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경찰의 근거없는 광범위 정보수집과 청와대의 정보 활용 중단해야 한다
2017년 10월 17일 서울아덱스2017 행사장 록히드마틴 부스 앞
“전쟁 장사를 멈춰라!”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무기거래 시장 ‘서울아덱스2017’이 경기도 성남시에서 열렸습니다.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의 곡예비행,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무기, 이벤트와 전시로 채워진 행사이지만 그 본질은 살상 무기 시장입니다.
이에 시민과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무기 상인들은 이윤을 위해 군사적 긴장과 전쟁을 기획하고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달러를 만지며 기뻐할 때 누군가는 피를 흘립니다. 매일 전쟁으로 1,500명이 생명을 잃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입니다. #STOP_ ADEX
시민의 힘 2017
이 달의 참여연대
박근용 사무처장이 공유드립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자연의 이치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부르지요. 말馬과 연관된 사자성어로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한다’는 뜻의 주마가편走馬加鞭도 있습니다. 지난 한 달, 참여연대는 주마가편의 마음으로도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민주, 정의, 평화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을 정부와 국회가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촉구할 것은 촉구하고, 개혁을 가로막는 세력과 집단을 비판하고 견제하느라 동분서주했습니다. 지난 한 달간의 참여연대 활동을 보고드립니다.
강원랜드 부정채용 관련 손해배상소송 원고 모집
지난 9월 알려진 강원랜드의 부정채용 사건에 많은 이들을 분노했습니다. 참여연대는 9월 27일에 여러 청년모임들과 함께 채용청탁을 한 자유한국당 권성동, 염동열 의원 등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지만 제대로 수사할 수 있도록 압박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참여연대는 강원랜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자 10월 18일부터 원고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둘째 주까지 모집 예정이며, 2012년 강원랜드 1차 하이원 교육생 모집과 2013년 강원랜드 2차 하이원 교육생 모집 전형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정청탁을 하고 채용을 한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별개로, 공정한 채용에 대한 응시생들의 신뢰를 저버린 회사 측에 민사적 책임도 추궁하려고 합니다. 부정채용 관련 손해배상소송에 함께하길 원하는 분은 참여연대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02-723-0666, [email protected],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우리동네 참여연대’와 지역회원 만남의 날
올 상반기부터는 수도권에서 ‘우리동네 참여연대’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활동가와 회원님들이 평일 저녁 한 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회원님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식당 등에서 가볍게 만나는 자리입니다. 9월 26일는 부천에서 회원님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 회원님들을 만나는 자리도 준비했습니다. 상반기에는 광역시를 중심으로 열었는데, 10월 18일에는 원주지역(제천 포함)에서 회원 만남의 날 행사를 열었습니다. 11월 11일에는 제주지역회원 만남의 날도 준비했으니, 제주 회원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릴레이 입법청원 완료
참여연대는 유권자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참정권 확대, 각 정당이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왔습니다. 올해는 여러 사회단체들과 함께 ‘정치개혁공동행동’을 결성해 주요사무를 맡고 있습니다.
9월 11일부터 시작한 각계각층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릴레이 입법청원’은 10월 17일 여성운동계의 청원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그에 앞서 있었던 청원단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8세 참정권 및 모의투표 법제화(한국YMCA전국연맹)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방선거제도 개선(정치개혁공동행동) △피선거권 하향 조정과 청년 할당제(정치개혁청년행동) △기초의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지역정당 허용 등(정치개혁부천행동/서울행동(준)/부산행동/경남행동) △지역정당 허용과 지방선거에서 비례성 보장 등(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민주노총/한국노총)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정치자금의 투명성 보장 등(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9월 27일에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민정연대 추진 간담회’에도 다녀왔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들간의 간담회였는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김두관 의원, 국민의당 정동영, 천정배, 박주현 의원, 바른정당 정양석 의원, 정의당 심상정, 추혜선 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촛불시민혁명 시작일로부터 1년
10월 28일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후 5개월가량 탄핵결정이 날 때까지 보여준 시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촛불시민혁명 시작일 1주년을 맞아 당시 촛불집회의 준비와 진행을 맡았던 퇴진행동의 후속모임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가 10월 28일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은 계속된다’를 주제로 집회 및 각종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참여연대도 그날 광화문광장에서 검찰개혁의 대표적 과제인 ‘고위공직자비리(범죄)수사처’ 설치 촉구 시민캠페인, 국가정보원 전면 개혁 시민홍보 캠페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 과제 시민홍보 캠페인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국민개헌넷,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초청 토론회 개최
참여연대는 10월 12일,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국민주도헌법개정네트워크(이하 ‘국민개헌넷’)를 발족시켰습니다. 현재 전국 119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그동안 국민들이 참여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지방순회 국민대토론회’를 진행했고, 국회 귀퉁이에 개헌자유발언대를 설치해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을 이야기해왔습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국회 개헌특위가 스스로 구성했던 6개 분과 53명의 자문위원들이 제출한 자문보고서도 수용하지 않고 공개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민개헌넷은 10월 18일(수)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국민주도 헌법개정의 방향과 쟁점’이라는 주제로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초청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의 사회로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신필균(기본권/총강), 김성호(지방분권), 유종일(경제/재정), 김종철(정부형태), 이준한(정당선거), 정태호(사법부)님의 분야별 발표와 한상희 국민개헌넷 정책자문위원장, 김준우 국민개헌넷 정책팀장이 지정토론을 했습니다.
금융당국 퇴직공직자 취업실태 보고서 발간
퇴직예정 공직자가 퇴직 후 취업을 목적으로 특정업체에 특혜를 주는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기업에 취업 후 정부(공공)기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공직자들의 퇴직 후 취업을 제한하고 심사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하지만 ‘퇴직후취업제한’ 심사가 너무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10월 18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퇴직공직자 취업실태 보고서(2011~2017)>을 발표했습니다.2011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이들 3개 기관의 퇴직공직자 중 금융기관 또는 금융관련기관에 취업하고자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대상자는 모두 48명이었는데, 이중 90%에 해당하는 43명에게 취업가능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들이 취업한 곳은 ①증권회사, 금융투자사 등 ‘금융투자회사’ 8명, ②종합금융사, 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 7명, ③신용카드, 캐피탈 등 ‘기타금융회사’ 7명 ④‘보험회사’ 4명, ⑤금융결제원, 자금중개회사 등 ‘금융보조기관’ 3명, ⑥‘은행’ 1명, ⑦금융관련 협회 등 금융위원회 소관 비영리기관, 대부업체, 핀테크사업 운영 기업 등을 포함한 금융관련기관 13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중 16명은 업무연관성이 의심되는 금융기관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피해사례 발표회 잇달아 개최
국정감사와 법률 제·개정안 심의가 집중되는 정기국회를 맞아 경제민주화 분야의 문제를 다루는 연속토론회와 사례발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먼저 9월 7일에는 <가맹점 대리점 피해사례 발표 및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어 피자헛, 미스터피자, 샘표식품, 남양유업 등 가맹점과 대리점에서 벌어진 사례를 중심으로 가맹점과 대리점 불공정 피해사례 발표를 했습니다. 9월 13일에는 <문화산업 불공정 피해사례 발표 및 제도개선 토론회>를 열었으며 9월 26일에는 <하도급 갑질·기술탈취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사례 발표대회>도 열었습니다. 그리고 9월 25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 등에 초점을 맞춘 <공정거래위원회 신뢰회복을 위한 개혁과제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부당한 피해사례에 귀 기울이고 엄격한 처벌과 제도개선에 착수할 때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부동산 공시가격 정상화 방안 이슈리포트 발표
9월 28일 <부동산 공시가격의 정상화 방안> 이슈리포트를 발표했습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가격입니다. 따라서 공시가격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만큼 세금부과 기준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고, 지역별 또는 가격대별로도 현실 반영률에 차이가 있다면 조세부담률이 공평하지 않게 됩니다.
2017년 상반기에 거래된 서울 아파트 45,293건을 조사한 결과, 서울 아파트의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은 평균 66.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실거래가가 높은 아파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공시가격의 현실 반영률은 낮아, 주택의 자산 가격이 높을수록 상대적 조세부담률은 낮아지는 폐해도 드러났습니다. 실거래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공시가격으로 인해, 현행 제도로는 과세표준이 왜곡되어 종합부동산세가 제대로 부과되지 않고 있습니다.
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부동산 가격공시 제도를 정상화하는 것은 조세정의를 바로잡는 길이기도 합니다.
전쟁무기 장사를 막기 위한 평화행동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의 곡예 비행,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미래형 무기, 이벤트와 전시로 포장된 무기박람회 서울 아덱스의 본질은 살인무기 시장입니다. 에어쇼의 굉음 뒤에서 전세계의 무기 상인들이 무기를 사고 팝니다. 거래에 참여하는 국가들 중에는 독재국가, 전쟁 중인 국가도 있습니다.”
참여연대가 여러 평화단체들과 함께하는 ‘아덱스저항행동’의 설명 일부분입니다.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서울공항에서는 아덱스(ADEX)라고 부르는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첨단 무기 전시회입니다.
참여연대는 10월 16일, 무기업체 관계자들을 위한 환영만찬 행사장 앞에서 “죽음의 시장 아덱스, 전쟁장사를 멈춰라!” 피켓팅을 진행하였습니다. 18일에는 ‘한국 군수산업체의 성장’을 주제로 강연회를 열었고, 21일에는 성남 서울공항 아덱스 행사장 입구에서 무기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을 위한 홍보캠페인을 전개하였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조세포탈 봐주기 정부규탄 기자회견
10월 17일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과 함께 ‘이건희의 금융실명제 농단과 조세포탈에 면죄부를 준 금융·과세당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참여연대와 박 의원은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에 의해 드러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해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았던 국세청과 △2008년을 전후하여 이루어진 이 회장의 차명재산 실명전환 과정에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실명법’) 부칙 제6조 및 제7조에 따라 금융기관이 과징금 징수와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징수를 하도록 감독하지 않은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를 규탄하고 △이건희의 차명재산 실명전환 과정이 ‘사기 또는 부정한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 경우 아직도 과징금과 소득세를 징수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이건희 차명재산의 실체와 실명전환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국회가 당장 조사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부동산 가격 높을수록
세금을 적게 낸다?
황당한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 자산 가격 높을수록 보유세 부담 낮아져
글. 홍정훈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
지난 9월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조지 헨리를 인용하며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발언이 연일 화제다. 보유세 인상에 대한 최근 여론은 10여 년 전 참여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할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주거 문제가 심화되면서 부동산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지표로 자리 잡게 된 데 있다. 강남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 소유하며 수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자산가에 대한 기사와,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쪽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는 세입자에 대한 기사가 신문 한 면에 나란히 배치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 과연 적정한 수준일까?
최근 논의되고 있는 보유세 인상은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금 폭탄’이라는 누명을 썼던 종합부동산세 논란은 2008년,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의 세대 합산 과세 방식을 위헌으로 판단하며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의 세율을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깎는 ‘부자 감세’ 정책을 폈다. 최근 부동산 보유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활발해지기 전까지는 보유세의 적정 수준에 관한 사회적 논의는 전혀 진전된 바가 없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도 종합부동산세로 대표되는 부동산 보유세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질 만큼 공론화하기 두려운 의제였다.
부동산에 붙는 두 가지 가격 : 공시가격 vs 실거래가
보유세의 산정 기준은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매년 발표하는 공시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부동산은 매년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시가격과 실제 거래가 성립하는 가격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사이에 괴리가 상당하다.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3년 기준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국 부동산의 공시가격은 실거래가의 65%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수준으로 발표되어야 함에도, 정부 스스로 법의 취지를 어기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부동산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자료를 공개하면서도, 공시가격의 현실 반영률을 비교하는 자료는 생산조차 하지 않는다.
실거래가 9억 원 넘는 서울 아파트 소유자 중
71.7%가 종합부동산세 안 낸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는 정부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2017년 상반기 거래된 서울 지역의 아파트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를 비교해보았다. 그 결과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실거래가의 66.5%에 불과했다. 또한 서울 아파트의 가격과 세금 부담을 구(區)별로 조사한 결과, 평균 실거래가 10억 원이 넘는 강남구·서초구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실제 가격과 가장 큰 차이를 나타냈다. 아파트 가격이 높을수록 공시가격의 현실 반영률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실거래가 9억 원을 넘는 서울 아파트 소유자 중 71.7%가 실제로는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에서 제외됐음을 알 수 있었다. 공시가격은 종합부동산세의 기준인 9억 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강남·서초·용산구 아파트 소유자
보유세, 현행 제도로 1/3 수준으로 감면돼
보유세 제도에는 공시가격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공시가격의 80%만 반영하도록 해, 가뜩이나 현실 반영률이 낮은 공시가격마저 온전히 세금의 기준으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라는 제도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부동산 가격의 동향을 60~100%의 범위 내에서 매년 유동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2009년 이후로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보유세 기준을 낮추는 데 악용되어온 이 제도로 인해 결과적으로 고액 부동산을 소유한 자산가의 세금은 훨씬 줄어들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강남구·서초구·용산구의 아파트 소유자가 납부하는 평균 보유세는 현재 제도를 기준으로 129만 원이다. 보유세의 기준을 정상화하면 이들이 낼 평균 보유세는 373만 원이 된다. 현재 보유세 제도가 고액 부동산 소유자가 납부해야 할 보유세를 1/3 수준으로 감면해주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보유세 정상화, 자산불평등 완화를 위한 지름길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사용했던 방식으로 제윤경 의원이 한국의 자산불평등을 측정,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은 세계에서 자산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로 나타났다. 이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산 부유층에 대한 누진적 과세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투기수요를 억제하고 1가구1주택 정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종합부동산세의 도입 목적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동향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 제도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거꾸로 조세정의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 당장이라도 왜곡된 부동산 보유세 제도를 바로잡아 자산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공시가격을 실거래가 수준에 근접하도록 현실화해야 하며, 동시에 보유세 인상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은 더 이상 보유세 인상에 대한 공론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여론의 힘을 얻어, 보유세를 정상화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다.
한반도 핵위기,
정부의 대응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글. 김건우 참여사회연구소 간사
1945년 미국의 핵투하로 시작된 세계적 핵경쟁은 1970년 UN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발효로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듯 보였다. 이어 1995년 NPT의 무기한 연장이 결정되고, 이듬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채택되면서 많은 이들은 인류에 대한 핵위협이 상당 수준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NPT체제는 기본적으로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에 각각 다른 조약의무를 부과한다. 즉 비보유국은 모든 핵활동에 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제재를 받지만, 보유국의 경우 그렇지 않다. 이렇듯 NPT체제는 핵의 수직적 확산에 대한 통제만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핵위협에 맞서 상호확증파괴(MAD)①를 성립하려는 비보유국의 핵개발②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지구상에는 ‘사실상(de facto)의 핵무기 보유국’이 여럿 존재하고 있다.
주지하듯 북한 또한,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하고 본격적인 핵개발에 착수해 현재 상황에 이르고 있다. 핵확산을 막고자 하는 국제 사회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북한은 여섯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핵무기 보유에 매우 근접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핵위기를 타계할만한 묘책은 요원해 보인다. 핵전쟁의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과거의 몇몇 위기국면을 막아낸 반핵평화운동, 관련 국가 간 외교와 대화 또한 실종된 듯 보인다.
이에 참여연대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9월 28일, 현재의 핵위기 국면의 복잡다단한 변수들을 분석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응전략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참여사회포럼-한반도 핵위기, 정부의 대응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를 개최했다.
위기의 한반도, 달라진 조건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선 비핵화-후 평화협정’을 공식입장으로 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평화협정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성되고 재래식 무기의 축소 등의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체결된다. 북한은 지난 2005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며, 자연히 비핵화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핵과 안전보장을 맞바꾸는 연성균형(soft balancing)의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핵무력과 미사일 능력의 큰 전진을 이루면서 평화체제와 비핵화 연계를 거부하고 있다. 즉 북한은 핵과 미국의 핵위협을 맞바꾸는 경성균형(hard balancing)을 추구하고 있다. 비핵화의 대가였던 평화협정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격하된 것이다.
발제자로 나선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모두 이러한 변화를 지적했다. 또한 이를 전제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핵화를 ‘입구론’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의 포괄적 추진으로 최종단계에서 실현하는 ‘출구론’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가 아니라 ‘평화체제 형성을 통한 비핵화’로 문제해결 전략을 담대하게 수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은 있는가?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말폭탄’이 거듭되고 군사적 긴장이 극단으로 치닫는 동안에도 ‘운전자’ 역할이나 중재는커녕 참수부대를 운운하며 위기고조의 당사자가 되었다. 실제로 근래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대북 압력 극한까지 높여야”,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제재”, “도발의 강도를 높일수록 몰락의 길로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이 진정한 대화의 길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한층 더 옥죄어질 것” 등의 위험한 언사를 쏟아내며 ‘최대한의 압박’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최대한의 관여’는 대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태호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관여 내용은 주관적 ‘제안’에 머무르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제안이 총체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또한 현재 상황을 ‘북핵 정책 실종사건’으로 명명하며 현 정부의 남북대화론이 거세되었다고 수위 높게 비판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핵위기 상황을 해결해나갈 운전대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날 참석자들은 상황을 대체로 비관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변곡점이 될 계기들을 제시했다.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방문과 미중정상회담 등이다. 이에 대해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7년 하반기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없는 시기이며, 북한도 핵실험의 기술적 과정을 끝내면 대화공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중국의 19차 당대회, APEC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등의 외교일정을 통해 국제적 입장조율과 협상공간 창출을 주문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핵억지’라는 환상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실험이 거듭되면서 국내에도 다시 핵보유론이 꿈틀거리고 있다. 보수세력은 전술핵 도입을 주창하고 일부는 NPT 탈퇴와 자체 핵무장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들의 핵보유 근거는 대북협상 수단으로 활용하고 북핵에 ‘남핵’으로 맞서자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사史를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듯이 핵무장으로 돌아올 국제적 압박과 제재를 감내해야 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 7월 7일 UN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이 채택되었다. 기존의 NPT를 대체할 수준의 확장된 범주로 핵무기를 금지하는 조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어 국제반핵평화운동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알리고 조약이 채택되는 데 기여한 바를 인정해 노벨상위원회는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을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지구적 위험을 초래하는 핵무기는 방어와 안보, 자강도 아닌 오직 평화의 반대말일 뿐이다. 이 땅에 발 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무기와 갈등, 긴장이 아니라 안전하게 살 권리이며 평화로운 삶을 누릴 권리이다.
① 핵무기의 절멸적 능력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한 두 국가 사이에는 상호 파괴를 확증하는 상황이 성립되므로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개념.
② 사실상 핵발전과 핵무기 개발은 기술적으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NPT 체제가 보장하는 ‘핵의 평화적 이용(핵발전)’이 핵무장 전환으로 활용되어왔다.
파리바게뜨 직접고용 D-7 일 전 직접고용 촉구, 철야농성 돌입 기자회견
2017년 11월 2일(목) 오전 10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제빵기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지난 9월에 있었고, 고용노동부는 SPC 본사에 '직접고용'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SPC 본사에 빠른 직접고용 지시 이행을 촉구하고자 노동조합, 시민단체, 정당이 모여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다음주에는 불법파견 해결과 제빵기사의 처우개선 등을 목표로 활동할 시민사회단체 연대체가 출범합니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의 불법파견 문제는 기존의 불법파견 문제와 또 다른, 민간영역에서 확인된 변칙적인 고용형태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함께,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의 실태를 보여줍니다. 직접고용 지시 이행 여부가 민간 부분의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회피하는 꼼수의 중단을 촉구하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 2017년 11월 2일(목) 오전 10시,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
직접고용 D-7일 전,
파리바게뜨는 불법파견 노동자를 즉각 직접 고용하라!
고용노동부의 불법파견 직접고용 시정명령 기한 11/9일이 7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파리바게뜨 본사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고 무책임으로 일관하며, 애꿎은 가맹점주나 협력사들 앞세워서 꼼수 고용에만 골몰하고 있는 모습이다. 불법파견과 수백억의 체불 임금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지 언 4개월이 지났지만, 파리바게뜨는 일언반구 사과 한마디 없이 무시하고 있다. 그런 자본이 소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홈페이지에 버젓이 내걸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울 뿐이다.
노동권은 비용이 아니다, 시정명령 회피하려는 꼼수 고용 중단하라!
파리바게뜨는 최근 협력사를 앞세워 상생기업이라며 합작회사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런데 파리바게뜨 가맹사업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불법 무허가 파견업체가 상생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가? 더구나 설명회에서는 ‘직접고용해도 파견법 위반이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부가 불법을 시정지시라도 했단 말인가? 사실을 왜곡하고 선량한 청년노동자들을 기만하여 얻으려는 상생은 도대체 누굴 위한 상생인가?
합작회사는 합법을 가장한 위장 도급업체일 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결국 노동권은 더욱 제자리를 찾기 어려워 질 것이다. 특히 합작회사는 본사가 점주들한테 부담을 전가하는 합법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 되어, 가맹점주들이 그토록 우려하던 비용 전가를 점주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제빵, 카페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노동기본권을 한낱 비용으로만 치부하는 상생기업은, 결국 불법업체 편익 봐주면서 본사 부담 떠넘기고 제빵노동자 차별하는 꼼수 고용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파리바게뜨는 불법파견 전문업체의 불명예를 진정 씻어낼 생각이 없는가?
파리바게뜨는 얼마전 물류센터와 배송 쪽에서도 불법파견이 드러나 가히 불법파견 전문업체가 되버렸다. 회사는 물류센터의 경우 즉시 직고용 한다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복지 부문 몇 가지 개선한 것 말고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등 본질적 부문에서는 여전히 차별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무늬만 정규직으로 전환한 위법적 고용관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파리바게뜨의 위법적 고용관행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이번 제빵,카페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 직접고용 문제는 더욱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 나아가 파리바게뜨 문제는 불법적 고용관행을 뿌리뽑고,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중요한 계기점이 될 것이다.
D-7일을 앞두고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오늘부터 철야농성에 돌입한다!
노조는 수차례 대화를 제의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파리바게뜨에서 돌아온 답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당사자도 아닌데 어떻게 업무를 직접 지휘, 감독했단 말인가? 불법파견, 직접고용을 이행해야 할 직접 당사자는 파리바게뜨 본사다. 지금 벌어진 모든 문제의 핵심 키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쥐고 있다. 이행당사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
노조는 책임 당사자가 시정명령 이행 기간을 지켜 직접 고용할 것을 강력 촉구하며 오늘부터 본사 앞 철야농성에 돌입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정기간이지만 지금이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는 기업답게 정도를 찾아가길 바란다.
문제는 헬조선 청년노동자 문제다,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해 나갈 것이다!
정치권까지 논쟁에 가세한 파리바게뜨 문제는 본의 아니게 단순한 노사 문제를 넘어 온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파리바게뜨는 이제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민간부문에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를 가늠할 잣대가 돼버렸다. 또한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는 헬조선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 파리바게뜨 문제 해결을 위해 노조 차원의 대응을 넘어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폭넓은 연대로 대응해 나갈 것이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와 개선을 위한 사회적 연대의 길을 더욱 넓히고 탄탄히 해 나갈 것이다.
- 파리바게뜨는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즉각 이행하라!
- 꼼수 고용 중단하고 직접고용 이행하라!
2017. 11. 2.
전국화학섬유산업노동조합 / 파리바게뜨지회
참여사회
2017.11
어른들이 알고 있는 청소년은 그들을 대표하는 보편적인 존재일까요?
아니면 자극적인 미디어 세계가 규정한 청소년일까요?
요즘 애들은’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을 돌이켜 보세요.
‘한 번이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적 있는지.
- atopy
04 여는글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촛불시민혁명 하태훈
06 아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김균
특집. 소년이 온다
08 ‘요즘 것들’에 관한 오해와 진실 장근영
11 소년법 개정 필요도 가능성도 없다 김광민
14 모두의 참정권 트리
17 청소년, 그들은 누구인가? 김민웅
사람
22 통인 용서와 관용의 법정 -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이한나
28 만남 스무 살, 우리 이야기 - 장남일 회원 호모아줌마데스
기획
32 기획 서촌! 오래된 길, 그러나 신선한 길 황평우
칼럼
36 경제 내년도 예산증가율이 7.1%라고 말하면 원숭이? 이상민
38 역사 참교육의 불꽃, 김철수 권경원
40 환경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소중한 장성익
만화
42 만화 이럴 줄 몰랐지 <이사> 소복이
살맛
44 읽자 오래 함께할 이야기, 매력적인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박태근
46 듣자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말하는 것들 서정민갑
48 떠나자 늦가을, 숲길을 걷다 정지인
뉴스
52 현장 전쟁 장사를 멈춰라! 이영미
53 공유 이달의 참여연대 박근용
58 심층 부동산 가격 높을수록 세금을 적게 낸다? 홍정훈
60 담론 한반도 핵위기, 정부의 대응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김건우
62 참여 아름다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시민참여팀
알림
64 투명회계 일상에서 변화를 일구는 힘 김현정
66 튼튼날개 참여연대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박효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촛불시민혁명
글.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강의하고 연구하는 형법학자다. 참여연대 초창기부터 사법을 감시하고 개혁하는 일에 참여했다. ‘성실함이 만드는 신뢰감’이라는 이미지가 한결같도록 애써야겠다. 조금씩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서초구에 살고 있다.
시작도 창대했지만 나중은 더 창대했노라. 2천여 명 참가 예상 속에 2만 명으로 열린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 1차 청계광장 집회에서 이미 들불을 잉태하고 있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촛불집회’는 그렇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1,700만 명이 써내려간 민주주의 역사는 처음도 웅대했지만 끝은 더욱 찬란하였다. 촛불시민의 ‘혁명’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하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평화로운 집회시위가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임을 세계 시민에게 각인시킨 대한민국 촛불시민이었다.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확인하고 확장시킨 촛불집회였다. 정치적 동력으로 작동한 촛불이어서 더욱 그렇다. 국회의 탄핵소추의결과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파면결정에 이르기까지 촛불광장의 시민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 촛불시민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했던 세력을 끌어내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다. 그러나 침식되고 허물어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복원할 길은 아직도 멀다. 1주년을 맞은 촛불시민혁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계가 놀라고 인정한 촛불시민
촛불시민은 박근혜의 실정(失政)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대한민국 품격을 한껏 드높였고, 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미국 아틀란틱카운슬(Atlantic Council)로부터 ‘2017 세계시민상(Global Citizen Award)’을 수상하면서 “세계시민상은 문재인 개인이 받는 것이 아니라?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한국의 촛불시민들을 대신해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상을 지난겨울 내내 추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께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 평화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세계 민주주의 위기에 희망을 제시한 ‘촛불시민’은 상 받을 자격이 있다. 아직 미완성인 촛불시민혁명이 완성되는 가까운 미래에 노벨평화상도 받았으면 좋겠다.
독일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은 박근혜정권퇴진 촛불집회에 나선 대한민국 국민들을 ‘2017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평화적 시위와 비폭력적 집회를 가장 열정적으로 옹호했던 조직으로서, 한국 민주주의에 새 활력을 불어넣으며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행사해온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이 상을 수여 받았다. 이렇게 촛불시민은 세계시민이 축하하고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표상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은 시민
퇴임을 앞두고 지난 1월 고별연설을 했던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도 우리 촛불시민을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헌법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선물이지만 양피지에 불과할 뿐 스스로 힘이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참여와 선택, 단결에 의해서 거기에 힘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직분은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의 교본 같은 퇴임연설이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촛불시민이 양피지에 쓰여 있는 주권자인 국민을 불러일으켜 나라의 주인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헌법을 살아있게 만드는 사람은 정치인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다. 바로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다.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지만 그 권력을 다시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 때만 표를 던지는 수동적 주체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과 유리된 정치로부터 국민이 함께하는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신고리 원전건설 재개여부에 관한 숙의민주주의가 그 예다. 중요한 국가정책결정의 공론화과정에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하니 그 결정에 승복하게 되어 사회적 갈등도 줄어들 것이다.
혁명은 국민참여 개헌으로 완성되어야
이 모든 것은 법과 제도의 개혁으로 가능하다. 혁명은 개헌으로 완성되고 마무리되는 것이 우리의 헌법 개정 역사와 세계사적 경험이다. 국민이 능동적 주권자가 될 수 있도록 헌법이 바뀌어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주인인 헌법이어야 한다.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그랬던 것처럼 정치권과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절차적으로는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내용적으로는 국민이 권력의 주체가 되는 개헌이어야 한다. 촛불시민의 집단지성으로 헌법을 새로 써야 한다. 그래서 촛불시민혁명 1주년 기념식에도 광장의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라는 저항이었으므로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촛불시민은 계속 깨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참여사회
이번 호 특집은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를 포괄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최근 청소년 강력범죄가 연이어 일어나자 정치권 등 일각에서 ‘소년법’ 개정 내지는 폐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집 필자들은 ‘소년법’ 개정은 전혀 불필요하며, 요즘 청소년이 과거에 비해 오히려 온순하고 암울한 미래전망에 고통받고 있을 뿐 아니라 청소년 인권을 우리 법체계가 잘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청소년 참정권은 확대되어야 한다는 등의 견해를 차분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우리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미래로서 정당한 보호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성인과 어린이 사이에 방치되어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통인>에서 이한나 간사가 만난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의 활동과 마음 씀씀이가 훌륭해 보입니다. 그는 다른 법조인들이 굳이 맡으려 하지 않았을 소년법정을 지난 8년간 자원해서 맡아 하루 100건 이상의 재판을 했답니다. 2010년부터 그가 조용히 추진하고 있는, 비행청소년을 도와주기 위한 ‘청소년 회복센터’가 잘되면 좋겠습니다.
호모아줌마데스의 <만남>은 좀 특별합니다. 참여연대 노래패 ‘참좋다’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참좋다’ 회장이자 원년 멤버인 장남일 회원을 만났습니다. 무대에서 그렇게 사회도 잘 보고 노래도 잘 부르는 그가 ‘사회 공포증’이 있어 공연 전에 늘 청심환 같은 약을 복용한다니, 참 의외입니다. 노래로 늘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고마운 회원모임, ‘참좋다’의 20주년 기념공연이 오는 12월 2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립니다. 미리 축하합니다.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의 연속칼럼을 싣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참여연대는 서촌 지역주민입니다. (근거가 박약한 일설에 의하면 참여연대 자리는 세종임금 탄생지랍니다.) 그래서 『참여사회』는 서촌의 역사, 문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서촌역사기행> 기획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황평우 소장께서 칼럼을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추분도 지나고 11월이 되니 이제 밤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황현산 선생의 책 제목 『밤이 선생이다』가 말해주는 것처럼, 밤은 낮의 상처를 치유하고 한낮의 들뜬 생각을 가라앉혀 생각에 깊이를 더해 줍니다. 아마도 한낮 세상사의 소란함과 부박함이 다 지워진 밤이 되어야 사물의 핵심이 드러나는 모양이지요. 가끔씩 밤하늘의 깜깜한 어둠도 올려다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김균
특집1_소년이 온다
‘요즘 것들’에 관한
오해와 진실
글.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심리학 박사
청소년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누구나 그 시절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다. 누구에게나 청소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요즘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청소년이던 그 시절과 얼마나 다른지를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소수집단이 되어버린 청소년
1990년 우리나라에서 24세 이하 인구의 비율은 46.1%였다. 당시 아동과 청소년은 전체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하지만 저출산 기조가 계속되면서 이 비율은 계속 감소해서 2016년에는 26.5%, 즉 1/4 수준으로 줄었다. 25년 동안 청소년 인구비율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물론 아직까지 이 비율은 G7국가 평균인 27%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 23%, 일본 22.6%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서 그 감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앞으로 7년 후 2025년이 되면 24세 이하 인구는 21%로 G7국가 중 최저치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변화는 단지 학생 수가 줄어들고, 미래 인구가 감소하는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단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줄었고,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차지하는 자리가 축소되었음을 의미한다. 안 그래도 투표권도 없어 정치적으로 늘 뒷전에 밀리는 청소년문제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온순해진 청소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신 분도 있으리라. 최근 청소년들은 흉포하고 잔인한 범죄로 뉴스 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범죄율은 꾸준히 감소 중이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을 제정한 가장 큰 이유가 청소년범죄였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 당시 청소년범죄는 최고점에 도달해서 폭행상해범죄의 50%, 절도범죄의 30%가 청소년들이 저질렀다. 하지만 그 이후 청소년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했다. 비록 같은 연령기준은 아니지만 2016년 대검찰청 범죄분석자료에 따르면 전체범죄 대비 소년범죄의 비율은 2008년 5.5%에서 2015년 3.5%까지 감소했다. 청소년 비행도 줄어들고 있다. 청소년의 흡연율은 2011년 12.1%에서 2016년 6.3%로 줄었고, 가출경험 역시 2011년 20.6%에서 2016년에는 15%까지 감소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얼마나 윤리적인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더욱 확실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청소년정책 담당자들이 한결같이 놀라는 건 서울의 치안수준과 길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착하고 친절하다는 사실이었다. 외국의 청소년들이 마약과 총기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게임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국가적 문젯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범죄가 이슈가 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이전에 비해서 청소년범죄 사례가 인터넷을 통해서 아주 빨리 선정적으로 알려진다. 이전에는 해당 학교나 지역에서만 알려지고 말았을 범죄들이 이제는 순식간에 전국적 이슈가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이 체감하는 청소년범죄의 빈도가 늘었다.
두 번째는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대가 좀 더 어려졌다는 사실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 청소년문제 빈도는 고등학교 1, 2학년에서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현재 이 시점은 중학교 2학년으로 줄어들었다.
세 번째 이유는 온순해진 청소년 자체일 수 있다. 학교나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규범적인 사고 이면에는 또래에게도 위계질서를 강요하고 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일 위험성이 존재한다. 또래 간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들이 지극히 온순해서 저항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내가 청소년이던 8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교사의 체벌은 지극히 당연했지만, 또래끼리 맞고서 가만히 있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더 길어지고 얇아진 청소년기
청소년기는 근대사회에서 새로 생겨난 개념이다. 근대사회 이전에는 사춘기를 거쳐 신체적인 성숙이 완성되면 아동기가 끝나고 연애와 결혼, 취업을 거쳐 성인기로 넘어갔다. 근대화 이후부터 교육기간이 늘어나면서 성인기 진입도 늦춰지기 시작했다. 성인기와 아동기 사이에 빈틈이 생겼고, 이를 청소년기라 이름 붙인 것이다. 문제는 이 청소년기가 갈수록 길어진다는 점이다. 사춘기가 완료되는 연령은 점점 어려지고, 반대로 성인기에 진입하는 연령은 갈수록 뒤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1990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27.9세, 여자는 24.8세였다. 이 나이가 2015년에는 남자 32.6세, 여자 30세로 약 5년 늦춰졌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정된 직장을 가지는 시점이 그만큼 늦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 정규직 신입사원 평균연령은 남자 29.2세, 여자 27.9세다. 성인기 진입이 늦어지는 만큼 청소년기의 종료시점도 늦춰졌다. 최근 9세에서 24세로 정의된 청소년의 기준에 청년을 포함시켜 최대 39세까지 늦추자는 법안이 발의된 것도 이와 같은 변화를 반영해서다.
청소년기가 이렇게 길어지는 반면, 청소년들은 예전보다 더 일찍 어른의 세계에 들어서고 있다. 우선 시간제 고용, 즉 아르바이트하는 청소년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아르바이트하는 청소년은 2011년에 48%였고 2015년에는 50.4%가 되었다. 90년대 청소년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이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이전에 비교적 뚜렷하던 어른과 청소년들의 경계선도 희미해지고 있다. 덧붙여 사회의 주류 언론이 기성세대가 통제하던 대중매체에서 사용자에 의해 변화하는 인터넷으로 바뀌었다. 청소년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 그 결과 청소년 인구는 줄었지만, 특이한 청소년들이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빈도는 예전에 비해 더 늘어났다.
우리나라 15~18세 청소년들의 기업유형 선호도
암울한 미래 전망
기성세대가 청소년이던 시절과 지금 청소년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전혀 다르다. 1980년대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비율도 높았고, 대학을 졸업하면 거의 다 취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2014년 15세~29세 연령대 중 비정규직 비율은 34.6%였다. 이들을 다 포함해도 청년 고용률은 2015년에 41.5%에 불과했다. OEDC 평균보다 10% 정도 낮은 수치다. 그나마 괜찮은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든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바라는 미래의 직장은 그 폭이 매우 좁다. 15세~18세 사이 청소년들이 선호하는 직장 유형 중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계속 40%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6년 18.4%에서 2015년에는 22.8%로 증가했다.
청소년들 앞에 놓인 미래가 얼마나 협소한지는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잘 보여준다. 9급 공무원 경쟁률은 2013년에 17.6:1에서 2016년에는 자그마치 54:1로 높아졌다. 이는 54명 중에서 53명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성실하게 학교에 다니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닐까.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실제보다 더 흉포한 존재로 간주되며, 그들의 잠재력은 실제보다 과소평가되어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청소년들에 비해서도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 비율이 높다. 또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평균 학력이 높고, 교육받은 기간도 길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나 국제시민의식교육연구(ICCS) 등의 국제비교조사 결과들은 한국 청소년들의 논리수학적 문제해결 능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 시민으로서의 판단능력이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잠재력은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처한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비행이나 범죄에 빠지지 않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진로를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이와 같은 바람직한 장점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집3_소년이 온다
모두의
참정권
글. 트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는 참정권?
내가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던 작년, ‘법과정치’ 수업 시간이었다. 나는 교실에 앉아서 어떻게 세계의 정치체제가 바뀌어왔는지 배우고 있었다. 교사는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세워진 후에도 일정 소득 이상의 성인 남성만 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모든 시민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물론 ‘만 19세 이상의 성인인 시민’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교사는 계속 진도를 나갔지만, 나는 교과서의 ‘만 19세 이상’ 이라는 문구에 볼펜으로 밑줄을 여러 번 그으면서 생각했다. ‘청소년은 시민인가?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이름만 시민이 아닐까?’
정치에서 배제당하고 있는 청소년
참정권이 없는 청소년은 ‘아직 시민이 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청소년들이 집회에 나가면 ‘어린데 기특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학교에서는 집회에 나간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준다. 선거철에 유세하는 정치인들은 교복을 입었거나, 청소년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일쑤다. 집에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서 나이를 묻는 질문에 ‘10대’라고 답하면 전화는 뚝 끊어진다. 기표소는 당연히 만 19세 이상만 출입 가능한 ‘노키즈존’ 이다. 심지어 공직선거법에는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만 19세 미만인 사람은 SNS에 “나는 ○○당의 ○○○을 지지한다.”라고만 쓰는 것조차 불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각에서는 청소년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눈에 띄는 활동으로는 올해 9월 26일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3대 요구안 중 하나인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이 있다. 여기서 참정권은 선거권, 피선거권뿐만 아니라 정치와 선거에 대해 말할 권리, 정당 활동의 자유를 포함한다.
청소년의 정치 참여는 계속되어 왔다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2016년 12월,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특히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눈에 띄었’다며, 마치 촛불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이 지금까지 정치에 아무 관심 없었다가 탄핵 정국이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도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편견이 깔려있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순간들에 함께해온 이 사회의 시민이다. 역사적으로 학생들이 많은 활약을 했던 3.1운동과 고등학생이 주도하고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이 함께했던 4.19혁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2008년 촛불의 대표적인 상징은 ‘촛불소녀’였다.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2016년 촛불에서도 청소년 시민들이 함께 했었다. 하지만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청소년들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하라’ 라고 외치며 계속 싸워야만 했다.
모두가 참정권을 가지는 사회
잠시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전 세계 232개국 중 200개가 넘는 나라가 적어도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만 16세로 낮췄거나,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만 18세까지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쪽으로 목소리가 모아지고 있는 거 같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법안도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도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기각층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선거 연령을 만 18세까지 하향한다고 해도 생일이 지나야만 해당하기 때문에 약 1,000만 명 정도의 인원으로는 청소년 대중의 대표성을 띄기 어렵다.
선거 연령을 더 인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그럼 몇 살까지 낮춰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선거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 나아가 만 16세로 점차 낮춰야 하겠지만, 나는 선거권/피선거권을 포함해서 정당 가입, 선거 운동에서도 참여 제한 연령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이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참정권을 가진 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유아의 경우에는 선거 자체에 참여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권리를 물리적으로 행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권리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거 같다. 실제로 이런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있다. 김효연은 『시민의 확장』에서 ‘선거권이 없는 아동·청소년이 피선거권자의 관점에서 소외당하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독일에서는 연령 제한 없는 선거권(생래적 선거권)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 각국의 선거권 연령은 16~21세로 다양하다. 나라마다 선거권을 부여하는 기준점이 되는 나이가 다르다는 건, 결국 이 기준이 해당 국가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자의적으로 정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자기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들에 참여할 권리
청소년은 마치 정치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적인 결정은 무수히 많다. 친권자, 주로 부모에게 부여되는 자녀에 대한 막대한 권한과 학생 청소년의 삶을 옥죄는 학교, 말도 안 되는 학습시간을 강요하는 입시제도, 가정 내 아동폭력, 청소년 알바노동자 착취 등이 청소년의 인권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문제이지만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취급 받아왔기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당사자인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주어진다면,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성숙’해서 안 된다고?
역사적으로 약자의 참정권은 계속해서 무시되어 왔다. 지금은 성별과 인종을 이유로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지만, 190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 여성과 흑인은 제도권 정치에 참여 할 수 없었다. 당시의 여성 · 흑인 참정권 운동 때도 반대파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는 세력과 똑같은 논리를 내세웠다. 바로 그들의 ‘미성숙함’이다.
“청소년은 아직 정치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하기에는 판단력이 부족하고, 그래서 언론이나 주변 어른들의 말에 휩쓸리기 쉽다.” “세금을 내지도 않으면서 무슨 권리냐.” 청소년의 참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미성숙하고, 성인과 동일한 의무를 지지 않으니 아직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참정권은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다. ‘나중에’ 보장되어도 되는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지’ 물을 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참정권을 자격을 따져가며 부여하자는 논리가 과연 정당한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특집4_소년이 온다
청소년,
그들은 누구인가?
글. 김민웅 경희대 미래문명원·교육대학원 교수
청소년기에 대한 법의 연령규정은 제각각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까닭은 분명하다. 청소년의 권리보다는 보호와 의무, 또는 처벌대상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당장에 선거권 연령 문제만 봐도 이러한 사정은 명확해진다. 학생인권조례가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청소년이 미성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의무, 처벌 상황이 벌어지면 성년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꾸준히 등장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논리와 관점이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의 목소리는 이 과정에서 실종된다. 목소리를 잃은 세대이다.
과중한 학업, 그리고 때로 언론에 등장하는 일탈사건에 한해서 이들의 모습은 사회적 주시 대상이 될 뿐이다. 이들의 꿈, 갈망, 권리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질서 안에서 묵살되거나 변형을 강요당한다. 대학생이 된다고 해서 이러한 사정이 전격적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은 마치 청소년 후기에 해당하는 것처럼 취급된다. ‘착한 양’ 기르기의 사회적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는 그렇게 오래 된 것이 아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청소년은 그냥 ‘애들’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낭만, 문학, 열정이 인정되었다. 때로의 일탈도 사회적으로 수용했고 적당히 넘어가주면서 청소년들의 이른바 ‘호연지기(浩然之氣)’가 격려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선 60년대는 4.19혁명의 한 주체로 존중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청소년은 더더욱 ‘애들’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시를 쓰고 철학책을 읽고 문단에 등단하기도 하는 일은 이 세대 청소년들의 갈망이기도 했다.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에 등장하는 C중학교(학제상으로는 지금의 고등학교)는 문학, 철학, 사상이 무협지처럼 펼쳐진 공간이었다.
“무슨 소리야? 우린 벌써 늙은이가 되고 말았는데”
1990년대 우리사회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급속하게 빨려 들어가면서 청소년은 애 취급 받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적 연령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지배에 복종한 교육의 현실이다. 돌아보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전쟁은 그전에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청소년기의 소년과 소녀들은 세계문학을 읽고, 문학의 밤을 열었으며 미술전시회, 음악공연을 했다. 물론 지금도 하곤 있지만 이건 대체로 이른바 스펙쌓기의 일환일 뿐이다. 그러나 자본에 충실한 일꾼을 기르라는 요구와 압박은 교육의 황폐화를 결과했다. “공부는 안하고 왜 책을 읽고 있니?”라는 말은 이제 그다지 낯선 부모들의 질타가 아니다.
청소년기는 그 시기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접는 훈련에 충실한 자가 성공한다는 원리는 지배적인 교육철학이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청소년의 꿈을 교육으로 접목시키는 노력은 애초부터 헛발질이 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교사의 독단으로 열아홉살 청소년들이 전선에 투입된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그 교사가 보내온 편지에서 ‘제군들은 강철같은 청춘’이라고 부추기자 비웃는다. “무슨 소리야? 우린 벌써 늙은이가 되고 말았는데.” 이들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격을 포기’하는 자신의 변화에 비애를 느낀다. 우리의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청소년들을 교육이라는 전쟁터에 몰아놓고 꿈을 잃어버린 늙은이로 만들어내고 인격을 포기하도록 만든다. 그래 놓고는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말처럼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처럼 여긴다.
바로 그런 압박과 강요 속에서 아이들은 인격 포기당한 채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간다. 때로 그것은 폭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누리고 싶은 쪽으로 가기도 하고, 때로 그것은 오랜 침묵 속에서 훗날 괴물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기성세대로 성장해간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결과만 비난하고 그렇게 만들어간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악의 꽃’이 피는 정원을 만들어놓고, 진정 아름다운 꽃들은 다 뽑아버리는 교육, 제도, 법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화원을 꿈꾸는 것일까?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차세계대전 중 자원입대한 열아홉살 학생들이 겪는 전쟁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를 빼앗긴 청소년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주인공은 사랑을 갈망하면서 다리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희생시킨다. 여기서 다리가 생기는 사건은 그녀의 사랑이 생물학적 성숙과 사회적 발언의 권리를 얻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혀는 잘려 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삶이 그토록 갈망하고 꿈꾸는 권리에 대한 발언권을 봉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혀는 교육의 현장에서 잘려나간다. 동화 속의 인어공주는 땅을 밟고 갈 때마다 발바닥에서 통증을 느낀다. 바로 그렇게 청소년들도 통증을 느끼며 세상을 걸어간다. 그 고통을 제대로 듣고 귀 기울여 주는 세상은 이미 아니다. 그런 세상에 대해 사랑과 희망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정신이 나간 것이다. 세상에 대한 적의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은 강철같이 버티고 있다. 모두 너의 미래를 위해서야 라는 구호를 내세워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이런 적의와 불만, 그리고 비판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수면제와 진정제를 함께 섞은 약을 타 먹인다. 셰익스피어의 책은 읽을 수 없고, 고전이 진열되어 있어야 할 서가는 비어 있다. 청소년들이 살아가는 우리 교육 현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멋진 신세계’를 약속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의 꿈을 잔인하게 배반하고, 이들 가운데 아주 소수에게만, 그것도 본래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만 신분과 계급의 사다리에 올라가도록 허락해준다. 청소년들이 이를 모르고 있을까? 단연 아니다.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는 사회를 유지하면서 청소년 문제 운운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행위이다. 희생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기만이며,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어가는 프로젝트가 누구의 제동도 없이 관철되어가는 음모다. 그렇지 않아도 ‘멋진 신세계’는 태어나면서도부터 신분과 계급이 갈라지는 배양과정, 습성훈련과정을 보여준다. 우리의 청소년들도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공장에 투척되어 ‘물건’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이들도 자라나면 그런 일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길러진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 늙은이들을 거리에 버릴 것이며,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짓밟을 것이며, 폭력에 무감각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러는 어느 날, 가장 처참한 희생자는 바로 기성세대 자신인 것을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아무런 조처도 취할 수 없게 된 무능력한 존재로서. 이건 자살이 종착역인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더는 희망이 없으므로.
지금 늦지 않은 때이다. 청소년은 그 자체로 존엄한 미래의 권리주체다. 여기서 시작되는 논의가 아닌 그 어떤 것도 청소년의 삶을 지켜낼 수 없고, 우리 자신의 삶도 지켜낼 수 없다.
용서와
관용의 법정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글.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팀장
지난 9월 초, SNS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일상에서 쉬이 접하기 어려운, 잔혹하고 끔찍한 사진은 순식간에 SNS를 도배했고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사진 속 주인공도, 그걸 최초로 퍼뜨린 사람도, 그렇게 만든 사람도 모두 청소년이라는 데 충격은 더했다.
뒤이어 공개된 아이들의 언행은 경악을 분노로 바꾸었다. “피 냄새 좋다.” “어차피 살인미수인데 더 때리자.” 사건은 SNS에 생중계되었고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머릿 속에서 그들을 법정에 세웠다. 많은 이들이 가해자 엄벌을 주장했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소년법 폐지 청원이 넘쳤다.
하지만 그사이 누구보다 많이 호명된 사람은 대통령도, 정치인도 아닌 바로 이 사람, 8년 동안 ‘진짜’ 법정에서 소년 사건을 판결해온 부산가정법원의 천종호 판사다. 그는 현재 이 사건을 담당할 가장 유력한 판사로 꼽힌다.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이 현실에 그가 뾰족한 답을 주기를 바랐다. 참여사회도 그에게 묻고 싶었다. “판사님 요즘 청소년들이 정말 그런가요?”
그런데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가 먼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부산여중생폭행 사건을 학교폭력이라고 생각하세요?”
학생들 사이에 일어난 폭력이니까 ‘학교폭력’ 아닙니까?
보통 ‘학교폭력’ 하면, 학교 내의 폭력을 떠올리게 되죠. 근데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 아이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서 제도권 밖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었고, 피해자도 60일 간 학교를 결석한 상태였어요. 결국 이 아이들은 주류 아이들이 아니었던 거죠. 이번 사건이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른 ‘학교폭력’ 개념은 맞습니다만,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학교폭력이 아닙니다.
근데 이걸 기존의 학교폭력 프레임 속에 넣고 보니까 어떻게 청소년들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냐, 이렇게 접근을 하면서 문제가 굉장히 커진 거죠. 학교 밖의 고위험군 아이들이 고위험 지역에서 무리를 이뤄 지내다가 이렇게 심한 폭력이 발생했다는 것을 부각시켜줘야 하는데, 단순히 피해자-가해자라는 지위를 설정해놓고 바라보면 학교폭력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가해자를 엄벌하자는 쪽으로 국민정서가 폭발하면서 소년법 폐지까지 나오게 된 것이죠.
소년법에 대해서는 폐지보다는 개정하자는 입장이신데요.
네. 다시 검토할 필요는 있지만 폐지는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년법 폐지 논쟁이 불거지기 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책에서 ‘소년법은 용서와 관용을 전제로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현재 논의의 핵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형법상 만 14세 이상이면 범죄연령에 해당하는데, 소년법이 18세 미만에 대해서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선고를 못 하게 막아놓았거든요. 유기징역형의 상한도 15년이고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어, 이게 뭐야’ 이렇게 된 거죠. 형법대로 하면 만 14세 이상 청소년도 법적 성인과 동등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소년법이 감경 조항을 둠으로서 성인에 비해서 낮은 형을 선고하는 것, 여기에 관용의 정신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4세 미만은 형법상 비범죄연령이기 때문에 소년법이 폐지되면 아무 처벌도 할 수 없습니다. 이번 부산여중생폭행사건의 경우 가해자 중에 13세 여학생도 있는데 그 아이도 처벌할 수 없어요. 소년법은 이렇게 만 14세 이상 청소년에 대해 관용을 두면서 만 14세 미만에게는 소년보호처분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둔 겁니다. 형법과 비교했을 때 이런 부분에 용서와 관용이 깔려있는 거죠.
소년법 폐지 논쟁 한편에는,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요.
앞서도 말했듯이 형법상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의 선고가 만 18세도 가능한데, 현재 18세의 청소년들에게는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고 있고, 민법상으로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권리에 맞는 책임 원칙에 비추어보면 위헌소지가 있는 거죠. 따라서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든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의 선고 연령을 민법 또는 공직선거법 상의 연령에 맞추든지 양자 간 택일을 하여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형 선고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현재의 여론에 따른다면 결국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지 않을까요?
UN에서 형법상 미성년 연령을 높이라고 자꾸 권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우리는 그나마 소년법이 있기 때문에 방지장치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기 때문에 자꾸 높이라고 권고하는 겁니다.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주지 않으면서 형법상 어른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거죠.
소년법과 형법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요?
소년법정은 일반 형사법정과 목적부터 다릅니다. 소년법 1조를 보면 ‘이 법은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소년원도 지금 ‘학교’로 명칭이 다 바뀌었어요. 교육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법정에서도 일반 형법처럼 죄의 유무를 따지고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비행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하고, 또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주고 피해자에 대한 피해 회복도 해주는 종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에서 호통을 치는 것도 그런 목적인가요?
제가 창원에 있을 때 매년 12만 건씩 소년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럼 하루에 100여 명 가까이 재판합니다. 한 아이 당 할애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3분 정도입니다. 이름 부르고 “니, 이게 맞나? 그럼 하지 마라.” 이러면 3분 금방 가요. 어떤 분이 ‘컵라면 재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한테 적어도 법정의 엄정함과 무서움을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호통을 치기 시작한 거죠.
진짜 심하게 호통을 칩니다. 호통 치는 애들은 대부분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애들입니다. 소년원 보낼 애들은 호통 안칩니다. 왜냐면 그 아이들은 2년간 거기서 생활해야 하는데 맘 상하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2013년 방영된 <SBS스페셜-학교의 눈물>의 한 장면.
호통 치는 것 말고도 법정에서 다양한 ‘퍼포먼스’가 일어나던데요.
호통을 치기도 하고 좋은 시구나 글귀를 읽히기도 합니다. 아이들한테 부모를 향해서 큰 소리로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외치게 하죠. 때로는 부모한테 시키기도 하고요. 그게 가능한 것은 일종의 심리치료 효과가 있다고 본 거거든요.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이런 재판과정을 쭉 지켜보시더니 ‘호통치료’라고 이름 붙여주셨어요. 제가 호통 치는 게 그냥 악을 쓰는 게 아니고 진짜 아이들의 인생을 걱정해서 하는 호통이니까 진정성 있게 와 닿는다는 거죠.
그만큼 사전 준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가정 사정, 특이사항을 일일이 다 메모해놓고 강약을 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일반 사건에서 그랬으면 막말판사로 잘려도 벌써 잘렸을 겁니다. (웃음)
그렇지만 소년법 처벌이 너무 가볍지 않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결론만 보고 소년법이 너무 가볍게 처분한다고 여기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벼운 피해도 다 배상하지 않으면 절대 사회로 안 돌려보냅니다. 피해 회복은 기본 원칙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다 거쳐야만 피해자도 만족할 수 있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도 자기가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 깨닫고 뉘우치는 겁니다.
소년재판은 즉시선고가 원칙인데, 오판에 대한 우려는 없으신가요?
오판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소년 사건에서는 99.9%가 자백을 하니까요. 근데 만약 소년법이 폐지되면 다 형사재판으로 가야 하잖아요. 그럼 전과가 남고 신분상 문제가 생기니까 애들이 자백을 잘 안 하게 됩니다. 그러면 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이 형사 법정에 서게 되고 자백을 안 하면 또래 친구들이 대거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야 해요.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서 사실관계 판단의 어려움은 없고요, 다만 얘들한테 어떤 처분이 적합한지 판단하는 게 가장 힘들죠.
10호처분을 가장 많이 하기로 유명하시던데요.
제 별명이 ‘천10호’인데요.(웃음) 현재 소년보호처분 최장기간이 2년이거든요. 그 다음이 6개월짜리 9호처분, 그 밑에 8호처분이 1개월이고, 7호처분이 아동보호치료시설에 6개월 보내는 것, 그리고 6호가 회복센터에 6개월 보내고 나머지는 집으로 보내야 되거든요. 현재 소년보호처분 상한이 너무 낮기 때문에 오히려 법을 개정해서 3년, 5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셔야 하는 거죠.
국민들이 걱정하는 게 그거지 않습니까. ‘살인해도 2년밖에 안 돼?’ 이건 도대체 납득이 안 되거든요.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소년보호처분 조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소년원이나 교정시설도 더 필요하겠네요.
맞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소년원이 전국에 몇 개인줄 아세요? 10개입니다. 일본은 52개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소년원이 120% 차있어요. 전부 다 과밀수용상태거든요. 교정학에 따르면 70% 정도가 가장 적정한 수용인원입니다. 100% 넘어가면 교정 효과가 없습니다. 얼마나 열악한 지 아시겠죠? 근데 소년원 인권 문제를 누구도 신경 안 씁니다. 왜 선거권이 없다고, 부모가 없다고 얘들 인권을 이렇게 방치합니까. 10평짜리 방에 15명씩 몰아넣으면 나중에 다 패거리가 돼서 나옵니다. 이 애들에 대해서 뭔가 조치를 취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부모가 있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국가가 방치해놓고 있는 거죠.
애들을 방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8년을 해보니까 비행청소년들, 투명인간입니다. 첫째로, 선거권이 없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이 이들을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관심도 없어요. 둘째,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부분 가족해체나, 결손 가정, 저소득빈곤층입니다. 이들을 위해 정치적인 영향을 행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아이의 부모님들은 교육정책이라든지 뭉쳐서 입김을 발휘하실 수 있지만 이 아이들은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셋째, 비행청소년들을 도와주자고 하면 가난하고 결손가정인 애들 중에 비행 안 저지르는 애들도 많은 데 왜 나쁜 짓 하는 애들을 도와주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이번 부산여중생폭행사건도 그런 거 아닙니까. 애들이 옆에서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 어른들은 보면서도 다 그냥 지나쳤잖아요. 투명인간 취급한 거죠.
독일의 경우 한 아이 당 연간 7,800만 원에서 9,600만 원 지원해 줍니다. 일본은 7,600만 원이고 뉴질랜드는 2억 준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아이들 보살필 시설조차 안 만들어 놨잖아요. 그래서 제가 ‘청소년회복센터’라고 사법형그룹홈을 2010년 11월에 시작했는데요. 아무도 모르다가 <학교의 눈물>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아,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생각했죠. 그리고 소년재판을 자원해서 8년째 하면서 청소년회복센터를 확대해나가기 시작한 거죠. 많은 분들이 알려주고 도와준 덕분에 지금은 전국에 19곳이 있습니다.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그룹홉)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법원에서 한 아이 당 한 달에 50만 원, 1년이면 600만 이 나옵니다. 그게 기본적인 센터 운영비가 되고, 나머지는 제가 법원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받은 수당과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죠. 센터를 맡아서 운영하시는 분들의 인건비는 기본적으로 전혀 없습니다. 운영비야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하지만, 이분들이 아이들 10명씩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만드는 데 엄청난 역할을 하니까 적어도 인건비는 줘야 하는데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요.
수도권의 경우 주거비용이 높아서 인건비가 없으면 아예 시도를 못해요. 그동안 여러 사람이 이걸 해보겠다고 저를 찾아왔다가 예산이 안 된다고 하니까 돌아갔거든요. 그래서 인건비가 확보되면 하려는 분들도 늘어날 거고, 특히 초기 비행 아이들, 쇠도 뜨거울 때 두드리라고 우리가 빨리 개입을 해서 더 이상 비행성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활동입니다.
판사직을 은퇴한 후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제 친구들이 청소년회복센터를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퇴직하면 그걸 좀 더 확대시키고 피해청소년들 구제를 위한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하여튼 저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성격 자체가 애들 괴롭히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요. 퇴직 후에도 아동청소년 쪽에 일을 계속 할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참여사회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 드러난 사실은 굉장히 잔혹하고 충격적이죠. 근데 그 이면을 한번 보세요. 보통 사람이라면 범죄 사실을 공개 안하는 게 상식이거든요. 그런 상식을 무너뜨렸다는 것은 이 아이들이 얼마나 미숙한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말투나 행동은 어른스럽지만 실제로는 아직 어린 아이들이거든요.
물론 드러난 비행에 대해서는 엄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합당한 처벌이 끝나면, 그 뒤에는 대책을 마련해줘야 그게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우리는 비행청소년 꼬리표를 달아놓고 이 아이들을 이중, 삼중 처벌하고 있어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좀 더 배려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KTX 열차 안에서 그의 책을 꺼내들었다. 책에는 인터뷰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재판과 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지지가 간절히 필요했던 나의 청소년 시절과 그의 법정을 거쳐 간 1만 2천명의 말간 소년들의 얼굴이 겹쳤다.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울컥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서야 왜 사람들이 그토록 그의 법정을 찾는지 알게 됐다. 그는 법정 안에서 누구보다 냉정하고 엄격한 판사지만, 법정 밖에서 그들의 삶을 지탱해줄 유일한 변호인이자 후견인이었다. 그의 법정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재판에 중독될 것이다. 용서와 관용의 법정은 오늘도 열리고 있다.
스무 살, 우리 이야기
장남일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영미 미디어홍보팀 간사
우린 보통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성격을 파악한다.
나: 요즘 관심 있는 게 뭐예요?
그: 관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관심이에요. 난 왜 관심이 없을까….
나: 참좋다 활동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요?
그: 계속 이뤄 왔는데, 굳이 뭐 더 이룰게 있나요.
나: 딸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시기도 하나요?
그: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시간짜리 대화를 이렇게 옮기고(악마적 편집?) 그의 전공이 ‘전산유체공학’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그’란 사람을 어떻게 상상할까?
‘참좋다’는 줄임말입니다
참여연대에는 ‘참좋다’라는 노래패가 있다. 1997년에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원년멤버이자 현재 회장인 그에게서 20년 역사를 간략히 들었다.
“제가 참좋다를 시작한 게 28살 때였거든요. 올해가 20주년이니까 저도 마흔여덟이 되었네요. 당시 친구가 참여연대에 간사로 있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참여연대에 가입도 하고 노래를 좋아해서 참좋다 활동도 시작하고 그랬어요. 간사 일을 그만둔 그 친구도 여전히 참좋다 활동을 함께 하고 있죠.”
참좋다의 의미를 묻다가 처음으로 이 단어가 줄임말이라는 걸 알았다. 원래 이름은 ‘참여연대에서 좋은 노래 부를 사람 다 모이는 중’이란다.
“처음 시작할 때는 20년이나 지속될 줄 몰랐죠. 예전에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49%는 노래고 51%는 마음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노래에 대한 열정보다 중요하다는 얘기죠. 저희 모임이 이렇게 길게 갈 수 있는 것도 마음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민중가요의 쇠락과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들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민중가요도 부르는 참좋다 또한 신입회원이 잘 늘지 않는다.
“대학 노래패들도 많이 없어졌고, 지금 참좋다에서 가장 젊은 친구가 31살인가 그래요. 젊은 친구들이 취업도 어렵고 삶이 팍팍하니까 이런 활동을 할 여유가 없는 거죠. 매년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긴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는 안 와요.”
참좋다는 일개(?) 노래패임에도 홈페이지가 있다. 들어가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유행에 뒤처져 보였다. 이 홈페이지도 그가 만들었다고 했다.
아니, IT쪽에 근무하시는 프로그래머라던데 홈페이지가 좀, 그런데요.
“당연히 올드하죠. 예전에 만들어 놓고 새로 꾸미질 않았으니까요. 요즘은 사람들이 주로 카톡이나 텔레그램을 쓰고 홈페이지에는 안 들어오거든요. 그러니 관리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포인트 랭킹’이라고 홈페이지에 글을 쓰거나 댓글을 달면 포인트를 주는 건데 이런 방법들을 써 봐도 활성화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방치하고 있죠.”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방치된 홈페이지의 운명과 달리 회원모임으로 시작한 ‘참좋다’는 20년 넘게 이어져 오는 중이다. 분명 비결이 있을 것이다.
“일단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왔고요. 다른 모임 하고 다르게 우린 어쨌든 활동을 할 어떤 거리가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무대라는 게 주로 집회나 농성장 같은 곳이지만 어쨌든 공연할 기회가 계속 생기니까 모임이 유지될 수 있는 거죠.”
참좋다는 지난겨울 촛불집회 때도 무대에 올랐다. 아무래도 집회의 규모가 클수록 기억에 더 남는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면서 노무현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몇십만 명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불렀던 날. 광화문 사거리부터 종로까지, 정말 끝도 없이 일렁이던 촛불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그날의 감동.
그렇게 큰 무대에 서면 무척 긴장이 될 것 같아요. 제보에 의하면 무대에 서기 전 청심환을 드신다던데?
“지금은 더 센 걸 먹습니다. 제가 ‘사회공포증’이 있거든요. 무대공포증과 비슷한 건데, 사람들 앞에서 얘길 하거나 노래할 때 몸이 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고 그래요. 이런 인터뷰 같은 자리에서도 그렇고요.”
이 글 첫 부분에 인용한 대화만 보면 ‘그’란 사람은 무척 쿨하고 시니컬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전혀 다르다. 말주변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은 그는 인터뷰 내내 수줍게 웃었다. 그 웃음을 기억하는 나는 녹취록을 읽다가 무척 당황했다. 글과 말이 이렇게 다르다면, 한 사람의 분위기를 오롯이 문자언어에만 의지해 전달해야 하는 인터뷰 작업이란 한계가 명확한 것 아닌가. 그의 짧은 대답 때문에 간만에 신세타령도 한다.
“집회에선 민중가요를 많이 부르지만,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공연 때는 대중가요도 부르고 자작곡을 부르기도 해요. 올해는 20주년이라 자작곡을 많이 넣었어요. 각자 조금씩 곡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서툴러도 우리가 한 거니까 공연에 한번 올려보려고요.”
20주년 공연에 대해 물으니 그가 방음실(참여연대 지하에 있는 연습 공간) 한쪽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를 가리킨다. 그곳엔 20주년 공연 때 부를 노래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총 3부 구성인데요, 1부는 예전 멤버들이 주로 할 거고요. 그 다음 2부는 현 멤버들이, 3부는 주로 자작곡이나 아니면 다른 데서 발표되지 않았던 곡들 중심이에요. 따져보면 과거, 현재, 미래 이런 형식이죠.”
공연 제목은 ‘스무 살, 우리 이야기.’ 12월 2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20년을 함께 해온 ‘참좋다’의 이야기가 노래로 불린다.
“참좋다에 들어오시면, 연습 공간도 따로 있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노래뿐 아니라 서로 사는 얘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낼 수 있죠. 또 재주꾼들이 많아서 어디 놀러 가도 재밌어요. 악보작업에 채보까지 가능한 친구도 있고요, 유머가 뛰어난 사람도 있고 노량진에서 일하는 덕에 회를 떠서 갖고 오는 친구도 있고….”
입 무거운 회장님의 긴 홍보멘트가 이어졌다. 회라, 이 점이 가장 끌리네요.
들어는 봤나, 전산유체공학이라고
참좋다 이야기를 한참 하다 ‘장남일’ 개인의 이야기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한때 ‘귀농운동본부’란 곳에서 활동가로 일한 전력이 있는 그는 그 경험 때문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귀농의 꿈을 접었다. 귀농희망자들을 교육하며 실제로 겪어보니 도시의 삶에 최적화된 사람의 한계가 너무 명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시골로 가고 싶다는 그에게, 나이 들수록 큰 병원 가까이에서 살아야 한다며 딴지를 걸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아까 저보고 프로그래머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건 아니고요. 참,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입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당혹스러워하는 그를 보니, 더욱 알고 싶어졌다. 뭔데요, 저도 말하면 알아들어요.
“CFD라고 전산유체역학이란 건데, 공기나 물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예측하는 거예요. 디자인에 따라 자동차가 받는 바람의 저항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건물 안에서 불이 나면 연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서 디자인이나 설계에 대해 조언하는 거죠. 전공은 혈액이었어요, 피도 유체니까. 혈관이 막혔을 때 혈액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건데, 예를 들어 혈관이 막혀 수술을 할 때 먼저 우회로를 만들어 피를 돌린 다음 막힌 데를 뚫어야 되거든요. 그때 어떤 각도로 어떻게 우회로를 만들어야 혈액의 흐름이 원활할지 이런 걸 연구하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20년을 함께 해온 참좋다 멤버들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이게 뭐 비밀이라고 그동안 말씀 안 하셨어요?
“설명하기 힘들어서요.”
일곱 줄이면 끝날 설명, 그게 힘들어서 20년 동안 IT쪽에서 일한다고 둘러댄 남자. 변명조차 짧은 그에게 나는 보란 듯이 긴 리액션을 선사했다.
나 : 전산유체역학, 되게 있어 보인다!
그 : (수줍게 웃는다) …….
나 : 이게 굳이 분류하자면 물리학 쪽인가요?
그 : 기계학이죠.
나 : 우리나라에 한 명밖에 없는 직업 아니에요?
그 : 아닙니다.
나 :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이 아빠 직업 신기해하지 않아요?
그 : 자세히 설명을 해 준 적이 없어서….
호들갑 떠는 나를 보며 그는 그저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 앞으로 꿈이 있다면요?
“뭐, 지금처럼 사는 게 좋으니까, 이렇게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욕한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 늘 내가 더 떠들다 끝난다.
1997년 결성된 회원모임 ‘참좋다’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장작불처럼 살다
인터뷰 도중 참좋다가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남아 언젠가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씁쓸한 농담을 그에게 건넸다. 세월은 멈추지 않는 강물처럼 흐르고, 그 도도한 흐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모래 속에 파묻힌다. 민중가요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도, 참좋다의 홈피도. 그러나 민중가요가 사라져 가는 속도만큼 과연 세상은 나아졌는가.
내일 참좋다는 바빠요. 국회 앞에서 정리해고 투쟁을 하는 ‘하이디스’ 수요집중문화제와 참여연대가 있는 서촌의 ‘궁중족발’ 지킴문화제에 함께합니다. 정말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매번 집회에서 노래할 때마다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마음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부탁드려요. 함께하지 못해도 마음을 모아주세요. 힘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혼자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최근 참좋다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세월의 흐름도 쓸어가지 못하는 나쁜 놈들과 그들이 벌이는 나쁜 짓들 때문에, 참좋다는 여전히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노래 하나에 의지해 서로의 마음을 모은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장작불>이에요. 시를 노래로 만든 곡인데 노랫말도 좋고 가락도 좋고. 사는 게 그 노래가사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산다는 건 장작불 같은 거야 / 여러 놈이 엉켜 붙지 않으면 / 절대 불꽃을 피우지 못해 / 몸을 맞대어야 세게 타오르지 / 마침내 활활 타올라 쇳덩이를 녹이지 / 먼저 불탄 토막은 불씨가 되고 / 빨리 불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 마침내 활활 타는 장작불 같은 거야 - <장작불> 중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도, 그 노래를 듣기만 하는 나도 문득문득 마음에 같은 질문을 품는다. 정말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이 꿈적이나 할까. 말수가 적은 그는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줄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위해, 언젠가는 옮겨붙을 작은 불씨 하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떨리는 손으로 센 약 하나를 꺼내 먹을 뿐이다.
쇳덩이는 1538℃에 녹는다. 이제 여러 놈이 엉겨 붙을 일만 남았다.
참좋다의 라이브를 감상하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참좋다 하이라이트를 검색하세요.
서촌역사기행1
서촌! 오래된 길, 그러나 신선한 길
글.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서울은 백제, 조선,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면 1,300년이 넘는 ‘수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0년 안팎의 거대 도시인 ‘메트로폴리탄’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몇 없다. 아테네, 로마, 마드리드, 이스탄불, 런던, 파리, 상하이 정도다. 이들 도시는 제각기 나름의 특색 있는 모습과 도시경관을 유지하고 있고, 지역마다 문화정체성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려고 여행을 하고 친구를 사귄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역사도시 중 하나인 서울은 현재 자신의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줄 곳이 거의 없다. 공항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동안 보이는 것은 현대식 건물과 도로뿐이다. 천년 이상 된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은 겨우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 창덕궁 등의 궁궐과 인사동의 뒷골목, 북촌의 한옥 밀집지구 정도, 그리고 경복궁 서쪽의 한옥마을 ‘서촌’이다.
사대부와 민중이 어울려 살던 곳, 서촌
한양 도성 내 각 지역은 권력 있는 집안의 대저택과 토지, 동일직종을 가진 관직자 계층의 집단 거주지가 되면서 서로 구별되는 지역적인 특색이나 생활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반 사대부계층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고 상공업의 발달, 신분제의 동요 등으로 사회분화가 진행되는 18세기 무렵에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따로 물어볼 것도 없이 그 사람의 신분과 가문, 직업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날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에 따라 선입관을 가지고 보는 이치와 비슷할 것이다.
예를 들면 북악산 밑 북촌에는 노론(老論)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도가들이 거주하였다. 자하문 부근 장동 일대에 자리를 잡고 살았던 안동 김씨 집안의 김창흡이 대표적이다. 그는 서촌 일대에 넓은 토지와 대저택을 소유했으며, 우리가 잘 아는 겸재 정선은 그 집안의 화가였다. 남산 아래 남촌에는 남인(南人)을 비롯하여 소론(少論) 등 몰락한 양반가문이나 무반(武班)등이 거주하였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몰락한 양반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히 알아보면, 조선 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고,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 ‘서촌’은 역관 등 조선의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북촌과 남촌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던 청계천은 일반 주거지가 아닌 도성에서 대표적인 상업 지역이자 유흥가였다.
북촌과 남촌이 양반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면, 청계천 지역은 시정상인이나 중인, 하급군인 등 중하층 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인 소위 여항(閭巷)이었다. 여항이란, 비권력층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서울의 인구증가와 도시 상업의 발달로 인하여 생겨난 중하층민들의 생활영역이다. 양반들이 거주하는 북촌이나 남촌과 같은 양반층의 거주지역과는 구분되는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청계천 주변 지역에도 상류의 우대, 장통교와 수표교 어름의 중촌, 효경교 이하 왕십리 일대의 아랫대로 세분되었으며, 각각은 서로 직역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서로 구별되는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의 오랜 역사의 진정한 정주민의 생활 모습을 간직한 곳은 오히려 ‘서촌’이다. 사대문 안의 한옥 1,400여 채 가운데 300여 채가 서촌에 남아 있는 데다 이 지역 한옥은 북촌과는 다른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서촌에는 북촌처럼 거주형 한옥만 존재하지 않다. 사대부와 일반 민중의 다양한 공간구조의 한옥과 집들과 어울려 있으며 다양한 민속, 즉 사람살이가 존재한다. 그 예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무형적 형태가 존재하는데 무당집, 이름을 지어주는 철학원, 전통시장(통인시장), 도심 속 사찰, 그리고 오랜 명분을 이어오고 있는 작은 한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1840년대 한성의 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 골목, 고샅길
조선 시대 서울은 유교적인 이상도시의 기준에 따라 설계된 계획도시였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는 종묘(宗廟)가, 오른쪽에는 사직(社稷)이 배치되었으며, 궁궐 앞 대로(大路) 좌우에는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 한성부(漢城府) 등 주요 관청들이 들어서 있고, 동서의 종로와 남북대로 좌우측(창덕궁에서 종로, 종각에서 남대문)에는 시전 행랑(육의전)들이 자리 잡았다. 육의전이란 여섯 가지 주요 판매품인데 비단, 포목, 면주, 종이, 삼배, 어물이었으나 반드시 여섯 가지는 아니고 더 다양하게 변하였다. 이들은 소위 허가를 받고 일정금액을 국가로 세금을 내고 사업을 했던 상인들이다. 종로에 80년대까지 비단과 포목상점이 남아있었다.
한양도성 주변을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목멱산, 타락산 네 산 아래는 오늘날로 말하자면 주거전용지역으로서 민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북악산 밑 북촌(北村), 목멱산 밑은 남촌(南村), 동쪽 타락산 밑은 동촌(東村), 서소문 부근은 서촌(西村), 청계천 주변 장통교와 수표교 일대는 중촌(中村)이라고 불렀다. 특히 서촌은 중인들이 모여 살아 대체로 북촌보다 한옥 한 채가 차지하는 필지가 작은 편이고, 겉으로는 한옥의 결구 구조가 소박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내부는 한옥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고샅길로 불리는 좁고 긴 골목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풍수사상의 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너비 2~3m밖에 안 되는 거미줄 같은 골목은 옛 도시 조직의 모세혈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정겹다. 즉 마을의 골목인 ‘고샅길’이 잘 보존되어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통의 모습과 대비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을 그대로 전승하는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지만 현재의 모습대로 생활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샅길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오늘날 문명과 도로는 우리에게 직선만을 강요한다. 새마을사업 이래로 정겨운 곡선 골목 고샅길은 폭력적인 직선으로 변해 버렸다. 한번쯤 쉬어가고 뒤를 돌아보는 곡선의 미학이 사람을 여유롭게 한다는 것을 서촌의 골목이 알려준다.
서촌 한옥의 특색
서촌 일대의 한옥은 규모가 매우 작은 한옥이며, ‘ㅁ’자 구조와 ‘ㄷ’자 구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서까래나 대들보의 형태와 규모는 왜소하며 기타 부재(部材)의 사용과 부재의 결구방식도 격조 있는 한옥의 모습과는 매우 차이가 있다. 조선 초기나 중기의 큰 한옥은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소실되었다. 중기 이후는 북촌과 아울러 서울 도성 안에 많은 관리들이 집을 지어야 하지만 북촌과 서촌 일대의 대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평수의 집을 약식으로 짓고 본가는 자신의 출생지인 향리에 번듯하게 지어놓고 필요할 때 귀향하였기 때문에 서촌 일대의 한옥은 왜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현재 서촌 일대의 한옥은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집단 한옥, 소위 집장사 한옥이 대부분이다. 당시는 부재인 소나무의 고갈로 인해 전통 결구방식으로 집을 건축할 때 건축비가 상당히 소요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현상으로 인해 비슷한 규모의 한옥이 집단적, 획일적으로 대량으로 지어진다. 또한 한옥으로 집단주거지가 계획되기도 했다. 즉 서촌 일대의 한옥은 격조와 규모는 떨어지지만 우리나라 주택사의 한 과정, 즉 서민적, 경량화, 상업적 획일화된 한옥의 한 시대를 상징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후 전통 한옥은 점점 퇴락의 길로 갔으나 서촌 일대는 이러한 말기적 한옥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행랑채는 방을 들이면서 벽돌담으로 변했고, 낮은 담장은 벽돌로 높아졌고 기와지붕은 슬레이트(slate)로 변했지만 건축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한옥이 다수 존재한다.
서촌의 한옥은 비워지고 있었다. 비워져가는 한옥을 사람들이 살게 하고 그 속에서 생활의 주제가 되고 풍습이 전승되길 간절히 바랐고 노력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천박한 자본과 함께 돌아와 기존 정주민을 내보내고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대신 서촌에 남아 있는 골목을 느리게 걸어보는 ‘길 박물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한옥과 골목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어울려 사는 사람이 있는 곳이 서촌이다.
조선 시대 후기 서촌의 모습
조선 시대 위항문학의 현장 ‘송석원’
서촌은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보물 창고다. ‘중인은 의학·천문학·지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성 강한 전방위 지식인’이라며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 등 문화공동체를 형성해 활약했으며, 바로 그들의 터전이 인왕산 일대’이다. 옥인동 47번지는 이런 문화공동체 가운데 하나인 ‘송석원 시사’(시 동인) 즉, 문인들이 주로 모이던 곳이다.
송석원(松石園)은 서인·중인 출신의 위항인(委巷人)들이 모여 살던 서촌(西村:지금의 인왕산 밑 옥인동 일대)의 소나무 숲 사이로 계류가 흐르는 곳에 도인 천수경이 정원을 짓고 살면서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을 걸고 불우한 시인들과 어울려 술과 시로 소요자적(逍遙自適) 하던 곳이었다. 당시 이곳에 출입하던 시인들을 송석원 시사 시인이라 일컬었으며, 후일에 흥선대원군도 여기에 나와 큰 뜻을 길렀다 한다. 김정희가 쓴 ‘송석원’이란 바위 글씨가 남아있었는데 현재는 빌라 건설공사로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졌으나 발굴해보면 출토될 것으로 믿는다. 필자도 찾아보려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직 찾지 못했다.
조선 시대 진경산수와 겸재 정선
2017년은 겸재가 운명한 지 258주년이 되는 해이다. 미술계와 국립박물관은 2009년 겸재 타계 25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전시회를 개최했으나 겸재의 주생활 무대였던 서촌 일대는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겸재는 심사정·조영석과 함께 삼재(三齋)로 불리었다. 강한 농담(濃淡)의 대조 위에 청색을 주조로 하여 암벽의 면과 질감을 나타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으나 후계자가 없어 그의 화풍은 단절되었다.
이러한 겸재가 서촌의 인곡정사에서 기거하며 인왕제색도, 청풍계 같은 서촌의 경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겸재는 우리의 산천을 직접 다니며 우리 시각으로 그린 진경산수의 명작을 여러 점 남겼는데, 특히 72세에 완성한 ‘금강내산(金剛內山)’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암봉을 마치 한 떨기 흰 연꽃송이처럼 화폭에 담아내 진경산수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정선은 기이한 산천의 모습이나 안개 낀 풍경 등 머릿속으로만 상상한 경치를 그린 관념 산수화에서 벗어나 우리 산천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眞景) 산수화를 완성했다. “정선에 와서야 우리 산수화가 개벽되었다” 라는 같은 시대 화가 조영석의 표현처럼, 그는 조선 300년 산수화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낸 천재 화가다.
현재 서촌의 신교동은 겸재의 집인 인곡정사터가 존재하며 인왕제색도를 그린 자리는 서촌의 경복 고등학교 자리이다. 또한 청풍계는 지금의 청운동이다. 이 일대 역시도 서촌에 포함된다. 현재 이곳은 고층 건물이 비교적 없어 겸재가 그렸던 인왕제색도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문명교류의 현장
조선 시대 중인은 의학·천문학·지리학 등을 전공한 전문성 강한 전 방위 지식인이었다. 그중 서촌에는 역관이 상당수 기거했다. 역관은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7살 때부터 교육을 받았다. 이들의 출신성분은 서자였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성적과 업적을 내어도 고위직으로는 승진할 수 없었다. 자연히 송석원의 위항문학자들과 어울렸고 새로운 세계가 필요하였다. 역관들이 중국에서 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새로운 서적을 기다리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들이 서촌 일대에서 활동했던 중인계급들이다.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이 읽고 논하고 쓰고 그리는 일상의 활동은 조선의 문명담론을 이끌어나갔다. 연암 형제들도 서촌에서 구입한 서학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현재 21세기는 문명담론의 시대이다. 혹자는 문명 간 충돌을 말하기도 하지만 문명은 끊임없이 교류하며 발전한다. 서촌은 근세조선의 문명교류의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김홍도作
사람들이 모여 술과 시로 인생을 비롯한 여러 이야기를 나눈 곳이다. 실력이 있어도 세상으로 진출하지 못한 사람들이 저항(위항, 여항)의 시를 썼을 것이다. 어찌보면 서촌에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이 들어선 것도 이런 전통이 아닐까.
내년도 예산증가율이 7.1%라고 말하면
원숭이?
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활동가 출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활동.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에 기거 중. 조세제도, 예산체계, 그리고 재벌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많음.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공저.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들에게 먹이로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자 화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니 좋아했다는 고사故事다. 그래서 순서만 바꾼 것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을 원숭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총합이 중요하지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다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니 아침 기준으로는 먹이가 증가했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숭이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내년도 예산증가율에 관련된 얘기다.
예산국회가 시작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부터 내년도 정부예산안 국회심의가 시작된다. 18년 정부예산안은 17년보다 7.1%나 늘어났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일각에선 슈퍼증액 예산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예산안 7.1% 증가는 2009년 금융위기 대응예산 이후 가장 높은 증가폭이니 내년도 예산안은 큰 규모의 확장예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추경기준으로는 4.6% 증가한 규모다. 결론부터 말하면 추경기준 4.6% 증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총합이 중요하지 순서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본예산 기준 증가율은 조삼모사의 착각일 수 있다.
본예산 기준 7.1% 증가 vs 추경기준 4.6% 증가
정부가 주장하는 본예산 기준 증가율과 추경 기준 증가율은 무슨 차이일까. 올해 2017년 최초 예산인 본예산은 400조 원이었다. 그리고 내년도 정부예산안은 429조 원이니 올해보다 29조 원 증가했다는 것이다. 400조에서 429조로 늘어났으니 7.1% 증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중간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새 정부는 추가경정更正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예산의 규모를 고쳐서 확대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17년 예산은 당초의 400조 원이 아니라 410조 원으로 경정되었다.
즉, 올해 17년 예산은 아침에 400조를 먹고 저녁에 10조를 더 먹어서 총 410조 원이 되었다. 그런데 내년 예산은 429조 원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총 429조 원을 지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면 올해 변경된 예산안 410조 원보다 19조 원 증가한 429조 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410조에서 429조로 늘어난 것으로 계산하면 증가율은 4.6%다.
그래프를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본예산 기준으로 최근 예산증가율을 보면 내년 증가율은 2010년 이후 가장 높다. 마치 큰 폭의 확장예산 편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추경이 편성되었던 해의 예산은 당초예산이 아니라 추경예산을 최종예산으로 하고 증가율 그래프를 그리면 두 번째 그래프처럼 18년 끝부분이 뭉툭해진다. 11년 이후 예산증가율을 비교해 보면 딱 중간 정도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16년, 17년에 상대적으로 예산 증가가 둔화되어서 그나마 중간 정도는 유지되었다.
물론 당초 예산 기준과 비교하는 것이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추경이라는 것은 원칙대로 하자면 특별한 재정적 수요가 발생했을 때 편성하는 예외적인 일이다. 예외적인 일은 통계에서 제외하고 산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다.
예산증가율, 경제적 실질에 맞춰 바라봐야
그러나 실질적으로 추경은 올해에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편성되었다. 추경편성을 특별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보는 것은 경제적 실질과 어긋난다. 그래서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하는 『대한민국 재정』의 연도별 예산액 변화를 보면 본예산 기준이 아니라 추경기준으로 나와 있다.
결국, 내년도 정부예산안 증가율은 본예산 기준 7.1%의 기록적 증가가 아니라 추경 기준 4.6% 증가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내년도 예산증가율을 보고 ‘인기관리용 퍼줄리즘 예산’이라고 표현하는 모 야당의 논평처럼, 조삼모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어 뭐라고 놀릴 수 있는지 짐작이 가실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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