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한반도 주변 상황과 조건이 급변하고 있다. 그간 세계의 정치 금융 군사 등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배력을 행사해온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급기야 국제무역에서 조차 ‘America First’라는 일방적인 정책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서재정 교수는 이를 신현실주의와 신통상주의가 교접하는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유럽은 유럽대로 중국과 일본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대응책을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미국 일방의 단극체제가 종말을 고하고 바야흐로 다극적인 체제로 전환하는 것인가? 전통적으로 미국의 핵우산하에 고객국가로만 여겨져 왔던 일본국 아베수상의 10월 25일부터 3일간 베이징 방문을 예의주시하는 이유이다.
일본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와 국가안보라는 지뢰밭을 통과하는 항로의 개척에 전면적으로 착수하고 있다.
일본 수상 아베 신조는10월 25일부터 국빈으로 베이징으로 시진핑을 방문할 것이며, 이는 미국의 트럼프를 만난 후 한 달이 채 못 된 시점이다.
일본은 트럼프 취임 후 18개월 동안 눈치작전으로 시간을 끌다가, 지난 달 말에서야 쌍방 무역 협정에 대한 미국의 요구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이는 일본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조항 232호를 모면하기 위한 방어적 대응이라 할 것인데, 해당 조항은 미국의 국가 안보라는 명분 하에 일본의 가장 중요하고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조항이었다. 아베는 트럼프와의 최근 만남에서 이러한 관세 정책을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의 협상에 따른 위험과 어려움은 모두의 눈에도 명백하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부당한 쌍무적 요구를 함으로써 이들 국가들을 분열시키는 동시에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했으나, 양국은 이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NAFTA를 유지해 왔다. 한국 역시 한반도 평화 공세에 대한 위협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재협상해야 했다. .
일본은 민감한 분야의 개방을 앞서 환태평양 파트너쉽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하에서 미국과 동의한 시장 접근 수준으로 제한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을 TPP 안으로 복귀시키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다만 쌍무적 관계는 충분히 유지될 수 있을 듯하다.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일본의 자동차와 그 부품에 대해 미국 관세가 부과될 것이고 혹은 이보다 더 나쁜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트럼프와 함께 아베 수상은 일본이 포함된 미국의 안보우산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으며, 안보우산의 유지여부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리더쉽 때문에 심각한 경제적 변수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미국 시장의 개방이라든가 다자간 무역의 유지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판단하고, 여러 나라들에게 쌍무적으로 강요해 왔으며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미국이 관리하는 차별적 무역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전세계가 전지구적 기구와 규칙, 개방의 원칙으로 단합하여 워싱턴의 공격에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목적을 향한 몇몇 나라들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로 지난 6월 G7에서 트럼프를 압박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있다. 미국을 배제한 채로 TPP를 마무리 지은 일본의 리더쉽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의 중요한 한 저항의 계기였다고 할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다자간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치들이 필요할 것이다.
아베 수상은 이번 방문에서 일본과 중국 관계의 정상성 회복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가지고 베이징에 도착할 것이다. 세상의 이목은 지금 이 두 나라의 아시아 거물들이 관계를 개선하면서 과연 어떤 대가를 치를 지에 쏠려 있다. 만약 방문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동남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서 중일 공동 인프라 투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두 나라가 고려 중인 수십 개의 프로젝트들이 있다. 몇 가지 진척들이 더 이루어 진다면, 이는 일본 경제의 이익이라는 점뿐만이 아니라, 다자간 경제 게임을 하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에 관한 시그널이라는 점에서도,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양대 최대 투자국가의 공동 인프라 프로젝트라는 것은 지역의 정치 경제 위험을 분산시키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투자협력에 대한 협의는 또한,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에 군비 자금을 배치한다는 원칙에 대한 동의라는 점에서 중국에 대한 대화가 아니라 중국과의 대화라고 할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는 해외 인프라 투자 가운데 가장 큰 규모가 될 것이다. 이는 관련자 모두에게 큰 리스크가 될 것이고 중국은 이미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해 일부 해당 지역에서의 좌절과 비판을 겪고 있다. 일본은 3-40년 전 해외 투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전의 수상 카쿠에이 다나카는1970년대 중반 일본의 국제적 행보가 해당 국가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
그간 중국과 미국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를 주도 면밀하게 확보해 왔다. 제 3국 시장에 관한 미국과 일본 호주의 인프라 투자 합의는 일본이 중국과의 협력을 구한다는 합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할 것이나, 그에 대한 판돈은 여전히 높다고 할 것이다(실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중국의 경우 트럼프와의 거래에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점점 더 인식해가고 있다. 베이징 쪽에서 미국이 원한다고 믿고 있었던 무역 협정은 올해 초 이미 거절당한 바 있다. 염려해야 할 점은 미국 측에서 외교 언술적으로 중국을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정권이 노골적으로 중국의 거침없는 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이번 아베의 베이징 방문에서 내년 초 일본 답방을 협의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일정 정도로는 양국간 관계 개선이 불가피했음을 의미한다고 하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세계 정치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토쿄와 베이징 모두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
이러한 정상 회담은 안정적인 외교를 필요로 하는 지역과 세계 경제 모두에게 환영받을 만한 발전적 전개라고 할 것이다. 아시아의 두 이웃은 세계 최대의 무역관계 비중의 한축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WTO가 고집해 왔던 쌍자간이라는 국제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의 ‘미국 먼저(America First)’라는 아젠더에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한중일 3국 및 동아시아 지역 포괄 경제 협력 협의는 중국과 일본이 양자간 이슈를 진척시키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비슷하게 TPP는 일본과 미국의 양자간 협상을 위해 차용되었다. 미국과의 양자간 협상이 시작된 시점에서, 현재 일본과 중국 사이의 양자간 협상을 위한 여지가 역시 좀 더 넓어졌다고 할 것이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아시아의 이 두 나라야말로, 전지구적 무역 체제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Shiro Armstrong
Director of the Australia–Japan Research Centre in the 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at the ANU
<div class="xe_content"><p style="text-align:justify;"><img alt=""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351/608/001/31b3…; style="width:800px;height:420px;" /></p>
<h1 style="text-align:justify;">제2차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위한 담대한 진전을 기대한다</h1>
<h2 style="text-align:justify;"><싱가포르 공동성명> 현실화하고 실천할 구체적 방안 도출해야</h2>
<h2 style="text-align:justify;">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발전 위한 발판 마련하길 기대</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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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다가오는 2월 27일~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역사적인 첫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지 8개월 만이다. 지난 제1차 정상회담 이후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 간의 대화와 협상이 재개되어 제2차 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지는 것을 크게 환영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 한국전쟁 유해 송환’ 등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양국이 합의한 사항의 구체적 이행을 향한 걸음을 다시 한번 크게 내딛기를 기대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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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지난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북미는 서로의 의견에 진정성 있게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은 지난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독자 제재들을 추가해왔으며,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은 대북 제재로 인해 이행이 미뤄져 왔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의 지체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들은 경제 제재뿐만이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 정치적 조치를 강조한 것은 물론 북한과 미국이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것을 촉구하고 대화를 통한 ‘평화적, 포괄적 해결책’을 결의해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교류와 협력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이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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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또한 남·북·미 모두 서로를 겨냥한 모든 군사행동을 중단하는 것은 대화와 협상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치다. 남과 북은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고, 한반도 전 지역에서 실질적인 전쟁 위험을 제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미 당국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인 3월 4일부터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실시할 예정이다. 대화 국면을 고려하여 훈련 규모를 축소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군사훈련은 언제든 갈등을 초래하는 빌미가 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중단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상호 신뢰를 쌓고 어렵게 조성된 대화 국면을 이어가기 위해 서로를 위협할 수 있는 군사행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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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부정적인 전망과 회의적인 시각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한반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다. 우리는 이번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상호 간의 노력으로 이행하여, 종국에는 북한과 미국이 과거의 적대 관계를 끝내고 새로운 신뢰 협력 관계로 진입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또한 우리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대화와 협상이 지속되도록,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역행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전 세계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의 실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노력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며 큰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이러한 전 세계의 기대와 염원에 부응해야 한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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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strong>2019년 2월 25일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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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strong>고양통일나무, 녹색교통, 녹색연합, 대전평화여성회, 사단법인 평화 3000, 시민평화포럼,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쟁없는세상, 제주평화인권센터, 평택평화센터, 평화네트워크,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피스모모, 참여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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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justify;">성명 [<a href="https://docs.google.com/document/d/1FcWmSFK0TM440UPRQelwAXwv6q-pM3t0xX6…;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a>]</p></div>
필자는 이미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생략을 예측했고, 그래서 <통일뉴스>에 기고할 목적으로 하루 전날인 2020년 12월 31일에 원고를 미리 써놨고, 이걸 ‘예측: 2021년 북 신년사를 대체한 제8차 당 대회’라는 제목의 분석글을 기고한 바 있다.(<통일뉴스>, 2021.1.1.)
아니나 다를까 북은 2021년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내놓지 않았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위대한 인민 받드는 충심 변함없을 것 다시금 맹세”라는 내용을 중핵으로 하는 ‘전체 인민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형식의 새해인사를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친필서한 <출처: 로동신문>
이를 두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남측 사회에서 일어났다. 다름아닌, 통일부가 2021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21년 새해를 맞아 주민들에게 공개한 친필서한을 두고 “김정은 위원장 집권 2012년 이후 전 인민을 대상으로 발표한 첫 친필 서한 형태의 ‘신년사'”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첫 사례라면서 “이례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같은 친필 서한도 ‘신년사’라고 판단한다, 했다.
참으로 수준 낮은, 아니 한심한 통일부이다. ‘새해인사’와 ‘신년사’가 어떻게 갔단 말인가?
말 그대로 새해인사는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새해를 맞아 보내는 덕담인사이다. 단지, 그 덕담의 내용과 수위가 우리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수용하기 좀 어려운 정치적 행위의 연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할 수는 있어도, 새해인사는 새해인사 일 수 밖에 없다. 반면, 신년사는 새해인사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문제이다. 최고지도자의 한 해 국정운영 철학과 국정운영 목표, 방식 등에 대한 계획을 당과 인민에 총화발표하고, 이를 당이 중심되어 군중적으로 조직동원하기 위한, 즉 한 해 북이 나아가가야 할 좌표방향과 목표에 대해 북 사회전체가 공유하고 결의하는 내용과 형식으로 집중된 고도의 정치행위이다.
바로 그 행위를 김정은 위원장이 생략하고, 시기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제8차 당 대회(2021.1.5.개막)를 통해 대체한 것이다. 그러니 새해인사와 신년사와는 전혀 다른 층위의 차원문제이다.
어쨌든 그래놓고 기억을 되돌려보자. 북은 이미 지난해 8월 1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를 열에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고, 또 12월 29일에는 제7기 제 22차 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제8차 당 대회를 2021년 1월 초순에 개최할 것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정권수립 이후 아주 이례적인 예외 없이는 곧잘 지속되어왔던 최고지도자의 신년사가 생략될 것임을 미리 예고했었다.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북도 여느 사회주의국가처럼 당 우위의 국가체제이다. 그러면서도 수령의 절대권한이 보장되는 수령중심의 체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의미가 교집합되면 1월 초에 개최될 당 대회, 그것도 당의 최고의사결정 단위인 당 대회에서 그 조직의 최고지도자가, 그것도 ‘유일’최고지도자가 자신의 국정철학과 국정운용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체제원리적으로도 맞다.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가 5일 오전 평양에서 개막되었다. <출처: 노동신문>
2.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에 대한 간략한 고찰
제8차 당 대회 소집목적이 어디 있느냐는 <조선중통신>이 보도한 1월 6일 자 기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통신은 그 소집목적을 공개했는데, 이로부터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어떤 목적을 갖고 개최하려 했는지에 대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가 도래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당중앙위원회의 사업을 전면적으로 엄중히 총화하고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 실제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8번째로 되는 당대회를 소집했다.”
분석하면 첫째, ‘새로운 고조기’는 인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진하는 북의 향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름하여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의 ver.2이다.
둘째, ‘장엄한 격변기’는 미국과의 판가리싸움에서 결정적 승리국면을 반드시 열어제끼겠다는 의미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 위업의 보다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정확한 투쟁방향과 임무를 명백히 재확정하며’에서 확인받는 것은 자강력제일주의와 정면돌파전에 기초한 자체의 힘, 주체역량강화에 기반 한 전략노선이 채택된다는 의미를 함의한다.
넷째, ‘실질적인 개선대책’에서 확인받는 것은 사회주의제도와 질서를 ‘개건’과 ‘개선’을 통해 보다 우리 식(주체)사회주의제도를 더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예고했고, 그 모습은 수령-당-대중의 혼연일체에 있다.(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 구현과 당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무장된 혁명적 당으로 질적 전환을 내 오는 것, 그리고 수령의 절대성이 더 공고화 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다.)
3. 총론적 분석: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중심으로
내용적으로는 대략 4가지 방향으로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북 언론보도가 이를 증거 해주는데 △첫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 △둘째, 조선로동당 중앙검사위원회 사업총화 △셋째, 조선로동당규약개정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의제가 조선로동당 중앙지도기관 선거부분, 그렇게 4가지 의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후 북의 국정운영 방향과 좌표 관련해 핵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은 뭐니 뭐니 해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A4용지 20여장 분량에 해당되는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이하, ‘김정은 위원장의 보고’로 약칭, 정식 보고명칭은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을 새 승리에로 인도하는 위대한 투쟁강령’이다.)이다. 12일 폐막 때 채택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 부분도 매우 중요한 분석 자료이다.
해서 이 두 부분을 and적으로 조합하면 지난 제7차 당 대회 분석이 어떻게 심층분석 총화됐고, 향후 5년간 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총적과제가 집대성된다. 5년간의 국정운영 방침결정서가 그렇게 수립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당 대회도 일반적으로 당 대회가 개최되면 최종적으로는 결정서 채택을 끝으로 폐막되는 그런 경로를 그대로 따랐다. 대회 기간이 좀 길어지면서(역대 두 번째로 긴 대회, 1/5 ~ 1/12) 한때는 결정서 채택없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그 예외를 북은 허용하지 않았다.
물론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기간 사업총화보고를 했는데도, 그에 대한 결정서 채택이 없다?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북 체제의 특성 간과이다. 결과, 이번 제8차 당 대회도 김정은 위원장의 사업총화보고와 결정서 채택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 치의 어그러짐도 없는 북의 생각과 의도, 국정운영방향을 알 수 있다.
틀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
제2부: 제8차 당 대회 대내관계 분석: 정면돌파전과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에 대한 이해
제3부: 제8차 당 대회 대외관계 분석: 북미, 남북관계 전망을 중심으로
이 중 이 글은 우선 그 첫 번째, ‘제8차 당 대회 총론분석: ‘위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 3대 이념으로 무장되다‘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시작해 보자. 총론분석 그 첫째, 북은 이번 제8차 당 대회가 갖는 의미에 자신들의 현 단계 혁명발전단계 성격규정을 명확히 했다. 어떻게? 혁명의 ‘정착기(김일성시대)’를 거쳐 ‘과도기(김정일시대)’가 끝나고, 김정은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들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 단계로 진입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서 중대한 정치적 사변(강조, 필자)으로 되는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는”에서 확인받듯이 이번 제8차 당 대회 개최를 ’정치적 사변‘으로 성격 규정해 북의 사회주의 혁명발전단계가 ’계승기와 발전기‘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 내었다.
구체적 뒷받침은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는 조성된 대내외형세하에서 우리의 전진을 저애하는 주객관적 요인들과 심중한 결함들을 인정하고 당과 국가사업전반을 혁신하며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의 다음단계로 이행시키는데서(강조, 필자) 나서는 명확한 투쟁과업과 방도들을 밝힌 위대한 실천강령이다.” 이어 “전투적 기치이며 주체위업의 력사적뿌리와 오늘, 미래를 굳건히 이어주는 혁명적 문헌으로 된다.”고 성격 규정한데서도 그 의미가 찾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제8차 당 대회에서 보고된 사업총화가 1월 12일 채택된 결정서(정식명칭: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에서 한 결론)에서는 자신들의 혁명단계를 “혁명과 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여놓기 위한(강조, 필자)”단계로 성격 규정했다. 그렇게 북의 사회주의가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주객관적 조건이 되었음을 사회과학적 용어로 정립해내었다.
총론분석 그 둘째, 사회주의완전승리노선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수 있는 물적·정치사상적 토대가 확고히 구축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이를 5개년 국가발전계획 목표완성과 연동시켜 내었다. 그 대강으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기본종자, 주제는 여전히 자력갱생, 자급자족(강조, 필자)”임을 분명히 했다. 방침으로는 “현 단계에서 우리 당의 경제전략은 정비전략, 보강전략으로서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사이의 유기적련계를 복구정비하고 자립적토대를 다지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여 우리 경제를 그 어떤 외부적영향에도 흔들림없이 원활하게 운영되는(강조, 필자)”원리의 천명이다.
이미 이 기본원리는 제7차 사업총화보고에서 확인된다. “현 단계에서의 조선혁명의 진로를 명시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사업총화보고의 진수는 우리자체의 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하여(강조, 필자) 현존하는 위협과 도전들을 과감히 돌파하고 우리 식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을 일으키며”로 정의 된데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이번 결정서를 통해서 “사회주의건설의 주체적 힘, 내적동력을 비상히 증대시켜(강조, 필자) 모든 분야에서 위대한 새 승리를 이룩해 나가자는 것이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의 기본사상, 기본정신입니다.(강조, 필자)”로 정식화 되었다.
총론분석 그 셋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쳐 확립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또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가 북의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되었다는 점이다. 달리는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이 확정되어졌음과 같다. 이는 통상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스타일을 ‘선군정치’로 규정했다면,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거치고, 규약 개정전문이 발표되지 않아 그 내용 속속들이는 알 수 없으나, 일부 공개된 당 규약 서문확정을 통해 드러난 김정은식 통치스타일은 분명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이다.
당 규약 서문 표현은 이렇다. “우리 국가의 지위와 국력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승리에서 더 큰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하고 있는 혁명발전의 요구를 반영하여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정식화(강조, 필자)하였다.” 그 근본정신에 ‘모든 것을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기치가 있고, 이를 김정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난관이 중첩되어도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를 철저히 구현하면 불리한 모든 요인들을 능히 극복하고, 방대한 과제들을 용이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방식으로 정식화하였다.
북은 그렇게 ‘선군정치’에서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방식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맞이했다. ‘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며 군대중시의 선군정치와는 달리 이번 당 대회에서 “인민군대가 참다운 인민의 군대라는 사명과 본분(강조, 필자)을 다하라”고 주문하면서 2020년도 여름 태풍과 홍수 피해를 당한 인민들을 위해 군인과 평양 핵심 당원들을 피해 복구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인민대중제일주의정치구현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당과 군대의 존재 이유를 인민에 대한 헌신복무에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실천적으로 입증해 주었다.
총론분석 그 넷째, 이번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드러난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 등 대외관계 부문은 기존 형제국들과는 친선과 우호협력을 보다 공고히 하면서도 미국을 대하는 방식으로는 핵무력 강화발전노선에 근거한 대북적대정책을 분쇄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방향을 명확히 하였다. 증명하면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 보고에 “대외정치활동을 우리 혁명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고 못 박고, 그 방도도 “국가핵무력건설대업을 완성(강조, 필자)하는것은 우리가 리상하는 강력한 사회주의국가건설행정에서 반드시 선차적으로 점령해야 할 전략적이며 지배적 고지”임을 분명히 밝혀 핵무장력 강화발전을 통해 미국을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상대하는 기본원칙이 ‘강대강, 선대선’의 대미정책이 수립되었다. 해서 향후 북의 대미전략은 일관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에 기본방점이 찍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으로 나아가는 프로세스가 확립될 것이다.
이를 남북관계와 연동하면 총화보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듯이 “남조선당국이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들을 엄정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해버릴 때(강조, 필자)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북남관계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 남측당국(현, 문재인 정부)이 민족자주와 자결의 정신으로 되돌아오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는 4.27판문점공동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약속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 진전없음은 보다 확실해졌다.(※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이인영의 통일부는 여전히 방역과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집착하는 ‘작은교역’에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번지수 잘 못 짚었다.) 달리 표현은 북이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기본핵으로 해 남북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전략구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당분간 남북관계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소강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총론분석 그 다섯째, 통상 각급 당 체계를 중심으로 총화분석이 이뤄지던 특성과 절차대신, 이번 제8차 당 대회는 개최이전 4개월 전부터 당 중앙위원회에 비상설 중앙검열위원회를 구성하고 ‘요해사업 소조’를 각 도와 성, 중앙기관들에 파견하여 진행한 특성이 있다.(이름하여 ‘총결기간’으로 표현됨.) 아마도 이는 2020년 8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6차 전원회의’을 주관하면서 제8차 당 대회에서 결정될 5개년 국가발전계획과 관련해 제 7차 당 대회 결정사항인 5개년 국가발전전략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에 대한 약속이행절차였고, 그 만큼 핵심당원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분석총화가 이뤄졌음을 증거한다하겠다. 결과, 향후 5년 동안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 ‘자력갱생전략’ 3대 키워드로 국가운영방침을 명확히 해냈다.
추진동력으로는 당 제7차대회가 강조한 ‘자력갱생정신’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방침인 ‘정면돌파전’을 지속시켰다. 이것이 사업총화보고에는 “우리 당의 자력갱생전략은 적들의 비렬한 제재책동을 자강력증대, 내적동력강화의 절호의 기회로 반전시키는 공격적인 전략으로, 사회주의건설에서 항구적으로틀어쥐고나가야 할 정치로선(강조, 필자)으로 심화발전되였다.” 더해서 “자강력을 증대시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기 위한 전인민적인 투쟁속에서 자력갱생은 주체조선의 국풍으로, 조선혁명의 유일무이한 투쟁정신으로 더욱 공고화(강조, 필자)되였다.”고 맺는다.
이상으로 제8차 당 대회 분석을 총론적으로 끝냈다.
핵심은, 북의 혁명발전단계를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의 고조기·격변기로 분명히 한 것과, 사회주의완전승리단계 고지점령을 위해 보편적인 사회주의 질서체계(예, 김정은 위원장 총비서 추대, 당의 혁명적 기풍확립, 당 중앙의 유일적 사상체계 확립 등) 구축, 그리고 대외관계는 형제국들과는 상호협력·친선확대를 도모하면서도 미국과 남북관계는 보다 핵무력 강화와 자주·자결에 기초한 정공법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분쇄와 자주적 통일방향으로의 전환이다.
<div class="xe_content"><h1>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국회 공청회 진술자료</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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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제10차 SMA 협정안 이대로 비준동의해서는 안되는 이유</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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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right;">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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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과 이행약정에 대해 정부와 국회 일각에서는 미 측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던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이 포함된 ‘작전지원’ 부문 신설 요청을 철회시킨 것, 박근혜 정부가 이면합의를 통해 군사건설 분야의 예외적 현금지원이 가능하게 한 규정을 폐기한 것, 군수비용으로 지원된 미집행 현물의 이월요건 강화 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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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는 SMA 협정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요구이거나 규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정되어야 할 사항들이었음. 그러나 SMA 협정과 이행약정을 둘러싼 오랜 문제제기나 우려들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음. 특히 이행약정에는 지난 9차 협정의 문제점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았거나, 미 측이 요구한 작전지원 항목을 대체할 수 있는 조항도 추가되어 있음. 국회 비준동의 이전에 반드시 삭제를 요구하거나 시정해야 할 부분임.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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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MA의 문제점들은 한미간의 기울어진 협상력에 기인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국회 스스로 제대로 점검하거나 통제하려는 노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임. 한국의 과도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미 측이 한국 방어에 한국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허구적인 주장을 방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회가 민주적 법절차를 통해 통제하고 견인하는 것임. 한미동맹 유지와 지속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미흡하고 잘못된 협정안을 제대로 시정하지 않고 비준동의 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됨.</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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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연간 5조 원 이상 지원, 막대한 미집행금에도 불구 대폭 인상 </h2>
<p>이번 협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이 또다시 근거 없이 대폭 증액되었다는 것임. 2019년 한 해에만 SMA를 통한 지원액이 1조 389억 원으로 작년 9,602억 원보다 787억 원(8.2%) 증가함. 그러나 비용 증액의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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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미 한국은 한 해 1조 원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 외에도 직⋅간접 지원을 통해 매년 5조 원이 넘는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부담해왔음. (2018. 국방연구원) 반면 미국은 막대한 미집행액을 쌓아두고 이자 수익까지 챙겨왔음. 지난해까지 쌓여 있는 미집행액은 1조 원이 넘음. 군사건설비 불법 전용 등으로 한국이 총사업비의 92%를 부담한 평택 미군기지도 매우 호화롭게 조성되어 기지확장사업은 종료되었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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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8년 말 기준, 군사건설 항목 미집행 현물 지원분은 9,302억원, 비집행 현금 2,884억원(2018년 6월 기준), 군수비용 항목 미집행 현물 지원분은 562억원임. 1조 원을 훨씬 넘는 미집행금이 남아 있는 상태임. 군사건설 분야가 현물지원 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미집행 현금 규모가 2008년 약 1조 1,193억원에서 점차 감소함. 이는 미 측의 천문학적인 증액 요구나, 8.2% 증액해준 이번 협상 결과가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줌. 미집행 현금으로 여전히 이자소득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회수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임.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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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또한 한국의 국방비가 대폭 인상된 만큼 주한미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그에 따른 분담 비용도 축소되는 것이 마땅함에도 전체 비용이 한국 국방비 인상률을 반영하여 인상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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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앞서 국방부는 SMA 협상을 앞두고 주한미군에 대한 직간접지원 규모를 조사, 연구하여 협상에 활용하겠다고 했고, 5조 원 이상 한국이 매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을 확인한 바 있음. 또한 한국이 일본에 비해 병력대비 높은 수준으로 주한미군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SMA 협정상 뿐만 아니라 직간접 비용과 지속적/한시적 비용 등 모든 항목에서 높은 지원 규모라는 것이 드러남. 주둔병력 대비 한국인 노동자의 비율도, 건물면적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을 추월하고 있음. 한국은 전 세계 유일하게 주한미군의 통신선과 연합C4I 체계 사용비와 KATUSA를 지원하고 있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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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번 협정안이 결코 성과라고 볼 수 없는 이유임. 애초 미국이 부담하게 되어있는 주둔경비를 한국이 지원하도록 한 특별조치로서 SMA 협정이 체결되어 왔음. 미 측의 정보 미공개로 주한미군 경비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가운데,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지원금 규모가 이 정도로 계속 증액되는 것을 문제의식 없이 수용해서는 안 됨.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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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작전지원 항목 신설 대신 이행약정으로 군수 지원 항목에 반영</h2>
<p>정부가 미 측의 작전지원 항목 신설 요구를 명시적으로 수용하지 않았지만, 대신 이행약정을 통해 미군의 작전상 일시적 주둔의 경우에도 추가적인 현물 군수지원을 하기로 합의함. 이는 비용 증액의 한 요소가 되고 있음. 협상 내내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한 미 측의 의사가 반영된 부분임.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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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미 측이 요구했던 작전지원 항목 신설은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을 위한 비용 분담이라는 특별협정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지만, 정부는 미 측의 입장을 고려하여, 이행약정 제5절 제2호에 “주한미군의 상시적 또는 일시적 주둔 지원을 위해”, “기지운영지원의 일부(공공요금 중 전기·천연가스·상수도·하수도 요금, 저장, 위생·세탁·목욕·폐기물 처리 용역)”를 제공하기로 함. 이는 미 측이 애초 요구한 전략자산 전개 비용, 연합훈련 비용, 순환배치 비용 등에 쓰인다는 것을 의미함. 이는 시설과 부지를 공여받아 주둔하는 주한미군만이 아니라 작전상 한국에 들어오는 해외미군의 활동도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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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는 SMA 취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향후 해외미군 활동지원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임. 또한 성주에 배치된 사드도 “한국이 부지만 제공하고 운영유지 비용은 미 측이 부담한다”던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운영유지 비용도 한국이 부담하는 조항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이행약정에서 해당 조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함.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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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미 측 군사적 필요에 따른 ‘특정시설’ 건설 지원의 문제점</h2>
<p>협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이면합의해 준 바 있는 특정 군사건설 사업에 대한 예외적인 현금 지원 가능 조항을 삭제, 설계·감리비 외에는 모두 현물로 지원하도록 한 점을 강조하고 있음. 이행약정 제4절 제4호에 “특정 시설이 미국의 군사적 소요로 인해 필요하며, 동 목적을 위해 가용한 현금 보유액이 부족하다고 한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가 협의를 통해 합의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특정 시설 건설을 위해 비한국 업체 이용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두었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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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미 측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미군기지에 건설하는 특정 시설의 성격이 무엇인지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안임. 또한 현금 지원 조항을 삭제했다고 하나, 한국이 설계, 시공감리에 현금을 지원하고, 이를 제외하고 현물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 검토보고서가 지적한대로, 가용현금 보유액 부족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한국 측이 판단하기 어렵고 미 측의 자체적인 현금 사용계획 등에 따를 수밖에 없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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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김경협 의원실이 밝힌대로, 외교부 자체 조사 결과 지난 9차 협정에서 국내 중요시설을 도·감청할 수 있는 정보시설 건설에 현금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가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 보고되지 않은 채 이루어졌음. 10차 협정의 이행약정은 국가 중요시설까지 도·감청할 수 있는 '민감특수정보시설(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Facility, SCIF)'을 미군 단독으로 건설하는데,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설계, 시공감리에는 현금 지원을, 나머지는 현물 지원을 한다는 것임.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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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여전히 SCIF 사업을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면합의로 한 현금 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방위비 분담금 집행의 투명성을 제고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음. 한국이 개입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 감시를 당할 수 있는 장치를 위한 시설을 미군이 단독으로 건설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이에 대한 한국 측의 지원이 타당한지 반드시 점검되어야 함.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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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군사건설 지원에 있어 한국 정부가 사업 선정 단계에서부터 협의할 장치를 두었다고는 하나. 주한미군사령관이 최종 사업들을 선정하는 등 군사건설 계획 수립과 집행에 있어 한국 정부의 개입 없이 전적으로 주한미군 측이 결정하게 되어 있는 점도 짚어야 할 부분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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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협정과 이행약정 연장조항, 국회 비준동의권 배제 가능</h2>
<p>협정안 7조는 “이 협정은 당사자의 상호 서면 합의에 의해 연장되지 않는 한, 2019년 12월 31일까지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음. 이는 2019년 협정이 종료되지 않으면 국회 비준동의와 관계없이 정부의 서면 합의로 연장 가능하다는 것으로, 방위비 분담금 액수 등을 변경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음. 경우에 따라 위헌 소지가 발생할 수 있음. 자동연장에 합의하는 마감 시한 규정도 없어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다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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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또한 이행약정 또한 국회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외교경로를 통하여 상호합의에 의해 수정 및 개정” 될 수 있도록 했음. 정부는 특별협정과 이행약정을 함께 국회에 제출하여 투명성을 증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말대로라면, 협정안에 담지 못한 미 측의 요구가 반영된 이행약정에 대한 국회의 심사와 동의가 필수적임. 국회 통제 밖에서 한미 당국이 언제든지 이행약정의 수정이나 개정을 가능하게 해서는 안 됨.</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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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 참고자료 :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 국회 공청회 자료집 [<a href="https://drive.google.com/file/d/1pAtO9u6b6zrpUVBWsCkP51QdC3gdT0Jn/view?…;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a>]</strong></p></div>
노희경 작가는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 등단 이후 꾸준히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수작들을 선보이며 대선배 김수현 작가와 함께 현 한국드라마계의 양대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활동한 지난 20여 년 간은 국내 드라마사에서 제일 역동적인 시기였다. 데뷔 시기인 1990년대는 트렌디드라마가 처음 등장해 현대드라마의 주류문법을 완성했고, 중견작가 반열에 올라선 2000년대부터는 한류드라마와 막장드라마라는 두 가지 현상이 방송가를 지배했다.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노희경 작가(사진)는 작품성과 시청률 양 측면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 시간 동안 드라마계에 일어난 결정적 변화는 ‘표피성’이다. 트렌디드라마가 속도감 있는 편집, 다채로운 색감의 영상, 감각적인 배경음악 등 형식미 강화를 통해 인물의 내면을 스펙터클화 하는 데 집중한 최초의 장르였다면, 여기에 스타캐스팅, 해외 로케이션, 화려한 세트 등이 더해져 외적 스케일을 한껏 키운 형태가 한류드라마였다. 그 변화의 끝에는 인간의 내면이 극단적으로 얄팍해지고 외적갈등만 자극적으로 부각된 막장드라마가 있었다.
노희경 드라마가 호평 받아온 이유는 이 극단적인 표피화의 시대를 거스르며 일관되게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왔다는 데 있다. 외적 갈등보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을 중심에 놓고 그 감정을 심층까지 파고들며 점층적으로 고조시켜나가는 특유의 서사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강렬한 정서적 환기력을 이끌어냈다. 그녀의 스물세 번째 드라마인 tvN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러한 인간 성찰의 힘이 원숙의 경지에 도달한 노희경 최고의 걸작이다.
드라마에는 평균 연령 67세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관찰자 역할인 37세 박완(고현정)을 제외하면, 86세 최고령자 오쌍분(김영옥)부터 63세 막내격인 장난희(고두심)까지, 8명의 주요인물이 모두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이 노인들은 나이가 많은 이들이라기보다는 노희경 인간 탐구의 최종성장형으로서 존재에 가깝다. 노희경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심층적 내면을 지닌 존재로 바라보고, 내면의 깊이가 한층 심화되는 것을 성장으로 그려낸다. 물론 이 자체는 그리 새로운 관점이 아니다. 이미 ‘속이 깊다’는 말은 ‘어른스럽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이 깊어지는가에 있다. 노희경 작가는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대개 극 초반에는 상처와 결핍으로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다가 곧 자신과 닮은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관계를 맺으며 성장해나간다. 이때 이들의 상처는 사회적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공동체 성장의 가능성으로도 확장된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는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여성들, 미혼모, 과부, 이혼녀, 장애인, 가난한 노동자의 아픔 등 그동안 노희경 작품에서 다뤄진 거의 모든 사회적 상처가 총망라되어 있다. 이 드라마가 노희경의 가장 원숙한 작품인 것은 인물들이 이러한 사회적 상처를 이해하고 유대해가는 과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밀도 높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례는 ‘보수 꼰대’ 석균(신구)의 각성서사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을 위해 ‘돈 버는 기계’로만 살아온 그는 자신의 노고만 중시한 나머지 철저히 이기적인 괴물이 됐다. 어느 날 아침 아내 정아(나문희)가 떠나고 혼자가 되자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본다. 자신이 그녀를 평생 노예처럼 부리고 발닦개처럼 취급해왔음을.
아내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그의 시선은 조금씩 확장된다. 습관대로 버스에서 우악스럽게 자리를 뺏고 보니 쫓겨난 소녀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고, 평소 아내 친구들을 볼 때마다 쏟아낸 폭언들이 떠올려진다. 제일 심한 폭언을 퍼부었던 완이 앞에서 “세상에서 제일 큰 죄는 지 죄를 지가 모른다는 거”라고 고백하는 그의 반성은 뼈저리다.
석균의 뒤늦은 성장은 지금의 한국사회가 지닌 치명적 문제점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석균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말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태도다. 정부의 철학도 지배하고 있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인권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얼마나 많은 사회적 이슈들이 ‘민생’으로 포장된 경제우선주의 앞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가.
물질적 가치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현실에서 뚝심 있게 인간의 가치와 연대를 존중하는 노희경 드라마의 윤리적 태도는 지금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디어 마이 프렌즈>는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이 젊은 거장의 또 다른 20년과 성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해운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이 한국산업의 화두가 되었다. 시야를 넓혀서 보면 세계적 규모의 금융과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과정이 겹쳐서 미증유의 산업구조적 변동이라는 거대한 파고가 밀려오는 있다. 해운과 조선업뿐만 아니라, 해외건설, 석유화학, 철강 그리고 현재까지는 잘 버티고 있는 반도체와 액정판넬 및 자동차산업까지 위기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전문가의 예언을 빌자면 수 년안에 제조업을 중심으로 백 만명이 넘는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따라서 해운과 조선업의 구조조정이라는 현안은 단순히 해당 산업과 기업의 범위를 넘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일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밀려오는 구조조정 문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와 결단의 원칙으로 해결하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당장에 책임회피라는 미봉책으로 처리하면 한국경제가 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정권이 벌리고 있는 구조조정 대책을 보면 무책임과 무능함 정도가 미봉책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 범죄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재벌들의 족벌경영이 위기 키워
우선 해운산업을 들여다 보자.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 여파로 보호무역주의가 부활하고 무역의 물동량이 격감하리라는 것이 명확했다. 자연스레 한국내 해운업을 영위하는 300여 대부분의 기업은 이를 인지하고 사전적인 사업축소와 인원조정에 들어갔다. 덕분에 2015년 현재 해운협회에 등록된 150여개의 업체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건전한 재무구조와 흑자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로지 재벌들이 운용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만이 심각한 결손상태를 보이고 있고, 나아질 전망마저 보이질 않는다.
물론 컨테이너 중심으로 정기선을 운용해야하는 특수한 조건, 즉 전세계를 대상으로 적정 인프라를 유지해야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부채비율을 낮추라고 강요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실책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은 기업을 운영하는 주주의 판단과 경영진의 능력의 문제였다.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무리한 용선계약을 맺은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 이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회장직을 맡고 있던 면면을 살펴보면 확연해진다.
결국 재벌들의 무능한 족벌경영의 핵심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대마불사라는 환상을 하늘처럼 믿었던 데는 정부 관료와 금융기관들의 책임이 적지 않다. 지금이라도 양사의 자본지분을 결손액만큼 감자하고 채권액을 지분으로 전환한 후 양사를 합병하여 축소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급한 불을 끈 뒤 시장에 다시 매각하는 것이 순리이다. 쉽게 말하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무능한 재벌들의 소유에서 분리시켜 냉정한 시장으로 되돌려 주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롯데그룹 형제의 난’에서 보듯이, 지긋지긋한 재벌상속놀음과 무능한 경영에 국민경제가 멍들고 서민들이 고통받는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이번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단호한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이 세계최고의 경제대국을 이룬 배경에는 금산분리와 반독점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결단의 역사가 있다. 이제 한국에서도 재벌에 대한 타협없는 감시감독의 철퇴를 준비해야 한다 ( 박상인교수의 <삼성전자가 몰락해도 한국이 사는길> 참조).
정경유착의 다른 이름, ‘서별관회의’
조선산업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재벌에서 정권과 관료로 옮겨간다.
지난 수 십년간 한국 조선업이 세계 일등산업으로 효자노릇을 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1960-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유럽의 조선업계는 스웨덴 ‘뮐뫼의 눈물’이 상징하듯이, 대부분의 일반선박 물량을 한국과 일본에게 물려주고 살을 에는 고통 속에서 고기술 고부가가치의 크루즈선, 요트와 탐색선, 특수선 등으로 사업영역을 이동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소를 폐쇄시켜야 했다.
유럽이 겪었던 고통의 과정을 이제 한국 조선업계가 받아 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보호무역주의 부활이 예견되고, 중국경제의 경착륙이 이야기되면서 일반 선박의 수요가 격감하리라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때마침 터져나온 해양개발 특수가 한국 조선업계를 살려주었다. 지난 십 여년간 삼성조선이 필두로 수주하여 큰 수익을 올렸던 ‘드릴쉽’ 사업을 신호탄으로, 백 여척이 넘는 해양플란트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몰려들었다. 여기에는 사실상 특수수요로 형성된 해양플랜트를 제작할 곳이 한국 외에는 없었다는 저간의 사정이 있다.
유럽은 인건비와 노동시장의 성격상 이를 수주하여 건조를 수행하기 어려웠다. 싱가포르 조선업이 이를 감당할 만했지만, 우선 ‘반잠수시추선’으로 전문화되여 있었고, 건조 규모에서 일정 수요이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순 조선에서 산업플랜트로 다변화 되었던 일본 조선업계 역시 고임금과 더불어 사업영역을 쉽게 변신하여 해양사업을 수익성있게 감당하기 어려웠다. 중국 등 다른 아시아지역은 기술수준에서 제외되여 있었다. 해양플랜트의 특수수요는 한국 조선업계가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좋은 기회를 극적으로 반전시켜 수 조원 손실의 악재라는 구렁텅이로 조선업계를 떨어트린 중심에는 대우조선, 그 중에 남상태와 고재호라는 조연 배우, 그리고 이명박근혜정권과 서별관회의라는 주연 배우가 있었다.
이명박 부인의 연고로 대우조선의 사장으로 임명된 남상태라는 인물. 그는 해양플랜트가 가지는 기술적 위험성을 무시하고 발주처의 적정 예가에서 20-30% 이상 저가로, 그것도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괄수주( 턴키방식)를 무모하게 감행한 자이다.
해양플랜트는 시담에서 수주 그리고 건조와 진수까지 5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다. 자기 임기에는 진수와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위험으로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범죄를 저지른 자이다. 이런 관행은 그의 후임자에게도 되풀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행위가 대우조선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리한 수주경쟁을 통해 경험과 양질의 조건을 갖추었던 타 조선업체, 즉 삼성조선과 현대중공업에게도 파급되어 적자수주가 일반화되었다. 한마디로 대우조선의 행태는 물귀신작전이였다. 사태는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대우조선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무능과 범죄행위를 감추기 위해 분식회계를 감행했다. 조선같은 수주산업의 분식회계 기법은 매우 단순하다. 재고와 기성고 부풀리기, 그리고 회수 불가능한 악성채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우조선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하는 산업은행 관계자들이 이를 몰랐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거짓말이다.
악질적인 경영책임자, 이를 공모한 회계법인,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산업은행로 이어지는 총체적 부패고리를 통해 전형적인 공범 행위가 이뤄졌다. 더구나 이들 뒤에는 정권 실력자와 출세에 눈 먼 경제관료들이 숨어 있었다. 이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핵심들이다.
이미 서별관회의를 통해 5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흘러 들어갔고, 앞으로도 우선 1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가야 한다. 더큰 문제는 여기서 멈추질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이다,
뼈를 깍는 구조조정과 책임자 처벌 절실
눈을 다시 세계조선시장으로 돌려보자.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앞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완화되고, 세계경제가 회복되여 격감했던 신규 조선수요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일반 신규조선 수요가 한국 조선업계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없다. 중국도 열 개의 조선업체 중 7-8개의 업체가 극심한 수주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인건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들도 이미 조선산업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일반선박의 신규수요는 중국과 동남아 조선소를 채운 다음에야 남는 수요가 한국에 돌아온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한국 조선업이 목을 매는 해양플랜트 특수수요는 미국의 세일가스사업이 본격화되여 유가가 50 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격히 축소되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해양플랜트사업을 발표하여 한때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Petrobras(브라질 석유공사)가 브라질 경제의 재앙으로 변했고, 정치적 이슈가 되면서 비리혐의로 호세프 대통령까지 탄핵사태를 맞았다. 이미 발주되었던 계약도 시장환경을 구실로 취소되고 건조된 플랜트조차 인수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유럽정상들이 지구환경회의를 계기로 2050년 이후에는 화석연료로 운용하는 발전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마디로 석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해양플랜트수요는 이제 가뭄에 콩나듯 나올 것이 명약관화하다.
유럽과 같이 한국 조선업의 미래는 기술집약적이고 고부가가치선 중심으로 재편될 수 밖에 없다 (서울공대 교수들의 공저 <축적의 시간> 참조). 현재의 조선건조 시설과 규모는 너무 방대하다. 순차적인 전환과 축소 그리고 폐쇄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 첫번째 대상은 대우조선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에는 반드시 엄청난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고통이 무서워 이를 회피하면 더 큰 재앙이 닥치게 될 뿐이다. 썩어가는 다리는 잘라내야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이명박근혜정권하에서 사태를 책임져야 할 관료들은 썩고있는 다리에 안티푸라민을 발라대고 있었다. 이제 그만해라 !
대우조선소는 폐쇄하고,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나머지 조무래기는 법과 규정대로 처리하면 된다. 12조원에 달하는 구조조정비용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데 사용하고, 거제지역은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으로 지원해야 한다. 책임 회피와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미래를 망치는 자들을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에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김군의 죽음을 계기로 서울형 노동혁명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일단 서울시의 원인규명 작업, 책임자 처벌, 대안을 기대해 보지만, 이것은 서울시만이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노동 비하 관행, 노동을 오직 비용으로만 보는 이 사회의 주류 지배층의 사고방식과 대학을 나와야 인간대접 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의 관행이 깊게 얽혀서 그를 죽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144만원의 월급 중 100만원을 저축해서 대학에 진학하려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노동조건을 감수한 이유는 생활비와 등록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메트로 자회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였으며, 대학을 졸업하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으리라.
지난 6월 2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 중 숨진 김군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유가족을 만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었던 그는 고용불안 때문에 피켓시위도 했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없었고, 임금인상도 요구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손에 공구를 들지 않는 아버지 세대 메트로 출신 간부나 정규직 직원은 400만원의 월급을 챙겨도 자신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밖에 받지 못하면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이 역 저 역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노오력’해야 했다.
그가 살았다면 1년짜리 계약은 갱신되었을지 모르지만, 과연 정규직의 희망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과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열심히 돈을 모아 대학 졸업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소개서를 200번이나 써야 하는 지금의 대졸 백수 청년이 되진 않았을까?
그래도 19살의 젊디젊은 그는 이 사회가 만든 교육을 통해 정규직도 되고 관리자도 될 수 있다는 기성의 신화를 의문시할 수는 없었다. 현실을 그냥 감내하기에 그에게 ‘미래’는 너무 크게 열려 있었다. 불행히도 그에게 미래는 없었다.
노동비하/계층상승이라는 도그마는 이 사회 주류층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 시간제, 위험 작업장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기보다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관리자들에게 더 높은 보상과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특징이 아니라 한국적 관존민비, 노동천시의 관행이고, 그 최대 수혜자들은 관료와 기업가들이다.
공기업 비용절감, 경영효율을 거의 폭력적으로 강제하면서도 자신들은 어떤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다가 퇴직 후에는 공기업에 한자리 차고앉은 이 나라 고학력 관료들의 특권과 부패, 언론과 지식인들의 반복되는 도그마 유포 역시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경영자를 문책하지 않고 노동자부터 자르는 일은 가장 퇴영적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다.
메트로 노조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주요 업무 아웃소싱으로 자식 같은 청년들이 저임금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모르는 체했고, 시민들은 자신이 비용을 더 부담하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그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죄악시하는 언론에 박수를 쳤기 때문에 청년들이 이 저임금의 위험한 노동을 감수했고,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현재의 메트로 예산 범위 내에서도 김군은 250만원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고, 노조와 시민사회의 감시권이 있었다면 그는 2인1조의 작업팀에서 일하면서 최소한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한국만큼이나 노동자 권리가 약한 일본도 시간제나 비정규직에게는 돈을 더 얹어준다. 배관공이 교수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고,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 격차를 더 줄일 수 있다면,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노동 존중과 노동권의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김군은 정비공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면서 대학 가기 위해 그렇게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300여 명의 하객들이 행사가 열린 서울글로벌센터 회의장을 가득 메우고, 새로 출범하는 다른백년의 미래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다른백년 5인 이사들의 토크쇼. 김미경 PD의 사회로 열린 토크쇼에서 5인 이사들은 서로의 인연, 다른백년이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 향후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른백년 독수리 오형제, 5인 이사들의 토크쇼가 김미경PD의 사회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은 “내가 젊었을 때는 사병, 하사관의 입장에서 장교급 선생님들을 간판으로 모시고 여러 가지 일을 벌였는데, 내가 장교의 나이가 되고 보니, 사병과 하사관을 찾을 수 없다”며 “장교의 입장이 된 뒤에도 사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원장은 ”앞으로 다른백년에 젊은 학자들, 활동가들이 더욱 많이 모여서 참신한 아이디어와 활동이 분출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6일 창립대회에는 300여 명이 하객이 참석해 다른백년의 출범을 축하했다. 하객들이 5인 이사들의 토크쇼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은 “30년 넘게 신문기자로 일해오면서 항상 중립적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그런 직업적 태도를 통해 세상을 비판해왔지만, 그런 비판이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와 프롬코리아팀의 북 공연은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율리아 신 교수의 노래(왼쪽)와 프롬코리아 팀의 북 공연으로 출범식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곡성>,<아가씨> 두 작품의 관람 가능 연령은 몇 세일까? <아가씨>는 여배우 김민희의 파격적 정사장면이 있다고 하니 당연히 19금이라 여길 듯 싶다.
그렇다면 <곡성>은 어떨까? 몹시 훼손된 신체가 등장하고, 일가족 살인과 같은 끔찍하고도 잔혹한 일도 벌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몇 세 관람이 적당할까? 정답은 15세 관람가이다.
15세 관람가, 만 15세 이상 관람을 권하는 영상물.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나올 수 있으나 청소년들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을 수준의 영상물을 가리켜 15세 관람가라고 부른다. <곡성>의 최종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이다.
‘곡성’ 스틸컷.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곡성>이 개봉한 이후 과연 <곡성>이 15세 관람가가 맞는가에 대한 격론이 오갔다.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와 같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곡성>에서 가장 강렬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긴장과 공포일 것이다. 긴장과 공포는 관객에게는 충격으로 흡수된다. 물론 <곡성>에는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출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살해 도구가 직접 등장하거나 살해 장면이 영화적으로 연출되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연출된다는 점에서 찾자면 <곡성>에 연출된 가장 잔인한 장면은 아마도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받는 장면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성>을 보고 난 많은 관객들은 15세 관람가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는 영화가 무척이나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는 고백과도 같다. 비록 회칼이나 도끼로 신체를 훼손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끝내 마음을 졸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무섭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공포란 단순히 도구의 노출이나 장면의 재연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등급은 이렇듯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곡성>보다 더 잔혹할 것도 없어 보이는 영화 <신세계>는 청소년관람불가이다. 아마도, 범죄조직이 벌이는 범죄라는 점에서 좀 더 엄격하게 폭력성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세계>에 등장했던 정청(황정민)이 했던 대사, “들어와, 들어와”는 전 연령이 보는 T.V개그 프로그램 및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대사로 차용된다.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하나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하자면, 패로디가 굉장한 인기를 끌어 모은 셈인데, 패로디의 원관념이 애당초 19세금이다. 영화의 장면이나 내용이 주말이면 방영되는 짜깁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패로디는 단순히 소개된 정도가 아니라 대중적 소비가 축적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원관념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문화-놀이다. 19금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패로디된다는 것은 그 만큼 그 영화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영화가 19금이 되고, 또 어떤 영화는 청소년의 관람이 허용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문제적인 것은 대개의 한국 영화의 등급이 폭력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선정성에는 과도하게 엄격한 잣대를 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선정성에는 단순히 성적인 호기심 유발이 아니라 사회경제 및 정치적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청소년 관람 불가, 즉 19금을 받을뻔한 맥락도 여기에 닿아 있다.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한다는 묘사가 남북한 관계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주려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천만관객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모두 11편이다. 이 중에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가장 많은 관람가는 15세 관람가였고, <국제시장>이나 <괴물>과 같은 작품은 12세 관람가였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5세였는데, 왜 <국제시장>은 12세 관람가였는지 그리고 한편 동성애가 암시되는 <왕의 남자>가 지금 같았으면 과연 15세 관람가가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청소년 관람불가야 그래도 동의할 만 하지만 도대체 12세와 15세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급위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을 영화소비자들 역시 공유하는 사회적 합의여야 한다. 관객수를 몇 백 만 명씩 가늠하는 관람 등급이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뉘고 구분되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검열은 한국 영화계에서 사라진 단어라고 하지만 체감상 영화 등급제도가 검열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는 비단, 영화표를 사는 데 나이가 걸려 민감한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닐테다. <다이빙벨>과 같은 작품의 상영에 단지 프로그래머들만의 결정이 전부가 될 수 없는 상황도 여기서 멀지 않다.
무릇 추상적인 기준에는 그림자가 많다. 좀 더 투명한 기준을 제시할 수 없다면 말 그대로 창작자의 견해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한다. 등급을 나누는 일이 권력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는 16일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출범을 앞두고 김동춘 다른백년연구원 원장이 한겨레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겨레신문(6월 9일)에 실린 김 원장의 인터뷰를 전재한다)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백년을 모색해야 한다.”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각계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계에 봉착한 우리 사회의 근본문제를 진단하고 실천적 대안 담론을 기획하고 제시하려는 사단법인 ‘다른 백년’이 오는 16일 창립 보고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한다.
사진: 한승동 선임기자
‘다른 백년’의 세 축인 연구와 논평, 포럼에서 연구분야 조직인 ‘다른백년연구원’의 원장(비상근)을 맡은 김동춘(사진) 성공회대 교수는 6일 “지난 60여년간의 근대화와 재벌주도 경제성장의 결과, 한국 사회가 양극화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고, 남북 기득권 세력 권력 강화에 정치적으로 이용돼온 70년 분단체제가 더는 지탱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백년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에게 지난 100년은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시대였다. 우리는 반쪽국가의 반쪽 주권, 남북 대결, 개발독재형 신자유주의를 재검토·청산하고 새로운 사회, 새로운 정치와 국가건설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백년이라는 이름에는 김 교수가 “반쯤은 성공이고 반쯤은 실패”라고 보는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실패’를 앞으로 백년간 또다시 되풀이하게 해선 안 된다는 결의와 미래 비전이 담겨 있다. “지난 백년 우리의 근대는 처참했지만, 완전히 실패했다고 보진 않는다. 성장의 토대를 확립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김 교수 등이 생각하는 ‘백년’의 기점은 한반도 근대의 출발점이자 전혀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펼쳐보였던 1894년 동학혁명이다. 그가 말한 “강요된 식민지적 근대화, 서구 따라잡기(추종), 국가주의, 물질만능과 인간 존엄성 경시”의 “뒤틀린” 지난 100년은 동학혁명이 일제 등 외세 개입과 내부 역량 부족으로 실패하지 않았다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근대화와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는, 그와는 전혀 다른 100년이 될 수 있었다.
“이 모임이 시작된 2014년이 바로 동학혁명이 일어난 1894년 갑오년이 60년마다 돌아오는 갑오세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해, 곧 120년이 되는 해였다.”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출범하는 다른 백년은, 동학혁명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세상,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의 인권과 평등의 다른 100년을 세우자는 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동학농민운동 기록화
다른 백년은 진보적 가치와 담론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민간 싱크탱크인 ‘다른백년연구원’, 연구원에서 생산된 담론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매월 여는 토론회 중심의 ‘백년포럼’, 사회 현안들을 진단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논평 활동을 벌일 포럼 ‘백년을 위한 합의’를 축으로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위한 부정기 프로그램 ‘백년학당’ 등으로 짜여 있다. 사무실은 서울 마포 도화동(독막로)에 “상근자 몇명을 두고 회의 등 간단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정도의 공간”으로 마련했다.
김 교수는 다른 백년의 집행기관이요 중심인 위원회 형식의 ‘5인 이사회’와 10인 확대운영이사회의 핵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원장을 맡고 있는 연구원은 “40~5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주주의·사회적 경제·자영업연구·평화통일 등 4개 분과팀이 있고, 이와는 별도 조직으로 설문조사 등을 벌이고 분석하는 리서치팀과 30~40대의 박사급 소장 연구자팀(일부 중복)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는 구미 시민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의 하나인 민간 싱크탱크의 부재가 한국 사회의 중대한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이익을 대변하거나 실천담론이 부재한 아카데믹 위주의 대학 연구소, 선거용 단기 분석과 계파 나눠먹기 위주의 정당 연구소 등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엔지오(NGO)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단체인 일촌공동체를 만들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참여해온 이래경 이사장을 중심으로 김 교수,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 최상명 우석대 교수,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이사회에 참석한다.
그는 “1980년대 이후 그 줄기찬 민주화운동에 힘입어 국제사회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이자 가장 역동적인 나라로 칭송받던 한국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을 거치는 동안 일거에 후진국 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그만큼 우리 사회 민주화의 토대가 취약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백년은 바로 그 취약한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시 탄탄히 쌓는 작업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 지지나 반대 등의 현실정치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정치 바깥의 정치, 정당이 아닌 정치를 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 건설이다. 30년 민주화 운동의 에너지가 고갈된 만큼 미래의 정치가, 사회운동가들을 키울 것이다. 책임있고 행동하는 지식인을 키우고 실천적 지식 생산과 유통의 거점이 되는 대학 바깥의 대학이 되겠다. 대중과 소통하는 대안 언론의 구실도 하려 한다.”
그는 “국가, 시장, 사회의 실패와 지난 100년의 뒤틀린 근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시민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전략으로 수출주도 성장주의 발전전략과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발전경로를 수정해 생태와 사회의 조화를 고려한 성장과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지식정보기술 중심의 한국형 사회적 시장경제를 건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사회력’(사회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사회력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 보통사람들이 연대를 통해 강자에게 맞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자신의 대표를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사회력이 고갈되면 경제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오는 16일 저녁 7시30분부터 종각역 앞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창립보고대회에서는 김 교수의 기조강연과 5인 이사 토크쇼, 팝페라 가수 율리아 신의 노래, 프롬코리아(FK)의 드럼 연주 등이 펼쳐진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관련한 책을 검색해봤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세계 위인전 WHO?- 반기문>과 같은 어린이용 책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영어 연설문도 많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밑줄 그으며 학습해야 할 텍스트가 된 것이다. 간혹 성인용도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다 그만두었다. 독자를 초등학생 취급하는 영웅담이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그에 관해 책을 쓰는 방식은 오직 한 가지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를 초인으로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최악으로 평가받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위인전의 주인공으로 계속 남을 수도 있던 그가 대권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결과다. ‘포린폴리시’는 사무총장 후보 시절 미국 외교협회에서 문답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2010년 이렇게 썼다. “단조롭고 어색한 영어, 공허한 답변들은 나를 깊이 잠들게 했다. 후보 때의 낮은 기대를 감안하더라도 임기 3분의 2를 마친 지금 반은 최악이다.”
‘가디언’은 사무총장 되고 처음 워싱턴을 방문, CSIS에서 연설했던 때를 회상하는 기사를 2010년에 썼다. “세계적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수백명이 참석했다. 즉각 따분함과 실망감이 찾아왔다. 무미건조한 연설, 진부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되풀이되자 청중은 휴대전화와 블랙베리를 들여다보거나 허리를 굽힌 채 졸기 시작했다. 임기 4년째가 되어도 그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를 비판할 때 등장하는 용어는 항상 같다. 단조로움, 우유부단, 진부함, 소심함. 여기에 ‘어디에도 없는 사람’ ‘소재불명’ ‘무기력한 관찰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분쟁, 인도주의적 위기에 적시 대처하지 못해 재앙적 사태를 초래했다는 게 이유다. 반 총장 측은 ‘조용한 외교’를 오해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막후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면 곤란하다. 사무총장은 군사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없다. 그런 건 강대국 차지다. 사무총장은 국제 규범, 정의를 대변하는 자로서 도덕적 권위를 활용, 세계의 양심을 일깨우고, 국제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조용한 외교만 했다면 직무유기에 가깝다. 사무총장이 가진 유일한 자원을 내다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은 결코 조용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반 총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그만하자 사무총장은 본래 잘하기 어려운 자리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한국인은 그가 국제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에 만족했고, 그 만족 때문에 그를 대선 주자로 지지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국가를 이끌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해선 또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내년 1월1일 그의 결심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세계 최대 기구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10년간 지내자마자 한 국가의 최고 권력 5년짜리를 향해 다시 욕망을 불태울지 말지는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 자격을 부여할지는 우리 시민의 주권에 속하는 일이다.
국제사회가 평가한 그와 국내에서 알려진 그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는 겸손하나 소심하고, 성실하나 결단력 없는 사람이다. 그를 관료 출신이라고 할 때 단순히 경력사항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업무 태도를 뜻하는 것이다. 관료란 주어진 목표를 잘 알려진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다.
정치 지도자란 자기 비전에 따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덕목을 보여준 적이 없다. 노르웨이 유엔 부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대로 그에겐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내년 대선까지 그걸 갖추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은 당원, 지지자, 정당 지도자들과 갈등하고 경쟁하며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력, 이념·정책 없이 국가를 이끌어도 되는지 판단하면 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범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국정을 맡겨도 되는지 결심하면 된다. 정치 밖 인기로 정치를 하고, 정당을 사적 욕망의 수단으로 써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면 된다. 단기 대권 프로젝트라는 대선 지름길을 찾아내 정당 정치를 우회하고 그로 인해 정치적 퇴행을 무시할지 선택하면 된다. 정치가 좋아지지 않아도 삶이 나아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된다.
반기문 문제는 반기문의 문제이기 전에 시민의 문제다. 공동체를 누가 대표하고 이끌지 시민이 숙의하는가의 문제이다.
#장면 1: 영국 중부의 보스턴 시. 인구 3만 5천 여 명의 중소도시인 이곳에 거주하는 40대 중반의 제인 아주머니.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23일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에 표를 던졌다.
지난 6월 23일 EU탈퇴를 묻는 영국민들의 국민투표 결과는 지역적으로 뚜렷이 대조됐다. 북서부는 잔류를, 남동부는 탈퇴를 선택했다. (이미지 출처: BBC)
10여 년 전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폴란드인, 헝가리인 등 신규 EU회원국 시민들이 시 전체 인구의 10%를 넘어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보스턴 시는 75.6%가 탈퇴에 표를 던져 이번 국민투표에서 최고의 탈퇴 지지율을 기록).
#장면 2: 런던안의 런던이라 불리는 ‘더 시티’. 금융산업 중심지인 이곳에서 일하는 35세의 폴. 하루에도 수차례 프랑크푸르트나 파리에 있는 동료들과 업무상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낸다. 폴과 함께 일하는 거의 모든 동료들이 EU 잔류에 표를 던졌다(더 시티는 잔류지지율이 75.3%로 최고를 기록).
BBC 방송이 현장 르포로 보도한 위의 두 사례는 양극화된 영국사회가 왜 EU 탈퇴를 선택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BBC보도 참조).
바보야! 문제는 분배야
5월 초까지만 해도 EU잔류 지지가 거의 20% 앞섰다. 그런데 불과 6주 만에 무슨 마법이 일어난 걸까?
EU 탈퇴파가 이민문제를 과장하여 속인 전략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런던 같은 대도시는 사용되는 언어만도 200개가 넘는 개방적인 글로벌 도시다. 반면에 보스턴시 거주인의 2/3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EU회원국의 시민들이 영국사람 보다 취업률이 높아 복지혜택 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2010년 경제위기 후, 살림살이가 팍팍해지자 중소도시 시민들은 이를 이민자 탓으로 돌렸다. 탈퇴파가 주장한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를 도둑질한다는 선전이 먹혀든 것이다.
이번에 60%이상의 탈퇴 지지가 나온 잉글랜드의 북동부, 중부지역은 경제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도시들이 밀집해있다. 과거 산업도시로 번창하다가 쇠퇴한곳이 많다.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경제위기까지 겹치고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세계화(유럽통합)로 번창한 곳은 EU의 단일시장을 당연한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긴다. 일자리를 잃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해 반감을 갖고 일자리를 앗아갔다고 여긴 EU를 비난한다. 얼굴없는 ‘브뤼셀의 관료’로 표현되는 EU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가 소득 재분배에 더 신경을 쓰고 조세 정책도 개편해야 했는데. EU 잔류/탈퇴뿐만 아니라 세계화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영국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모든 불만을 국민투표에 쏟아 부었다.
EU에서 나가는 영국: 장밋빛에서 먹빛으로
EU 탈퇴파는 유럽연합에서 나와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온갖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번창할 수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했다. 탈퇴파 운동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우리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이민을 통제하고 EU의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가 더 호전될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탈퇴가 결정된 24일 금요일 세계 주식시장과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졌다.
EU는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장벽없이 이동하는 단일시장이다. 인구 5억 여 명(영국 포함)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은 EU의 핵심 브랜드의 하나다. 그런데 영국이 교역의 45%를 보내는 EU 단일시장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민을 통제하려고 할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나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은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단일시장을 유지하면서 다른 EU 회원국 이민이 사회 복지 체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몰려들면 이들의 복지혜택을 최대 7년까지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하지만 탈퇴 투표로 이번 재협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EU탈퇴파를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오는 10월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캐머론 총리가 물러나면 차기 총리로 유력하다. 뒤에 보이는 캐머론 총리는 영국을 분열시켰다는 이유로 지난 100년 동안 최악의 총리로 기록될 전망이다.
과연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슨은 J.K 롤링의 책 해리 포터처럼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주권을 되찾아 국경을 통제하고 이민을 줄이겠다는 그의 발언은 단일시장과 이민자 수 제한이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곡했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온 캐머런의 절친인 그가 기본적인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HSBC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은 벌써부터 런던 소재 일부 인력을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더블린 등으로 이전하려 한다. 더시티에 본부를 두면 나머지 EU 27개 회원국 시장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데 EU 탈퇴로 이런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
안타깝다. 브렉시트로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질 사람은 바로 서민이다. 탈퇴파를 이끈 보리스 존슨이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부자이기에 경기 침체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리적인 영국 시민들이 정부 정책 수정을 다른 방식으로 요구해야지 자해와 같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불확실성의 시대…우리의 운명은?
브렉시트는 EU에 아주 좋지 않은 시기에 터졌다.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은 터키에게 30억 유로(우리 돈으로 약 3조 9천억 여원)를 안겨주어 잠시 소강상태다. 그리스 경제위기는 물밑으로 들어갔을 뿐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이런데 영국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브렉시트라는 폭탄을 EU에 던져 버렸다.
미국과 함께 서구를 형성해 2차대전 후 국제질서를 함께 이끌어온 ‘유럽’이 브렉시트로 분열의 단초가 드러났다. 브렉시트를 가장 기뻐할 사람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위대한 러시아의 국제무대 복귀를 목표로 세우고 서구 주도의 국제질서에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에 계속하여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브렉시트 직후인 지난 25일 베이징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미국 대선에서는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지지를 얻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판 ‘트럼프 현상’으로 불린다.
영국서 도화선이 된 신고립주의와 민족주의 바람이 미국으로도 불어가 더 강한 바람이 될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과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사회경제적 위치가 매우 유사하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었지만 기존 정치권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의 EU 잔류를 위해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결국 그의 불장난에 집(영국)이 타고 있다. 누가 이 불길을 크게 번지기 전에 제대로 끌 수 있을까?
한 정치인의 잘못된 판단이 해당 국가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음은 물론이고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혼돈을 주었다. 세계화는 거부할 수 없는 큰 흐름이라고 치자. 소득 재분배는 정부가 얼마든지 신경을 써서 세계화의 낙오자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다. 영국의 국민투표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남성영화제’는 없는데 ‘여성영화제’는 있는 이유에 대해 굳이 말해야 할까. 여성은 남성과 대비되는 생물학적 구분이 아니라, 남성이 대변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학적 여성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는 건 아니지만(지금 한국의 대통령을 보라), 많은 여성은 새로운 가치를 구현한다.
최근 부쩍 잦아진 여성혐오 논쟁에서 드러나듯,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험난한 상황을 견뎌내 왔다는 뜻이다. 여성의 권익이 신장되는 과정에서 어떤 남성들이 불이익을 받았을 수 있으나, 수천년간 여성보다 더 많은 권력을 누려온 남성들이 ‘역차별’ 운운하는 건 넌센스다.
영화는 오랜 시간 남성의 영역이었다. 여배우를 ‘영화의 꽃’ 운운하며 받드는 척 하지만, 제작자, 연출, 기술 스태프 등의 대다수가 남성이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혹 제작자 심재명, 오정완, 이유진, 감독 임순례, 변영주 등 ‘유리 천장’을 뚫은 이들이 있었으나 다수는 아니었다. 심지어 카메라 같은 기계에 대해선 여성의 접근을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한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수잔 서랜든(왼쪽)은 남자의 턱시도를 영상시키는 의상을 입었고, 줄리아 로버치는 맨발로 레드카펫을 밟았다. 여성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는 드레스코드에 대한 상징적 비판이었다.
하지만 이제 영화현장에서도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5월 열린 제 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상징적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영화제는 지난해 구설을 겪었다. 칸영화제의 프리미어 상영은 엄격한 드레스 코드로 유명한데, 지난해 상영 당시 몇몇 여성 관객들이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가 입장을 제지당한 것이다. 칸영화제 측은 “신발 높이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올해 몇몇 여배우들은 지난해의 소동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배우 수전 서랜든은 남성 정장을 연상케하는 의상에 단화를 신었고, 줄리아 로버츠는 아예 맨발로 레드 카펫을 걸었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여성 감독들의 영화도 예년에 비해 늘었다. 21편의 경쟁작 중 3편이 여성 감독의 영화였는데, 특히 독일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르트만>과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호평받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여성 감독, 배우들은 작심한 듯 영화계의 여성이 처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머니 몬스터>를 연출한 배우 조디 포스터는 “대형 영화에 많은 돈이 흘러들면서 스튜디오 수뇌부는 위험 요소가 있는 인물을 고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위험 요소다”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여성이 이끄는 새로운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이 반가운 이유는 두 명의 남성 주인공이 쫓고 쫓기는 스릴러 영화들이 최근 한국영화에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 분위기의 영화가 관객의 이목을 끈다 싶으면 너도 나도 비슷한 영화들을 양산하는 것이 영화계의 속성이고, 영화의 장르가 그렇게 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의 한국영화는 그 정도가 심했다. 30~40대 남우 2명이 나와 얽히고 설키는 영화들이 대다수였다.
그 사이 많은 재능있는 여배우들을 만날 일도 드물었따. 이는 한국영화가 여배우만이 체현할 수 있는 다양한 정서, 가치를 활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며, 그래서 다양성을 핵심으로 하는 영화의 활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는 다양한 여성 감독들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들을 잇달아 내놓았다. 조짐은 독립영화계에서 먼저 보였다. 독립영화계 최대 축제인 서울독립영화제에는 지난해 51편의 본선경쟁작이 선정됐는데, 그중 26편이 여성 감독의 작품이었다. 여성 감독의 수가 남성 감독을 넘어선 건 처음이었다. 여성 감독의 작품이 늘어나면서 영화의 소재와 주제도 이전에 비해 다양해졌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상단 왼쪽),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상단 오른쪽)는 여성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관점을 보여준다. 최근 개봉한 ‘굿바이 싱글'(하단)은 여성감독의 영화는 아니지만, 여성들 간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류 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여성 감독들이 나오고 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초등 4학년 소녀들의 우주를 그려낸 수작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선과 갓 전학와서 친구가 없는 소녀 지아는 금세 서로 친해진다. 학급에서 인기 많고 성적도 좋은 보라가 지아를 끌어들이면서 선과 지아의 관계엔 금이 간다. 중산층 이하로 보이는 선과 영국에서 살다온 상류층인 지아의 계급은 한눈에도 비교가 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장점은 둘의 갈등을 쉬운 계급갈등으로 치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계급 갈등, 파국적 사건이 없이도 맺어지고 또 깨질 수 있는 관계와 감정의 미묘함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들>은 현실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극적인 사건 없이는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하는 한국 영화계에 대안적인 서사의 빛을 던진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다수의 비판, 소수의 호평을 들으며 상영된 영화였다. 연홍은 정치 신인의 아내이자 중학생 딸의 엄마다. 남편의 국회의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 딸이 실종된다. 남편과 그의 캠프 사람들은 선거전에 악영향을 줄까봐 실종 사건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고, 연홍은 홀로 딸의 행방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딸의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비밀은 없다>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기대되는 전형들을 모조리 거부한다. 편집은 혼란스러우며, 음악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의 귀를 괴롭게 하는 아방가르드 펑크 음악이다. 마치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한 이같은 태도는 <비밀은 없다>가 폭로하는 기성 체제의 음험함에 이빨을 드러낸다.
더 많은 여성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성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의 삶과 감정을 다루는 영화가 나와야 한다.
세상의 이목, 판단에 신경쓰지 않는 ‘이상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굿바이 싱글>은 그 사례다. 극중 톱스타인 고주연은 자신과 전혀 다른 처지에 있던 여중생 단지와 여성의 연대를 맺는다. 얼핏 억지스러울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굿바이 싱글>은 대중영화의 틀에서 이 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놓는다.
관객이 남성들만의 영화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민한 영화인들은 한 발 먼저 감지했다.
“17년 전에 제가 여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캠페인을 이끌고 싶다고 했을 때 여러분 모두는 저를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이 안 나오시죠?”
유럽의회 의원이기도 한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Nigel Farage)는 의회에서 조롱 섞인 연설을 내뱉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EU 탈퇴로 결론이 난 후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가까운 괴짜들’(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정도로 치부됐던 영국독립당과 파라지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정치세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파라지를 유럽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위로 선정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그의 가장 큰 성공, 혹은 실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성공’의 문턱에 다다른 것일까?
파라지는 지난 20여 년 전부터 ‘EU 탈퇴’를 주장해 왔다. 그리스와 독일처럼 구조적으로 ‘다른’ 경제체제를 지닌 나라들에 획일적인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래 보수당에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EU 출범의 기틀을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서명하자 당에서 뛰쳐나와 영국독립당 창당 멤버로 합류했다. 예전에는 EU 확대를 부르짖다가 일종의 ‘정치적 승부수’로 브렉시트를 택한 몇몇 정치인들과는 결이 다르다. 적어도 진짜 그게 옳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웃을 수 없게’ 된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정말로 활짝 웃으며 ‘환호작약’했다.
물론 일관성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다. 파라지의 언행에선 일관성을 넘어선 아집과 독선이 내비친다. 자신의 연설에 대해 동료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지자 그는 맞받아친다. “여기에 계신 누구도 평생 동안 일을 제대로 끝내거나 비즈니스를 해보거나 무역을 해보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을 그냥 들으세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내가 해 봤는데’ 스타일이다.
파라지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상품중개인으로 일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런던의 금융가인 ‘더 시티’로 바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는데 크리켓 선수 출신의 교사 존 드웨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내가 꽤 대담하고, 연단에 서는데 능숙하며, 세상의 이목을 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끌벅적하며, 뭘 팔아먹는데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파라지가 ‘정치’를 비전을 갖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설득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잘 먹힐 만한 ‘물건들’을 제시해 인기를 끌고 당선되는 잔기술로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드웨스 선생님이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듯, 잘 팔릴만한 물건들은 잘 안다.
런던과 일부 대도시에는 돈과 기회가 넘치지만 그 외 지역은 날로 쇠퇴하고 있다. 실업은 만연해 있고, 공공서비스는 줄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무척 복잡한 문제지만 쉬운 표적이 하나 있다. 모든 것이 최근 어디서든 손쉽게 볼 수 있게 된 ‘이민자’ 때문이고, 결국 EU 때문이라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 표지에서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의 상황을 ‘걸레가 된 유니온잭’으로 묘사했다. (사진출처: 이코노미스트)
파라지는 이런 정서에 편승해 “지하철을 탔더니 영어를 들을 수 없었다”며 사람들을 자극한다. 대놓고 이민자들과 살기 싫다고도 말한다. 그에게 무슬림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제5열’(간첩)일뿐이다. 브렉시트 홍보를 위해 그가 들고 나온 것도 난민들이 떼 지어 유럽으로 들어오는 포스터였다. 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이민이며 일부는 이슬람국가(IS)의 지원군이 될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국민족 강조하지만 다문화가정 출신
‘영국 사람’임을 강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파라지’라는 성은 먼 위그노 교도(16~17세기 프랑스 칼뱅파 신교도) 조상에게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주한 독일계 출신이다. 이민자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온 그이지만, 뿌리에는 프랑스와 독일계의 피가 스며있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파라지는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독일 국적 여성과 재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가 라디오 인터뷰 중 옆집에 루마니아 사람들이 이사 와서 신경 쓰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는 파라지의 가족에 빗대 “독일 아내와 아이들이 옆집에 있는 것과 차이는 뭔가”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는 “당신은 그 차이를 알지 않느냐”고 눙쳤다.
이런 태도에서 짐작가지만, 파라지는 종종 인종주의자라고 비판받는다. 독립당 소속 유일한 여성 유럽의회 의원이 파라지를 “반여성적인 스탈린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하며 보수당으로 옮기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1차 대전 참전용사여서인지는 모르겠으나, 1차 대전의 격전지를 돌아보는데 큰 열정을 쏟는 그의 모습에서 ‘그레이트’ 브리튼을 열망하는 국가주의적 냄새가 나기도 한다. 물론 술을 엄청 마셔대기 위한 핑계거리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EU회의론자로서 그와 가까운 동지였다가 결별한 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인종주의자라면, 그는 유능한 배우다. 그걸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보지 않는다. 그저 구시대적인 대외강경론을 펼치는 애국주의자라고 본다.”
그러나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은 그가 바란 대로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기보다 ‘브리튼 소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벌써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꾀하고 있고 나라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유럽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영국 선거에서는 7전 전패
파라지는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잇따른 망언과 구설로 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BBC 기자는 ‘(비판이) 들러붙지 않는 나이젤’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유명인사’에 가깝게 자리매김한 것에는 그의 독특한 인생역정도 한몫 했다.
파라지는 1964년 영국 켄트주 판버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도 ‘더 시티’에서 일하는 주식중개인이었는데, 5살 때 이혼한 알콜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 머리와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거의 절단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회복에는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자신을 간호해주던 간호사가 첫 번째 부인이 됐다.
이듬해에는 고환암에 걸려 왼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2010년 총선 때는 지지 호소 현수막을 단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 추락하기도 했다. 사고 직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회복해 지팡이를 짚은 채로 동료의 장례식장에 나타났다는 후문이 있다.
파라지는 1999년 남동잉글랜드 지역구에서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본격적 첫발을 내딛는다. 그렇게도 혐오하던 EU에 의원으로 입성한 이유를 묻자 그는 “밖에 있기보다 안에 들어가서 그곳을 바꾸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것이지, 유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는 것이다.
나이젤 파라지(왼쪽 두번째)가 2014년 5월 26일, 영국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독립당(UKIP)이 108년 만에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당체제를 무너뜨리고 1위로 도약하자 당원들과 환호하고 있다.
그는 2014년까지 연거푸 4선을 이뤄냈다. 특히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양대 정당 체제가 무너진 것은 108년 만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13년 그를 100대 영향력 있는 우익 인사 중 캐머런 총리에 이어 2위로 선정했고, 2014년 <더 타임스>는 그를 올해의 영국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강경파 유럽통합회의론자들이 모여 있는 유럽의회 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그룹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이 그룹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 같은 극우정당도 함께 속해 있다. 그는 의회 내에서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EU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크 바로 교통 담당 EU 집행위원의 비리 은폐 시비를 폭로했고, 이듬해에는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현란한 ‘개인플레이’에 비해 영국독립당 자체는 아직 기대에 못 비치는 성과를 내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아직 영국 의회 내에서는 단 한 석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파라지 본인도 총선에 모두 7번이나 출마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파라지는 현재 최다 득표자 당선 방식인 영국의 소선거제도가 영국독립당에게는 ‘악몽’이라고 말한다. 2011년 선거제도를 ‘선호투표제’로 전환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이를 지지하기도 했다.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그러나 ‘전략적 머리’ 없어
파라지를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가 재미있고, 달변에다, 사리판단이 빠르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파라지는 성공회교도이자 크리켓의 광팬이며, 켄트 해안에서 혼자 평온히 낚시하는 걸 즐긴다.
상품중개인 시절 파라지의 고객이었던 친구 스티븐 스펜서는 이렇게 말했다. “특이하고, 행복하고, 쾌활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는 첫인상을 받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주변에는 죽이 잘 맞는 중개인들이 뭉쳐 있었는데,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4피트나 치솟을 정도였다.”
그러나 리처드 노스는 이렇게 혹평하기도 한다. “골초인데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다. 라이프스타일은 형편없다. 그는 매우 친근하고, 과장되게 개방적인 사람처럼 다가오지만 그 이면은 매우 불안정하다. 그는 사람들과 디테일하게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맺지 못한다. 사실 그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소비해버린다. 사람들은 그의 주변에 모여들고 그에게서 힘을 얻지만, 파라지의 내면을 보곤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아마 수백은 될 거다.”
각종 ‘독설’과 ‘망언’에서 파라지의 그 불안한 면모가 읽힌다. 그는 2010년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저급한 은행원 외모에 젖은 걸레 같은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막말을 했다.
지난 3월에는 “국제사회의 현존 지도자 중 푸틴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미 대선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인물됨이나 시각에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가지 못할 행동들도 보인다. 1999년 파라지는 BBC가 자신의 유럽의회 선거 캠페인을 넉 달 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불법복제 해 판매했다가 공정거래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타고 있던 자동차 바퀴의 너트가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가 아니었냐는 것이다.
그는 석탄발전소 폐쇄를 비판하면서 풍력발전에 반대한다. 영국이 못생기고 역겨운 풍차로 뒤덮일 거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거짓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2008년 찰스 왕세자가 유럽의회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EU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연설해서 기립박수를 받을 때 파라지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왕세자의 발언이 “최고로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했다가 왕실모독죄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파라지는 또 비만이 흡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서 감자튀김(칩)과 도넛 가게를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총기소유와 범죄는 상관이 없다”며 총기소유도 합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리처드 노스의 이런 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마시고, 열심히 담배를 피우고 그게 파라지가 가진 매력이다. 그걸로 지지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지하고 전략적 두뇌를 지닌, 당을 이끌고 발전시키고 확장해나갈 수 있는 정치가를 찾는다면, 그는 그 같은 인물은 아니다. 영국독립당의 비극은 아마도 이렇게 대단히 효과적인 얼굴을 지녔지만 그 인물이 전략적 두뇌가 없다는 데 있다.”
파라지는 4일(현지시각) 결국 영국독립당 당수직을 던지는 ‘극적인’ 결말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유는 “내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것. 본래 직업적 정치인을 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의 정치적 목표인 EU 탈퇴가 달성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직은 유지하고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겠지만 다시는 총선 출마도 하지 않고 당수직에 복귀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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