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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가을 통권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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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가을 통권76호

admin | 화, 2019/10/01- 04:43

▲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335pageㅣ발행일: 2019.09.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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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2019년 가을호(통권76호)

차례

여는 글
금단을 넘은 저항, 금단을 넘는 시선 / 조형열

통일에세이
남북한의 학술 교류·협력과 역사학의 모색 / 신주백
한반도 평화만들기 과제와 방향 / 권영길
북한 백두대간 기행 / 로저 세퍼드

쟁점으로 보는 역사
코민테른과 한국 민족해방운동 연구 / 김영진
신간회, 어떻게 볼 것인가 / 윤효정

지금 우리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양립가능한가? / 류동민
우리는 지금 촛불 시대에 살고 있는가? –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에 대하여 / 정현진
머나먼 한반도 군축, 국방비 동결로 물꼬 터야 / 정욱식

인물로 보는 역사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같은 시·공간, 다른 선택 – 채동선과 홍난파 / 노동은

[독립운동가열전]
정칠성 ー 여성노동자를 대변한 근우회의 리더 / 박순섭

[반독재민주화열전]
남김없이 타버린 불꽃 이야기 – 시인 김남주 연대기 / 김형수

[코민테른인명사전]
이탈리아어판 『코민테른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들 (1) – 강상주, 박진순, 박애 / 임경석

사실 체크
○ 우리 역사에서 협동조합운동은 무엇이었나? / 김소남
○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 수리조합사업의 실체 / 박수현

사료의 재발견
『동전 오기영 전집』 : 하나 된 조국을 향한 어느 자유주의자의 외침 / 장규식
『대명률』의 편찬과 수용 그리고 적용 / 한상권

북한의 이해
북한 미술, 조선화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 / 문범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의 기원과 제정 과정 / 강응천

예인열전
동방산수의 화종(畵宗) 겸재 정선 – 정선, 실경산수화의 동국제일명가 2 연구사 / 최열

예술과 현실의 소통
BTS, (케이) 팝의 역사를 다시 쓴다 / 이정엽
3·1운동 100주년에 ‘북간도’로 향한 이유 –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역사’ / 반태경

서평
‘고려에서 조선으로’를 보는 새로운 문제의 제기 – 정요근 외, 『고려에서 조선으로』, 역사비평사, 2019 / 정재훈

책소개

한국의 20세기는 식민과 분단으로 인해 전쟁과 생존의 위협이 상존하는 시기였습니다. 19세기 후반 동학농민전쟁의 압살과 청일전쟁, 20세기 전반기의 러일전쟁,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 남북 두 분단정부의 수립, 6·25전쟁 등 우리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로 인해 민족사회가 입은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서도 권력을 독점한 지배자에 의해 비민주적 통치가 진행되었고, 이성적 사고에 기초한 시민이 되기보다 절대적 순종을 덕목으로 하는 신민이 되기를 요구 받았습니다. 물론 20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침략과 그에 따른 거대한 전쟁이 연이어 터졌기 때문에, 사실 한국도 이러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단 세계적 냉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은 냉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오히려 치열한 열전 상태로 돌입했다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다고 불안과 희망이 교차했던 그때를 떠올려봅니다. IMF의 여파와 세기말 증후군이 겹치면서 회색빛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20세기 전반에 비해 후반기에 우리 사회가 성취한 역사적 성과를 떠올리며 21세기는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희망이 컸습니다. 특히 1987년 6월항쟁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던 군사정부의 그늘과 지역주의가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동요하기 시작하고 2000년 6·15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정상이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분단체제 극복을 향한 여정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우리의 현실을 살펴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핵전쟁이 곧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나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남북의 평화는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과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북미 정상의 협상은 평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에게 갈증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제적 조건이 그나마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대신 지금 이 시간에도 미국과 이란의 전쟁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며 시리아 난민을 비롯한 지구촌 시민의 삶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2016년에는 촛불시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굳센 한 걸음을 내딛었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전지구를 휩쓸고 간 자리에 남긴 노동유연화, 위험의 외주화와 같은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절반의 절반도 경과하지 않은 상황에서 21세기가 어떠한 시대가 될 것이라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20년의 역사를 볼 때 20세기가 직면했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21세기 인류와 우리 민족사회가 계속해서 지고 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제에 접근하기 위한 역사학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20세기 식민·분단·전쟁 등 온갖 폭력에 맞섰던 저항을 조명하고, 민주·평화·평등의 시선이 확산되도록 노력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금단(禁斷)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구역 또는 범위 안에 들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또한 금기(禁忌)는 ‘마음에 꺼려서 싫어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두 단어는 서로 비슷하지만 전자가 주로 행동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스스로 애써 기피하려는 의식의 측면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와 분단체제가 철저하게 막아선 금단의 영역을 넘은 저항을 발굴함으로써 오랜 세월 내면화된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시선을 갖는 것, 이 또한 『내일을 여는 역사』가 상상하는 내일을 여는 방법입니다.

『내일을 여는 역사』편집위원회는 2019년 가을호(통권 76호)에 ‘여는 글’을 포함해 모두 23편의 원고를 수록했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민족해방운동과 사회주의운동, 북한에 대한 내면적 이해, 남북의 민간 교류를 세밀하게, 그렇지만 맛깔스런 필치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여러 편의 글을 실었습니다. 역사적 저항과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오늘날의 시민행동을 연속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통일에세이’에는 다양한 분야의 남북 교류사업의 성과와 과제를 담았습니다. 신주백은 2000년대 이후 학술 교류를 역사학 분야에 초점을 맞춰 정리하면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와 정치적 배려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맞물릴 때 교류 협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웁니다. 권영길은 평화철도 연결운동이 현실적인 평화 만들기 실천의 길이고 이를 통해 남북경제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백두대간 사진전을 열기도 했던 뉴질랜드 사람 사진가 로저 세퍼드는 2011~2012년, 2017~2018년의 종주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남북한의 사람들, 문화, 그리고 산도 똑같았다면서 분단이 바꾸지 못한 것들을 말합니다.

‘쟁점으로 보는 역사’에서는 민족해방운동과 관련해서 중요한 주제인 코민테른과 신간회를 다뤘습니다. 김영진은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코민테른이 한국의 민족해방운동에 관여했던 역사적 사실과 연구경향 등을 설명하면서, 국제주의를 표방한 코민테른의 ‘권위’가 각 지역별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폭넓게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윤효정은 신간회에 대한 이해가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민족통일전선론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조망한 뒤, 신간회 평가를 해소 문제에 국한하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긍정·부정을 넘기 위해 중앙 및 지회가 대중과 접촉하면서 벌인 활동 등에 주목할 것을 요청합니다.

‘지금 우리는?’에서는 오늘날 현재적 논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오해와 편견도 섞여 실증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세 가지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류동민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상관성을 정리했습니다. 양자의 양립 불가능성이 정치담론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가지 입론의 역사적 연원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정현진은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 사법부를 통해 법외노조가 된 부당성과 합법화의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정욱식은 분단체제 해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국방비 동결을 추진해야 하며, 2019년 현재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7위, 일본이 6위, 북한은 18위로 평가되었다는 구체적인 사실도 제시합니다.

‘인물로 보는 역사’는 억압적 현실을 극복하고자 고투한 인물 군상의 모습을 주로 다뤘습니다. 먼저 음악가 채동선과 홍난파의 삶을 비교한 고(故) 노동은의 유고를 실었습니다. 민족음악 수립을 위해 노력했지만, 홍난파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채동선의 삶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순섭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 힘쓴 여성 사회주의자 정칠성의 일대기를 간명하게 서술했습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자가 그렇듯이 그녀도 월북한 이후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김형수의 김남주 연대기는 시대의 변화와 시인의 삶을 연결하면서, 또 그가 썼던 시를 통해 그의 내면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혁명을 고민한 김남주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한편 임경석은 이번 호부터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코민테른 인명사전’을 연재합니다. 이탈리아에서 기획된 인명사전에 수록한 14명의 인물 정보를 순차적으로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사전을 위해 집필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건조한 문체이지만, 강상주, 박진순, 박애 등 한인 사회주의자에 대해 기존 연구보다 한층 보강된 내용을 만날 수 있습니다. 1996년 출간된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을 뛰어넘는 사회주의운동가에 대한 종합적 정리가 언젠가 다시 한 번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톺아보기 위한 ‘사실체크’에서는 한국의 협동조합운동과 일제하 수리조합사업을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민간협동조합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소남은 이 운동에 사회운동과 적극적 연계, 좌우 양편을 넘는 통합적 활동, 세계 협동조합운동의 지원, 생명사상의 수용 등의 특징이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아래로부터 연대를 만들어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박수현은 수리조합사업이 일제 통치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일방적 관제사업이었기 때문에, 중소지주와 자작농층을 중심으로 적극적·조직적 저항이 속출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반일종족주의』출간으로 재점화된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지속적 비판이 제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료의 재발견’에서는 『동전 오기영 전집』과 『대명률』을 다뤘습니다. 『동전 오기영 전집』은 일제하·해방직후 지식인이자 언론인으로서 삶을 영위한 오기영의 생각을 담은 책 모음입니다. 장규식은 오기영을 안창호의 대공주의를 계승해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다른 새 자유주의를 제창한 인물로 조명하면서 통일독립을 열망한 그의 활동을 높게 평가합니다. 『대명률』은 조선왕조 형법 체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 서적입니다. 한상권은 14세기 후반 중국에서 편찬된 『대명률』이 조선에 수용·적용된 과정을 상세히 해설했습니다.

‘북한의 이해’에 실린 두 편의 글은 북한의 어제와 오늘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강응천은 북한의 국호가 조선민주주의공화국도 아닌, 조선인민공화국도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인민민주주의를 향한 후진국 사회주의의 기호이자, 민주기지론이 반영되었다는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문범강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출발한 북한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이 독자적인 조선화로 발전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오늘날 조선화 화단의 상황을 소개합니다. 외부의 시선과 달리 활발한 논쟁과 화가의 독자적 작품세계가 실재함을 말합니다. 컬러로 수록한 작품을 직접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최열이 연재하는 ‘예인열전’은 지난 호에 이어 겸재 정선의 작품세계를,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과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예술과 현실의 소통’에서는 문화평론가 이정엽이 케이팝(K-pop)의 흐름 가운데 방탄소년단(BTS)의 위치와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또 다큐멘터리 영화 <북간도의 십자가>를 만든 반태경 피디는 명동촌으로 대표되는 북간도 기독교인들의 삶을 영화화한 동기와 역사 속 기독교 신앙인이 펼친 사회적 실천의 가치를 담담하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평’에서는 정재훈이 최근의 화제작 『고려에서 조선으로』를 다뤘습니다. 변화보다는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위 책이 왕조교체의 원인과 성리학 수용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역사를 큰 줄기에서 보는 시도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20년이 지난 21세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했는데, 『내일을 여는 역사』도 바로 21세기의 첫 해인 2000년 3월에 첫 호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제 성년을 맞은『내일을 여는 역사』 역시 21세기와 함께 호흡해왔다고 할 것입니다.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학술지도 아닌, 폭넓은 대중과 수시로 접촉할 수 있는 시사주간지도 아닌, 어떻게 보면 ‘주변’ 또는 ‘경계’에 서서 지난 세월을 걸어왔습니다. 주변과 경계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서 많은 어려움을 낳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금기를 넘는 시선이 이 지면을 통해 넘쳐날 수 있도록 더 정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질정을 부탁드립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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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10/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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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 배우려 방한…식민지역사박물관 등 방문

▲ ‘진지하게’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일 역사를 배우기 위해 방한 중인 일본 주오대학부속 고등학생들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 전시실을 둘러보며 연구원의 한일 식민지배 역사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2019.10.22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장우리 기자 = “야스쿠니(靖國) 신사는 어릴 때 도시락 싸서 소풍 가던 아름다운 곳이라고만 생각했는데….”

22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일본인 여고생 카와세 아스카(17)양은 숙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물관에서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 할머니의 역사 강연을 들은 카와세 양은 “몇 년 전에도 한국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방문은 사뭇 다르다”며 “일본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식민지배 역사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도쿄의 주오(中央)대학부속고등학교 학생 40명은 이날 식민지역사박물관을 방문해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들뜬 표정으로 전시실 관람을 시작한 이들은 식민지배의 실상에 대한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이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은 자료집에 틈틈이 필기를 하기도 했다.

이번 역사 답사를 기획한 재일교포 교사 고화정(40)씨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한일 간 과거사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역사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는 걸 보고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카미무라 아키코(33)씨는 “그동안 학생들이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K팝과 드라마를 활용해 한국 문화를 가르쳐 왔다”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직접 현장에서 배워보자는 취지로 이번 일정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학생들 역시 이번 답사가 한국을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자신을 ‘아미'(방탄소년단의 팬클럽)라고 밝힌 카토우 유나(17)양은 “전시실에서 벽관(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기 위해 벽에 홈을 파서 만든 투옥실) 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며 “직접 눈으로 보니 더 와닿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다카츠 유스케(17)군은 “일본에 돌아가서 관련 역사를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보고 싶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 한일 역사 투어 나선 일본 고등학생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한일 역사를 배우기 위해 방한 중인 일본 주오대학부속 고등학생들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 전시실을 둘러보며 연구원의 한일 식민지배 역사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2019.10.22 [email protected]

일본 학생들을 만난 이희자 할머니는 “일본 때문에 겪었던 불행한 이야기를 먼저 하게 돼 미안하다”면서도 “일본에 끌려갔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가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고 불행한 가족사를 설명했다.

이어 “몰랐던 사실을 알아간다면 (한국과 일본이)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여러분의 마음 한구석에 내 이야기가 남는다면 정말 보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학생들은 남영동 대공분실, 서대문형무소 등을 더 돌아본 후 오는 24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앞서 21일에는 명성황후 시해 현장과 평화의 소녀상도 방문했다.

[email protected]

수, 2019/10/23-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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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정의실천연대 긴급성명, “반헌법 역사관 지닌 인사 진급, 국방부가 사과해야”

▲ 국정교과서 공짜로 퍼주기 지적을 받을 고교<한국사>교과서. ⓒ 교육부

중고교 <역사> 국정교과서 진필진으로 유일하게 참여했던 장교를 국방부가 진급시키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역사단체들이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역사정의실천연대는 성명을 내고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이었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가 무려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령 진급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면서 “국방부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 헌법적인 역사관을 지닌 인사를 대령으로 진급시킨 데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하고, 진급 결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국방부가 적폐청산은커녕 박근혜 정권의 교육적폐 중의 적폐인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자에게 대령 진급이라는 ‘훈장’을 달아 줌으로써,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했다”고도 지적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전국역사교사모임, 흥사단 등 45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이날 “국방부가 나 교수에 대한 승진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육사를 항의 방문할 예정이며, 1인 시위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오마이뉴스>는 지난 21일자 기사 “국정교과서 집필 장교, 15 대 1 경쟁 뚫고 대령 진급?” (http://omn.kr/1le84)에서 “국방부가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던 현역 장교를 대령으로 진급시킬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역사교육단체 대표자들은 물론 군 안팎에서도 ‘적폐 교과서 ‘복면’ 집필자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커녕 진급을 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처음 보도한 바 있다.

<2019-10-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국정교과서 집필 장교 진급 취소를…” 육사 항의방문 예정

수, 2019/10/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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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중고교·대학 등 16곳 달해.. 부산학부모연대 전수조사 결과 발표”

▲ 부산지역 교육단체인 부산학부모연대가 23일 부산시교육청 본관 앞에서 친일파 교가 사용 부산지역 학교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보성 기자

“과거사 청산하자면서 학교 행사 때마다 친일파 교가를 부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23일 부산시 교육청 본관에 모인 부산지역 학부모들은 “친일파가 만든 교가를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부산 학부모들은 역사를 배우고, 정의를 세워야 할 학교에 친일잔재가 버젓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일본의 강제징용 배상 거부에 이은 수출제재, 경제전쟁 본격화로 곳곳에서 일본 규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아이들의 배움터인 학교에서 일제잔재 청산은 여전히 더디다. 특히 학교를 상징하는 교가가 친일파 작곡·작사가의 손을 거쳐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는 것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부산지역 교육단체인 부산학부모연대는 친일파 작곡·작사자들이 만든 교가임에도 이를 바꾸지 않고 있는 학교 명단을 전수 조사해 이날 부산시교육청 본관 앞에서 공개했다. 명단을 보면 친일파들의 교가를 지금껏 사용 중인 부산지역의 학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16곳에 달한다.

이들 교가는 군국가요의 나팔수였던 이흥렬,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참전을 선동했던 김성태와 김동진, 일제 전쟁물자 공출의 공신인 이항녕이 각각 작사·작곡을 맡았다. 이흥렬은 일제 강점기 시기 내내 전국을 돌며 군국가요를 보급한 친일파다. 김성태 역시 ‘용사가 되는 날’, ‘우리들은 제국군인’ 등 노래로 전쟁참전을 선동했다.

김동진은 만주악단협회, 신징음악단 공동주최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악국 발표회’에서 일본을 찬양하는 내용의 작품을 내놓는 등 친일 행적을 일삼았다. 관료였던 이항녕은 경성제국대 졸업과 동시에 조선총독부에 들어가 친일 활동을 펼쳤고, 1941년 하동군수로 부임해 식량공출에 앞장선 바 있다. 이들은 모두 일제 식민지배에 협력한 인사들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이다.

더 큰 문제는 친일파 작곡 교가에도 이를 칭송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A 고교의 경우 교가 소개란에 “한국의 중견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로 활동했던 이흥열 교수에 의해 (교가가) 고쳐졌다”며 “전자의 곡은 고음 위주나 후자의 것은 정중하고 장중한 느낌을 줘 힘에 넘친다”고 설명했다. 곡에는 학업정진으로 민족의식 고취 등을 노래한 내용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밖에 성차별과 군사풍 분위기의 교가 내용 역시 문제가 됐다. ‘부덕의 선봉, 고운 요조들, 행실을 닦아, 순결한 목련처럼’, ‘대한의 일꾼, 충성의 우리의 넋, 애국충성 가슴에 새겨, 함포연기 자욱한데, 태평양에 전선을 띄우고’ 등 시대에 동떨어진 표현이 많았다. 일제 문화 통치 시기 교가 제정 확산으로 일제 군가와 비슷한 군가, 행진곡 형태의 노래도 여러 학교에서 발견됐다.

이에 대해 부산학부모연대는 “친일파가 만든 교가를 아직도 학교 행사 때마다 부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시 교육청은 우선 교가부터라도 청산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포초등학교의 학부모인 이인수 씨는 “친일파 재산조차 제대로 환수 못 하고, 국어책에는 친일 시인의 시가 있고, 친일파가 장학사업을 하고, 일제를 찬양하는 곡을 쓴 친일파의 노래를 배운다”며 “아직도 우리는 일제의 그림자 속에 있다”고 비판했다.

D고교의 졸업생인 박강우 씨도 “최근에야 우리 교가가 친일파의 손에서 탄생한 것을 알게 됐다”며 분개했다. 그는 “항일 운동을 강조하고 이를 자긍심으로 삼는 학교에서 침략전쟁을 찬양한 자의 곡이 교가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면서 “즉각 교가를 교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정은 부산학부모연대 대표는 “사회적으로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서 친일파 교가 외에도 다수의 교가에 잔재가 남아있다”면서 “과거사를 바로잡고, 정의를 세워야 할 미래세대의 공간에 청산되지 못한 역사의 그늘이 드리워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친일 작사·작곡자의 교가 사용 학교는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있다. 최근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친일파 교가를 사용 중인 학교는 충남 31곳, 경북 30곳, 전북 25곳, 충북 23곳, 전남 18곳, 부산 16곳, 광주 13곳, 강원 10곳, 대구 6곳, 경기 6곳, 경남 5곳, 대전 2곳, 울산 3곳, 서울 1곳 등 전국적으로는 모두 189곳에 이른다.

▲ 광복절인 8월 1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베규탄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경제 도발을 일으킨 일본의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손피켓과 친일인명사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8.15ⓒ정의철 기자

<2019-10-23>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친일파 교가를 우리 학교에서 아직도 부른다고요? 

※관련기사 

☞연합뉴스: 부산 16개 학교가 아직도 이흥렬 등 친일파 작곡 교가 불러 

☞헤럴드경제: 부산 16개校, 친일파가 만든 교가 아직도 부른다 

☞오마이뉴스: “교가, 교화, 교목에 아직도 친일 잔재 많아 … 이젠 바꿔야”. 

☞뉴시스: 교육희망경남학부모회 “학교 내 친일잔재 청산하자”

목, 2019/10/24-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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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분야에서 공로 인정받아 수상
생전 평택 음악문화 사업에 큰 기여

▲ 10월 22일 장남 노관우씨가 고 노동은 교수 대신 문화체육관광부 박양우 장관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받고 있다.

[평택시민신문] 평택시가 22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2019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시상식’에서 고 노동은 교수가 문화예술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평택의 위인 지영희의 숨겨진 업적을 최초로 발굴해 평택시와 인연이 깊은 고 노동은 교수는 우리 민족의 근현대음악사를 방대하고 깊게 연구한 대학자다. 그는 민족음악학·친일음악·항일음악·동아시아음악·근현대음악가·음악교육 등 수많은 자료를 수집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또 생전에 평택시의 열정적인 음악문화 사업에 감동받아 한 평생 수집한 근현대음악사료 7만점을 평택시에 기증한 바 있다.

현재 평택시는 기증자료를 전 국민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한국민족음악도서관(가칭)을 조성 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에 개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장선 시장은 “한민족의 문화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헌신한 고 노동은 교수의 유지를 받들어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시가 한국을 대표해 한류음악을 알리는 국제문화도시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훈장은 문화예술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5개 등급: 금관·은관·보관·옥관·화관)이다.

안노연 기자 [email protected]

<2019-10-23> 평택시민신문 

☞기사원문: 평택과 인연 깊은 고 노동은 교수, 은관문화훈장 수상 

※관련기사 

☞평택시사신문: 故 노동은 교수, 은관문화훈장 수훈 

☞케이에스티뉴스: 평택시, 한국민족음악 대학자 고 노동은 교수 ‘은관문화훈장’ 수상 

☞수원일보: 근현대음악사료 7만점 평택시 기증, 고 노동은 교수 은관문화훈장 수상 

☞중부일보: 고(故) 노동은 교수, 문화예술분야 공로 은관문화훈장 수상 

☞경기인터넷신문: 평택 지영희 명인의 숨겨진 업적을 최초 발굴한 한국민족음악 대학자 고 노동은 교수 ‘은관문화훈장’ 수상

금, 2019/10/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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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 방한 인터뷰

아사히신문 마쓰이 야요리와 함께
국제여성법정서 세기의 판결 받아내
12개국 여성 희생자 기림비 세우며
한일 넘어선 전시 성범죄 보편성 강조

“일본에 속아 끌려온 한반도 여성들
피해자 동의없는 국가정상 간 합의
해결도 그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

▲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여성국제법정’을 주도했던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의주로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email protected]

“식민지배를 받은 한국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민족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과 전쟁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제의 잔혹했던 36년 식민통치의 아픔을 고발하는 대표적인 ‘역사적 상징’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오랜 시간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며 현실참여 활동을 해온 여성운동가인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센터’ 공동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전시 여성에 대한 범죄’라는 위안부 문제의 보편성이다. 그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초청으로 22일 열린 ‘2000년 여성국제법정’ 19주년 기념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21일 방한해 와 만났다.
“저는 원래 말레이시아사를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1990년대에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 집회를 열었는데 말레이시아 기자에게 집회를 취재해보라고 권했죠. 그 기사가 마침 현지 신문 1면에 실려서 말레이시아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중에 로자린 쏘우라는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할머니를 만나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면서 친해진 뒤 제 ‘대모’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저와 위안부 문제의 시작이네요.”

▲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 그와 동료들은 2000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민간 법정을 준비하며 심각한 협박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email protected]

그 뒤 나카하라 교수는 일본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운동가였던 마쓰이 야요리(1934~2002) 기자와 함께 세기의 재판에 나서게 된다. 2000년 12월8일부터 사흘간 열린 ‘여성국제법정’이란 이름의 민간 법정이었다. 그는 “당시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아서 이를 다른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전하는 일에만 집중했지만, 마쓰이는 달랐다”고 말했다. “갑자기 마쓰이가 ‘위안부 문제는 여성에 대한 국가와 일본군의 범죄’라며 이를 (확인하는) 재판을 하자고 했어요. 우리는 그런 재판이 가능할까 몹시 두려웠지만, 어쨌든 시작을 한 거죠. 마쓰이는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카하라 교수 등은 재판 실무 준비를 위해 1998년 6월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너무 많았다. 가장 큰 두려움은 전쟁의 최고 책임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던 히로히토 일왕을 법정에 올린다는 사실이었다. 재판을 주도한 마쓰이 등에게 우익의 협박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한동안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겨야 했다.

더욱이 아시아 각국에 흩어진 피해자들을 도쿄로 불러 모으는 것은 엄청난 비용과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총 64분의 피해자를 증인으로 법정에 불렀습니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고령이어서 가족이나 운동가들이 최소 2명 정도는 붙어야 했어요. 항공료와 체재비, 통역·번역비 등도 필요했어요. 중간에 ‘내 퇴직금을 부어야 하나’란 생각도 했지만, 일본의 한 고령 여성이 ‘천황의 죄를 물어야 한다’며 거액을 기부하셨어요.”

이 민간 법정에선 위안부 제도에 책임이 있는 일왕 등 9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위안부 제도가 나치 시절 유대인에 대한 홀로코스트에 맞먹는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임을 명명백백하게 선언한 세기의 판결이었다.

그 뒤 나카하라 교수에게 또 하나의 전기가 찾아온다. 와세다대 박사과정의 제자 홍윤신( 저자)씨가 오키나와 위안소 조사 연구를 위해 미야코지마를 방문했다가 중요한 증언을 채록했기 때문이다. 섬 주민 요나하 히로토시는 홍씨에게 12살 때 섬에서 피부가 하얀 조선인 여성들이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러 우물에 들렀다 잠시 쉬던 장소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섬에 왔다가 전쟁 뒤 사라진 누나들이 누굴까 의아해하던 요나하는 이후 그들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조사 결과 미야코지마에만 총 17곳의 위안소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 나카하라 미치코 와세다대 명예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중구 의주로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email protected]

이 장소에 위안부 여성들을 기억하는 비를 만들고 싶다는 요나하의 얘기를 들은 홍씨는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 윤정옥(94) 선생과 나카하라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나카하라의 주도로 시민 모금이 이뤄져 2008년 9월7일 비를 세울 수 있었다. 나카하라는 위안부 희생자가 된 12개국 여성들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12개국 언어로 비를 새겼다. 비의 이름은 ‘여성들에게’다.

나카하라는 위안부 문제가 일본 정부와 군이 저지른 ‘국가 범죄’임을 부인하려는 한·일 양국의 사회 분위기에도 일침을 놨다. “규슈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소 데쓰오(1910~1989)라는 의사가 1937년 11월 군에 소집이 됩니다. ‘나는 부인과 의사인데 왜 소집을 할까’ 의아해하던 그가 상하이에 도착해 보니 위안소가 있었습니다.” 아소는 군으로부터 그곳에 있던 여성 100여명의 신체검사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뒤, 일기에 ‘일본인 위안부들은 성매매를 해본 이들이었지만, 한반도 출신 여성들은 성경험조차 없어 보이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적었다. 나카하라는 “(한반도 출신 여성은) 좋은 일거리가 있다고 속여서 끌고 온 것이다. 이는 사기다. 성경험이 없는 여성이 어떻게 위안부가 되기 위해 오겠냐”고 말했다. 나카하라는 한·일 양국 정부의 2015년 12·28 합의에 대해서도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국가 정상끼리 한 합의는 해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본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길윤형 기자 [email protected]

<2019-10-22> 한겨레 

☞기사원문: 일왕을 민간 법정에 세운지 19년… “위안부는 취업사기이자 국가 성범죄”

금, 2019/10/25-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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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아베규탄시민행동, 지소미아 종료 한 달 앞두고 한일 정부 간 타협 움직임에 반발

▲ 아베규탄시민행동이 23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예정대로 종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지만, 정부 안팎에선 지소미아 효력이 끝나는 11월 23일 이전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일본 수출규제 철회와 지소미아 연장을 맞바꾸는 안이 제기되고 있다. ⓒ 김시연

‘지소미아'(GSOMIA: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한 달을 앞두고, 정부 안팎에서 일본 수출규제 철회와 지소미아 연장을 맞바꾸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 없이 지소미아 연장은 있을 수 없다며 ‘대못 박기’에 나섰다.

750여 개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가 참여한 ‘아베규탄시민행동’은 23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지소미아를 예정대로 종료하라고 촉구했다.

“강제동원 사죄 배상 문제, 한일 정부 야합해선 안돼”

우리 정부는 지난 8월 22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자 지소미아 종료를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연장하라고 우리 정부를 지속해서 압박해왔고, 우리 정부도 최근 이낙연 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지소미아 효력이 끝나는 11월 23일 이전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일본 수출규제 철회와 지소미아 연장을 맞바꾸는 안이 논의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단호했다.

박석운 아베규탄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이날 “지금 강제동원 사죄 배상을 미봉하거나 은폐하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아베와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해서 지소미아를 연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오는데 명백한 가짜뉴스이길 바란다”면서 “아베 정부의 경제침략과 역사 부정이 아직 해소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미봉하려는 건 역사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신한 김진영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사무국장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도 사과를 받는 것도 거래처럼 이뤄져선 안 된다”면서 “정부 간 야합으로 문제를 덮으면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도 이 문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란 문제가 계속된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1965년 한일협정이 그랬고 95년 아시아여성기금,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그랬듯 피해자와 국민 뜻을 무시하고 정부 간 야합으로 덮어 지금 일본 정부는 아직 식민 지배하는 것처럼 한국을 대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아직 해방을 맞지 못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면서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를 일본과의 정치적 협상 지렛대로 이용하려고 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실제 오는 24일 아베 총리 면담을 앞둔 이낙연 총리는 지난 18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다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1일 국정감사에서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정상회담이 가능하려면 일본의 전향적 태도와 성과가 담보돼야 한다”면서 “그 성과를 만들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밝혔다.

아베규탄시민행동은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아베 정권이 아무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 시도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진작에 파기됐어야 했을 협정을 두 번이나 연장한 뒤, 수출규제와 결부해 연장을 종료하고 다시 이와 결부해 재연장한다면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의에 반해 박근혜 정권의 적폐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스스로 적폐정권 행태를 닮아가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 보다 단호한 태도로 미국의 압력, 아베 정권의 도발에 맞설 것을 촉구하며 박근혜 적폐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예정대로 종료시킬 것을 요구한다”며 오는 26일 오후 6시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아베규탄 9차 촛불문화제’를 예고했다.

<2019-10-2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 수출규제 풀면 지소미아 연장? 역사에 죄짓는 일”

금, 2019/10/2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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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10.22) ‘내역사’ 시즌 4: 반일종족주의 반박 1편_식민지근대화론과 친일청산 부정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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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4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금, 2019/10/25-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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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지원금 받아 건립된 ‘이종린 문학기념비’… “단죄비 세우자” 의견도

▲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입구에는 친일부역자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라있는 황산 이종린의 문학기념비(빨간 원안)가 세워져 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 자료에 따르면 이종린(李鍾麟 1883 ~ 1950)은 당시 서산군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종교인이며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이종린에 대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기록은 무려 4페이지에 이른다. 지난 2004년 세워진 문학기념비에는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행적이 빠진 그의 일생(사진 왼쪽)과 함께 그의 작품(사진 오른쪽)이 적혀 있다. ⓒ 신영근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 서산시에서는 친일파 기념비가 세워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입구에는 친일부역자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올라있는 황산 이종린의 문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자료에 따르면 이종린(李鍾麟, 1883~1950)은 서산군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언론인·종교인이며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이종린에 대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기록은 무려 4페이지에 이른다.

독립운동 후 변절… 소년들에게 ‘지원병 지원’ 선동

이종린은 변절한 지식인이었다. 친일인명사전 등 현재 남은 기록을 통해 그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일제강점기 3.1 운동과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의 주필로 참여하는 한편, 물산장려회와 신간회에서도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하며 독립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주력하다가 옥고를 당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는 종교인과 문인으로 활동했다.

여운형, 안창호와 함께 3대 웅변가로 일컫어진 그는 변절 후에 일제를 위해 강연회에 나섰다. 당시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을 통해 일본 식민으로서 지원병에 참여하는 것이 내선일체 완성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러 편 발표하기도 했다. 나아가 각종 월간지에 “제군들은 머리와 눈이 있는 청년들이다. 일제히 지원병을 지원하라” “징병제가 실시되어 지금 서울 거리거리에는 반도 민중이 모인 자리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소리로 가득찼다”라고 선동했다.

이종린은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조직된 친일단체인 국민동지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행위와 관련해 소환장을 발부하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조직적인 방해로 제대로된 친일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고 그 역시 무죄로 풀려난다.

이후 이종린은 제1, 2대 제헌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제헌국회에서 헌법 기초위원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공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한국전쟁 때 납북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이종린의 이 같은 독립운동과 함께 친일행적이 고스란히 기술되어 있다. 그는 당시 천도교 기관지인 <신인간>을 통해 일본 식민으로서 지원병에 참여하는 것이 내선일체의 완성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주장을 담은 여러편의 글을 발표했다고 기록되어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에는 1942년 조선에 징병제가 실시될 것이라는 소식에 조선신궁에서 징병제실시감사제를 거행하고 “징병제가 실시되어 지금 서울 거리거리에는 반도 민중의 모인 자리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라고 외쳤다(홍은감읍(鴻恩感), <대동아> 1942년 7월호)“고 전했다. 특히, 이종린은 일본 패망 직전인 1945년 7월 조직된 친일단체인 국민동지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빨간 네모안) ⓒ 신영근

이종린 문학기념비는 당시 서산시와 지곡면 등을 중심으로 ‘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4년 건립되었다. 이 비는 건립 당시 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와 서산시의 보조금으로 세워졌으며, 서산시 소유 부지에 건립되었다.

기념비에는 이종린의 독립운동 활동 내용은 비문에 상세히 담겨 있으나, 이후 변절해 일본에 부역한 사실은 쏙 빠져 있다.

당시 문학비 건립 추진위원이었던 A씨는 지난 18일 통화에서 “우리 지역 출신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이종린 선생을 기리기 위해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건립했다”면서도 “당시에 이종린 선생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A씨는 당시 문학비 건립에 약 2천만 원이 들었으며, 추진위가 모금을 하고 서산시가 일부를 지원해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功)과 과(過)를 볼 때 공이 많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건립했다”며 “당시 천도교 수장을 맡은 (이종린) 선생이 천도교를 말살하겠다는 일본의 위협에, 종교를 살리기 위해 부득이 한번 강연을 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A씨는 “당시 한번 강연한 것을 가지고 친일부역이라고 하면 당시에 친일 안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문학과 친일은 관계가 없다. (친일이라 하더라도) 주민들이 다 이해하기 때문에 투표를 해서 두 차례나 국회의원으로 시켜줬다. 당시 독립운동으로 정부에서도 훈장(이종린은 지난 1967년 12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 받았다)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는 파악조차 못하고 있어… “철거는 법규 확인해봐야”

▲ 친일파의 문학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과 관련해 24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권희용 지부장은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독립운동과 3년 옥고를 치른 부분“이 있지만, ”후반에는 일본을 찬양하는 강연 등을 한 인물로 당시 신문과 문헌에 많은 자료로 나와있다”라고 말했다. ⓒ 신영근
▲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이종린 문학기념비는 서산시 지곡면 안견기념관 앞에 설치되어 있다. 기념관 뒤로 지곡면행정복지센터가 보인다. 하지만 지곡면 행정복지센터는 이종린이 친일파 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신영근

서산시는 해당 문학비가 시의 지원을 받아 시 소유 부지에 세워져 있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 시 관계자는 “정확히 얼마가 지원됐는지 당시 문서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면서 “법적인 5년의 문서보존기간이 끝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권희용 지부장은 “이종린은 일제강점기 초반에는 독립운동으로 3년 간 옥고를 치렀지만 후반에는 일본을 찬양하는 강연을 한 인물로 당시 신문과 문헌에 많은 자료로 나와있다”면서 “공(功)이 있다고 봐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변절하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권 지부장은 이어 “변절한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을 위한 강연에 나서면, 국민들은 ‘독립운동가의 말이 옳은 게 아니냐”하면서 부화뇌동할 수 있다”면서 “(변절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했던 사람을 공만 평가해서 기념비를 건립한 것은 너무 잘못된 일”이라고 말했다.

문학비 철거에 대해선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당시 건립추진위원 A씨는 “주민들과 많은 분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문학기념비 철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당시 서산시에서도 승인을 해줘 시소유 부지에 건립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시소유 부지에 개인 기념비가 세워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시에 묵시적 협조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철거를 위해서는) 관련 법규를 확인 후에 처리하는 게 맞다”고 신중한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권 지부장은 “잘못된 것을 인정 안 하고 잘한 것만 말하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철거보다는 서산시 또는 시의회에 동의를 얻어 친일행적을 자세히 기록한 단죄비를 기념비 옆에 세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근 충남교육청을 비롯해 전국에서는 교육청에서는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와 학교에 걸린 일본인 교장 사진 등을 교체하는 등 친일잔재 청산에 나서고 있다.

<2019-10-2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서산시 부지에 세워진 ‘친일파 문학비’… 시조차 몰랐다

일, 2019/10/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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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노환으로 작고..향년 88세

▲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춘면 할머니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후지코시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이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9.01.23.ⓒ사진 = 뉴시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 이춘면(88)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기업 측에 자신의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지만, 어떤 사과나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작고하게 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할머니가 지난 26일 오전 0시 20분 서울 동대문구 소재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28일 밝혔다.

이 할머니는 13세 때인 지난 1944년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와 전문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국민학교 교장의 거짓말에 속아 근로정신대에 들어갔다.

이후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를 거쳐 도아먀시의 후지코시 공장에 갔고, 일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10~12시간에 달하는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그곳에 있는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배고픔에도 시달렸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에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이 할머니와 같이 후지코시 공장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는 1600여명, 이 가운데 여성이 1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난 2015년 5월, 이 할머니는 자신이 입은 정신적·육체적·경제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일본 후지코시 사에 1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2017년 3월, 한국 법원 1심 재판부는 후지코시 사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이 할머니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후지코시 사측은 ‘이 할머니의 손해배상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소멸했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지난 1월 항소심 재판부 역시 후지코시 사측에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또다시 후지코시 사는 항고했고, 지난 3월 22일 대법원은 이들에게 ‘상고 기록 접수통지’를 보냈다.

7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후지코시 사 측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재판 절차도 진척이 없다.

다른 사건의 사례에 비추어 보면, 해당 서류를 일본 외무성이 송달하지 않고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외무성은 법원행정처가 지난 1월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송달해달라며 보낸 자산 압류 결정문을 전달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7월 19일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돌려보낸 바 있다. 심지어 이 서류에는 아무런 반송 사유도 적혀있지 않았다.

한편, 이 할머니는 작고했지만, 이 할머니의 소송은 유족들이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2019-10-28>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항소심 이겼는데 사과도 못받고..강제동원 피해자 이춘면 할머니 별세 

※관련기사 

한국일보: 끝내 일본 사과 못 받고 눈 감은 ‘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tbs교통방송: 일본 사과 못 받은 채 ‘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SBS뉴스: 일본 측 사과·배상 못 받고…’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뉴스1: 근로정신대 승소에도 사과·배상 못받고..이춘면 할머니 하늘로 

부산일보: ‘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日 전범기업 후지코시 사과·배상 못 받아

아시아경제: 끝내 일본 측 사과·배상 못 받았다…’근로정신대’ 이춘면 할머니 별세 

월, 2019/10/2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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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email protected]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유엔에 진정을 넣었다. 30일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일본 철강기업 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95) 등 4명에게 각 1억원씩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한 지 1년이 흘렀다.

민변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인권이사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문제가 불거진 후 유엔에 직접 진정을 제기한 건 처음이다. 진정서에는 ‘일본 정부와 기업에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죄하며 즉각적으로 배상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기남 민변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은 “진정서를 제출하면 고문 방지, 인권 등 주제별 특별 보호관들이 일본 정부에 서한을 보내는 특별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계기”라고 했다.

민주노총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내년 6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1999년과 2015년에 ILO전문가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의 강제징용을 ‘강제노동’이라 규정했다”며 “위원회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노동의 책임성을 받아들이고 희생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일본은 한 번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 이춘식 할아버지가 인천 도림초등학교 학생들이 보낸 편지 내용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email protected]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와 양금덕씨(88)도 참석했다. 이씨는 “국민들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양씨는 “1944년 5월31일 여수에서 배를 타고 6월1일에 나고야 미쓰비시 중공업에 도착했다. 목포, 나주, 여수, 순천 등 5개 도시에서 138명이 동원됐다”며 “이 숫자를 아직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와 미쓰비시는 하루빨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외쳤다. 이씨는 인천 도림초등학교 학생들이 쓴 편지 내용을 듣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씨에게 “할아버지 잘못이 아니다. 강제징용을 한 일본이 잘못이다”라고 적었다.

민변은 일본 정부가 고의적으로 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절차를 방해하고 있다고 했다. 김세은 민변 강제동원대리인단 변호사는 “지난 1월 한국 대법원이 이춘식 할아버지를 채권자로 해 일본제철에 국내 주식 압류 명령서를 보냈다. 6개월 뒤인 7월에 반송받았다”며 “일본 외무성이 강제동원 손해배상 서류들을 송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은 “헤이그 송달협약에 따라 반송할 경우 반드시 사유를 밝혀야 한다. 일본은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며 “외무성이 고의적으로 지연시키는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 법원은 지난 8월 압류 명령서를 다시 보냈다. 일본 외무성이 6개월 뒤인 내년 2월 압류 명령서를 재차 반송하면 한국 법원은 공시송달(송달할 서류를 법원에 보관하고 그 취지를 공고하는 방식)로 주식 압류와 매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일본제철에 압류 명령서가 도달했다고 간주하고 주식 감정을 거쳐 매각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는다. 매각이 진행되고 주식이 현금으로 바뀌면 이씨 등 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지급된다. 김 변호사는 “외무성에서 6개월 후에 반송한다고 예상했을 때 내년 상반기는 돼야 현금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변 강제동원대리인단은 지난해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추가로 강제동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30일 기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된 추가 소송 건수는 21건이다. 광주지법에는 9건이 추가로 제기됐다. 주식회사 쿠마가이 구미, 니시마츠건설 주식회사 등 소송에 걸린 일본 기업도 11곳으로 늘었다. 최용근 민변 강제동원대리인단 변호사는 “현재도 기록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며 “소송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가 시민들의 응원이 담긴 사진과 글을 전달받고 있다. / 김창길 기자 [email protected]

탁지영 기자 [email protected]

<2019-10-30> 경향신문 

☞기사원문: 대법 강제징용 배상 판결 1년, 민변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 제기”

목, 2019/10/3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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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통화 기자회견 하는 정영환 교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는 제13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학술 부문에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 언론 부문에 KBS 탐사보도부 ‘밀정’ 제작팀을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정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강제동원 피해자와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 등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동원 책임을 추적한 연구자다.

수상 저서인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의 생존 과정을 다뤘다.

정 교수는 2016년에는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을 쓰기도 했다.

정 교수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한일공동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초청받았다가 ‘조선적’ 재일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입국이 무산됐다. 2016년에도 출판기념회 강연회 참석하기 위해 여행증명서 발급을 신청했으나 불허됐다가 지난해야 입국이 허용됐다.

KBS 탐사보도부 ‘밀정’ 제작팀은 독립운동과 반민족행위 관련 기획 보도를 통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민의 역사의식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해 수상하게 됐다.

‘밀정’ 제작팀은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3·1운동 계보도와 임정 초기의 사진을 공개하는 등 희귀자료를 발굴하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교수를 지낸 고(故) 노동은 교수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음악 분야 집필하는 등 항일 음악과 친일 음악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아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임종국(1929∼1989) 선생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는 등 친일문제 연구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인물이다.

기념사업회는 2005년부터 친일청산, 역사 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임종국 선생의 뜻과 실천적 삶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임종국상을 수여하고 있다.

13회 시상식은 31일 오후 7시 한국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email protected]

<2019-10-29> 연합뉴스 

☞기사원문: 제13회 임종국상 수상자에 정영환 교수·KBS 밀정 제작팀 

※관련기사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제13회 ‘임종국상’ 시상식

☞프레시안: 13회 ‘임종국상’에 정영환 교수, KBS <밀정> 제작팀 

☞경향신문: 제13회 ‘임종국상’ 수상자에 정영환·KBS ‘밀정’ 제작팀 

☞KBS: 제13회 임종국상에 정영환 교수·KBS 밀정 제작팀 

☞한겨레: ‘임종국상’ 재일 조선적 3세 정영환 교수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재일조선인역사 교수 정영환

목, 2019/10/31-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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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푸르미르호텔에서 독립운동 연구자 등 100여명 참석
판결문과 GIS(지리정보시스템),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등 다양한 자료로 화성3.1운동 돌아봐

화성시청 전경. /사진 = 화성시 제공

[뉴스프리존,화성=임새벽 기자] 화성 3.1운동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 하는 학술세미나가 1일 푸르미르호텔에서 개최됐다.

학술세미나에는 독립운동 연구자와 화성시 3.1운동 100주년 추진위원회, 관내 광복회 회원, 문화관광해설사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화성 3.1운동의 위상 재정립에 나섰다.

이동언 선인역사문화연구소장의 사회로 ▲화성 3.1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 ▲판결문을 통해본 화성 3.1운동(전병무 강릉원주대 교수) ▲GIS를 통해서 본 화성 3.1운동(이홍구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소재 화성 3.1운동 자료현황과 분석(김도형 독립기념관 연구원) 등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특히 이들 발표는 화성 장안·우정면 3.1운동 참여자에 ‘내란죄’를 적용한 판결문과 일본 방위성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사진자료, 지리정보시스템(GIS)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면서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렬하게 전개됐던 화성 3.1운동을 재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종합토론에서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이 좌장을 맡고 김주용 원광대교수,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최자영 한신대 연구원, 서민교 동국대 교수가 화성 3.1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논했다.

시는 이번 학술세미나를 통해 발표된 논문들은 올 연말 ‘화성독립운동연구’연구총서로 발간할 계획이다.

<2019-11-03> 뉴스프리존 

☞기사원문: 화성 3.1운동 역사적 의미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 개최

월, 2019/11/04-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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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11.05) ‘내역사’ 시즌 4: 반일종족주의 반박 2편 2부_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 (10.29) ‘내역사’ 시즌 4: 반일종족주의 반박 2편 1부_뉴라이트의 역사수정주의의 논리와 희망

☞ (10.22) ‘내역사’ 시즌 4: 반일종족주의 반박 1편_식민지근대화론과 친일청산 부정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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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4

시즌4는 기존처럼 친일파를 소환하여 그들이 식민지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이번시즌부터 인물을 확장하여 친일파 뿐 아니라 식민지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좀 더 입체적으로 식민지 시기를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청취 부탁드립니다.

수, 2019/11/06-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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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0일 난징 교외에 있는 천녕사(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유적지)에 방문한 단성중학교 2~3학년 학생들과 교직원들. ⓒ 유지영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었던 길을 좇으면 좇을수록 아쉬움이 계속 커졌다. 항일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쳤던 애국지사들은 너무나도 힘겹게 투쟁을 이어갔건만 끝내 영광을 잇지는 못했다. 영광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 – <임정로드 4000KM> 15쪽에서

지난 10월 말, 나흘 동안 상하이와 자싱, 항저우, 난징까지 임시정부 독립투사들이 갔던 길을 따라서 갔다. 때로는 일제의 탄압을 받으며 숨어서, 또 때로는 희생을 각오하고 당당하게 중국을 누볐던 독립운동가들의 길에는 이제 아주 작은 흔적만이 남아있다. 그 100년 전의 흔적을 따라 좇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주관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이 지난 10월 28일 상하이에서 출발해 31일 난징에서 마무리했다. 충북 단양의 단성중학교 학생과 교사 총 38명이 함께 했다.

학생들은 꼬박 3박 4일 동안 100년 전 독립운동가들이 밟았던 길을 다시 밟아나가면서 이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이번 역사탐방은 독립운동가들이 100년 전 떠났던 길을 재구성한 책 <임정로드 4000KM>(필로소픽 출판)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동방명주’ 없는 상하이 여행

▲ ‘서금이로’ 1919년 4월 11월. 이 서금이로 어딘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 유지영

1919년 4월 최초로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길 ‘서금이로’에는 이 길 어딘가에 임시정부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제외하고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두 번째 임시정부가 만들어졌던 회해중로에는 기념관 대신 스웨덴 의류 브랜드 H&M이 자리 잡고 있었다.

화려한 불빛으로 번쩍였지만 정작 임시정부의 흔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상해에서 임시정부로 사용된 마당로의 마지막 청사까지 가서야 임시정부의 자취를 볼 수 있었다.

▲ 지난 10월 28일 방문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로 사용됐다. 크기가 작고 낡았으며 옆에는 옷가게들이 즐비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 유지영

그마저도 낡고 양옆으로는 옷가게들이 있어 지나치기 쉬운 건물에 있었다.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에 동행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이 임시정부 기념관마저도 개발 논리 때문에 없어질 수 있다”면서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단성중 3학년 이우석 학생은 이날 임시정부를 둘러보고 “항상 책으로만 임시정부를 배워왔고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임시정부’라고 하기에는 협소했다”며 “(독립투사들이) 어렵게 활동하셨던 것 같고 그만큼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은 하루종일 상하이를 떠돌아다녔지만 철저하게 독립운동가들이 누빈 길로만 다녔다. 상하이의 명물인 방송 수신탑 ‘동방명주’가 여행코스에 없는 탐방이었다.

대신 학생들은 와이탄 야경을 보면서 의열단원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의 의거 장소를 먼저 알았다. 1922년 3월 28일 의열단원인 오성륜이 일본 육군 대장에게 권총을 발사했으나 다른 사람이 총에 맞았고 곧바로 김익상이 폭탄을 던졌지만 터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이 몇 없었던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세워진 이유가 있다. 국제도시인 상하이에서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리고 외교 정책을 펴서 일본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인기 많은 장소는 위안소 유적 진열관

▲ 리지샹 위안소 유적 전시관 건물 외관.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님은 여기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증언했다. ⓒ 유지영

학생과 교사들에게 이번 역사탐방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장소는 난징에 있는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이었다. 역사탐방을 마치고 난 뒤 이어진 설문조사에서 38명 중 무려 32명이 리지샹 위안소가 ‘기억에 가장 남았다'(3순위까지 선택 가능)고 했다.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은 이번 역사탐방에서 들른 총 19개의 장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난징대학살기념관(20표)이었고 3위는 윤봉길 의사가 김구와 의거를 밀의한 상해의 홍커우공원(17표)이었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인 강하나씨가 지난 10월 31일 가이드로 나서서 단성중 학생들에게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소개해주었다. 강씨는 “벽면을 따라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 지난 10월 31일 방문했던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건물 외벽을 따라 눈물이 흐르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져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이 연상되게끔 조성했다. ⓒ 유지영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은 지금은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지만 실제 위안소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여기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지난 10월 31일 단성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위안부 피해자인 박영심 할머님의 증언으로 2015년 12월 만들어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유적지다. 학생들이 위안소 유적 진열관 앞 위안부 피해자들의 얼굴 사진을 담은 건물을 보면서 묵념하고 있다. ⓒ 유지영

지난 2003년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에 와서 직접 현장 증언을 했고 중국 정부는 유적 진열관을 만들었다. 난징시에서는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복원하고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한 동은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전쟁 당시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당시 난징에는 위안소가 60개 정도 있었다고 한다.

단성중학교 학생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생각하면서 관람에 앞서 잠시 묵념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장난을 치거나 소리를 내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위안부라는 무거운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 옆에 있는 돌. 구멍 뚫린 돌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멍 뚫린 심장을 상징한다. ⓒ 유지영

중학교 3학년인 유정희 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 포스터 그리기 대회를 했을 때 위안부 관련 그림을 그렸던 적이 있어서 미리 조사를 했다”며 “그때 참고했던 자료들이 기억에 남아서 리지샹 위안소 유적 진열관이 더욱 기대됐는데 오늘을 계기로 많은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징에 60개의 위안소가 설치돼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슬픈 역사를 잊지 않고 꼭 기억해두고 나중에 후손들에게도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런 짓을”

▲ 지난 10월 30일 단성중학교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난징대학살기념관. 이명 가이드가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 가장 크게 적힌 한자의 뜻을 설명해주고 있다. 위에 적힌 한자는 ‘전사불망 후사지사’ 앞에 있는 사실을 잊지 말고 그 뒤에 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자는 뜻이다. ⓒ 유지영

또 학생들은 난징에서는 다크투어리즘의 결정체인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방문했다. 가이드는 난징대’학살’을 ‘도살’로 표현했다. ‘학대하고 살해’한 것이 아니라 무차별적으로 죽였다는 의미에서다. 난징대학살 당시 3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해있고 현재 증언을 할 수 있는 생존자는 17명밖에 남지 않았다.

▲ 난징대학살기념관 앞에 있는 동상. 엄마가 죽은 아이를 움켜쥐고 절규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난징대학살의 끔찍함을 잘 보여준다. ⓒ 유지영

신우정 학생은 “사람이 어떻게 사람에게 이렇게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무서워서 못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나라에 (독립 등) 소식을 알리는 게 대단해 보였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 밖에도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참여자들은 김구가 망명 이후 생활했던 상하이의 영경방(황피남로350농)과 자싱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원 거주지, 김구 피난처(매만가 76호), 항저우의 오복리(임시정부 요원 가족 거주지), 김구의 숙소 군영반점 등을 둘러보았다.

▲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에 일제를 피해다니던 김구 선생의 피난처 중 한 곳. 재청별장. 김구 선생은 1932년 7월부터 반 년 동안 재청별장에 머물렀다. ⓒ 유지영

또 학생들은 실제로 1933년 당시 백범 김구와 장제스가 만남을 위해 머물렀던 호텔 중앙반점에 하룻밤 머무는 등 여러 각도로 체험을 해보았다.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은 단성중 원효연 교사가 교직원공제회 사이트에 신청해 선발됐다. 원효연 교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가 큰 의미를 갖는 해라고 생각했고 가르치는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면 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2019-11-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중학생들의 분노

수, 2019/11/06-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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