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이 조국 일가에 대한 전격적인 수사개시를 결정하고, 대통령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기 전까지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문재인인지 윤석열인지 심히 혼란스러웠다. 윤석열 검찰은 수사개시 여부, 수사개시의 시점과 수사의 속도, 수사대상과 방법 등을 마음대로 정하며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계엄을 경험한 적이 없지만, ‘계엄상황이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을 가졌다. 내게 검찰은 계엄사령부처럼, 윤석열은 계엄사령관처럼 각각 여겨질 정도였다.


 

대한민국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한이 문제의 본질이자 전부

윤석열 검찰이 무슨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 전면적이고도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핵심은 윤석열 검찰이 형사사법절차에 관한 한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마음 먹고 그 ‘의도’의 실행에 착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직접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지닌데다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형사사법절차에 관한 한 대한민국 검찰은 가히 무소불위라 할 것인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그런 무소불위의 검찰을 제도적으로 통제하고 견제할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이 지닌 무소불위의 권한(수사권과 기소권)을 다른 국가기관(경찰 및 공수처)과 나누고, 검찰과 다른 국가기관(경찰 및 공수처)사이에 상호감시와 견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의 검난이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가르쳐주는 뼈아픈 교훈은 헌법과 주권자의 일반의지에 복무하는 검찰,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민주정부에 복무하는 검찰은 ‘검찰의 선의’에 기대서는 절대로 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헌법과 주권자의 명령에 복무하는 검찰은 제도적 통제 아래서만 가능하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검찰 개혁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검찰이 가진 무소불위의 권한을 다른 국가기관과 나누고, 다른 국가기관들로 하여금 검찰을 상호감시하고 견제토록 하여, 검찰이 무슨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건 검찰이 헌정질서와 주권자의 일반의지를 거스를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검찰의 ‘의사’가 아닌 검찰의 ‘권한’에 방점을 찍는 것이 검찰개혁의 요체이자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이다.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그 권한의 사용을 그 권한을 지닌 검찰의 ‘의사(意思)’에 맡기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 ‘권한’ 자체를 통제해 사용하려는 ‘의사’가 발생할 수 없도록 원천차단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충실한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줘야

대한민국 헌법을 자세히 보면 검찰이란 국가기관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검찰이란 단어도 ‘검찰총장을 임명하려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문에서만 등장한다. 요컨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현실과는 달리 대한민국 헌법체계 내에서 검찰은 아예 존재감이 없다. 하긴 행정각부 중 하나인 법무부의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헌법전 속에서 국회나 대통령이나 행정부나 법원처럼 독립적으로 등장할 리 만무다. 대한민국 헌법은 검사도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위한 영장발급을 신청하는 주체로만 호명한다. 독재정부들을 거치며 초헌법적 존재가 된 검찰에게 이제는 자기 자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