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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날이 가까워오던 4월의 어느날, 지구밴드 친구들은 여우책방에 모여서 그날을 기념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이렇다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지구밴드 단독 콘서트를 열까!? 맹랑한 제안을 해보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연습할 시간도 연습할 곡도 마땅치가 않았기 때문에.

며칠 뒤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발신 환경정의. 2017년 환경정의가 선정한 환경책을 전국의 동네 서점에 보내 전시하는 ‘환경책의여행’을 기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언뜻 재밌어 보이지만 사실 크게 도움이 될 만한 행사는 아니었다. 헌책을 택배로 받아 전시하고 (전시만 가능, 팔 수는 없다) 되돌려주는 형식인데, 실상 책방이 전시 섹션을 따로 마련해 새책을 구비해 알리고 바로 판매하면 훨씬 수월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사람들은 환경책을 도무지 사질 않지 않는가. 이것은 생태여성주의 가치를 담은 책을 선별해 다루는 여우책방을 운영하며 알게 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다. 환경 고전이 뜸하게나마 꾸준히 팔리는 정도. 물론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새책을 알리고 한쪽을 크게 내어 공간도 마련해두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환경정의도 응원하고 싶고, 함께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매출에 큰 도움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손해날 것은 없다. 품 좀 팔지, 뭐. 이래저래 지구밴드 지구의날 엮어보자. 어라? 4월23일이 책의날? 그림이 좀 나오겠는 걸?

4월22일 지구의날 + 4월23일 책의날 + 5월5일 어린이날, 이렇게 두 주로 일정을 세우고, 환경책 전시 + 환경책에 밑줄 긋기 + 지구밴드 공연 + 어린이 환경책 빛그림 공연으로 내용을 채웠다. 여우책방의 어린이 친구, 서윤과 윤주가 지구밴드 공연 특별 게스트로 함께해 준다니 공연이 빛나겠다. 어머나, 환경정의에서 강연도 해주신단다. 환경정의 유해대기팀 이경석 팀장님의 강연까지, 완전 꽉꽉 채웠다.

뚝딱 홍보물 만들어 포스터도 붙이고 4월22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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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음… 사람들은… (‘역시’라고 말하기는 싫기 때문에 수식을 생략하고 하여간) 환경책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도 꿋꿋하게 엄청 재미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즐겼다. 지구밴드는 곡도 새로 만들고 빛그림책은 MB 살인충동이 일어나는 <강변살자>로 정했다. 음향과 영상 장비들도 빌리고 PPT도 만들었다.

행사 마지막날이자 정점 5월5일. 사람들이 와주길 바라며 초대하긴 했지만, 정말로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니 감격스럽다. 이렇게 맑고 좋은 날에, 그것도 어린이날에! 여길 와주다니… 친구 랄랄라는 막 지어 김 나는 떡까지 선물로 들고 왔다. 한 사람 한 사람 걸음이 소중하고 괜스레 미안하다.

나는 책방 지기이기도 하지만 지구밴드의 멤버로서 마음에 강렬한 열망이 일었다. ‘공연, 잘 하고 싶어..!’ 공연 앞두고 흔하게 가질 법한 마음 같겠지만, 사실 처음이었다. 걸음해 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시간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공연은 마음과는 달리 실수도 하고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그냥 그랬다. 그래도 사람들은 진심을 받고 알아주었다. 완벽한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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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시간을 지나 강연이 이어졌다. 강사님은 공연 뒤에 강연 일정을 잡으면 어떡하냐고 투덜대셨지만, 또박또박한 말씀에 모두 초 집중. 3-40분 가량 이어진 강연에서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미세먼지, 망할 중국 탓이라고요? 그런데 우리 삶에서 중국산이 없어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저렴한 중국산으로 편리하게 살며 중국산 미세먼지로 숨이 막히는 악순환. 자업자득이에요.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아요, 내 삶이 바뀌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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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모두에게 고맙다. 공연만이 아니라 스텝 일까지 다 본 지구밴드 멤버들, 지구밴드와 호흡을 맞춰 함께 무대에 서준 서윤, 윤주, 빛그림책 공연이 무언지 알려주고 꼼꼼하게 조언해준 정혜숙 샘, 하루 전날 급하게 드린 부탁에 흔쾌하게 스텝으로 함께해준 시연, 환경정의 ‘환경책의여행’ 담당자 박희영 님, 유해대기팀 이경석 님, 여우책방의 환상적인 조합원 피노, 피넛, 이번에도 음향장비를 빌려주고, 빌려주면서 배송까지 해준 쿠쿠, 늘 스크린과 빔프로젝터 신세지는 맑은내방과후, 그리고 귀한 시간 내어 객석을 빛내준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여우책방지기 홍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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