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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한반도 상황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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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한반도 상황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까?

익명 (미확인) | 수, 2019/03/20- 11:19

편집자 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기대와는 달리 전혀 성과 없이 끝나면서, 국내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에 시선이 집중되기도 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6자회담 또는 유엔과 유럽연합까지 참여하는 다자적 역할 역시 다시 검토해 볼만한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매우 활발한 외교전을 펼치는 와중에도 6자 회담의 한 축을 담당했던 러시아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간의 러시아 입장과 시각을 분석한 글이 있어 이를 아래로 번역하여 올린다. 그러나 하노이 불발 이후 러시아 역시 새로운 움직임을 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마침 KBS 특파원으로 3년간 모스크바에서 생활했던 하준수 기자님의 ‘러시아와 코리아’를 기획칼럼으로 연재하기로 하였음을 알린다.


한반도에 지난 1년간 주변국들의 분주한 외교활동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런 와중에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채 지켜보고만 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미 중국 주석 시진핑과 4번 정상회담을 했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3번 회담을 가졌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번의 만남을 가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아직 만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2018년 10월에 외무부 차관급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중국, 북한 3자회담을 처음으로 개최했다. 러시아는 또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의 일시적 중지와 같은 평화를 향한 움직임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여전히 러시아의 현재 북한에 대한 정책은 다소 형식적인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의 북한정책에 있어 추진력과 활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은 러시아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시시한다.

현재 러시아의 지정학적 관심사는 동아시아가 아닌 중동에 있다.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의 결과로서, 푸틴은 중동의 중심인물로서 부상했다. 현재 러시아의 외교 정책의 상당 부분이 중동지역에 집중되고 있음에 따라, 중동 외 다른 곳에 얼마나 많은 외교적 관심을 쏟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러시아가 한반도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외교 정책 관심사에 있어서 한반도를 2순위로 다루고 있음에 틀림없다.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외교정책은 또한 러시아의 제한된 경제 자원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러시아는 중국이 석유공급 및 기타 다른 수단을 통해 북한을 지원하는 것처럼 북한에게 아낌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러시아가 북한의 핵무기 포기에 대한 조건으로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을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서 ‘말도 안되는 바보 같은 소리다’라고 부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 관계자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 발전소와 같이 대가가 큰 선물을 북한에게 제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석유및 가스 산업 및 군산복합체를 포함한 러시아의 강력한 기득권에게 있어서 북한은 흥미 밖이다. 중동 국가들이나 베네수엘라와는 다르게 북한에는 석유가 없다. 명백히 오래 전부터 러시아의 가스를 북한을 통해 남한에 수송할 수 있는 한반도 종단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러시아 가스 산업의 선두주자이자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 기업인 가스프롬은 현재 아시아를 향한 전략에 있어 한반도 종단 파이프라인을 우선순위로 보고 있지 않다. 해당 프로젝트는 어떠한 보증기금도 없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

러시아의 방산업체들은 군사물품을 북한으로 수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 제재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의 넉넉치 않는 자금상황으로 인해 북한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경제정책 집행자들에게 있어, 또한 러시아 자체만으로 보아도 분명한 핵심은 북한에서는 돈을 벌 수 없고, 오히려 돈을 잃는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의 고위직원들은 종종 중국을 현재 한반도의 외교 진전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국가라고 치켜 세운다. 러시아 외교관들은 한달 간격으로 중국과 러시아간의 양자 협의를 함으로써 중국의 외교관들과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북아시아 내 중국 러시아 협력은 미국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인해 점점 강해지고 있는 포괄적 전략적 파트너쉽의 한 요소일 뿐이다.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주요 전략적 파트너의 기본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러시아는 한국이 중국의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러시아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 대가로서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러시아가 최대 관심을 쏟고 있는 우크라이나 혹은 중동과 같은 지역들에 대한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중국이 인정해 주는 것이다.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에 대해서 중국의 의견을 따르는 반면, 반대로 중국은 러시아가 중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는 즉 러시아와 중국 간의 암묵적 합의가 존재할 수도 있다.

한국에 대한 안건에 있어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존중은 러시아의 큰 자부심에 다소 타격을 줄지라도, 지정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러시아의 ‘대유라시아’를 향한 지정학적 비전은 명목상 동아시아를 포함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태평양 문제를 유럽, 중동 혹은 중앙 아시아와 비교했을 때 부차적인 관심사로서 다룬다.

비록 이 전략이 공식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적은 없지만,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유보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몽골은 중국과 비교하여 러시아의 안보 보장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이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러시아의 국가 이익 영역 밖에 있다. 러시아의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사안은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러시아 극동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한, 극동 지역은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 혹은 다른 국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

중국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으로의 확장정책은 미국의 관심과 자원을 러시아의 대립 구도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기 때문에 러시아에게도 이득이 된다. 러시아는 한반도를 비롯한 해당 지역으로의 중국 진출의 균형을 맞추고자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Artyom Lukin

극동연방대학교의 국제지역 연구대학의 부교수이자 부처장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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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찾아가는 대통령’의 첫 번째 행보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대통령의 일정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국정의 최우선’으로 두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훌륭한 선택이며, 약간은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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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청와대)
 
‘월급쟁이 변호사’를 200명 고용하는 A대형로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A로펌에 변호사는 아니지만 이런 저런 행정-보조 업무를 하는 노동자 800명이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변호사들 연봉은 2억 원이고, 행정-보조 노동자 연봉은 7천만 원이라고 가정한다. 
 
이 경우 A로펌 변호사에게 연봉 2억 원을 주고, 행정적-보조 업무 노동자에게 연봉 7천만 원을 준다면, 이것은 a) ‘차별’인가 아닌가? b)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위배인가 아닌가? c) A로펌 변호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급여를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아닌가?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연봉-급여의 차이는 a) ‘차별’이 아니며, b)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며, c) ‘모두에게 급여를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고용 불안 그 자체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정규직이 15%이고 비정규직이 85%이다. 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약 9천만 원이고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약 3500만 원이다. 그리고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계약이 갱신되는 ‘용역 회사에 의한 간접고용’이 많았기에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렸다.
 
이들은 자본의 횡포와 관리자-상급자의 횡포에 대해서 노동자의 정당한 방어권(=즉, 대항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고용불안’ 그 자체가 인격적 종속성을 강화시키고, 갑(甲)질에 대한 방어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①숙련이 높지 않은 + ②고용이 불안정하고 + ③노동자 평균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지만 + ④ 용역ㆍ파견업체에 의한 + ⑤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은 ①숙련이 높지 않기에 + ②고용을 안정화시키되 + ③급여는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 ④공공부문 자회사에 의한 + ⑤정규직 노동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해법은 A로펌의 예시처럼 ‘숙련 및 직무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는 내용적으로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 직무형 정규직’에 가깝다. 
 

‘더 무책임한’ 주장을 ‘더 진보적인 주장’으로 혼동해선 안 된다 

가령 어떤 공기업에 연봉 9000만 원 받는 노동자 2,000명이 있고, 연봉 3500만 원 받는 노동자 8,000명이 있다고 치면, 여기서 연봉 3500만 원 받는 노동자의 급여를 모두 연봉 9천만 원으로 올릴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때 추가되는 급여의 재원은 6.65배이다. 이는 한마디로 ‘불가능한’ 해법이다. 
 
► 현행, (9천만 원×2,000명)+(3천5백만 원×8,000명)=1800억 원+2800억 원=4,600억 원
► 모든 노동자 9천만 원으로, 1800억 원+2조 8800억 원=3조600억 원(6.65배 증가)
 
혹시라도 민주노총 혹은 진보정당 일부에서 ①고용 안정 + ②자회사를 통한 + ③정규직화에 대해 그것은 ‘가짜 정규직화’라고 주장하며, ①직접 고용 + ②동일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만 진짜 정규직화라고 주장한다면, 그런 주장은 ‘더 진보적인’ 주장이 아니라 ‘더 무책임한’ 주장에 해당한다. 
 
한국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진짜 핵심은 정규직/비정규직의 격차가 아니라, 원청/하청 격차이다.
 
원청 비정규직은 1차 협력사 정규직보다 급여가 높고, 1차 협력사 비정규직은 2차 협력사 정규직보다 급여가 높다. 즉,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의해서 ‘지위’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원청에 속하느냐, 하청에 속하느냐에 의해서 ‘지위’가 주로 결정된다.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원청/하청에 의한 지위가 더욱 ‘결정적’이다. 
 

우리나라에 간접 고용이 많은 이유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용역ㆍ파견ㆍ외주(=간접고용) 비율이 많아진 데는 노동조합 운동의 책임도 적지 않다. 나는 그 핵심이 ‘기업별 노조에 연동된 노조위원장 직선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병원 사업장의 경우 핵심 역량은 의사와 간호사이다. 그런데 기업별 노조와 기업별 노조위원장 선출 구조로 인해, 노조위원장 선거를 거치며 병원 내 기술직 노동자의 급여가 핵심 역량인 간호사에 근접하게 된다. 조무사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이런 ‘기업 내부의 획일주의적 평등주의’는 부정적 외부효과로 작동하게 된다. 즉, ‘기업 단위 노조의 내부 정치’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숙련과 직무의 차이가 무시된 기업 내 상향평준화가 이뤄지게 된다.
 
그러나 이는 회사-사측 입장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회사-사측은 비용 절감을 위해 ‘저숙련 직무의 외부화’를 추진하게 된다. 즉 용역 및 파견업을 확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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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김모(19)씨 사건은 경영합리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불법파견에 의해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시켰다.
 
요컨대, 기업 단위 노조위원장 직선제는 정치로 치면 ‘소선거구제’의 폐해와 매우 유사하다. 소선거구제에서 선출되는 국회의원은 ‘나라 전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소규모) 지역구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동네에서 악수 많이 하고, 축사 많이 하는 것이 정치행위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쪽지 예산 등을 통해 지역구 예산 따오기가 지상과제가 된다. 
 
기업 단위로 선출되는 노조위원장 직선제 역시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노동계급 전체’ 혹은 ‘전국 단위-산업 단위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소규모) 기업 내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생산성과 직무를 고려할 때 핵심 역량이 아니어도 ‘쪽수가 많은’ 기능직 조합원들의 이익이 과대 대표된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방송사 노조이다. 방송사의 본질적 미션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핵심 역량은 당연히 ‘기자’이다.
 
그러나 기자 조합원의 쪽수는 방송사 기능직 조합원의 쪽수에 비해 적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이 중시여기는 ‘방송독립성 이슈’보다 ‘조합원 처우 개선 이슈’가 더 중요해진다. KBS 노동조합이 둘로 갈라지게 된 것에도 이런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16년 여름에 전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던 지하철 2호선 구의역 19세 김군의 죽음 역시 김대중 정부와 메트로 노조의 잘못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진행된 ‘저숙련 직무의 외부화’로 인한 피해자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열린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냉전 시대에 반공 파시즘적 국가 탄압과 구사대의 식칼 테러 위협을 당하며 노동 기본권을 피와 눈물로 쟁취한 영웅적인 투쟁을 했다. 그래서 ’노사관계의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노조 운동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그렇게 귀결됐다. 기업 단위로 분절되어 있는 단체협상 구조 하에서 원청 노동자의 지위 상승은 원청-하청의 격차 확대로 ‘파급-이전’되었다.
 
물론, 민주정부 10년 역시 오늘날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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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누구의 잘잘못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다. 민주정부 10년, 민주노조 운동, 진보정당 모두가 ‘노동시장 전체 구조’와 기업 단위의 경제적 전투주의가 미친 파급효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결은 함께 노력하고, 함께 지혜를 모으고, 함께 양보해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경우 ▴숙련 ▴직무 ▴상시성 ▴예산제약을 고려하여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와 별도의 직무 체계 신설을 통한 직접 고용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실사구시하면 된다.
 
비정규직의 발생원인과 작동 구조는 다양하다. 어느 하나만을 정답이라고 단정 짓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해결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싸고 ①중도 진보 ②전통 진보 ③전통 보수가 각기 다른 원인 진단과 해법을 둘러싸고 ‘정책-노선 논쟁’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한국사회 정책-담론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매우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도 실렸습니다)
월, 2017/05/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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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대선승리 이후, 5월 10일 오전 8시 처음으로 당선증이 나왔다.

이후 약 11일 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일들을 복기해보면, ▴임종석-조국 등 청와대 참모 인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국정교과서 폐지 ▴미세먼지 축소를 위해,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적 가동중단(=셧다운) ▴세월호 기간제 선생님 순직 인정 ▴돈 봉투 감찰 지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임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사 ▴윤석열 검사의 서울지검장 임명 ▴5당 원내대표 청와대 초청 회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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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고, 19일에는 5당 원내대표와 만나 협치와 개헌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치는 의회의 입법없이 대통령의 지시만으로 가능한 조치들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제도개혁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 초기 활동에 대한 조선일보 분석의 핵심은 ‘국민 지지율 60%가 넘는 정책’만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적절한 분석이다.

5/9 대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파 후보가 몇 달 전부터 ‘당선이 유력한’ 상황에서 맞이한 최초의 선거였다.

문재인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도 월등히 앞섰다. 그렇기에 당적 일체감이 높았고, 경선 후유증이 적었고, ‘취임 100일 플랜’ 등에 대해서 미리부터 준비하기 용이했다. 최근 우리가 목도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그 결과물이다.

2004년 4대 개혁입법은 왜 실패했는가

오히려 문제는 ‘100일 이후’이다. 100일 이후에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2004년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3월 12일 한나라당-민주당은 ‘의석수가 많음’을 믿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국회에서 가결한다. 이후 ‘민심의 역풍이 분다. 그 에너지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과반 정당이 된다.(*총의석 299석, 한나라당 125석, 민주노동당 10석, 민주당 9석이었다.)

2004년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민주파 정치세력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최초의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그 이전까지는 ‘과반 미만’ 의석이었기에 ‘한나라당 때문에 안된다’는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남 탓의 정치학’과 ‘핑계의 정치학’이 통용되었다.

2004.4.15 / 15ÀÏ Àú³á 6½Ã Á¤°¢ Á¦7´ë ±¹È¸ÀÇ¿ø¼±°Å ¹æ¼Û»ç ÃⱸÁ¶»ç °á°ú ¿­¸°¿ì¸®´çÀÌ °ú¹Ý¼ö¸¦ Â÷ÁöÇÒ °ÍÀ¸·Î ¿¹ÃøµÇÀÚ °³Ç¥»óȲ½Ç¿¡¼­ ¹æ¼ÛÀ» ÁöÄѺ¸´ø ´çÁ÷ÀÚµéÀÌ È¯È£Çϰí ÀÖ´Ù. / ¿À¸¶ÀÌ´º½º ±Ç¿ì¼º ±âÀÚ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는 출구조사결과를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민주파는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의회 다수파가 됐지만, 개혁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행정부도 잡고, 입법부도 과반을 차지하게 되자 더 이상 핑계꺼리가 사라진다. 이제 온전히 ‘실력으로’ 개혁을 이뤄내야 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제시한 의제는 4대개혁 입법이었다.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언론개혁법 ▴사립학교법이다.

2004년 그 해 겨울, 국회는 4대개혁 입법을 둘러싼 내전을 치뤘다. 국회는 몸싸움과 욕설로 뒤덮였다. 당시 한겨레-경향 등 진보언론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적극적으로 지지-엄호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개혁’이 아니라 ‘민생’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즉, <개혁 VS. 민생>의 프레임을 짰다.

4대개혁 입법은 결국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왜’ 실패했는지를 제대로 성찰하는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

그리고 최근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들 일부가 진보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타당한지와 직결되며, 동시에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와도 직결된다.

반대파 집결시킨 요란한 개혁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4대개혁 입법은 3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아젠다 셋팅’에서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 열린우리당, 한경오프(한겨레-경향-오마이-프레시안) 모두 틀렸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가 옳았다.

국가보안법같은 ‘개혁이슈’가 아니라 ‘민생이슈’를 전면에 내걸었어야 했다. 개혁이슈는 속된 말로 운동권 출신들이 좋아하는 이슈였다. 생활에서 겪고 있는 서민대중의 눈물과 울분을 달래주는 이슈가 아니었다. ‘국민들을 위한 아젠다’가 아니라 ‘운동권을 위한 아젠다’였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고학력 + 메이저 캠퍼스 중심’이었다. 그들은 성인이 되어, 먹고 사는 것은 그다지 아쉽지 않은 ‘고소득 + 중산층’이 된다. 4대개혁 입법의 오류는 본질적으로, ‘고학력 + 중산층 + 민주화 운동 세력’이 낳은 자기만족적 패착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지표 중 하나가 당시 국가보안법에 대한 여론조사이다.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가보안법 개정 및 폐지 입장이 1/3, 반대 입장이 1/3이고, 나머지 ‘관심없다’가 1/3이었다.

2004년탄핵몸싸움
2004년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보법 폐지법안을 단독상정하려는 여당 의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의원이 뒤엉켜 몸싸움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media.khan.kr/)

둘째, 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 다수자연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4대 개혁입법은 오히려 ‘반대파, 다수자연합’을 만들어줬다. 국민들은 관심 없는 아젠다였고, 반대파는 결집시켜줬다.

①국가보안법은 한국전쟁의 경험과 분단을 중시여기는 보수 유권자 전체를 민감하게 자극했고 ②과거사법은 한국전쟁과 연결된 보훈단체들을 자극했고 ③언론개혁법은 조중동을 단결시켜줬고 ④사립학교법은 지역구 선거에서 목소리가 큰 이권집단인 학교-이사장-교장을 자극했다.

4대개혁 입법을 통해 보수유권자-보훈단체-보수언론-사립학교 이사장이 연대할 수밖에 없는 ‘반(反) 노무현, 반(反) 열린우리당 통일전선’을 구축해서 ‘선물’해준 꼴이었다.

셋째,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개정’ 수준에서 합의하고 빠져나왔어야 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였다. 과반 집권여당이 쎄게 밀어붙이자 당시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한나라당도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해서는 개정 의견을 밝혔다.

국보법 7조는 ‘찬양•고무’ 조항이다.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비판할 때, 핵심조항이 바로 7조이다. 이적표현물로 규정된 책을 소지하거나, 봤다는 이유로 잡아가는 것도 7조에 근거한다. (*이적표현물은, 민중가요 노래책, 전태일 평전도 포함된다.)

열린우리당 152석 중에 108명은 ‘초선 국회의원’이었다. 이들 108명은 ‘개정’은 안되고 ‘폐지’만이 옳다고 강변했다. 그리고 ‘민주당(=열린우리당)의 왼쪽’을 자임하는 노회찬-심상정을 포함한 민주노동당 역시 폐지만이 옳다고 강변했다. 진보언론도 대동소이했다.

열린우리당 초선 108명은 워낙에 강경한 입장만을 고집했기에 ‘백팔(108)번뇌’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혹은 ‘열린우리당 탈레반’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국가보안법 구속자의 약 90%는 7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2004년에 열린우리당이 ‘7조+알파’ 수준에서, 국보법 개정 합의를 했었다면,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사문화(死文化)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도, 김부겸 의원같은 분은 용감하게 ‘개정’에서 합의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지난 대선TV토론에서 여전히 ‘폐지론’을 주장하는 심상정 후보를 보며, “아직 2004년에 머물러 계시는구나~..”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실패한 개혁

논의를 정리해보자. 4대개혁 입법은 왜 실패했나?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아젠다 셋팅’에서 실패했다. 어떻게? ‘국민들이 관심있는’ 이슈가 아니라, ‘운동권(출신 국회의원들)이 관심있는’ 이슈를 추진했다. 이들은 ‘의석수만 믿고’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민심을 무시한 오만함이 있었다.

둘째, ‘개혁파, 다수자 연합’을 만들어야 개혁을 성공할 수 있는데, 거꾸로 ‘반대파, 다수자연합’을 만들어줬다. 역시 ‘아젠다 셋팅’의 실패에서 파생된 문제이다.

셋째, 초기 아젠다 셋팅이 실패했으면, 민심의 흐름을 읽고 ‘개정에서 합의하고’ 빨리 빠져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들 선명성 과시에만 혈안이 된 (운동권스러운) ‘포지셔닝 정치’를 일삼는 108번뇌-탈레반-진보파들에 의해서 타협국면 및 국면 전환 시점을 놓쳐 버렸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정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쟁에서 한번 패배는 병가의 상사”(一勝一敗 兵家常事)”라는 말이 있듯이, 실패한 것을 성공했다고 우길 필요도 없고, 거꾸로 한번 실패했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다.

벤쳐-스타트업 창업 분야에서는 ‘실패학’을 존중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실패에서 배운다. 정치에서도 <왜 실패했는지>를 복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4대개혁 입법의 실패를 고려할 때,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위의 3가지 결론을 ‘뒤집어’ 생각하면 된다.

문재인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

첫째, ‘아젠다 셋팅’이 가장 중요하다. 야당-진보-운동권 출신이 관심있는 아젠다가 아니라 ‘국민들이 관심있는’ 아젠다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핵심은 ‘불평등’과 ‘저성장’이다. (*현재 ‘검찰개혁’은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다.)

둘째, ‘반대파, 다수자연합’이 아니라 ‘개혁파, 다수자연합’을 만들어야만 개혁을 성공한다. 아젠다 셋팅 단계에서부터 유념해야 한다.

사회운동 세력은 51%를 중시여기지 않아도 된다. ‘소수파’ 진보정당도 51%를 중시여기지 않아도 된다. 지지율 6% 진보정당은 진보성향 유권자 30%만 찬성하는 이슈를 해도 (속된 말로) ‘남는 장사’이다.

그러나, 법과 제도를 다루는 ‘수권 정당’은 개혁을 지향하되, 항상 51%를 유념해야 한다. “자나깨나 불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나깨나 5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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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반 성적은 매우 좋다. 개혁의 열기는 높고, 여론의 지지도 높다. 그러나 초반의 조치는 대통령의 업무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상징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성격이 강하다. 개혁이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받으며 항구화하려면 의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개혁을 위한 다수파의 확보, 여기에 문재인 정부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셋째,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합의’하고 다음 의제로 넘어가야 한다. 정치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선후경중(先後輕重)을 잘 가리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슈-분쟁-갈등도 ‘제한된 자원’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80년 5월 광주, 광주시민들의 억울한 죽음, 학살자에 대한 분노, 증오심, 독재타도, 그래서 반대하는 용기가 가장 중요했던, 80년대스러운 ‘민주화운동 세력 전체’의 오류와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한다.)

운동권 출신이 ‘처음으로’ 집권했을 때, ‘처음으로’ 뺏지를 달았을 때, ‘모든 처음’이 그렇듯이, 서툴렀고, 의욕이 앞섰고, 반대 세력의 비판은 ‘악의 무리’가 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전체적인 지형지물을 살피기보다 환호하는 우리 편에 도취되어 너무 앞질러갔다. 게다가 운동권들의 존재적 기반은 예나 지금이나 ‘고학력+중산층+소득 상위 10%’이다.

‘희생양’을 찾지 말자. ‘남 탓’을 하지 말자. ‘핑계’를 대지 말자. 진영론에 기반한 ‘희생양의 정치’, ‘남 탓의 정치학’, ‘핑계의 정치학’은 ‘민주정부 3기’의 성공을 돕는 것이 아니라, 지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복하는 지름길이다.

정치는 본래, 주어진 모든 제약조건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소명(召命)을 달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재주껏~ 잘해야 하는 것이다.

핵심은 결국, 아젠다 셋팅이다. ①국민들이 삶에서 고통받는 것이되 ②‘개혁파 다수자연합’을 만들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③중요한 핵심이 반영된다면 나머지는 과감하게 합의하고, 다음 단계 의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문재인 정부는, 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성공하는 통치의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

화, 2017/05/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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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은 경향신문(2017. 5. 24)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한 잔 더 하시죠.” 방금 한 잔 했는데 또 재촉이다. 그는 이미 혀가 약간 꼬부라져 있었다. “이런 때 아니면 언제 마셔요, 술 마시는 기분 나지 않아요?”

요즘 뉴스를 보는 일이 즐겁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가 흥을 돋운다고 한다.

뉴스에는 대통령이 참모들과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이 사인 받을 종이를 찾느라 가방을 뒤적이는 동안 키를 낮춰 기다려주는 대통령도,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시민을 안고 위로해주는 대통령도 볼 수 있다.

이런 일에도 시민들은 감동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했듯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세월호·광주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고도 무표정한 지도자, 비정규직을 숫자로는 이해해도 결코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로봇 같은 지도자 대신 시민의 고통과 슬픔을 느낄 줄 아는 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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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겐 너무 쉬운 것이 로봇에겐 어렵다. 로봇에겐 타인의 고통과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쉬운 일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일은 사람에게 어렵다.’ 모라벡의 역설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밥 먹고 말하고 걷고 커피 마시는 것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반면 복잡한 계산은 로봇에게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에겐 어렵다. 보통 사람은 절대 못하는, 정치 공학적 계산에는 능하지만 집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걸 어려워하는 로봇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하자.

대통령이 그토록 쉬운 걸 왜 못하는지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 이렇게 속아서였을까. 5월9일까지만 해도 차선의 선택이라도 한 것인지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시민은 자신의 손으로 뽑고도 놀란다. 우리처럼 말하고 우리처럼 생각하고 우리처럼 느끼는 정부를 선출했다니!

새 정부가 정말 적폐를 청산할지, 개혁에 성공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겨우 새 정부 출범 14일째다.

연합정부 없이 ‘여·야·정 협의체’만으로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 수 있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앞으로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새 정부가 시민을 대하는 자세, 정부를 책임질 인물을 고르는 감각, 현안을 다루는 방식만 보고 있으면 불안감이 사라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기를 의식한 것도 있겠지만, 그걸로 시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가슴 태우던 세월, 절망스럽고 부끄러운 시간을 견뎌내느라 지친 시민, 낡은 권력에 시달린 시민을 위로하는 퍼포먼스가 당분간 필요하다.

새 정부는 앞으로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우리를 고통에 빠뜨린 건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묻지마 지지와 반대를 위한 반대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칭찬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비판하면 된다. 그게 공정한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그래야 실패를 줄이고 성공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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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 논란을 빚은 인물을 위로하고 있다 (왼쪽 사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아버지를 잃은 5.18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다행히 대선 이후 이념·지역에 결박된 지지와 반대가 약화됐다. 시민들은 이념·지역이 아닌 당면한 의제와 현안에 대한 각 정당의 입장과 태도를 평가하고 점수를 매긴다. 그게 시민의 요구에 반응할 줄 아는 민주당·정의당 지지율은 오르고 세상 물정 모르고 역주행하는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폭락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TK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85%에 이르고, 민주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선 이유도 알려준다. 한국당의 전국 지지율은 8%, 국회 의석수는 36%. 과잉대표다. 한국당은 이제 시민이 준 지지보다 4.5배나 큰 몸집을 지닌, 덩칫값 못하는 공룡이 됐다. 이것 역시 시민들이 반응성 있는 정치를 한 결과다.

예전의 한국인을 정의한다면, ‘정치에 상처 입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상처 때문에 정치를 혐오했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정치의 힘 때문에 정치를 욕망했다.

정치에 대한 이런 혐오와 집착은 한국 정치를 병들게 했고 시민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정치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시민은 더 이상 정치 밖에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정치 참여의 마당이 된 것도 정치에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상처에 굴복하지 않고 정치 속으로 들어가는 용기를 낸 결과였다.

이제 정치는 시민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 치유된 시민은 더 많은 정치 참여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삶도 가능할 것이다. 이게 바로 민주화 30년 만에 뒤늦게 배달된 선물이다.

다시 어려움이 닥쳐도 시민은 극복할 수 있다. 동료 시민을 믿자. 내일 또 행진을 하는 일이 있더라도 오늘은 건배하자.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세운 시민은 그럴 자격이 있다. 

목, 2017/05/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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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시민의회’를 주제로 열렸던 백년포럼 시즌1의 영상 3편을 공유합니다.  

올해부터 시즌제로 일신한 백년포럼은 신선한 구성과 현장 투표 등을 활용한 관객과의 소통으로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또한 시민참여 공론장으로서의 ‘시민의회’는 국회에서 관련법이 제출되는 등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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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에는 ’19대 대선과 한국사회 개혁’을 주제로 백년포럼 시즌2가 열릴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시즌1, 첫번째, ‘개헌, 시민의회법, 시민의회의 제도화’

☞ 시즌1, 두번째, ‘왜 시민의회인가, 시민의회의 논리와 사례’

☞ 시즌1, 세번째, ‘왜 추첨인가, 시민의회와 추첨민주주의’

 

목, 2017/05/2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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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길동’에서 ‘영(young)실장’까지. 그를 수식하는 말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배어있다.  ‘전대협 3기 의장’에서 ‘386의 대표주자’,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그의 삶 역시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임종석(51)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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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YTN)

임 비서실장이 ‘문재인호’의 훌륭한 조타수가 될 수 있을까. 그가 86그룹(80년대 운동권 그룹) 정치인들의 르네상스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의 이름 앞에 오는 다양한 수식어로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전대협 3기 의장’, ‘하이틴 스타’, ‘임길동’ 

그의 대학 시절을 수식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전설적인 학생 운동권’으로 수렴된다. 

전남 장흥 출신인 임 실장은 1986년 한양대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한 뒤 그 시대 많은 젊은이가 그러하듯 학생운동에 자연스레 발을 들였다.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에 뽑히며 임종석이라는 이름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렸다.

그가 등장하면 수천, 수만 명의 학생이 기립해서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을 외치며 전대협 진군가를 불렀다고 한다. (1990년 ‘한국을 움직이는 단체’ 3위의 주인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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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대협 의장 시절의 모습

당시 학생운동의 전성기에서 수려한 외모와 호감을 주는 성격을 가진 임 실장은 학생운동 진영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몇 달씩 경찰 수배를 피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임길동’이란 별명을 얻은 것도 대중적 인기를 얻는데 한몫했다. 경찰 포위망이 좁혀지면 수많은 학생이 ‘내가 임종석’이라 외치면서 경찰 시선을 분산시켜 그의 탈출을 도왔다고 한다. 

‘임길동’의 명성은 하이틴 청소년 잡지에서 ‘인기스타 1위’로 뽑힐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1989년 6월 당시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당시 한국외대)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그해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사건을 주도하며 노태우 정권의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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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대학생 시절의 임종석(두번째)과 임수경(세번째).

임 실장은 2008년 자신의 저서에서 “무기징역을 받아 더이상 바깥세상 구경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비장한 심정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임 실장은 3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지금까지 그에게 ‘주사파’란 꼬리표가 붙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임종석은 더는 주사파가 아니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과거 이력으로 현재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386 대표주자’, ‘차세대 유망정치인’ 그리고 ‘숙주 정치’ 

형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에 따라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우상호(민주당 의원), 오영식(민주당 전 의원) 등과 정치권에 발을 들인다. 이후 그의 정치는 빛과 그림자가 뚜렷했다. 

‘젊은 피’인 임 실장의 시작은 거칠 것이 없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최연소인 34살의 나이로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서울 성동구)에 당선됐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자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그가 국회의장석에 앉아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눈물을 흘리며 끌려나가는 장면은 아직도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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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될 당시, 국회본회의장에서 우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타고 17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는 등 그의 정치적 행보는 탄탄대로였다. 2006년 <월간중앙> 3월호가 386세대 국회의원 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유망한 386세대 정치인’으로 1위 (30.6%)로 선정되는 등 386의 대표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떨어지고, 2011년 7월 삼화저축은행으로부터 1억44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 되며, 그에게 그림자가 드리운다. 

1심에서 유죄판결(징역 6월·집행유예 1년)을 받은 상태에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며 기지개를 켜나 했지만, 한 달 반 만에 자진 사퇴했다. 한명숙 당시 당 대표의 신임으로 사무총장에 올랐지만, ‘비리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총선 공천 계파 갈등 책임론이 임 실장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총선도 불출마했다.

2014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고서야 그는 다시 정치적 행보를 재개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 캠프 총괄팀장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행정 경험을 쌓았다. 그때부터 ‘박원순의 사람’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의 정치적 정체성인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386을 최근 일컫는 말)’ 정치인들은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여의도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져갔다. 

특정 계파나 특정 주자에 기대 정치를 한다는 ‘숙주 정치’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왕실장 아닌 영실장’, ‘외모 패권주의’

하지만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다시 86그룹의 시대를 열고 있다는 평가가 따른다. 

조국 민정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등이 청와대 참모진 모두 50대로 80년대 학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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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민주당 역시 86그룹이 주요 당직을 맡으며 전진 배치됐다. 

임 실장과 같이 대표적인 86그룹 주자로 꼽히는 전임 우상호 원내대표에 이어 운동권 그룹의 맏형격인 우원식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됐다. 86그룹인 김태년 정책위의장, 김민석 민주연구원장 등이 전면 배치되기도 했다. 

 같은 86그룹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임 비서실장의 임명에 대해 “김기춘 전 (박근혜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모든 내각을 사실상 통괄하고 지배하는 청와대의 느낌으로 다가갔다고 하다면 임종석 실장은 왕실장이 아니라 영실장”이라고 평가했다. 

네티즌들은 문 대통령과 임 실장, 조국 수석 등이 셔츠차림으로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를 산책하는 장면에 ‘외모 패권주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극찬하고 있다. 60~70대 위주의 참모로 둘러싸여 ‘불통’으로 대표되던 박근혜 청와대에 답답함을 느꼈던 이들이 ‘새로운 바람’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결국 그가 이번에 새롭게 얻은 수식어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정치인 임종석’과 ‘86그룹’의 미래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인사 취지대로 개혁과 소통, 젊음의 역동성을 보여줘야 국민들의 지지가 계속될 것이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다.  

목, 2017/06/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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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16일, 오후 2시,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장(☞여기)에서 ‘한국보고서 발표회’(사)다른백년 창립 1주년 행사가 동시에 열립니다. 

이번에 발표되는 한국보고서(Report on Korea)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교육노동 등 4개 분야로 나눈 뒤 각각에 대한 대안을 다룬 것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연구진으로 참여해 지난 1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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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1부에서 한국보고서 발표, 2부에서는 (사)다른백년 창립행사가 열립니다. 

(사)다른백녁은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지만, 공식적으로 사단법인 승인을 받은 6월 16일을 매년 공식 출범일로 정했습니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화두로 출범한 (사)다른백년의 첫 돌인 셈입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궁금하신 내용은 전화(02-3274-0100)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문의하십시오. 

수, 2017/06/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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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안철수의 멘토’에서 ‘문재인의 사람’으로 변신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다. 외교ㆍ안보를 제외한 새 정부의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컨트롤 타워’ 자리다.

1990년대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개혁적 학자로서 대중적 명성과 지지를 쌓아온 그가 공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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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추가 인사 명단을 발표한 후 장하성 정책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文 대통령 삼고초려… 안철수 멘토서 새 정부 정책실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장 신임 정책실장을 모시기 위해 말 그대로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였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개인적 인연이 없던 장 정책실장에게 “경제 정책 설계를 맡아달라”고 캠프 참여를 제안했다. 하지만 장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경쟁 관계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 국민정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2016년 4ㆍ13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장 정책실장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후 국민의당 창당으로 이어진 탈당 사태로 내홍에 휩싸였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살리는 구원투수 역할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장 실장의 생각이 컸던 때문에 허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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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안철수, 천정배, 장하성의 위기의 대한민국, 공정성장으로 길을 찾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당시 안철수 공동대표와 장하성 교수.

문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장 정책실장의 마음의 문을 두들겼고, 영입에 성공했다.

장 정책실장은 지난달 21일 인선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사에 감동했다”며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서 뭔가 변화를 일으키고 국민 눈높이에 맞춘 것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있구나 (하는) 그것이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인선 발표가 있을 때까지 장 정책실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장 정책실장에 대한 신뢰는 두터워 보인다.

2015년 펴낸 자신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 “진보적 정부였다고 평가 받는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에 집권 초기 경제정책의 구성을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할 정도로 재벌에 의존적이었다”고 비판했던 정 정책실장이 문 대통령과 손을 잡고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주목된다.

독립운동가ㆍ정치인ㆍ학자… 3대를 이어온 뿌리

장 정책실장이 그려 낼 새 정부의 모습을 짐작해 볼 때 그의 집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호남의 대표적 명문가 품 아래였다. 할아버지 세대는 독립운동가로,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로 이름을 떨쳤다. 장 실장을 포함한 3세대는 내로라하는 학자가 여럿 배출됐다.

장 정책실장의 증조부는 구한말 전남 신안군 장산도 일대에서 손꼽히는 만석꾼 부호였다. 증조부 슬하 형제가 나란히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작은 할아버지 장홍재씨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가했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뒤 고문 끝에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큰 할아버지 장병준씨는 일본 니혼대를 졸업한 뒤 김구 선생 곁을 지키며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외부무장을 지냈다.

막내 할아버지 장홍렴씨는 중국 베이징국민대를 다닌 뒤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들어가 독립군에 투신했다. 광복 후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장 실장의 할아버지 장병상씨가 철도공무원으로 집안을 건사하며 형제들을 뒷바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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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tstory.tistory.com/113)

장 실장의 아버지 세대는 정치인ㆍ관료가 주축이다. 아버지 장충식씨는 한국은행 출신으로 도의원을 지냈다.

작은 아버지 장영식씨는 장면 정부에서 경제비서관을 지냈다. 막내 삼촌은 3선 의원을 지낸 장재식 전 산업부 장관이다.

독립운동에 투신한 할아버지 세대에 이어 아버지 세대 4형제 모두가 6ㆍ25 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 장씨는 압록강 전투에서 기관총탄에 맞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장 실장 세대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교수가 여럿 있다.

장 실장의 친누나는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다. 막내 동생은 열린우리당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원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다. 나란히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몸담고 있는 장하준ㆍ장하석 교수가 사촌동생이다.

소액주주 운동ㆍ기업 지배구조 개선 앞장서 온 개혁성향 학자

물론 장 정책실장은 개혁 성향의 학자로서 더 이름이 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1990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임한 27년차 학자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소액주주 운동을 주도하며 재벌ㆍ대기업 등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주창해 왔다.

장 정책실장은 1996년 참여연대에 몸을 담으면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경제민주화를 시민운동을 주도하며 참여연대에 ‘경제민주화 위원회’를 만들었다.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13시간 17분간 계열사간 부당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따져 물어 ‘삼성 저격수’ ‘재벌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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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3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당시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던 장하성 정책실장이 삼성전자의 책임경영 체제가 미흡하다며 성토하고 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 받은 100만여주(지분율 1.05%)가 유일한 무기였다. 2006년 제일모직 소액주주 2명과 함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를 포기하게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30억여원의 배상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 가(家) 편법승계의 핵심 고리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시장의 힘을 빌어 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를 바꿔내겠다는 게 장 정책실장의 목표였다. 문재인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후보자로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장 정책실장과 함께 했었다.

2006년에는 ‘라자드한국기업지배구조편드’(KCGFㆍ일명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다시금 화제를 뿌렸다.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인 대한화섬 지분은 인수한 뒤 주주총회를 통해 불투명했던 그룹의 지배구조 개선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8년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미국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으로부터 1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남양유업ㆍ일성신약 등에 대한 지배구조 개선을 시도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좋은 기업지배구조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운영위원과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섰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 두 마리 토끼 잡을까?

대중들에게는 ‘재벌 저격수’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학자로서 장 정책실장의 관심은 항상 ‘소득 양극화 해결’에 닿아 있었다.

문 대통령도 인선 결과 발표에 직접 나서 “한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경제학 분야 석학이자 실천운동가”라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중심과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사회 정책으로의 변화와 경제 민주화, 소득주도 성장과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 적임자”라고 극찬했다.

장 정책실장은 최근 잇따라 펴낸 ‘한국 자본주의’ 등의 저서에서 소득양극화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 정책으로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고 쌓아두는 내부유보금과 관련한 초과 내부보유세 도입, 소득세 누진 강화, 법인세 개혁, 집단소송제 확대, 징벌적 배상제 도입 등을 언급했다.

이명박ㆍ박근혜 보수정권 10년 동안 강조해 온 성장 중심의 ‘낙수효과’가 아닌, 분배구조 개선을 통한 ‘분수효과’과 실현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정책들이다.

이러한 클 틀에서 재벌개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장 정책실장은 임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재벌 때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재벌 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 등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이라고 강조했다.

장 정책실장이 쓸 칼은 크게 두 자루다. 참여연대에서 손발을 맞춰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한 손에,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보수 성향의 테크노크라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다른 한 손에 쥐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과 국민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추게 될 장 정책실장의 칼춤이 춤사위로 이뤄져 있을지 경제계는 물론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목, 2017/06/0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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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본의 시민운동가인 하라 히로유키씨가 기고한 글입니다. 하라 히로유키씨는 앞으로 (사)다른백년의 고정필진으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의 여러분. 저는 하라 히로유키(原 裕幸)라고 합니다. 일본인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의 소개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여러 한국분들과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 다른백년에 투고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백년 측에서 무엇인가 일본에 대해서 써 달라고 해서 무엇을 쓸까 생각해 보았는데, 종군위안부라든가 북한의 핵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종군위안부에 대해서 말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사죄해야

종군위안부의 문제는 일한의 문제로서 양국민의 우호에 골을 만들고 있지만, 잘못은 일본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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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중국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한 일본군 조선인 위안부들 모습.

원래 군대라고 하는 것은 남성 중심 집단으로서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수요가 생겨납니다. 이는 인간의 성욕이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로서 이 문제를 방치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등 폐해가 있으며, 부대를 관리하는 장교는 이 문제에 대해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 이전에 칼로 싸우던 시대라면 위안부라는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행군하는 곳마다 병사들이 현지 여성들을 강간하는 사건이 빈번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종군위안부의 존재는 행군하게 되는 지역의 여성을 지킨다는 인도적인 측면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위안부라는 여성을 합법적 도덕에 기초하여, 그 일에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행군하는 지역에서 강강당하는 여성의 피해를 다른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종군위안부 문제는 위안부가 된 여성을 어떻게 고용했는가하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즉 일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속여서 먼 전장까지 동행하게 하고, 강제로 연행했다면 이것은 인권 피해로서 비판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의 일본 정부가 그러한 비인도적인 행동을 한 증거는 없는 듯합니다. 저 자신도 알지 못합니다. 일본측에서 종군위안부가 된 여성을 속여서 전장에 동행하게 했다는 증거는 위안부가 된 여성의 증언으로, 실제로 위안부를 산 구일본군 병사의 증언 등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증거가 없는 점이 현재 일본 정부가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 져서 항복하기 직전에 이후 문제가 될 법한 자료 등을 소각처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로서, 증거가 없다고 해서 인권 피해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 정부가 한 일은 동시기의 다른 소행으로부터 유추하는 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울 것이며, 당시의 일본 정부가 일본 국민에게 무엇을 했는지를 통해 타국인에게 무엇을 했는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인 여성을 카페의 급사나, 아니면 비슷한 일이라고 속여서 먼 전장에 데리고 가, 위안부 일을 하지 않으면 일본에 돌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든가, ‘나라를 위해’라고 속여서 적함에 자폭공격을 강요한다든가 자국민을 속인 당시의 일본정부라면, 더 약한 입장에 있는 조선반도의 사람들에게 더 심한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실제 당시 일본 정부는 포로에 대한 비인도적인 처우를 금지한 제네바 협정을 따르지 않은 채 태국에서 잡힌 영국과 미국인 군인 포로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킬 정도였으니 인도주의에 기초한 행동을 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비록 증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종군위안부에 대한 인권피해는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일한의 이후 우호를 생각할 경우 일본 측의 사죄는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의 양심있는 정치인들

이는 단순한 인간관계에 비추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싸운 상대와 그 이후에도 우호관계를 구축해 나가려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잃어버린 상호신뢰를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죄를 통해 과거의 불행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우호관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성의있는 대응을 해온 이가 우리나라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입니다. 그는 일본의 수상이었던 시절에 미군기지의 피해에 시달려온 오키나와인들을 위해 미군기지를 오키나와에서 이전하도록 계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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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의 종미적 매스컴과 친미매국적인 관료들에 의해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가 그의 사임을 가져왔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하토야마 유키오의 한국 종군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오키나와 기지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자면, 그의 정치가로서의 위치가 보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공통적인 그의 행동은 피해자의 측면에 다가섰다는 것입니다.

한국인 종군위안부들은 과거 일본의 악정 피해자이고, 오키나와 분들은 현재 일본의 악정 피해자입니다. 이러한 피해자들의 고난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그의 행동의 근거일 것입니다. 나 자신은 하토야마 유키오씨와 일면식도 없고, 자세히 말해본 적도 없지만, 긔 행동에서 보자면,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렇게 하토야마 유키오는 국민편의 정치가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정치가이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종미 매스컴이 그에 대한 대한 비난을 집요하게 유포시켰기 때문에, 일본 내에 그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이전에도 일본에는 평가할 만한 정치가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정치가로서는 야마모토 타로의 이름이 거론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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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출신 참의원인 야마모토 타로의 모습(왼쪽). 그는 2013년 10월, 도쿄 아카사카교엔(赤坂御苑)에서 열린 가든 파티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오른쪽)에게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의 실상을 알리는 서한을 전달한 일로 ‘무엄하다’는 보수파의 공격을 받았지만, 진보진영으로부터는 ‘개념 의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의 여러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야마모토 타로는 현재 일본에서 시민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희망으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원래 배우로서 정치나 시민운동과는 전혀 연이 없는 인물이었지만, 2011년의 원전사고 이후 자신의 이전까지의 생활을 던져버리고 원전사고의 피해자를 위해 활동했으며 예능계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으로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참의원이 됐습니다.

야마모토의 정치가로서의 출발점도 하토야마와 같이, 피해자에게 다가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현재는 정치가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지식 면에서도 발군입니다. 또, 이전에 하토야마와 손을 잡았던 오자와 이치로와 함께 자유당의 공동대표를 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타로는 틀림 없이 국민 편의 정치가로서 평가받을 만한 정치가입니다. 한국의 여러분은 야마모토 타로를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촛불혁명, 한국 민주주의 저력 느껴 

끝으로 종군위안부의 문제에서 실제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항거의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에 명예회복이나 과거의 인권피해에 대한 보상이 실현된 듯한 감이 있습니다만, 일본인 위안부의 명예회복은 결실없이 끝난 듯합니다.

일본인들 사이에서 그들의 존재는 잊혀졌습니다. 간혹 대형 미디어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뤄지더라도, 대개 한국인 위안부 문제이고, 더욱이 반일운동의 하나로 밖에 보도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에 의한 인권피해라는 관점은 보통 간과되어 있습니다.

이것만이 일본인 위안부가 잊혀지는 이유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일본인이 동포의 불행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일본인 위안부의 구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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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를 몰아낸 촛불혁명은 한국 시민의 힘과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일본인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여러분들이 동포의 불행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이 위안부 문제에 빛을 던지고 해결의 가능성을 넓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국 여러분들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연대이며, 이것이 국민을 지키는 기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쁜 정치에는 반드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분, 앞으로도 나쁜 정치에는 항거의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동포를 지키고, 국가를 지키고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횡행하는 현재의 일본에서는 정부가 당연한듯이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은 이미 늦어버린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정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국민의 의사를 늘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최근의 한국의 시위를 보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여러분들은 일본의 현실을 정치를 잊어버린 국민의 말로라고 생각하시고, 언제까지나 마음에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아래는 일본어 원문>

はじめまして、韓国の皆様。私はHiroyuki Haraと言います。日本人です。先日、とある人の紹介で初めて韓国を訪れました。その時、多くの韓国の方々とお逢いし、それが縁となり、このたびTomorrow webに寄稿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

Tomorrow webのMr.Hyunki Shinさんから何か日本について書いてくださいと言われ、何を書こうかと考えていたところ、従軍慰安婦とか北朝鮮の核問題が注目を集めますと言われたので、それならば従軍慰安婦について語ろうと思いました。

従軍慰安婦の問題は日韓の問題として両国民の友好に溝を作るものですが、非は日本の側にあります。

そもそも軍隊とは男性偏重の集団であり、それゆえに必ず女性への需要が生じます。これは人間に性欲がある限り避けられない問題で、この問題を放置すると軍の士気が落ちるなどの弊害から、部隊を管理する将校は、この問題に対処する必要があります。

近代以前の刀槍で戦っていた時代だと、慰安婦と言う存在がなかったために、行軍する先々で兵士達が地元女性をレイプする事件が頻発しました。それを考えれば、従軍慰安婦の存在は行軍先の女性を守る人道的な仕組みと言える面もあります。

しかし、そう言えるには慰安婦として雇う女性を合法的、道徳に基づいて、その仕事に見合う対価を払わねばなりません。でなければ、行軍先でレイプされる女性の被害を他の女性に転化したに過ぎず、何の意味もありません。

とすると、従軍慰安婦の問題は慰安婦になった女性をどのように雇用したかと言う点が問題になります。

つまり仕事の内容を詳しく説明せず、騙して遠い戦地へ同行させたり、強制連行したら、それは人権侵害であり、糾弾されねばなりません。

とは言え、当時の日本国政府がそうした非人道的な行いをした証拠はないようです。私自身も知りません。日本側で従軍慰安婦となる女性を騙して戦地へ同行させた証拠は、慰安婦となった女性の証言や、実際に慰安婦を買った旧日本軍兵士の証言などが主なものです。

この証拠の無い点が、現在の日本政府が従軍慰安婦の強制連行はなかったと主張する根拠になっているわけですが、戦争に負けて降伏する前には、後々問題になりそうな資料などを焼却処分するのが常であり、証拠が無いからと言って人権侵害がなかったとは言えません。

ですから、当時の日本国政府がしたことは同時期の他の所業から類推するのが真実に最も近いはずで、当時の日本国政府が日本国民に何をしたか?統治下の他国人に何をしたかで判断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日本人女性をカフェの給仕やそれに類する仕事と偽って遠い戦地へ連れて行き、慰安婦の仕事をしなければ日本へ帰れない状況に追い込んだり、「お国のため」と騙して敵艦への自爆攻撃を強要したりと自国民をも騙していた当時の日本政府なら、より立場の弱い朝鮮半島の人々へはさらにひどいことをしたと考えるのが理にかなっているでしょう。

実際、当時の日本国政府は捕虜の非人道的扱いを禁止したジュネーブ協定を批准しておらず、タイ国では捕らえた英米軍の捕虜に強制労働させていたくらいで、人道に基づいた行動をするつもりでいたとは考えにくいです。

したがって、たとえ証拠がなくとも従軍慰安婦による人権侵害はあったと考えるべきであり、日韓の今後の友好を考える場合、日本側の謝罪はなくてはならないと言えるでしょう。

これは単純な人間関係に置き換えれば分かりやすいです。過去に諍いがある相手とその後も友好関係を築いて行くつもりなら、過去の非を謝罪することで失われた相互の信頼を取り戻すことができます。謝罪によって、過去の不幸にとらわれない新しい友好関係がはじまるのです。

この点、誠意ある対応をしてくれたのが我が国の鳩山由紀夫氏です。彼はかつて日本の首相であった時に、米軍基地の害悪に苦しむ沖縄の人々のために米軍基地を沖縄から移転させることに取り組みました。

しかし、残念なことに日本の従米マスコミや親米売国の我が国の官僚たちによって、米軍基地の移転どころか辞任を余儀なくされました。非常に残念なことです。

とは言え、鳩山由紀夫氏の韓国従軍慰安婦への謝罪や沖縄基地問題への対応を見るに、鳩山氏の政治家としてのスタンスが見えます。この二つの問題に共通する鳩山氏の行動は、被害者の側に寄り添った行動です。

韓国人慰安婦の方々はかつて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あり、沖縄の方々は現在の日本の悪政の被害者です。これら被害者の方々の苦しみを何とかしたいと言うのが、鳩山氏の行動の原点でしょう。私自身は鳩山由紀夫氏と面識もなく、詳しく話したことはありませんが、鳩山氏の行動を見る限り、そのように読み取れます。

このように鳩山由紀夫氏は国民の側の政治家として評価に値する政治家と言えますが、惜しむらくは我が国の従米マスコミが鳩山氏の悪口をしつこく流布し続けたため、日本国内であまり人気がないところです。

鳩山由紀夫氏以外にも、日本には評価に値する政治家が存在します。そうした政治家として山本太郎氏の名前が挙げられるでしょう。

韓国の方々には馴染みがない名前だと思いますが、山本太郎氏は現在の日本で市民運動に従事する人々から、数少ない希望として強く支持されています。

山本太郎氏は元は俳優であり、政治や市民運動とは全く無縁の人でしたが、2011年の原発事故以来、自分のそれまでの生活を投げ打って、原発事故の被災者のために活動して、芸能界から干されました。しかし、それでも活動をやめず、その活動が原発に反対する人々の強い支持を受けて参議院議員となった人物です。

山本氏の政治家としての原点も鳩山氏と同じで、被害者に寄り添い、苦しんでいる人々を助けることです。現在は政治家として勉強も旺盛で、知識の面でも抜きん出たものを持っています。また、かつて鳩山由紀夫氏と手を取り合った小沢一郎氏と共に自由党の共同代表を務めております。山本太郎氏は間違いなく国民側の政治家であり、評価に値する政治家です。韓国の方々には山本太郎氏のことを覚えていてほしいです。

最後に、従軍慰安婦の問題で実はあまり触れられていない問題があります。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です。韓国では大勢の人々が抗議の声をあげたので、名誉回復や過去の人権侵害への補償が実現できそうな気配がありますが、日本人慰安婦の名誉回復は果たされることなく終わりそうです。

これは日本人の間ですらも、慰安婦の存在が忘れられており、慰安婦の問題が大手メディアで報道されても韓国人慰安婦のことばかりで、しかも反日運動の一つとしてしか報道されません。国家による人権侵害と言う視点が常に抜け落ちています。

それだけが日本人慰安婦が忘れられる理由ではないのですが、日本人が同胞の不幸に無関心でいるせいで、日本人慰安婦の救済は全くなされずに終わりそうです。とても悲しいことです。

韓国の多くの方々が同胞の不幸に抗議の声をあげたことが、慰安婦の問題に光を当て、解決の可能性を広げたのは確かでしょう。

私が韓国の方々の慰安婦問題への取り組み方を見て思うのは、最終的に国民を守るのは国民、国民の連帯こそが国民を守る礎となり、悪い政治には必ず抗議の声をあげねばならないと言うことです。

韓国の皆様方。これからも悪い政治には敢然と抗議の声をあげていってください。それこそが同胞を守り、国を守り、政府の腐敗を正す最善の方法です。政治への無関心が横行する現在の日本では、政府が堂々と国民の人権を無視しはじめています。このような状況になってはもう手遅れです。そうなる前に政府に道を踏み外させないよう国民の意思を常に見せつけていかねばなりません。

昨今の韓国のデモの盛り上がりを見る限り、大丈夫と思いますが、韓国の方々には本の現状を政治を忘れた国民の末路として、いつまでも心に留めてほしいと願っております。

금, 2017/06/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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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프레시안에 ‘문재인정부에 던지는 하나의 요청과 하나의 제안이라는 제목으로도 실렸습니다)

6월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반드시 수개월 이상 연기되어야 한다.

우선 미국의 상대역인 트럼프 대통령을 감싸고 있는 대내외적 여건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서 무리한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은 도무지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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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트럼프 행정부

우선 지난 대선에 러시아 개입여부의 조사과정을 놓고 벌어지는 전 FBI 국장 코미의 상원청문회의 여파가 진행 중이며 그 귀추 여부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사실상 통치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닉슨으로 하여금 탄핵 직전에 사임하게 하였던 워터게이트의 내용보다 심각하며 악질적이라는 논평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미국 내 여론의 향방에 따라서 공화당 내부가 분열하게 되면 수개월내에 탄핵의 과정이 시작될 수 있으며, 설령 공화당의 내분사태가 없다고 하더라도, 내년 의회선거를 통하여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 다수를 점할 것이 분명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실효적인 정치생명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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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의회 증언에서 코미 전 FBI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과 충성맹세를 강요했다고 폭로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빠뜨렸다.

대외적으로는 지난 G7 회의 과정에서 미국이 나토의 기본정신조차 묵살하면서 유럽은 이제 스스로 안보와 국방체계를 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더구나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과 노력으로 성사된 파리기후협약을 일방적으로 탈퇴함으로써 미국의 국제적 지위가 한없이 하락하했다.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체로 합의된 자유무역체계의 질서를 안하무인 격으로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고립주의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트럼프 정권의 행태를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제국의 자살골’ 이라고 비아냥대고 있으며, 2007년 세계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였던 <파이낸스타임즈>의 수석 해설가인 마틴 울프는 미국을 배제하고라도 기후협약의 원칙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자신들의 폐허도시(rust belt)와 불량산업의 재기를 위해서 국제사회로부터 따돌림과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며, 미래에 다가올 기후 재앙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볼리비아의 대통령은 트럼프를 지칭하여 ‘어머니인 대지(지구)와 일상적 삶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 (Main Threat to Mother Earth and Life Itself)’ 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마디로 미국은 이제 세계를 지도하는 초강대국에서 졸지에 세계를 어지럽히는 불량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천 억불이 넘는 무기판매를 계약성사 시키는 과정에서 트럼프 자신이 사우디 아라비아로 하여금 카타르를 외교적으로 고립단절 시키도록 부추기고 최근 벌어진 IS 조직의 이란내 테러를 조장한 혐의를 받는 가운데, 중동아 지역이 수니파 연맹과 이란 중심의 시아파 그리고 터어키 등이 서로 대립하면서 일대 전운이 감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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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이디 아라비아 등 9개국은 카타르가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한 집단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의 외교 단절을 선엄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카타르와의 외교단절을 선언한 나라들은 모두 친미국가로 분류된다.

중동아의 불안정은 한국을 포함하여 중동아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의존하는 선진 산업국가들에게 심각한 안보 상황을 야기시킨다.

트럼프로 인하여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있는 미국인들은 시스템이 완전 망가졌다고 한탄을 한다 (The US as system is completely broken).

국내외적으로 트럼프가 가는 곳마다 분쟁이요 불화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형세이다. 한마디로 현재 미국의 행정부와 정치권은 불난 집의 형세이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것은 기름을 끼얹고 불구덩이에 달려드는 꼴이다. 트럼프는 곤고한 자신의 신세를 만회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미정상회담에 임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며, 통제가 불가능한 그의 돌출적 행동으로 회담의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는 문재인 대통령이 치명적인 화상을 입기 십상인 형국이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외교안보라인

정상회담을 연기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도 존재한다. 우선 주한 미국대사가 공석 중인 가운데 외부부장관 지명자가 국회의 청문회과정을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한미간의 일상적 교류에 와류가 형성되고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외교적 채널을 넘어서 문재인 정부가 과연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확고한 전략적 구상과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사드 배치에 대하여 전략적 모호함 이라는 입장을 취하여 왔고, 저간의 사정과 흐름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현재 역시 벌어진 상황의 보류라는 어정쩡한 조치로 봉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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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외교안보 라인업에서 이른바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라인의 부상이 주목받았지만, 개인사정, 인사청문회 등으로 난항을 겪으면서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도 어려움에 처했다. 왼쪽부터 최근 개인사정을 물러난 김기정 전 국가안보실 2차장, 강정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

지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세는 제갈량과 장자방을 합한 지헤있는 전략가를 필요로 하는 절대시점이다. 그런데 통일부 장관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의용씨가 안보실장으로 진즉 임명되어 있지만, 그는 경험이 풍부한 외교와 통상의 전문가이지 안보적 전략을 구상할 만큼의 지략가는 아니라고 판단된다.

외교는 전략적 구상과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설득하고 협상하는 과정일 뿐이다. 전략적 역할이 기대되었던 문정인과 김기정 등 ‘연세사단’은 개인적 사정과 스캔들로 공식적인 활동을 고사하거나 낙마하였다.

국민의 정부시절 임종원 장관과 같은 인물이 보이질 않는다. 자신의 계획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대한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중국의 굴기와 북한 및 북핵 문제를 앞에 두고 미국의 MD 편입여부와 한미일 군사동맹 여부가 매우 주요한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안보가 최우선이라는 구호는 있으되 구체적인 내용이 보이질 않는다. 자주국방과 주권외교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런 가운데 전시작전권의 회수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6월말로 예정되어 있는 정상회담의 일정을 무조건 연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안보와 외교라인의 인선을 우선적으로 확정하고 나름대로 전략적 구상과 실천적 로드맵을 선행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현재 불판 위에 앉아 있는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국정부의 연기 요청을 환영하거나 최소한 양해할 것이다.

동아시아 이니셔티브 제안해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착실히 준비가 되는대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담대한 제안’을 한미정상회담이 있기 일주일전에 <뉴욕타임즈> 등 세계 유수언론에 특별기고 형식으로 기고하기를 제안한다.

한미FTA의 재협상, 방위분담금 문제 또는 사드배치 여부(이는 칼루치가 이야기한 바처럼 전적으로 한국정부의 결정사항이다)는 아예 무시하거나 실무라인에게 돌리는 것이 맞다.

미국측에서 먼저 제기하는 현안에 휘둘리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한다는 것보다는 지난 5-60년간의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신뢰기반 위에서 미국사회 전체와 미국을 이끌어갈 미래의 주도 세력을 향하여 발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리 세계 유력지들에게 기고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의미이며, 예측 불가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휘둘리지 않는 안전판을 확보하는 선제적 조치이기도 하다.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프랑스 대혁명에 견줄만한 역사적 대사건인, 한국시민 촛불혁명의 의미를 확인하며 진행중인 이의 실험을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최대한 포용+실효적 제재’로 전환해야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사)다른백년의 이사장으로서 필자는 상기의 ‘담대한 구상’ 제안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조언하고자 한다.

우선 북한과 북핵 문제를 풀어가는 접근을 ‘최대한 압박과 포용(Max pressure & engagement)’이라는 트럼프 방식에서 ‘최대한 포용과 실효적 제재(Max Engagement & effective sanction)’이라는 문재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는 상대에게 등뒤로 칼을 내밀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기대와 신뢰를 담아 설득을 앞세워야 협상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이미 90년대 제네바 협의와 6자회담의 협상을 통해 맺은 합의내용(AF, Agreement Frame)이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7.4 공동성명과 6.15 합의라는 역사적 성과도 지니고 있다. 현재적 엄중한 현실을 살피되, 단기적 현안의 봉합보다는 장기적 미래전망이라는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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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www.ajunews.com)

현재 북한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키도록 국제적 기구에 협력을 요청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는 물론이고 제2의 개성공단을 외국인 투자단지로 조성하여 미국기업과 중국, 유럽 등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것이 성공적일 경우, 항공운송이 편리한 평양근처에 제2, 제3의 외국인 투자공단으로 확장하도록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주선해야 한다.

북한에 외국인 투자공단을 유치하는 것이 북한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동아시아를 방어하는데 사드 배치보다 만 배 이상 효과적일 것이다.

쿠테헤스 사무총장은 유엔의 인권위원회와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의 장애우와 여성인권의 향상을 위해 114백만불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북한 제재에 묶여 어려움을 겪는 유엔에 대하여 이를 시행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데 한국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또한 한국인 2세인 김용씨가 총재로 있는 세계은행으로 하여금 북한의 기반시설 투자에 필요한 차관을 제공하도록 설득과 보증을 검토해야 한다.

철의 실크로드 구상으로 주변국 협력 도모

중동아의 불안으로부터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위협을 느끼는 이때, 러시아와 협상하여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매설을 통하여 공급받는 역사(役事)를 시작해야 한다. 시베리아의 천연가스의 여유량은 한반도가 수 백 년을 사용할 만큼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신재생 에너지의 가능성이 무제한인 몽골과 협력하여 전력선 역시 북한을 통과하여 한국의 전력망과 연결하는 구상을 연구해 봄직하다.

이를 통하여 북한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립하여 주고 필요한 연료와 전력을 공급해 줌으로써, 북한 경제발전의 최대 애로사항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여 줄 수 있다.

이는 참여정부시절 제안하였던 아마추어 수준인 남한의 전력공급 제안과는 차원이 다른 상호 안전과 통제를 통하여 남북한 공영을 도모하는 중차대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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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시절부터 검토되었던 것으로 북한을 통과하는 유라시아 연결의 철도망 건설을 다시 복원하여 추진하는 것에 더하여, 일본정부와 협의하여 부산과 쓰시마를 통해 큐슈를 연결하는 해저터널 공사를 시행하면 일본의 역사적 소망인 대륙과의 육로 연결망이 이루어지면서 한일간의 갈등이 전화위복이 되어 오히려 친선우호의 협력국으로 전환될 것이다.

홋카이도에서 출발하여 큐슈, 부산과 신의주 또는 나진 선봉을 거쳐 유럽의 끝단인 포르투갈 또는 도버 해협을 거쳐 영국까지 연결되면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프로젝트와 쌍벽을 이루는 인류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 될 것이다. 장차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도 해저터널로 연결되면 남아공의 희망봉까지 연결되는 셈이다.

‘동맹의존증’에서 벗어난 담대한 구상 필요할 때

파리기후협상에 이은 차기 기후협상회의를 서울에 유치한다고 선언하는 순간, 한국은 촛불시민혁명에 이어 인류모두에게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을 통하여 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듯이 세계기후협상회의 유치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 주도권을 한국이 차지하면 환경과 에너지 산업에 상당한 활력과 탄력을 제공하면서 한국산업의 미래지향적 재편과 경제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게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한미군사훈련을 새롭게 개방하여 중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이 함께 참여하고 북한 역시 참관국가로 초대하면 동아시아에 점증하는 지역의 전쟁위협을 현격히 감소시키며, 공존공영의 기반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천문학적 국방비에 시달리는 미국의 장기적 전략과 국가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를 기회로 북미간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을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북미와 북일 간의 국교정상화로 연결되어야 한다.

남북간에는 통상 및 교류 등 정상화되고, 북미간의 현안인 북핵문제는 평화협상과 국교정상화가 진행되면서 자연히 순차적으로( freezing & roll back) 해결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병영세습체제인 북한은 점차로 보통국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다.

함께하는 미래는 담대한 용기와 지략을 가진 자만이 만들어 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를 감당할 수 있기를 손모아 기대하여 본다.

(추신: 이 글은 이제 막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만열(미국명: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와 장시간 토론을 거쳐 작성된 것입니다.)

토, 2017/06/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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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4일 대만의 헌법재판소는 동성애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한중일은 물론이고 아시아 최초이다.

같은 날 한국에서는 휴가 중 동성과 성관계를 가진 A대위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는데, 그에 앞서 군은 동성애자들이 사용하는 앱을 이용하여 ‘잠입조’를 투입, 동성애자 색출에 나선 바 있다. 인터넷의 비판적 힙스터들은 한목소리로 군법원의 비겁한 행태를 비판했으며, 이참에 군법원의 정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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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대만 동성애자들이 대만 지도가 그려진 무지개 깃발을 들고 동성애 지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출처: AP뉴시스)

바야흐로 2017년, 한국에서도 동성애 합법화 이슈가 뜨겁다.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2000년부터 매년 퀴어문화축제를 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는 동성애자와 성소수자에 대해 강팍하고 완고한 듯하다.

지난 해 한국의 사법부는 2013년 영화감독 김조광수씨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제기한 소송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 그리고 성소수자들의 인권은 아직도 한참 더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듯하다.

<불한당>, 대중의 냉소와 후죠의 열광 사이에서

이 시점에서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불한당(不汗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불한당>은 동성애 합법화가 논란이 되고 있는 작금의 한국사회에 적시에 혹은 너무 빨리 당도한 비운의 명작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감독의 홍어 발언으로 당사자가 일베로 몰리는가 하면 일부 ‘달레반’들로부터 평점 테러와 관람 보이콧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린 진출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3주 만에 백만에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숫자를 기록하며 스크린을 내렸으며, 최근 흔해진 이른바 ‘알탕 조폭 영화’의 아류라는 세간의 냉소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참이었다.

일명 후죠시(婦女子, ふじょし, 이하 후죠. 후죠는 비엘(BL, Boy Love), 곧 게이 로맨스 서사를 즐기는 여성 집단을 이르는 말이다), 곧 부녀자들이 이 영화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사태를 납득할 수 없었던 열혈 후죠들은 <불한당>을 ‘지옥에서 온 비엘(BL, Boy Love)’, ‘이 시대 단 하나의 정통 퀴어 멜로’라 부르며, <불한당>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n차 찍기(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는 물론이고 단관과 대관을 도모하는가 하면, <불한당> 위키트리의 작성, 각종 사이트에서 댓글달기 등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유툽과 네이버 등을 통한 이중 삼중의 VOD 구매에, 더해서 “불다”를 막기 위한 인터넷 야경꾼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이토록 후죠들을 <불한당>에 열광하게 한 것일까.

믿음과 배신의 딜레마: Careful who you trust

영화에서 ‘재호(설경구)’는 ‘철창 안의 지저스’이다. 정통 주먹은 못 되어도 “독고다이로는 못 이기는” 부산 바닥의 뽕쟁이가 바로 그다. 左‘영근(문지윤)’ 右‘방개(홍인)’를 거느린 그는 감옥 안의 최고 권력이며 모든 율법의 주재자이다. 자신을 죽이려던 부모 밑에서 살아남은 그에게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이거니와, 프로이트(Freud, G.)가 갈파한 바대로 애착형성이 되지 않는 이에게 삶은 곧 불신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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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재호(설경구)

믿을 놈 하나 없이 살아가는 재호에게 세상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 있지만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그는 곧 어디에건 있으나 아무 곳에도 없는 유령같은 존재이다.

감옥 안에서의 공놀이는 재호의 이러한 자폐적 자아를 잘 보여주는데, 라깡(Lacan, J.)의 ‘포르-다 놀이(fort-da game)’에서처럼 벽에 튀겨진 공은 끊임없이 그에게 되돌아온다. 타자가 부재하는 독방에서 동일자의 공놀이를 반복하는 재호에게, ‘현수(임시완)’는 공을 되던지고 말을 건네는 최초의 타자가 된다.

잠입조로 투입된 부산 경찰청의 언더커버(under-cover) 현수는 “혁신적인 똘기”로 단숨에 재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불쌍한 사람은 도와야 한다”는 엄마의 가르침에 따라 재호의 목숨을 구해 줌으로써, 그와 “제일 큰 방”을 나눠 갖는 사이가 된다. 현수는 재호를 통해 “큰 건을 만들어” 흥행시키려 하고, 재호는 그런 현수를 이용하여 자신을 담그려는 ‘병철(이경영)’을 묻고 새로이 보스가 되고자 한다. 두 남자의 동상이몽, Careful who you trust, 네가 믿는 자를 조심할지니 혹은 너를 믿는 자를 조심할지니.

수치와 죄의식, 사람으로 살기 위한 죽음에 대해

이 영화는 재호와 현수 어느 쪽으로나 성장이자 몰락의 서사를 가진다.

먼저 재호의 경우. 현수는 재호에게 사랑과 소망, 믿음을 가르쳐 주는 존재이자, 다시 그 모든 것을 거두어가는 배신의 유다(Juda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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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영화의 외피를 입은 <불한당>은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드러낸다.

버려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신을 일삼던 재호에게, 난생 처음 현수는 설레임과 무구함, 신뢰의 얼굴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이가 재호라는 것도 알지 못 한 채 투명하고 말간 얼굴로 “나는 형 믿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의 온기를 알지 못하는 재호의 마음에 한 줄기 구원의 빛이 드리운다(그래서 영화에서 재호가 회상하는 현수는 시종일관 따뜻한 노란색으로 빛난다).

레비나스(Levinas, E.)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온전히 기대어오는 타자를 통해 구원받거니와, 연약하고 가련한 그에게 복종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들 자신을 구원한다.

그리하여 재호가 현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지저스라는 별명에 퍽이나 어울리게도, 사랑과 소망, 믿음이다. 아무도 믿지 않던 재호가, “멍도 예쁘게 드는” 풋내기에게 가슴이 설레이고(사랑) 곁에 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소망)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던 마음밭에 약하디 약한 믿음이 자라난다. 그리하여 하룻강아지 경찰 하나를 “감아 보고자” 삼십년지기 고아원 친구 ‘병갑(김희원)’의 조언을 마다할 때, 그리이스의 비극처럼, 예정된 재호의 파국은 시작된다. 한 번도 누군가를 믿어보지 못 했던 이가 건네는 마음이라면, 그것은 달리 목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결국 죽음을 자초한다.

믿음을 모르던 자가 믿고자 할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갈등과 불신, 죄의식이라는 인간의 길이다. 죄의식을 외면해 가며 살기 위해 저질렀던 모든 일들이 들통났을 때, 수치와 죄의식을 아는 인간이라면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다. 타자를 믿고 그를 소유가 아닌 소망으로서 사랑하고자 한다면, 이제 내놓아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재호가 택한 것은 죄의식을 모르는 짐승으로 살아남는 대신,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죽는 길이다. 사람의 윤리를 배운 이에게 돌아갈 길은 없다,

남은 것은 파멸 뿐. 첫 번째 성장 혹은 몰락의 서사. 그러므로 “너 진짜 나랑 같이 일해 볼래?”라고 현수에게 물었을 때 기실 재호가 건넸던 것은, 미처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겠으나, 실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마찬가지로 정통 조폭 김성한에게 죽음의 세례를 내리면서 베어물던 사과는 결국 수치와 죄의식의 선악과였던 셈이다.

성장한다는 것, 아비를 죽인 불한당들의 세상에서

사랑에 서툰 이들은 흔히 소유를 사랑으로 오해하는데, 재호는 현수를 갖기 위해 그를 자신처럼 버려진 존재로 만든다. 현수로부터 그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인 어머니를 빼앗거니와, 어머니와의 합일된 ‘상상계’에서 살아가던 현수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그 자체로 세상의 끝이다.

현수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중심이 필요한데, 이제 재호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알에서 깨어난 조류가 처음 보는 이를 어미로 따르듯, 재호는 현수의 두 번째 태양이 된다. 바야흐로, 유사 아버지의 탄생.

그러나 유사 아버지의 법은 철창 안에서만 통하는 법이다. 불한당의 법은 햇빛 찬란한 대낮 에는 견지될 수 없기에, 이카루스(Icarus)의 날개처럼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다. 어머니를 살해한 아버지의 과오가 드러났을 때, 부친 살해는 자명한 귀결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비극은 언제나 미리와 당도해 있거니와, 재호를 죽임으로써 현수는 비로소 고아, 곧 어른이 된다. 그가 만나는 세상은 더 이상 이전처럼 순결하고 무구하지 않은 것이, 그것은 배신과 뒤통수로 얼룩진, 죄의식을 뒤로 하고 제 손에 피를 묻혀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현수는 재호처럼 불신과 배덕의 삶을 살 것으로, 현수는 재호이며 재호는 현수이다. 이는 영화 도입부 재호의 빨간 머스탱의 자리가 그의 것이 되는 데에서 또 홀로 창고에서 포르-다 놀이를 하는 현수의 모습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데 아들이 아비가 되는 뫼비우스의 저주 속에서 두번째 성장 혹은 몰락의 서사는 완성된다. 불한당들만이 가득한 세상,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

불한당, 여성들의 억압된 쾌락과 욕망의 텍스트

후죠들에게 <불한당>은 느와르도 갱스터도 아닌, 장르적 문법에 충실한 실사판 비엘일 뿐이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 백전노장 설경구가 “연기 인생 32년의 내공을 녹여 임시완을 사랑하는 이야기“일 뿐으로, 덕분에 영화의 모든 것은 퀴어 멜로의 코드로서만 독해된다.

이를테면 수산시장 습격 장면에서 후죠들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재호와 현수의 시계이다. 현수가 시계를 풀어 최사장을 난타할 때, 또 재호가 현수를 거들고자 시계를 푸를 때, 이는 가장 로맨틱하고 열정적인 장면 중 하나가 된다.

시계는 넓게는 자본주의적인 근대 질서, 좁게는 경찰과 조폭이라는 세속의 법을 의미하거니와, 시계를 푼다는 것은 이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규율과 질서를 벗어던지고 오로지 서로를 향하겠다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회의 관습과 통념, 억압을 뒤로 하고, ‘우리 이대로 사랑하겠다’라는 강력한 외침이자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거친 남성들의 배신과 폭력이라는 외피를 쓴 이 영화는, 후죠들의 필터(filter) 속에서 은밀하고 비극적인 사랑으로 재탄생될 수 있었으며, 감독이 원했던 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능가하는 눈물과 신파, 격정의 멜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후죠들 사이에서 변성현 감독은 “영화의 신”이라 불리고 있으니, 그들에게 <불한당>은 향후 족히 50년 동안은 다시없을 바이블(Bible)이 되었다.

한국, <불한당>을 허락하지 않는 반동성애 국가

문제는 이러한 후죠들의 열광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흥행 실패는 단순히 일부 정치 팬덤의 분탕이라는 표피적 사실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곧 이 영화는 근본적으로 호모포비아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는 곧 동성애를 허락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버틀러(Butler, J.)가 말하는 ‘수행성’ 혹은 젠더 도식의 해체라는 비엘에 내재하는 전복의 가능성과는 달리, 대부분의 비엘은 여전히 이분법적 젠더 도식을 반복하며 이로 인해 오히려 가부장제 이성애자들의 호모-소셜(homo-social)한 연대를 강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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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도 예외가 아닌 것이, 영화가 함의하는 명백한 동성애적 코드에도 불구하고 정작 영화 내에서 동성애는 부정되고 처벌되기 때문이다.

현수를 욕망하는 유사 아버지 재호의 법은 실현될 수 없었으니, 그는 죽음으로써 댓가를 치르고 거세되어야 했다. 곧 “철창 안의 지저스”는 호모포비아 헬조선을 위한 희생양이었으니, <불한당>은 기존의 남성중심 이성애자의 젠더 권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강화한다.

이렇게 보면 후죠들의 욕망은 가부장제의 호모포비아를 담보로 한 것으로서, <불한당>의 좌초는 “21세기가 아무리 개방적일지라도” 여전히 범법자로서 야만의 사냥에 내몰려야 하는 한국사회 동성애자들의 참람한 현실을 시사한다.

백만이라는 어이없는 성적표는 이에 대한 에필로그에 불과하거니와, 군동성애자 색출 작업이 한창인 야만의 헬조선에서 <불한당>은 필연적으로 배척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지난 4월 25일 대선 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은 반대한다”는 모호한 발언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의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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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향해 동성애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가 이슈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놀랄만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같은 토론회에서 심상정 후보는 마지막 발언을 문후보의 해당 발언을 비판하는데 할애하였으나, 이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을지언정 실질적인 파급효과가 되지는 못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선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군내 동성애자 색출 사건이 일어났고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한국사회는 이제, 동성애자들을 이대로 계속 박해해도 좋은지 공론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출생과 인구감소가 연일 ‘뜨거운 감자’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언론과 정부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침묵한다.

동성애자와 성소수자들이 절망의 끝에서 포기하기 전에 하루빨리 이들을 위한 제도적 권리의 확보에 나서야 할 것이다. 참고로 진선미 의원은 지난 2014년부터 ‘생활동반자법(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을 상정하였으나,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국 사회는 언제쯤 저 너머의 ‘무지개’를 향해 달릴 것인가.

화, 2017/06/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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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선 그는 낡은 갈색 가방을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공정거래위원장에 지명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였다.

한 매체가 “가방이 웬만한 독자보다 선배일지 모른다”고 썼을 정도로, 군데군데 흠집이 나 있는 가죽 가방은 한눈에도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그의 제자라고 밝힌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가방이 진짜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한 걸 들고 다니셨거든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가방 꼴이 그게 뭐냐니까, (…) 웃으시더니 가방은 그냥 대학원 때부터 쓰던 거라 편해서 쓴다고, 뭐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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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공정거래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차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화제가 된 김상조 공정거래 위원장의 가방을 보고 있다. (사진출처: 서울신문)

깔수록 ‘미담’만…”국민 눈높이 검증 통과했다”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위장전입, 논문 자기표절, 특혜 분양, 아들의 군 특혜 및 금융회사 인턴 청탁, 부인의 채용 기준 미달 취업, 다운계약서 작성 등의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사실이 아니거나 결정적 흠결로 몰아세우기에는 모자랐다.

오히려 논리 정연한 발언과 함께 “일주일에 100시간 정도 일한다. 최근에 와서는 돈 쓸 틈이 없었다”는 등의 ‘미담’만 회자됐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가 계속되자 500명 가까운 각계 인사들이 김상조 교수에 대한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맘상모)’, ‘전국 대리기사 협회’ 등 17개 단체도 김 교수의 임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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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국회 앞에서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등 골목상권 관련 17개 단체들이 ‘골목상권 지킴이, 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보았나? 그게 김상조다. 알았나? 그게 김상조다. 우리들에게 김상조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20년 지기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야당의 의혹 제기를 ‘우리 모두에 대한 모욕’이라고 표현했다.

“하루 만에 거의 500명의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성명을 주도한) 전성인 선생도 놀랐단다. (…) 사실 김상조를 변명하는 것은 좀 객쩍은 일이다. 워낙 깨끗이 살아온 사람이다. 성품 탓도 있지만 무소불위의 재벌을 상대로 전면에 나서서 싸워 왔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 몸가짐에 신경을 써 왔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미 검증을 통과했다”(윤영찬 국민소통수석)는 평가가 나왔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밀어붙인 것은 처음이다.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선출직에는 안 나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책을 펼치는 정부 당국자 자리라면 해볼 용의도 있는데 그런 제의는 안 오더라. 10년 뒤에는 저 같은 시민단체 사람이 할 일 없는 경제 사회를 만드는 게 삶의 목표다.”

지난 2009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불행히도 10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어떤 면에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다만 김 위원장이 ‘정부 당국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진보라고 해야 할까.

정치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정권교체가 돼 10년 만에 집권했는데 실패한다면, 그 세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소액주주운동’으로 출발한 ‘삼성 저격수’

김 위원장은 196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다. 대일고를 졸업하고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학창시절 스승이었던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두 스승은 ‘현실 참여는 지식인의 의무’라며 연구실에만 있지 말고 현실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사회적 발언을 하라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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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의 스승인 조순 전 경제부총리(왼쪽)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정 전 총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미국 유학을 권했더니 ‘한국에서 열심히 하겠다’고 버텼다. 정말 국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하면서 유학생 이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김 위원장은 박사 학위를 마친 이듬해인 1994년 한성대 교수로 임용된다. 1995년에는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민교협) 총무국장을 맡았다.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99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고려대 교수)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에게 제정하라고 권유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제정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그때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을 찾아가 “기업지배구조가 임단협보다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관심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터였다.

조언을 얻기 위해 장하성 실장을 찾아가자 그는 김 위원장에게 “직접 답을 찾아보라”며 참여연대 합류를 권했다. 장 실장은 1997년부터 참여연대에서 이미 ‘소액주주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발족과 함께 단장을 맡는다.

훗날 ‘삼성 저격수’란 별명을 얻게 된 시발점인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도 이때 시작됐다. 주주대표소송은 경영진의 위법행위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을 때 주식총수의 0.01%를 확보한 주주가 경영진에게 손해배상을 회사 대신 청구하는 소송이다.

승소를 해도 배상액이 회사에 들어가는 만큼 원고에게 실익이 없는 공익 소송이다. 초기의 소액주주운동은 이렇게 ‘주주 이익’보다는 “소수주주권이란 법적 권리를 이용해 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려는 시도”였고 ‘재벌 개혁 운동’의 다른 이름이었다.

2005년까지 계속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이건희 회장 등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하고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1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 위원장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재벌기업 경영진의 부당한 경영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인식시킨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한다.

김 위원장이 대중에 널리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에서였다. 그 자리에서 그는 소액주주 자격으로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이학수·김인주의 이사 재선임 반대 및 징계 등을 요구했다.

당시 사회를 보던 윤종용 삼성 부회장은 설전 끝에 “왜 남의 주총에서 이렇게 망신을 주느냐”며 “나도 삼성전자 주주야. 당신은 몇 주나 갖고 있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김 위원장은 “주총 무효소송을 내겠다”며 퇴장한 후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 에스원 직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바지까지 찢어졌다. 삼성은 이후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에 결정적 조언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편법·불법 승계를 위해 벌어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및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헐값발행 의혹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는 그를 ‘삼성 저격수’로 뚜렷이 각인시켰다.

특히 6차례나 고발했지만 검찰의 ‘무혐의’ 처분만을 손에 쥐어야 했던 삼성 SDS 건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으로 사실임이 입증됐다. 삼성 특검으로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삼성 임원들에게 유죄까지 선고됐다.

‘왜 삼성인가’라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런 취지로 말했다.

 

“삼성은 다른 재벌과 다르다. 삼성전자를 삼성생명이 지배하고, 생명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가 지배하고 이재용씨가 이를 소유하는 기형적 형태다. 문제는 이 지배가 삼성생명이라는 금융계열사를 통해 이뤄진다는 거다.

삼성생명의 자산 대부분은 결국 고객 돈 아닌가. 자본주의 기본인 금산분리 원칙에 위배되고 현행법과도 충돌한다. 삼성은 이 비정상적인 구도를 적법하게 만들려고 국회를 비롯해 국세청·금감원·공정위·검찰 등에 전방위적 로비를 펼친다. 다른 재벌들도 법을 어기긴 하지만 삼성처럼 현행법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바꿀 의도와 힘은 없다. 그래서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2014년 5월 김 위원장은 삼성 SDS 상장을 계기로 SDS 사건을 되돌아보며 경향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당부하건대, 또다시 불법·편법의 우를 범하지는 말기 바란다. 부족한 지분을 채우는 것은 CEO의 비전과 리더십이다.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임을, 총수가 ‘은둔의 제왕’이 아니라 사회와 소통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짊어진 미래의 책임이다.”

앞날을 내다본 것일까. 불과 4개월 뒤인 2014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과 만나 ‘승마 유망주’ 육성을 당부한다. 삼성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시작한다. 이듬해 삼성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로 나서면서 정유라를 본격 지원한다. 그 뒤는 알려진 바대로다.

오랫동안 삼성을 연구해 온 김 위원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자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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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집 합병에 대해 답변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언까지 하면서 재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는데 공헌한다.

최순실 측에 로비를 한 것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이므로, 로비의 목적이 단순히 합병 문제가 아니라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허용,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전반에 대한 지원이었다는 취지로 폭넓게 구속 사유를 주장해야 한다고 알려준 것이다.

‘실패의 경험’만 가득했던 한국의 진보 진영에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자는 그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시민단체 운동을 하면서도 기업을 상대로 한 법정 싸움에서 절반가량은 이겼다고 한다. 한국 재벌의 정점인 삼성 총수 일가의 사법처리도 이끌어냈다.

‘김상조’라는 이름은 어느새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재벌은 김 위원장이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문의하자 바로 해당 계열사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문제점을 지적당한 공정위 과장이 “우리가 일을 잘못 처리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기도 했다고 한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출발점

김 위원장은 이번 공직에 나서기 전 직함이 딱 두 개였다. 하나는 한성대 교수, 다른 하나는 2001년부터 맡아 온 경제개혁연대 소장직(2006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가 분화)이다.

유명한 교수에게 으레 제안이 오는 기업의 사외이사나 정부의 위원회 위원 자리도 맡지 않았다. “거절하기 전에 제의 자체가 없었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유혹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정부나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 프로젝트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운동에 투신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휴강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강을 하게 되면 주말에라도 꼭 보강을 했다. 인사청문회 다음날도 보강을 했다.

앞서 글을 올린 제자의 증언에 따르면 강의 신청 인원이 초과될 때가 많았는데 수업 듣겠다는 제자들을 어떻게 물리치느냐며 직접 강의실을 큰 곳으로 변경하러 다녔다고 한다. 시험 감독도 본인이 직접 들어오고 학점 이의신청도 얼마든지 하라며 그것이 학생의 권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88 담배’를 피우며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2013년 삼성에서 강의 요청이 왔을 때 ‘내가 받는 강의료의 최고 수준인 50만 원만 받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삼성은 강의가 끝난 후 강의료 영수증을 300만 원짜리로 준비해 놓았더라. 다시 수정해 오라고 해서 50만 원만 수령했다. 만 32세 전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교수가 돼 현재 기준으로는 상위 3% 이내에 드는 연봉 1억 원 이상을 받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시민운동으로 지난 20년간 한 획을 그은 그가 공정위원장으로서 그리는 재벌개혁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일부에서는 과격한 재벌 해체론자로 잘못 알고 있기도 하지만 김 위원장은 현실 법 테두리 내에서 법과 원칙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쪽이다. 그는 위원장 내정 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년간 시민운동을 해오는 동안 제 입에서 재벌을 해체하자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 재벌이 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유도하는 게 재벌개혁이다. 재벌개혁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면 경제민주화의 본령은 하도급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자영업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다.”

우클릭? …4대 재벌 개혁에 집중

보수 진영에서 ‘막 나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하는 만큼 진보 진영에서는 ‘개혁 의지가 불분명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개혁 의지는 절대 후퇴하지 않았다”고 강조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기존 순환출자 해소 등의 정책도 대선 주요 공약에서 빠졌다.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인정해야 한다거나 변화된 경제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김 위원장은 이미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을 제외하곤 상당부분 해소됐으며, 자산총액 10조 등을 기준으로 하는 어중간한 규제는 상위재벌에겐 효과가 없고 하위재벌에겐 과잉 규제가 될 우려가 있으므로 4대 재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재벌개혁은 정부만 나서서 될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가나 소액주주 등 경제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권리를 확대함으로서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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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 교수 시절,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의 모습 (사진 출처: http://newszeen.tistory.com/)

김 위원장의 이런 신중하고 차근차근한 스타일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민운동 시절부터 그는 기업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먼저 비공개로 질의서를 보내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방안을 택했다.

기업경영은 공개된 자료로만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섣불리 문제제기를 했다가 뜻밖에 피해를 보는 기업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독 삼성에 문제제기를 많이 한 것은 아예 가타부타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순실 사태 이후 삼성 불매운동 얘기가 나왔을 때도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반대’ 입장이었다고 한다.

2013년 삼성의 수요 사장단 회의에 초청돼 강연을 하면서는 “나는 삼성의 적이 아니다. 삼성을 사랑한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 측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인데다 오랫동안 ‘애증의 역사’를 겪어 온 김 위원장 취임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바라는 ‘제대로 된 개혁’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에 따라서 김 위원장이 펼칠 정책의 만족도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김상조 위원장 취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재벌개혁이 이뤄지긴 어려울 것 같다며 블로그에 이런 글을 남겼다.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토대로 기업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수단과 방책들을 그이(김 위원장)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곳에서 행간의 의미를 통해 그이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의 임기 중 과제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혜안을 가진 전문가이므로 (…)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하도급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거나 또는 바로 잡을 기틀을 제공할 수도 있으리라 예상도 된다.”

김 위원장은 저서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개혁은 선거 승리 후의 집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국회에서의 새로운 법률 통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 제재를 통해서든 경제적 보상을 통해서든 규칙을 어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규칙을 지키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개혁은 혼자서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단과 조급증은 금물이다.”

목, 2017/06/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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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열린 (사)다른백년 창립 1주년 및 한국보고서 보고회는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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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사)다른백년 창립1주년 및 한국보고서 발표회가 열렸다.

특히 이날 발표된 한국보고서(Report on Korea)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정치, 경제, 외교안보, 교육노동 등 4개 분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한 연구결과물입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지난 1년 동안 공을 들였습니다.

이날 경제분야는 최배근 건국대 교수가 ‘민주주의와 공정의 경제시스템‘을, 교육노동분야는 반상진 전북대 교수가 ‘한국교육과 노동시장의 연동에 촛점을 둔 교육불평등 극복과 교육의 정상화’를 발표했습니다.

외교안보분야는 정일준 고려대 교수가 ‘외교안보레짐의 사회적 구성‘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소 소장이 한국보고서에 대한 종합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자료집(여기☞[다른백년] 한국보고서 자료집_170616)을 다운로드하시면 됩니다.  

한국보고서의 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월, 2017/06/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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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4일, 오후 4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사드 철회 범국민 평화행동’이 열립니다. 

오는 29일과 30일 이틀 간 미국백악관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사드배치가 주요 현안으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이번 행사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대의사를 미국 당국에 명확히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 행사는 사드 한국배치저지 전국행동이 주최합니다.  (사)다른백년은 그동안 꾸준히 사드 한국배치의 부당성을 주장해왔습니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사드철회 범국민평화행동

월, 2017/06/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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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기치로 지난해 6월, 출범한 (사)다른백년이 창립 1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사)다른백년은 연구활동을 통한 연구기반 구축,  전문가 칼럼 등을 통한 선도적 의제 제기, 백년포럼과 강연 등을 통한 시민과의 소통 등에 주력해왔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 덕분에 이만큼 왔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여기 두 개의 영상이 있습니다. 첫번째 영상은 지난 1년의 활동을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두번째 영상은 지난해 첫 출발하면서 포부를 밝힌 것입니다.  두 영상을 비교해보시면, (사)다른백년이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 왔는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다른백년도 쉼없이 전진하겠습니다. 

 

화, 2017/06/20-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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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혁신’ 

6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상곤(68) 전 경기도교육감을 설명하는데 항상 따라 붙는 수식어다. 

공교육 정상화, 보편적 복지, 학생인권 등 진보적 의제들은 그의 손을 거쳐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의 정책으로 현실화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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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상곤 교육부장관 후보자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

이제 그는 경기도를 넘어 한국의 교육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수장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됐다. 언론은 문 대통령이 그를 지명한 것에 대해 새정부가 개혁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가 인사청문회라는 험난한 검증대를 넘어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를 한국 사회 전체에 던질 수 있을까.

민교협 창립 주도…독재와 싸웠던 행동하는 지식인

1949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김 후보자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병치레를 자주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어린 시절을 비롯해 그의 청·장년기는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 운동과 궤를 같이했다.

 

“4.19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이고, 5.16이 6학년 때인데요. 4.19때 우리 학교 옆에 공고가 있었어요. 공고학생들이 우리 학교 담을 뛰어넘어서 우리 학교 교문으로 거리 진출을 하더라고요. (중략) 고등학교(광주제일고) 가서는 광주학생운동의 태동지에 어울리게 여러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사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혁신을 말하다> 지승호·김상곤 저) 

1969년 박정희 정권 아래서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발을 들였다. 1971년 상대 학생회장,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교련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 제적된 뒤 강제 징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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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상대 졸업 당시의 김상곤 후보자의 모습. 왼쪽에서 3번째. (사진 출처: http://koridol.tistory.com)

당시 박정희 정권은 1971년 10월 15일, 이듬해 단행한 ‘10월 유신’의 사전 조치로 ‘위수령’을 발동했고, 서울대 등 10개 대학에 휴업령을 내렸다. 당시 김 후보자를 비롯해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이호웅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김재홍 경기대 교수 등 200여명의 대학생들이 데모 주동자로 몰려 제적되고 일부는 강제 징집을 당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다시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다.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86년 6월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전국대학교수단 명의로 발표된 ‘연합시국선언’ 초안을 고 김수행·정운영 교수와 함께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합시국선언에는 △민중의 생존을 위한 권리와 요구가 완전히 반영될 수 있는 민주헌법 △대학과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미 및 반일 등 반외세 주장을 반국가나 용공으로 단죄하려는 흑백논리에 반대 △사회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자주적 경제체제의 모색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 등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진보·개혁적 가치 등이 담겼다. 

이후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다. 

1987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창립을 주도하고, 1995~1997년 민교협 공동의장을 맡아 지식인과 사회 운동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힘을 쏟았다. 전두환·노태우 구속 수사 운동(1995년), 에너지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저지 운동(1997년), 전국교수노조 위원장(2005~2007년) 등 진보 운동에 꾸준히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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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국립대 법인화 반대 교수대회에서 당시 김상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이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kyosu.net/)

‘무상급식’…한국 정치에 등장한 첫번째 진보의제

강단과 거리에서 보내온 그의 삶은 2009년 전환점을 맞는다.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2010년 연임하며 민선1·2기 교육행정가로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게 된 것이다. 

이론과 사회 운동으로 다져온 그의 진보적 의제들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정책으로 현실화됐다.  ‘무상급식’은 사회적 논쟁으로 이어졌고, 전국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보편 복지’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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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경기 광주 오포초등학교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배식을 마치고, 학생들과 점심을 먹고 있다. 그의 브랜드가 된 ‘무상급식’을 통해 그는 한국 정치에서 최초로 복지 의제를 수면으로 올렸다.

교육의 공공성과 학생들의 인권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추진한 혁신학교, 학생 인권 조례 등의 정책도 진보성향 교육감들이 잇달아 도입하며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2010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해 당비와 후원금을 낸 혐의로 기소된 전교조 교사를 중징계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을 어기고 경징계하는 등 중앙정부와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내세운 ‘진보 아젠다’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침체에 빠져있던 진보·개혁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 지방선거는 ‘3무1반 정책'(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반값등록금)이 표심을 갈랐고, 야권에 승리를 안겨줬다.

선출직에는 연이은 불운…교육정책 수장으로

2014년 교육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폭을 넓혔지만 성적표는 썩 좋지 않았다. 

2014년 6·4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 경선에 도전했지만 탈락했고, 같은 해 7.30 수원을 국회의원 재선거 때도 공천을 신청했지만 후보가 되지 못했다. 

선출직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2015년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혁신 작업을 맡는 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주목을 받았다.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가 가진 ‘진보·개혁·혁신’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김 후보자는 11차례의 혁신안을 발표했고 이를 당헌·당규에 반영했다. 그는 혁신위를 마무리하며 성적표를 B+로 자평했다. 당시 혁신위는 시스템 공천안을 마련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 깊은 계파 갈등 문제의 해법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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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대회에서 후보로 확정된 김상곤(왼쪽부터), 이종걸, 추미애 당대표 후보가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 경선의 최종 승자는 추미애였다.

혁신위위원장을 하며 “나부터 내려놓겠다”고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그는 8.27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현실 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패배했다. 

하지만 그가 정책으로 증명해온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를 현실 정치권은 계속 호출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교육 정책 전반을 다듬었고, 새정부 출범과 함께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김 후보자는 진보와 운동권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되는 ‘강성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온화하고 젠틀하다”고 평가한다. “학교를 방문하면 경비원에게까지 예의를 갖출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정책으로 실현할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계속해왔다. “온화하지만 강단 있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성향이 그를 지금까지 이끌어온 동력인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는 논문 표절 의혹 등을 제기하는 야당과 언론의 검증 공세를 넘어야 한다. 그가 이번에도 얽히고설킨 한국 사회의 교육 문제를 진보와 혁신이라는 화두로 풀어낼 수 있을까. 

수, 2017/06/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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