핑 주석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목표로 경제, 정치, 문화, 사회, 생태문명 건설이 조화를 이루는 ‘오위일체론’을 제시한다. 2018년 생태문명 건설과 환경권을 담은 헌법 수정안이 통과됐고, 행정부처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기존 환경보호부를 포함한 6개 부처와 기구의 환경오염 관리 기능을 통합한 ‘생태환경부’가 탄생했다.

중국의 생태문명 정책은 세계 여러 나라의 모범이 될 만큼 혁신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현실이 따르지 않는 이상주의이자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새로 부상하는 녹색경제에서 세계시장 제패를 노리는 ‘시진핑의 세일즈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유엔은 중국정부를 지지해왔다. 유엔환경계획은 2013년 중국의 생태문명을 지지하고 확산시키는 결의안(결정 27/8)을 채택했다. 또 2016-2030년을 목표연도로 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수립하면서 중국을 적극적인 동반자로 끌어들였다. 2016년 유엔환경계획이 발행한 중국생태문명 홍보책자 『Green is Gold』(“청산녹수가 금산은산”이라는 시진핑 발언을 인용한 제목)는 “중국의 생태문명 건설노력은 2030 아젠다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의 확산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며 혁신, 조화, 녹색, 개방, 공유를 원칙으로 내세운 제13차 경제개발계획(2016-2020)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우리의 삶은 생태적 원리로 재조직돼야 한다

2015년은 생태문명 개념 확산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그 해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 환경회의는 지구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2도 이하로 억제하고, 가능하면 섭씨 1.5도 이하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결의안인 파리협약을 채택해 198개국의 서명을 받았다. 각국이 이행계획을 마련해 보고하고 유엔이 이행을 감시하기로 함에 따라 한국도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추정치의 37%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전체 탄소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4월 이 협약을 탈퇴했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 속도 역시 약속이행을 담보하기 어렵다.

파리협약이 체결되기 몇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리우 환경회의 이후 50년(2012년)이 되도록 유사한 회의와 결의만 계속됐지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는 것이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에 나오는 한 대학생은 2011년 유엔환경회의장에서 각국 대표들을 향해 “당신들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회의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없이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도, 이를 부추기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자원착취적 경제구조를 억제할 수도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영적, 종교적, 철학적 각성을 촉구하는 선언이 이어졌다.

찬미받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6월 자신이 주제 선정부터 집필, 발표에 이르는 전 과정을 주도한 첫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했다. 회칙이란 보편교회에 대해 교황이 발표하는 공식 사목교서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의 사회윤리적 문제에 비춰 해석하고 적용원리와 방안을 제시한다. 회칙의 핵심은 통합생태론인데, 이는 생태위기가 비단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조건과 결합돼 있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풀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경제와 발전에 대한 다른 이해방식을 찾으라는 요청, 모든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 생태계의 인간적 의미” 등을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통합생태론은 생태문명과 동의어이며 유엔과 지구헌장 그룹, 주요 종교지도자들, 과학계의 열광적 지지를 얻었다.

클레어몬트 컨퍼런스: 같은 2015년 6월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서는 과정신학자(과정신학은 앨프리드 노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응용한 미국의 진보신학운동이다)이자 환경사상가인 존 B. 캅 주니어의 주도로 ‘대안을 잡기: 생태문명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 생태문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사상 최대의 학술행사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1500여명의 사상가, 작가, 활동가, 신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을 끌어 모았고,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기후변화에 당면한 인류의 미래를 토론했다. 컨퍼런스 이후 주최측은 행사의 취지를 잇기 위해 비영리법인인 ‘생태문명연구소(Institute for Ecological Civilization)’를 만들었다. 이곳은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제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지방정부 및 연구기관, NGO와 협력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삶이 어떤 방식으로 재조직돼야 하는지 규명하는데 헌신한다.

세계종교의회: 1893년 창설돼 종파를 초월해 가장 많은 종교인이 모이는 세계종교의회는 2015년 10월 유타주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선언’을 발표하면서 생태문명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새로운 생태문명이다. 이는 생명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평화, 정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세계이다. 우리는 지구공동체 안의 인간 가족으로서 생태문명이라는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 선언은 지구공동체(지구상 모든 생명의 공동체)라는 상위 시스템에 속한 인간사회의 하위시스템으로 생태문명을 규정한다.

이밖에 생태문명과 유사한 개념은 적지 않다. 문화사학자이자 환경사상가인 토마스 베리는 물리학자 브라이언스 윔과 공저한 『우주이야기』(1997)에서 생태대(Ecozoic Era)라는 조어를 썼다. 지질학 용어를 차용한 생태대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생명중심주의, 지구중심주의로 옮겨간 시대이며, 이를 실현하려면 지구와 적절한 관계를 맺으려는 인간의 결정과 투신이 중요하다. ‘만인과 만물이 하늘(物物天 事事天)’이라며 공경의 대상을 한울과 사람을 넘어 만물(동식물)까지 확대한 최시형의 동학사상, 동학정신을 계승해 산업문명의 위기와 기계론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인간 안의 우주생명’을 도모한‘ 한살림 선언’(1989) 역시 생태문명과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생태문명은 진정한 글로컬 문명이다

생태문명 담론은 여전히 형성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 따르면, 생태문명은 실체가 아닌 과정이다. 생태문명을 위해서는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 단체가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유기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해야 한다. 문명의 토대를 바꾸기 위해 철학, 종교,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문화를 가로지르는 학제적 구상이 필요하며 이론과 실천, 담론과 정책이 만나야 한다. 견고하게 형성된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 데서 시작하기보다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미래를 꿈꾸면서 이를 실현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되짚어 내려오는 과감한 혁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생태문명의 시공간은 산업문명의 시공간과 현저히 달라질 것이다. 산업문명에서 미래는 무한히 진보하고 확장되는 시간이다. 과학기술은 발전하고 생산력은 증대하며 경제는 팽창한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 용량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생태문명에서 미래는 순환하는 시간이다.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모두 써버리는 자본주의 경제논리가 아니라 가을에 추수를 마친 뒤 이듬해 봄의 파종을 위해 씨앗을 보관하는 것처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미래, 즉 자본가와 도시노동자가 아닌 농부의 시간이 될 것이다.

생태문명의 공간은 이중적이다. 산업문명처럼 생태문명은 글로벌 문명이다. 서구 근대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간 지금, 지구화 이전 삶의 형태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산업문명이 차등근대화와 분업을 통해 전지구적 착취구조를 형성한 것과 달리, 공동체에 기반한 에너지 자립과 지역순환경제를 추구하는 생태문명은 보다 평등한 세계를 만들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 하나의 지구를 고려하며 살아가는 글로벌 문명인 동시에, 마을 단위로 각자의 삶을 꾸리고 실험하는 커뮤니티 문명이다. “범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구호는 지역의 차이를 활용하는 후기자본주의의 경영전략이 아닌, 생태문명의 구호로 전유돼야 한다.

앞으로 ‘생태문명전환 프로젝트’에 연재될 국내외 필자들의 글은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가 미국 과정사상연구소와 생태문명연구소, 중국 후현대발전연구원, 한국 지구와 사람 등 국내외 여러 기관과 협력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개최한 컨퍼런스의 성과물이다(2017년 11월 클레어몬트에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2018년 10월 파주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 2019년 10월 서울에서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라는 제목으로 열렸다). 생태문명을 향한 담대한 꿈과 실천적 제안들이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앞당기는데 영감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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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코로나와 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
흔들리는 자본주의 제국의 향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전망한다!

코로나19로 세계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의 향방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미국에게 가장 파괴적인 태풍, 퍼펙트 스톰이다. 강력한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날아가고 감추어졌던 흉물들이 드러나듯 코로나는 미국의 감추어졌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을 단 한마디로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선망하던 외국인의 입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의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절망의 유령이 미국 전역을 휘감고 있다.

그 와중에 치러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트럼프나 바이든은 이 사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인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던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퍼펙트 스톰으로 드러난 미국의 충격적인 실상을 파헤치며, 이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의 나라가 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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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극심한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연합뉴스>

 

김광기

수, 2020/11/0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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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낙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판결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후속 조처였다. 그런데 정부의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충실히 따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판결 이전으로 역행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반응이다.

이 정부의 근간이 되었던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낙태죄 반대 ‘검은 시위’가 시작되었고,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 20-30대 여성이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이러한 역행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혜화역 시위 등과 관련하여 여론에서 소위 ‘20대 성 대결’ 담론을 확산시켰을 때에도, 현 정부는 주요 지지층이던 젊은 여성들을 나무라며 청년 남성층의 표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의 집요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형성되는 등, 청년 대중 페미니즘이 한국 정치에 미친 효과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 침묵을 지키는 경향이라면, 젊은 여성들은 정치적 주체화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왔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정치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닥친 집합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시민으로, 정치적 주체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온갖 다양한 불평등이 겹쳐지고 누적되어 생겨나는 복잡한 불평등의 양상 속에서 유독 ‘성 대결’의 논리를 부각하는 언론의 관점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세력은 여성의 목소리를 먼저 탓하는 관성을 보여왔다. 마치 정치세력에 대한 청년 여성의 지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남성 표의 이탈만이 핵심적인 문제인 양 야단법석을 떨어왔다.

어쩌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발표된 낙태법 개정안 역시,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정부 여당이 생각해낸 묘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시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시함으로써 남성 표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겠다는,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의심스러운 관성적 태도에 불과하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정치는 왜 계속 이런 관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성 표는 셈을 할 필요도 없는 휴짓조각이라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낙태 합법화에 대한 여성의 요구가 소수 페미니스트의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인구의 18% 정도를 이루는 천주교 교리로 한국 인구 전체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천주교의 논리: 태아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미국이나 한국은 천주교 신도가 다수를 이루는 사회가 아님에도, 낙태 문제로 가면 천주교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천주교 논리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에서는 천주교 논리가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태아와 그 태아를 임신한 여성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낙태는 태아를 죽이는 것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제 몸 안에 있다고 해서 여성이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하나님이 인간 생명을 만들기 위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므로, 여성에게는 주체적 결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주체적’ 교리해석을 정당화한 개신교의 논리를 급진화한다면, 여성의 주체적 성경해석이 완전히 부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구의 소수만을 차지하는 천주교의 논리가 늘 전면에 나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발맞춘 근대 정치사상 역시 여성을 합리적 결정능력을 갖는 주체로 설정하지 않았다. 근대적 주체는 가족 속에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남성이고, 여성은 남성의 가부장적 ‘보호’―라고 표현되는 ‘지배’―를 받으며, 사랑으로 가족에 헌신하는 사생활 속에 숨겨진 존재로서 규정되었다. 즉 여성은 사생활 속에서 신분제적으로 얽매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주체적’ 해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애초부터 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는 사생활의 주인이자 공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 즉 가장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적 공동체주의에 기반해서 근대 개인주의를 죄악시해온 한국 사회에서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생명체를 낳고 낳는 우주의 중심 섭리로 재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밭’이고 생명의 본질인 ‘씨’는 남성의 핏줄이므로, 여성의 몸은 역시 남성의 혈통집단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다. 여성은 자기 몸속의 생명에 대해 어떤 결정권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 중세 종교였던 천주교든, 서양의 근대적 정치사상이든, 한국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든 상관없이, 다소 일반적으로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해서조차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숙명적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논리가 매우 심각하게 약화하면서, 한국에서도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천주교 교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성이 이제는 사생활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공적 행위도 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이러한 논리가 유지되어야 하는가? 언뜻 보아도 이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여전히 여성이 가족이나 공적 영역 속에서 신분제적이라고 할 가부장적 규정에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 결정능력이 과도하게 요구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주체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 여성이 자녀 돌봄 부담으로 직업 세계에서 남성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에 몰입하지 못하면, 여성의 개인주의적 태도나 선택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은 신분제적으로 가부장제에 종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풀려나지 못한 비자유인의 처지면서도 동시에 수퍼히어로와 같은 주체성 발휘를 요구받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여성에 대한 요구가 모순적이라서, 논리적 정당화가 아닌 ‘종교적’ 가치의 문제로 낙태 문제가 환원되는 경향이 계속될 것이다. 말하자면 천주교의 논리가 ‘세속적’ 생명권의 문제로 번역되면서, 낙태가 태아의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간의 이분법적인 적대관계의 구도 속에서 다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과 태아가 이렇게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면, 여성에게 태아의 성장을 맡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생명체의 적에게 생명체를 위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여성의 폭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기술발전에 기대어 태아가 여성의 몸에서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단축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과 함께 태아를 어머니로부터 격리하여 그때부터 ‘사랑방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녀 양육과 돌봄은 여성의 일로 규정되어 있다. 이 모든 모순을 볼 때,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 또는 종교의 영역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는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 내에서만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다문화주의는 타 문화에 기이하게 보이는 문화도 문화상대주의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런 가치의 인정은 해당 공동체 내부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인가?’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 공동체는 신분제적 귀속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선택의 문제, 즉 입장과 탈퇴의 문제이다. 출생과 함께 한국 사회에 귀속되었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특정 공동체 질서로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균질한 공동체가 아니라 가치 다원화 및 다양성 속에서 분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어떤 가치와 신념을 공동체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헌법 질서에 어긋날 뿐이다. 이것이 낙태문제를 가치와 신념의 문제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물론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에서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헌법적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헌범재판소는 낙태 문제에서 가치를 여성인권의 가치로 규정했고, 그것이 태아 생명과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부는 다시 근거가 불명확한 유사공동체적 가치―생명권 대 여성 인권의 이분법에서 생명권을 우선시하는―로 회귀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여성 인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상호 적대적인가?

근대적 주체 개념에서는 개인과 의존관계가 상호 명확히 분리되고 또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구미 사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며,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적인 자율적 주체 개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상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할 논리가 없어서, 구미에서는 사회적 봉쇄와 봉쇄를 푸는 단순하고 극단적인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서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채 행정적 조치들이 서둘러 수행되는 등 인권 차원에서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것은 단순히 공동체주의적 미덕이라고 얼버무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인권 보호의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듯이, 서구의 근대적 주체 개념에 대한 근본적 재고 역시 필요하다. 근대적 주체 개념, 특히 인간의 의존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강조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 방향에서 문제 제기가 존재했다. 하나는 공동체주의이다. 여기서는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를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따라서 자칫하면 과거의 위계적 공동체로 회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대의 기능분화한 사회 원리와 공동체적 가치 공유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여기서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에서 주장하는 ‘가치의 공유’를 가부장적 가치의 지배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3의 관계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의 내용에 대한 청사진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태적 관점에 서 있는 신유물론에서는 근대적 주체가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지구 위에서 다른 물질 및 생명체와 의존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데, 근대적 주체 개념은 인간을 물질과 무관한 정신적 존재로만 규정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와 비교해서 페미니즘과 신유물론이 갖는 강점은, 관계적 존재론을 기존의 ‘공동체’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아직 그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수행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공동체주의는 경험적인 공동체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위계관계와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공동체는 늘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관계를 공동체의 가치로 정당화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가부장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에서는 관계성 강조를 공동체주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는 가부장적 지배보다는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강조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는 명백히 근대적 개인주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일단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 개념은 임신한 몸을 포괄할 수 없다. 임신이란 여성과 태아가 일정한 물질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의 주체적 결정은 태아라는 생명체에 영향을 주고, 태아에 대한 담론적 규정은 여성의 주체적 결정에 영향을 준다. 여성과 태아는 상호관계 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인간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공동체의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이들이 한 몸속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공동체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 관계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태아는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관계는 공동체보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 주장하는 관계성 개념에 훨씬 가깝다. 태아는 생명체이기는 하나 법적 인격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낙태 문제는 상호 적대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 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의존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의 문제가 된다. 특히 하나의 몸으로 연결된 상호의존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자율적인 주체의 결정과 다른 점은, 결정이 단순히 ‘자유’나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책임’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러웨이는 낙태는 서로가 죽여야 하는 생물체들의 세계 속에서 등장하는 죽이기의 문제와 같다고 보았다.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먹이 등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의 결정과 낙태의 결정이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와 불가피하게 연결된 타 생명체에게 응답하는 행위로서의 선택이다. 또 생명체 역시 주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낙태는 이런 상호 응답의 관계 속에서 책임 있는 응답을 하는 것이다. 즉 낙태는 여성이 자신의 요구와 태아의 요구 모두에 응답하는 결정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여성과 태아의 구체적 관계로부터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일반적인 해답을 외부로부터 제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체가 장차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졌다는 사실 역시 구체적으로 그 몸적인 관계를 체현하는 당사자가 응답할 문제이지, 외부로부터 특정 응답을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에게 낙태의 자유는 단순히 자율적인 개인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수행되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여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가치나 제도적 지원 등은 여성의 결정에서 고려되는 조건으로 작용할 뿐, 법적으로 강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 2020/11/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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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해설:

2015년에 진행된 이 인터뷰 내용은 세가지 의미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신향촌건설 운동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시대적 역설이 잘 드러나는, 초기 역사와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배석한 회의에서 원테쥔 선생이 삼농문제를 직보하여,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지게 된 장면은 상당히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 2005년부터 실행한 ‘신농촌건설’이 여전히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투자, 즉, 도시의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자 ‘발전주의’에 기반한 실천인데 반해서, 그에 앞서 진행된, 신향촌건설 운동은 농민과 청년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문생태주의적인 실천이라는 것은, 당대 중국사회가 삼농문제를 받아들이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 정부의 신농촌건설은,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론되는, 새마을운동을 상당히 참고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원톄쥔 선생은 삼농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음에도, 막상, 주류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향촌건설운동은 20여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량슈밍향촌건설 센터는 아직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조직은 아직도, 베이징 교외의 매우 허술하고 영세한 시설속에서, 젊은 이상주의 청년 활동가들의 열정과 몇몇 선도적 민간/국제 기금의 지원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중국 NGO와 자선단체의 주류를 이루는 관방 혹은 대기업이 지원하는 거대 단체들의 지원을 통한 안정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시진핑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이 보다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으로 이행함에 따라서, 여건이 다소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여러 정책 사업들에 신향촌건설 운동에 속한 풀뿌리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몇몇 기층 지방정부와 협력하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역으로 지나치게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참가자는 운동진영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은 20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과 입장을 가진, 수많은 참여자들이 등장하면서, 참가방법도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난고투를 피할 수 없는, 순수한 민간사회의 운동노선과 사회적 자원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주류 대중운동사이에서의 선택에 긴장과 고민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교육과 청년문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 교육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매우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동아시아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 인터뷰가 진행된 2015년보다 훨씬 심각해진, 2020년 현재, 대졸자들의 취업난, 학벌지상주의와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학력에 의한 계급분화문제 등이 있다. 최근, 급증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우울증, 경쟁지상주의에 기반한 학교 폭력, 매우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명문대학 엘리트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 중국 일선一線도시의 청년들은 한국의 동시대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하던 암울한 시대의 문턱에 이미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출생한 대졸자들은, 폭등한 집값 때문에, 졸업직후, 거주하는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했느냐 하지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중산층 진입여부가 갈라지게 됐다. 당연히, 9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애초에 자력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결국 부모의 경제 능력이 계층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주로 삼농의 관점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 됐는데, 실제로, 중국에서도 고등교육 전단계에서는 소위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실은 별수 없이, 주류사회에서의 경쟁에 몰입하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다. 원톄쥔 선생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향촌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자연교육’ 등을 보다 보편적 해결책의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원톄쥔 선생이 열망하는, 탈엘리트주의와 대중민주주의 추구,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 신향촌건설의 사상적 노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젊은 시절, 10여년에 걸친, 그의 하방(상산하향) 경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 중국 사회의 격변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경험을 개인적인 비극과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양분으로 삼아, 현실에 기반한 지식과 활동으로 승화한, 몇몇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경험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성장지상주의에 물든, 중국 주류 엘리트사회의 흐름을 좇지 않고, 신향촌건설 운동에 투신해, 이상을 좇아 분투하는 모습도 여기서 배운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7년 중국공산당 19대 보고에서 향촌진흥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일동양애一懂兩愛 (농업을 이해懂하고, 농민과 농촌을 사랑愛하는)’ 인재의 육성을 천명했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국가의 향촌진흥전략을 관철함에 있어서, 농민대중과 협력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일을 우리가 이미 수십년해왔기 때문이다. 향촌건설운동을 통해 길러내고 삼농문제에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 시기를 맞아서, 생태문명체제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낡고 병든 현재의 교육체제안에서 이런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서구 분과학문의 교조주의와 학벌주의의 폐해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의사과학적 형식주의가 유지하는 제도권 교육체제는 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고 여전히 겉만 번드르르할 뿐이다 ! 그러니, 향촌진흥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1.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열어가는 농촌지원하향운동의 시대적 배경

2001년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나는 (장쩌민)총서기가 주재하는 삼농문제 좌담회에 참석할 것을 통보받았다. 회의석상에서 총서기에게 직접 삼농문제를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이 농업정책 방향을 바꿔 삼농정책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나는 비교적 젊고 지위가 낮은 편이었기에, 더 단도직입적으로 주저없이 발언할 수 있었다. 나는 농촌의 형세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삼농문제가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고 내가 기탄없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중앙의 리더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총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책임지고 당신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국에서 토론하겠소”. 나중에 중앙은 우리가 90년대부터 계속 외롭게 목소리를 높여온 삼농문제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삼농문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기반이 된 배경이다.

<그림 1> 2004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매년 1호 문건에서 삼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내어 놓고 있다.

원래 중국 정부는 90년대초부터 대략 10년간, 서방의 농업정책과 사상을 참고해서 농업문제에 임해왔다. 방향이 다르니, 방침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90년대 농업정책을 비판하면서, “눈에 숫자만 들어오고, 마음속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왔다. 삼농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농업’을 일순위로 놓고, ‘농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삼농의 첫자리에는 바로 농민이 와야 한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민조직화이다. 왜냐하면, 농민이야말로 중국의 원주민이고, 중국 인민의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생산, 생활과 자연생태의 결합은 매우 밀접한 것이고, 농민의 문화적 실천은 언제나 일종의 다양성의 원칙을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이야말로 삼농중 첫째자리에 놓이게 된다. 마음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근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농민이 지켜온 농업문명을 진흥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다. 과거에는 농업생산만을 중시했다.

두번째가 농촌이다. 실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려면, ‘농촌소멸’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반대해야 한다. 만일 농촌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면,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농업경제, 생산 그리고 농민이 문화전승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개념들은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림 2> 원톄쥔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중국개혁 (농촌판)>> (2002) 잡지는 신세기 향촌건설운동의 플랫폼과 선전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형세가 안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농의 삼위일체적 지속가능성이 바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다.

2001년부터, 중앙은 삼농문제를 주요 의제로 받아들이고 2005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당대회 이래 신농촌건설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고, 우리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향촌건설을 재개했다. 향촌의 부흥이라고 부를만하다.

“마을(촌락)주의”는 1894년 청일전쟁 패배이후 장지엔張謇이 난통南通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실험지역을 만들고 실천할 때 내놓았던 구호이고 바로 향촌건설의 기본 이념이다. 민국시절 지식인들도 이를 신조로 삼아 1920~30년대에 농촌으로 내려갔다. 이 흐름에는 거대한 국제적 배경도 있다. 영문으로 번역하면 rural reconstruction인데 향촌 혹은 농촌의 재건으로 번역할 수 있다. 나중에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역시 이 개념으로 대만에서 농촌부흥을 꾀하고, 농촌부흥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2001년부터 향촌건설을 재개하면서, 향촌재건, 향촌부흥, 향촌건설 대신, 향촌문명의 부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백년 운동사를 이어받기 위해, 최종적으로 향촌건설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 민국 시절의 운동과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신향촌건설이라고 불렀다.

<그림 3> 중국개혁 편집장 원톄쥔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2년).

당시의 대학생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농촌지원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인데, 바로 중앙이 이미 삼농문제 개념을 받아들였던 그 시점이다. 하지만 각 지역과 부문은 아직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농민문제, 농촌문제와 농업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들과 마주하고 협력할 것을 권했다. 삼농문제를 해결하려면, 삼농에 복무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중국 사회의 인민들이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소수의 지식인들만 현실을 비판하고, 소수의 각성된 청년들만이 이에 호응한다면, 이는 소수만이 참여하는 소수의 일에 머물뿐이다. 일단 21세기 초에 전국민이 삼농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때만, 규모를 갖추고 지속가능성을 가진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향촌건설운동이 21세기초에 다시 시작된 배경이다.

2001년 다시 시작된 향촌건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 혹은 주요한 내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이미 많은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촌의 조사, 연구, 지원 활동에 참여하게 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신하방(상산하향)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속에서, 키워낸 인재들이 천천히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자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농촌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모델을 차용하는 대학들은 이런 식으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

<그림 4> 제1기 중국향촌건설교육, 스태프 (오른쪽: 류라오실劉老石, 중간: 치우졘셩邱建生)들과 농민이 함께 찍은 사진 (2003년 1월, 베이징).

 

2. 청년 지식인의 농촌지원 사명

2001년 신향촌건설 운동이 재개된 이래, 20세기 초반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활동가들은 농민을 움직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는 농민들이 조직화하여 스스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지위를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만, 농민들은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농민조직이 없으면, 의견이 분산돼, 농민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편 그 상대방인 사회의 다른 주체들도 수많은 각각의 농민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다. 즉,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의미있는 사회적 계약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시장경제는 계약이 기초가 되고, 이것을 신용경제라고 한다. 시장경제조건하에서 신용사회를 만들게 되는데, 농민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이것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

<그림 5> 2003년 겨울방학기간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 교육과정 (앞열의 왼쪽 두번째: 류라오실 왼쪽 아홉번째: 치우졘셩, 세번째열 오른쪽 아홉번째: 원톄쥔).

그리하여, 신향촌건설의 주요목표중 하나는, 농촌에 내려가 기층 농민들의 조직화를 돕는 것이었고, 이렇게 생겨난 농민조직들이 당시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은 정부에서 협동조합법을 제정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계약관계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조직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류의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당연히 농민들을 움직여야 했다.

다시 문제가 생겼다. 누가 농민을 움직일 것인가 ?

1980년대이래,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의 농촌방문 활동을 조직해왔다.

<그림 6> 2003년 1월 류라오실이 서남지역의 농촌지원방문단의 간부로서 농촌방문활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당시 농촌정책수립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내가 소속된 팀의 주요 임무중 하나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고무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조직해서 농촌으로 보내고, 농민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조사연구를 진행하면서, 현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청년의 열정과 능력을 활용해, 농민을 돕게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크든 작든 농촌의 발전을 촉진하게 하고 싶었다.

80년대이래, 중앙의 농촌정책중 주요한 업무중 하나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지원을 하는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내 상사는, 나중에 내 박사논문을 지도한 두룬셩杜潤生 선생이었는데, 그는 중앙재경업무 영도소조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중앙농촌정책 연구실의 주임이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70세를 넘었는데, 노년에 접어든 혁명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이다. 만일 이를 성공시킨다면, 그렇게 청년학생들을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다” 그때 두선생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80년대의 농촌정책은 상대적으로 유효했고, 농민들에게 환영 받았다. 그 당시의 1호문건을 지금의 1호문건보다 농민들이 더 좋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인 청년 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서, 현황과 민심을 제대로 살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구의 모델이 농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농민의 권익과 농촌발전문제는 경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청년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겠다는 중앙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맞아, 중앙이 다시 삼농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이래, 다시, 청년학생들의 하향농촌지원활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서 국무원영도하에, 이 흐름을 지지하고, 공개 서신을 보내는 형식으로 청년들의 농촌 지원 활동을 격려했다.

이때, 다시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협상지위를 제고하며, 사회계약 관계를 안정시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경제사회기초가 되도록 하기 위해, 누가 다시 농민들의 조직화 문제를 도울 것인가 ? 그래서 우리는 다시 대학생들을 훈련시켜 농촌으로 보내고, 80년대 농촌정책부문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여,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삼농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그래서 농민조직화를 위해서 반드시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림 7> 2016년 농촌지원하향, 제8회 여름 캠프.

<계속>

 

2015년 8월에 진행된 인터뷰내용으로, 2020년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된 <<향촌필기:신청년과 향촌의 생명대화 鄉村筆記:新青年與鄉村的生命對話>>라는 저서에 수록됐다.

 

김유익

금, 2020/11/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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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류사회에 외면당하는 농촌지원 하향운동

예전에는 대학 내부의 양극화 현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고, 농촌 출신의 학생들이 상당수를 점했다. 이들은 자신의 고향의 가족, 친척, 이웃의 농민들이 사회적 약자이고, 농업과 농촌이 쇠퇴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삼농이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알고, 대학내의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촌 지원 동아리를 조직했다. 그때, 마침 중앙이 삼농문제를 중대 국가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전환을 맞아, 동시에 우리는 신향촌건설을 통해, 농민위주로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하향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두가지 과업이 신향촌건설의 키가 된다. 하나는 농민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학생 동아리를 통해 농촌지원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 이 두가지가 시대배경하에 만들어진 신향촌건설 운동의 좌우 방향타였다.

2000년에 나는 농업부에서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國務院體改辦로 자리를 옮겨, 중국경제체제개혁잡지사의 사장겸 총편집인 역할을 맡게 됐다. 나는 조직의 법인대표 신분을 활용하고 ‘중국개혁’이라는 매체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100년전 진행됐던 향촌건설을 부흥시키게 된다. 당시 삼농문제에서 내가 관심을 갖은 것은, 역시 주로 농민조직화와 청년농촌지원의 두가지 업무였고, 잡지사내에 농촌지원연구를 하는 소조직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각지의, 향촌건설사업에 뜻을 둔,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들게 된다. 그중에는 톈진과학기술대학에서 온 류샹보劉相波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역자 주 – 농민들이 주로 그를 부르던 류라오실劉老石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학생농촌지원동아리를 만들고, 이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실제 활동에  힘을 많이 기울였다. 그와 함께 협력한 치우졘셩邱建生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농촌에서 농민이 참가하는 커뮤니티대학社區大學(역자 주 – 대만에서 시작된 지역사회운동으로, 대만과 교류가 많은 푸졘성福建 출신인 치우졘셩 등이 이를 참고하여 푸졘성의 농촌마을에서 실험적으로 운영하였다), 협동조합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그들이 잡지사 농촌지원연구팀의 이 두가지 방면의 실체 책임자였다. 민국시절 량슈밍梁漱溟, 옌양추晏陽初, 루쭤푸盧作孚와 같은 선배들의 일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나중에 류샹보는 량슈밍향촌건설센터를 만들었고, 치우졘셩은 옌양추평민교육사상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림 8> 2004년 12월, 량슈밍 향촌건설센터가 베이징에서 정식으로 설립돼, 중국개혁 잡지사의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프로젝트를 이어 받게 된다. 전국 대학생농촌지원연구 십주년 토론회 겸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설립5주년 행사(2009년)에서, 안휘성 푸양남탕흥농협동조합 발기인 량윈뺘오가 발언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해, 우리의 프로젝트와 당시 주류 사회가 추진하던 시장화개혁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소위 당시의 ‘경제체제개혁’은, 시장화를 통해, 불가피하게 빈부격차를 확대할 수 밖에 없다. 또 시장화개혁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조절 위기현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시장경제는 어떻게 위기에 빠지는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구조를 파괴하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기만 할 뿐, 좁히지 못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양극화이다. 그래서, 중국은 이런 개혁과정에서 주로 도농이원화 구조를 통해, 명확한 도농간의 격차를 초래했고, 이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당시 나는 월러스타인의 발언을 빌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행복한 도시는 다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농촌은 각양각색의 불행한 양태를 보인다. “ 지금 생각해도 도농이원구조의 폐해를 드러낸 적절한 표현이다.

도시에 대량의 자본이 집중되면서, 그 효과로 도시 수입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농촌의 세가지 생산요소 유출현상이 나타난다. 자금, 토지, 노동력 이 삼대 기본요소가 모두 장기적으로 대규모로 농촌에서 빠져나가고, 사람들은 농촌을 외면하게 된다. 어떤 영역이든, 삼대 요소가 장기적으로 빠져 나가면, 쇠락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종합적인 삼농문제를 간과하고, 주로 시장경쟁력을 중심으로 농업문제만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농민의 빈곤화, 농촌의 쇠퇴, 농업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은 객관적 결과이고, 시장화를 통해 나타나게 됐다. 그러므로, 시장화 개혁을 주장하는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의 목소리가 주류가 되어, 우리가 강조하는 삼농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일 이를 받아들이면, 자본이 도시와 산업으로 집중화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개발 속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발전주의가 주류 개혁이론과 개혁정책의 신념이 돼, 일반적으로 우리의 삼농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내가 주도하는 잡지사가 삼농 문제에 주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당시의 주류 시장화개혁노선과 점차 갈등을 빚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도 그들의 눈밖에서 벗어나 주류 체제안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림 9> 대학생 농촌지원활동 참가자들의 모습. 2000년 이래, 량슈밍향촌건설센터와 전국 240여개 농촌지원 관련 동아리들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10년에 걸쳐 전국 200여개 대학 300여개의 동아리를 훈련시켰다.

그외에도, 당시 전국의 매체가 시장화 개혁에 발맞추어, 독립 재정을 요구 받았다. 거기에다 벌어들인 소득중 일부는 다시 주관 기관에 관리비로 납부해야 했다. 관영 잡지사임에도 국가에서 전혀 재정지원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돈을 벌어 살림살이를 꾸려야 했다. 경영 독립을 위해서는 결국 광고가 필요하고, 기업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즉, 자본가의 입맞에 맞는 기사를 생산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명의 잡지사 직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나? 잡지사 내부의 편집자들과 기자들도 점차 농민 편에 서고자 하는 우리들의 논조에 반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 향촌건설 자원활동가들은 그렇게 다시 적수공권 상태로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처음에는 잡지사의 자원을 활용했으나, 약자인 농민 편에 서려는 우리의 움직임은, 기업가들과 농민의 권익 보호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지방정부의 반감을 샀다. 잡지사는 더 이상 광고를 실을 수 없게 됐고, 자금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내가 잡지사에서 향촌건설 운동을 진행한 결과로, 외부 주류 세력의 반발을 샀고, 잡지 내부 인력의 밥그릇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잡지사 법인 대표였으나,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염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대표직을 사임하게 됐다. 그렇게 향촌건설은 다시 제도권에서 밀려 났다.

잡지사에 재직한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대략 3년간, 향촌건설은 어쨌든 백년후 새출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후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겪는 어려움을 스스로 체감할 수도 있었다. 2004년 전후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잡지사에서 쫓겨 나면서, 의탁을 할 기관이 따로 없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다행히도 삼년간, 우리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상당수의 학생동아리를 키워냈고, 십여개의 농민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대학생들은 청년 자원활동가로서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협력하고 있었고,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어, 우리는 객관적인 존재감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류샹보의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둥지를 잃었음에도 나름의 생존방법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허베이河北성 띵定현의 자이청翟城마을에 옌양추향촌건설학교를 만들고, 치우졘셩의 옌양추평민교육연구회가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주로 마을안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림 10> 2003년 7월19일 옌양추향촌건설학원이 중국향촌건설의 발원지인 허베이성 띵현 자이청마을에 설립됐다. 이 학교는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교육’이라는 원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농민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의 영역에서 실천과 교육, 연구를 실행했다.

량슈밍 향촌건설센터의 주업무는 대학생들이 교육에 참가하고 농촌으로 가서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당시 사무실을 빌릴 여유가 없었고,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테이블을 놓아 둘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베이징 교외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초기에는 안정되기가 힘들었지만, 이후에 후원기관들이 조금씩 생겨나서, 프로젝트 경비지원을 받고,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농촌에서 실천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자리잡았다. 이것이 농촌인재육성계획, 줄여서 인재계획이라고 부르는 프로젝트이고, 청년 자원활동가를 매년 농촌으로 보내서 일하게 한다.

이처럼, 당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나와 류샹보 모두, 이 운동이 ‘신시대상산하향운동’으로 발전해서, 지금과 같은 큰 사회적 흐름과 영향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4. 제도권 교육의 전복 

청년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도록 독려하면서, 우선 이들 지식인들의 지식체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이들은 과연 농민들과 두 손을 맞잡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 이 문제는 청년, 학생들 혹은 교사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백년간의 산업화 역사의 유산이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산업화의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

산업화시대의 요구란 무엇인가 ? 내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다. 아마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란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생기넘치던 채플린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기계에 맞춰, 표준화된 동작을 취하게 된다. 이 희극은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것을 비판하는데,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기계화에 다름아니다.

소위 현대 교육은, 인류를 인력자원으로 보고, 인력자본의 도구로 삼는다.

<그림 11>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및 토론회 사진 (2004년 1월, 베이징) 2016년까지 베이징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23회에 걸친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회를 열었고, 누계 3,500여명의 우수한 청년 자원활동가를 키워냈다.

현대교육에서 중요한 이론중 하나가 교육을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다. 인력자원을 성인노동력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성인노동력자본이란 무엇인가? 산업자본에 협력하고, 산업자본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교육체계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기타속성, 사회속성, 자연속성 등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산업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자본 속성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교육이 훈련시킨 청년학생의 지식구조는 근본적으로 농촌의 다원화된 사회적 존재 형성에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농촌은 지역마다 특성이 상당히 다르고 농업은 자연, 자원, 기후, 지리 등의 조건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농업 지식은 근본적으로 로컬화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천차만별의 농업에 통일된 표준 지식체계를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중심의 제도권 농업학문지식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이 농업관련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꺼리지만, 학문지식을 표준화하면 할수록,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농촌에 가서 사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농촌은 다양성이 기본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르침과 배움간의 대립과 갈등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나 학교를 탓할 수 없다. 그보다는,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하나의 표준화된 지식체계를 좇아온 과거 백년 역사를 탓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초등학교도 모두 표준화된 제도권 교재를 사용하고, 그것도 전국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교재를 사용한다. 이곳은 고산지역이고, 저곳은 비옥한 흑토, 또 여기는 붉은 흑, 저기는 황토, 이곳은 석회암 지역, 저곳은 해안가, 임업지대, 초원, 습지 이렇게 지역마다 로컬한 지식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체계는 당연히 이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림 12> 제5회 전국농민협동조합조직포럼 및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십주년 기념 촬영 (2015년 전국농업전시관).

그렇게, 우리가 청년지식인들을 조직해서 농촌에 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 향토사회속에서 실천을 하려할 때, 무용지물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첫번째 문제이고,

두번째 문제는, 90년대 후반부터 소위 교육 대약진을 시도하면서 이루어진 교육의 산업화이다. 애당초 원인은 당시의 생산과잉문제였다. 불경기속에, 대량의 청년들이 취업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정부가 정원을 늘려, 홍수예방을 위해 댐에 물을 고수위로 저장하듯, 잠재적 취업예비군을 학교에 잠시 머물게 했다. 당시 대학이 정원을 늘리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됐다. 그래서 과거의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학교가 4년제 대학으로 승격이 됐다. 이러한 학교들은 4년제 대학으로서 학생들을 교육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이 돼버렸다. 동시에 정부가 민간이 투자한 사립대학을 설립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사립대학들은 교육 산업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우후죽순처럼 학교가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에 준비된 교수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고등교육의 질은 저하하면서, 학비는 증가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또, 저소득층인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의 진학률이 떨어졌다. 학력이 낮아서 다시 경제적 하층민이 양산되는 사회불평등과 이원화 구조가 심화됐다.

현재 중국에는 수천만명의 대학생이 있다. 매년 7~8백만명이 졸업하기 때문에 세계 최대규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실업자가 된다. 특히, 비명문대학 학생들이 그러하다. 이런 학생들은, 명문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문대학들은 이들에게 기회를 잘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입학력고사가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반드시 정부의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엄격한 표준화 교육이 전제가 된다. 이렇게 중국의 학생들은 암기에 능한 사람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혁신능력은 어느정도, 남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질, 또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데, 이런 학생들은 이렇게 융통성없는 과정을 거치는 제도권 교육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교육계는 내부적으로 매우 심한 배타성을 지니게 된다. 교육계 내부에 양극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최고 명문대학에 정말로 우수한 인재가 입학할 수 있을까 ? 그저 암기능력이 좋은 학생이 훌륭한 학생인가 ?

그리고 중국의 대학교육은 90년대부터 서방의 교육 체제를 그대로 카피해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수입, 번역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일본이나 한국, 유럽의 학문적 성과도 참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중국이 미국과 같은 사회인가 ?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다시 정리해보자, 모두가 중국 교육이 제대로 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첫째,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표준화된 제도권 교육만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교육산업화가 초래한 악성 부채와 교육비 증가가 만들어낸 매우 복잡한 난맥상을 아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제도권 교육으로 배운 표준화된 지식을 들고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농민들과 쉽게 협력할 수  있을까? 그래서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후에는, 매년 농촌으로 갈 인재를 육성하는 계획을 실행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갈수록, 이런 고학력 청년들이 농민, 농촌, 농업과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농의 객관적 필요와 고등교육 시스템이 배출한 인재의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갭이 존재한다.

이 일을 수행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다. 많은 기업가들이 내게 말한다. “원교수님, 이런 식으로 배출된 인재들이라면 얼마든지 저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량슈밍 향촌건설 센터에서 지금까지 2백명이 넘는 인재를 육성했지만, 실제 수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급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낼 때, 우선 대학에서 배운 쓸모없는 지식은 한켠으로 치워두라고 요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들이 머리에 금테두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명색이 대학생인데라며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마라. 사실 머리 속의 지식들은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발밑의 뜨거운 대지가 요구하는, 향촌생활에 적합한 것들이 아니다. 역으로 청년들이 일단 삼농의 요구에 맞출 수 있게 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특권의식 따위는 내려놓고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뒹굴면서 일년을 보내고 나면, 무슨 일에 임하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림 13> 농촌지속가능발전 인재계획은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내용으로 향촌건설 운동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일년간 지원하게 된다. 2005년부터 매년 1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하고있다. 제1기 참가자들 교육과정 수료 (인민대학교).

이런 각도로 보자면,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농촌우수인재계획은 실질적으로 현재의 교육산업화가 만든 모순과 형식주의적인 제도권 교육체제가 만든 폐해에 대해서 일종의 돌파구를 여는 혁신을 일으킨 셈이다. 상대적으로 완전히 서구화되고, 표준화된 지식으로 제도권 주입식 방법을 통해 인력자본화한 교육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혁신이다. 오늘날 모두가 혁신에 참여하는 시대에, 정말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급진적 혁신이다. 인재계획은 사회의 광범위한 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재계획은 실천, 중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농민과 결합된 ‘일동양애’형 인재의 교육방식이다.

 

5. 탈엘리트주의의 향촌건설 

적수공권으로, 대사를 치르기 위해 나설 때, 균형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인이 되고,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다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사실,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만일 한 사업의 성패가 특정인 한명에게 달려 있다면, 이것은 매우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 거버넌스 이론에 의하면, 이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 아니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시작할 때부터, 매우 명확한 집단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수십년간 이렇게 많은 청년학생들을 동원해서 농촌의 삼농사업에 참여하게 하면서, 늘 생각해온 것이 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일이 아니라, 대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강연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향촌건설의 큰 특징중 하나가 탈엘리트주의이다.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 세대는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경험했고, 적지 않게 고생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남아 사회적 발언권을 갖게 된 사람들은 5%에 불과하다. 이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도 있고, 외국으로 간 이들도 있고, 기업가가 되는 등, 모두 중국 사회의 엘리트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나머지 95%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의 동년배 지식인 청년들이 하방의 경험이 있다. 함께 대중운동에 참여했고, 나중에 도시로 돌아와서 일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중에 정리해고를 당한 이들은,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이게 95%가 겪은 일들이다. 승자가 된 5%는 주위의 95%를 잊어서는 안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 95%에 농촌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말하자면, 탈엘리트주의 사회를 실현하고 싶다. 이를 실현할 여유가 없고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에 탄식할 뿐이다. 나는 주위의 훌륭한 인재들에도 못미치고, 공부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원히 분투할 수 밖에 없다.

<그림 14> “즐겁게 생활하며 이상을 좇는다” —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신청년공사 웹자보.

이 과정에서 나는 탈엘리트주의를 자각하게 됐고, 내 주위의 95%를 잊지 않게 됐다, 역으로 5%의 주류 엘리트 사상을 좇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사상을 인정하면, 세상의 재화를 인정해 버리게 된다. 이 부는, 엘리트 그룹이 사회를 이끌며 만들어낸 수익이다. 당연히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엘리트들이 분배한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2차분배를 통해 남은 몫으로 약자를 지원한다. 이것이 제도의 역할이며 주류적 사고이다. 나는 여기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 엘리트가 승자가 됐지만, 이러한 방법밖에는 없을까?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방법, 공정한 방법이 없을까 ? 95%가 함께 누려야 할 부분을 엘리트가 독점하고, 그저 나머지를 다시 재분배해야 하나 ?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기에 대중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일종의 다원성 공생 사회이다. 일종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식이고, 인류의 생계와 생태가 결합된 생태문명이다. 이는 현재의 주류 사상과는 구별되는 대안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향촌건설 사상이 일종의 탈급진화(역자 주 – 저자는, 서구적 산업화를 급진화로 표현한다. 그의 대표 저서 “100년의 급진”은 이를 뜻한다.)를 추구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옛 문명의 계승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삼성오신三省吾身, 음양지도陰陽之道,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일단 탈엘리트주의를 받아들이면, 자연히 상대적으로 생태환경과 조화하면서, 지속가능한 포용적 발전사상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사회에는 비록 수많은 악이 존재하지만, 사람됨을 갖춘다는 것은, 성악설을 믿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상선약수를 실천할 수 있다. 나쁜 짓은 사소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되고, 선한 일은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일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서로 의지해야 한다.”

 

김유익

목, 2020/11/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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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력기구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통제 기제 결여, ‘87년체제의 가장 큰 허점

우리 사회에서 갈수록 ‘검찰권력’의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검찰의 ‘권력 남용’과 인사권을 둘러싸고 매일 같이 논란의 연속이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 과정에서 ‘시민’의 개념이 철저히 누락된 채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기구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 기제의 부재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지닌 가장 큰 허점이었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2항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었다.

검찰조직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권력기관이다. 지금 검찰은 법치를 말하면서 독립을 강조하지만, 법치란 결코 법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민주주의 실현의 유효한 수단으로서의 법치여야 한다. 국가의 기반은 국민이고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검찰조직을 포함한 모든 권력기구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권력기구의 독립과 존재를 위하여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진정 ‘시민의 대표’라면, 지금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검찰권력’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입법해야 한다.

 

검찰 기소독점주의, 시민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

‘검찰 권력’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 권력’이 부각되는 시기는 이른바 ‘87 체제’ 이후 들어선 문민정부부터였다. ‘법치’라는 명분을 앞세워 정치군인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검찰조직이 점차 접수해나가면서 마침내 현재와 같은 ‘검찰 권력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다.

‘검찰 권력’의 막강한 힘은 바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이 보유한 이 기소독점주의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형사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말 그대로 일제잔재에 속한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는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전혀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민간인들로 구성되는 대배심(Grand Jury)이 기소를 결정한다. 그리해 시민들은 대배심, 혹은 기소를 하지 않는 검사에 대한 직무집행명령제도(mandamus)를 통하여 검찰의 기소권을 견제한다. 미국의 검사는 연방검사와 지방의 지방 검사장(District Attorney)으로 구분되는데, 연방검사는 모두 94명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당적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지방 검사장은 주민들의 직선으로 선출된다.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사인(私人) 소추주의가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가 소추주의만이 관철되면, 범죄 피해자의 피해 배상과 정당한 응보 감정을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형사소송 절차는 또한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소추를 할 수 있는 사소권(私訴權, Action civile)을 인정함으로써 검찰의 자의적 공소권 남용에 대한 제한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도 2차대전 패전 후 미군정 하에서 미국의 대배심 제도 대신 검찰심사회가 설치되어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하도록 했다. 검찰심사회는 각 관할 지역에서 무작위로 추첨된 주민 11명의 심사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8명 이상의 동의로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사건에 대하여 기소 의결을 하게 되면 기소를 강제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연간 약 7,300명이 검찰심사원으로 선발되고 있다. 이밖에도 검찰심사회는 검찰 사무의 개선에 대한 건의, 권고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검찰에도 말로는 미국의 대배심과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참고해 검찰시민위원회라는 제도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할 뿐이다.

 

공적(公的)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지닌 독일의 검찰

‘검사(檢事)’라는 명칭도 일본으로부터 유래하였다. 그런데 독일에서 ‘검사’라는 용어에 대응하는 용어는 ‘Staatsanwalt’로서 ‘국가의 법률가’ 혹은 ‘국가의 변호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하여 ‘체포’나 ‘검속’의 의미를 연상시키는 우리나라의 검사와 근본적으로 달리 ‘공적(公的)’ 의미를 지닌다.

독일에서도 검찰 권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오랜 시간의 논의 과정을 거쳤다. 그 논의의 주요한 결과 중의 하나는 바로 검사가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검사의 “객관 의무에 관한 규정”의 명문화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독일에서 검찰은 “공적 옹호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우리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2. 검찰 권력통제를 위한 법적 장치, ‘법왜곡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다스와 BBK 사건이 마침내 13년 만에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해당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특검팀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러나 법치란 그렇게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법의 정의’는 진실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 ‘법의 정의’ 실현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러나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공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솔선수범해야 할 당사자들이 “사리를 추구하여 법을 왜곡”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하는 근거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행위는 일반 범죄보다 범죄성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 농단’ 관련자들에게 예외 없이 모두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적용시켰던 이른바 ‘직권남용 혐의’란 사실상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코에 걸면 코거리, 귀에 걸면 귀거리”의 유명무실한 잣대일 뿐이다.

독일 형법 제339조는 “법관, 기타 공직자 또는 중재인이 법률 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거나 법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법왜곡죄다.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노르웨이, 중국 등 적지 않은 국가에서 이러한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법왜곡죄를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법왜곡죄의 신설에 대하여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반론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독점’ 혹은 ‘농단’의 상황 하에서 이뤄지는 그런 ‘법적 안정성’이라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정작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사법부 판결에 도전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적지 않은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법원이다. 이명박 사건이나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검찰이 명백하게 ‘법적 불안정성’을 야기시킨 사건에 다름 아니다. 법원 역시 예를 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 무효로 결정해놓고도 이후 대법원 소부나 하급심에서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게 이를 뒤집어 “긴급조치는 고도의 통치행위로서 정부의 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법적 안정성’을 극적으로 동요시킨 바 있다.

사실 법왜곡죄가 존재하고 있는 독일 등의 국가에서도 해당 조항이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매우 적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법왜곡죄의 존재는 법왜곡 행위의 방지에 대한 아무런 통제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법 집행을 담당하는 관계자들로 하여금 법왜곡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작동되는 ‘상징적 법적 기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법왜곡죄는 이미 충분한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필자는 일찍이 한 신문에 법왜곡죄 도입을 주장하는 기고문을 발표한 바 있었다. 이를 계기로 고 노회찬의원이 법왜곡죄 도입을 위해 입법토론회를 갖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에서 지금이라도 다시 논의되기를 바란다.

 

소준섭

화, 2020/11/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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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하게 말해서, ‘국회(國會)’의 ‘나라 국(國) 자’가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민의 대표”이지 결코 “국가의 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본래 ‘국회(國會)’라는 단어가 처음 나타난 곳은 중국 고전『관자(管子)』로서 “국가의 회계(會計)”라는 뜻으로 쓰인 용어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현대적 의미로서의 ‘국회’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한 곳은 1861년 출판된 중국의『연방지략(聯邦志略)』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국회’라는 용어가 ‘Congress’의 번역어로서 채용되어 일본으로 유입되면서 일반화되었다. 한편 우리 한국에서는 일본을 방문한 수신사의 기록인『일사집략(日槎集略)』(1881년)에 그 용례가 처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국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의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직 일본 그리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를 계속 ‘모시면서’ 사용하고 있는 한국에만 ‘국회’라는 용어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용어로서의 국회(國會)’

본래 ‘의회(議會)’라는 용어는 라틴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담화(談話) 방식의 변론”으로서 처음에는 ‘대표들의 집회’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나라마다 그 명칭이 달라 영국은 의회(議會: Parliament), 프랑스는 삼부회 (三部會: Etats gen raux), 스페인은 코르테스(Cortes), 러시아는 두마(Duma) 등으로 칭해지고 있다.

원래 ‘Congress’는 ‘come together’로부터 온 용어이고, ‘Parliament’는 프랑스어 ‘parler’에서 비롯된 단어로서 ‘말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의 ‘Etats gen raux’는 ‘세 나라의 대표’라는 의미이며, 러시아 ‘Duma’는 ‘둥근 천장이 있는 재판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 ‘의회’라는 용어의 어원은 ‘모이다’, ‘대표’, ‘말하다’, ‘재판정’ 등이며, 결국 이러한 개념들이 의회의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회’라는 용어는 ‘국(國)’ 자를 사용하고 있음으로써 견제 대상으로서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거꾸로 차용하여 마치 “국가의 대표”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결국 “시민으로부터 벗어나 거꾸로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권력자의 이미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만약 ‘국회’의 ‘국(國)’을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 파악하여 ‘국민의 대표’라고 해석하는 경우에도, 이 역시 ‘국가 신민(國家 臣民)’으로서의 ‘국민’, 즉, 통치 대상으로서의 ‘국민’으로만 간주하는 전 근대적 봉건적 시각, 결국 차별하고 군림하는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결국 ‘국회(國會)’라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시대착오적 용어이다. 국회를 바꾸려거든 그리하여 국회를 조금이라도 개혁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당장 ‘국회(國會)’라는 그 이름부터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국회’ 대신 어떤 용어가 타당할 것인가?

원래의 ‘실질’과 개념, 의미를 반영하여 “시민 대표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민회(民會)’로 바꾸거나 ‘공민(公民)’의 회의체라는 의미의 ‘공회(公會)’라고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하여 정부 권력(=국가 권력)이나 대통령을 견제하는 3권 분립의 한 축으로서 ‘국가의 대표’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반드시 “시민의 대표”라는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민회(民會)’라든가 ‘공회(公會)’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강하다면, 가치중립적인 용어로서 최소한 다른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의논하고 회의한다.”라는 의미의 ‘의회’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게 관행화된 두 글자로 된 단어 사용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즉, 아예 ‘대표(자)회의’이나 ‘대표모임’ 등으로 원래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국회를 바꾸려면, 먼저 ‘국회’라는 잘못된 말부터 버려야 한다.

 

소준섭

화, 2020/12/0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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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씌었다. 희망이란 말은 ‘위기, 희망,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부제에도 들어있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그 와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더욱 심해지는 불평등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쳐선 안 된다. 그리고 그런 희망의 총합이 바로 ‘생태문명’이다.

17명의 공동저자들은 현재 산업문명의 문제를 진단하고 생태문명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지구 전체로 시야를 넓히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자고 촉구한다.

“19세기까지는 다른 모든 문명을 정복하고 제거할 수 있는 하나의 문명, 즉 글로벌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명이 지역적 형태를 띨 때는 하나가 사라져도 다른 문명들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문명의 붕괴에 따른 위험성은 낮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구를 지배하는 것은 과학, 기술, 국가, 전지구적 소비자들에 기반한, 현대문명이라는 하나의 글로벌 문명이다. 이 단일 문명이 과거 다른 문명들처럼 붕괴한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앤드류 슈왈츠, 클레어몬트신학대학원 교수)

“지구는 단 한 번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기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산업문명은 지구의 자원이 무한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생물종도 멸종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것도 멸종한 생물종을 다시 복원시킬 수 없다.”(이재돈, 천주교 신부))

“인류는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도달했다. 우리는 현재 궤도대로 살면서 소수 사람들이 일시적 과소비를 즐기도록 도와주는 황금만능주의를 추구하다가 멸망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생태문명이라는 비전을 수용해서 모든 인간이 번영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문화, 제도, 사회 인프라의 전환을 이루자는 공동의 목적에 동참할 수도 있다.”(데이비드 코튼, 경제학자)

그런데 이런 궤도 전환은 어떻게 가능할까. 도대체 가능한 일이기는 한 걸까. 생태문명 진영에서는 정책적∙기술적 해법과 함께, 근본적인 개념의 수정을 제시한다. 자연고갈, 멸종, 기후위기에 이른 현대 산업문명의 기초에 놓인 생각의 뿌리를 파고들어가 어떤 생각들이 현재의 문명을 만들었는지 밝힘으로써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통제 아래 놓인 지구와 생태계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또 ‘과학’은 이런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인류는 자동차에서부터 화력발전소, 핵무기에 이르는 많은 기술을 통해 지구의 미래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한다. 이런 기술은 폭발적인 과학지식을 통해 발명되고 실용화됐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를 바꿈으로써만 우리는 자연과 과학을 다르게 이용하게 될 것이다. … 오늘날 과학, 기술, 산업이 ‘몰가치적’이라는 생각은 지구와 우리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종을 위험에 빠트렸다. 이제 과학은 자연을 단지 ‘움직이는 물질’의 연구로 해석하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인간 사회도 수많은 생태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생태계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생태과학이 이를 대체해야 한다.”(필립 클레이튼, 생태문명연구소 대표)

생태문명에 대한 대표적 오해는 첨단 과학기술을 거부한 채 과거 농경사회로 ‘퇴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생태문명은 과학이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계를 계승하므로 전근대가 아니라 후현대라는 목표를 갖는다. 과학으로부터 도망치기보다 과학을 통합시킨다. 생태문명은 ‘탈과학’이 아니라 현대가 가진 해로운 가정들에서 벗어나 자연과 과학을 보다 유기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필립 클레이튼) 이 책에는 과학지식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요청하는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최근 생물학과 임상의학 분야에서는 복잡한 생명현상을 기계론적이고 미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믹스(omics, ‘체학’이라 번역되며 생명과학에서 분자나 세포 등의 집합체 전체를 뜻함)라는 분야가 등장해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후성유전학, 대사체학, 연결체학 등이 그 세부 학문분야들인데 단백질, 신경세포 등 몸속의 여러 단위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대한 패턴을 분석하여 생명현상을 설명하려는 접근법이다. … 이미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은 환원주의와 기계론을 넘어서 전체적 관점에서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구현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가고 있다.”(김홍기, 서울대 교수)

문제는 생태과학, 생물학 등에서 두드러지는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사회제도와 시스템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관계적 사고의 부재로 인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부분들이 심층에서 충돌하거나 모순된 요소들이 공존하면서 시스템 붕괴를 향해가는데, 대표적으로 경제와 교육이 그렇다.

“우리는 유한한 생태계에 속해 있고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성장이란 불가능하다. 지구 자원의 소비가 변곡점에 이르면 지구 시스템의 회복력이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이한다. 특히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용하는 자원흐름의 규모가 커지고 독성이 강해질수록 자연 생태계의 부담과 피해는 커진다. 그럼에도 경제학은 이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 언젠가 우리의 미래세대는 생태와 경제가 하나의 동일한 과정임에도 당시 세대가 왜 그렇게 생태와 경제의 연관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놀라움과 의문을 가질 것이다.”(정건화, 한신대 교수)

“나는 현재 형식의 대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특히 학문분과, 철학적 유물론, 그리고 경제주의(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믿음)에 대한 헌신 때문에 그렇다. 대학이 세계의 공동선을 위한 세력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넘어서야 하며 인간의 삶이 갖는 의미, 지구의 모든 서식자들의 내재적 가치, 생명이 갖는 상대적 속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이 중에서도 학문분과는 매우 강력한 동시에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특별한 방식의 구조적 사고이다. 대학이 분과 형식의 사고에 매진하는 한, 대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학문분과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기 어렵다. 한 분과의 다양한 전제와 발견은 다른 분과의 전제와 발견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점검되지 않는다.”(마커스 포드, 철학자)

따라서 현재 문명에서 가장 필요한 가치는 서로 연결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 세계, 우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도 통합적으로 사유해온 인문학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인문학의 협소화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목표인 ‘인간다움’이 갖는 의미는 인간과 다른 존재의 연관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때문에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좁은 정의를 벗어나 상호 연결된 존재로서의 진정한 인간다움을 탐구해야 한다. 환경인문학은 전지구적 생태위기에 대한 인문학의 응답으로, 2000년대 이후 환경철학, 환경사, 생태비평, 문화∙생물 인류학, 문화지리학, 정치생태학,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연구, 젠더연구, 종교학 등 다양한 인문학과들 사이의 연결을 추구하는 지적 프레임워크로서 등장했다. 환경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점차 고조되는 생태위기와 생태적 인식의 중요성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위기라는 두 가지 문제는 과학기술이나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려우며, 인문학이 환경문제에 개입하고 대중의 의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한윤정, 문화연구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재설정된 세계,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가 생태문명이라는 대의에 맞춰 스스로의 존재가치와 목적을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작업을 거쳐 탄생하는 세계를 저자들은 ‘아름다운 공동체’ 혹은 ‘커먼즈’(공유)라고 부른다.

“아름다움의 경험에 수반되는 마음과 정신의 성질은 인간의 ‘정신적 알파벳’을 구성하는, 폭넓은 감정들로 이뤄진다. 주목(attention), 연결(connection), 헌신(devotion), 열광(enthusiasm), 신념(faith), 용서(forgiveness), 감사(gratitude), 관용(generosity), 환대(hospitality), 상상(imagination), 정의(justice), 친절(kindness), 경청(listening), 사랑(love), 의미(meaning), 양육(nurturance), 개방성(openness), 재미(playfulness), 호기심(question), 삶에 대한 열정(zest for life)… 생태문명은 교육과 예술, 건강한 가정생활과 시민으로서의 삶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이런 감정적 성질들을 느끼고, 알고, 실제 그렇게 살도록 돕는다. 또한 이를 통해 타인이나 보다 큰 생명공동체에 존중과 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생태문명은 아주 이상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위한 온실이라 할 수 있다.”(제이 맥다니엘, 철학자)

“커먼즈는 우리의 비분리성, 상호의존성, 공존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물질적으로, 관계적으로 서로에게 연결되는 방식이다. 협동조합과 풀뿌리 조직을 결합한, 잘 조직된 커먼즈는 투명성, 평등, 존중을 실천함으로써 다양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신뢰를 만들고 책임을 실천하는 것은 성공적인 자기조직과 운영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우분투(Ubuntu)의 사상처럼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 이를 초기 불교의 보살사상에 응용한다면, 세속적이고 영적인 운명의 결합으로서 나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에서 생겨난다. 포용성의 확장은 다른 사람을 주변화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의식은 물질적 인프라와 욕망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에 물질의 전환과 의식의 전환은 함께 이뤄진다.”(잭 월시, 독일 포츠담 고등지속가능성연구소 연구원)

『생태문명 선언』은 미국 생태문명연구소와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목적으로 주최한 컨퍼런스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마커스 포드의 경계한 바, 각자 다른 전제를 가진 분과학문의 대표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기존 학계의 컨퍼런스와는 다르다. 대부분 발표자는 서로의 삶과 생각을 잘 알고 이해한다. 그래서 생태문명이라는 희망을 공유하고, 그것이 성립하기 위한 기본조건인 관계성과 연결성을 의식하면서 각자의 분야와 관심사 속에서 사려 깊게 펼쳐놓는 대안들이 조각보처럼 모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태문명’이란 “환경운동단체, 시위, 행동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 모두에 깊이 의존하면서도 ‘큰 그림’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방식으로 이를 보완하는, 장기적으로 확장된 현실주의”이며 “뭔가 하도록 만드는 빅 아이디어”(필립 클레이튼)이다. 문명적 변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이상적인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런 공부와 실천의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독자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한윤정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디렉터∙다른백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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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전염병 경보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현대 문명의 끄트머리에 서 있다는 위기감이 만연했고, 자멸로 치닫는 인류의 비극적 서사가 매체를 점령했다. 과연 대안적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근대문명과 첨단기술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라는 요청을 다시 소환하며 생태문명이란 무엇인지, 생태적 원리로 우리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과 생태학에서 배우는 상호의존성의 철학과 역학은 무엇인지, 나아가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명주의가 중요한가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 또 하나의 지구는 없기 때문이며, 우리 곁에 바싹 다가온 대안적 미래는 생태문명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디렉터이자 문화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한윤정 박사가 엮고 옮긴 『생태문명 선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포괄적인 답을 제공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2017년 11월 미국 클레어몬트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 2018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열린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생태적 전환 컨퍼런스’ 그리고 201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생태문명을 향한 전환: 철학부터 정책까지’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선별해 재구성한 것이다. 세 번의 컨퍼런스는 과정사상연구소, 생태문명연구소, 중국후현대발전연구원, 지구와사람, 서울대-한신대 포스트휴먼연구단 등이 공동 주최했다.

 

저자소개

앤드류 슈왈츠(Andrew Schwartz)-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조교수, 생태문명연구소 공동창립자이자 부대표, 과정사상연구소 사무국장. 종교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며 생태문명을 향한 연대활동을 조직한다.

이재돈-천주교 신부, 가톨릭대 겸임교수. 종교계 환경운동을 이끌면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장,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을 지냈고 한국토마스베리협회를 창립했다.

데이비드 코튼(David Korten)-리빙이코노미즈포럼 대표, 로마클럽 회원, 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동남아국가들의 경제개발을 지원했으나 그 허상을 깨닫고 지역사회와 살아 있는 지구를 위한 경제를 주창했다.

필립 클레이튼(Philip Clayton)-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교수. 과학도로 출발해 종교학, 윤리학으로 영역을 넓혔다. 생태문명연구소 창립자이자 대표로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한 사회적 변화를 모색한다.

왕쩌허(王治河)-철학자, 중국후현대발전연구원 대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중국에 소개했으며 중국과 미국의 학술교류를 통해 중국 지방정부와 학계의 생태문명 정책과 연구를 지원한다.

존 B. 캅 주니어(John B. Cobb Jr.)-철학자, 신학자, 환경사상가.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교수를 지냈으며 과정사상연구소를 세웠다. 화이트헤드 철학을 신학, 생물학, 경제학, 윤리학, 생태학에 적용했다.

마커스 포드(Marcus Ford)-노던 애리조나 대학에서 환경인문학을 가르쳤으며 현대 대학의 문제와 생태문명을 향한 교육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 집필을 해왔다. 플래그스태프에서 대안대학을 운영한다.

김홍기-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과경영정보학교실 주임교수. 인공지능과 인지과학 전문가로 의생명지식공 학연구실(BIKE)을 운영하며 데이터 중심의 새로운 융합과학 패러다임을 연구한다.

정민걸-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 생태유전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유전학회, 한국생태학회, 한국환경철학회, 대한하천학회 등에서 활동하면서 환경과학과 환경철학을 접목하는 연구를 해왔다.

한윤정-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디렉터, 문화저널리스트, 전환연구자. 경향신문 기자로 일했으며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과 생태문명을 주제로 컨퍼런스 조직, 정책 연구를 하고 있다.

제이 맥다니엘(Jay McDaniel)-철학자, 헨드릭스대 종교학자 교수. 웹사이트 ‘오픈 호라이즌즈 운영자’. 생태문명의 문화적 측면을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 종교간 협력을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샌드라 B. 루바스키(Sandra B. Lubarsky)-노던 애리조나 대학과 애팔래치안 주립대학에서 종교학 교수를 지냈다. 아름다움과 지속가능성, 공적 가치로서 아름다움의 부활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집필한다.

정건화-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노동경제학에서 시작해 사회적 경제, 생태경제학으로 관심을 넓혀왔으며 지역순환경제가 주요 연구분야이다. 희망제작소 부소장, 서울연구원 이사를 지냈다.

잭 월시(Zack Walsh)-생태문명연구소 및 독일 포츠담 고등지속가능성연구소. 과정철학을 기반으로 한 관계적 주체성, 생태문명의 토대로서 커먼즈, 마음챙김과 명상영화 연구를 해왔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로컬퓨처스, 국제지역화연합의 창립자이자 대표. 글로벌 경제와 국제개발이 지역사회와 경제,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지역화,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한다.

김지석-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 전 주한영국대사관 선임기후변화에너지담당관. 경제와 환경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며 친환경자동차, 태양광발전 등 기후대응 방안을 제시해왔다.

황윤-<잡식가족의 딜레마> 영화감독.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동물권리보장,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채식운동을 펼치고 있다.

목, 2020/12/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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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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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막강한 칼잡이 집단의 어지러운 검무(劍舞)에 매일의 신문과 방송을 보기가 두려워질 정도다.

법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검(檢)이라는 칼과 진실의 전달이라는 사명의 허울 뒤에 ‘진실을 제조’해내고 ‘사실을 가공’해내는 언(言)이라는 칼, 이 두 개의 칼이 한 몸으로 어울려 불러대고 추어대는 이중창과 2인무의 파열음과 광무(狂舞)가 귀를 찢고 눈을 산란케 한다.

검란(檢亂)과 언란(言亂),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과이자 원인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낳고 그 다른쪽이 다시 상대를 키워주는 상인상과(相因相果)의 관계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의 두 개의 칼의 등등한 기세는 또한 그 전성(全盛)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치닫는 것이기도 하니, 그 점에서 우리는 애써 낙관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각오하듯 가질 필요가 있다.

‘亂’에 어지럽다는 뜻과 함께 다스리다는 정반대의 뜻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은 어떤 문제든 그것이 극성해질 때 비로소 해결의 길로 나아가게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의 이치다.

다만 亂이 어지러움에서 다스려지는 상태로 저절로 바뀌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난(亂)을 난(亂)으로 보는 눈이 없이는 난은 거의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 개의 위험한 칼의 난무(亂舞)에 홀리지 않으면서 결국 우리 사회는 어떻든 진일보의 궤도를 걸을 것이라는 낙관, 그리고 그 길을 여는 것은 저 두 개의 칼잡이 집단의 광포한 흉기로서의 칼에 맞서고 제압할 수 있는 보통 시민들의 이성의 칼, 양식의 칼, 그럼으로써 모두를 살리는 활인(活人)의 칼을 벼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명재

목, 2020/12/0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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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역대 모든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정부의 성공이 곧 나라의 평안과 주권자들의 행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 잠잠히 묻혀서 고요히 지낼수록 좋은 우리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은 국민의 엄중한 명령인 ‘검찰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빠진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검찰이 그동안 힘없는 사람들의 생존과 운명을 쥐락펴락하면서 특권층의 비리와 범죄는 눈감아 줌으로써 공정한 법집행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검찰개혁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비웃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나서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해졌고 그러다보니 검찰개혁을 공언하였으면서도 번번이 실패하고만 지난 민주정부들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3. 거기에는 검찰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검찰이 검찰권의 독립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검찰권 남용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내몰고, 멀쩡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인생을 망치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망을 위해 약자들을 괴롭혔던 강자들의 죄를 가려주고 치워주는 범죄의 세탁부 또는 청소부가 되었던 한국 검찰의 역사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은 검찰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이상 타락한 거래에 휘말리지 않도록 진정한 독립을 도우려는 일입니다.

수사와 기소에 관한 과도한 독점적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우리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것입니다. 검찰 일부의 문제일 것입니다만 겉으로는 부패와 거악을 척결하겠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현직과 전관들이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뒷거래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타락상입니다. 그동안 공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일생을 헌신한 대다수 검사들의 명예와 긍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검찰은 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4.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윤석열 총장의 참회를 촉구합니다. 임명 초기 그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신망은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개인적 처신과 검찰을 지휘하는 모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처와 장모를 둘러싼 가족의 대들보 같은 허물도 심각하지만, 아무리 티끌처럼 작은 일이라도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무섭게 달려들다가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는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직무 배제와 징계 청구 사유에서 드러났듯이 검찰총장 본인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겸덕을 발휘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이 말했던 “퇴임 이후 사회를 위한 봉사”일 것입니다.

5.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나 지금 우리는 건너야 할 다리를 힘겹게 건너고 있을 뿐 방향이 그릇되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고 정부의 선의를 비트는 행실을 중단하기 바랍니다.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언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검언일체’의 지경에 이른 부끄러운 현실을 직면하기 바랍니다. 진실의 장수가 되어야 할 언론이 거짓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현실을 우리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6. 사법부의 책임 또한 조금도 가볍지 않습니다. 검찰에 의한 ‘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는 뚜렷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이 조직적으로 재판관을 압박하여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죄를 태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아가 검찰총장이 재판관에 대한 사찰과 정보정치를 업무상의 관행이라 우기는데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특히 법조의 나아갈 길은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인지 한 번 묻고 싶습니다.

7. 제1야당 ‘국민의 힘’에게 묻습니다. 국민의 힘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탈의 방조자 또는 협력자 구실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배출한 대통령 2인을 감옥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아울러 다시 집권해서 나라를 이끌게 될 때를 위해서라도 여당과 합심하여 국회가 검찰개혁에 일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8. 신앙인들과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생태계 말기적 파국의 리허설이나 다름없는 코로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아야 하는 마당에 검찰개혁이라는 숙원을 놓고 분열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힘을 내서 어려운 사람들의 겨울을 돌보고 저마다 역량을 다하여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힘을 보탭시다.

 

2020년 12월 일
인권주일을 앞두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1천인 일동

월, 2020/12/0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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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우리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곧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이다. 이러한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 우리 검찰이 과시하는 뜨거운 ‘권력의지’는 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의 이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절대권력을 향한 유신권력과 검찰 권력의지의 결합

본래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영장주의’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은 반드시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인신구속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영장발부 권한은 법관에게 전속되어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영장주의를 천명하는 헌법 조항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로서의 검찰’ 규정은 ‘영장주의’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그 취지와도 필연적 관계가 없는 규정일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러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한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 헌법의 영장청구 조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검사의 영장청구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한 재량은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 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 의지가 결합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검사를 앞세워 영장제도를 배제한 조선형사령

검찰과 영장과의 깊은 관계, 그리하여 검찰이 지닌 그 뜨거운 권력의지의 기원은 멀리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장제도의 배제로서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세계 법률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인신구속과 구금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였다. 그리해 조선총독을 정점으로 총독이 식민지 검사를 임명하고 그 하부 보조기관으로 사법경찰관을 배치하여 인신구속과 체포를 무소불위로 자행함으로써 식민지통치 권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조선형사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돼 민주주의의 기본에 눈감아온 정치세력

10·26으로 열린 1980년의 ‘서울의 봄’, DJ와 YS의 신민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들은 그리하여 헌법 개정에서 이 영장청구 조항도 중시하지 않고 단순히 유신 헌법의 “검사의 요구” 규정을 이전의 “검사의 신청”으로 돌려놓을 것만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당시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변협은 “검찰의 신청이나 요구” 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단순히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 개정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에 권력에만 급급했던 야당 정치권은 오직 직선제 하나만 고치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다시 ‘착각’하면서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문제의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의 독소 조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라는 그야말로 미사여구의 수식어만 앞에 붙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바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다시 헌법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의 권력에만 도취된 채 우리의 국회는 결국 허송세월하면서 헌법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헌법 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

이 땅의 정치세력은 항상 어김없이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된 채,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 국민주권주의와 국민 기본권에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도외시해왔다. 바로 이런 정치권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이 나라가 “나라도 아닌 나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엉터리 시스템”,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의 이 왜곡된 비극의 족쇄는 언제나 풀릴 수 있을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에는 이른바 ‘진보민주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소준섭

화, 2020/12/15-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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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3특별법 개정 촉구 국회앞 1인 시위가 9주차에 접어들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에서 미군정 산하 경찰에 의해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게 73년 9개월이나 된 일이다.

외롭고 지루하고 답답한 1인 시위였지만 다른 일도 일어났다. 특별한 유족 증언대회가 노상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88세 1934년생 유족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세 형제가 참여했다. 벌써 네 번이나 참석한 다른 86세 1936년생 유족은 애월면 귀덕리 1구 구장아들이었다. 바보처럼 서 있는 나에게 50년 만에 중학생 동창이 찾아 와 자기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서 15년형을 통지받고 복역하던 불법 수형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놀라고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6년 조성봉 감독이 만든 “빨갱이 사냥”이라는 기록동영상에 경찰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200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모두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뼈아픈 사연들이었다. 유족들의 이런 참여와 적극적 반응은 1998년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가 창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1】

 

민간인학살의 대표적 사례인 제주학살(1947-1954)

다시 말하면 국가는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부와 이행기 정의의 비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주학살(1947-1954)은 어떻게 일어났나?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정부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3권짜리 한국인권사 총서를 냈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대역사였다. 여기에 필자는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이라는 글을 써 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제주학살(1947. 3. 1 – 1954. 9. 21)은 미소 강대국의 한민족 분단과 미군의 남한 점령에서 비롯되었다. 미군은 물리적, 사회경제적 민족분단을 통해 민족자결권을 전면 침해했다. 동시에 미군의 남한점령은 일본에 대한 간접점령 방식이 아닌 직접점령이었다. 특히 미군정 경무부의 철권통치와 미군정의 실정은 남한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추진, 좌우합작을 통해 조선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민족분단과 미군 점령하의 제주섬에서 제주인들은 아래로부터의 자치 기구로써 제주도인민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며 비교적 미군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6년 미군정은 제주섬을 중앙집권국가에 강제 편입시켜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 증강했다.

미군정 4년 시대에 제주학살은 미군정 산하 경찰이 1947년 3월 1일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보다 더 많은 미군정 경찰 병력 증파와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미군 대위가 현장에 존재했던 관덕정 학살에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13개월 동안 2,500여명을 대량 검거하는 반인권 조치를 강행했다.

‘제2의 미국무부’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국제연합 총회 결의에 의해 조선임시위원단 입국과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하는 ‘4월 3일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미군정 산하 경찰과 사설폭력단체의 억압에 대한 민심 폭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단순한 ‘소요’라고 상황을 오판했다. 더욱이 이후 일어난 학살들에 대한 미군정은 미군 연대장의 직접 지휘, 경찰 증강을 통한 물리적 진압, 미군의 군사상 지휘와 통제 책임을 들 수 있다.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 학살은 산간 지역 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1948년 10·17 포고령을 발동하면서 부터였다. 제주학살을 위한 군대와 경찰 출동, 피난민을 향한 군경의 가차(假借) 없는 총살형, 제주도경비사령부 창설과 공세적 운용은 중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명백했다.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들은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의 정당성을 위협받게 되자마자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 국내정치용 초강수로서 학살을 방조, 조장, 지휘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드디어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이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동되었다.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었고, 국기문란이었다. 불법 군사재판과 사체 유기가 빈발했다. 미군 철수 이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은 반공극우보수체제 강화를 위해 ‘잔비’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주민학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제주섬사람들은 애도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은 5·16 군사쿠데타 성공이후 국가 차원의 역사말살은 또다시 강화되었다. 30년이 지나 허위와 기만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이 나왔으나 망각을 강요하는 신군부 독재 등장으로 또다시 진실 찾기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해이후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진실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대학내에서 ‘4·3항쟁’ 논의가 시작되었고, 사건발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4월 운동이 일어났다. ‘4·3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지역 언론 사상 최초의 제주학살 심층기획취재와 장기연재가 이뤄졌다.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4월운동의 전국화, 제주도민학살의 진실과 정의, 인권을 위한 법률 제정운동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3년간 조사한 뒤 제주4·3에 대한 사상 처음으로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이 이루어졌다. 제주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행기 정의 확립의 전시장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2】

많은 국민들은 제주학살(1947-1954)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020년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9주째 진행해 왔다. 그런데 내 앞을 오가는 시민들이 툭 던지는 말이 “4·3은 다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오곤 했다. 말 그대로 제주학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진전되었으나 정작 이들 민간인 학살 피해 인사에 대한 피해회복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고 대답해 주면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 재정과 이행기 정의

지난 2020년 5월 12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만심사소위원회가 열려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러나 회의 막바지에 기획재정부 국장이 부처간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원들은 개정 반대를 노골화했고, 제20대 국회에서의 4·3특별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2021년 예산안은 555조8천억 원이다. 전년 대비 43조5천억 원, 8.5% 증액한 규모이다. 분야별 재원 배분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국방비 예산은 2조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액하였다. 정부는 스마트 강군 기반 구축 및 군 사기진작 지원을 위해 군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예산 규모만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중견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림 1> 2021년 정부 예산안

2020년 인류를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COVID-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엄청난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다. 그런 국가 재정 운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사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국가 채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사정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대위기상황에서도 실물경제운영과 국가 채무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국가채무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봐도 그렇다.【3】

더욱이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상위 15 개국 (1980~2024)를 보아도 한국의 국가채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사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

우리가 생각하고 요구하고 있는 이행기 정의란 다른 게 아니다. 과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가해에 책임이 있다고 확인된 국가권력은 피해인사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회복을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학살(1947-1954)에 대한 3년간의 정부 조사 결과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책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대통령들이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이에 따라 제주학살 피해 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는 게 이번 국회 앞 1인시위의 당면요구사항이다.

국회의원들에게 피눈물을 쏟으며 지나온 한의 세월을 이제 끝장내게 해 주십사 호소한다. 더 이상 이런 노상에서 힘들게 이루어지는 4·3 유족증언을 끝내고 싶다. 국가는 과거 공권력에 의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학살피해를 구제해 줘야 한다. 그래서 불미스런 과거사를 털어내고 미래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75년 된 분단과 냉전의 깊은 상처와 고통, 70년 된 전쟁의 참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번 4·3특별법 전면 개정은 그런 이행기 정의 확립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잘못된 집행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해 구제 입법선례들을 찾아보자. 부산·마산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에 대한 보상법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피해구제 입법도 있다. 거창·산청·함양민간인학살사건 배상법은 2004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발의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국회가 제주도 민간인 학살피해회복을 위한 4·3법 개정 행동에 적극 나서 주어야 한다. 말과 구호가 아니나 행동과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제주4·3”은 중대한 인권침해사안이다. 국회의원들은 이“제주4·3의 중대한 인권침해문제”를“정당과 정파, 이념과 입장을 초월해서 피해 배상하자”는 개정 법안에 대해 동의해 주어야 한다. 인륜에 반하는 범죄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조치를 시행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법률 가치와 정신에 밀접히 부합하는 일이다.

“4·3 해결”은 더 이상의 정쟁의 제물이 아니다.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14개 전국시도의회와 전국교육감협의회가 4·3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 발표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도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심의에 조속히 참여하여 인사치레나 말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정의국가, 공정한 국가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부디 올해 2020년 이내에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이 지체되거나 부실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대비극의 참상이 가해자 측에 의해 왜곡되거나 부정, 폄하되는 몰골을 방치할 수 없다. 피해인사 유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정의 실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하는 이유

2020년 12월 14일부터 제주4·3유족회는 제주와 서울의 시민단체와 함께 4·3 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돌입하였다.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의 날씨에 연세가 많은 제주4·3유족들은 왜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4·3보상요구행동을 선언,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지난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4·3특별법 개정촉구 1인 시위를 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4·3유족들이 직접행동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닥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9주 동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온 덕분인지 제21대 국회에서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11월 17일, 18일 양일간 여야 의원들이 깊이 심의하여 많은 합의를 했다. 그런데 4·3 학살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조문은 잘 되지 못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피해자 권리장전은 민간인 학살이나 강제실종,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이들은 피해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둘째, 이번 4·3특별법 개정의 핵심 중 하나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이 당한 학살 피해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자는 것이다. 국가는 민간인 학살을 가한 이승만 정권시절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4·3학살 피해 유족은 당연히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번 4·3 보상 요구는 학살 피해 유족이 지닌 채권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과거 공권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셋째, 이런 4·3 보상 요구에 대해 기획재정부 담당자는 국가 재정 탓을 하면서 다른 지역의 과거사가 많은데 제주 유족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공무원 말은 학살 피해 유족을 위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매우 부적절하고 옳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피해 유족들이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나서게 된 가장 이유요 배경이다.

넷째, 4·3 유족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려면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함께 4·3보상을 약속한 공약을 지켜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유족에게 거듭 사과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시절 추념식에 참석하여 “제주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지난 11월 3일, 4·3특별법 개정을 “미래입법과제”에 포함시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므로 이제 4·3유족들이 나서서 이런 약속들이 지켜져 서둘러 4·3 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야 할 때라고 보았다.【5】

다섯째, 1947년 3월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지 벌써 73년 9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이번처럼 좋은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4·3보상법으로 개정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유족들이 살아 온 너무나 서럽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제 끝날 낼 때이다. 어떤 이들은 4·3보상이 피해 인들의 희생당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보상을 하게 되면 집안싸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걱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4·3학살 보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은 4·3보상권리를 주장해야만 할 호기이다.

 

【1】 박진우 2020 “70여 년의 한, 4·3특별법 개정 통해 풀어 달라” [현장]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하고 있는 1인 시위자들의 외침

“야만적인 제주4·3학살의 주범이 미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연구를 하는 학자이자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허상수(65)씨는 지난 10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씨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전환비용을 부담해 온 게 사실”이라며 정부 재정 탓을 하며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관료들의 생각과 발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두 분의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마당에 “이제는 기재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행기 정의 확립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의 대승적 조치를 주문하였다.“

【2】 허상수 2019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제2권 국가폭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하여』 pp. 39-79.

목차

1. 민족분단과 미군정 치하의 제주도

 

I. 제주인민위원회

II. 제주도민족민주주의전선

III. 미군정, 제주도를 중앙집권국가에 강제편입

2. 미군정 3년 시대의 제주학살

I.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

II. 관덕정학살에 거도적으로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

III. 미군정 산하 경찰의 2,500여명 대량검거와 3건의 고문치사

IV.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한 ‘4월 3일 인민봉기’

V. 제주학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문제

3.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학살

I.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과 10·17포고령

II.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

III.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

IV. 미군 철수 전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

4.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

I. 5·16 군사쿠데타와 망각의 강요

II. 국가 망각과 연좌제

III. 허위와 기만 그리고 금기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

5. 민주화 이후의 제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 운동

I. 사건발생 40년 만에 시작된 4월 운동

II. 평화적 정권교체와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 제도화

III. 제주4·3에 대한 사상 첫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

【3】 중앙일보 2019. 05. 23 국가채무비율 40% 논쟁, 정해진 기준은 없다. 종합 5면.

【4】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TOP 15 (1980~2024)

【5】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4·3특별법 연내 개정을 약속했다.

 

허상수

화, 2020/12/2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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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헌법의 법관 양심 조항’, 일제와 박정희 잔재

하지만 사실 이러한 “법관의 양심 조항”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독일 기본법 제97조는 “법관은 독립하여 법률에만 구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 이 ‘법관의 양심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 헌법은 제77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쿠데타 후 1962년 개정 헌법에서 ‘양심’이라는 용어가 추가되었고, 이 조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일본 헌법 제76조는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97조도 초안에는 양심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을 법률과 동위, 또는 상위에 있는 하나의 법원(法源)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삭제하였다.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사법농단 체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은 적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은 마치 하나의 상식처럼 이미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고, 재벌이나 고관대작 등 힘 있는 자에게는 ‘양심’이라는 재량권을 적용하여 법률을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너그럽게 적용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법관이 헌법이 부여한 그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결과적으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하는듯한 모습이다. 독일 헌법에서 법관의 ‘양심’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던 이유가 되었던 바로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이 끼친 엄청난 피해가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정작 어느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직권 남용’의 그물은 너무나 성겨서 유명무실할 뿐이다. 이러는 사이, 법원은 법원행정처를 비롯하여 사실상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사법농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회는 왜 단 한 번도 법관탄핵을 하지 않았을까?

법관의 양심에만 시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마땅히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다. 현재 법원행정처 등 자신들만의 손으로 독점되고 있는 법원 행정사무를 유럽국가의 보편적 방식처럼 반드시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사법평의회에 의해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헌법상 “법관의 양심 조항”도 폐지되어야 한다.

또 재판과정에서 법을 왜곡한 법관 및 검사 등 관련자들은 ‘법왜곡죄’를 제정하여 엄벌해야 하고, 엄중한 잘못을 범한 법관은 탄핵되어야 한다.

법관탄핵은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에서도 법관탄핵은 대단히 흔하게 실시되고 있고,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법관 탄핵이 실행되었다.

우리 국회는 법관탄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대하여 삼권분립 정신을 중시한다든지 사법부 독립을 존중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판과 판결에 의해 언제든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손에 쥘 수 있는 법원의 눈치를 보고 최소한 법원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려는 국회의원들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혹은 스스로 얽힌 비리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몸을 낮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중앙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대법관이 맡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에도 판사가 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점도 선거에 목매는 국회의원에 대한 법원의 영향력을 키우는 한 요인이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법원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몸을 낮추는’ 이러한 관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이 아직 국민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되었던 점에서도 명백히 입증된 바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검찰과 법원의 힘을 막강하게 만든 데에는 정치권의 행태도 큰 몫을 담당했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입법자로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고소고발만을 일삼아 자신들의 운명을 검찰과 법원의 손에 넘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는 스스로 입법부 자신들의 권위를 추락시킨 행위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스스로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법률해석에서는 입법자의 취지라는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작 스스로 입법자이면서도 아무런 주체적 의식과 노력도 없이 그 무능과 무책임성만을 여실히 드러내왔다.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소준섭

화, 2021/01/0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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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활이라고 있었다.

농촌활동을 줄여서 그렇게 불렀다.

70년대에는 농촌봉사활동, 줄여서 「농봉」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의 수고를 같이 느끼고 부족한 농촌일손을 도와주는 활동을 농촌봉사활동이라고 했다.

80년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각성한 농민운동가들 사이에서 변혁적 농민운동론, 군부독재와 재벌독점경제에 맞서서 싸우는 계급적 농민운동론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과 지식인 그룹이 민중운동의 주체가 되어 반외세, 반독재, 반독점재벌의 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정리하면서 여름에 대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일을 하는 것은 농촌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인 농민과 학생이 만나서 함께 대중을 교양하고 대중을 조직하는 활동이라고 새롭게 정리하였고 그래서 해마다 여름방학에 농촌으로 가는 대학생들의 활동은 ‘농촌활동’ 즉 「농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농활’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과 함께 농촌활동은 필수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번쯤은 가 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여름방학에 가는 여름농활이 기본이었지만 학생운동에 좀 더 적극적인 학생이거나 향후 진로를 농촌에 가서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은 봄과 가을, 겨울에도 가는 사계절 농활에 참여하였다.

농촌활동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식사조는 식사를 하고 일감을 받아오는 친구들은 대원들을 보낼 농가들을 확인해서 작업배치를 하고 매일 아침 듣는 주의사항을 다시 들은 후 조별로 배치받은 작업현장으로 길을 나섰다.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조금 전에 본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아이도 젊은이도 장년이나 노인 가릴 것 없이 먼저 인사를 하는 게 농활 수칙이었다. 일을 가서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참이나 식사도 거절하고 보통 숙소로 사용하는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다시 오후에 가서 빡세게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은 후 마을의 농활 주체가 지정해주는 집이나 장소로 가서 ‘장년반’, ‘부녀반’, ‘청년반’, ‘아동반’ 등의 분반활동을 하였다. 농활은 복더위가 시작되는 7월 중순에 가서 일을 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지만 저녁먹고 진행하는 분반활동도 꽤 괴로운 일이었다. 농활자료집에 나와있는 매뉴얼화된 질문을 던지면 역시 끌려나오듯 참여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은 때론 현실감 떨어지는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던가 때로 핀잔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식은 땀 흘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분반활동이 끝나면 분반활동 보고가 있고 하루 일과를 평가(비판)하고 농촌과 농업의 문제에 대해 발제를 듣거나 현장 농활 주체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하루 일과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끝났다.

이런 전형적인 농활은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농활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아련한 추억거리를 소재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까지 이어져온 농활의 분반활동으로 만났던 아저씨, 아줌마, 형, 아이들은 이제 그 마을에 살지 않는다.

지금은 여러분들처럼 도시의 어딘가에서 도시 주민으로 살고 있다. 장년들은 대부분 남아서 고령화된 농촌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지만 그 때 그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대부분도 농촌을 떠나고 아주 일부만 농촌에 남아있다.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농지를 도시민들에게 팔거나 남아있는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고 떠났다. 남아있는 농민들은 떠난 사람들의 농지를 사거나 빌려서 농사규모를 늘렸다. 농업으로 얻는 평당 소득은 줄어들어서 어쩔 수 없이 농지를 늘리기는 했지만 농업 생산비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서 경영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농가 호당 평균 농업총수입은 1990년에 907만8천원에서 2019년에는 3,444만원으로 4배가량 증가했지만 농업소득은 626만원에서 1026만 원으로 2배도 늘지 않았으며 농업 경영비는 281만원에서 2,417만원으로 9배 가까이 늘어났다.

농사 규모를 늘려서 총 수입은 늘어났지만 경영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실질 소득 증가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억대 농민’이라 하면 농사지어서 총수입이 1억원 이상 올리는 농민을 말하지만 이들도 허울만 좋아 억대 농부이지 총수입이 1억원을 넘긴다 해도 경영비를 제외하면 실질소득은 3천만원 남짓이다. 실상은 연봉 3천만원 짜리 농민인 것이다.

올해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도 어려운 해이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모두 어려웠지만 농업은 긴 장마와 코로나19로 인한 노동력 수급 부족으로 특히 힘든 한 해 였다.

내년에도 기상이변과 코로나19 상황이 올해처럼 지속된다면 농업은 더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주・부식 농산물 생산과 공급 계획을 잘 세워야하겠지만 농업 소득을 올리고 농민들이 영농의욕을 잃지 않도록 농민수당을 전면 시행하고 공익형 직접지불금을 올려서 농가 호당 평균 실질 소득이 3천만원 이상 보장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아 있는 농민들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다.

20여 년 전 내가 사는 마을인 자기 고향으로 농사를 지으러 들어와 유기농업으로 가족농의 소농규모 농사를 짓던 진효가 농업수입을 올리기 위해 비닐 하우스 등 시설을 늘리고 인삼농사를 시작하는 등 농사규모를 늘려왔다. 올해는 농사짓는 것도 힘들었지만 농지면적과 노동시간을 늘려도 수입이 기대한 것 만큼 늘지 않자 다시 소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다. 소농으로 알뜰하게 농사지어서 적은 수입으로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이 친구의 농업은 지속되겠지만 앞으로 대학교, 고등학교 진학할 아이들이 셋이나 대기하고 있는데 잘 버티며 농사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마지막 ‘농활’의 마지막 동네 형이었던 이 친구마저 농업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면 우리 농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걱정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격상되면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식품 사재기로 식료품 매대가 텅비는 공급붕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올해 쌀 생산 부족이나 곡물 및 농산물 수입과 공급이 끊기면 TV에서나 보던 남의 나라 슈퍼마켓에서 식품과 농산물, 축산물이 바닥나는 상황을 우리가 볼 수도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ak19) 시대가 곧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에도 농업을 둘러싼 위기 환경이 이어진다고 예상되면 국민 먹을거리 생산 안정에 대해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농업의 스토브리그인 겨울동안 내년도 생산과 수요조절을 잘 계획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농업정책’을 ‘식량정책’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식량계획정책’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올 겨울을 잘 준비하여 해외농산물 수급 계획과 국내 농산물 자급계획 제고를 통해 먹을 거리 위기가 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재욱

화, 2021/01/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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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은 위험사회에서 성찰적 근대성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멸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성찰적 근대성이란 애초 근대성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성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사회문화적 의미론으로서,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사실상 탈근대주의 담론으로까지 이어져서, 자본주의가 생산노동을 둘러싼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몸과 성에 대한 물질-담론적 지배를 포괄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 비판은 탈근대성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에서는 근대성을 자본주의의 가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변증법적 관계 속에 있는 독립된 차원의 문제로서 보았다. 근대성의 핵심은 인간 이성의 발견과 계몽을 통한 자유 주체의 형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근대성은 봉건적 지배구조 속에서 신분제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선천적이라고’ 정당화된 사회 불평등에 대한 자각이자 그로부터의 주체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계몽이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역설로 귀결되는 문제에 대해 천착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몽이 더는 주체의 해방이 아니라 과학주의, 전문가주의, 관료주의 등의 권위주의로 굳어지는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근대성 이념 간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는 19세기 독일 사회학자인 짐멜에 의해서도 논의되었다.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에서 짐멜은, 돈이 처음에는 기성 권력으로부터 주체를 자유롭게 하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소비욕의 생산을 통해 다시 주체를 지배한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와 이성에 의해 해방된 주체 간의 관계는 단선적이거나 일면적이지 않고, 매우 양면적이고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된 주체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열어준 해방의 기회에 몸을 맡겨 그 흐름을 마냥 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제 해방이 지배로 전환할지를 비판적으로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소명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생산중심주의와 사적소유 제도를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규정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들에게 근대적 주체란 쉼 없는 경제성장의 행군 속에서 부를 축적하는 소유자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독일 사회학의 전통에서 보면, 이런 관점은 근대성을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동일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 형태로 제도화한 ‘계몽변증법’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나치즘과 같은 ‘근대적 야만’으로 가는 행보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숙명과도 같다고 보았다―물론 이후 『부정변증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나 이는 『계몽변증법』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버마스는 근대 민주주의 공론장이 정치체계로 제도화하면서 생활세계 속에서 새롭게 공론장이 등장해야 할 테지만, 생활세계 역시 식민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벡은 산업사회가 스스로 생산한 부산물인 위험에 의해 위험사회로 탈바꿈함으로써, 근대성이 자본주의 산업사회 이외의 ‘또 다른’ 제도적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짐멜이 말한 ‘돈의 지배’로 이미 진입한 후기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주체의 출현은 인간의 혁명 아니라 ‘부작용의 정치’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부작용의 정치

부작용의 정치란 시장 논리가 이미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돈의 지배’ 단계로 들어간 사회에서, 해방적 주체가 과거 시민혁명 당시처럼 계몽이나 인간 이성에 기대어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함을 이르는 개념이다. 시민혁명 당시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구체제에 주체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가 구석구석 제도화하여 부산물로 새로운 위험을 생산하고 외부화할 뿐만 아니라 그런 위험 생산에 ‘제도화한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개인들의 주체화가 혁명적 양상을 보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개인들이 위험의 당사자가 됨으로써, 주체화되도록 떠밀리는 형편이다. 의식과 이성의 주도로 주체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주체가 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익의 사적소유와 위험의 공유(공동 책임) 간의 모순이다. 위험을 단지 감수할 만한 리스크로 축소하여 이익만을 계산에 넣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회계장부에서, 이익의 분배는 철저히 생산자 책임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즉 능력주의이다. 이익 생산에 기여하는 능력―물론 여기에는 ‘능력’으로 번역되는 ‘권력’ 역시 포함된다―에 따라 이익이 분배되어 사유재산이 된다. 반면에 회계장부에 누락된 위험의 분배에는 생산자 책임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분배의 원칙은 약자 우선주의이며, 익명화한 공동책임주의이다. 여기서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회계장부상 이익의 측면에서는 사유재산제도에 기초하지만, 그 이면에서 ‘리스크’로 무시되는 위험의 측면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누가 위험의 생산자인가?’, ‘누가 위험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라는 생산자 책임주의 또는 능력주의 원칙은 위험 분배의 문제에서는 전혀 거론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또는 ‘운이 나빠서 위험 취약자가 되어서’라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유에 의해서, 위험의 공산주의가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것이 벡이 말한 ‘반쪽 근대성’이다. 근대적 이성과 계몽, 과학과 전문성이 ‘이익’이라는 일면에서만 적용되고, ‘위험’이라는 이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생산과 분배라는 이면에서는 여전히 ‘운’과 ‘재수’, ‘우연성’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험이 발생하면 갑자기 근대적 ‘사회’가 ‘공동체’로 돌변한다. 전근대적 공동체 원칙을 붕괴하여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 기초 위에서 근대적 사유재산제도가 생긴 것인데, 위험이 발생하면 마치 처음부터 ‘사회’가 ‘공동체’여야 하는 것처럼 부산을 떠는 것이다.

 

헌법의 핵심은 민주주의 가치이다

현재 코로나19 아래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위험사회의 정치는 논쟁정치이다. 그 이유는 ‘리스크’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위험사회’는 ‘리스크 사회’를 번역한 것인데, ‘리스크’란 객관적으로 발생한 위험을 이르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발생할 위험에 대한 예측, 특히 계산되는 예측을 의미한다. 즉 리스크는 과학적 인식론 차원의 개념이다. 이것은 위험의 객관성에 대해 과학적 합의가 어려움을 말한다. 위험 생산이 이익 생산의 이면에서 베일에 싸였듯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 예측 역시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논쟁 속에 묻혀버린다. 산업사회의 주류 사회학이던 ‘기능주의’가 전제했던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라면, ‘그것이 여전히 근대적 사회인가?’라고 자문할 수 있다. ‘탈근대주의’ 관점에서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성’의 핵심은 과학주의가 아니라 주체의 해방, 즉 민주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새로운 상황에 돌입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난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벡이 제안한 ‘성찰적 근대성’의 길이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위험사회에서는 모든 제도적 경계들이 유동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치/경제 체계 간의 경계, 과학/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전문성/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가족/일터 간의 경계 등이 고정성을 잃고 상황 의존적으로 변화한다. 삼권분립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한국의 행정부는 거의 마비 상태인데, 의회의 마비와 사법부의 절차 위주 판결이 거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마치 절차가 곧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처럼 모든 문제가 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독일 현대 사회학자 루만이 주장하듯이, 모든 제도적 경계들은 사회적 소통에 의해 구성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절대적 객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행위들에 의해 의미론적으로 ‘기정사실화’한 것들이다. 그런데 위험사회에서 이익 생산뿐만 아니라 위험 생산의 문제가 부각하면서, 제도적 경계들 역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절차는 제도적 경계와 핵심적으로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절차는 절대성이나 객관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이다. 절차의 정당성을 판결하는 기준은 절차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가치이다.

따라서 현재 ‘전문성’이라는 명목으로 주장되는 모든 절차 절대주의는 의심받아야 한다. 그것은 위험사회의 성찰적 근대성 명령에 따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성찰의 원칙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이다. 특히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현대사회에서, 헌법의 핵심은 사유재산제도도 아니고 절차 자체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급진화

위험사회의 정치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논쟁정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만이 해독제를 제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직업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도화한 정치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벡이 설명하였고 또 우리가 경험했듯이, 제도화한 정치체계는 위험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위험의 책임을 규명하지도 못한다. 위험 자체에 대해서는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의 나락으로 빠져 버릴 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일반인, 더 많은 당사자들의 직접적 목소리를 통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전문가든 국회의원이든, 누군가를 대변하는 방식의 정당성은 약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익의 분배라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일면이, 위험 생산의 이면을 외부화하기 위해서 제도적 경계를 유동화하며 세력을 굳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없는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가 다시금 논의되고 성찰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만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주체화가 독점되는 방식이 지양되어야 한다. 대의제 속에서 선출된 의원이, 전문가인 사법기관이, 과학자가, 또는 특정 이념 세력이 타인의 주체성을 압박하거나 혐오하고 주체성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유주의자 존 롤스는 공정한 자유와 공정한 평등을 주장하고 그것을 절차화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설명한 자유란 주체적 자유를 말한다. 공정한 자유란, 자유의 격차를 없앨 수 없으나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는 위치의 사람 역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도록 그 격차가 제한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없는 것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가 주장하는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자유주의적 헌법이 위험사회에서 ‘위험의 공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 헌법은 자유주의 헌법의 형태이다. 따라서 적어도 헌법의 가치를 거론하려면, 공정한 자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롤스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절차는 민주주의의 가치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절차의 전문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정하게 주체성을 인정받는지의 문제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는 오히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판단 및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보를 언론이라는 정보수집 전문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판단을 법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정치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민주주의의 혈관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홍찬숙

목, 2021/01/1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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