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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다61381 손해배상(기) 사건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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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13다61381 손해배상(기) 사건 보도자료

익명 (미확인) | 화, 2018/10/30- 14:38

[다운로드] [보도자료]

대법원 공보관실(02-3480-1451)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2018. 10. 30.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가 원고들(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시켰음(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 핵심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임.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이미 2012. 5. 24.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1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2가 있고,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이 있으며,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김선수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음.

1. 사안의 내용

▣ 원고들은 1941년~1943년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임

▣ 2005. 1.경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었고 원고들은 2005. 2.경 일본 기업인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함

▣ 제1, 2심에서는 원고들이 패소하였으나,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환송판결)은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였음

▣ 환송후 제2심은 환송판결 취지에 따라 피고가 원고들에게 강제동원 피해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고, 위자료 금액을 1억 원씩으로 정하였음

▣ 피고가 이에 불복하여 다시 상고를 제기하였음


2. 대법원의 판단

가. 사건의 주요 쟁점

▣ ① 원고1, 2에 대한 일본 법원 판결의 효력과 기판력 (상고이유 1점)
원고1, 2는 이 사건 소 제기에 앞서 일본에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일본 법원에서 패소 확정되었음
이러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외국법원 판결의 승인 제도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그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②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부담하는지 여부 (상고이유 2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이 운영하던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하였는데, 구 일본제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채무가 피고(신일철주금)에게 승계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됨

▣ ③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 (핵심 쟁점) (상고이유 3점)

▣ ④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할 수 있는지 (상고이유 4점)
피고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고들은 피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다투었음

▣ 우선 대법원은 위 ①, ②, ④ 쟁점에 관해서, 환송판결 및 환송 후 제2심판결과 마찬가지로, 일본 법원의 판결은 그 내용이 우리나라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위 ①쟁점),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으며(위 ②쟁점), 이 사건 소 제기 당시까지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위 ④쟁점)고 판단하였음

▣ 위 ③쟁점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이 대법관 사이에 견해가 갈렸음
청구권협정은 전문(前文)에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양국 및 양국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희망하고 …”라고 정하였음. 제1조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에 3억 달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2억 달러의 차관을 행하기로 한다고 정하였고, 이어서 제2조 1.에서 “…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정하였음. 제2조 3.에서는 “…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고 정하였음.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서는 “… 청구권에 관한 문제에는 한일회담에서 한국측으로부터 제출된 대일청구요강 ‘8개 항목’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대일청구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하였다.”라고 하였음

이러한 청구권협정 등의 해석상, 1) 원고들이 주장하는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2) 포함되었다면 그에 따른 효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즉 권리 자체가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만이 소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체법상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인지 등이 이 사건의 쟁점임

나. 다수의견(7명) : 원고들의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음

▣ 이 사건에서 문제되는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이하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임(미지급 임금이나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 아님) ☞ 이는 아래와 같은 환송 후 제2심판결의 사실인정에 기초한 것임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기간 군수사업체인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핵심적인 기간 군수사업체의 지위에 있던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협조하여 인력을 확충하였음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불법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음
더욱이 원고들은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해야 했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외출이 제한되고 상시 감시를 받아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음

▣ 이러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음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음
▪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개최된 제1차 한일회담에서 이른바 ‘8개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무관계에 관한 것이었음. 위 8개 항목 중 제5항에 ‘피징용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청구’라는 문구가 있지만, 이 또한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었음.
▪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간 청구권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음
▪ 청구권협정문이나 그 부속서 어디에도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내용은 전혀 없음

청구권협정 제1조에 따라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이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인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음
▪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의 발표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도, 정부가 수령한 무상자금 중 상당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하여야 할 책임이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것임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환송 후 제2심에서 피고가 협상 과정에 관한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였으나, 그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결론이 달라진다고 볼 수 없음
▪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언급한 사실, 1961. 12.경 협상 과정에서 대한민국측이 ‘8개 항목에 대한 보상으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면서, 그중 3억 6,400만 달러(약 30%)를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한 것으로 산정(생존자 1인당 200달러, 사망자 1인당 1,650달러, 부상자 1인당 2,000달러 기준)’한 사실 등을 알 수 있음
▪ 그러나 위와 같은 발언 내용은 대한민국이나 일본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교섭 과정에서 교섭 담당자가 한 말에 불과하고, 13년에 걸친 교섭 과정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었던 내용도 아님
▪ ‘피징용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언급한 것은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발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실제로 당시에는 일본측의 반발로 협상이 타결되지도 않았음
▪ 위와 같이 협상과정에서 총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청구권협정은 3억 달러(무상)로 타결되었음. 이처럼 요구액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억 달러만 받은 상황에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 것이라고는 보기는 어려움

다. 별개의견1 (1명) : 이미 환송판결에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환송판결의 기속력(상급법원의 판단에 하급법원이 따라야 하는 것)은 환송 후 제2심뿐만 아니라 재상고심에도 미치는 것이 원칙임

▣ 환송 후 제2심의 심리과정에서 새로운 증거 등에 의하여 환송판결의 판단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에 변동이 생겼다면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 것이지만, 이 사건에서는 그렇게 볼 만한 사정이 없음

▣ 재상고심이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기속력이 미치고, ‘환송판결에 명백한 법리오해가 있어 반드시 이를 시정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를 거치지 아니한 채 종전 대법원판결이 취한 견해와 상반된 입장을 취한 때’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속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함

이 사건의 경우 환송판결에 위와 같은 예외적인 사정이 없으므로, 환송판결과 같은 결론을 취할 수밖에 없음

라. 별개의견2 (3명)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함. 다만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함. 따라서 원고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피고를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 (다수의견과 상고기각 결론은 같으나 이유를 달리하는 것임)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

청구권협정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Ⅰ)에 의하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8개 항목’ 제5항에서 규정한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포함됨이 분명한데, ‘기타 청구권’에는 원고들 주장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함
대한민국은 1961. 5.경 협상 과정에서 ‘생존자, 부상자, 사망자, 행방불명자 그리고 군인․군속을 포함한 피징용자 전반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다른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입힌 피징용자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대한 보상’까지도 적극적으로 요청하였음. 1961. 12.경에도 강제동원으로 인한 피해보상금을 3억 6,400만 달러로 산정하고 이를 포함하여 8개 항목에 대한 총 보상금 12억 2,000만 달러를 요구하였음
▪ 1961. 5.경 한일회담 당시 대한민국이 위 요구액은 국가로서 청구하는 것이고 피해자 개인에 대한 보상은 국내에서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일본은 구체적인 징용․징병의 인원수나 증거자료를 요구하여 협상에 난항을 겪었음
▪ 이에 일본은 증명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유상과 무상의 경제협력의 형식을 취하여 금액을 상당한 정도로 올리고 그 대신 청구권을 포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였고, 대한민국은 순변제 및 무상조 등 2개 명목으로 금원을 수령하되 구체적인 금액은 항목별로 구분하지 않고 총액만을 표시하는 방법을 다시 제안하였음
▪ 이후 구체적인 조정 과정을 거쳐 1965. 6. 22. 청구권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제1조에서는 경제협력자금의 지원에 관하여 정하고 제2조에서는 권리관계의 해결에 관하여 정하였음


청구권협정 체결 이후 대한민국이 각종 보상입법을 통해 보상조치를 취한 것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됨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보임

▣ 위와 같이 포함은 되지만,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 내에서 소멸하여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임

‘외교적 보호권’이란‘자국민이 외국에서 위법․부당한 취급을 받은 경우 그의 국적국이 외교절차 등을 통하여 외국 정부를 상대로 자국민에 대한 보호 또는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

청구권협정에는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서 나아가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없음
 ▪ 국가와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라는 근대법의 원리는 국제법상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권리의 ‘포기’는 그 권리자의 의사를 엄격히 해석하여야 한다는 법률행위 해석의 일반원칙에 의할 때,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나서서 대신 포기하려는 경우에는 이를 더욱 엄격하게 보아야
 ▪ 청구권협정에서는 ‘포기(waive)’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음

당시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만 포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음이 분명함

▪ 일본은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하였음. 이러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음

마. 반대의견 (2명) :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포함됨.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가지는 개인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게 되었으므로, 원고들이 일본 국민인 피고를 상대로 국내에서 강제동원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로써 행사하는 것 역시 제한됨 ⇒ 파기환송 의견

▣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별개의견2와 같음

▣ 하지만 별개의견2처럼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자체가 소멸되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지만, 그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함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된다고 보는 견해는 타당하지 않음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므로,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보기 어려움.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 주체는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그의 국적국이며 개인의 청구권 유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음
▪ 청구권협정 제2조 1.에서 규정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문언은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체약국 사이에서는 물론 그 국민들 사이에서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 문언의 통상적 의미에 부합함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양 체약국은 물론 그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함

청구권협정 체결 과정이나 체결 이후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도 소멸되거나 적어도 그 행사가 제한된다는 입장을 취하였던 것으로 보임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였고, 청구권자금의 분배는 전적으로 국내법상의 문제라는 입장을 취하였음
국제법상 전후 배상문제 등과 관련하여 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국가간 조약을 통해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일괄처리협정’은 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일반적으로 인정되던 조약 형식임
대한민국은 청구권보상법, 2007년 및 2010년 희생자지원법 등을 제정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함. 실제 피해에 비해 매우 미흡하다는 사실은 청구권협정의 효력을 해석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음 


청구권협정 제2조의 문언 의미는 개인청구권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됨
– 청구권협정에서는 명시적인 포기(waive) 표현이 없음. 개인청구권이 실체법적으로 완전히 소멸되거나 포기되었다고 보기 어려움. 제2조 3.에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언의 의미는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음

청구권협정이 헌법이나 국제법에 위반하여 무효라고 볼 것이 아니라면 그 내용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에 따라 지켜야 함. 청구권협정으로 인하여 개인청구권을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지금이라도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함.

대한민국은 피해국민의 소송 제기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할 책무가 있음

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2명) :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함

▣ 청구권협정의 문맥, 청구권협정의 목적 등에 비추어 청구권협정의 문언에 나타난 통상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할 경우, 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에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려움

▣ 교섭 기록과 체결 시의 여러 사정 등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밝혀야 한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결론이 달라지지 않음
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청구권과 그 포기에 관하여 명확하게 정하고 있지 않은데도 명시적 근거 없이 이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판단할 수는 없음


3. 판결의 의의

▣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2012년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환송판결을 선고하였음

▣ 이후 위 판결에 대하여 학계 등에서 그 찬반을 둘러싼 여러 논의가 있었고,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포함되었다고 볼 경우 개인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인지, 외교적 보호권에 한정하여 포기되는 것인지 등에 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음

▣ 본 판결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피고의 다른 상고이유 주장도 배척함으로써, 피고가 원고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최종적으로 확정시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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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8/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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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홍 “판사가 역사에 무식..즉각 항소할 것”

 

정미홍 전 아나운서. 2017.3.8/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서울=뉴스1) 이유지 기자 =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血書)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연구소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58)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는 31일 한국 근현대사 비영리 연구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아나운서에게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전직 아나운서로 대중의 영향력이 큰 사람이기에 명예훼손글을 무분별하게 실은 경우 통상에 비해 높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다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용한 링크글의 논지가 분명하지 않고 전파가능성도 낮은 점을 감안해 벌금 30만원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그는 “트위터로 글을 단순히 리트윗한 것이라 해도 타인의 글이 명예훼손적인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며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문제를 연구하는 단체를 표방하는 바, 증거도 없이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했다고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 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신문을 내세우기 전 과거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삼았지만 만주일보에 박 전 대통령의 혈서 기사가 있다는 것은 거짓이기에 박정희 혈서설은 조작됐다는 취지”라고 밝히고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년간 만주일보를 근거로 박정희 혈서설을 주장해왔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아나운서는 선고 중 판사를 향해 “민족문제연구소는 지속적으로 방송에 나와 만주일보에 (박정희 혈서설) 증거가 있다고 이야기해왔다”며 “위증죄로 증인을 고소한 건이 현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갔고 판사에게도 증거로 제출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선고 후 기자와 만나 “민족문제연구소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기에 저에 대해 인신공격 하는 것”이라 지적하고, “판사가 링크글 내용이 불분명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에 무식하기 때문으로, 역사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39년 3월 31자 만주신문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면서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라’라는 혈서를 썼다고 2009년 밝혔다.

정 전 아나운서는 2013년 2월 ‘들통난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 혈서 기사 조작’이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인용해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글은 ‘지난 5년간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 혈서 기사가 만주일보에 실렸다고 주장했으나 만주일보는 1908년 폐간된 신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7월 강용석 변호사와 정 전 아나운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고, 각각 3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강 변호사가 500만원, 정 전 아나운서는 3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고,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원심을 확정했다.

 

<2017-08-31> 뉴스1

☞기사원문: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 1심서 벌금 30만원

※관련기사

☞ 연합뉴스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원

☞ SBS : 민족문제연구소 비방’ 정미홍 전 아나운서 1심 벌금 30만 원

☞ 머니투데이 :  ‘박정희 혈서 날조’ 주장 정미홍씨, 1심서 벌금 30만원

목, 2017/08/3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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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다운로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 모독하는
박성진 장관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

1.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아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야심차게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를 출범시켰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의 활력 제고와 균형 있는 성장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기부 장관후보자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지명함으로써, 정작 당사자인 중소상인들로부터 “이럴 거면 왜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는 항의와 함께 지명철회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2. 박성진 후보자는 이승만 독재를 “당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립을 위해 불가피했다”거나 새마을운동을 “국민의 정신개조 운동, 진정한 신분 계층 제도의 타파” 평가했고 “과도한 노동 운동, 책임을 망각한 과도한 민주주의, 노력 이상의 과도한 복지”등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성장의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저성장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긴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우리의 삶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면서 “친일 프레임, 편협한 민족주의, 과도한 민주주의, 갑을 논쟁” 등 “계층적 분열의식이 우리들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활동이 문재인 정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승만-박정희’를 승계한 것이 된다.

3.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승화”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촛불집회가 한창인 때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초청해 ‘건국 세미나’를 벌인 인물을 중기부 장관후보로 지명하는 자기모순을 범하였다. 이에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박성진은 생활 보수일 뿐이며…이런 문제로 낙마시키면 인재풀이 좁아질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는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였다. 인사검증이 허술했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4. 청와대가 ‘이승만-박정희 신도’인 박성진 중기부 장관 지명을 강행하고자 한다면,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이자 새롭게 집권한 민주정부”라는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포기하기 바란다. 그것이 촛불민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청와대는 인사 검증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박성진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끝>


2017년 9월 1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 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금, 2017/09/0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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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장면.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찰의 날’을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하는 방안이 국회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날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경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현재 경찰의날은 1945년 해방 후 당시 미군정이 미군정청에 경무국을 창설한 10월21일이다. 1957년 11월 내무부 훈령에 따라 이날을 경찰의날로 지정했고, 1973년 제정된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 주관 기념일로 확정됐다.

이재정 의원의 개정안은 1919년 11월5일에 제정·공포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관제’에 따라 설치된 경무국 창시일을 경찰의 날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 의원은 “백범 김구 선생이 초대 경무국장을 역임해 경무국이 임시정부 청사를 경비하고 임시정부 주요 인물들을 경호하게 했다”라며 “일제의 정탐을 방지하고 밀정을 찾아내는 등 경찰 조직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개정안 발의 취지를 두고 “헌법에도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돼 있다”라며 “11월5일로 변경해 경찰의 효시가 일제 강점기 이후 미군정기의 과도기적 조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의 경무국에 있음을 명확히 해 경찰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회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11월5일을 경찰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12월 당시 열린우리당 강창일 의원도 같은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강 의원은 당시 “현재 경찰의 날인 10월21일은 한국 정부 수립 전인 1945년 미군정 시기에 경무국이 창설된 날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독립성을 경찰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경찰의 날을 변경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명시된 헌법정신과 식민잔재 청산 의미에 부합한다”고 했다.

2009년 5월 당시 민주당 김희철 의원도 같은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의원의 법안은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경찰 내부에서도 경찰의 날을 11월5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최근 경찰 내부망에 일선 경찰관이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경찰관은 “해방 이후 ‘친일 경찰’ 재등용은 경찰의 가장 가슴 아픈 실책”이라며 “경찰의 첫 시작을 임시정부 경무국으로 삼고 독립과 친일파 처단 등의 역할을 한 선배 경찰들을 찾아 기리는 등 임시정부 경무국의 역사를 경찰사로 편입한다”고 썼다. 또 “그래야 ‘친일 경찰’이라는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인권 경찰이 되는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특히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이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사실을 모든 경찰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안은 경찰개혁위원회 내부에서도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당시 경무국 창설일을 ‘경찰의 날’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라며 “이 외에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바꾸는 문제 등 다른 여러 기념일 변경도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논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email protected]

<2017-09-01> 경향신문

☞기사원문: [단독]“‘경찰의 날’ 10월21일에서 11월5일로 변경” 법안 추진···경찰 내부에서도 의견 나와

금, 2017/09/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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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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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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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9강 식민통치 마케팅 – 박람회와 기념축전 ②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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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①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금, 2017/09/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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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온라인 역사강좌

제10강 불굴의 저항 – 한국독립운동혈사 ③

강사 :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금, 2017/09/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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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2부 – ②
출연 : MC 노기환, 박한용
이야기 손님 : 이명숙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작곡가 노관우
노래손님 : 가수 이소연, 김성헌

금, 2017/09/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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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직원이 ‘제국과 유신의 검찰’이라는 서적을 펴냈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 검찰권력은  일본 제국주의 법률조항  표절에 기반을 두고 있고, 전관예우는 일본 제국주의 황실 법령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법치에 반하는 검사실에서의 조서작성 관행(검사대신  참여직원이 신문)은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검사가 조선인을 불령선인 취급하던 업무 방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 책에는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이를 옹호하거나 본분을 다하지 못한 학자, 정치인, 법조인, 검사, 판사, 공무원, 교육자, 언론인 등 지식인, 공직자, 지도층 사람들이 매우 화가나거나 부끄러워할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토록 저주하였던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토, 2017/09/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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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식 근현대사기념관 관장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을 외친 촛불 혁명의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에는 적폐청산의 의무가 있다. 군도 예외는 아니다. 국방부가 뒤늦게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발포 책임자 조사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광주학살은 돌발사건이 아니었다. 군은 제주 4·3사건,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는 다시 제암리 사건, 난징대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수많은 학살 사건으로도 이어진다.

해방 이후 군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들이었다.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역대 육군참모총장은 모두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이었다. 제주 4·3사건부터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것은 친일군인과 그 후계자들이었다. 그러니 광주학살의 진상 규명은 더 근본적인 적폐청산과 이어져야 한다. 군 안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일본군 잔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 독립군의 정신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난 8월28일 언급한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헌법 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적혀 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독립운동의 정점은 무장투쟁이다. 임시정부는 출범 직후인 1920년에 이미 ‘독립전쟁 원년’을 선포했다. ‘국군’을 창설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오랜 염원은 1940년 9월17일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 벌어진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계승한 광복군의 창군으로 결실을 맺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임을 자임했다. 중국과 군사협정을 맺고 있었고 영국군이나 미군과의 합동작전도 펼쳤다. 광복군이 있었기에 임시정부는 일제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었다. 연합국이 카이로선언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공인하게 된 배경에는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대일항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국군의 창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을 잇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친일군인들이 장악한 군은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이런 상황에서 1956년에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육군 제3사단이 휴전선을 돌파해 북진한 1950년 10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북진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이 적혀 있다. 북진통일이 아니라 평화통일이 국시다.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면 당연히 북진을 기념하는 날로서 국군의 날도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게다가 1950년 10월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사단장은 친일군인이던 정일권과 이종찬이었다. 제3사단은 백색테러로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3사단에는 서북청년단 출신이 많았는데 이들이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제3사단은 백골부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친일파와 정치깡패를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던 이승만정권다운 일이었다.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역사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독립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로 삼아야 하며 그 일환으로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령으로 정해지는 기념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가가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국경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로 정해진다. 다른 하나는 정부 부처 차원에서 기념하는 ‘각종 기념일’이다. 각종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으로 정해진다. 국군의 날은 각종 기념일에 속한다. 그러니 대통령령만 고치면 국군의 날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군일로 바꾸는 쾌거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7-09-04> 한겨레

☞기사원문: [왜냐면] 9월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 이준식

화, 2017/09/05-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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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09/0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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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는 현실로 되고 있다.
8월 전쟁위기설이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북한의 최첨단 핵무기들이 하나 둘씩 확인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6차 핵실험이 진행되었고, 이것은 지난 괌 타격 유보를 이제는 집행할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9월 9일은 북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일 중의 하나로,
광인 트럼프의 막말대잔치와 미국의 뒷구녕을 핥아대는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 대북제재 망발에 대한 응징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주요 해외 언론의 동향은 괌 타격이 9월 9일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목, 2017/09/0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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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가족 철수!! 목동 원어민 강사들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몇 년 전에도 주한미군 가족철수 훈련을 진행한 일이 있었고, 올해에도 유사하게 진행된 북한 공격시 대피훈련이 4월, 6월 연일 계속되고, 이제는 민간인 영역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목동, 대치동 등에서 돼지엄마들의 입소문이 대박이다.
주한미군 가족뿐만 아니라 실제 원어민 강사들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는데, 난리도 아니라는 것. 실제 전쟁공포로 원어민 강사들의 요청으로 심리치료사 소개를 해준 일도 있다는 것.

[관련기사]
주한미군 가족, 北 공격 대비 대피 훈련
입력 2017.06.06 (21:07) | 수정 2017.06.06 (22:12) 뉴스 9

<앵커 멘트>
주한미군이, 유사시 미군 가족들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지난해 7년만에 재개한 데 이어, 올해도 또 실시했습니다. 배경이 무엇인지, 우한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배낭을 짊어진 미국인들이, 공군 수송 헬기로 향합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입니다.
일행은 헬기에서 버스로 다시 수송기로 갈아탑니다. 배낭에는 비상식량이 담겼고, 이동 때마다 신원 확인을 거칩니다. 유사시 만7천명에 이르는 미군 가족 등을 한반도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한 훈련입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족들을 주일 미군 기지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훈련에 자원한 미군 가족 150명은 어제부터 서울에서 평택, 대구를 거쳐, 주일 미군기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내 미군 가족 대피 훈련은 역대 최대 규모의 전략 무기 전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미군은 최근 동해 상에 항공모함 두 척을 전개한 데 이어, 오늘(6일)은 핵 잠수함 샤이엔 함을 부산항에 입항시켰습니다.

<녹취> 신종우(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 : “미군의 화기에 의해서 미국인이 피해를 볼 수 있잖아요. 훈련을 통해서도 미국인을 소개시키고 한반도에 전력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최근 며칠간 북한 지역에서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의 움직임이 관측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리 군도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KBS 뉴스 우한울입니다.



목, 2017/09/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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