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연신 끄덕거리다 말미에 갸우뚱 물음표가 돋았습니다. 저 또한 메이지유신 150주년(2018)을 기해 일본에서 나온 서적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문명개화’, 그간의 개화사 150년과는 다른 결의 서사가 가능할지, 그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동북지방의 안도 쇼에키까지 거슬러 올라 개벽의 단서를 찾는 것은 쉬이 수긍하기 힘듭니다.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하셨죠.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라고 추키셨습니다. 글쎄요. 저로서는 문장의 들머리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이 더 도드라집니다. 18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은 무인이 다스리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유학적 소양으로 단련된 사대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조선, 월남이 구현했던 문치주의 유교국가와는 일선을 긋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였죠. 최근에는 메이지유신이야말로 그 기저에 유교화=중국화=근대화의 동력이 작동했다는 독법마저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무라이에서 사대부로, 무사에서 문인관료로 지배층의 세련화(=文化)가 천년이나 가로 늦게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왕후장상의 씨를 따지지 않는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제법 오랩니다. 씨갈이, 역성혁명이 거듭되어 천자를 갈아치웠습니다. 그럼에도 만세일계 천황이 존재한다는 점이야말로 일본의 예외성입니다. 즉슨 성인 중심의 유교문명을 비판했다 하여 ‘개벽파’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유학국가를 온전히 구현해본 적이 없는 일본서는 자칫 허수아비를 때리는 꼴입니다. 물론 중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거리에 가득한 사람 모두가 성인이다.’ 하였던 15세기의 왕양명을 개벽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수운 최제우
개화파와 척사파의 갈림길, 그리고 개벽파의 새길 내기는 적어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는 19세기 이후의 사태입니다. 이른바 ‘서구의 충격’, 자본주의 세계체제와의 조우라는 역사적 맥락을 소거하면 개벽파의 독창성과 독보성을 도리어 제거해버리고 맙니다. 자칫 여기저기서 시시때때로 개벽파가 출몰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이 충만했던 서구의 중세가 개벽기도 아니며,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의 범신론적 사유를 개벽과 직접 결부시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동학혁명이 그 이전의 숱한 민란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 또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 반란이라는 흔하고 빤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충격’이 촉발한 전대미문의 천하대란에 임하여 문명적 각성을 예리하게 품어내었던 것입니다. 개벽을 개벽답게 만드는 티핑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벽파의 역사성에 대한 적확한 인식은 엄밀한 용어 사용과도 직결됩니다. ‘토착적 근대’라는 말이 저는 여전히 말끔하지 않습니다. 내재적, 내발적, 자생적 이라는 수사 또한 깔끔치가 않습니다. 죄다 자족적인 개념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타를 나누고, 내/외를 가르는 발상입니다. 세계사 다시 쓰기, 소위 글로벌 히스토리는 서구적 근대조차 내발적이고 자생적이고 토착적이지 않았음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과 계몽주의에도 아랍과의 교류, 아시아와의 교섭, 아프리카-아메리카와의 교역이 중요했음이 나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계몽주의에 ‘몽골의 충격’과 한문으로 쓰인 동방경전의 알파벳 번역이 있다하여 그 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학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토착적이고 내재적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적이고 세계적이어서 소중한 것입니다. 내발론의 강박이 18세기 조선에서 서구적 근대의 맹아를 억지로 추출해내는 실학 담론의 패착을 낳았음을 통렬하게 비판한 점이 <한국 근대의 탄생>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자폐적인 내발론과 자멸적인 외발론을 동시에 극복합시다. 선후(先後)를 따지기보다는 박후(薄厚)를 살펴봅시다.
13세기 몽골이 유라시아의 대일통을 이루었던 것처럼, 19세기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지구를 석권했습니다. 다만 그 편입과정에서 문명마다 나라마다 여러 갈래의 대응이 등장합니다. 한사코 거부했던 세력이 척사파입니다. 척사파의 양태는 중국에도, 인도에도, 심지어 서유럽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반대편에서 무조건 수용코자 했던 세력이 개화파입니다. 이 또한 여러 나라 여러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옛 것을 고수한 척사파와 새 것을 추수한 개화파의 충돌이 보/혁 갈등으로 치달았습니다.
‘제3의 길’도 있었습니다. 낯익은 전통을 타파하면서도 낯선 현실의 혁파 또한 겸장했던 개벽파입니다. 자기 고집도 자기 상실도 아닌 자기 혁신을 도모했습니다. 척사파가 무책임하고 개화파가 무절제했다면, 개벽파는 응시하고 응수하고 응전했습니다. 척사파가 시대의 물결에 조응하지 못하고 조선의 적자에서 적폐로 떠밀려갔다면, 개화파는 서세동점의 파고에 휘말리고 휩쓸려서 조선을 배반하고 매국의 독배를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척사파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면, 개화파는 깜빡 눈이 멀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개벽파는 반짝반짝 눈을 부릅떴습니다. 서늘한 눈으로 천하대세를 직시하고 빛나는 눈으로 나라다운 새 나라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각적 근대’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즉 근대 세계체제는 단일합니다. 다만 그 근대세계에 임하는 태도와 자세의 차이로부터 학파와 정파가 분기합니다. ‘서구적 근대’라 해서 개화파 일색이 아닙니다. 그렇게 쓰인 서구사=개화사조차도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서구에도 척사파와 개화파와 개벽파가 길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비서구적 근대’라고 하여 개벽파가 돌출했던 것도 아닙니다. 작위적인 지리적 구획을 복제하기보다는 사상적 지향에 방점을 두는 편이 이롭습니다. 제가 동학을 높이 치는 이유 또한 묵은 유학을 맹신하지도, 설은 서학을 맹목하지도 않은 탁월한 균형 감각 때문입니다. 구학을 답습하지도, 신학에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서구의 충격에 대한 가장 창발적이고 주체적인 응답(Response+Ability)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동학은 ‘자각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개벽은 ‘자각의 탄성’이었습니다. 깨어나고 깨우치고 깨달아서 19세기의 유레카, ‘다시 개벽’을 외친 것입니다.
그래서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말에 십분 공감합니다. ‘개벽을 누락한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통쾌하기까지 합니다. 넌센스, 비상식과 몰상식이 판을 쳤습니다. 무식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근저에서 무심했습니다. 그 무심과 무지와 무식의 소산으로 쌓아올린 탑이 ‘실학’ 연구였습니다. 실학에서 동학으로의 회향, 개화에서 개벽으로의 회심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헌판을 갈고 엎어 새판을 짭시다.
인류세 전시작품(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카라라의 대리석 채석장)
2. 서세동점에서 인류세로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애써 이틀을 썼던 문장을 싹둑 지워버렸습니다. “실학과 동학”으로 써내려갔던 내용을 통째로 덜어냈습니다. 지금 이곳은 수운회관 15층입니다. 1월 15일 오전 9시 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부쩍 창밖이 뿌옇습니다. 희뿌연 미세먼지가 시야를 온통 가립니다. 인왕산은 희미하고 청와대는 흐릿합니다. 왜 한국의 근대를 실학이 아니라 동학에서 구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글이 어쩐지 한가해 보입니다. 갓 50일이 된 아들래미 얼굴이 떠올라 더더욱 답답해집니다. 개벽사 쓰기 또한 자칫 먹물의 고질병, 책상물림의 직업병일지 모른다는 노파심이 입니다. 현장감이 덜한 것입니다. 이번만큼은 에둘러 가지 않기로 합니다. 고준담론은 잠시 미루어두고 왜 또 다시 개벽인가, 돌직구를 던지기로 했습니다. 절박하고 절실하고 절절한 제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봅니다.
거듭 강조컨대 더 이상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기 힘듭니다. 20세기형 인문학의 낡은 관습일 뿐입니다. 북반구(선진국)과 남반구(후진국)를 쪼개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20세기형 사회과학의 후진 습관일 따름입니다. 저는 이제 20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제3세계론이나 세계체제론에서도 별다른 자극과 영감을 받지 못합니다. 동도와 서도를 견주고 서세에 동세를 맞세우는 것 또한 철지난 발상이라고 여깁니다. 목하 한치 앞도 가리어버린 저 기후변화는 동/서와 남/북을 가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의 지구가 있을 뿐입니다. 그 둥근 지구, 하나의 하늘 아래 동서남북은 갈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온누리와 온생명과 한살림이 있을 뿐입니다. 동도(東道)와 서도(西道)의 소모적인 논쟁을 뒤로하고 천도(天道)와 대도(大道)와 일도(一道)를 탐구합니다. 세계체제론(World System)의 국가간 경쟁을 훌쩍 뛰어넘는 인류와 지구의 공진화, 지구체제론(Earth System)을 모색합니다.
한살림 선언(1989)과 <녹색평론>(1991)도 이제는 어쩐지 미진한 감이 듭니다. 언젠가부터 동어반복의 식상함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학은 여전히 지상(地上)과 천하(天下) 사이에 주력합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의 길, 천지인의 근대화, 천인합일의 현대화를 천착합니다. 지하(지질학)와 천상(천문학)까지는 아우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물질대사는 물론이요 우주의 물질대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인류세’(Anthropocene)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이미 오래인데도 혁신과 갱신에 게으릅니다. 인류사와 지구사가 합류하여 도달한 인류세(人類世)에 부합하는 새로운 사상, ‘다시 개벽 2.0’을 갈구합니다.
생태적 사유는 한사코 인간의 능력을 축소시키려 듭니다. 포스트휴먼, 만물 가운데 하나로 강등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 등장한 그 어떠한 생명도 지구와 우주의 행방에 영향을 미칠 만큼 능력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실로 획기적인 사태입니다. 가히 유례없는 사건입니다. 선천개벽 창세기(홀로세, Holocene)와 후천개벽 인류세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버금갈 만큼 인간의 역량이 증대된 것입니다. 45억년 지구사에서 처음으로 인류의 의지가 깃든 행동이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의지는 자연의 힘(force)과는 달리 억제되고 절제될 수도 있는 힘(power)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즉 서구의 휴머니즘은 인간중심주의여서 문제인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지구는 갈수록 인류의 이 집합적 의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 엄청난 힘의 행사 여부를 선택하는 인간의 마음가짐(=정신개벽)이야말로 인류를 고유한 생명체로 우뚝 서게 합니다. 지구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고유한 힘이 절정에 치달은 바로 이 순간에 인류의 고유한 특성을 외면하는 생태론이 갑갑하고 어색한 까닭입니다. 포스트휴먼을 궁리할 것이 아니라 네오휴먼을 연마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신인간(新人間)=신인간(神人間)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경쾌한 유발 하라리를 따라 라틴어로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 하겠습니다. 묵직한 의암 손병희에 기대어 한자로 풀면 인내천(人乃天)이 가장 적절합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며, 사람이 즉 한울인 것입니다.
160년 전 노이무공(勞而無功), 아무리 노력해도 헛되었노라, 하늘의 탄식을 들은 이가 최제우입니다. 유학의 천인합일에서 동학의 천인합작으로 도약하는 비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늘과 인간이 합작하는 인류세의 비전을 이미 내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제가 1848년 <공산당선언>이 20세기를 추동했다면, 1860년 <동경대전>은 21세기를 격동시킬 것이라고 호언하고 다니는 연유입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턱없이 모자란 발상입니다. 만인과 만물이 얽히고 섥히는 21세기, 경천(敬天)과 경물(敬物)과 경인(敬人)의 삼경사상야말로 자유-평등-형제애를 능가하는 시대정신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고작 ‘자유-평등-형제애’라고 해보았자 ‘경인’ 단 두 글자로 족합니다.
토론토 세계종교의회
그러함에도 동학과 개벽은 여태 수줍습니다. 지난해 11월 토론토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종교의회의 말석을 지켰습니다. 겨우 한국과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자리에서만 동학과 개벽 얘기가 나지막이 오고갔습니다. 한국 연구자와 한국의 종교인들만 단출하게 모여 있었습니다. 크게 안타까웠습니다. 깊이 아쉬웠습니다. 딱하다는 생각마저 일어났습니다. 애가 탔습니다. 속이 쓰렸습니다. 입맛이 쓰디썼습니다. 세계종교의회 행사를 맞춤하여 토론토 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회 주제가 바로 ‘인류세’였기 때문입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다인종, 다종교, 다국적 인류를 지그시 바라보며 “신동학이 인류세의 학문이요, 또 다시 개벽이 인류세의 시대정신이라”, 전도하고 싶었습니다.
온타리오 호수를 산책하다 곰곰 궁리하노라니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 또한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퍼뜩 일어났습니다. 서세동점, 20세기의 수세적 입장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류세에 맞춤하여 문장의 앞뒤 순서를 바꾸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말입니다. 자각하여 구세하자고도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갈고 닦아 인물부터 사물까지 만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편이 인류세에 임하는 인류의 태도에 한층 더 부합하지 싶습니다. ‘다시 개벽’이 19세기의 자각이었다면, 21세기는 ‘또 다시 개벽’의 유레카를 외칠 만 한 것입니다. 고로 개벽파는 코즈모폴리턴, 세련된 세계시민마저 돌파합니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글로벌 엘리트들의 허위의식을 넘어섭니다. 개벽인이야말로 진정한 지구인이며, 하늘과 더불어 지구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벽꾼이야말로 참말로 하늘사람입니다. 국민(國民)에서 천민(天民)으로, 국가에서 천국으로. 그런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기미년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해년의 ‘선언’(Manifesto)에 값할 것입니다.
온타리오 호수에서 본 토론토 시내
그래야 개벽파를 한낱 학술 유행의 신종 아이템으로 회수하려는 각종 유혹과 회유를 떨쳐낼 수도 있습니다. 부디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합시다. 신동학을 살기로 합시다. 앎의 전환에 그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수반하는 수련과 수행을 수반합시다. 그래야만 민심의 감화를 이루고 천심의 감동을 일으켜 포교와 포덕 또한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파만파 지구에 파동을 일으키고 우주까지 파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야 이 탁한 세상에 맑은 하늘을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태어난 후세들에게도 푸른 하늘 은하수를 되물려줄 수 있습니다. 꼬장꼬장, 깨작깨작, 자꾸 논문과 비슷해지려던 문장을 몽땅 지워버린 까닭입니다. 후련해졌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사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는 더욱 통제된 사회로 이끌어가는 듯한 여러 특징들을 보인다. 정보통신 기술의 ‘민주적’ 잠재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경제적 통제의 역학(소수의 다국적 대기업이 실상 정보통신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이 매우 강하며 신자유주의 시장의 공격성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위기는 새로운 불안의 요인을 하나 더 추가시킨다. 곧 안정이라는 주제가 사생활 및 시민들의 권리를 밀어낼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통신은 다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으며, 분명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공공 장소가 될 수도 있다”De Blasio, 2014.
시민들의 인터넷 참여: 참여의 미래인가?
인터넷은 시민들 대부분의 직접 참여 방식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정보와 통신, 정치적 활동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인터넷은 전통적인 정치적 심의 형태를 대체하지 않지만, 많은 절차를 간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온라인 참여예산처럼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가동하는 방법이 있고, 공공 조사 등의 다른 방법들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적어도 인터넷 공간에서 의사소통 채널들이 교차되고, 평범한 시민들과 행정가 및 선출된 정치인들 사이의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무엇보다 e-정부(세금 신고, 온라인 기부 요청, 디지털 행정 등)와 e-민주주의 혹은 디지털민주주의, 곧 온라인 도구의 사용을 통한 정치적 선택과 선호의 표현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 공공 행정(e-정부)으로는 시민들이 공공 기관의 서비스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모든 인터넷 신청에 국한된다. 행정적 절차가 정보기술적 방식으로 전개되어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 불필요해진다. 서비스는 더 빠르고 신속해지고, 행정은 더욱 투명하고 접근하기 쉬워진다. 적어도 인터넷에 익숙한 시민들에게는 그렇다.
디지털민주주의의 경우, 시민들은 이제 단지 공공 서비스의 고객이나 수혜자가 아니라 정치 의지의 형성과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소통 및 결정 과정의 동반 파트너이다. 인터넷 참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적 결정과 심의 과정에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허용하는 방법을 모두 포괄한다. 시민들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조사나 검사를 위해 접촉하고, 행정가나 정치인들과 대화에 들어가고, 청원서와 법제 안에 서명하고, 마지막으로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도 있다.
물론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직접적인 만남과 집회, 사람들과 직접 만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활발해진다. 현장에서의 만남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인터넷은 더 큰 참여를 위해 그저 확고한 추진력이 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참여 형태를 활발히 전개하기 위한 기술적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 사이에서 어떤 형태의 참여민주주의와 컴퓨터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가? 개인들 사이에서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시민들이 운영하는 컴퓨터 카페와 광장 등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별도로, 공식 참여나 제도적 참여 면에서 이탈리아는 다소 움직임이 둔한 편인 듯하다. 전자-디지털 방식의 결정 및 심의 방법의 활용은 참여할 시민 단체 및 참여 방식의 목적과 성격, 프로그램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이나 법적인 틀에 달렸으며, 특히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
점차 더욱 다양화되는 인터넷 참여 형태
보통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방법들은 광범위한 절차에서 쌍방향식으로 구체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단순한 공식 정보전달에서 시작하여, 심사를 위한 시민 자문과 쌍방향식 토론을 거쳐, 서명과 전자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도달한다. 인터넷을 통한 참여 부문에서 완전히 네트워크상에서 시행하는 방법과 다른 온라인과 오프라인 참여를 병행하는 방법을 구분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개 온라인 구성 요소들(가령 모든 서류, 교육 활동, 일정 등을 모아 해당 기초자치단체 사이트에 싣는 예비 단계의 공공 서비스)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첫 번째 도구인 유럽 시민들의 발안은 전자 서명 모음부터 시작하여 주로 네트워크상에서 시행된다. 다음 네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a) 인터넷 청문회
이미 널리 파급된 방법으로 현재 공공 기관과 대의 기구들도 특정 주제를 토론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의 제안과 입장을 낼 수 있도록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대개 공공 기관에서 임명된 에디터들의 도움을 받는 공개 포럼은 개방형open end 온라인 토론 또한 허용한다.
b) 정치인들과의 온라인 약속
인터넷상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서면 교환과 문답식의 화상 채팅을 바탕으로 하는 공개 모임을 말한다. 온라인 공개 약속은 인터넷상에서 직접 중계될 수도 있다.
c) 온라인 청원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공공 기관들은 해당 웹포털을 통해 청원서나 요구사항들을 제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 국회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를 만들어 청원서를 제출하게 한다. 집단 청원은 공개 토론 플랫폼이나 국제 비정부 단체들에서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AVAAZ와 change.org가 있다. 전자 청원권은 전자 서명 모음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정한 기간 안에 요청사항을 지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해당 기초자치단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청원서를 열어 서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d) 전자 서명 모음과 e-투표
온라인 참여는 투표권을 지닌 시민이면 누구든 온라인으로 국민발안 법제안이나 실행적 레퍼렌덤 요청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며, 광장이나 기초자치단체 관청을 직접 찾아가 서명할 수도 있다. 미래에는 국민발안 법제안을 추진하려는 요청 자체를 온라인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참정권은 미래에는 전자 투표로 보완될 것이며, 이는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이미 도입되었다.
세계의 전자 투표
무엇보다 먼저 e-투표를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는 직접 전자 등록시스템과 구분해야 할 것이다. 투표자는 POS(Point of Sale의 약자. ‘판매 시점 정보 관리’를 뜻한다─역자 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스마트카드를 받는다. 투표소의 집계 작업을 간소화 하기 위한 이 전자 투표 기기는 인도, 브라질, 미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대다수의 민주국가들에서는 아직 서류 신원 확인과 손으로 하는 집계가 주류를 이룬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 투표, 곧 좁은 의미의 전자 투표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은 그 시스템의 웹 인터페이스에서 돌아다니며 자기 기초자치단체 선거 사무소 사이트를 연다. 투표자 신원 확인은 홈뱅킹과 비슷하게 웹사이트에서 확인 조회를 통해 하거나 전자 신분증(에스토니아의 경우 참조)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시스템은 모니터에 선거 용지를 보여준다. 유권자는 자신의 선택을 표시하고 화면상에서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투표자가 확인을 누르면, 작성한 투표 용지는 선거 서버에 전달된다. 투표 집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투표소나 거주 구역 차원에서 결과를 집계하여 2차적으로 중앙 차원에서 그 결과를 모으거나, 혹은 모두가 중앙으로 집중되는 디지털 집계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유권자들은 표를 직접 투표함에 넣거나 우편으로 투표한다. 전자 투표는 시민들이 컴퓨터, 스마트폰, 타블렛 등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목적으로 직접하는 선거나 우편으로 보내는 투표와 더불어, 유권자들은 비밀번호를 받아서 그것으로 자기 기초자치단체의 포털에 접속한다. 그 다음에 단 한차례 자신의 표를 표시하면, 그 표는 암호 처리되어 무기명으로 전자 투표함에 저장된다. 해당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위원회만이 전자 투표함을 열고 표를 해독하여 집계를 실시할 수 있다.
전자 투표는 종래의 종이로 된 선거표의 대안이 아니라 추가적이고 보완적인 형태로서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투표함에 하는 투표 및 우편 투표와 더불어 쓰이고 있다. 프랑스, 에스토니아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e-투표가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실험 후 전자 투표 시스템에 큰 당혹감을 갖게 된 나라들이다. 노르웨이의 지방 기관들 및 지역 발전부는 2003년 온라인 투표를 위한 플랫폼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시험 기간이 끝난 2014년 6월 모든 e-투표 방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투표의 정확성 인증을 보장하지 않는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의회에서의 지속적인 토론 끝에 그런 선택이 나온 것이다. 결국 시민들 편에서 전통적인 시스템을 선호하여 비밀 및 자유 투표의 원칙을 지킬 생각이었다.
독일에서는 2009년 헌법 재판소에서 디지털 투표는 선거 시행시 적절한 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여 모든 형식의 디지털 투표를 폐지하였다. 독일 중앙 정부는 2000~2006년 사이에 직접 전자 등록기(DRE: 직접 기록 전자 시스템Direct Recording Electronic Systems)로 실험단계를 시작하여, 시민들 사이에서 운용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그 신뢰도에 대한 큰 우려가 일었다.
프랑스와 에스토니아는 e-투표가 유효하고 신뢰할 수 있는 투표 시스템으로 수용되어 편견과 불안을 극복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은 이미 2003년부터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의6 0% 이상이 이 시스템을 전통 시스템보다 선호했다. 뒤이어 2007년 대통령 예비 선거를 위해 750개 투표소에서 같은 방법이 시행되어,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해외 거주 유권자들이 전자 투표를 이용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모든 시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투표 기회를 보장하는 최초의 나라들 중의 하나다. 2005년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디지털 신분증, 컴퓨터에 연결된 스마트카드 인식기를 활용하여 지역의 정치적 책임자 선출에 각자의 선택을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이 방법은 전국적 선거로도 확장되었다. 현재 인터넷 플랫폼은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 성장했는데, 2014년에는 유권자의 30% 이상이 전통 방식 대신에 e-투표를 이용할 것을 선택했다. 이 네트워크 시스템의 편의는 의무적으로 투표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이 집에서 편리하게 투표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 투표는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토니아의 유권자들은 그 외에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에스토니아 경찰에서 주는 PIN 암호가 있는 SIM 카드를 활용하여 전자 투표를 위한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 자체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한다.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PIN 암호, 전자 신분증 확인 기기뿐이다. 이렇게 어떤 인터넷 접속 스테이션에서도 투표할 수 있지만, 사전 투표날에만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정치 분야에서 완전 온라인 투표를 선포한 나라이다.
핀란드는 2008년 헬싱키의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를 시험했는데, 232표의 집계가 누락되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했다. 2010년 1월 20일, 핀란드 정부는 전자 투표의 최신 발전 상황을 관찰해 보겠다는 뜻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전자적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6년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새로운 전자 투표를 시험했다.
스위스의 기초자치단체 및 칸톤 차원 레퍼렌덤 투표는 근 150년 동안 굳어진 관행이었다. 1980년대부터 도입된 우편 투표를 널리 활용함으로써, 유권자들과 선거 관리자들이 원거리에서 진행하는 긴 투표 절차의 운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금세기 초, 법적 구속력이 있는 첫 e-투표를 시험해 보는 것이 논리적인 수순이었다. 스위스는 에스토니아와 함께 전자 투표 형식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을 도입한 첫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2004년부터 14개 칸톤에서 200여 차례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실시되어, 많은 유권자들이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 한 첫 시험 이후, 2010년경 여러 칸톤들이 무엇보다 해외 거주 유권자들을 위해 전자 투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2015년 여름 여러 칸톤에서 e-투표 시스템의 허가를 취소했다. 2017년 2월, 이 투표 채널의 활용기회는 26개 칸톤 중 6개 칸톤에서 약 15만 명의 시민들만 이용했다. 2017년 4월 5일, 연방의회는 시험 단계를 종료하고 전자 투표의 보편적 활용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입법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연방과 칸톤의 의원들 및 학자들로 구성된 관련 전문가 위원회는 2018년 3월 작업을 마무리했다. 곧 스위스에서 전자 투표가 우편 투표와 투표함 투표 외에도 보통 투표의 세 번째 투표 채널이 될 것이다. 2019년 중으로 칸톤 시민 2/3가 인터넷을 통해 투표할 수 있게 될 것이다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
그러므로 연방의회는 소위 ‘투표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 곧 종이 없는 투표라는 길을 열기로 결정했다. 투표 절차는 디지털화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부분적으로나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종이 문서(투표 용지, 확인 용지 및 관련 봉투, 투표 설명 발) 송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2019년 연방 국회 선거를 위해서도 e-투표 채널들을 이용할 터인데, 무엇보다 75만 명의 해외 거주 스위스인들이 이를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 중 단 1/5만이 전자 투표 의사가 있는 이들의 명부에 등록했다. 스위스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표를 확인하는 시스템 또한 가동된다. 곧 모든 시민들은 자신이 이미 투표를 했는지, 또 자신의 표가 전자 집계로 등록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차원에서는 유럽 시민들의 발안ECI: European Citizens’ Initiative을 위해 물리적 종이 서명뿐만 아니라 온라인 전자 서명 또한 허용한다. 유럽연합은 이 점에서 디지털 시대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개방적이다. 유럽연합의 모든 시민들은 어느 곳에서든 서명할 수 있으며, 그저 자국의 선거 투표권을 지닌 유럽연합 시민으로서 각자의 신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유럽연합 내의 엄청난 거리 상의 문제가 캠페인을 위한 서명을 모으는 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전자 서명권은 서명하는 사람도 발안 위원회도 시간과 에너지와 비용을 절약하게 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기회이다. 서명은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해당 사이트에 자신의 신분 확인증의 정보를 넣어 등록하면 된다. 나머지 국민 청원 및 집단 청원에 그런 전자 서명 방법이 이미 스위스, 에스토니아, 미국 및 베네주엘라 등 여러 다른 나라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쓰이고 있다. 서명 모음 기한은 ECI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1년 동안이다. 온라인 디지털 서명은 해당 국가의 당국에서 증명되며, 그러므로 이탈리아에 규정되어 있듯이 “서명 인증” 요청은 전혀 없다.
이탈리아에서 유권자들이 표한 선택의 투표와 집계를 위한 전자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 데 고전하고 있는데, 정확도, 투명성 및 사생활 보호 측면의 위험을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 다양한 실험이 실시되어, 특히 투표소에서의 전자 투표와 전자 집계(사르데냐, 리구리아, 풀리아, 라치오)를 실험했다. 그런 첫 시도들은 내무부 덕분에 시작되었다. 약 1만 3천 개 지구에서 처음에는 시각적 인식 도구를 활용하고, 그 다음에는 좀더 오랜 컴퓨터화 시스템을 활용하여 실시했다. 최근에는 풀리아 주 멜피냐노와 살렌토라고 알려진 마르티냐노의 레체 지방 기초자치단체들에서 실시된 프로젝트 e-투표는 화면의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시스템을 활용했다. 이는 2013년 멕시코에서 이미 레퍼렌덤 자문 기간 동안 활용된 기술이다. 실험은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냈으며, 사람들은 혁신과 디지털화, 사회2.0를 얘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실제적인 결과가 없다.
2015년 롬바르디아는 자문형 레퍼렌덤의 경우 전자 투표를 도입하는 주 법률을 승인했고, 2017년 10월 22일 자문형 레퍼렌덤에서 이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해 찬반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지켜야 할 실제적 지침이나e- 투표 방향으로 유도해 갈 정치적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 투표의 효과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듯, e-투표는 두드러질 만큼은 아니더라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참여를 증가시킨다.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미국에서처럼(지방 선거), 전자 투표는 지금까지 정치적 참여에서 기권하려 했던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모두를 위한 전자 투표의 전반적 도입이 가져오는 결과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레퍼렌덤 권리 활용을 위한 문턱을 낮추어, 구조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국민발안, 확정적 레퍼렌덤, 청원 등은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 안에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려면 공공 행정 관청과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사무소들이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여러 목록에 오른 후보들에 대한 분리 투표가 이미 우편 투표로 가능해졌듯이 더 쉬워질 것이며, 후보의 예비 선거와 정당이나 커다란 조직의 내부 투표도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정당의 판도가 그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제네바 칸톤에서 관찰한 모든 선거에서, “전자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은 투표함이나 우편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e-투표에 호의적인 이들은 모든 정당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듯하다.
전자 투표는 시민, 정치인 및 직접 활약하는 다른 주역들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을 줄여주고 더욱 평등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 투표는 이미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그 사회 계층을 참여시켜 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실제로 전형적인 e-투표 유권자의 사회-인구통계학적 전망은 전통적 유권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결국 인터넷은 레퍼렌덤 권리와 연결된 절차들을 간소화하고 용이하게 해 준다. 서명 모음, 발안 및 레퍼렌덤의 홍보, 온라인 투표는 기술-조직적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전자 서명 모음의 이득은 명백하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은 더 쉽고 즉각적인 것이 된다. 군소 단체들과 자금력이 없는 발안자들 또한 국민발안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겨루기에는 수수한 이력을 지닌 이들 또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도 있지만 기회도 많다.
몇몇은 해커들의 선거 사무소 공격, 수백만 유권자들의 정보 조작 및 위키누출Wikileaks 식으로 그 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태 등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염려한다. 수백만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시민들의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고, 민주주의 절차의 전문가들과 혁신가들에게 하나의 파국이 될 것이다.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이미 갖추어져, 경제와 행정 등의 다른 부문에서 벌써 여러 해 동안 작동하고 있다(예를 들어 홈 뱅킹과 전자 청구서). 어떤 경우든, 전자 투표 시스템을 한 개인 기업에 맡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투표 용지의 집계 또한 개인 업체들에게 맡길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반대 의견이 제기된다. 만일 레퍼렌덤이나 발안 요청을 위한 서명이 인터넷상의 다른 모든 호소를 위한 서명처럼 그렇게 쉬워진다면 엄청나게 요청이 폭등하여 직접 민주주의는 평가 절하되고 말지 않을까? 국민발안의 물결이 레퍼렌덤 도구 사용을 폭등시키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어쨌든 국민발안을 마련하고, 법적 허용성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치고 온갖 지지 자료를 준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지적 수고를 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여과 장치와 제한을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 서명 모음의 용이성을 고려하여 요청하는 서명의 최소 인원수를 높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 서명의 최대 인원수를 제한 할 수 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미 선구적으로 시작한 이 모든 절차가 성숙되려면 아직 10~20년은 걸릴 것이다. 디지털화는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어서, 이미 다음 세대에 투표함과 투표 용지, 수작업 집계 등이 시대 착오적인 현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할 수 있다.
정보 격차digital divide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 사이의 디지털민주주의
디지털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정보통신을 다루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민주적 절차의 적용과 지원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은 정치적 의사소통을 혁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투명성과 참여와 민주주의 자체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전자민주주의는 e-정부, 곧 전자 행정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민주주의는 e-투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그 너머로 나간다.
인터넷은 공적인 공간을 재정의하고 확대시킨다. 19세기의 신문이 호기심과 교육을 자극하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지원했듯이, 인터넷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을 변경하고 확장시킨다.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는 정치적 대리인들의 선거로 끝날 수 없으며, 그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선거를 초월하여 정치 생활에 헌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주인공들의 역할에서 온라인 미디어와 비정부 기구들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으며, 정치적 활동가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대항 권력을 만드는 주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재선 가능성은 그저 인터넷 캠페인뿐만이 아니라 입법 회기 동안 수행한 그들의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시민들과 유권자들과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갖고 있다. 한편 change.org, AVAAZ, Campact, wemove.org 등이 이끄는 인터넷 캠페인은 선거 캠페인을 바꿀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그들 유권자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바꾼다. 선거는 이전 입법 기간 동안 그들이 했던 일에 대한 일종의 레퍼렌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230년이 흐른 후,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원칙의 가르침에서 이제 우리는 명백히 “관계 없이는 대표도 없다No representation without connection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에서 인터넷의 영향은 자기 생각을 쉽게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매체인 라디오와 TV에서 정보와 오락을 섞어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무엇보다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고 참여의 질을 높여 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지닌 인터넷은 막강한 시민 정치 참여 도구가 될 수 있다.
전자 투표 시스템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나 결정권이 없는 심의민주주의에서 인터넷은 시민들과 행정부 및 의회 사이에서 쌍방향의 정치적 의사소통을 확대시켜 시민들에게 더 큰 참여의 길을 터 주었다. 보통 전문 언론인들이 만드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주로 수동적인 공적 공간과는 달리, 인터넷은 이론상 양방향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현안과 요청을 정치적 의제에 올려 제기할 역량을 얻고, 의사소통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다시 획득했다. 뉴스와 논평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선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원리(소수에서 다수로)에 인터넷은 “다수에서 다수로”와 “소수에서 소수로”라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만들어진 공적 공간은 계속해서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작은 “부분 공간subspace”, 소통이 단절된 매체들로 작게 조각나고 있다.
전자민주주의는 참여를 위해 온갖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겠지만, 이는 또한 하나의 도전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터넷 접속 가능성에서 시민들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정보 격차digital divide”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인터넷 활용 면에서 사회 계급에 따라 격차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인터넷 연결은 2016년 인구의 63%에 달하여, 3천 7백 67만 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나이대에 따라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디지털 원주민들digital natives’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고, ‘디지털 이주민들digital immigrants’은 새로운 미디어를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으며, 일부 노령층에서는 그 매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디지털 금욕주의자digital abstinent). 그러므로 몇몇 학자들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국민들 중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지 않는 이들 사이의 격차)의 발생, 혹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활용의 새로운 문화와 우월한 역량을 지닌 새로운 민주주의 엘리트의 출현을 염려한다.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런 매체에 대한 시민 교육이나 전반적인 구성, 나중에 특히 그런 매체를 이용하여 민주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보 격차는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디지털 정보 역량을 보급하고, 모두가 디지털민주주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교육 및 정보 입수 수준과 관련된 사회적 계급 간의 민주적 격차에 대해서도 선행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질은 인터넷을 통해 악화되기보다는 향상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좌담은 줄곧 한반도 평화정책을 표방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왜 대북전단 문제에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마련됐다. 좌담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탈북민 김민경(가명) 씨, 탈북민 정착 사업을 하고 있는 양영창 선교사, 탈북아동공동체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 세 명을 초청했다. 좌담회 사회는 김화순(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사회: 지난 6월 일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고,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북측은 지난 6월 4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로 남측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이튿날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규정한다고 언급하고 잇달아 담화 발표 및 대남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지금 잠시 진정국면에서 접어들었습니다만, 이처럼 남북한의 긴장관계가 격화된 계기에는 박상학 등 일부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전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 없습니까?”
사회: 반갑습니다. 세 분을 좌담회에 모시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 주시겠습니까?
김민경: 시작하기 전에 제가 남한에 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북한출신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묻는데요.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도 없습니까? 이명박시대에 삐라를 하라고 탈북인단체를 부추긴 것은 그럴만했다고 치고요. 그때는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대하는 정권이었으니까. 그런데 평화로 가자는 방향으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요? “결국 평화라는건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남북관계는 쇼였나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결시대에는 삐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약속을 내챙개치고 삐라라니, 언론의 자유라니. 지난 2년간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평화라는 건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결국 한반도 평화는 안된다는 겁니까?
사회: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남북한관계 파국의 원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대북전단사건부터 복기하여 원인과 책임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대북전단의 발생 원인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마석훈: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원인을 ‘특별함이 주는 중독현상’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분들이 남한에 와서 세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탈북자분들이 북쪽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 사회에서 세뇌가 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왜 남한에 왔나? 그러면 흔히 자유 찾아 왔다고 하지만 정말 자유를 찾아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출세하려면 튀어야 한다는 게 일부 탈북자들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이 3만 3천입니다. 박상학 씨는 대북전단을 어제 날렸고, 앞으로도 계속 날릴 것입니다. 학생운동 할 때처럼 구속되어도 나와서 또 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박상학 씨는 이미 하나의 확신범 같이 본인은 대북전단을 날려야지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북한과의 문제를 야기하는’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대북전단살포 문제는 정치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처벌도 엄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민주화를 위해 산다는 게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지 겪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민주투사가 될까?”
양영창: 마선생님이 원인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돈 대는 단체들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돈대는 단체로 ‘미국의 소리’가 이번에 뉴스에서 지목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제가 아는 단체는 미국에 있는 교포단체인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돈을 댄다고 하면서 정작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한인교포들은 미국 국민들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합니다. 최고존엄을 저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탈북민들을 분란시키는가? 아는 탈북민 친구들과 전화를 해보면 선생님 그렇게라도 하면 우리 식구들이 얻어먹을 거 아니예요? 그런다. 태극기 들고 있는 친구. 태극기는 5만원이다. 대북전단은 그것보다 더 돈을 많이 줍니다. 당일 치기도 하고 1박 2일도 하고. 이들을 조정하는 팀들이 누군지 밝혀내야 합니다. 나는 탈북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냥 한국사람으로 그냥 우리 사회 일원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석훈: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왜 정의투사, 민주투사가 되어가는지 그 현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말고 그런 사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미국에도 소수지만 가고, 캐나다 영국에도 몇 백 명이 있는데 정치행위에 나서는 탈북자집단은 한국 말고는 없습니다. 즉, 캐나다에 간 탈북자들 영국 등에 있는 탈북자들은 왜 생계에만 천착해서 살아갈까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양영창: 요즘 단체들의 창업지원을 하러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풍선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언론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나 큰 샘과 같은 몇 개 단체 이름만 나왔습니다. 기실 방송 듣고 넘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전단살포가 자기네들의 이득과 단체들의 이득과 돈 때문에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과거 초기에 이민복 씨가 했을 때부터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대북전단살포가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를 생각 외로 많이 합니다. 문제는 (대북전단) 돈을 대주는 팀들인데 그들이 뒤로 다 빠져 있습니다. 재정(돈)을 대주는 팀들이 누구인지 언론은 잘 모릅니다. 이러다가 대북전단살포법을 만든다고 해도 일이 잘못되다 보면 (탈북민) 몇 명만 때려잡고 말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민경: 마선생님 말씀처럼 캐나다에 간 사람들은 그곳을 너무 좋아합니다. 거기 가니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북한이 싸우는 짬에 끼워지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거기 가서 오히려 북조선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저도 캐나다에 가서 미국에서 자금을 받아 아시아방송을 운영하는 탈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인권을 하는 사람이 몇 있고, 방송을 하는 정도이지 여기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남한에 ‘수요’가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을 보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반공주의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반공주의가 생존의 열쇠인 그런 세력들. 그런 사람들이 탈북자를 돌격대를 만들어 내세웁니다. 그들은 남남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해방 후 북에서 넘어온 월남자들 일부가 서북청년단을 뭇고 앞장에 서서 상대진영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말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에서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안보강사로 다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우고 반공주의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했죠.
또한 남한의 정부와 국민들이 용인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주류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정착하고 살아가야 할 소수집단인 탈북자들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행위들을 너무 당연시했던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남한 사람들 속에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북한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오늘에 이르게 된거죠. 또한 한미동맹으로 얽혀 있는 남한내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아시아 패권전략에 따른 문화적 침투의 일환으로 미국의 자금이 국내에 상당히 유입되면서 기생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막말을 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사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풍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북청년단을 이용했던 그 세력이 수요처다. 보수를 지칭하는 분단세력들이 지금 대북풍선의 원인이다라는 지적을 남북한 분들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살포를 요구하는 세력은 돈도 많습니다. 언론들은 이런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같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남한에 오니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억이 막히는데 여기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뭔가? 오히려 분단 70년동안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가 가장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하다 한들 생명권보다 더 중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개인의 자유가 생존권을 우선할 수 있냐? 그들의 표현의 자유 운운 하면서 삐라 날리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위협에 노출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비롯해서 삐라 때문에 남북간 총성이 오고간 사례들이 많죠.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말하죠. 요즘 어떤 판사도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했죠. 자유가 아니라 방임입니다. 삐라 내용도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일베 수준의 저열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나 날리던 삐라를 평화이행기에 들어선 오늘날까지 날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사회: 저도 엊그제 제가 패러글라이더 한 분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년 전에 불법적인 전단살포 행위를 통일부가 나서서 변호했다는 군요. 특히 대북풍선을 날리는 북한접경 지역은 항공관리법이 적용되는 특수지역이어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북단체들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10년 가량 정부의 묵인과 비호를 받으며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을 버젓이 날려왔습니다. 전단 살포용 풍선이나 드론이나 똑같이 항공안전법 제2조 제3호에 같이 규정되어 있는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하며 각각은 “기구류”와 “무인비행장치”에 속하기에 불법입니다. 접경지역에서는 패러글라이드도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북전단을 풍선으로 띄우는 것에 항공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을 국회의원이 당시 청문회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통일부 관료들이 말이 안되는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왈, 지상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대북전단 풍선은 항공법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고 합니다. 【1】대북전단을 날려도 된다는 거지요.
정부가 전단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교통부, 국방부 등까지 관련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대강 짐작이 가지요. 통일부에서 법의 해석을 무리하게 하면서까지 대북 전단살포를 허용했다. 한마디로 전단풍선살포는 정부의 허용 내지는 대북상대의 일종의 심리전으로 인정받은 행위였던 겁니다. 마선생님이 ‘왜 한국에서만 그러냐..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는데’라고 말하는데, 탈북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국가 정부가 탈북민들을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댓글부대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겠지요. 탈북단체들은 그 앞장에 서서 생존해왔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국가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한마디로 분단세력이죠. 북한이 나쁘다는 것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박상학이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계속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의 토착세력이 문제입니다. 새터민이 아니라 헌터민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에 대한 인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독재하는 것을 다 알지만, 중국에다 대고 너네 왜 독재하냐고 삐라를 날리지는 않습니다. 왜냐? 우리가 중국을 함부로 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에는 막 해도 됩니까? 북한에 대고 온갖 표현을 해도 용납이 되는 남한사회 전체의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삐라의 변질, 돈 주는 사람들은 왜 북의 ‘최고 존엄’을 겨냥하는가?”
양영창: 과거에 정부가 독려하고 돈을 주었는데 북에서 이야기가 나오니까 (탈북민을) 잡아넣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왜 이렇게 대북전단을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지방에 가서 대북전단을 하는 탈북민을 만났더니 그들이 한번 정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냐? 고 합니다. 내가 너희 국회의원 하려고 그러냐? 고 물어보았더니, 그렇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삐라를 시작했을 때 강화에서 이민복 씨가 주로 했는데 지금같이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는 사람들의 요구가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최고존엄을 건드리면 안되는데. 이 사실은 탈북자들이 더 잘 압니다. 나는 최고존엄을 건드리라고 돈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요구한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어떻게 삐라가 이렇게까지 변질이 되었는지 돈이 어떻게 들어갔고 왜 이렇게 이들이 하는지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과 이야기해보니 기자들은 문제를 ‘탈북민’전체로 돌립니다. 나는 법을 어기면 제재는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탈북민사회가“대북전단 살포는 안된다.”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때려잡는게 아니라 탈북민들과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다음 세대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이어받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돈을 주는 세력이 있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 양선교사님 말씀은 돈을 주는 쪽에서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쪽으로 푸시를 했다. 이제는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탈북민사회에 이 문제에 가지고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 풍선날리기 문제는 남한의 정치풍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진영이 70년 동안 위축되었습니다.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키워드가 있죠. 빨갱이, 종북, 북한 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데 있어 반드시 북한이 동원됩니다. 아주 강력한 무기죠. 정치꾼들이 북한 인권을 빌미로 색깔론을 부추기고 앞장에 내세우던 인물들이 있죠. 그런 사람이 국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
사회: 대북전단을 북한에 날리는 행위의 원인이 탈북민을 사주하는 분단세력에게 있다는데 여기 모인 분들 간에 이견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논의를 통해 탈북인들의 대북전단 행위에 대해 대화적인 접근을 해서 설득할지 아니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할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석훈: 저는 지금 공론의 장에서 논의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가 가시화되어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니까요. 한 가지 더 문화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 분들이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을 보면 탈북여성들은 미녀만 나오는가? 여성은 모두 미녀고 남자들은 김일성대학출신이고. 제가 보는 탈북민들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을 발굴해내려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미국에 가보니 난민의 경우 경비를 3개월에 뱉어내도록 하는데,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각종 공짜들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특례입학 등 다른 방법으로 정착한다. 여명학교, 원불교 한겨레학교에 들어가는 돈, 돈을 기부하는 분들은 바로 이 삐라 만드는 사람들의 좋은 자양분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탈북민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기부행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북전단을 하는 사람들이 구속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은 해야지 어쩌겠어요?
김민경: 우리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행위를 이번에 근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상학을 비롯하여 탈북민전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되면서 10년간의 정착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대북전단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70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오늘까지 오게 된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남북화해노력을 80%까지 지지했습니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거죠. 오늘날에 와서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범죄이고. 더 이상 분단과 반공에 기생하던 풍토를 청산해야 합니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축소되어 살아가는 사람인데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관계를 가지고 살려면 이 문제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남북관계해결의 이해당사자입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남북화해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일부 탈북자들의 행동으로 남북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북전단 픙선을 날리는 사람들 때문에 탈북자 집단이 사회 혐오집단으로 낙인되고 정착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할 우려가 커지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양영창: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민이 소수자로 된 것은 삐라 사건만은 아닙니다. 탈북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보수정권에서도 그렇다. 법적 제재 전에 논의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석훈: 이런 시점에 탈북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나 어른이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탈북민에게 신뢰를 받는 단체나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중재를 하는 존재 하나 만들어내지 못 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양영창: 제가 가장 힘든 게 그것입니다. 국내에서 정착지원활동을 하고 해외에서 일을 20년 넘게 했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이 듭니다. 너무 힘듭니다. 내가 왜 이 사역을 했나 싶습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북한도 지금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쉼표를 가지고 직접 탈북민 자신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봅시다. 뒤에서 이야기할게 아니라 보수는 서로 목소리를 내서 잘잘못에 대해 이야기 하자. 우리가 남남갈등 하지 말고, 원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
사회: 이 좌담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입니다. 참석자 모두가 한마디씩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영창: 대북전단 풍선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단체들은 논의의 자리가 있으면 오겠다고 해요. 한 번씩은 다 와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송에 나서 시끄러워집니다. 대북풍선을 날린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깊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전단살포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탈북민이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고 인정한다면 법내용에 대해 알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시기가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포괄적으로 법내용이 만들어지면 발표하고 서로 문제제시도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게 촛불정부인 더불어민주당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왜 자꾸 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하냐고 주장하냐면, 탈북민들은 지금 불안하고 애가 타기 때문입니다.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가? 빈대 한 마리 잡는데 초가삼간을 왜 태우냐. 정부가 그동안 잘못했다. 풍선을 하도록 했고 전단내용을 바꾼 세력이 있는 한 피해자는 탈북민이 됩니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회: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양선생님 이야기처럼 공론의 장에서 대화하는 자리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통일부나 하나재단 모두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 때 무력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단체들을 연결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석훈: 탈북민을 관리한 기관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맞긴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남북하나재단은 늘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건데. 대북전단은 인권운동이 아니라 상업적 운동입니다. 이미 하느니 마느니 합의할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관련법도 제출이 되었고 이재명지사가 경기도에서 행정권으로서 접경지역 출입금지라든가 고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이제 법을 시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합의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도 그렇습니다. 대북전단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60%를 넘어 70%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하니 마니 합의하거나 논의할 시점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과연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국회가 한 일이 뭐냐? 남북 간의 비방을 안 하기로 합의했던 4.27성명 발표 후 국회는 이를 뒷받침 하는 법안 하나 내지 않고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북관계가 파탄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죠. 문재인정부를 공격할 구실이 생기니까요. 직무유기죠. 대북전단에는 정치세력과 기독교, 미국의 대북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제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방지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저도 사회자의 입장을 떠나 탈북민문제 연구자로서 제 생각을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과연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라는 가장 본원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촉망받던 김연철장관이 아무 일을 하지 못한 채 사표만 내고 떠났는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때도 결국 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이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 리짓고 말았는데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없이 어공 윗사람 한 사람의 사표로 마무리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늘공 조직의 과감한 쇄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북전단이 왜 방치되었는지 국회가 대한민국 정부가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라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의문에 답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개성공단 등 통일 각분야에서 부딪히고 있는 답답함과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경향신문. 2014. 10.23. <북한 비판 풍선은 되고 정부 비판 풍선은 안된다?.. 정부, 항공법 적용 제각각>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북 전단 살포가 비행금지구역인 휴전선 인근에서 이뤄지게 될 경우 항공법으로 규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한 결과 대북 전단 살포용 대형풍선은 지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공법 적용대상인 초경량 비행 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글은 2020년 6월 26일 개최된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의 기획주제 세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개인화’는 흔히 신자유주의적 고립이나 공동체적 연대윤리의 상실 및 이기주의의 확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위험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현상 등을 단편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구 근대부터 2차대전 이후까지 다소 선형적으로 발전해온 산업사회가 그 역사적 성공 이후 깊은 변동을 겪는 과정을 묘사하는 개념으로서, 울리히 벡이 사용한 ‘개인화’ 개념에 기초하여 복지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현대의 복지체계가 산업사회의 규범에 기초하여 제도화한 ‘유기적 연대’의 형태라면,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개인화 상황 속에서는 사회적 연대의 형태 역시 한층 개인화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현대 복지체계의 규범적 출발점
현대 복지체계는 유럽에서 발전한 자본주의 및 그것이 초래한 계급 대립 속에서 형성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봉건적 신분제로부터 개인을 해방/고립시키는 이중의 과정을 불렀다. 따라서 봉건적 신분과 달리 계급은 1차적 집단관계가 아니다. 계급은 개인들 간의 사회경제적 성취의 격차로부터 2차적으로 형성된 집단적 격차의 문제로 정의되는데, 개인적 성취 격차를 집단적 격차로 구조화하는 것은 자본의 소유관계이다. 이 소유관계로부터 집단적 분배 격차가 생겨나는데, 복지국가는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인 분배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사회갈등을 약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소유관계는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적 관계―‘사생활’로 축소된―를 통해서 상속되기 때문에, 계급은 사실상 1차 집단으로서의 성격과 2차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갈등 속에서 과거의 신분적, 가부장적 문화를 매개로 계급결속이 형성되면서, ‘계급’(마르크스) 개념은 ‘사회계급’(베버) 개념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계급 격차는 계급집단 간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격차, 즉 가족생활 향유에서의 격차와 집단문화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복지의 문제 역시 그와 같은 ‘사회적 삶’을 보장하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복지체계가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분배 격차를 문제 삼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향상이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본의 사적 소유가 생산력 발달 또는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그 결과물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현대 복지체계에서 당연시하는 사회이론적 전제는 1)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 2) 사회경제적 불평등인 계급 격차의 완화, 3) 사회적 삶의 보편적 단위인 핵가족의 보호, 4) 핵가족 부양에서의 계급 간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제대로 포괄되지 못하고 외부화한 문제들이 들어 있다. 각각의 문제를 이 사회이론적 전제들과 관련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문제
경제발전의 틀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한 투입 요소로 노동력과 자본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생산을 위해서는 원료나 토지, 기계 등의 형태로 자연 물질의 투입 역시 필요하다. 또 노동력의 투입을 위해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자연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의 상속 역시 자녀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인간의 몸이라는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력 재생산과 자녀 출산, 양육 등에 동원되는 여성의 몸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그러한 ‘자연 물질’의 문제를 모두 외부화하여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지체계 역시 생산관계가 초래하는 분배 정의의 문제만을 ‘사회문제’로 보고, 자연 물질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외부화했다. 이것은 자연과 사회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회문제의 영역에서 자연 물질의 문제를 개념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평등이란 지속가능성 문제를 배제한 절반의 ‘정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생태 파괴 및 인구 돌봄 문제로 인해서 성장모델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사회경제적 불평등 = 자본주의 계급 격차
사회경제적 격차를 계급 격차로 보는 관점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핵가족 생활공동체를 인간 삶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단위로 보는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이것의 배경은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확산한 ‘기혼여성 지위(덮어씌위기, coverture)’의 제도화이다.【1】 기혼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도 더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또한 더 이상 법정에서 발언할 수 없도록 혼인 제도가 변화했다. 기혼여성의 법적 권리가 남편의 법적 권리 속에 묻혀서, 남편이 가족을 대리하는 법적 대표자가 된 것을 말한다. 여성은 시민권의 출발점인 계약할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그와 함께 아동기가 발명되고, 아내와 자녀가 모두 아버지의 성을 취하는 ‘가족성(family name)’ 제도가 일반화하면서, 남성은 재산 소유에서는 내부적으로 격차를 보여도 ‘가장’으로서는 동질화하는 ‘보편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이러한 남성 가장들 사이의 계급 격차로 정의되었다. 반면 여성은 앞서 보았듯, ‘자연 물질’과 유사하게 취급되어 남성의 사생활 영역에 묻힌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정치경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3) ‘정상가족’의 규범
기혼여성 지위가 법적으로 차별적으로 규정됨으로써,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살림을 도맡는 ‘정상가족’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정상성은 특히 생물학과 정신의학 등에 의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면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을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규정―‘자연화’(푸코)―했다. 그리하여 이제 보편적 정상가족을 향유하는 권리의 문제가 ‘사회권’의 내용으로 등장했다. 남성에게는 가족 부양의 기준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고, 남녀 간 임금격차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비정상적―임시적, 예외적, 보조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4) 계급 평등 = 가족 부양자 남성 간의 격차 완화
결국 복지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분배 평등 또는 남녀를 불문한 가장들 간의 분배 평등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성역할 규범과 연관된 엄격한 공/사 구분으로 인해서 ‘노동’의 원형은 ‘가장 남성’의 노동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공장제 산업사회의 형태로 조직화한 제조업 육체노동이 노동의 원형이 되었고, 여성의 직업으로 분류되는 저숙련 서비스직이나 가족 내 삶을 위한 노동은 ‘노동’ 개념으로부터 주변화 또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발전하고 또 탈제조업중심의 산업변화가 진행되면서, 이와 같은 평등 개념은 현실적 토대를 잃게 되었다. 우선 복지국가 발전의 역설적 결과로서, 평등이 계급집단 간의 갈등보다 개인이 국가에 청구하는 ‘사회권’ 개념으로 변화했다(‘제도화한 개인주의’ 또는 ‘고객주의’). 탈산업화로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남성 노동 중심의 복지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과 경제활동 증가, 직업 세계에서의 경쟁 격화,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해서 1인 가족이 증가하며, 노동의 목적이 ‘가족 부양’에서 ‘본인 부양’ 또는 ‘가족 공동부양’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나타났다(‘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2. 개인화 및 그것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과제들
울리히 벡은 앞서 본 바의, 산업사회가 외부화―즉 단순한 리스크로 처리―한 ‘자연 물질’ 관련 문제 중에서 생태적 위험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가 되는 과정을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2】 그리고 위험사회의 노동과 삶의 측면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상들, 즉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노동 및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를 ‘개인화’라고 표현했다. 노동 규범의 탈정상화는 정상노동모델의 약화를 의미하고,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는 탈핵가족화 또는 근대적 성역할 규범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불확실성’(생태위험)의 증가와 탈산업화로 인한 생애위험의 탈계급화뿐만 아니라,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 역시 크게 작용했다. 특히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으로 인해서 개인주의가 단순한 문화나 이념이 아니라 ‘법적 권리’로 제도화―‘제도화한 개인주의’―했기 때문에, 노동과 가족의 탈규범화는 단순한 아노미가 아니라 근대 이후 진행된 개인화가 한층 급진적 형태로 심화하는 것(‘2차 개인화’)이라고 보았다.【3】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 및 사회적 저항의 조직방식이나 주체들에서 변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적인 것’ 자체가 기존의 공/사 구분이나 사회/자연의 구분을 넘어서 혼종화하는 경향―‘새로운 사회운동’―이 나타났고, 이 역시 개인화와 함께 진행되는 정치변화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제나 저항의 조직방식, 주체화 등이 개인별 위험 인식에 따라 유동적 네트워킹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개인화의 이러한 양상들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의미는 앞서 말한 복지의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 우선 평등 분배의 단위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에서 모든 개인과 아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2) 제조업 육체노동자의 노동을 원형으로 삼아 발전한 계급모델과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제도에서 탈피해서 상품화한 모든 노동―불완전고용과 여성노동 포함―에 평등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및 1인 가족 증가로 야기되는 일·가족 양립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4】 4) 소득 분배에 의한 생존권 외에 ‘자연 물질’과 관련된 안전권―인간 돌봄, 생명 안전, 생태적 안전권 등―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돌봄과 관련된 문제
이러한 도전 중에서 여기서는 돌봄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그리고 정치적 의제 및 주체의 개인화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돌봄 문제를 다룰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1) 우선 생존권 개념이 정상가족 단위의 생존이 아니라, 성인과 아동 개인 단위의 인권문제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경우에는 돌봄이 가족이라는 사적 공동체에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필요에 따라 수행되는 동시에 사회적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에 기초하되,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개인이 두 가지 보편적 역할을 병행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5】 사회서비스로 제공될 경우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나 돌봄노동자의 조직력 역시 향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노동위험이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개인별 생애위험으로 변화하므로, 이에 대한 안전보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기본소득 대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형태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보험의 보편적 확대는 적용대상자에 대한 조사와 분류가 필요하여 시간 및 행정의 비용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사용으로 각종 서비스 단말기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일상의 삶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 증가하며, 노동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 생산이 이처럼 단말기와 일반인의 상호작용에 기초하여 사이보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의 삶 속에서 수행되는 경제적 기여에 대한 보상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6】 또한 (사회서비스 제공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에게 일정 정도 남겨질 수밖에 없는) 돌봄노동이 보편화한다고 해도, 그 역시 부불노동으로 남는다. 재정마련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과 함께, 역진성을 약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3) 복지제도에 의해 개인별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노동과 돌봄이 통합된 형태로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아프면 쉬는’ 문화와 함께 ‘아픈 가족원을 돌볼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사업장 문화가 바뀐다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부담 역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예방책으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이 ‘아프면 쉬는’ 문화라는 것이 여론조사의 결과였다. 또 인구 고령화와 함께 돌봄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돌봄을 사적 비용으로 또는 대면적 공동체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다.
4)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세대 간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돌봄은 생태에 대한 돌봄과 유리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장가동 중지로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 그리고 개인별 위생수칙의 철저한 수행으로 호흡기 질병이 줄어든 것 등을 볼 때,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사회의 돌봄 비용을 전반적으로 낮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 및 생존권 보장을 통해서 일과 삶, 돌봄을 한층 유기적으로 통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새로운 틀은 돌봄을 사회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을 제도화한 북유럽 모델을 기초로 하되, 돌봄의 보편성을 한층 강조하고 또 거기에 일상 속 노동을 소득으로 보상하는 기본소득을 더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스웨덴 모델에 대한 실망과 한국식 모델의 모색
한국에서 그간 복지국가 모델로 크게 주목받은 스웨덴이 코로나19로 집단면역 실험을 하면서 상당한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간 스웨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다는 비판이 올라왔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서구 복지국가에서 살거나 노동하는 외국인의 열악한 생활상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노동유연화에 대한 대처에서 북유럽 모델이 스웨덴 모델과 덴마크 모델로 갈렸던 것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서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상이한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들에 유념할 때, 북유럽 모델을 하나의 동질적인 모델로 이해하는 대신, 각 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한 복지모델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적절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데에 참고하는 것이 한층 발전적일 것이다.
【1】 캐롤 페이트먼, 2001,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충훈·유영근 옮김, 이후.
【2】 울리히 벡, 1997, 『위험사회』, 홍성태 옮김, 새물결.
【3】 울리히 벡, 2013, 『자기만의 신』, 홍찬숙 옮김, 길.
【4】 독일의 노동 4.0에서는 개인화가 복지체계에 주는 의미를 ‘시간 주권’의 문제, 즉 일·가족 양립의 문제로만 이해했다. 홍찬숙, 2018, “노동 4.0인가 제2의 노동세계인가? 노동 4.0의 산업사회 관점 및 그 한계,” 『경제와 사회』 119: 165-192 참조.
【5】 낸시 프레이저, 2017, 『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옮김, 돌베개.
【6】 기본소득의 노동 근거로서 필자는 울리히 벡의 ‘시민노동’이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부불노동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이보그적 가치 생산에서 소비자 노동이 사실상 비가시화되며, 돌봄노동 역시 사회적 생산에 필수적인 노동으로 여겨져야 한다. 반면 벡은 위험사회에서 시민의 기여가 ‘노동’에서 ‘정치참여’로 바뀐다고 보며, 그것을 기본소득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울리히 벡, 1999,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홍윤기 옮김, 생각의나무 참조.
왜 안 터지나 싶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터졌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의 사망 사건. 이번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yod) 사건이다. 체포 과정에서 백인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눌려 죽인 끔찍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트럼프는 군 헬기 블랙호크를 띄웠으며 과격 시위와 약탈이 계속될 경우 군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조지 플로이드 사망 관련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 정렬한 주방위군. 워싱턴포스트는 이 정경이 미국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군대가 국민을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것인가를 묻고 있다.
잊힐 만하면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강압에 의한 사망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시위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격화되고 있고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번엔 백악관 앞까지 시위대가 밀고 들어갔다. 트럼프는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하기까지 했다. 심상치 않다.
그런데 이번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단순하게 흑백간의 인종차별적 인권 유린 문제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잘못 짚은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반드시 인종문제가 있다.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의 마그마가 가장 약한 지반을 뚫고 폭발하듯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비등할 때 터져버리는 취약점이 바로 인종이다. 그래서 인종문제는 점잖은 표현으로 종합선물세트, 나쁘게 표현하면 오물통 같은 것이다. 오물이 쌓고 쌓이면 결국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나는 격화된 시위를 단순히 흑백간의 차별에 분노한 시위, 즉 인종 간 문제 해결 요구로 축소시키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경계하고자 한다. 거기엔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문제는 단지 그 분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우려와 경계는 이번엔 기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위를 전하는 언론들도, 심지어 시위에 나온 필부필부들조차도 이번 사건을 기화로 뭔가 미국에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경찰의 잔인한 폭력을 징벌하라는 데만 있지 않고, 망가진 미국 시스템을 전체를 교정할 때가 왔다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다. 과거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이전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많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쳐버리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나 비판에는 한 발도 못나가고 그저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것에 실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급한 나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미국과 미국인 자신이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확실히 알고 난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과외나 학원보다 자기주도 학습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미국 언론은 지금 미국은 부싯깃 통(tinderbox)라고 이야기한다.(“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불똥만 튀면 터져버리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 되었을까? 그 계기는 코로나19다.
조지 플로이드 학살사건 항의 시위에 나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고무탄환에 맞아 눈이 부은 미니애폴리스의 한 시민. 제목은 일촉즉발(부싯깃 통)의 미국이다. <출처: 뉴욕타임스/로이터스>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코마거(Herny Steele Commager, 1902~1998)는 그의 책 <미국정신>(The American Mind, 1950)에서 “인류 역사상 미국처럼 성공을 거둔 나라는 없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그 사실에 대해 안다”라고 썼다. 그러나 코마거가 아직도 살아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미국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저 문장을 다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 거둔 성공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뉴욕타임스 칼럼처럼 코로나 침공은 미국 역사상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초의 침공으로 기록될 만하다.(“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6월 3일 현재 확진자는 180만 명, 사망자는 10만6천 명을 넘어섰다. 미비한 의료체계와 환경으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나간 자들이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완전한 참패다. 그러나 참혹함은 미국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코로나는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첫 번째 침공으로 기록 될 만큼 위력이 대단했고 참혹한 결과를 남기고 있다. 그 후유증은 미국 사회를 어디로 인도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출처: 뉴욕타임스>
코로나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떨었다. 그런데 속된 말로 그 ‘쪽팔림’은 당하는 당사자들만 모르면(혹은 모른 체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정확한 사태 파악을 어느 순간 하게 되면 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숭이 임금님과 간신들처럼. 너나없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칭송하던 이들이 임금이 벌거벗었다며 “올레리꼴레리” 외치는 아이의 돌직구에 정신을 차렸던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미국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상에 금이 간다. 현상학적 사회학이 알려주듯 당연시되던 것들은 그것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동안만 그 당연시가 유지될 뿐이다. 일상은 그렇게 깨진다.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의문시 되면 모든 것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껏,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더 해결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이 세계 제1의 국가로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떠벌여 그렇게 알고 있던 코로나라란 괴질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허둥대는 국가 체계의 무능함과 부실함을 보면서, 그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절대적 위협을 받게 되면서, 미국인들은 보건문제를 넘어 그 이상의 다른 모든 것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아차, 꾸나! 미국이란 나라가 벌거숭이 임금님 꼴은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우리(미국인)는 실패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제목의 애틀랜틱 기사
그리고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이다.
우리가 몇 년 전 창피해하며 되뇌던 바로 그 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믿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 좌절, 분노에서 오는 단말마적 비명이다. 그것은 “실패한 국가”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이다.(“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즉, 창피함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이다. 그러나 그 창피함은 어떻게 이런 나라가 세계최강일 수 있느냐는 다른 나라의 손가락질이(“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Fintan O’Toole: Donald Trump has destroyed the country he promised to make great again,” The Irish Times, April 25, 2020.) 자조감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자기모멸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렇게 스스로 비웃다 스스로 창피해하고, 결국 자기 연민에 빠졌다.(“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최고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불쌍한 처지에 놓인 우리 꼴을, 우리 자신의 몰골을 볼 줄 알아야 그 나마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일말의 희망이라도 엿보일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을 정도다.(“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과거에 이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어디 감히 세계 제1의 대국 자랑스런 미국의 시민을 깔보며, 어찌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단 말인가).
우리(미국인)가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일말의 어떤 희망도 없다고 전하는 워싱턴포스트
코로나 창궐에 속수무책인 나라. 의료체계가 엉망진창인 나라. 실직하면 하루아침에 중산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나라. 먹을 것을 무상으로 얻기 위해 몇 킬로미터의 줄을 서야만 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민이 팍팍한 삶으로 끔찍한 하루하루를 버텨야하지만 부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배를 불리는 나라. 이런 것을 해결해 줄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에 대한 불만.
한 번 터지니 한꺼번에 우르르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게 의문에 휩싸여버렸다. 그러한 고질적 문제와 병폐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는 나라. 그 정점에 있는 빈곤과 불평등과 인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좌절.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에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혹시 허구? 그런 회의가 물 밀 듯 밀려오는 지금의 미국이다. 그 민낯이 이번 코로나사태로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이들의 절망.
천하를 호령하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이 여러 나라들 중 지존이란 표현)는 빈곤과 불행 그리고 사망의 의미로 희화화되었다.(“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하다못해 과거의 영광스런 “예외주의” 딱지는 발가락의 때보다 생각 안하던 나라, 한국 같은 나라에게 붙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이렇게 자신이 거주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그 다음 수순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세계 최강 국가의 국민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무시했던 제 3세게 국가의 국민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게 된다.(“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그러면 차별, 불평등,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절망은 단지 흑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전에는 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알았던 것들이 모두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처절한 자각!
지금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진 미국과 미국인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전하는 애틀랜틱 기사
그러니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정서를 “공포(Fear), 불안(Anxiety), 분노(Anger), 절망(Desperation)”으로 짧게 규정한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길거리로 사람들을 나가게 한다. 해서 지금 미국 도처에는 흑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가 흘러넘친다. “내가 바로 목 눌려 숨져간 그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라는 각성이 사람들을 인종, 지역, 연령, 직업에 상관없이 항의 시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그것이 길거리를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들로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한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하여 백인 경찰은 단순한 대립각에 서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피폐해진 나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기성체계와 못된 세력들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존재했던 차이와 그로 인해 벌어졌던 문화전쟁들을 매우 하찮은 것들로 여길 정도로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플라스틱 빨대냐 종이 빨대냐, 와인이냐 싸구려 맥주냐의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이처럼 여태까지의 인종차별의 갈등 양상은 코로나 이후 큰 변화를 갖는다. 흑인 대 백인의 대립구도는 지금 “네 편 내 편”으로 갈릴 문제가 아닐 정도로 진화했다. 물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트럼프는 이들의 정서를 집중 공략해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어쨌든, 코로나 속에서 많은 이가 참여하는 저항이 가능할까란 칼럼(“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과거엔 볼 수 없던 시위가 터졌고 더 대규모로 더 극력하게 더 오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지적도 나온다. 시위와 저항이 미국적인 게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미국식이란 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자유를 지키고자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 정신이 아니었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미국적인 것 아닌가?(“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사리에 맞지 않는 저항에 대한 이중 잣대는 무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몇 마디가 있다.
첫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탈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약탈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약탈을 하는 순간 시위의 정당성과 취지는 훼손되고 더 많은 지지를 얻어 낼 수 없으며 상대 쪽에 되치기 당하는 빌미를 줄뿐이다. 또한 약탈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의 대다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소상공인들과 대형할인마켓의 필수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코로나로 수 개월간 벌이가 신통치 않았고 감염의 위험성 속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사지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당장의 처지가 어려워졌기에 생긴 물욕 때문에 그들에게 약탈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폭력을 규탄한다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오히려 구걸을 하는 게 낫다.
둘째, 하는 말 족족, 하는 짓 족족 밉상인 트럼프가 설혹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한다 해도(“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미국의 모든 잘못을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물론 그의 탓도 매우 크다. 하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중증 문제가 모두 트럼프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트럼프는 그 일을 다룸에 있어 그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의 방식은 뻔뻔하고 조잡한 무시 전략. 그래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것 같이 보일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트럼프 이전의 다른 지도자들은 동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문제 해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바마가 그 썩어 문드러진 체계를 고치려 시도했는가? 아니다. 트럼프나 다른 이들이나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적 행위를 할(했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 대표적인 문제인 계층 계급간의 불평등을 보라. 그것은 트럼프 이후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중증 기저질환이다. 심각한 기저질환이 지속되었고 아무도 그것을 치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부채질 해왔던 기득권세력들, 내가 말하는 제국들을 위해 열심 봉사 했을 뿐이다. 미국은 그 둘의 노선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아니 트럼프가 나와서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보이게 했을 뿐, 관통하는 사실은 단 하나 국민이 아닌 제국을 위한 정치였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커녕 더 엉클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이 때문에, 나는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예외주의가 빈곤, 불행, 사망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견해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했던 클린턴 때도 이미 그렇게 변질 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잔인무도한 폭력을 행사한 백인 경찰이 아니다. 물론 이것들도 큰 문제이지만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더 큰 근본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보건데 미국의 모든 문제의 핵심엔 원흉인 월가가 있다. 해서 이번 일의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다 좋다. 그러나 비판(과 개혁)의 대상을 공략할 때는 대상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흑백문제와 공권력의 만행 문제는 그 수준으로 공략하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곤경과 불안한 경제적 삶,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문제는 그것대로 따로 공격 대상을 정해 공략하라. 이 수준에서 생성된 공포와 좌절, 절망과 분노의 유발자로는 원흉 월가가 있으니 월가와 거기에 동참해 당신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는 정치권에 그 화살을 겨누라. 그렇게 하지 않고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며 “백인경찰의 엄중처벌”만을 요구한다면 뒤에서 비웃을 이들은 월가와 정치가들이다.
최루액을 시위대에 뿌리는 텍사스 오스틴 경찰 사진 <뉴욕타임스/AP>
그래서 공격의 타깃은 썩어문드러진 미국의 시스템의 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이어야 한다. 고작 20달러(약 2만 원)짜리 위조지폐 사용 혐의(위조지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중범죄라면, 나라 전체를 강탈하고 전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월가의 대형은행과 사모펀드의 사기와 강도짓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처벌은커녕 그들에게 두둑한 보상(구제금융)까지 주고 있는 것에 대한 끝까지 저항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 상 과연 거기까지 갈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과연 <애틀랜틱>의 진단처럼 미국 역사상 2020년이 최악의 해가 될 것인가?(“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Henry Steele Commager, The American Mind: An Interpretation of American Thought and Character Since the 1880’s (New He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59).
코로나19가 북미에 이어 남미로,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물론이거니와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건 생존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살인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 뿐, 결코 ‘가난’ 한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찌감치 주변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저항할 틈도 없이 예속되어 버린 탓에, 외국자본과 소수 매판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신식민지’가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이다.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라면 정치 권력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쿠데타가 일어났고, 혹독한 독재자에게 저항하여 민중 정부라도 세우면 어김없이 외세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득세하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한들 기득권층인 자본가 계급의 맘에 들지 않으면 ‘우매한’ 대중이 선동에 이끌러 선택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 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20세기 내내 반복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여전히 진해 중이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해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이 대륙의 운명은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수 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해체하여 개인 각자도생의 길만을 열어놓았으니,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설 자리는 벼랑 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사회로 외면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지켜야 할 수칙을 이야기한 들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자. 자신의 하루 일 노동이 나와 가족 생계의 전부가 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갖춘 이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전염병 대처나 위기 인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에게 하루의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은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비공식 경제부문은 거의 50%에 육박하고, 이는 구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삶이란 사회적 공존의 영역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다. 계층의 이동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사회질서는 공고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 과야낄(Guayaquil)이라는 도시에서 코로나 감염 사망자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이 국내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사망자를 매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외신의 ‘선택’을 받은 극적인 장면들만 국내 포털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층민중들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국민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분명 ‘계급’에 따른 ‘선별적’ 감염이 두드러질 것이다. 유명인 몇몇이 감염되고 정치인들이 감염되었다고 해서, 이 전염병의 계급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갖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완치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보장은커녕 의료보험도 없는 다수 기층민중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코로나19의 급습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같은 자칭 제1세계가 구축한 체제가 양산한 사회의 배제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는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SNS와 Facebook을 통해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평소 멕시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질병의 70%에 이르지만, 현재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으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 그렇다고 민영의료 시스템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천 육백만 명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시장경제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칠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쳇 군부 정권은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의 경제관료들을 앞세워 가장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장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하는 국가이다. 참고로 최상위 1%가 전체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반면 취약계층의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의료체계의 붕괴, 의료 민영화, 의료의 공공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방치되고 산소 호흡기가 부족했다는 사실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과연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가이다. 단순히 의료시스템만의 문제로만 좁혀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국가 예산을 들여 병상을 확보하고 호흡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얼마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볼리비아의 과도기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장비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상점과 마트에 풍부하게 진열된 손소독제나 마스크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민은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손 세정제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면, 쿠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돈만 있다면 흔하게 살 수 있는 잘 포장된 손 소독제 따위는 없다. 이 팬더믹으로 더욱 좁혀오는 경제봉쇄를 차치하더라도, 턱없는 물자 부족은 쿠바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이를 사회주의의 ‘저주’라고 속단하지 않기 바란다. 그 이면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의 경제봉쇄를 버텨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쿠바에서 팬더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행동이다. 쿠바의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이 각 지역으로 파견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들도 구성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하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부터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려는 사회의 빠른 대처였고,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쿠바는 여전히 옳다. 적어도 코로나19의 급습을 받는 지금.
신향촌건설운동 20주년을 맞아, 원톄쥔 교수가 운동의 회고와 함께 그 이론적 배경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맛보기’에 해당하는 이 짧은 비디오 강연에서는, 신향촌건설운동의 큰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이론 다섯가지를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초래한 직접적 압력과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각종 지정학적 대응,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혐중분위기와 함께, 최근 홍콩보안법 통과는 미국과 서방을 대체하는 대안 거대담론의 제시자로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크게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 교수와 그의 추종자/찬동자들은 중국의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관방/시장과 민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이론들은,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큰 틀에서는 생태문명 건설, 구체적으로는 로컬라이제이션과 향촌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각급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에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내용들이, 중국 바깥 세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다양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위협론을 반박할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원톄쥔 교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 (근)현대경제사의 실전적 분석과 정책수립/실천, 민간대안운동 경험을 그 재료로 삼는 2~30년 이상의 실천과 10년간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세계체제속에서의 비용전가론이나 농촌균형발전론은 중국내에서도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돼온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명파생론’은 그의 전문적 연구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최근의 고민으로, 학계의 활발한 논의대상으로 격상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 다음 이론인 ‘제도파생론’과 함께, 이 주장들은 서구 학계의 중국문명/ 정부 비판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외부세계와의 열린 논쟁의 과정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고민, 형이상학적 논의는 그의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생태문명’의 기반사상이나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량슈밍’사상 등에 주목하는 중국 바깥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를 궁금하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연이, 도덕경을 직접 언급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역시 정확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삼농문제는 개발도상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의 삼농문제는 1990년대 급진적인 현대화 개혁이래, 중국사회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2001년 이래 신향촌건설운동을 진행하면서, 삼농문제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20년간, “민생을 보호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다원화를 제창한다”라는 생태문명 이념을 받들어 오며, 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이 선도해서, 사회 각계층이 스스로 참여하고, 기층민중과 함께, 향토문화가 결합된 실천적 사회개량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중국 곳곳에 실천 현장이 생겨났다.
신농촌건설로부터,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식품안전으로부터, 안전한 문화, 안전한 생태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향촌건설참여자들의 분투는 쉼이 없었다: 향촌건설에서, 도농교류, 국제교류에 이르기까지, 사회공익에서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재육성에서, 농민과의 협력, 농민공지원, 사회적 생태농업 (커뮤니티 지원 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향토문화부흥, 향촌건설연구에서 향촌종합발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이십년간, 다양한 사회적 모색이 지속돼 왔다.
향촌건설사상이론체계
여러분들에게 우리 향촌건설의 실천과정중에 만들어진 이론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60세부터 시작하여 이제 70세에 이를 때까지, 우리 연구진들과 함께,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론체계는 5개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이 5개 관점에 대한 연구는 어떻든,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연구 그룹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유지해왔다. 이것이 우리 연구의 태도에 일관되게 반영이 돼 있다.
중국전통문화는 근대 자연과학과 같이 분과가 명확하게 나뉘어 그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선, 큰 틀을 만들어, 전체적인 대략의 얼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지금 강조하는 생태문명 전략의 전환과도 관련이 있다. 21세기를 맞아, 갈수록 공업화,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초래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 큰 방향성의 전환이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생태자원이란 단어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극단적으로 다양화한 자원체계이고, 그 요소들이 함께 묶여 있어서, 하나 하나 분리해 낼 수도 없다. 현재 중국의 국가지도자가 강조하는 ‘양산사상兩山思想’ (역자주: 시진핑이 녹수청산綠水青山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고 한 표현을 이르는 말, 환경생태자원이 경제적 가치도 가진다는 의미)은, 산과 물, 전답, 숲, 호수, 풀 등의 자원이 종합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원을 쪼개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 가치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생태자원은 구조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원래 시장 논리로 명확하게 분절될 수 없는 자원이다. 전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생태 시스템이다. 인류는 공업화 시대에 생태자원을 생산요소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공업화와 도시화는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토지는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이렇게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황무지로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매년 감소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개발은 이렇게 토지를 평면자원으로만 인식한다. 그 토지안에 자라는 나무, 풀, 서식하는 동물 등은 토지 자원 관점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제거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 다양성 자원은 사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인류 사회와 매우 고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우선 생태문명 전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상의식 측면에서 개명돼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최근 향촌건설이 강조해온 일련의 기본이념과도 통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상무형大象無形, 대음희성大音希聲 (도덕경 41장)을 강조해 왔다. 만일 당신이 한마리 코끼리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특히나 체계적으로 코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할 것이고, 배를 만지면, 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무형은, elephant 즉 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라, 커다란 객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중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전략이 결합적으로 말하는 물과 숲, 전답 등을 아우르는 생태자원은 또한 구조적으로 쪼개서 분석할 수 없는, 담론상 하나의 객관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상무형을 강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원화사회구조속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때, 무성무식無聲無息 (출전: 시경,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음)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외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농촌에 가서 수많은 향촌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현장이 생겨났는가?” 물었다. 우리 대답은,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원래 이렇게 해왔다. 무슨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 일을 하는 거다. 판은 크게 벌리려고 노력하지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소식을 챙겨 들으려고 해도 따로 들을 수 없지만, 가보면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가 원래 이런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다양성을 갖춘 생태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지속적으로 생태화를 진행하다보면, 사람은 자연생태와 긴밀하게 결합돼 간다. 인류사회의 다양성은 자연생태의 다양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런 감각으로 계속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어중도立於中道”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중도는 무엇인가 ? 대도중용大道中庸이다 – 누가 누구이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판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든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표현으로 나타날 때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존재라면, 각각의 행위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다 합리적이다.
이런 상대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중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 도달했을 때, 이것을 “중도이립中道而立,비비가장야臂非加長也,이종치자중而從之者眾” (역자주 – 맹자와 순자를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활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발사는 하지 않는다. 또, 높은 곳에 올라 팔을 뻗으면 팔이 길지 않아도 보인다.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라는 의미 )이라고 할 수있다. 이 표현은 왜 향촌건설운동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향촌건설은 서구의 냉전형 이념이 만들어낸, 인문사회과학으로 포장된 시스템을 통해, 오직 하나의 정치형태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원선생 어째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소?” 나는 원래 습관이라고 답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매사에 흑백논리를 들이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연구지도 사상으로 중국전통문명중에서도 비교적 변증론적 색채를 가진 것을 취한다. 또 비교적 자연주의에 가까운 노자의 사상을 채택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도 결합돼 있으며, 불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은 전통 사상내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를 분리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향촌건설연구는 서구의 사회과학이 채택하는 분과학문적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특정 이념에서 출발한 연구도 지양한다.
회고해보는 우리의 관점
첫번째 관점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문명전승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만년에 달하는 문명이고, 이 문명의 전승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문명의 연속성은 단순한 인위에 의해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인종이 선진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이 다른 기타 정신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는 외부의 환경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래서 문명의 형성 조건이 다르고, 각각의 인류 문명의 차이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진과 후진도 없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인류문명은 각기 스스로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내재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부락 사회가 낙후된 것이라고 하고,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 생활방식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내재적 합리성을 갖고 있다. 왜 이것을 후진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구별하며 만든, 일종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인류의 문명을 관찰하려고 한다. 중요한 관찰의 포인트는, 기후의 주기변화에 따라 파생된 적응성 변화이다. 기후주기변화는 또 기후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렇게 각각의 기후대는 직접적으로 지표의 자원에 영향을 끼친다. 인류사회는 일찍이 원시시대에 농업과 수렵문명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주로 지표의 자원에 의존해서 생존해왔다. 그래서, 기후의 주기변화와 특정 기후대에서의 지표지리자원의 변화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가져왔다.
만일 우리가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향촌건설연구자들의 세계관은 ‘객관적인 역사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는 주로 식민화에 의해 결정된 이념에 몰입했고, 실은 서구중심주의가 서방의 이러한 변화 과정을 선진이자 보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포기한다면, 동방의 문명이든 서방의 문명이든, 남방 혹은 북방의 국가이든 각양의 생존 방식이 본래부터 다른 문화로 나타났을 것이고, 당연히 문화다양성의 합리적 내적요인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향촌건설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간의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화 이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새로운 생태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홍콩 링난대학의 라우킨치 LAU Kin Chi 劉健芝선생의 도움으로 국제비교연구를 했을 때, 내 강연에서 beyond cosm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뛰어 넘어야하고, 가치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매우 명료한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의 중요한 관점중 하나가 됐다.
다음은 근대 인류사회에서 우리가 형성한 연구 관점을 돌아본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제도결정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거시적 비교를 한 후에, 역사가 내포하는 세계관을 통해서, 제도문제를 연구해서 ‘제도파생론’을 만들어 냈다.
만일 우리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관점을 ‘인류문명차이 파생론’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내용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는 ‘제도파생론’인데, 일정한 자원의 구속조건하에서 상이한 인류문화가 형성되고, 거기에 맞는 각각의 제도가 파생됐다는 뜻이다.
왜냐면, 각 지역에 부여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민화이후 수립된 대부분의 후발국가들은 모두 그들의 자원조건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자원환경이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제도는 요소구조의 변화에서 파생된다. 혹은 요소구조변화가 이런 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후속제도변화의 경로의존을 결정하게 된다. 제도 변화의 경로가 앞서의 제도 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제도결정론이 아니라, 제도파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번째 관점은 사실 하나의 이론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세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가가 현재 직면한 큰 도전과제들이 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제도적 비용이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이론과 월러스타인, 사미르 아민 그리고 아리기의 이론과 함께 결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사실은 핵심국가-반핵심반주변국가-주변국가의 순서대로 비용이 전가 되는 구조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선진국이 됐나? 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늘 수많은 재난에 직면해야 하는가? 사실은 전자의 비용이 후자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두번째 관점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변천도 모두 본래 제도의 프레임안에서 수익을 점유하고 비용은 다른 이에게 떠 넘기는 행위를 주도하는 이익집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적은 수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획이 성공한다면, 유도된 변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타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강요하고, 이를 강제적 제도변천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핵심국가 (지금은 미국이 가장 노른자이다)에서 반주변부 국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주변부 국가로 비용이 전가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부 국가마저 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비용을 자연 환경에 전가하게 되며, 이는 생태환경의 파괴, 즉 기후변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러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그러므로 파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을 전제로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다름아니다.
우리의 네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은 이런 정해진 틀과 운명에 빠져나갈 수 없고, 즉, 발전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권을 외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정권을 수립할 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종주국과 협상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주로 자원주권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핵심 경제주권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금융과 재정에 대한 것이다. 이때 얻게 되는 정치주권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는 집권을 하면서 사회에 일정한 발전의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경제자원에 기반한 자주개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약속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은 이러한 주권외부성이 정한 운명의 족쇄안에서, 자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 20세기는 비록 짧았고, 미완의 혁명도 이미 과거사가 됐으나,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주권외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식민지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고, 주권외부성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관점은 만일 비선진국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추진해서 향촌을 파괴한다면,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향촌의 전통 마을 사회는 외부성 문제를 내부화해서 층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실 간단하다. 국내의 현재 모든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미국의 담론체계를 수용한 채 따라가면서, 다른 이론을 배타시한다. 만일, 우리가 농가의 경제적 합리성을 언급한다면, 모두 시카고대학의 시어도어 슐츠의 소농경제합리성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소농경제는 자본주의 요구에 맞는 시장주체로서 부합해야 했고, 이 또한, 이념의 반영이다. 슐츠 이전에는 차야노프의 생존소농 이론을 모두 이야기했다. 농가에서는 그 가족 성원을 내칠 수 없기 때문에, 가정내에서 노동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도 가정내에서 배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소농경제는 가정내의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소농의 가정이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내부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다루는 메커니즘을 논하고자 한다. 마을에 모두 모여살기 때문에, 마을의 자산 경계는 지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을은 함부로 마을에 소속된 농가를 추방할 수 없다. 가정이 그 가족 성원을 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의 업무를 공동의 노력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외부성을 내부화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이 그러하다. 중국 향촌마을의 집체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 조직의 내부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 따라,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시화 정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 도산에 처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큰 농촌지역을 가진데다가, 농촌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라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상당부분, 향토사회가 위부 위기 비용을 내부화해서 떠안는 기능을 하면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넘기곤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중국의 도농2원구조 제도를 평가해보면, 충분히 그 장점을 발견할 수있고, 개발도상국에게 있어서, 과도하고 급진적이며, 빠른 도시화가 강조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일정하게 유지할 때, 안정된 국가체제운영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대륙과 같이 전면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오히려 향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관점이 우리들의 최근 10년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헌소스: 2019년 12월23일 Global University 그룹 원톄쥔 교수 방문 비디오 채록
2018년 7월 5일에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결의서 내역은 오늘날 국회가 가진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많은 언론들은 전직 국회의장이 얼마를 받았는지, 국회 내 상임위원장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다뤘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원 씩 수령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새로운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경우다. 어떤 언론도 국회사무처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특수활동비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권한이 세다’고 평가받는 법사위 위원의 수령액보다 3배 더 많다는 팩트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법사위 위원과 수석전문위원,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반영일 것이다.
전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의원은 필자에게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전문위원의 말에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국회의원)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문직 분야에 있는 한 지인은 자기들 협회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전문위원에게 로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 강조한 ”전문위원은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렇게 센 힘의 원천은 그들의 ‘검토보고’ 권한에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심사하게 되는데, 국회법 상 전문위원의 검토를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국회법 58조에 1항에 따르면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안건 전체에 대한 문제점과 당부(當否)에 관한 일반적 토론을 말하며 제안자와의 질의·답변을 포함한다]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라고 명기돼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검토보고서의 지적 내용을 위원회 회의 과정의 발언과 통과법안의 수정 부분을 비교한 한 논문은 그 두 내용 간에 높은 인용· 일치율로 미루어 상임위 전문위원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논술하고 있다.【1】
한편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관료 스스로 검토보고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조사관 1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90.8%가 법안 검토보고서가 중요한 참고자료로서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과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2】
특히 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재직 당시에 쓴 논문은 아예 국회 전문위원의 역할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총 44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 법률안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전문위원이 19개의 검토 조항을 보고하였고 결국 법안은 11개 조항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 11개 수정안 모두 전문위원이 적성한 검토보고에서 주장한 그대로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면서 “전문위원은 소속 위원회 입법 활동의 단순한 지원 차원을 넘어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위험할 수 있다.
2017년 8월 2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국회사무처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사무처에서는 수석전문위원 2명이 성추행과 횡령 혐의로 면직 처리되기도 했으며 국회사무처 직원 간 음주폭행 사건도 발생하여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최저임금법 개정 사례에서 드러난 검토보고의 한계
그렇다면 이토록 영향력이 큰 검토보고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최근 국회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법안이 있다면 단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손꼽힌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법안 처리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생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마칠 파장까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단순히 입법관료의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법률과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의 길목에 국회 입법관료는 일종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역할을 한다. 국회사무처는 전문위원 임용자격에 관한 규칙에서 전문위원의 자격기준(국회에서 10년 이상 재직하고 2급 이상의 공무원이 돼 2년이 경과한 자로서 입법심사와 조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 등)을 정해놨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그리고 전문가집단에서 선발되지 않은 ‘행정사무’의 역할을 갖고 있는 공무원일 뿐이다.
특히 전문위원의 업무상 전문성에는 의문부호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순환 보직 근무의 관행으로 인해 깊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 지금은 퇴직한 한 수석 전문위원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곳 상임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을 맡았다.
‘관료들은 전문성 있다’, 왜곡된 신화
흔히 공무원들은 대단한 전문성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된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그러한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심지어 진보 쪽에 있는 정당들의 관계자도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공무원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 등의 논리를 계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혹시 부분적으로나 특수한 상황에서 타당할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공무원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2년을 단위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순환 근무하게 된다. 결국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관료들은 전문성이 있다”는 시각은 우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최소한 정보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용이한) 공무원들의 객관 조건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또 절차나 수속 등의 행정업무 분야에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시각이 그런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분석력 등 순수한 의미의 ‘전문성’ 측면에서 관료집단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대단히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높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선입견과 시각은 우리 사회의 강고한 관료주의를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작동되고 있다.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하는 국회”
국회는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라는 꿈도 야무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스스로의 특권을 줄이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지만, 그러나 실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쟁과 내로남불, 외화내빈의 말잔치만 난무한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국회’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고 설득력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본업을 수행하지 않고 방기하는 조직은 왜곡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올곧이 수행하게 될 때, 국회는 시민의 진정한 대표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발전하는 출발선에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 전문위원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1】 장봉아, “국회상임위원회 공무원의 입법과정상 영향력 분석: 법안 심사 회의록과 검토보고서의 일치 여부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4.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미국의 항의시위가 전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시위 현장을 중계하는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유독 청년들의 많은 참여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시위의 주축이다.(“Across the country, young activists take different approaches in the name of justice for George Floyd,” CNN, June 3, 2020; “How the New York Protest Leaders Are Taking On the Establishment: They’re young, charismatic and drawing crowds of thousands around the city,” New York Times, June 11, 2020; “Young people turned out to protest. Now, will they vote?,” APNews, June 11, 2020).
청년층이 시위에 나섰다. 이제 이들이 투표장으로도 향할지를 묻는 에이피 기사
그렇다면 왜 미국의 청년들이 특히 분노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코로나로 집구석에 박혀 있다가 좀이 쑤셔 하던 차에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핑계 삼아 그 혈기를 발산하러 밖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조금, 일말의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청년들은 재미를 보자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차서 길거리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들의 사정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게 이 시점에서 중요하다. 그것을 톺아보면 미국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다.(“What Students Are Saying About the George Floyd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4, 2020; “‘Apathy is no longer a choice’: will the George Floyd protests energize young voters?” The Guardian, June 8, 2020; “Most political unrest has one big root cause: soaring inequality,” The Guardian, Jan. 24, 2020; Joseph E. Stiglitz, “Opinion: Why young people are angry about generational injustice,” MarketWatch, March 16, 2016).
청년들을 일컬어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1981년에서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들로 24세~39세에 이르는 사회의 중추세대다. 국가의 미래다. 이런 그들이 좌절하고 있다. 절망하고 있다. 그리고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왜일까?
그들에게 미래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져 버린 미국이라 그렇다. 왜 하필 우리 세대에? 그들의 입장에서 그런 말이 나올만하다. 평균적으로 대략 그들은 부모 밑에서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고 자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세상에 나와 사람 몫을 하려고 들 때, 당당하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려 할 때, 세상은 그들의 생각대로가, 듣던 대로가 아니었다. 미국이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데 왜 나에게 번듯한 직장을 잡을 기회는 오지 않는가? 그것이 왜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운가? 왜 나는 부모가 결혼한 나이에 결혼을 하지도 못하는가? 왜 아이도 낳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가? 왜 나는 아무리 갚아도 끝이 없는 빚쟁이 인생을 계속해야 하며 빈털털이인가? 등등. 그러나 부모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청년시절에 비록 많이 배우지도 못했을지라도 일가를 이루고 사업을 이루고 돈을 모았는데 지금 네 꼴은 뭐냐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더 좀 열심히 노력하라고. 승부근성과 헝그리 정신이 결여된 나약한 인간이라고 혀를 쯧쯧 차댈 뿐이다.
젠장! 나도 할 만큼 노력한다. 그런데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취직을 해보려한들 안 되는 걸 어찌하는가? 기를 쓰고 돈을 모아보려 애써보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걸 어찌하란 말인가. 그러한 좌절 속에서도 미국 청년들은 왜 자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대부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왜 할아버지세대와 부모세대는 그렇게 가정도 일구고 그랬는데 왜 나는 그게 딴 세상의 이야기로만 느껴지는 것일까? 오리무중의 궁금함 속에서 눌리고 눌려왔던 좌절과 짜증이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있으며 증폭되다가 플로이드로 터져버렸다. 게다가 직장조차, 알바조차도 코로나로 다 날아가 버렸다. 이판사판 밑바닥인데 잃을 게 뭐가 있나. 가만히 보니 내 처지가 가장 불쌍하다.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어디 있나? 왜 젊음이 축복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지리멸렬한 것이 되었나. 왜 우리 또래의 청년들만 가장 불행한 것처럼 여겨지는가? 그걸 따지러 나가야겠다. 뭔가 변화를 부르짖어야 되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분노가 삭여지질 않는다. 이게 요즘 미국 청년들이 심적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Perfect storm’: Coronavirus lockdown, joblessness fuel longstanding grievances,” NBC News, June 6, 2020; “Why rage over George Floyd’s killing is more explosive this time,” San Francisco Chronicle, June 1, 2020; “’It was never just about Floyd’: Protests reflect anger over inequality, neglect,” Buffalo News, June 8, 2020).
운도 지지리 없는 저성장시대에 태어난 죄
미국의 불평등 연구자들은 밀레니얼세대가 미국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진단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그게 사실이라면 청년 세대가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먼저 경제성장면에서 보면, 밀레니얼세대가 노동시장에 막 진입하는 때에 미국엔 굵직굵직한 안 좋은 일들이 터졌다. 911테러,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의 코로나19 사태다. 모두 경제에 치명타를 안기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태가 한 번 터지면 경제가 위축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그 폐해는 오래 지속된다. 그래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극복해서 일어설만하면 또 다른 타격이 온다.(Kevin Rinz, “Did Timing Matter? Life Cycle Differences in Effects of Exposure to the Great Recession,” Working Paper, Center for Economic Studies, US Census Bureau, Sept. 8, 2019). 그 과정을 겪는 동안 밀레니얼 세대의 경력은 이탈되었고, 재정은 파탄 났으며, 그들의 사회적 삶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코로나다. 그러니 코로나세대(C세대: 코로나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말하지만, 코로나를 겪은 청년들도 포함하는 신조어)는 이젠 아예 “어디에고 비빌 언덕이 없다”(nowhere to turn)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Generation C Has Nowhere to Turn,” Atlantic, April 13, 2020).
18세에 노동력 시장에 나온다고 가정한 뒤, 그 후 15년 동안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세대별로 측정한 결과치를 보면 미국역사상 경제성장이 가장 안 좋은 시대에 태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 몫을 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의 15년 동안 가장 안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은 단지 그 사실로만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향후의 밀레니얼 세대의 전 생애 동안 경제적인 상처를 깊이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낮은 임금으로 시작한 직장은 그 만큼 이전 세대 보다 재산을 적게 모은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은 자택의 소유에서부터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하는 모든 것들의 지연이나 포기를 의미한다. “삼포세대” 같은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이러니 특히 경제가 안 좋을 때 청년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Millennials really are special, data show,” Washington Post, March 16, 2019; “Middle class Americans can no longer afford to get married due to huge debts as just 50 per cent now tie the knot,” DailyMail, March 10, 2020; “Affluent Americans Still Say ‘I Do.’ More in the Middle Class Don’t.,” Wall Street Journal, March 8, 2020). 반면 그 이전 세대인 베이비부머세대(1946년~1964년 출생: 현재 56세~74세)와 X세대(1956년~1980년 출생: 현재 40세~55세)에 이르는 선배세대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호시절에 태어나 누릴 것을 그나마 어느 정도는 누릴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The Unluckiest Generation in U.S. History,” Washington Post, June 6, 2020).
세대별 1인당 GDP 성장상황. 각 세대의 노동시장진입 후 첫 15년 동안의 1인당 GDP성장률. 밀레니얼 세대는 가장 아래에 위치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아메리칸드림의 소멸: 자수성가는 옛 말
1940년생과 1980년생의 비교를 한 연구가 있다. “당신의 부모와 같은 나이 대에 당신은 부모 보다 더 많이 벌었는가?”란 질문, 즉 자수성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1940년생 미국인들은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심지어 실직이나 이혼, 질병과 여타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 해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보다 더 많이 벌고 더 잘 살았다. 지금 80세 노인세대다. 그러나 1980년생 미국인 중에서 그렇다고 대답한 이는 50%만 차지한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는 것은 이제는 거의 “동전던지기”(coin flip) 같다고 이야기 한다. 복불복이라는 이야기다. 즉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소멸을 의미한다.(“America Will Struggle After Coronavirus. These Charts Show Why,” New York Times, April 10, 2020; “Parents’s Jobs Increasingly Shape How Far Kids Get in Life,” Wall Street Journal, Sept. 3, 2018; Raj Chetty, et al., “The fading American dream: Trends in absolute income mobility since 1940,” Science 28, Vol. 356, Issue 6336, pp. 398-406. Apr 2017; “If Americans are better off than a decade ago, why doesn’t it feel that way?,” The Guardian, Nov. 5, 2019; “American Dream collapsing for young adults, study says, as odds plunge that children will earn more than their parents,” Washington Post, Dec. 8, 2016).
1940년생부터 1980년생까지의 자수성가 비교. 부모 세대보다 당신 대에서 동일한 연령대에 부모보다 더 많이 재산을 일구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1940년생은 92%가, 1980년생은 절반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
이러니까 청년들에겐 미래가 안 보일 수밖에. 아메리칸드림은 개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세대나 할아버지세대가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제로 겪어나가면서 청년들은 사회가 부조리하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 분명하다. 청년들은 그 거대한 부조리의 결과가 불평등이라는 것과 자신들이 그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체계의 피해자임을 간파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국가나 나이든 사람들은 이런 구조적 부조리함을 시정할 생각일랑 없는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타박만 가할 뿐. 그런데 이 대목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모든 불평등의 끝은 세습사회의 도래라는 것이다.
극심한 불평등은 청년들을 진취적이기 보단 소극적으로 만든다. 지독한 복지부동과 안전지향 성향을 띄게 한다. 왜냐하면 아차 하고 자칫 실수를 범하는 순간 그나마 현재 손에 쥔 것마저도 홀랑 날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보일 이런 경향의 끝에는 결국 세습사회밖에 남을 게 없다. 청년들은 안전만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매사에 다음 같은 사고를 할 공산이 크다. 노력이 뭐가 필요 있나? 실력이 뭐가 필요 있나? 부모가 고관대작이 아니고 재산 갖고 있지 않으면 난 개털인데. 이제 기댈 것은 부모의 배경과 돈밖에 없는데. 그런 잘 나고 부자인 부모를 두면 게임 끝. 별 볼일 없는 나는 인생 끝.(“When It’s This Easy at the Top, It’s Harder for Everyone Else,” New York Times, Feb. 28, 2020). 그런데 이런 자포자기와 자조는 불평등이 양산할 웬 못된 결과인 세습사회의 도래를 더욱 앞당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공고화한다.
최상층의 사람들에게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 나머지 사람들에겐 점점 더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늘 상존했다. 그러나 지금은 계단식 체계(tiered system)가 요지부동의 카스트제(caste system)로 변질되고 있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화 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어쨌든, 미국이 능력사회? 웃기는 소리다. 그렇다면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변해 버렸나? 클린턴의 마누라가 대통령후보로 나왔고, 그 딸을 대통령 만들려 불철주야 돈 모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라. 한 집안에서 돌아가며 대통령이 나오고, 나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이 어쩌다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사위를 백악관의 고문으로 떡하니 앉히고 나랏일에 훈수를 두는 족벌주의(nepotism) 정치를 해도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그런 세습사회가 되어버렸나. 이방카를 비롯한 남매가 차기 대권을 감히 노리며 권력 암투를 벌이는, “트럼프왕조”(Trump Dynasty)라는 말이 회자되는 그런 거지같은 나라가 되었나?(“The Heir: Ivanka was always Trump’s favorite. But Don Jr. is emerging as his natural successor.” The Atlantic, Oct. 2019; “Of COURSE the Trumps are planning to be a political dynasty,” CNN, Sept. 9, 2019; “Inside Ivanka’s Dreamworld,” The Atlantic, April, 2019; “The Dynasty Ends With King Donald: There will be no President Ivanka. No President Jared. And certainly no President Donald Jr.,” Politico, Sept. 9, 2019).
트럼프왕조의 차기 상속자에 대한 권력 암투를 보도한 <애틀랜틱> 기사의 한 장면
문제는 이것이 단지 트럼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돈과 권력이 많다고 재세하는 자들이, 즉 내 말로 “제국”들이 죄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제국들의 트렌드다. 자기 자식만큼은 너무나 특별하고 독특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자식들이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국들의 욕망의 발로다. 하지만 그들이 속한 나라의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굴러가도록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이 가능하다.(물론 제국들이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었다). 하여 이제는 가만히만 있어도 저절로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술술 굴러간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자식들에게 전승되고 그러면 자식들은 아무런 노력없이, 그리고 아무런 자질이 없어도 승승장구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런 귀결이다. 극심한 불평등이 활개를 치는 사회에서는 극히 당연한 결말이다. 불평등은 사람을 둘로 나눈다. 귀족과 노예로! 그리고 그 선은 절대로 넘어 갈 수 없다. 그 경계를 넘어 갈 수 없는 신분제 사회, 그게 바로 세습사회다. 부모의 것이 자식에게 그대로 대물림 되는 사회. 하여 있는 놈만 결혼하고 있는 놈만 집 사고, 있는 놈만 좋은 대학가고 있는 놈만 좋은 직장 갖고, 있는 놈만 부와 높은 소득 얻는다. 그것은 뒤집을 수 없다. 빌어먹을 무슨 놈의 나라가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그러니 아메리칸드림은 없어진 거다. 아메리칸드림의 진수는 자수성가니까. “빽” 그런 것 없이 노력만 하면 뭔가를 성취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 기울어지다 못해 거의 90도의 수직 낙하된 운동장은 한 번 삐끗하면(주로 부모 잘 못 만나면)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절망의 늪이 되어 버렸다. 한 번 이긴 자는 승자독식에 이어 계속해서 승자가 되는 연승의 게임. 반면, 그곳에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들은 서서히 익어가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그렇게 익어가고 나중엔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Robert Frank and Philip Cook, The Winner-Take-All Society, 1996; Branko Milanovic,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 2016).
이처럼 세습사회, 신분제사회는 한 번 고착되면 어지간해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지하감옥과 같은 것이라 그 조짐이 보일 때 바로 척결해야 하는 게 답이다. 정녕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적이기에 그 싹이라도 보이면 바로 제거해야 마땅하다. 사소한 하나라도 우습게 알고 용인했다가는 큰코다치고 만다. 그러나 지금 미국 사회는 그 도를 넘겨버렸다. 무슨 짓을 자행해도 아무도 토를 다는 이 없는 서방에 위치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그런 순응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법이고 나발이고, 오직 닥치고 돈과 권력이 최고인 세상. 그것들끼리 야합하고 서로가 서로를 뒷배를 봐주고 세세토록 해 먹는 빌어먹을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머지는 시궁창과 같은 삶 속에서 헤어 나올 엄두도 감히 내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겉으론 그 잘나 빠진 능력주의, 개인주의와 세계 제 1의 국가 시민이라는 미명 아래 도끼자루 썩는지 모르고 돈을 숭배하며 살다 결국 저 짝이 나 버렸다. 계층의 상향이동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꽉 막혀 버린 세상. 그것이 바로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진 세상이며, 청년들이 좌절하는 세상이며, 있는 자와 가진 자(제국)가 천하를 호령하며 그의 자손대대로 가진 것을 향유하게 하고 부모가 하던 짓거리를 자식 대에도 그대로 해대는 그런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그러나 미국이 그런 나라가 되든 말든 지금 무슨 상관이랴. 내 코가 석자인데. 나는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의식적으로 한국 이야길 꺼내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오늘은 좀 해야겠다.
신분제사회와 세습사회. 이게 미국만의 일일까? 우리나라는? 세습사회의 특징은 뭔가? 그것은 온갖 특권과 반칙의 난무이다. 기득권세력(제국)들끼리의 서로 봐주기. 품앗이. 작당. 상부상조. 그래서 세습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치의 파탄이다. 법치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을 말한다. 죄 지은 자는 법대로 신분고하, 재산과 권력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죄 값을 물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그건 법치가 무너진 것이고 민주주의와 능력주의가 사라지고 신분에 의한 세습사회가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며칠 전 이재용의 구속영장기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설하고, 이재용은 참 좋겠다. 소위 보수도, 진보도, 그 진영을 대표한다는 정권도 죄다 자기편을 들어줘서. 이전 정권, 현 정권 가리지 않고 이재용에게 친화적이어서. 고백컨대 난 솔직히 법에 대해 1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말 무식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집행유예로 중간에 풀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풀려난 자를 수차례 대통령이 만나는 것도 이상하다. 증거가 확실히 잡힌 다른 건으로 다시 기소되어 재판을 받는 자에게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라고 권유하는 것도 이상하고, 수사심의위라는 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았고, 공장바닥에 컴퓨터를 박아 두는 증거인멸을 했는데도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것도 정말 이상하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왜 이재용의 부친 이건희 회장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국가 기관이 아직도 확인하지 않는다는 게 정말 이상하다. 그것은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불법행위 여부 판단에 더 없이 중대한 사안이라고 생각되기에 그렇다. 전 정권에서 안 했다면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왜 정의와 공정의 기치를 내세운 문재인 정권에서는 하지 않는가?
삼성 앞에만 서면 왜 정권과 정치권과 사법부는 한 없이 작아지는가? 아니 왜 삼성의 이씨 일가 앞에서만 서면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쪼그라지는가. 대한민국에 무슨 “신(新)이씨왕조”라도 있단 말인가? 이런 걸 용인하는 세습사회의 도래를 인정하겠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다면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사법부에 앉아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 입법부에 앉아 법을 제정할 자격이 없다. 다들 물러나라. 왜? 세습사회는 근본적으로 법치를 부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적인 법치의 파탄을 가져오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법치의 파탄을 방치하거나 가져온 자들이 어찌 법을 제정하고, 법에 의거해 판단을 내리고, 법에 의해 정치를 한다는 말인가? 실로 역겹다.
왕조를 넘어 절대로 넘어가지 않는 제국으로 우뚝 선 기득권세력들. 감시와 제재, 그리고 저항은커녕 그들을 방치하고 그러다 못해 물심양면으로 조력하는 사이 한국의 청년들은 미국의 청년들처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헬조선! 올 5월 현재 청년 체감실업률은 26%로 청년 4명 중 1명은 백수다. 실제는 더 심하다. 미국과 똑 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력직 위주의 취업시장 재편으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들은 피를 보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코로나사태로 청년들은 또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오늘도 그들은 마스크를 끼고 알바 장소로 독서실로 향하고 있다. 누가 그들의 어깨를 활짝 펴줄 것인가? 그 관건은 세습사회의 싹수를 초장에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부터 서릿발처럼 다시 세울 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 남을 것은 청년들의 분노와 신음 그리고 국가 미래의 부재다. 나아가, 그것 보다 청년들의 정신마저 썩어버릴까 더 걱정스럽다. 이들에게 법과 정의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라 할 것인가? 왜곡된 법과 정의 개념이야말로 그들을 진정으로 망하게 하는 것이다. 망조가 든 대한민국을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Robert H. Frank and Philip J. Cook, The Winner-Take-All Society: Why The Few At the Top Get So Much More Than The Rest of Us(New York, NY: Penguin Books, 1996).
Branko Milanovic, Global Inequality: A New Approach For the Age of Globalization(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2019년 7월부터 진행해온 기획칼럼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는 총 17회로 구성하여 격주에 한번씩 소개하였으며,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게재하면서 마무리합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많은 법규는 [유럽공동체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직접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유럽공동체의 법규와 양립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유럽연합은 대의 기관을 갖춘 주권 국가들의 연합체이지만, 그 구조 자체가 연방국가와는 다르다. 수많은 유럽 시민들은 느낌 상 유럽 차원에서 보통 시민인 자신들의 표가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 반면,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소수들의 이익은 더 많이 반영되는 듯하다고 느끼고 있다. 유럽연합의 핵심 목표인 유럽연합 내의 국경없는 시장에서 경제는 초국가적인 것이 되었고 유럽연합의 집행부도 힘을 얻게 되었지만, 그들의 민주적 통제에 강한 강제력이 뒤따르지 않은 현실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아직 국가적 울타리에 갇혀있는 듯하며, 유럽의회 내에서 초국가적 민주주의를 향한 발걸음은 너무나 소극적이다. 유럽연합은 세계최고 선진국들의 연합 프로젝트이지만, 근본 가치 중 하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이다.
유럽연합을 민주화해야 하는 이유?
유럽연합은 매우 특별한 조직이다. 국가가 아니지만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법령을 승인할 수 있는데, 이 법령은 실제로 개별국가의 법규를 침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구속력있는 법률 규정권을 지닌 유럽연합은 여타 초국가적 조직들과 확실히 구분된다. 유럽연합의 기구들은 제도화된 구조와 완전히 민주적인 민주주의 절차를 갖추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곧 기구의 중심에 시민들이 직접 선출하여 좀더 정치적 합법성을 지닌 기구, 곧 유럽의회EP가 결정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유럽연합 리스본 조약이 유럽의회의 역량을 강화시켰지만, 국가 민주주의 특유의 권력 분산이 유럽연합에서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커다란 정치적 방향의 결정은 물론 우리 일상 생활과 관련해서도 실로 폭넓은 법적 권한을 지닌다. 지속적으로 유럽공동체 차원으로 양도되고 있는 법적 권한들을 양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다. 1998년~2004년 기간 동안 전체 법령의 83%가 브뤼셀에 양도되었다. 그러나 이런 법령들의 중요성을 잘 평가할 필요가 있다. 리스본 조약조차 법제권이 계속해서 브뤼셀 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바로잡지 못했다. 다양한 법률 조항으로 유럽연합은 새로운 법적 권한을 지니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시민들의 민주적 권한은 더 커지지 않았다. 대개 유럽연합에 법적 권한을 양도할 때마다 민주적인 통제력을 잃게 되는데, 유럽연합 차원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가 그리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유럽연합은 독특한 구조로, 연방국가 비슷한 특징을 지닌 국가들의 연합체로서 민주적 단일 민족 국가의 척도로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론은, 민주주의의 척도는 그저 좁은 의미의 국가들만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연합의 모든 결정에 시민들이 중심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가치와 원칙, 방법과 제도들로 이루어지며, 개별적 전통 국가에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조직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럽연합 또한 민주적 권리라는 획득한 기준들에 맞춰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에도 여느 국가에 적용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의 척도들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유럽연합은 다양한 정치부문에 입법 및 행정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정부 조직처럼 작동하며, 1천 4백 억 유로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한다.
유럽의 통합과 그에 따른 유럽공동체 차원으로 법적 권한의 양도가 이탈리아 헌법에 허용되었으나 근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일 수는 없다.
리스본 조약의 서문에 유럽연합 자체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유럽연합은 시민들이 그 원칙들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줄 의무가 있다.
유럽의 시민들은 매우 다양한 법규와 조례의 영향을 직접 받으며, 그러므로 그에 직접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종종 유럽 통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옹호하면서, 평화보장과 안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능적인 단일 시장과 단일 통화, 노동 및 자본의 완전한 이동 가능성, 안정된 농가 수입, 대학생들의 교환 프로그램 등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들을 열거하곤 한다. 합법성이나 민주적 투명성이 부족한 것은 시민들이 누릴 직접적 이익, 곧 유럽연합의 결과물로 보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실상, 민주주의에서는 그저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결과물인지 시민들이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정치 논리를 통해, 그리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각각의 구체적인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재 정권들도 대체로 민주적 정통성의 부재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결과물이라는 관점에서 성과를 자랑한다. 그러므로 정치의 실제 성과가 시민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승인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 유럽은 너무 크지 않은가?
230년 전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유럽 사람들 대다수를 열광시키기 시작했을 때 (이론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로서), 대개 다음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어떤 환경에서 민주주의가 더 잘 시행될 수 있을까? 루소Rousseau는 더 작은 환경일수록 민주주의가 더 잘 작동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같이 커다란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실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하게 많은 동료 시민들에게 유럽, 곧 4억 5천 만 인구를 지닌(영국은 제외) 단일 유럽연합은 민주적 형태로 조직되기에는 단순히 지나치게 크다.
이와 상반되는 첫 번째 역사적 증거는 미국에서 나왔다. 미국은 1776년 연방국이자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되었다. 또 다른 증거는 인도인데, 인도는 1947년부터 연방국이자 다국적 민주주의 국가로 작동하고 있다. 2017년 인도는 13억 3천 9백 만 인구를 기록했으며, 벌써 2020년에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유럽연합 3배 인구 규모의 민주주의 체제이다. 유럽 차원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전에,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최대의 참여를 보장하려면 그 체제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을 들고 27개 국에서 인구 4억 5천 만에 이르며, 조만간 그 숫자가 더 늘어날 전망인 유럽연합 거주민들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통합된 유럽에는 5억 5천 만 명이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의회는 실행상의 이유로 선출 의원숫자 750명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유권자75만 명 당 한 사람의 의원으로 대표성이 매우 낮다. 이 경우 민주주의는 공허한 약속이 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레퍼렌덤 권한으로 통합하는 수 밖에 없다. 유럽연합의 규모가 그 구조 안에 직접 민주주의를 끼워 넣는 것에 장애가 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대표성의 약화로 인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
2009년 새로운 리스본 유럽연합 조약은 유럽의회의 역할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시민 발안으로 유럽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를 향한 새로운 창을 열어 주었다. 반대로, 독일 연방의 전 정부 관료이자 2001-2003년 유럽 헌법 제정 협의회의 주요 주창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요슈카 피셔Joschka Fischer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곧 유럽연합은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이었다. 유권자 규모는 물론 레퍼렌덤 절차를 작동시키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숫자만이 어떤 시민 정치 참여 시스템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을까?
민주적 정부 형태의 적용은 모든 차원의 정부에서 민주적 제도와 권리와 법규가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떤 특정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주로 해당 주민들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 다음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에 달려있다. 유럽 시민들은 관찰하고, 성찰하고, 토의하고, 여론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가? 그들은 평화롭게 서로의 의견을 대조하고 경청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과 그들 주위 공동체의 운명에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가? 그들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입수하고 바람직한 미디어에 접근할 기회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전반적 문제들에 대해 해결책이나 프로젝트를 마련할 수 있는가? 미디어들은 독립적이고 정치, 경제적 세력들을 견제하고 있는가?
이런 요인들이 유럽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결정한다. 만일 지금 유럽연합이 충분히 민주적인 조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무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력이나 의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유럽연합 지역의 민주적 체제들은 시군, 광역 및 국가적 차원에서 작동하고 있다. 어째서 그 같은 유럽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이 통합된 의회 체제에 기반하여 초국가적 차원에서도 강력한 민주주의를 조성할 능력이나 관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일까?
직접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규모가 작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극복되었지만 이는 장 자크 루소의 오랜 가설이었다. 유럽연합이 직접 민주주의에는 지나치게 크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더 커진 것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공간이며,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을 수록, 순전히 의원들만이 직접 참여권을 지닌 대
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
유럽 시민 발안: 유럽연합에서 직접 참여를 향한 첫 발걸음
2012년 4월 1일부터 유럽연합은 리스본 조약으로 도입된(제11항 4절) 시민들의 새로운 참여권인 유럽 시민 발안ECI: European Citizens’ Initiative을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60여 건 이상의 유럽 발안이 제기되었지만 단 4건만이 백 만 명의 서명 문턱에 도달하여 유럽의 의사 결정 절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초국가적 직접 민주주의의 첫 번째 권리 행사이다. 최소 7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적어도 백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유럽위원회에 유럽공동체에 법적 권한을 지닌 법령 제안을 제시할 권리를 지닌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ECI은 일종의 “집단 청원”으로서, 시민들은 유럽연합 기구들에 발안을 채택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이는 유럽공동체의 입법을 위한 초기적 직접 참여 형식이며, 그렇더라도 유럽위원회에 어떤 행동을 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만일 유럽위원회가 시민들의 제안을 기각한다면, 그 어떤 레퍼렌덤 투표도 따르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 시민들의 모든 발안이 거기서 끝난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은 의회 측에서 기각된 후 국민투표가 따르지 않아 사라지고 마는 이탈리아 버전의 국민발안 법제안과 매우 흡사하다(이탈리아 헌법 제50조).
유럽 시민 발안은 최소 백 만 명의 시민들이 유럽위원회의 정치 의제에 영향을 주기 위한 국민 청원에 비교할 수 있지만, 레퍼렌덤 투표를 실시할 권한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무익한 도구는 아니다. 백 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유럽공동체에 법적 권한이 있는 어떤 정치적 제안을 지지한다면, 이는 어떤 로비나 비정부 기구들이 제기하는 단순한 호소와는 다른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유럽 시민 발안으로 초국가적 형태로 조직되어 일하는 시민 사회는 유럽위원회나 다른 유럽 기구들이 간과할 수 없는 강력한 제안들을 표현해낸다. 그러므로 유럽 시민 발안은 여러 조직들에 유럽공동체의 다양한 정치 부문에서 하나의 새로운 압박 루트를 제공한다.
어쨌든 유럽 시민 발안은 초국가적 직접 민주주의의 첫 도구이긴 하지만, 유럽 연합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기에는 너무나 약한 권리이다. 결정에 영향을 주는 참여는 오직 시민들이 자신들의 유럽 국민발안과 유럽 실행 레퍼렌덤에서 투표할 자격 또한 부여받아야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럽연합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이 그저 강력한 로비의 압박에 놓인 브뤼셀에 집중된 테크노크라트들이나 유럽의 정치 엘리트들에게만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시민들은 자신들이 공공 영역이나 정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고, 유럽은 시민들 차원에서도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 시민들에게 필요한 레퍼렌덤 권리들
지금까지는 유럽연합에 전통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이 없다. 2012년 도입된 유럽 시민 발안ECI은 전통적인 레퍼렌덤 권한, 곧 국민발안과 선택적 혹은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을 대신할 수 없다. 그것은 보다 민주적인 유럽을 위해, 유럽의 입법을 통제하고 시민 사회에서 나온 제안들로 대의 기구들을 자극하기 위해 양도할 수 없는 권한을 말한다. 이 시점에서, 추후의 유럽 조약문서 개정을 염두에 두고, 국가적 차원에서 필요한 레퍼렌덤 권한을 되짚어 보며 다음 세 가지 종류의 직접 참여권을 제안할 수 있을 듯하다(베네딕토, 2010).
1) 국민발안의 법제안들에 투표하기 위한 유럽 레퍼렌덤을 포함하는 국민발안 입법권 (이탈리아의 법률 용어로는 ‘유럽의 제안 레퍼렌덤’이다). 일정 최소 인원의 시민들이 오늘날 유럽위원회와 매우 제한된 형태로 유럽의회에만 국한된 권한인 유럽의 법률 입안을 제안할 권리를 지닌다. 이 권한은 세 단계로 나뉘는데, 최소 백 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제기한 국민발안의 유럽 법률 제안으로 시작하며, 이어서 의회에서 토론을 거친다. 이 제안이 기각된다면, 시민들은 서명보다 더 높은 인원으로 레퍼렌덤 투표를 요청함으로써 이를 유럽의 제안 레퍼렌덤 실행으로 가져갈 수 있다.
2) 국민의 거부권, 곧 유럽의 실행 레퍼렌덤. 어떤 새로운 유럽공동체 법령이 승인되고 나서 일정 기간 내에 유럽 시민들은 이미 유럽연합 기구들에서 승인된 법령이나 어떤 새로운 회원국의 유럽연합 가입 여부에 대해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을 요청할 권리를 지닌다. 이 레퍼렌덤을 “선택적”이라고 정의하는데, 일정 최소 인원의 시민들이 그 레퍼렌덤을 요청할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3) 유럽의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은 향후 헌법 조약의 개정에 대해 자동으로 규정되었다. 곧 최소 인원 시민들 편에서 특정 요청이 없이도 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이를 “의무적 레퍼렌덤”이라고 한다.
“유럽의 레퍼렌덤”에서 투표권을 지닌 모든 유럽연합 시민들은 잠정적으로 유럽공동체 제도권의 어떤 반대 제안에 맞서 제기된 국민발안 제안에 관하여 결정하기 위해 투표하도록 요청받는다. 유럽연합의 독특한 제도적 구성은 소수 회원국들이 계속해서 소수파의 위치에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한 일련의 메커니즘을 지닌다. 그러므로 유럽의 레퍼렌덤 투표에 그런 연방적 요소를 넣는 것이 불가피할 것인데, 곧 “이중 과반수”를 규정해야 한다. 스위스에서 벌써 오래 전부터 이를 규정하고 있는데, 연방 레퍼렌덤 투표에서 총 투표자들 표의 과반수와 칸톤들의 절대 과반수가 둘다 필요하다(“Ständemehr”라고 한다). 이를 유럽 차원으로 가져가면 유럽의 투표에서 “연방”이라는 조건의 대의성을 보장하기 위해 총 투표자들 표의 과반수만이 아니라 대다수 회원국에서 나온 표들의 과반수 또한 요청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안에 대해 만일 투표자들의 과반수가 찬성을 표시하고 유럽연합 회원국(현재 27개 회원국 중 최소 14개국)의 대다수로부터도 승인된다면 그 제안이 수용된다는 뜻이다. “이중 과반수”는 연방이라는 의미에서 시민 숫자가 적은 회원국에 보호책을 제공한다. 유럽 레퍼렌덤 투표 또한 참여 정족수가 없는 것이 나을 것이다.
유럽의 시민들은 새로운 나라가 유럽연합의 회원 자격을 얻는 것에 대해서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나 제도권에서 공포하는 가부형 레퍼렌덤 투표(플레비사이트)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이미 자국의 정치에 쉬운 환호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진정한 국민발안의 표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의 발전은 현재 유럽연합의 제도적 틀에서 민주적 결함을 보완할 수 있고, 유럽의 참된 여론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촉진시킬 수 있지만, 그것이 유럽 민주주의를 위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유럽연합 내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도전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 도입은 나름의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유럽연합은 완전히 독특한 나름의 스토리와 정치적 구조가 있는데, 그것은 유럽연합을 이루는 여느 단일 국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이런 종류의 초국가적 민주주의 프로젝트가 공통으로 갖는 특유의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이 유럽연합은 지나치게 크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긴다.
유럽연합은 모든 차원에서 명확한 법적 권한이 구분되어 있거나 제도권과 권력의 분명한 위계 질서를 갖춘 연방 정부가 아니다
유럽연합은 성숙한 의회 민주주의 조직이 아니며, 유럽의회 또한 아직은 힘이 없고 유권자들 측의 관심 부족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의 레퍼렌덤 도구에 대해 확신이 없는데, 그것은 일부 회원국들 차원에서 비슷한 도구들에 대해 부정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회원국 대부분은 중앙집권국가들이며 수많은 시민들이 이미 자국에서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본부들과 그들 일상의 상황 사이에서 느끼는 거리감을 비난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로 역사적인 혁신을 도입하고자 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 구조의 변혁이라는 필요에 직면해야 한다.
모든 시민들이 벌써 “세계적으로 의사 소통을 하는 시민들”로 변화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저 자기 모국어(게다가 지역적 방언)만 알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아직 정치적으로 다소 지방색이 강한 시각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유럽 직접 민주주의는 건설 중인 과정이자 과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의 “민주적 후진성”에 대해, 유럽공동체 차원에서 모든 레퍼렌덤 권한이 갑자기 제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몇 개 국가군에서는 종종 레퍼렌덤 권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부터 시작하여 앞으로 제정되고 개정할 수 있도록 활동하면서, 유럽의회에 입법 국민발안과 국민 청원을 할 수 있게 하며, 그 다음 계속해서 선택적 실행 레퍼렌덤 권리를 위해 일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유럽적 도구 도입에 처음부터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럽연합 민주주의의 초국가적 규모로 인해 유럽연합은 특별한 특징을 지니며, 이는 국가적 민주주의에서 제기되는 것들에 비해 다음과 같이 독특한 요구사항을 만들어 낸다.
지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발안의 결정이나 절차가 일방적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시민들의 발안들은 가능한 한 여러 나라에서 모든 사회 계층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엘리트 의식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재정적 권력이나 잘 조직된 비정부 기구들의 권력이 직접 민주주의를 장악해서는 안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도구들은 그저 잘 조직되고 자금력이 있는 소수들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초국가적 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함으로써 “유럽의 공적 공간” 조성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유럽 국민발안을 다루고 실행하기 위해 기간을 정할 때, 제도권과 발안자들과 다양한 이익 집단들 사이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협상과 노력에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야 할 것이다.
유럽 직접 민주주의의 형태는 그저 유럽의 제도권에 시민들의 의견을 더욱 경청하도록 의무를 지우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들 또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모든 국가적 민주주의가 당면한 위기는 이중적인 위기이다. 한편으로 회원국들의 국가 민주주의는 지나치게 간접적이며, 거의 항상 선거에만 기반을 두어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들로 보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국가적이기도 해서, 초국가적인 막강한 경제 세력들을 감당하거나 견제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민주적 권력들은 초국가적인 방식으로, 곧 유럽연합의 유럽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오로지 대의적 요소들을 직접적 요소들과 잘 결합시킴으로써 우리는 유럽연합에 단순히 과반수로 정해진 결정을 초국가적 차원에서 통과시키는데 필요한 민주적 합법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시민들과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시장의 인간화와 문명화를 위해 요청되고, 꼭 필요한 합법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직접 민주주의는 한 구석에서 벗어나 그 잠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더 이상 플레비사이트적 요소들과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
쳰리췬(1939~) 선생은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석학이자, 사상가중 한명이다. 베이징 대학 중문과에서 오랜 기간 교편을 잡았고, 근현대 중국의 텍스트와 사상가들 특히 루쉰과 마오쩌뚱을 연구했다. 청년과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발언을 하고 있다. 중국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명으로 알려져있지만, 친서방적 자유주의자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중국을 연구하는 한국학자들과도 교분이 있는데, 신향촌건설운동과 원톄쥔 교수를 한국에 소개하여 원교수의 저서 ‘백년의 급진’이 한국에 출판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으로 뽑히기도 한, 그는 젊은 시절, 베이징 대학 학부이후, 오랜 기간 중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곳인, 꾸이저우貴州성의 지방도시 안슌安順에 하방돼 평범한 교사로 경력을 쌓기도 했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백여년전에 시작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근대화 문제와 20세기 중국 사회 발전과 그 경험의 해석에 대한 우려와 질문을 매우 직접적으로 던지면서, 청년/지식인들의 ‘향촌건설운동’과 ‘자원활동가운동’에 대한 참여와 연구가 이들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는, 최근 몇년간, 중국 안팎의 희망과 달리, 갈수록 축소되는 ‘비시장’ 민간영역의 ‘사회’ (중국에서는 시민사회보다는 공민사회公民社會라고 불린다)를 재건하기 위한 매우 커다란 과제이다. 또 한가지, 그 핵심이 중앙과 도시 이상으로, 향촌과 지역이 중시돼야 하는 (혹은 될 수 있는) 중국 고유의 근대화라는 맥락위에 서있기도 하다.
신향촌건설은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흥기하였고, 일부 지식인들의 자각적 행동에 의해서 출발했다. 일부 농민공과 노동청년이 공동으로 일련의 사회활동에 참여했다. 이중에는 농촌활동, 생태농업의 지원, 문화공익사업, 도농협력 등이 있다. 이 민간지식계의 사회운동은 처음부터 청년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저명한 학자인 쳰리췬은 20세기이래 ‘중국의 여섯번째 지식인 하방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 20년이 지나고, 수만명의 대학생과 이백여개 대학의 농촌지원학생 동아리들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신향촌건설’운동. 이들 청년지식인들의 참여는 의심의 여지없이, 깊이 살펴봐야할 21세기의 문화현상이다. 어떻게 이 사회운동이 출현한 사회역사환경을 이해할 것인가? 지금 ‘제도형식화’된 대학교의 학과교육이 직면한 심각한 도전과 이 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영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중국 청년문화와 자원활동가문화에 대한 이 운동의 영향과 의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운동에 참여한 청년지식인들은 어떤 정신적 경험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현재 자신이 놓인 처지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 농촌지원활동에 나선 청년과 향촌건설에 참가하는 청년들은 현재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사상계, 문화교육계, 산업계 그리고 모든 청년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들의 깊은 성찰, 토론 그리고 행동을 요구한다.
인터뷰어: 1990년대말 이래, 청년지식인들이 향촌건설에 매진해왔습니다. ‘향촌진흥’전략이 제시된 이래, 향촌건설이 주류화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루 아침에 ‘향촌진흥’전도사로 변신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향촌의 현실을 개선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쳰리췬 선생(왼쪽)과 인터뷰어들 (빠링허우 세대의 향촌건설 활동가 및 연구자)
쳰리췬: 최근 글과 강연중에서, 저는 이미 이 변화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옌양추晏陽初도 당시에 이렇게 얘기했죠. “향촌건설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너무 많아지면 운동이 변질될 수도 있다.” 오늘날의 향촌건설도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향촌건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날, 저는 중국의 향촌건설이 아직은 다시 10년간 체제안에서 담금질 돼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은 ‘향촌건설’을 하면서 두가지 정신을 필요로 합니다: 첫째는 인내심입니다.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향촌건설은 장기전입니다. 두번째는 지혜입니다. 각종 제약 조건하에서 생존과 발전의 공간을 모색하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또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향촌건설을 오래 진행하면서, 발전도 변화도 있었습니다. 조기의 향촌건설은 사회참여를 통해서 농촌을 변화시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점차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시민농장을 만들어서, 시민들이 텃밭을 가꾸고, 실제 농업생산에 참여하는 활동을 기획하지요. 이는 실제로 경제를 통해서 이끄는 향촌건설발전의 특징을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기본 생존문제가 해결된 시대에는, 젊은이들은 새로운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추구해볼만합니다. 향촌건설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젊은이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의 정신적 목표의 변화는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향촌건설이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향촌건설이 젊은이들에게 건전한 인격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
실제, 우리 세대에게는, 지금의 향촌건설운동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왜냐면,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이, 우리가 젊었을 때, 어느 정도 ‘이상’으로 생각했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젊은 시절에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장벽을 없애고자 했습니다. 또, 도시와 농촌의 차별과 격차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습니다.
쳰리췬 선생(왼쪽)과 인터뷰어들 (빠링허우 세대의 향촌건설 활동가 및 연구자)
그래서 제 생각엔 향촌건설은 미래에 매우 큰 발전의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과 정치문제, 국가문제 이런 주제를 가지고 토론해도, 아마 잘 이해를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흥미가 없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향촌건설 같은 활동에는 관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활동을 통해서, 좋은 진로를 개발할 수도 있고, 생활에서 어떤 구체적 의미를 추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당연히 어떤 일이든 일단 유행을 타게 되면,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설사 젊은이들이 재미삼아 참가한다고 해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지고한 이상을 간직하고 자기 신념대로 살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요.
인터뷰어: 최근에 편집하신 <<안슌성기安順城記》〉가 곧 출간됩니다. 이 책은 지역문화 전승과 관련한 매우 의미있는 시도인듯 합니다. 지역사의 정리와 간행, 지방문화계승과 발전 그리고 향촌건설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쳰리췬 선생이 편집한 안슌성기<安順城記>
쳰리췬: 제가 보기에, 지역문화의 계승과 발전은 향촌건설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안슌성기의 발간은 제가 최근에 한 일중에 가장 성공적인 작업입니다. 그래서 기대가 큽니다. 청년지식인들과 향촌건설 참여자들이 더 많이 이 사업에 참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지방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벌어져야 합니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민간이 역사를 지키고 만드는 전략이랄까, 이런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우선, 민간의 역사기록은 반드시 현지인과 외지인이 협력해서 수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꾸이저우貴州 안슌安順의 역사를 기록한 것입니다만, 꾸이저우 지역민 그리고 현지 친구들과 협력했습니다 – 제가 외지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제가 직접 지역향토사를 정리해야 한다면, 저는 쓸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제가 없어도 일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런 관계를 이용해서, 자기 고향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는 일군의 인재들을 키워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책을 준비하면서, 꾸이저우에서 인연을 맺은 5~6대에 걸친 사람들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덧붙여서, 현지에서 큰 문화적 영향력을 갖춘 사람을 꼭 찾아내야 합니다. 이번에, 정부의 자금지원도 받았고, 현지 사회과학계 학술네트워크가 제공한 협조도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외에, 지역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안슌시에서 시민독서대회를 거행했는데, 지역의 저자들이 시민들에게 안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활동에 대해서, 시민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왜냐하면, 현지의 자기 생활 터전에서 행해진 자기 고향에 대한 공공강연이기때문입니다. 또다른 예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훼손, 파괴될 위험에 노출된 생태문화자산을 지키는 운동을 벌일 수 있습니다. 옛마을, 오래된 나무, 고건축물 등을 찍어서 비디오를 만듭니다. 지방정부와 주민들이 이런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입니다. 이를 지역의 문화소개자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록이 일종의 역사전승이 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향토문화의 교재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이런 방면에는 여전히 제한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향토교육의 통식通識교육화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오늘날의 향촌건설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영향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오늘날의 향토는 세계적 관점하의 향토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향토교육은 반드시 로컬라이제이션과 국제화가 유기적으로 통일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될 때에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생활방식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지방의 역사문화자원이 관광자원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방사를 서술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확장시켜 나가면, 단지 책한권을 출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갖춰서 보급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거듭나게 됩니다.
2. 향촌건설, 사회건설과 ‘자원활동가문화’
인터뷰어: 21세기에 들어온 후 ‘자원활동가그룹’이 중국사회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많은 보통 시민들과 지식인들이 관심을 기울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이에 관심을 표명하시고, <<자원활동가문화 총서>>를 출간하셨습니다. 이 책속에서, 옌양추晏陽初, 량슈밍梁漱溟, 타오싱즐陶行知과 루쭤푸盧作孚 이렇게 네분의 향촌건설 선구자들을 자원활동가의 예로 드셨는데요. 그중에서 루쭤푸의 향촌건설 성과는 거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런 향촌건설 선각자들의 실천과 사상이 오늘날 청년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떤 정신을 심어줄 수 있을지요.
쳰리췬 선생의 자원활동가문화 총서 시리즈
쳰리췬: ‘자원활동가문화’는 제가 자원봉사 활동과 향촌건설 활동에 참여하면서 서서히 형성한 개념입니다. 이런 활동중에, 저는 계속 한가지 문제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사상문화 자원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시에 모두가 생각했던 것은, 홍콩과 대만 그리고 외국의 자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국대륙에서 사상자원을 발굴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서부양광액션西部陽光行動’에서 강연을 한 일이 있습니다. 자원활동가 운동과 향촌건설운동에 영향을 끼쳤고 의의도 있는 루쉰의 사상자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옌양추 시절의 향촌건설 참여자들의 이론과 실천을 회고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 판단이 있었습니다: 중국은 농업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고, 그러므로 중국을 제대로 건설하려면, 농업, 농촌에서 시작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실제로는 전국적인 사상의 전파가 있었고, 여러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농업기술파’이고, 주로 현대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옌양추는 ‘향촌건설파’ 마오쩌뚱은 ‘혁명파’였던 것이죠. 하지만 그들 모두는 향촌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실제 향촌건설파와 중국혁명은 내재적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역사를 고찰하면, 부득불 이렇게 향촌으로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큰 흐름과 사고의 틀을 바꾸려 하던 활동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근대 이래,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노력이 모두 이런 큰 맥락으로 귀결됩니다. 다만, 모두가 다른 각도에서 구체적인 작업들을 전개해왔습니다. 나는 이를 근현대 중화민족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나 자신을 포함해서, 향촌건설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중국 농촌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혹은 중국의 현대화와 공업화진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향촌을 떠날 수 없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서방의 공업화/도시화 경로를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원활동가문화’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의 큰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만 – 전통중국사회구조는 현대화 과정에서 엄청난 층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재건해야 할까요?
전통중국사회에서 황제의 실제 통치력은 현縣밑으로 미치지 못했습니다. 매우 방대한 현급이하의 사회는 여전히 향신계층과 향촌사회가 존재했고 – 실제로는 이를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민간사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정부의 통제는 현재와 같이 직접적으로 기층에 침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실행하는 향촌건설 실천은 전통의 민간사회를 회복하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 민간사회를 복구하는 것이, 향신계급이 농촌을 관리하던 옛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보통의 농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향촌의 엘리트와 향촌의 민중이 함께 민간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이렇게 별도의 두가지 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원활동가운동과 향촌건설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루쉰선생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국민성개조문제와 사상계몽 요구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전통중국사회가 결여한 ‘사회조직’의 문제입니다: 중국 사회구조안에는 국가체제와, 상업시장주체가 있지만 정작 ‘사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국 사회구조의 가장 큰 결함입니다. 그래서 자원활동가조직과 향촌건설조직이 문자 그대로 사회를 건설하는 시도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두가지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두 사상의 계몽과 사회조직 발전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동시에, 이 두가지 운동은 모두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을 택하면서 이 두가지 근본적인 사회문제에 대처하는 움직임입니다.
인터뷰어: 선생님은 앞서 언급한 네분의 선각자들로부터 지금 향촌건설에 참여하는 지식인과 청년들이 배워야 할 핵심적인 가르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향촌건설의 선구자 4인 중 량슈밍梁漱溟 향촌건설의 선구자 4인 중 루쭤푸盧作孚 향촌건설의 선구자 4인 중 타오싱즐陶行知 향촌건설의 선구자 4인 중 옌양추晏陽初
쳰리췬: 저는 그분들이 특히 농민조직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인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모두 교육에 방점을 뒀습니다. 계몽운동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요. 초기에 기술교육에서 시작을 해서, 농촌 교육현장을 개선했습니다.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점차로 공민교육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일종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가서 전면적인 향촌건설을 고려하면서 농민조직화 문제에 몰두하게 됩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현지의 농민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결국 농민이 스스로 향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외부인의 개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농민조직화가 이뤄진 후에야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3. “다시10년을 담금질해야한다”: 청년들의 정신적 성장
인터뷰어: 저희가 하는 일은, 향촌건설 프로젝트를 빌어, 농촌지원사업 등의 방법으로 청년들을 육성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대나 건의가 있으신지요? 예전에 말씀하셨던 “섬세한 이기주의” (역자주: 베이징 대학에서 오래 교편을 잡은 쳰리췬 선생이 접하게 된 일부 학생들의 행태에 큰 충격을 받아서, 중국 사회 엘리트들의 이기주의적 성향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도 있다는 의미로 교육과 사회 문제를 지적했던 표현이다.)라는 말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저희는 전면에 서서 일을 하면서, 청년 학생들에게 각종 이익이 주는 달콤한 유혹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저희가 판단하기로는, 수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사실 대부분 선한 마음을 품고 있고, 사회주의 전통 환경이나 부모들의 가르침속에 공평이나 정의와 같은 기본적인 요구를 마음속에 품고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체제와 미디어는 개인주의와 자아실현의 욕구를 더 키우기도 합니다. 이 양자간에는 사실 부딪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문제는, 어떻게 계층 향상을 추구하고, 동시에 선함을 지향하는 젊은이들을 격려해서, 일종의 협력정신을 지니면서, 즉 비원자화한 동시에 개인화한 실천방식을 추구하게 할 수 있을지 하는 것입니다.
쳰리췬: 조심해야 될 것은, 제가 비판한 “섬세한 이기주의”가 개인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빠링허우80後는 글러먹었다고 했죠. 하지만 저는 당시에 이런 식의 비판에 항변했습니다. 대개 당대 주류는 다음 세대에 만족하지 못하죠. 하지만 다음 세대는 모두 충분히 자기 문제를 해결하곤 합니다. 결국, 그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가죠. 그러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중국 사회의 허리가 된, 여러분들 (빠링허우)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보다 전면적인 관점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개인주의자들이고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개인 권익의 자각성은 저같은 구세대에 비해서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공무사大公無私, 전문리인專門利人,호불위기毫不為己(역자주: 마오쩌뚱이 중국에 와서 봉사했던 캐나다인 의사 노먼 베쑨을 추모하면서 남긴 말. 공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말.) 이런 요구는 지나친 것이겠지요. 요즘 사람들은 물질적 이익을 포함해서, 겨우 자기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을뿐이지요,. 현대의 시대조건에서 긍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그럼 문제가 뭡니까? 젊은이들뿐 아니라, 사실은 중국 인민들 모두가 비물질적인 측면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럼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모두가 자기 이익을 보호하는데 모든 관심을 기울이게 되죠. 결국 개인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루쉰선생의 말을 따르자면, 개인의 슬픔과 기쁨이 온 세계가 돼버리죠.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고 온통 자신의 쾌락만이 중요합니다.
최근에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 근심거리입니다. 현대 중국의 청년들을 포함한 각 사회계층과 국민성 문제입니다. 당안팎을 막론하고,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이런 국민성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 현재 중국 최대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본능적 생존 욕구에만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이익만을 좇고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가치관을 지니게 되면, 사회가 위험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사회 시스템이 이런 논리를 부추깁니다. 내 말을 들으면 이익이 되고, 듣지 않으면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많은 문제의 근원입니다. 국가적 민족적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렇게 표리부동합니다. 경우마다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위아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과 가장의 이야기도, 그룹안에서 자기가 하는 이야기와 선생님께 하는 이야기가 모두 다릅니다. 그 사실을 스스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 표리부동을 다루는 기교도 아주 뛰어납니다. 이것은 아주 큰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가치도 아주 중요합니다. 결국 현대 중국인들에게 정신적인 가치라면, 개인의 이익과 민족주의 그리고 애국주의 정도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애국주의가 극단화하면, 역시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현대 중국의 문제를 생각해볼 때,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향촌건설은 바로 이런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개인적인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려움이 있는 겁니다. 향촌건설의 참여가 도전이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익을 좇고 손실을 피하고, 본능적으로 생존을 추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당연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향촌건설의 참여자는 소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종일관 고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늘 그렇게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고독이 여러분의 운명입니다. 이런 고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뜻이 맞는 동지들을 찾아 연대하고 서로 도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그룹 자체는 사회의 비주류가 될 수 밖에 없지요.
인터뷰어: 끝으로 여쭤봅니다. 선생님께서는 90년대말부터 “비주류적이고, 대안적인 모색을 하는” 젊은이들, 말하자면 이상주의 청년들을 주목해오셨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희들 모두, 생각을 하게 한, “10년을 담금질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방금 “이제 다시 10년을 담금질해야 한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쳰리췬 선생이 향촌건설 청년들에게 책을 기증하며, “10년을 다시 담금질하라!”는 조언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존재하고, 계속 노력하고, 계속 서로 부축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쳰리췬: “다시 10년을 담금질한다”라는 말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생계문제는 해결한 학생들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보다 더 젊은이들에게는 지나친 요구이겠지요. 오늘날의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은 최소한의 생계 문제는 이미 해결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두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있지요.
첫번째는, 여러분처럼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실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학술연구를 할 수도 있고, 이 두가지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왜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말하냐고요 ? 왜냐하면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농민의 국민성을 개조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사실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관적이어도, 태도는 적극적으로 취합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이건 장기적인 일입니다. 왜 “다시 10년을 준비해야” 하냐고요 ? 이건 여러분들 빠링허우 세대에게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10년간 자기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정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노력해서 해야 합니다. “10년을 담금질하라”는 이야기는 최대한 노력해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라는 격려입니다.
두번째 선택지는, 사회적 실천에는 참여하지 않는 연구자들이지요. 전문적으로 학술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전자와 마찬가지로, “10년을 담금질하고”, “다시 10년을 담금질 할 수“있습니다. 학계의 관점으로 보자면,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학계는 정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저작을 거의 생산해 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대가도 없지요. 물론 좋은 인물도 있고, 가치있는 저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론적으로 창조적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오늘날의 학자들이 연구에 전념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연구과제를 끊임없이 바꿔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진득하게 오래 연구해서 정말로 바깥 세상에 내놓을 만한, 설득력 있고, 독창성을 가진 이론이 나타나지 못한 것이지요.
중국학자들이 직면한 매우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답을 찾기 어려운 인문학적 질문들이 있습니다. 오래된 문명을 가진 나라들은 대부분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전통은 여전히 전승되고 있습니다. 현재, 공산주의 리더 국가들도 대부분 망했습니다. 중국만 여전히 존재하고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중국의 학자로서, 이 질문에 이론적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짜 학문을 하는 중국인이라면, 그의 노력의 목표는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설득력있고, 창의적인 이론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구하는 향촌건설도 최종적으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구호를 하나 준비했어요 “20세기 중국의 경험을 결산하자”. 향촌건설연구는 어떤 의미에서 이 체계를 가져와야 합니다. 이론을 만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이 일에 몰입할 수 있다면, 20세기 중국에 대하여, 설득력 있고 논증가능한 이론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두가지 방면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역사경험의 해석을 명철히 하고, 동시에 비판적 시선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10년을 담금질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 여러분 세대에 아마도 이론을 새롭게 하고 돌파구를 마련할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평생 두곳의 정신적 고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장 밑바닥의 꾸이저우貴州, 또 하나는 가장 꼭대기의 베이징 대학입니다. 중심과 변경, 상층과 기층, 엘리트와 민중, 저는 이 양극단 사이를 오갔습니다. 제 인생 경험과 학술 경험의 최대치가 바로 이곳들입니다. 양쪽 모두 한계는 있습니다. 만일 평생 농촌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겠지요, 또 베이징에서 지내면서 농촌과 관계가 끊어지면 또 다른 의미로 인생 경험의 폭과 자원이 제한되겠지요 –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개혁개방후 대학에 진학하고, 농촌을 지지리 고생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떠올리고 싶어하지도 않지요,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좋다고, 하지만 저는 고생이 또 다른 자원이 됐으면 합니다. 제게는 안슌이 그 근거지가 됐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고향’ 한 곳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의미는 이런 겁니다: 거기에 당신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묶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계와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1922) 자작(子爵)은 1887년에 쓴 <미연방(The American Commonwealth)>에서, 캘리포니아는 “많은 측면에서 전체 연맹 중에서 가장 월등하고, 그 어떤 주 보다 세계에서 홀로 우둑 설 수 있는 위대한 나라의 성격을 지녔기에 내가 기꺼이 거주하고픈 주”라고 썼다.
그런 존재감과 자신감에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19 이후 캘리포니아가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지사인 뉴섬(Gavin Newsom)의 입에서 미합중국주의자라면 귀에 거슬릴만한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주’(state)가 아닌 ‘국’(nation)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 그의 표현으로는 ‘캘리포니아국’(California nation-state)이다. 원래부터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뉴섬 주지사가 코로나 이후 무능하고 무책임한 트럼프의 코로나 대처에 열불이 나서 트럼프에게 더 날을 세우려 그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주지사가 저런 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에 많은 매체가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뉴섬 지사는 4월 13일 자신의 발언은 세계 5위의 경제와 미국의 20여개 주를 합한 수 보다 많은 인구를 지닌 캘리포니아의 “규모와 범위”를 감안해 한 발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그러나 바로 그 규모와 범위에 있어 존재감을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한 발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것을 필두로 해서 불길한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는 미국이기에 그렇다. 그 불길한 조짐이란 바로 분열이다.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분열된 모습이 현재의 미국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미국을 ‘미분열국’(The Un-united States of America)로 부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참에 갈라서자
2001년부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난 4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다. “코로나로 한 가지 분명해 진 사실: 이참에 갈라서자”(“Column: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made one thing perfectly clear: It’s time to split the country,” Los Angeles Times, April 22, 2020). 글의 요지는 간단하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미국이 민낯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지도자(트럼프를 가리킴)와 미국인들이 즐비하다. 그걸 계속해서 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더는 못 버티겠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연방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 50개 주를 성향에 따라 3개 또는 2개로 나누자. 3개의 국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이 이름 지으면 될 것 같단다. ‘미국우선공화국’(The Republic of America First: 트럼프의 외교정책 노선 “미국우선주의”를 빗댄 것), ‘신과 총의 연방’(The Commonwealth of God and Guns: 보수주의자들을 지칭한 것), 나머지 하나는 ‘오합지졸연합피난처’(The Federated Sanctuary of Huddled Masses: 구심점 없는 진보주의자들을 일컬음)로 맨 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수도가 위치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어쩌면 저렇게 이름을 그럴 듯하게 지었을까. 그러면서 당장 3개로 나누는 것이 어려우면 이른바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우세 주)와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우세 주)로라도 나뉘었으면 좋겠다며 이참에 확실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자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변죽을 울리고 슬쩍 빠졌던 그 “캘리포니아국”를 아예 공식화하자며 칼럼을 맺는다. 미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 따로 살자는 것이다.
전례 없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진영으로 나뉜 미국. 그래서 이 진영에 속한 주들끼리 따로 분리하자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작금의 미국이다. <애틀랜틱>
유력 매체의 사설이 저렇게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미국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신물이 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쿨’하게 갈라서자는 말이 나올 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마스크가 가른 미국 정치 지형
1768년, 필라델피아의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존 디킨슨(John Dickinson, 1732~1808)이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by uniting we stand, by dividing we fall)이다. 그 뒤 독립운동의 웅변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그 말을 인용해 유명한 연설을 한 뒤, 경구가 되다시피 한 저 문구는 250여년이 지난 지금 거꾸로 사용될 정도로 색이 바래버렸다. 왜냐하면 이제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Divided we stand, united we fall)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갈라지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제목을 단 <뉴욕메거진> 기사
그 정도로 지금 미국은 절망적으로 분열되었다. 물론 미국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소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이니만큼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치색이 달라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고 싸우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디킨슨이 남긴 저 말처럼 통합해서 위기의 고비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나 앞서 내가 여러 번 지적했다시피 이번엔 양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선을 끼고 크게 3번의 거대한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186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노예제의 장래를 두고 싸웠다. 그것은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932년 대선에서는 대공황의 대처방안을 놓고 진영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80년 대선에서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두고 진영간의 심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2020년 대선이다. 이번엔 무엇을 놓고 진영간 대립이 벌어지고 있을까? 힌트는 코로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대번에 답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답은 마스크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앞서, 어떤 이들은 코로나 사태와 조지 플로이드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는 걸 보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진영 간의 극심한 대립)가 깨진 것 아니냐는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정치매체 <더힐>이 그런 분석을 냈다. 전통적인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 가톨릭교도들의 지지가 지난 3월엔 60%였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37%로 떨어진 것을 두고 코로나가 혹시나 정치적 양극화라는 거대한 빙산에 금을 가게 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런 진단은 섣부른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정치 진영 간의 골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깊이 패어있었다. 즉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확실히 갈라서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란 말이 계속해서 나왔던 게 저간의 미국의 사정이다.(“Divided We Stand: The country is hopelessly split. So why not make it official and break up?” New York Magazine, Nov. 14, 2018). 양쪽 진영끼리의 증오와 반목도 소외와 허탈을 느낄 정도로 극해 달해 있었다.(“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물론 코로나로 트럼프 선호도가 약간 떨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5%로 정권 초기의 44%에 비하면 변함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가 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보여주는 조사도 존재한다. 이번에 양쪽을 가르는 것은 마스크에 대한 것이다. 카이저재단(Kaiser Family Foundation)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5월 현재 민주당지지자 89%가 집밖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공화당지지는 58%만 착용했다.(“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어떻게 마스크가 미국을 갈랐는가?’란 제목의 <텔레그래프>기사
어쨌든, 코로나 이전이든 이후든 분열된 정치적 지형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내가 볼 때 이러한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면 됐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이를 두고 여론조사기관 시빅사이언스(CivicScience)의 존 딕(John Dick)은 “정치적 종족주의”(political tribalism)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치적 종족주의야말로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거의 다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라고 분석한다(“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한 마디로 ‘정치적 종족주의’는 미국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끝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등장을 하고, 성공회 교회 앞에서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성경을 들고 사진 찍고 오는 장면을 대중에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히 종족화 된 정치지형에서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위의 일환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항의 시위가 남부연합을 역사에서 지우는 역사 전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고수하려 했던 남부연합의 대통령과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Third Confederate statue toppled by protesters in Richmond in recent weeks,” Washington Post, June 17, 2020; “Confederate statues: In 2020, a renewed battle in America’s enduring Civil War,”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남부연합군의 깃발인 연합기도 퇴출될 운명에 놓여있다.(“Will 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 finally put an end to Confederate flags and statues?” USA Today, June 12, 2020). 미 해병대는 부대 내에서 연합기의 게양을 금지했다.(“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미 육군도 모든 부대 내에서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은 남북연합의 지도자 이름을 딴 미군기지 10 군데의 명칭을 변경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Army reverses course, will consider renaming bases named for Confederate leaders,” Politico, June 8, 2020).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남북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저렇게 남부 연합기가 사라지고, 남부연합군의 지도자와 병사들의 동상과 상징물들이 철거되고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들도(이런 이들에게 요샛말로 ‘샤이’ 자를 붙여야하나? 물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KKK단 같은 극력백인우월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적지 않게 있다. 그러니 연합기가 퇴출되고 동상들이 쓰러트려진다고 해서 미국인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동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것은 그런 이들의 대표자인 트럼프가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미군 기지의 명칭 변경의사를 표명하기 무섭게 단박에 제동을 건 것을 보면 확실해 진다.(“Trump won’t rename Army posts that honor Confederates. Here’s why they’re named after traitors.” Washington Post, June 11,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경찰을 몰아낸 시애틀의 자치구(CHAZ) <출처: 복스>
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자치구(autonomous zone: 카즈‘CHAZ’라고 불림)를 선포한 곳도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이다. 이들은 경찰을 몰아내고 경찰서를 점거한 뒤 현판을 “시애틀경찰서”(Seattle Police Dept.)에서 “시애틀민중서”(Seattle People Dept.)로 바꿨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그 내부는 그렇게 무질서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약간의 긴장감은 돌고 있지만 대체로 축제 분위기란다.(“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분열의 끝에 이런 일종의 해방구까지 등장했고 해당지역의 주지사와 시장은 이들의 역성을 들고 있으니 실로 난세는 난세다.(“Trump claims ‘radical left’ has ‘taken over’ Seattle as he spends birthday at golf club,” The Guardian, June 14, 2020; “Capitol Hill Autonomous Zone becomes political flashpoint, as Durkan rebukes Trump’s message to ‘take back’ city,” Seattle Times, June 11, 2020).
분열 중인 미국
이런 분열은 단지 정치적, 인종적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열과 갈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점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을 크게 공간적으로 나누어 볼 때, 레드스테이트와 블루스테이트로 분할해 볼 수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그런데 이런 지형적 분류는 솔직히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현재의 미국의 지역적 갈등 양상과 지형은 보다 더 복잡하다. 그리고 복잡성은 최근 수십여 년에 걸쳐 더욱 현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지리적인 분열과 갈등의 양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파편화의 편재성이다. 분열과 갈등은 미국 전 지역에 고루 편재해 있다. 심지어 동일 지역 내에서조차 그러하다. 같은 주내에서도 농촌과 도시 지역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도시 외곽인 농촌지역 내에서도 지역 간에 양극화 현상이 보인다. 반목과 시기의 정서가 팽배하다.(“One County Thrives. The Next One Over Struggles. Economists Take Note,” New York Times, June 29, 2018). 또한 도시들 간에도 양극화가 진행 중에 있고(“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같은 도시 내에서조차도 분열과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가히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란 유령이 미국을 집어 삼킨 것처럼 보일만큼, 그렇게 미국은 현재 분열 중이다.
둘째 특징은, 대체로 그런 분열이 정치색과 맞물리는 경향이 더욱 더 짙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농간의 분열을 보자. 도농간의 분열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그 강도가 더 세며,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도표>를 보면,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이 갈수록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지지로 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농촌지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가 서로 엇비슷하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008년 이후 공화당지지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더욱 뚜렷해지는 도농 간 정치색. 도시 지역은 갈수록 공화당 지지가, 농촌 지역은 민주당 지지가 강해지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분열 뒤에 숨은 으스스한 그림자, 불평등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분열이 이렇게 극대화되고 극력해지는가? 나는 그 기저에 불평등의 심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은 앞서 언급했듯 여러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 ‘도가니’다. 그만큼 이질적 사회다. 그런데 그런 이질적 요소를 통합시키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는 이것을 “가치의 일반화”(value generalization)라고 말했다. 그것은 상이한 여러 가치들을 뭉뚱그리고 한데 아우르는 상위의 가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인종과 성별 보다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더 우위에 두는 가치를 말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국계, 일본계, 독일계 등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범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뉴욕커(뉴욕시민), 보스터니언(보스턴시민)이 더 상위의 범주와 개념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 아우르는 일반화된 가치를 지닌 포괄적 개념과 범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국시민이다. 미국인들은 이 포괄적이고 일반화된 개념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자기의 민족적 배경은 희생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각자의 민족적 뿌리를 고집하지 않고 희생하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메리칸드림’이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희생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미국인들에게 팽배하다. 그 명확한 증거가 바로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러니 통합과는 거리가 먼 분열된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 1%(제국)에게만 가능한 아메리칸드림. 나머지는 아메리칸드림이 뭔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놓인 것이 바로 분열의 주된 동력이다. 그러니 그 애지중지 간직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시민임을 내팽개쳐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미국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2007년(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감안한 재산의 변동 추이. 하위 90%는 2007년 보다 더 가난하다. 상승곡선을 탄 것은 상위 10%로 그들의 승승장구는 곧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향후 관전 포인트
여기서 주의할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상식과는 달리 어떤 사람이 처한 위치와 정치적 선호의 대칭이 안 맞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사는 이가 보수, 못 사는 이가 진보, 이런 식이 아니라 거꾸로 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남좌파가 있고 오히려 저소득층에서 보수성향인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의 양상, 반목과 갈등의 고조, 불만과 좌절의 급증은 불평등의 심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모두 상대편 진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그릇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열 뒤에 따를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집단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전쟁이다. 내부 또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룬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극심한 분열의 최후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의 당사자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처절한 피해자가 될 뿐이다. 그럼 일반 대중(국민)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반목하고 증오하며 갈등하는 사이 그 뒤에서 웃을 이들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극심한 불평등을 유발한 자들이며, 이러한 분열(단순한 시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뒤에서 교묘히 기획, 조정, 부추기는 자들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은 겉으론 이런 모든 일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살을 저런 분열을 통해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곤 자신들의 탐욕을 마음껏 충족한다. 나는 그들을 제국이라 부른다. 그들의 철칙이 있다. 이름하여,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그런 제국엔 월가가 우두머리로 군림한다. 그런 월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6월 8일자 사설의 제목은 “적들은 미국을 약하고 분열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작금의 시위는 미국이 지속하는 강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였다.(“Enemies See a Weak and Divided U.S.: But they’re wrong. The protests showed some of America’s enduring strengths.” Wall Street Journal, June 8, 2020). 미국의 시위를 그저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로만 축소 왜곡하며 동시에 장점으로 추겨 세우고, 적에 대한 경고도 날리는 애국으로 살짝 분칠을 한 이 사설. 나는 여기서 제국들이 현재 미국의 분열을 관망하는 태도를 본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유체이탈화법의 태도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범과 그 하수인들이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는 양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있는데서 나는 그들의 간악무도함을 본다. 그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한민국 대전환의 시작을 선언했다. 지구촌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증유의 바이러스 위기를 벗어나면서 경제위기와 기후위기까지 잡아보겠다는 야심찬 ‘한국판 뉴딜’ 추진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5년간 국비만 114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지방비 25조원을 포함하여 어떻게 이 막대한 투자비를 조달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인재 양성계획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이다. 정부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 정당 등 주요이해관계집단의 기대와 요구를 담아냈다. 정부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환경부, 산업부, 과기부, 행안부, 교육부, 복지부, 중기부, 해수부, 산림청, 고용부 등이 참여하여 정책통합을 시도했다. 기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혁신성장 등 3대 축으로 구성된 경제정책 기조아래 ‘사회 안정망 확충’을 바탕에 깔고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림 1> 한국판 뉴딜 3대 정책 및 5년간 투자 총액 160조 원, 예상 일자리 190만개
한국판 뉴딜 정책은 앞으로 5년 동안 국비와 지방비, 민간투자를 포함하여 총사업비 160조원을 투자하여 일자리 190만개를 창출함으로써 3중복합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추격형 국가에서 추월하는 선도형 국가로 대전환하겠다는 담대한 포부와 정치적 의지의 반영이다.
<그림 2> 한국판 뉴딜 비전과 2+1 정책방향 <출처 : 기획재정부> <그림 3> 한국판 뉴딜 4+3+2 사업 분야 및 28대 과제 <출처: 기획재정부>
녹색전환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길 (1)
민간투자를 포함해 58조2천억 원을 투입하는 디지털 뉴딜은 ①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DNA) 생태계 강화, ②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③ 비대면 산업 육성, ④ 사회간접자본(SOC)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사회 안전망 강화는 ① 고용사회 안전망과 ② 사람투자이다.
그린 뉴딜은 ①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 ②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③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하는 것이다. 이 3개 분야에 아래와 같이 8개 세부 사업을 추진한다.
<그림 4> 그린 뉴딜 3대 분야 및 8대 사업 분야 <출처: 기획재정부>
정부의 담대하고 야심찬 계획 발표에 대해 많은 기대와 희망을 품으면서도 몇 가지 넘어서야 할 지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린 뉴딜이 ‘문재인 대통령식의 녹색성장’이라는 비판을 벗어나려면 다음과 같은 5대 쟁점들이 모두 풀려나가야 할 것이다.【1】
첫째, 그린 뉴딜의 정의와 목표가 무엇인가, 무엇으로 볼 것인가? 그린 뉴딜을 단순히 친환경산업에 공공재정을 투입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1930년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을 추진했던 것처럼 그동안 정당한 사회경제적 대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계층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노사관계 개혁과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고,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미국식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실현하는 사회대개혁을 추진했던 것처럼 한국의 그린 뉴딜도 환경을 적극 고려하면서 경제성장도 도모하는 새로운 녹색경제체제로 대전환하는 사회적 합의, 사회적 협약인가 여부이다. 여전히 그린 딜을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되고 있다. 임기 이후까지 5년 동안 막대한 규모의 재정투자를 통해 문제가 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언제까지 얼마나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2050 넷 제로(Net Zero)’를 달성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이 환경단체에 의해 지적되었다. 그 대신 이번 발표에는 “탄소 중립을 지향한다”라고만 되어 있어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았다.【2】
한국은 이명박 정권 시기에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고 녹색성장을 추진하여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그린 뉴딜정책을 이미 시행했다.【3】 당시 정부는 이 녹색뉴딜 사업의 핵심인 국정과제 최우선순위인 일자리 창출 수치를 내놓았고, 그동안 부처간 중복이 심하고, 산출숫자가 ‘주먹구구’라는 비판과 지적을 의식해 비교적 구체적 계산방법과 함께 사업별 고용 창출 인원을 끝자리 수까지 맞춰 내놨었다. 그러나 이미 계획에서부터 건설단순생산직이 95.8%였다.【4】
<그림 5> 이명박 정권의 녹색 뉴딜사업 구성도
한 마디로 이명박 정권의 녹색 뉴딜 사업은 일자리 창출계획이었고 사회간접자본 개발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추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었고, 사회적 동의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일자리 창출효과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다. 2020년 그린 뉴딜은 이것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분명히 정리하고 나가야 한다.
어떤 경우든 녹색 세탁(green washing)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한 투자재원의 확보와 함께 투자 규모는 적정한가 여부이다. 그린뉴딜 종합계획은 “5년 단기투자 계획 제시에 그쳐 기후위기 대응 중장기 비전이 안 보인다, ‘2050년 넷 제로’ 같은 탈탄소사회 청사진을 못 내놨고, 에너지전환 정책 목표도 없고, “혁신적 계획 수립도 의욕적 재정투자도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5】
한국 경제 규모는 유럽(EU)의 10배라고 볼 수 있다. 유럽 역내 국가들은 그린 뉴딜을 위해 7년간 1,0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규모로 볼 때 100조원 정도는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5년간 42조7천억 원을 투자하는 데 그치고 있다.【6】
둘째, 그린 뉴딜의 대상 영역과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린 뉴딜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개념정의나 문제의식과 직결된 이 쟁점은 그린 뉴딜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한 심각성과 세계경제의 파국적 변화 가능성, 감염병의 세계적 만연과 확산위기라는 점에서 에너지 전환을 비롯한 포괄적 전환에 치중해야 한다. 그렇지만 에너지 전환만이 모든 문제 해결수단과 방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슨 분야나 영역을 선택하고 집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환원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책의 우선순위 배정과 비중 부여문제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
<그림 6>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초안
2020년 7월 14일 발표된 한국판 뉴딜정책 내용과 6월 1일 처음 발표된 정책내용의 기조가 사실상 동일, 유사하다. 더 나아가 그린 뉴딜과 관련해 보자면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문재인 정부의 그것 역시 동일, 유사하다(그림 3, 4, 5, 6 참조).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놓고 보자면 그동안 관련부처 정책입안자들은 교체, 이동, 보충되었으나 정책내용과 구조는 이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 유사한 틀 안에서 이것저것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 채워져 온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석탄 화력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부에 달려있다. 석탄 화력발전의 조기 폐쇄와 가동 중단, 대체 에너지 개발, 석탄 화력발전 종사자의 전업 훈련교육과 전업, 탈석탄 발전시대의 지역경제 회복과 일자리 영향 최소화 등 보완대책이 병행 개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다른 나라에서는 지속가능한 사회형성, 지속가능성을 보장·확보할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하며 다양한 범주를 포함하고 있다. 순환경제를 위한 자원순환정책, 농수산식품정책, 전반적 환경질 제고, 생물종 다양성 보전과 생태계 회복탄력성 유지 등을 포함한 포괄적 정책을 개발, 추진, 이행하고 있다.
셋째, 그린 뉴딜은 정의로운 전환인가?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신기술의 개발과 도입, 디지털 전환, 생태적 전환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고용기회가 확대될 수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일자리 축소나 회색 노동자의 소멸로 이어질 기회가 넓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화석연료 연소 동력의 자동차 생산은 수많은 부품업체와 협력업체, 완성차 노동자들의 고용 현장이었으나 전기차, 수소차 제조가 주류가 되면 기존 자동차공업 노동자의 대량실직, 해고는 불가피하다. 이 경우 이들 회색 노동자 노동자에 대한 교육과 재교육 기회 제공, 전직을 통해 노동시장의 동요를 최소화하는 고용의 연착륙 대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포럼은 디지털 그린특구 지정을 제안했다. 예를 들면 화력발전이 밀집한 당진과 보령지역에 그린데이터특수, 영덕 삼척 디지털 클린에너지특구, 자동차공업 밀집지역인 울산, 경남에 디지털모빌리티특구, 김해 그린데이터센터특구, 창원 그린리모델링특구 지정을 말한다.
넷째, 그린 뉴딜 추진을 위한 법률과 제도, 조직을 어떻게 입안, 구성, 운영할 것인가?
한 마디로 그린 뉴딜은 기존 방식과 접근으로 추진해 왔던 개별 사업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 협약’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 이런 담대하고 통합적인 추진내용을 담아내는 법을 마련하여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지속가능발전법, 에너지법을 폐지하여 일부 통합,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린 뉴딜 추진, 이행을 위한 협치·공치(거버넌스) 기구로써 기존의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미세먼지대책특별위원회 역시 폐지, 전면 교체, 통합하여 운영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누가 그린 뉴딜 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하고 주도할 것인가?
말하자면 누구를 위해 누구와 함께 추진하는 그린 딜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는가 여부이다. 디지털 뉴딜이든 그린 뉴딜이든 ‘한국판 뉴딜’은 말 그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전환하는 새로운 합의여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정당 등은 기후위기 극복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국판 뉴딜을 위한 대전환을 재빠르게 논의해 왔다.
2020년 6월 05일 : 228개 전국 모든 기초 지자체, “기후위기 비상선언”
6월 30일 : 국회 한정애 의원 등 48인,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 제출
7월 02일 : 김성환의원 등 109인, 기후위기비상선언 결의안 제출
7월 07일 : 17개 전국 모든 광역 지자체, 탄소중립 선언
7월 08일 : 국회 강은미 의원 등 12인,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후위기대응 및 특별위원회 설치 결의안 제출
7월 14일 : 대통령, 한국판 뉴딜 발표. 2050년 탄소 제로 발표 예정되었으나 없음
<출처: 연합뉴스>
이들 뿐만 아니라 경제계와 노동조합, 시민사회와의 협치·공치와 공동행동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보 논의와 범사회적 수용성이 검토되어야 한다. 최근 수도권 부동산가 파동을 해결하기 위한 주택공급을 위해 박정희 정권 이래 고수해 온 서울지역 그린벨트 해제 논의나 석탄 화력발전 해외 수출 결정과 같이 그린 뉴딜 시책에 정면 배치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회색정책이 반복된다면 누가 녹색정책의 주류화, 산업정책의 녹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될 것인지 매우 의심이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만이 앞장서서 한국 뉴딜을 선도하는게 아니라 장관과 차관이 책임지고 이웃부처와의 정책조정과 협의를 통해 정책통합을 우선 실현하고, 확정된 추진과제는 대통령 임기이내, 국가계획 추진일정에 맞추어 지체나 차질이 없이 이행, 실천되어야 한다. 그런 그린 뉴딜 우선순위 정책 효과가 가시적으로 성과를 거두어 갈 때 시장과 시민사회의 신뢰가 축적되어 협치가 구현됨으로써 회색국가에서 기후불량국가의 오명을 씻어내며 이산화탄소 등 지구온난화기체 배출이 없는 녹색국가로의 대전환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1】윤순진 2020 「그린 뉴딜의 원칙과 방향」. 그린뉴딜 경제위기 기후위기 생태위기 극복을 위한 현장과 정책의 대화. 주최·주관 국회의원 이학영·김성환·안호영·진성준·강은미·윤준병·이해식·한국환경정책연구원·한국환경회의 발표 자료. 2020. 7. 1.
【3】 기획재정부 2009.01.23. 보도자료. 국제기구 UNEP의 한국 녹색뉴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 UN 환경계획(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은 ‘09.1.9일 보도 자료에서 한국과 일본이 녹색뉴딜의 국제적 기조확산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하였음. UNEP Achim Steiner 사무총장의 브리핑 주요 내용 : ㅇ 글로벌 경제위기 대응 및 지구환경 보전을 위해 세계적 차원의 녹색뉴딜(Global Green New Deal) 및 녹색경제 이니셔티브(Green Economy Initiative)가 필요한 시기라고 언급.
ㅇ 청정기술ㆍ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경제침체와 실업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
ㅇ 최근 한국과 일본이 녹색뉴딜 정책을 입안ㆍ발표함으로써 국제적 기조확산을 주도.
* UNEP는 ‘10년까지 녹색산업 시장, 공공지출 및 정책에 대한 재조명 작업을 통해 각국의 경제위기 극복 및 녹색경제성장 전략 수립지원 예정.
기관장의 임기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으나 사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기관장의 임기가 장기적으로 보장되어 있을 때 해당 조직은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발전될 수 있으며 조직의 효능성도 증대된다. 임기가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고 짧을 경우, 위로는 기관장이 임명자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고, 아래로는 사실상 관료집단의 포위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관장이 자기 사람으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고작 한두 명인 경우가 태반이다. 국회사무처만 해도 사무총장이 ‘규정상’ 자기 사람으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달랑 비서실장 한 명뿐이다. 정부의 장관도 대동소이하고, 지자체 단체장 역시 오십보백보다. 창해일속(滄海一粟), 그야말로 넓은 바다에 한 톨 좁쌀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법들도 사실 행정부의 담당 계장, 과장, 국장, 차관보 등 몇 사람이 만든다. 그것이 사실상 끝이다. 대체로 장차관은 너무 바빠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시간도 없다.
그러니 아무리 개혁을 해보려고 한들 이미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이 소속하는 상임위도 이제 조금 알만하다 싶으면 바뀐다. 2년마다 소속 상임위가 바뀌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40조는 국회 상임위원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의원임기와 같았던 상임위원 임기는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임위 중심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박찬표, “한미일 3국 의회의 전문성 축적구조에 대한 비교연구”, 「한국정치학회보」제30권 제4호, 1997.).
2년 임기제, 나눠먹기의 망국병
그런가하면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이 역시 4년 임기를 나눠 두 사람이 ‘나눠먹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2년 임기란 처음 6개월만 이른바 ‘영(令)’이 서는 것이다. 1년만 지나면 곧바로 레임덕이 시작된다. 이렇게 하여 그야말로 되는 일이 없다. 그냥 수박 겉핥기, 하는 척 시늉뿐이다. 장관 임기는 더 심하다. 2년은 고사하고 1년 남짓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과정에서 결국 관료들이 만사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기관장은 조직을 전혀 장악할 수 없게 되고, 장기적으로 조직 발전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미국 의회도서관장의 평균 임기는 20년에 가깝다. 심지어 제8대 관장이었던 허버트 푸트남(Herbert Putnam)은 관장으로 무려 40년을 재직하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틀림없이 독재라고 비난하면서 난리법석이 날 일이지만,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렇게 임기가 긴 관장들의 장기적 철학과 계획 아래 체계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이나 독일의 감사원장 임기는 각각 15년, 12년이고, 프랑스는 아예 종신직이다. 또 미국 대법관 임기 역시 종신직이다. 미국에서 헌법 해석에 있어 권위 있는 전거로 활용되고 있는 『Federalist Paper』는 대법관 종신제의 장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정의를 실현하는 법원은 헌법과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타협하지 않고 그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재직하는 법관에게는 이와 같은 성격을 기대하기 어렵다. 법관의 일시적인 임명은 법관의 독립이라는 중요한 요소에 치명적인 사항이다. 만약 법관임명권이 행정부나 입법부에 위임될 경우에는 임명권을 갖고 있는 부에 부적절한 순종의 위험이 있으며, 두 부 모두에게 임명권이 주어진다면 한 부가 불만에 빠질 위험이 있고, 만약 시민이나 시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에게 직접 임명권을 부여한다면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려는 경향이 만연할 것이다”(Federalist Paper, 495).
한편 독일의 연방장관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부처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정책을 결정한다. 연방 수상을 비롯하여 누구도 연방장관에게 명령하거나 징계할 권한이 없다. 독일에서 정책집행은 대부분의 경우 연방수상이 아닌 각 부처 장관의 책임 하에서 추진된다. 연방장관은 의회, 즉 국민에게만 정치적 책임을 지며, 한번 임명되면 특별한 정치적 과오가 있지 않는 한, 대부분 연방수상과 임기를 같이 한다. 수많은 장관의 이름이 끝없이 명멸하는 우리와 전혀 상이한 풍경이다.
우리나라에서 기관장 임기가 이렇게 짧은 것은 바로 “관료가 주인 되는 나라”의 주요한 토대로 작동되고 있다. 동양의 역사에서 제왕(帝王)이 유능한 신하의 권한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운용했던 중요한 수단은 바로 임기를 짧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황제와 아전이 천하를 ‘공치(共治)’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었는데, 현재도 대통령과 관료들의 ‘공치’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은 단임하고 계속 바뀌니 결국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부패 방지를 명분으로 하여 2년 주기로 순환 근무한다. 이로부터 전문성과 책임성은 사라진다. 그러니 위든, 아래든 도무지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진다. 이렇게 하여 책임 정치는 완전히 실종되었고, 책임 행정 역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결국 상층의 ‘나눠먹기’와 공무원의 ‘순환근무’에 의한 이러한 ‘2년 주기론’은 이제 가히 망국병이라 할 수 있다.
적임자를 기용하고 그 임기를 최대한 길게 해야 한다.
일찍이 공자(孔子)에게 노나라 애공(哀公)이 “어떻게 하면 백성이 따르겠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좋은 사람을 기용하여 나쁜 사람을 다스리면 곧 백성들이 따를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사람을 기용하여 좋은 사람을 다스리면 곧 백성들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나쁜 사람을 기용하여 좋은 사람을 억압하고 쫓아낸다.
아전 독재와 문서 정치
중국의 전통 정치에는 관(官) -관리와 리(吏) -아전의 구분이 있었다.
원래 중국의 관리 제도에는 이 양자가 구분되지 않았으나 한족을 차별한 몽골의 원나라 시대에 정부 고위직은 모두 몽골인이 담당할 때 중국인을 서리(胥吏)로 뽑아 보좌하도록 한 뒤로 명나라 시대부터 관리와 아전의 구분은 보편화되었다.
잘 알다시피 아전 혹은 서리는 관리로 승진할 수 없었다. 이들은 정부 기구의 가장 하위의 계급으로서 사실 관부(官府)의 정식 관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동시에 반드시 관부의 허가를 얻어야만 했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낮아 일반적으로 멸시를 받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아전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이들은 인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었고, 세금을 더 걷을 수도 덜 걷을 수도 있었으며, 어떤 공사든지 중단시킬 수도 있었고 아니면 더 크게 짓도록 할 수도 있었다. 반면 과거를 급제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고위관리들은 오직 상층 관리들을 다스리기 위한 직위였고, 모든 사무는 이들 아전에게 넘겼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정부에서 특히 극심했다. 아전들은 지방의 실제 정황에 매우 정통했고 관아의 하부 행정 역시 오직 아전들만이 이해하고 처리해낼 수 있었으므로 지방으로 파견되는 관리들은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 정부에서 파견된 ‘독서인’들은 도무지 이들과 비교될 수 없었다. 시(詩)나 부(賦)와 같은 ‘탁상공론’만으로 시험을 보는 과거제도를 합격한 ‘독서인’들은 대부분 실무적인 행정능력을 갖출 수 없었고, 그러므로 현지 아전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관약이강(官弱吏强)’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각 아문의 각종 조문들도 모두 아전들이 제정하였다. 조례의 제정은 대부분 이들의 의지가 조정(朝廷)의 의지로 전화되었고, 지방 관리의 임명은 대개 이부(吏部) 서리가 결정하였다. 특히 이들은 오랜 기간 특정한 한 곳의 지방에 근무하기 때문에 지방 토착세력과 반근착절, 결탁하여 당우(黨羽)를 조장했다. 오늘날까지 이러한 현상은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지만, 사실상 실제적인 일체의 사무에 있어 이들 아전들이 전문가였고, 따라서 그 처리는 전적으로 이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명말청초의 대학자인 황종희(黃宗羲)는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천하에 아전(吏)의 법만 있고 조정의 법은 없다”고 풍자하였다. 그리하여 사실상 ‘아전 독재’였다.
그러나 승진도 할 수 없는 이들 하급관리들은 사회적으로 온갖 천대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스스로도 등급이 낮고 천하다고 자인하면서 체면을 차리지 않고 갖은 부패와 악폐를 저질렀다.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 이래 황권(皇權)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정책은 우선 중앙에서 각종 방법으로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다음으로 지방에서는 각종 방식으로 지방장관을 권한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지방장관의 임기를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지방 정무에 숙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전들의 경우, 본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또 독서인(讀書人)들처럼 대의명분이나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영원히 황제와 어깨를 겨누면서 세력화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황제는 기꺼이 이들 아전들과 천하를 함께 통치하였다.
흔히 과거 중국에서는 법이 없고 중국인들은 법을 몰랐다고 쉽게 평가하지만, 사실 중국 정치의 전통적인 잘못은 이렇듯 너무 법을 잘 알아서 발생하였고, 무슨 일이든 법조문의 ‘규정’만에 따라 처리하고 조문조문 글자마다 아래위로 따졌기 때문에 대체로 일의 처리는 늦었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가인 첸무(錢穆: 1895~1990)는 이러한 아전 정치의 측면은 일종의 ‘문서 정치’라고 지칭하면서,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정치가 문(文)을 숭상한 폐단이라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나라 시대 정치가 잘 된 것은 문이 적었던 데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현재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국회’의 구상 중에는 “법안 체계·자구 심사는 국회사무처 또는 입법조사처 내 전문검토기구가 맡는다.”는 내용이 있다.
이제까지 우리 국회는 이런 식으로 의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판단 하에, 혹은 “높으신 내가 그런 귀찮은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권위주의와 ‘귀차니즘’으로 많은 일을 공무원, 관료에게 ‘떠맡기는’ 행태가 관행화되어왔다. ‘국회 공무원에 의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바로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되면, 결국 그 사람에게 거꾸로 ‘지배당하는’법이다. 만약 여당의 그 구상대로 진행하게 되면 반드시 법안 체계·자구 심사라는 업무를 내세운 또 하나의 무소불위의 ‘강력한 관료집단’이 형성되고 군림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관료가 주인 되는 관료주의의 사회, “일하기 싫어하는” 정치권은 그것을 강화시킨다. 우리 는 여전히 “아전의 나라”에 살고 있는가!
미국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다음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될 거 같으냐고 묻는 이들이 주위에 많다. 현직에 있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내보내서 그런지 트럼프 보다는 바이든이 더 낫지 않겠느냐며 바이든이 될 가능성을 내게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요새 부쩍 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 마디로 말하겠다. 나는 누가 되든 아무 관심이 없다. 그 이유는 누가 되든 현재로서는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뭘까?
조 바이든(Joe Biden) 이야기로 시작을 해 보자. 바이든은 스스로 자신을 “중산층 조”(Middle class Joe)라고 부를 정도로 재산이 별로 없었다. 상원의원일 당시 의원들 중 재산신고를 하면 늘 꼴찌 언저리였다.(“Joe Biden Is Demanding Financial Transparency While Concealing His Own Wealth,” The Intercept, Sept. 12, 2019; “Once the poorest senator, ‘Middle Class Joe’ Biden has reaped millions in income since leaving the vice presidency,” Washington Post, June, 25, 2019). 그랬던 그가 2017년 1월 부통령자리에서 물러나고 난 뒤 2년 만에 상류층으로 올라설 만큼 엄청나게 재산이 늘었다. 2년 동안 1,560만 달러(약 188억 원)를 벌어들였다. 2016년 재산신고 때는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아서 그야말로 깡통이었는데 퇴임 후 2년 뒤에 빚은 온데간데없고 재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모두 고액강연 및 저서 출간으로 인한 인세 수입이었다. 그런데 바이든은 저런 고액의 수입을 올렸으면서도 그가 속한 델라웨어 주엔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Joe Biden Is Demanding Financial Transparency While Concealing His Own Wealth,” The Intercept, Sept. 12, 2019; “Joe Biden Earned $15.6 Million in Two Years After Leaving Office,” The Wall Street Journal, July 10, 2019; “Joe Biden earned $15.6 million in the two years after leaving the vice presidency,” Washington Post, July 10, 2019). 물론 합법적으로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파나마는 잊어라. 델라웨어가 있으니!
파나마는 케이만군도와 함께 조세천국으로 유명하다. 바이든의 본거지인 미국의 델라웨어 주도 그 반열에 들어선 지 오래됐다. 조세천국이 된 델라웨어 주의 환경을 십분 활용해 바이든이 세금을 안 내고 부를 쌓았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바이든의 구체적인 절세방식은 조금 복잡하다. 그러나 단순화시켜 이야기하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바이든이 실제적으로 면세를 받기 위해 작동시킨 것이 바로 쉘 컴퍼니(shell company), 즉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면 페이퍼 컴퍼니 설립이다. 그것을 통해 돈이 들어갔다 나오면 세금을 안 내도 된다. 페이퍼 컴퍼니는 껍데기만 회사 형식을 띄었을 뿐 실제로 회사가 아닌 유령회사다. 그런 유령회사를 바이든은 두 개를 만들었다. 이름은 셀틱 카프리(CelticCapri)와 지아코파(Giacoppa)로 일명 “S-법인”으로 불린다.(“Joe Biden Is Demanding Financial Transparency While Concealing His Own Wealth,” The Intercept, Sept. 12, 2019).
바이든과 부인은 이 페이퍼 컴퍼니를 뚝딱 만들어서 강연료와 인세를 그곳에 집어넣고, 거기서 배당(급료)을 받는 방식으로 사회보장세(Social Security Tax)와 메디케어세(Medicare Tax)를 한 푼도 안냈다(둘 다 합쳐 15.3%의 세금). 그런 유령회사를 세워서 거기에 돈을 넣었다가 돈을 빼(받)는 방식을 취하면 세금을 안 내는 것이 허용이 되는 게 델라웨어 주법이니 어찌하겠는가? 말하자면 그런 걸 모르고 그렇게 못하는 놈만 등신인 게다. 덧붙여 그런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면 수입원도 추적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페이퍼 컴퍼니의 실소유주 이름을 등록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회사(실제로는 돈)의 실소유주, 업계 용어로는 수익소유주(beneficial ownership)를 밝히게 않게 되어있다.
자신의 부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은밀히 숨기면서 금융 투명성을 역설하는 조 바이든 <출처: 인터셉>
델라웨어 주는 이런 소유주가 익명인 유령회사를 1시간 안에 뚝딱 만들 수 있으며, 아무런 증명서류를 낼 필요가 없다. 운전면허증과 도서관증 만드는 것보다 더 쉽다. 이것을 허가해주는 법원은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 그래서 ‘파나마를 잊어라!’ 하며 새로운 조세회피천국(tax haven)으로 델라웨어 주가 등극한 것이다.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 Network)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자산 은닉을 원하며 동시에 세금을 피하고 싶은 이들의 최고 피난처 순위는 스위스, 홍콩에 이어 미국이 3위를 차지했다.(“Forget Panama: it’s easier to hide your money in the US than almost anywhere,” The Guardian, April 6, 2016).
델라웨어 구멍
델라웨어 주 인구는 2019년 현재 약 97만 명이다. 그러나 델라웨어 주에는 인구 보다 더 많은 회사가 들어서 있다. 2018년 말 현재 140만 회사가 등기를 해 놓고 있다. 해당연도에만 216,005 회사가 등기를 새로 했다. 전년대비 8.8%가 증가했다. 미국 주요기업 500개 중 67.2%가 델라웨어 주에 등기를 했다.(DelawareInc.com, “Delaware Adds Over 200,000 New Companies in 2018,” Aug. 5, 2019). 미국의 공개 기업의 50%이상이 델라웨어가 법적 고향이다.(“Forget Panama: it’s easier to hide your money in the US than almost anywhere,” The Guardian, April 6, 2016). 이런 수치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애플, 월마트 등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앞 다투어 델라웨어에 회사를 설립하려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델라웨어 주에 붙은 별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별명은 다름 아닌 “델라웨어 구멍”(Delaware Loophole)이다. 룹홀(loophole)은 구멍, 허점, 맹점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구멍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돈 많은 이들과 뒤가 구린 이들이 찾을 수밖에 없는 구멍을 말한다. 떳떳한 이들은 눈도 돌리지 않을 곳이란 이야기이다. 그럼 델라웨어 구멍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첫 번째는 조세회피다. 이것은 앞서 바이든이 취한 절(탈)세방식에서 그것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봤다. 명목상 델라웨어 주 법인세율은 8.7%이다.(https://revenue.delaware.gov/business-tax-forms/filing-corporate-income-tax/). 그러나 회사가 주내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또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 특허권, 상표권, 상호권, 실용디자인권 같은 산업재산권, 광업권, 저작권 등의 자산)에도 과세를 하지 않는다.(“Loose Tax Laws Aren’t Delaware’s Fault,” The Atlantic, Oct. 5, 2016). 그래서 구멍이라는 것이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서 개인과 회사들이 절(탈)세를 위해 너도나도 델라웨어에 회사(본사 혹은 자회사)를 설립하고자 쇄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델라웨어 주에서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는 회사들은 다른 주에서도 세금을 덜 낸다. 델라웨어 주에 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이중으로 절세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떤 회사가 델라웨어에 자회사를 차린다. 그리고 거기에 무형자산을 이전한다. 예를 들면 상표 같은 것이다. 이 회사는 델라웨어 주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해당상표를 사용하기 위해 델라웨어의 자회사에 로열티 비용을 지불한다. 무형자산은 델라웨어 주에서는 과세대상이 아니니 세금 한 푼 안낸다. 그리고 다른 지역(주)의 회사에서는 로열티 비용을 공제 받고 절세를 하는 식이다. 이래서 듀크 대학(Duke Univ.) 경영대학의 스코트 디렝(Scott Dyreng)교수는 “델라웨어는 역내 세금 피난처”라고 단언한다.
돈세탁
두 번째로 델라웨어 구멍에선 온갖 부정한 돈(illicit money)들의 세탁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전 세계의 검은 돈이 모인다. 전 세계의 더러운 돈들의 저수지인 셈이다. 그리곤 세탁이 되어서 나간다. 미재무부에 따르면 매해 미국서 약 3천억 달러(약 361조 원)가 세탁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어림짐작일 뿐 실제는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How money laundering is poisoning American democracy,” Financial Times, Nov. 28, 2019). 돈세탁은 대개가 이런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돈들이 실제로 누구의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런 부정한 돈들이 속속 저수지로 흘러들 수밖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런데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단지 델라웨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델라웨어 주뿐만 아니라 미국 법 자체가 수익소유자의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델라웨어 주는 거기에 매우 충실할 뿐만 아니라 페이퍼 컴퍼니 설립을 아무런 조건 없이 수수료 조금 받고 뚝딱 해주고 거기다 면세까지 해주니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돈세탁용 불법 자금들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은행의 비밀유지는 곁다리로 제공된다.
그런데 웃기는 게 뭔지 아는가? 미국 은행은 모든 의심스런 돈의 흐름이 포착될 경우 즉각 사법당국에 보고하게 되어 있다. 단, 예외가 있다. 로펌(법률회사), 부동산회사, 미술상, 주식회사, 비은행금융기관의 돈의 흐름은 보고를 안 한다. 그러니 더러운 돈의 천국이 된 것이다. 이런 쪽에 관심 있는 자들이라면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은밀하게 돈세탁을 할 수 있으며 게다가 면세까지 받는 곳을 어느 누가 마다할 것인가. 일반 국민들의 푼 돈은 단 1푼이라도 그 흐름을 소상히 꿰뚫고 추적하고 있으면서, 돈 많은 부자들의 돈의 흐름에는 눈도 꿈쩍 안 하는 저 치밀한 부당함!
래니 브로우어(Lanny A. Breuer) 법무부 범죄담당 검사는 “페이퍼 컴퍼니는 불법자금 세탁과 범죄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이것은 범죄 정의에 있어 심히 중대한 문제이다. 어떻게 범죄자가 백주 대낮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은행 시스템을 쉽사리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중지시켜야만 한다.”라고 <뉴욕타임스>에 코멘트를 했다.(“How Delaware Thrives as a Corporate Tax Haven,” New York Times, June 30, 2012).
이렇게 델라웨어엔 불법 자금들이 흘러들어 돈 세탁이 되어 새로운 투자처나 뇌물, 정치 자금, 로비 자금, 그리고 해외 등으로 다시 흘러 나가거나 잠시 멈추어 있다. 그러니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독재자들과 부정축재자들의 돈이 이리로 흘러드는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천지에 이곳 보다 더 안전한 곳이 있을까. 가히 그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을 것이다.(“Forget Panama: it’s easier to hide your money in the US than almost anywhere,” The Guardian, April 6, 2016).
물론 범법자들 외에 쓰레기 정치인들도(물론 그들도 합법의 탈을 쓴 범법자들이긴 마찬가지다) ‘델라웨어 구멍’으로 엄청난 부당 이익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슈퍼팩(한도가 없는 정치기부금)의 돈도 유령회사를 내세워 정치인에게 주면 누가 기부한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마구 악용되고 있다. 그것은 명색만 정치기부금일 뿐, 눈먼 돈, 즉 뇌물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페이퍼 컴퍼니의 소유주가 드러나지 않기에 들통이 나기도 어렵다.(“Why are there so many anonymous companies in Delaware?,” SunLight Foundation, April 6, 2016). 또 그것을 받는 정치인은 또 나름의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자기 재산을 불리고(바이든처럼 세금 한 푼 안 내고) 자신의 부정 축재한 재산을 노출시키지 않게 된다. 델라웨어에 소유주가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유령회사가 그렇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뒤가 구린 자들에겐(정치인 포함)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바로 ‘델라웨어 구멍’이다. 세상에 이런 것을 미국 동부에 합법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문이 막힐 뿐이다. 이러니 온라인 잡지 <글로벌리스트>는 바이든의 고향 델라웨어가 여태껏 범법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 비난을 받았던 스위스 은행조차도 아주 깨끗해 보일 정도로 온갖 범죄자들과 독재자들을 위한 최적의 온상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Biden’s Delaware: Making Swiss Banking Look Hyper-Clean,” The Globalist, Sep. 7, 2010).
왜 물먹은 다른 주는 가만히 있는가?
이런 식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불법자금을 끌어들여서 얻은 델라웨어의 수익은 2011년 현재 8억6천만 달러(약 1조373억 원)로 주 전체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다. 페이퍼 컴퍼니를 다른 주보다 얼렁뚱땅 쉽게 설립하게 해주고 각종 수수료와 약간의 세금으로 얻는 수익이다. ‘델라웨어 구멍’으로 기업이 본사를 옮기거나 자회사를 차려서 절세를 하는 통에 다른 주가 피를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데, 그 피해액은 2012년 현재 기준으로 과거 10년 동안 95억 달러(약 11조5천억 원)에 달했다. ‘델라웨어 구멍’ 때문에 다른 주에서 그 만큼 걷을 수 있는 세수가 증발한 것이다.(“How Delaware Thrives as a Corporate Tax Haven,” New York Times, June 30, 2012). 그 뒤 나온 자료를 백방으로 찾아본 바, 2019년 6월말 현재 ‘델라웨어 구멍’으로 올린 세수는 13억 달러(약 1조5,672억 원)로 껑충 뛰었다. 델라웨어의 부당한 장사수완이 가히 물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DelawareInc.com, “Delaware Adds Over 200,000 New Companies in 2018,” Aug. 5, 2019).
기업들이 델라웨어로 갈 경우 세금 부담이 15~24%가 덜어지는 데 가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는가?(Scott Dyreng, Bradley Lindsey, and Jacob Thornock, “Exploring The Role Delaware Plays As a Domestic Tax Haven,”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Vol. 108, Issue 3, (2013), pp.751-772; “Loose Tax Laws Aren’t Delaware’s Fault,” The Atlantic, Oct. 5, 2016). 이렇게 되니 다른 주의 피해가 막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주의 경우, 1972년 주 세수의 28%를 법인세로 충당했으나 2016년 현재 18%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14.9%로 더 하강할 것으로 추정된다.(Pennsylvania Budget and Policy Center, “Understanding the Numbers in a Budget Crisis,” Jan. 28, 2016). 말인즉슨, 원래 각 주에서 마땅히 걷어드릴 세수가 델라웨어 때문에 새버린 것이다. 따라서 각 주는 그만큼 재정악화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델라웨어 때문에 물을 먹고 있는 다른 주들은 이런 부조리한 상황의 시정을 요구 하지 않고 국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가? 그 첫 번째 답은, 자칫 저항의 액션(법인세 상승을 포함해서)을 취하다가 자기 주에 있는 기업마저 다 빠져나갈까봐 걱정 돼서다. 그러면 그나마 있는 세수입원 조차 잃게 되고,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일자리 상실이 뻔해서다. 두 번째는, 씽크탱크 <예산 및 정책 우선순위 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의 마제로프(Michael Mazerov) 선임연구원이 지적하듯이, 해당 주의 정치인들이 원래부터 죄다 기업친화적(business-friendly)이어서 그렇다. 그러니 기업들이 ‘델라웨어 구멍’은 구멍대로 이용하고 다른 지역에선 세금감면 받고 이중으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른바 다국적 기업의 무지막지한 로비다. 자신들의 탐욕을 채울 수 있는 제도 시행을 로비를 통해서 이루었는데 그것의 시정을 가만히 보고 있을 기업들이 아니다. 이들은 ‘델라웨어 구멍’을 철폐하라는 요구를 철저히 압살한다. 그러니 이런 기업들과 돈세탁을 원하는 무도한 세력들은 현상유지를 절대적으로 원하면서 동시에 이를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해 지금도 열일 중이다.(“Loose Tax Laws Aren’t Delaware’s Fault,” The Atlantic, Oct. 5, 2016). 사정이 이러하니 델라웨어 때문에 피를 보는 다른 주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면 정치인들의 농간에 그리 되든지….
조세천국이 불러온 불평등의 심화
1980년대 후반 이후 미국 연방정부는 기업의 법인세 명목 세율인 35%를 변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들어 21%로 내려갔다. 기업친화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기업들이 낸다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것도 안 낸다는 말이다. 위에서 말한 조세회피처의 회사 세우는 등의 꼼수로 실제로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그 반으로 떨어진다. 기업이 납부해야할 세금과 실제 징수액 간의 차이를 ‘택스갭’(tax gap)이라 한다. <공정 세 마크>(Fair Tax Mark)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9년 10년 동안 세계 굴지의 IT기업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6개 사의 택스갭은 총 1천2억 달러(약 120조8천억 원)다. 그 중 최악은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경우 실질 세율은 12.7% 밖에 안 된다.(“Silicon Valley giants accused of avoiding over $100 billion in taxes over the last decade,” CNBC, Dec. 3, 2019).
이렇게 대기업이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불평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선, 기업이 내지 않는 세금을 누군가는 벌충해 줘야 한다. 그 당사자는 소위 유리지갑으로 알려진 중산층들이다. 이들이 소득세, 판매세, 재산세 등의 명목으로 더 내게 돼 있다. 중산층만의 증세는 불평등의 심화와 직결된다. 만일 더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주재정이 악화되어서 공공영역, 이를테면 공립학교의 교육 등이 열악해 질 수밖에 없다. 공립학교에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의 자녀가 다닌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도 불평등의 심화와 맥이 닿아 있다.
둘째로 법인세는 자본에 과세하는 것이다.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주크먼(Gabriel Zucman)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자본 과세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재산세 및 자본 이득에 대한 개인 과세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를 회피하게 되면 결국 자본을 가진 소유주들만 좋은 셈이 된다. 자본과세의 감소는 자본 소유자의 수익률 증대를 의미하고, 그것은 곧 부의 불평등의 심화와 궤를 같이 한다. 그래서 주크먼은 “불평등이 우리 시대 가장 큰 문제인 상황에서, 왜 우리는 그렇게 탐욕스럽고 공정치 못한 조세천국을 용인하는가?”라며 울분을 토한다.(Gabriel Zucman, “Inequality is the great concern of our age. So why do we tolerate rapacious, unjust tax havens?” The Guardian, Oct. 2015).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가브리엘 주크먼이 <가디언>지에 쓴 조세천국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칼럼
델라웨어 주, 윌밍턴 시, 북 오렌지가 1209번지
1209, North Orange Street, Wilmington, Delaware. 이 주소엔 사진에 보듯 조그만 2층짜리 건물이 있다. 놀라지 마시라. 이 주소에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다 소재해 있으니까. 아메리칸항공, 애플, 뱅크 오브 아메리카, 버크셔해서웨이, 카길, 코카콜라, 포드, 제너럴 일레트릭, 구글, JP모건 체이스, 월마트, 이베이, 버라이존 등 무려 30만 개 회사가 같은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대행사 CT코퍼레이션(CT Corporation)을 통해서다. 2012년 <뉴욕타임스>에는 그 주소에 등기를 한 회사가 28만5천 개였으나(“How Delaware Thrives as a Corporate Tax Haven,” New York Times, June 30, 2012), 2018년 현재 30만 개로 늘었다.(“This tiny building in Wilmington, Delaware is home to 300,000 businesses,” Business Insider, Dec. 28, 2018).
델라웨어 주, 윌밍턴 시, 북 오렌지가 1209번지, 이 건물에 애플, 구글 등 미국의 30만개의 회사가 등기를 해 두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도 이 주소를 공유하고 있다. 조 바이든의 주소는 이 건물 바로 옆 1201번지이다. <출처: 뉴욕타임스>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다. 그 주소엔 서류상 같이 사는 이들이 더 있다. 누군지 아는가? 힐러리 클린턴(물론 남편인 전 대통령 빌 클린턴 포함)과 도널드 트럼프이다. 2016년 대선에서 속된 말로 머리 터지도록 싸우던 그들이 동거인이었다니. 기가 막히지 않는가?(물론 나는 당시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힐러리는 국무장관직을 그만 둔 뒤 8일 만에 저 주소에 등기한 페이퍼 컴퍼니 ZFS홀딩스를 통해 2014년 한 해에만 1,600만 달러(약 193억 원)의 강연료와 인세 등을 처리해 세금 한 푼 안 내고 부자대열에 합류한다. 물론 남편 빌 클린턴의 페이퍼컴퍼니 WJC도 이미 2008년 같은 주소에 등기를 했다. 이런 걸 보고 부창부수라 하던가?
백인의 희망이요 자랑인 트럼프는 어떤가? 자신의 회사 515 개 가운데 378 개가 페이퍼 컴퍼니로 바로 저 주소지에 등기가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트럼프국제경영회사(Trump Interantional Management Corp.)와 허드슨 워터프론트(Hudson Waterfront Associates) 같은 회사가 힐러리와 같은 주소지를 공유한다. 2016년 델라웨어 주 선거 유세장에서 페이퍼 컴퍼니 이야기 나온 끝에 트럼프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나는 378개 회사를 델라웨어에 법인 등기했다. 그 말은 내가 당신들 주에 세금을 엄청 많이 낸다는 뜻이다. 내가 뭘 잘 못했나? 난 거리낄 게 하나도 없다.”(“Trump and Clinton share Delaware tax ‘loophole’ address with 285,000 firms,” The Guardian, April 25, 2016). 참으로 뻔뻔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한 이들이 미국엔 정말로 많다는 것이다.
노 호프(no hope)! 미국 정치
그럼 바이든의 페이퍼 컴퍼니는 어디 있을까? 트럼프와 힐러리와 같은 주소는 아니지만 같은 블록 내에 있는 바로 옆 건물이다. 주소는 번지수만 다른 1201번지.(“5 Questions The Media Won’t Ask Biden In The Debate,” The American Conservative, Sept. 12, 1209). 힐러리와 트럼프가 서로 죽일 것처럼 악다구니를 썼지만 자신들이 주소를 같이 공유한다는 것만큼은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도 바이든과 트럼프는 자신들의 치명적 치부를 결코 서로 들추어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바이든이 델라웨어에 세계 어느 지역의 조세천국 보다 더 좋은(?) 파라다이스를 만들지 않았다면 트럼프는 절(탈)세도 할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트럼프의 재산도 많이 불리지를 못했을 테니까. 예를 들어 플로리다의 트럼프 타워 분양자 80%가 델라웨어에 둥지를 튼, 익명의 소유주가 소유한 페이퍼 컴퍼니이기 때문이다.(“How money laundering is poisoning American democracy,” Financial Times, Nov. 28, 2019). 이러니 나한테 바이든과 트럼프 둘 중에 누가 될지 묻지 말라는 것이다. 초록이 동색. 이렇게 썩은 이들에게 생명의 색 초록을 비유하는 게 영 못마땅하지만 말이다.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델라웨어의 같은 주소를 공유한고 폭로한 가디언 기사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들이 저렇게 썩을 대로 썩어 빠졌는데 무엇을 더 기대한단 말인가. 민주당과 공화당, 진보 대 보수? 웃기지 마시라. 누가 되든 다 똑 같다.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들의 안위와 배만 불릴 궁리뿐인데. 그들이 하는 것은 오직 쇼, 쇼, 쇼! 바이든과 같은 민주당인 힐러리가 저랬다면, 오바마는 어땠는가? 파나마와 기타 조세천국 지역에 대해 맹공을 펼치면서 바이든과 함께 델라웨어를 합법적인 조세천국으로 만들어 전 세계 검은 돈들이 델라웨어로 흘러들게 하는데 일조한 게 바로 오바마다. 겉과 속이 다른 전형적인 제국(극소수 부자들)의 앞잡이! 그를 민주주의, 그것도 흑인을 대변하는 민주주의의 사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Obama faces criticism as US state tops secrecy table,” The Guardian, Nov. 2009; “US overtakes Caymans and Singapore as haven for assets of super-rich,” The Guardian, April 6, 2016).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조차도 이것에 대해 이전엔 비판하는 듯 했으나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와선 끽소리도 하지 않았다. 계속 밀어붙였다가는 정치가들과 기업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테니 꼼수를 쓴 것일 게다.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 갖고 있던 내가 이번에 그녀에게서 돌아선 이유다. 진정 양심이 있는 자라면, 진정 미국을 바로 세우고 싶은 자라면, 더러운 돈에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있는 이런 미국의 조세천국 시스템 자체를 혁파할 것을 주장하고 실현해야하는데 그런 이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이 허망함.
결국 이렇게 부패한 정치권에 의해 피를 보는 것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게다가 전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는 부패한 나라로 낙인찍히는 오명까지 덤터기를 쓰는 것은 덤. 그런데 미국은 우스꽝스럽게도 전 세계의 독재자를 꾸짖고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행세를 한다. 정녕 그러고 싶거든 델라웨어를 비롯한 미국 내의 조세천국, 철통보안의 비밀유지(“Obama faces criticism as US state tops secrecy table,” The Guardian, Nov. 2009; “Delaware – a black hole in the heart of America,” The Guardian, Nov. 1, 2009)로 그들에게 각광을 받는 은행 방침부터 없애라. 그것을 통해 독재자들의 실명과 정체를 밝히고, 검은 돈의 흐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게 그들을 향해 엄포를 놓는 것 보다 더 큰 효력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사설처럼 “신형 항공모함 5척을 갖고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 보다 그게 더 약발이 먹힐 테니” 미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면 돈세탁의 천국, 조세회피의 천국인 델라웨어 구멍부터 파헤쳐 그 구멍을 메우라.(“How money laundering is poisoning American democracy,” Financial Times, Nov. 28, 2019). 그러나 미국의 정치인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자신들의 뱃속을 채울 수 없기에 국민이야 죽어나가든 말든 신경 안 쓸 것이 뻔하다. 그래야 자신들에게 온갖 뇌물과 정치기부를 해주는 제국들의 반열에 자신들도 들어설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나에게 다시는 묻지 마시길.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가 될 것 같으냐고. 나의 대답은 시종일관 같다. ‘어느 놈이 되던 똑 같다. 그래서 난 신경 안 쓴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는 나도 정말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어떤 놈들이 델라웨어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는지 말이다. 단 한 가지 분명히 짚이는 것은 추정컨대 한국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압축적’이라는 말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1930년대 독일 사회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비동시성의 동시성’―비동시적인 현상들의 동시적 공존을 말한다―을 짧게 줄인 관형어로서, 한국 사회학에서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당시에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내려앉는 등 도시형 대형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그것들이 개발국가에 의해 권위적으로 추진된 ‘선진국 따라잡기’의 결과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블로흐가 말한 ‘비동시성의 동시성’ 역시 계몽군주에 의해 추진된 후발 산업화의 사회적 결과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었다.
선진 산업사회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자생적으로 진행된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자유주의 속에서 계급 대립이 발생했으며, 사회문화 역시 부르주아적인 방식으로 근대화 또는 합리화했다. 반면에 독일에서는 구시대의 지배적 신분 집단에 의해 고학력 엘리트―소위 ‘교양시민’―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의도적으로 추진되면서, 신분제적 질서 속에 (교양)시민적 질서가 포섭되는 특이한 근대화의 역사가 진행된 것이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명명된 이러한 사회 특성은 결국 나치의 지배라는 근대성의 파국으로 귀결되었다.
‘압축적’이라는 표현에는 이처럼 ‘파국을 부를 수 있을 왜곡’에 대한 불안의 정조 역시 함축되어 있다. 1990년대 한국에서 ‘왜곡된 합리성’은 연고주의와 부정부패로 대표되는 ‘불완전한 사회적 합리화’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후발 산업국인 독일과 후-후발 산업국인 한국에서 나타난 ‘압축적’ 근대화의 공통점은 신분제로부터의 해방―자유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2차 대전 패전이라는 파국을 통해서 연합국들로부터 자유주의 질서를 이식받아 서구화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연합국의 개입이 전부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 유럽에서 독일이 뒤늦게 통일된 국가였던 탓에, 몇몇 도시들의 경우에는 일찍부터 중세 자유도시의 전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에는 역사적으로 자유도시의 경험은 없으나, 조선의 유교화를 통해 왕의 스승임을 자임하는 학자들의 왕권 견제 장치가 있었다. 독일 교양시민 계급의 이중성은 한편으로는 서구 자유주의 문화에 호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과 학문의 기술자로서 권위주의적 산업화에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자유주의를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가 아니라 ‘관념’ 속에서 체화했다. 반면 한국 유교 지식계급의 이중성은 학문을 발판으로 권력을 획득―‘출세’―하려는 도구적 학문관을 갖는 동시에, 백성의 선출되지 않은 대변인임을 자처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의 유교적 지식계급은 산업화에 동원되는 기술·관료적 지식계급과 민의 대변을 자처하는 민주화 지식계급으로 양분 또는 이중화했다.
한국의 압축적 산업화 또는 근대화는 이 두 범주의 지식계급 사이의 세력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산업화 성공이 정치 민주화로 연결되는 교과서적인 역사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전근대적 관계성의 고질적인 연고주의와 부정부패의 ‘적폐’가 각종 대형사고를 통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전근대적인 유교적 관계성 또는 신분의식은 시장 기제나 관료주의라는 근대적 제도 속에 스며든 비합리성으로 작동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1】 민주화 성공 이후 새로운 소위 ‘개인주의 세대’와의 대립을 통해서, 민주화 지식계급―소위 ‘386세대’―의 민의 대변 역할이 ‘위임’이 아닌 ‘자임’이라는 ‘관념적 형태’임이 계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386―또는 586―세대의 특징으로 자주 거론되는 ‘꼰대’는 이들의 ‘스승’ 정체성을 드러낸다. 조선 시대 유교 지식인이 왕의 스승을 자처했다면, 지금은 시민의 스승을 자처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압축적 산업화’ 개념은 1990년대의 도시형 대형사고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로 사용되었다. 반면 ‘압축적 근대화’ 개념은 더 이후의 상황들, 즉 2000년대 이후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한국의 근대화는 ‘전근대적, 근대적 시간의 동시성’뿐만 아니라 탈근대적 시간까지 동시적으로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압축적’이라고 설명되었다. 반면에 필자는 ‘탈근대성’을 특정 시간 또는 시대를 가리키는 어휘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산업사회 합리성 속에서의 어떤 ‘전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을 울리히 벡의 ‘탈바꿈’ 개념에 기대어 설명할 수 있다.
‘탈바꿈’이란 무엇인가
벡은 『위험사회』 서문에서, ‘탈근대성’, ‘탈산업사회’, ‘탈포드주의’ 등 여러 어휘에서 ‘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집필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벡이 그 책을 통해 설명한 내용은, 각종 ‘탈-’의 어휘들은 결국 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을 제각각의 측면에서 일면적으로 표현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전근대성’과 ‘근대성’의 구별은 근대성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19세기 당시 너무나 해체적이고 또 새로운 현상이라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던 근대 사회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회학은 근대 사회 출현 이전의 사회적 특징들을 ‘전근대성’이라는 말로 통칭함으로써 ‘근대성’의 특징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탈근대성’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관점’의 종말 또는 무용성을 주장하는 ‘비판적’ 개념이다. 즉 그것은 근대성의 관점에서 근대성 이후에 오는 새로운 사회의 특성을 통칭하는 어휘가 아니라, 오히려 근대성의 관점으로 조망할 수 없는 ‘새로운 불확실성’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지칭한다.
그러한 불확실성과 무지가 생겨나는 가장 중심적 이유는, 근대성의 관점 자체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계속 자본주의 산업사회 식의 경제 합리성 원리를 고수한다는 점에서 사회 자체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를 비판적으로 또는 ‘위험하게’ 보게 된 것이다. 즉 산업사회 합리성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의 사회적 결과가 변화했다.
따라서 ‘탈-’은 ‘이후’라는 시간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가 아님’을 지칭하는 부정적 접두어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관점 및 개념이 갖는 타당성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탈근대성’은 새로운 시대의 ‘정상성’으로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사회 합리성에 대한 ‘불안’과 ‘의심’, ‘위험에 대한 직감’으로 온다. 합리성을 지금과는 다르게 보고 또 설명하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탈근대성’을 관점이 아니라 시대로 인지할 경우, ‘뭐든 다 된다(Anything goes).’라는 허무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탈근대주의’가 종종 ‘가치 상대주의’와 동일시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말하자면 사회를 아노미로 단정하여 과거의 아름다운 가치를 되찾자거나 아니면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쿨’해져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벡은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산업사회 합리성의 관점이 도전받는 이유를, 그것이 부정하고자 하나 오히려 계속 생산할 수밖에 없는 그 ‘이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사회는 ‘생산’과 ‘성장’에 도취하여 근대성을 더 많은 진보로 설정했고, 복지국가 체제에 따라 성장의 결과를 보다 공평하게 배분함으로써 그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진보의 과정은 곧 ‘배제’의 과정이었다. 특정 범주의 사람들을 ‘시민’의 범위에서 배제하여 타자화하고, 무엇보다도 자연을 착취하고 조작하여 위험을 생산하면서도 그렇게 생산된 위험을 범주적으로 무시한다. 따라서 산업사회의 이면에서는 타자성과 이질성, 그리고 생태위험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이 배제된 ‘이면’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행위 패턴을 바꾸고 정치 의제 역시 변하는 과정을 벡은 ‘위험사회로의 탈바꿈’―특히 세계화 속에서 ‘세계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이라고 설명했다. 즉 탈바꿈은 명확한 문제 인식과 이념에 기초하여 목적의식하에 조직적으로 발생하는 기존의 사회·정치적 저항과는 다르다. 오히려 탈바꿈은 산업사회 이면에서 생산된 부작용의 드러남이고, 사람들의 행위변화와 정치 의제의 변화는 그런 부작용에 대한 일종의 반사(reflex)처럼 진행된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인지한 결과이고,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불안과 위협이 이끄는 과정이다.
그러나 나치처럼 불안으로 더 큰 위험을 만드는 ‘야만화’의 방향이 아니라, 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은 산업사회 근대성에 대한 반성―또는 앞서 말한 의미의 ‘비판으로서의 탈근대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성찰적’―또는 ‘제2의 근대화’―이라고 벡은 정의했다. 야만화나 전통화의 방향이 아니라 새로운 근대성의 방향으로 인식전환이 되어야만 사회가 지속 가능할 것임을, 점점 더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탈바꿈과 아노미
한국에서 1987년의 새로운 헌법 체제는 정치 민주화를 표현하고, 1989년의 가족법 개정은 유교 가부장제 탈피의 신호탄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효’의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적 공/사 영역이 뒤섞인 유교적 ‘공(公)’ 개념이 서구적 공/사 영역 분리의 개념으로 바뀌는 규범 변동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2030 청년층은 이러한 규범 변동을 상당한 정도로 체화한 세대이다.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된 세대 담론―X세대에서 개인주의 세대까지―들을 볼 때, 새로운 법 체제를 출현시킴으로써 산업사회로의 압축적 근대화를 완성한 50대 이상의 ‘유교 문화 세대’에게 자신들이 개정한 법의 사회적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50대 이상에서는 청년층의 문화를 ‘공동체 미덕의 상실’로 여겨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주된 흐름이다.
19세기 유럽에서 개인숭배의 문화가 확산하고 과거의 공동체 도덕이 붕괴하는 아노미 속에서, 사회학자들은 ‘사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결속 또는 유대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완성과 더불어 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이 진행되면서, 서구에서는 개인화의 추세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타자 범주와 노동자 계급으로까지 확산했다. 개인화는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생애위험의 확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치적 주체에게 집단적 동질성보다 개인 간 이질성―또는 ‘차이’―이 강조되는 현상 역시 개인화의 표현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더 이상 절차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 공론장에 소수자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참여하도록 모든 개인의 정치적 역량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재정의되었다.【2】
산업사회에서 전통으로 자리 잡은 핵가족 및 계급조직 등의 유대관계들이 붕괴하면서 새롭게 전개되는 아노미적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성찰적’ 현상에 주목할 경우, 개인화를 단순한 신자유주의적 고립이나 원자화가 아닌 새로운 유대 형태 발현의 조건으로 볼 수 있다. 즉 19세기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서 이후 ‘유기적 연대’라고 불릴 기능주의적 결속 형태가 창발했듯이, 신자유주의적 고립과 원자화로 보이는 해체 상황 속에서 새로운 유대 형태의 창발을 예상 또는 (한층 적극적으로)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벡은 서구의 경우 이미 인권을 당연시하는 개인주의 문화가 제도화했기 때문에, 현대의 또 다른 개인화 물결이 규범적 아노미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서구의 경우와 달리, 한국의 현재 상황은 다시 한번 ‘압축적’이다. ‘유교 문화 세대’와 ‘개인주의 세대’ 간의 갈등이 보여주듯 문화적 단절과 변동이 진행되고 있으나, 마치 19세기 유럽 상황처럼 한국의 주류사회에서 ‘개인주의’는 규범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들고 도덕의 붕괴로만 인지되는 형편이다. 거기다가 서구의 개인주의는 남성들의 ‘친부살해 욕망’으로 표현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반기로부터 시작했으나, 한국의 개인주의 세대에서 ‘꼰대’에 대한 남성들의 반란은 다소 양면적이다. 오히려 여성들이 ‘가부장제 전복’을 주도한다. 이러한 세세한 차이들은 한국에서 개인주의로의 변동이 서구의 경우와 동일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게다가 현재의 21세기 상황 속에서, 위험―광우병 위험에서 세월호, 메르스, 코로나19에 이르는―에 의해 정치변화가 주도되는 방식으로 이미 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현재 진행되는 한국의 개인화는 ‘압축적 개인화’라고 할 것이다. 이처럼 압축적인 개인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형) 위험사회로의 탈바꿈이 진행되므로, 또 그것을 ‘압축적 탈바꿈’이라고 할 것이다.
‘압축적’이라는 말이 가리키듯이, 현재 우리는 또 다른 ‘비동시적 시대들의 공존’ 속에 살고 있다. 이것은 마치 1930년대 독일 사회가 영국과 프랑스라는 모범적 사례를 통해 설명될 수 없었듯이, 현재의 한국 사회 역시 기성 사회학 이론들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렇게 미증유의 현실을 살고 있음을 인지해야만, 5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아름다운 유교적 공동체 감수성을 잃지 말자거나 또는 완전한 서구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이분법적 선택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히려 이 무질서와 갈등이 새로운 지속가능한 유대 형태의 창발로 연결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이런 ‘압축적’ 상황에 한층 걸맞은 태도일 것이다. 또 한국에서 가부장제 전복의 움직임이 근대 초 서구처럼 아버지의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남성이 아니라, 남성의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의 주도 아래 일어난다는 사실 역시 곱씹어 생각할 문제이다. 50대 이상의 ‘꼰대’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정서가 얼마나 성착취적 태도의 ‘정상성’과 결합하고 있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1】 사회학자 이철승은 386 지식인의 권력을 ‘네트워크 권력’이라고 칭하는데, 필자는 산업화 세력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네트워크 역시 유교적 관계 개념에 기초한다고 본다(이철승, 2019,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지성사 참조). 이철승 등의 ‘세대론’과 달리 필자는 기성 지배 엘리트의 문제가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 간의 문제, 즉 세대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압축적 산업화’라는 공통의 시대를 살았고, 386은 정치적 민주화를 통해 오히려 그와 같은 근대화 따라잡기의 과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회에 대한 개념, 즉 문화적 측면에서 이들은 모두 유교적 관계론을 공유한다. 이철승을 비롯한 많은 남성 주류사회학자들은 386세대가 자유주의 세대라고 평가하지만, 386 역시 유교의 ‘공(公)’ 개념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유주의와 유교의 ‘공(公)’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른데, 2030 청년세대의 경우 서구 자유주의에 가까운 ‘공/사’ 구분의 개념을 가져서 ‘개인주의 세대’로 지칭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변동과 유관한 세대 간 경계는 유교적 ‘공(公)’ 개념을 공유하는 50대 이상의 세대와 그 이하 (특히 2030) 세대 간에 그어져야 한다. 이런 차이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유교적 ‘공(公)’ 개념과 서구 자유주의와의 차이에 대해서는 졸고 홍찬숙, “2016-17년의 광화문 광장: 유교 공론장에서 시민 공론장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18(2) 참조.
【2】 하버마스의 담화적 ‘정의’ 개념이나 페미니즘에서 ‘차이의 정치’나 ‘정체성 정치’, 그리고 라투르의 ‘사물의 의회’ 등이 이런 흐름을 대변한다. 위 흐름의 페미니즘에서는 ‘여성’ 범주 내부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목소리들이, 라투르의 경우에는 비인간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발화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성립한다고 본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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