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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를 ‘방해’하고 있는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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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를 ‘방해’하고 있는 미국

익명 (미확인) | 월, 2018/02/05- 13:31

중국의 CGTN (China Global TV Network)에 최근 실린,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일고 있는 남북 화해 분위기, 북한 측의 의도, 이에 대한 미국 측의 우호적이지 않는 태도 등에 대한 기사다. 번역문과 영문 원본을 전재한다.(다른백년 편집자)

 

조선인민공화국은 미국이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파견함으로써 평양과 서울의 화해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수요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남북대화가 바람직한 결과를 맺고” 있지만, 워싱턴은 “남북이 함께 평화를 계획하는 시점에 한반도 인근에 핵 항모전단을 비롯한 전략자산을 전개함으로써 고의적인 상황 악화를 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리용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을 준비 중이며, 2월과 3월에 걸쳐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이후 남한과 대규모 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북한 외무상은 유엔 안보보장이사회가 남북 화해 과정을 환영하고 “주변 국가들”이 이를 저해하지 못하도록 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평양이 보내는 “상반된 신호”

평양의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둘러싼 1년의 긴장 이후, 북한과 남한은 1월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대화를 오랜만에 가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승인한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북한과 남한의 선수단은 다음 주 금요일 개막행사에 함께 입장하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구성하여 올림픽에 참여할 예정이다.

지난 목요일 북한 선수들이 남한의 도시 강릉에 위치한 올림픽 선수촌에 도착했고 인공기를 내결었다.

또한 140명 규모의 북한 삼지연 오케스트라는 남한에서 두 차례에 걸쳐 콘서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러나 미국은 평양의 대화 제안 의도를 의심하여 왔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서울과 워싱턴의 이간을 시도한다는 우려 속에서, 지난 화요일 백악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펜스(Mike Pence) 부통령을 올림픽에 참석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간질”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 미국 언론은, 평양이 동계올림픽 개막을 단 하루 앞둔 다음 주 목요일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포함하는 건군 70주년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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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싱크탱크 차하얼학회(Charhar Institute)의 선임연구원 왕총(Wang Chong)은 북한의 동계 올림픽 참가와 열병식 준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평양이 “상반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를 상대로, 북한이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이지만 동시에 자국 주민들 앞에서 “체면이 구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점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조셉 윤(Joseph Yun)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목요일 핵무기를 둘러싼 교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모든 옵션이 여전히 고려되고 있지만 워싱턴의 군사 옵션이 “임박”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DPRK: US is ‘disturbing’ inter-Korean reconciliati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has accused the United States of “disturbing” the reconciliation process between Pyongyang and Seoul, by sen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In a letter sent to UN Secretary General Antonio Guterres on Wednesday, DPRK’s Foreign Minister Ri Yong Ho said “good results are borne in the inter-Korean dialogue,” but Washington is “seeking to intentionally aggravate the situation by introducing the strategic assets including nuclear powered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into the vicinity of the Korean Peninsula at a time when north and south of Korea are charting a course of peace together.”

Ri accused the US of preparing for “preemptive strike” against the DPRK and planning to conduct a large-scale joint military drill with South Korea, after the PyeongChang Olympic and Paralympic Winter Games in February and March.

The DPRK’s foreign minister called on the UN Security Council to welcome the process of inter-Korean reconciliation and discourage the “neighboring countries” from undermining it.

Pyongyang’s ‘mixed signals’

After a year of tensions on the peninsula over Pyongyang’s nuclear weapon and missile program, the DPRK and South Korea conducted rare talks in January to facilitate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PyeongChang Games.

According to the agreement between the two sides that has been approved by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 delegations of the DPRK and South Korea will march together at the opening ceremony next Friday, and the two sides will form a united women’s ice hockey team to compete in the Olympics.

On Thursday, the DPRK’s athletes arrived at the Olympic Village in South Korean city Gangneung, where the DPRK’s national flag was raised.

In addition, the DPRK’s 140-member Samjiyon Orchestra will hold two concerts in South Korea.

The US, however, has been suspicious about Pyongyang’s motives behind its overture for talks. Amid concerns that DPRK leader Kim Jong Un is trying to drive a wedge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US President Donald Trump has decided to send his deputy Mike Pence to attend the games to prevent the DPRK from “hijacking” it, a White House official said Tue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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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while, multiple US media outlets have reported that Pyongyang is planning to celebrate the 70th founding anniversary of its armed forces with a massive military parade next Thursday, just one day ahead of the opening of the Winter Olympics.

Commenting on the DPRK’s participation in the games and its plan to stage the military parade, Wang Chong, a senior fellow from Chinese think tank Charhar Institute, said Pyongyang is “sending mixed signals”. The country wants to tell the world that it is a “peace-loving nation,” but at the same time it does not want to “lose face” in front of its own people, he added.

Joseph Yun, US special envoy on the DPRK, said on Thursday that all options remain on the table for solving the nuclear standoff, but he does not think Washington is “close to” the military option.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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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위성사진으로 바라 본 북한의 밤은 어둡다. 반면 일본과 한국의 밤은 인공 불빛으로 붉게 빛난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를 두고 북한은 후진적인 나라라고 주장하곤 한다. 이것은 북한의 편협하고 억압적이며 측은할 정도로 후진적인 체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또 남한의 빛나는 밤을 두고 진보, 첨단기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남한은 민주주의 및 진보의 빛을 받는 곳이고, 북한은 독재 및 무지의 어둠이 덮인 곳이라는 식의 이러한 설명은 한반도 위성 사진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머릿속에 부드럽게 흡수되고 미적 완벽성마저 갖춘 사진처럼 기록되고 있다.

한반도의 빛과 그늘(Korea at night)

한반도의 위성 사진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남한의 정치인과 학자, 언론 매체들 사이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고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낀다. 남한의 진보적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개성 공단과 같은 프로젝트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한은 북한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천연 자원 등으로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한의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이 독재 국가이고 한국을 무력으로 위협하고 있으며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한이 먼저 국제 사회에 완전히 문호를 개방해서 모든 핵 시설에 대한 완전한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한의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가정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양쪽 모두 남한이 더욱 발전했으며 북한도 늘어나는 국민총생산(GDP)의 혜택을 남한처럼 누리면서 자동차를 몰고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을 갖고, 넓은 집에 살면서 전 세계에서 히트한 케이팝을 제작해야 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정부를 가진 북한이 다른 나라의 모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지만 동시에 북한이 남한처럼 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나는 동의를 표현하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12년 동안 남한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남한의 심각한 문제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높은 자살률, 오염된 공기, 학교에서의 무자비한 경쟁, 젊은이들이 느끼는 깊은 소외감, 수입 식품 및 수입 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나 엄청난 수의 빈곤 노인층과 같은 문제들은 남한 사회 전역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 인공위성 사진이 미처 잡아내지 못하는 남한의 모습들이다.

남한과 북한에 관해 서술할 때 남북한을 인공위성처럼 높은 곳이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던 많은 남한 사람들로부터 평양의 시민들의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의 느낌을 전해들었다. 평양의 작은 채소 시장과 호텔의 소박한 장식을 마주할 때 남한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어딘가 꾸밈 없고 가식이 없음을 느꼈고 남한에서는 이미 사라진 어떤 중요한 것들이 그곳에는 남아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북한의 여성들이 남한처럼 사치를 누리지는 못하더라도 화장을 하거나 소비 경쟁을 해야한다는 압력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평양에는 명품 브랜드 의류에 대한 수요가 없다. 휴대전화에 중독된 청소년들, 불필요한 물건인데도 과시적 삶을 위해 일단 사게 만드는 여러 광고들이 평양에는 없다. 대신 북한에는 1960년대와 70년대까지 존재했던 남한 사회의 문화들, 이를테면 사람간의 관계의 돈독함이라든지 따위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련 논의할 때 남한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놓치는 중요한 문제가 또 있다. 언론에서 소위 ‘전문가’들을 통해 다루고 있는 북한 관련 모든 논의들은 경제 성장, 국내총생산(GDP), 생활수준, 생산 및 소비와 관련된 문제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북한은 선진국들 특히 한국에 견줘 크게 낙후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남한이 북한에 ‘현대적인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큰 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용어들은 본질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고 주관적이다. 남한에서 만들어진 그러한 가정들은 자원 낭비가 긍정적이며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고 간주하고 있다. 또한 더욱 크고 지나칠 정도로 난방이 잘된 집에서 살면서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소유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그것들은 달에게 기도하면 비가 오거나 거머리를 이용해 피를 빨아들이면 질병이 치료된다는 것만큼 허황된 이야기이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비에 초점을 맞춘 이러한 행동 패턴들은 깊은 소외감과 자살률 및 약물 남용의 증가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해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한국이 성공을 거둔 것에 대한 가설들은 이데올로기나 근거 없는 가정, 근대성의 신화에 근거하고 있다. 그에 따른 결과로 남한 사람들은 가정을 휩쓸고 있는 좌절감과 심각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공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반도의 밤을 찍은 위성 사진은 실제로는 한반도의 빛과 그림자가 완전히 뒤집힌 아주 다른 실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한 감정을 버리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을 중시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류가 지구 온난화(기후변화)를 겪으며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 속도를 감안할 때 지구 생명체의 멸종을 피할 수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적 변화와 그 결과로 인해 이미 일부에서는 멸종이 시작되었음을 다루고 있는 수많은 보고서와 책들이 나와 있고 이는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우리는 서울에서 모기가 12월까지 생존할 수 있으며 1월에 꽃이 피는 일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빠르게 진행되어 곧 한민족의 삶을 위협하게 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이런 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방치할 경우 물고기가 멸종될 정도로 한반도 앞바다가 따뜻해지고 산성화될 것이며 사막화가 확산할 것이다. 수입 식품과 화석 연료 제품의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남한은 절망적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통일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해답은 분명하다. 에너지 소비와 절약 측면에서 북한에 자리잡은 방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수만년동안 밤에는 어두워야 하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의 방식을 유지해왔다. 그런 방식 하에서 아파트 건물의 모든 불필요한 조명은 제거해야 하고 네온사인과 같은 상업용 건물의 전기 표지판을 사용하지 않으며 내부 난방을 크게 줄이는 한편 높은 천장과 콘크리트, 유리 및 강철 외관과 같은 건물의 낭비적인 디자인을 중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한국 역사에서 유지되어 왔던 검소함과 단순함의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한은 밤에 더 어두워져야 한다. 남한의 도시를 밝히는 데에는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는 화석 연료 사용이 큰 역할을 한다. 이는 끔찍한 대기오염과 과도한 연료수입 비용을 발생시키는 한편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할 지구 온난화를 증가시키는 등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심오하고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한국이 다수의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근대화와 발전을 이룩해 특별하다고 인정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비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신화를 주입 받아 왔다. 따라서 수대에 걸쳐서 근대화가 최우선 순위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화석 연료를 소비하고 천연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 근대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북한에는 매우 심각한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해법에서만 볼 때 한국은 북한의 ‘낮은 소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이상하고 심지어 터무니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러한 경제 성장의 수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한에서 밤새도록 불을 밝히는 그 수많은 불빛은 발전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사용해야 할 불빛을 빼앗아온 범죄이자, 그림자 가득한 위선적인 불빛이나 다름 없다. 남한정부는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생각해보자. 지금보다 좀 어두운 밤을 보내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거나 편지와 수필을 쓰고 숲속을 걷거나 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가. 일상 생활에서 연극과 음악공연을 하면서 무한한 의미와 깊이, 영적인 경험을 얻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정글과 스타벅스라는 우리에서 사용해야 하는 플라스틱 컵을 버릴 수 있다면 한민족은 훨씬 더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발견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생활 방식에 대한 힌트는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어두운 밤풍경을 갖고 사는 지금의 북한 사회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근대적이고 발전된 것만이 최고라는 위험한 개념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살면서 사회에 기여할 것인가?

나는 북한 주민들이 현재보다 더 자유롭게 생활하고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한 때 시민들이 경제적 독립성을 누리게 해준 가계 경영의 가게들을 파괴해가면서 장악해온 한국식 편의점에서는 소비주의에 찌든 음식만 공급될 것이다. 미래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풍요로움에서 빼앗아온 물질들을 소비하며 사는 것을 과연 통일 한국의 이상적인 밥상 풍경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또한 나는 한국인들이 무분별한 소비를 하도록 속박하고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반대로) 석탄 소비를 늘리도록 강요해온 보이지 않는 사슬에서 해방됨으로써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잔인한 문화로 인해 친구 및 가족으로부터 깊은 소외감을 느꼈던 현상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다.

자유는 정치 체제에만 국한된 용어여서는 안된다. 스마트폰을 가질 자유를 가진 대신 스마트폰 없이 살수 없는 물질의 노예처럼 전락한게 남한 사람들이다. 남한 주민들이 과연 북한 주민들에 견줘 더 자유롭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는가.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남북한 주민들 모두의 자유에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북한 주민들만 질적인 삶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가.

월, 2019/02/1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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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 미국에 끌려 다니는 유럽 국가들의 아성이 바로 우리 눈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다. 트럼프는 여러 국가들의 복합체인 유럽연합(EU)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부적절하고, 그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으며, 그들은 무너질만하다”. 28개 국가가 있으며, 5억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경제 규모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즉 약 19조달러에 달하는 유럽연합(EU)은 모든 중요한 부분에 있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EU는 러시아, 베네수엘라, 이란 외 EU내 28개국에 어떠한 해도 끼친 적 없었던 많은 나라들에게 제재를 가하라는 미국의 명령을 수용했다. EU의 외교 정책은 기본적으로 나토에 의해 주도된다고 할 정도로 군사적 기반을 더더욱 모스크바와 베이징을 목표로 가시화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을 위협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토 주도 하 군사력 투입이라는 굴욕을 받아들였다.

미국이 직접 혹은 EU를 통해 러시아 및 미국의 변덕과 규칙을 준수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국가들에게 가하는 미국의 제재조치는 러시아보다는 오히려 EU에게 훨씬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매우 분명한 일이었다. 이는 다른 EU 국가들보다 러시아 및 유라시아와의 무역에 더 의존하는 일부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 협상을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이란 및 이란과 거래를 하는 모든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제제를 다시 가하기로 결정을 내렸을 때 제재의 재앙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유럽의 탄화수소(천연가스) 관련 대기업들은 사업이 잘 안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독일이 이끄는 유럽연합이 이란과의 계약 협상내용을 굳게 지키면서 미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그리고 주로 탄화수소 관련 대기업들을 위주로 유럽 국가들이 지원한다는 사실에 대해 머뭇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너무 늦어버렸다. 유럽 내 기업들은 브뤼셀 EU 행정부의 미약하고 전반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말로 인해 EU에 대한 모든 신뢰를 잃었습니다. 많은 국가들이 핵 협정 이후 미국의 처벌에 대한 공포 및 유럽연합의 보호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인해 이란과 오랫동안 맺었던 계약 및 갱신된 계약을 저버렸다. 좋은 예로는 미국의 의도에 의해 공급원을 이란에서 러시아로 옮긴 프랑스-영국 석유 대기업인Total사가 있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EU내 국가들은 천천히 자멸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이 유럽연합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른바 민주주의의 중심부에서 그들에게 묻거나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지금 독일, 프랑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 사방에서 무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항의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신프랑스 혁명’의 뒤를 잇는’노란 조끼’라고 불린다.

최근 들어 독일 및 독일 비즈니스를 공격한 미국 사례가 있다.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독일 기업들이 2019년 말에 완공될 예정인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1,200km의 천연가스관 사업인 노드 스트림2에 계속하여 참여한다면,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최근에 경고했다. 그것은 사실상 유럽으로의 러시아 가스 공급 용량을 2배로 증가시켜준다. 대신에 미국은 특히 유럽이 미국의 영향권 안에서 경제적으로나 금융적으로나 거래를 유지하고, 어떤 식으로든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피하면서, 논리적으로 미국이 원치 않는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면서 미국의 셰일 가스와 석유를 구매하길 원한다.

외무부장관 Heiko Maas 외 여러 독일 장관들은 단호하게 미국의 진보 패권주의에 대해서 큰 소리로 ‘미국의 이번 시도는 완전히 실패할 것이다’라고 항의했다 “이봐 친구들이여, 너희들은 너무 오랫동안 미국 명사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무던하게도 애를 써왔다. 자 이제 그 동안 미국에 대한 복종에 장단 맞춰왔던 것으로부터 벗어날 때”라고.

프랑스에서는 지난 1월 12일 및 13일 주말에 노란 조끼가 길거리에 나와 독재자 마크롱, 긴축 정책, 특히 노동자들에 대한 절망적인 오만함에 대한 9차 시위를 진행했다. 최근 마크롱의 공개 발언은 자신이 비겁과 오만으로 가득찬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발언이다. “너무도 많은 프랑스인들이 현재 이 나라가 겪고 있는 골칫거리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설명하는 노력의 의미에 대해서 모른다”

노란 조끼 및 프랑스 인구의 대다수가 진심으로 마크롱의 사임을 원하고 있다. 시위자들은 프랑스 내무부 장관인 Christophe Castaner에 의해 한결같이 크게 축소 보고되고 있다. 지난 주말에 전국에 걸친 공식적인 시위자 수는 50,000명이었던 것으로 집계되었으나, 실제 수는 최소한 그것보다 3배 이상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세상이 일반대중들이 노란조끼의 시위운동이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믿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와 반대로, 그들은 마크롱 정권의 점차 거세지는 폭력진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RT 보고에 의하면, 마크롱의 지시에 따라 경찰은 점점 폭력성을 띄고 있으며, 군사개입을 통한 시위억제로 자신의 뜻에 저항하는 프랑스 민간인들을 통제하고 있다. 수천 명이 체포되었고, 수백 명은 경찰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엄청난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고, 노란 조끼의 생각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 확산은 주류 언론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프랑스 국민의 80%가 노란조끼 및 노란조끼의 아이디어인 시민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법안을 제안할 수 있으며, 이는 일반 대중에 의한 투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시민주도형 국민투표제( Initiatives & referendum)를 지지했다. 이 방식은 사실상 프랑스 의회를 우회할 수 있으며, 프랑스 헌법에 명시될 것을 요구한다. 그와 유사한 법률은 1848년에 스위스에서 제정된 이후 지금도 정기적으로 스위스 시민들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제도를 도입한 모든 국가들을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방법이다.

영국은 지금 혼란 상태에 놓여 있다.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국민의회에 의해 조직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런던 거리로 나와서 실패한 보수당을 교체하기 위한 총선을 요구했다. 그들은 연대로 프랑스의 노란 조끼에 합류했다. 영국 시위자들 중 많은 사람들 또한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노란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대외 선전에 좌지우지되는 시기를 지나고, 특히 2016년 6월에 대다수의 영국인들이 분명히 결정했던 영국의 EU 탈퇴라는 민감한 질문에서 크게 나뉘어졌다.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는 많은 영국인들이 그녀의 협상 결과는 “노딜”보다도 못하다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브렉시트 절차를 보기 좋게 망쳐버렸다. 이는 영국이 EU를 떠나기를 원치 않는 지명직 EU 관료들의 리더십과 밀접하게 공모하여, 그리고 EU에서 영국이 미국의 대리인으로 중대할 역할을 수행해줄 것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엄명 하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9년 1월 15일에 영국 의회는 영국이 협상된 브렉시트 조건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 또는 노딜-브렉시트 선호 여부, 또는 “리스본 조약” 50조(국민 투표 없이 28개 회원국의 수장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임시로 EU헌법을 대신한다.)에 따른 추가 협상 연장을 요청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투표하여 부결시켰다.

다른 선택지로는 총선을 통해 혹은 법적으로 2년 뒤에 가능한 두 번째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있다. 후자는 심각한 국민 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며, 이는 영국에서 이미 흔히 목격되었던 바와 같이 심한 경찰 억압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경우에, 내전이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란다.

몇 주 동안, 노란 조끼 운동은 긴축정책에 대한 민중의 불만 및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자주권에 대한 EU의 독재라는 이전과 유사한 이유를 근거로 하여 벨기에 및 네덜란드로 확산되었다. 지난 금요일에 노란조끼에서 활동 중인 벨기에인 한 명이 트럭에 깔려서 사망에 이르렀으나, 당국은 이를 사고라고 발표했다.

그리스 – MS 매체는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보도한다. 그리스는 지금 회복하고 있으며, 수년 만에 처음으로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공개 자본 시장에서 스스로 융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는 더 이상 극도로 흥분해 있고 악명 높은 트로이카(유럽 중앙 은행-ECB, 유럽 집행위 및 IMF)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스 인구의 약 삼분의 이가 여전히 생존 수준 부근 혹은 이하를 맴돌고 있는데, 이는 공공 의료, 적당한 가격의 약, 공립학교를 이용할 수 없으며, 수없이 여러 번 생활보조금이 삭감되고, 대부분의 공공 자산과 서비스가 헐값으로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몇 년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트로이카는 근본적으로 세뇌당한 대중들에게 “그것은 잘 되었다, 우리 트로이카는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다”고 전하면서 전반적으로 전 세계 대중들에게 해당 그리스의 이미지를 잘못된 방법으로 조작하기 위해서 그리스로 하여금 민간 자본 시장에게 의존할 것을 요구했다

아무것도 잘 된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으며, 그들은 슬픔보다도 더욱 분개하고 있다. 그들은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최근 그리스 방문 때 반대하는 시위를 했으며, 그들의 시위는 경찰에 의해 심하게 억압되었다.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이는 유럽이 그 동안 줏대 없는 유럽 국가들의 매우 억압적인 상태의 모습으로 형성되어 온 것을 보여준다.

1월 16일 수요일에 그리스 의회는 그리스 총리 치프라스에 대한 불신임안 투표를 실시할 수도 있었다. 그 공식적이고 믿을만한 이유로는 아마도 오랫동안 분쟁의 씨앗이 되었던 마케도니아 이름에 대한 논란일 것이다. 진짜 이유는 가난한 자의 마지막 생계수단까지도 빼앗아버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축정책에 의해 지속되며 점점 악화되는 경제적 고난에 따른 대중의 불만이다. 영국의 유명한 의학저널인 Lancet에 따르면, 그리스의 자살률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치푸라스는 일어날 수도 있었던 불신임안 투표에서 겨우 살아 남았다. 누가 치푸라스의 뒤를 이을까? 민주주의라는 용어에 속지 마시오. 그리스 내외에 있는 엘리트 집단은 정책 변경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그 때가 바로la Gilets Jaunes(노란 조끼)가 그리스에 들어올 때이다. 사회 불안을 계속 이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 및 우익단체인 Lega Norte의 연립정부가 부총리이자 내무장관인 Lega의 마테오 살비니에 의해 극우파가 되었다. 살비니는 분명하게 지휘하고 있다. 그의 동맹은 브뤼셀(유럽연합)이 이탈리아 예산에 규칙을 강요하려고 하고 있으며, 같은 규칙이 모든 EU 회원국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들먹이며 유럽연합을 향해 맹공격을 퍼붓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로스차일드 출신인 마크롱은 예산초과 마진에 관한 특수 권한을 가지고 있다. 살비니의 반브뤼셀 그리고 반EU 입장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그를 지지하는 많은 이탈리아인이 있다. 이탈리아인에 의한 노란조끼 운동은 결코 제외될 수 없다.

미국 패권의 종속국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이전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헝가리와 폴란드가 우익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헝가리의 반이민 정책 및 폴란드의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 간섭하는 EU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이 헝가리 혹은 폴란드가 취한 행동에 대해서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신경쓰지 말아라. 두 경우 모두 그 나라들의 자주권에 대한 분명한 간섭임을 보여준다. 유럽재판소의 강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폴란드는 이를 무시하고 사법제도 개혁 과정에서 해고되었던 재판관들을 복직시켰다. 폴란드의 나토에 대한 애정과 유럽연합의 NATO 영향력이 폴란드의 결정 번복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뿐만 아니라 폴란드에서도 대체적으로 민중의 불만은 여전히 강하다. 이민과 사법부라는 현안은 단지 좋은 구실일 뿐이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헝가리와 폴란드 모두 그들이 소련의 속국이라고 여겼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 “자유”는 유럽연합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전세계를 불안정 및 파괴 속으로 끌고 가는 동인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그것은 쉽게 말해서 제국의 꼭두각시이자 용병인 서방연합군의 무차별적 살인의 근원이고 대부분 지역이 무기력한 지옥 같은 곳이 되어버리는 중동에서 시작되며, 이로 인해 수백 만 명이 죽고, 유럽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수많은 난민 유입사태가 발생하게 되며, 이는 세 단계 중 두 번째 단계이다. 그것은 한참 진행 중이며, 우리 바로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노란 조끼, 긴축 정책, 불평등 심화, 실업, 금융제재 등에 의해 부적절한 방법으로 아무것도 없을 때까지 쥐어짜는 사회복지부문, 대중의 봉기에 대한 경찰과 군대의 억압이다. 그것은 대중들의 형편없는 무기력함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더 이상은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라고 외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모두가 원했던 방식이다. 혼란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더욱 좋다.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통제된다.

자 이제 3단계 중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 라틴 아메리카. 그것은 이미 3, 4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강제적인 패권국의 민주주의로부터 사실상 벗어나기 위해서 수십 년 동안 고군분투한 해당 국가들은 가짜 선거와 내부 의회 쿠데타로 인해 점차적으로 굴복되어 다시금 패권의 영향을 받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볼리비아를 제외한 남미 원뿔꼴 지역에 있는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및 파라과이는 이미 미국 패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페루, 콜롬비아, 에콰도르 및 가이아나는 신자유주의, 심지어 신나치주의가 드리워진 미국의 후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국 패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 그리고 멕시코가 있다.

특별한 분석을 통해 Thierry Meyssan는 “곧 있음 다가올 카리브 해 유역의 끔찍한 파괴”에 대해서 설명한다. 여기 미국 국방부가Rumsfeld-Cebrowski계획의 이행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를 봐라. 이번에는 카리브 해 유역의 국가들의 파괴가 목표가 될 것이다. Thierry Meyssan는 우방 혹은 정적에 대한 고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불안정 및 군사적 준비의 시기가 지나면, 브라질(이스라엘 지원), 콜롬비아(미국의 동맹국)및 가이아나(즉, 영국)에 의한 베네수엘라 공격에 대한 실제 작전이 수년 안에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John Bolton에 의하면, 작전은 베네수엘라 외 다른 폭정의 트로이카 국가인 쿠바 및 니카라과에도 시작될 것이다. 그 때가 되어봐야 그 계획이 어느 정도 규모로 이뤄질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야심으로 무너져가는 패권국의 실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설 지도 모른다.

파멸의 단일 공통요인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서구 금융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주체는 광분해서 날뛰는 민간은행들이다. 우리는 마구 날뛰고,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키고, 통제가 불가능한 금융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다. 막연히 앞으로 전진하는 끝없는 탐욕열차가 언제 꿋꿋이 버티고 있는 강철로 막힌 장벽에 충돌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것은 언젠간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미국 및 달러 패권주의에 의해 구성되고, 세계화된 민간 은행에 의해 유지되는 사기적 피라미드 시스템으로 인해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남을 때까지 착취당하는 것에 신물이 날 것이다.

우리는 경제 발전에 아무런 기여가 없는 민간 은행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가 힘들게 일해서 얻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제라고 칭하는 것이 우리들이 만들어 낸 부가가치라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소유이어야 할 모든 것들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빚과 돈으로 팔리고 있다. 아니다.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개인을 존중하지 않으며, 은행 시스템이 생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그것은 우리의 돈을 훔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스스로를 관리하고 기본적으로 어디에 우리의 돈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우리의 돈이 일단 민간 은행에 입금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면, 개인 은행들은 당신과 나를 위해서가 아닌 자본가들을 위해 일한다. 수백 년간 우리 머리 속에 주입됨에 따라, 우리는 단지 수익이 굴러들어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개자(은행)를 통해 우리의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면서 중개자를 이용하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고, 이를 정상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렇지 않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은 폐지되어야 하고,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민간은행은 근절되어야 하며, 지역과 자원개발 그리고 사회안전망과 진보를 위한 긴축이라는 구실 하에 행해지는 모든 것에 도움을 제공하는 세계화 개념으로부터 탈피하는 방법으로, 지역 경제생산에 기반한 지역화폐와 함께 작동하는 지역 내 공공은행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는 어리석지 않아야 한다. 진보를 위한 긴축이라는 것은 존재했던 적이 없다. 사기성 짙은 IMF-세계 은행 개념은 그 어디에서도 효과가 있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돈을 달러화 및 디지털화 하지 말아야 하며, 사람들의 성장, 즉 사회 혹은 국가의 성장을 목적으로 공공은행 시스템을 통해 돈을 출자해야 한다. 현재 노스다코타 은행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다. BND는 2008년 및 이후로도 몇 년간 위기를 겪은 미국의 노스다코타 주를 도왔는데, 이로 인해 미국 및 서방세계의 나머지에서는 실업률이 급증한 것과 달리 노스다코타 주는 경제 쇠퇴 대신 경제 성장과 더불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고용상태에 있게 되는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독립적 경제로부터 도움을 받아 우리의 독립적 화폐를 통해 우리 자신의 공공의 부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국패권과 종속국가들이 나쁜 방향으로 무너져감에 따라, 그들의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경제, 심지어 금 등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사기적이고 기만한 화폐제도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과 함께 어떤 것이 정상인지에 대해서 다시금 검토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한 번의 마우스 클릭에 의한 민간은행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빚의 노예가 되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순전한 명목 화폐로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노란 조끼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들은 지금 엉터리를 계속하여 전파하고 있는 마크롱을 프랑스 대통령직에서 사퇴시키기를 원한다. 자 이제 엉터리들이 점점 무너져 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당연시 여겼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시작을 해야 할 때이다. 미국패권에 매여있는 유럽 종속국은 무너져가고 있으며, 미국의 패권전쟁 및 미국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국가들은 깊은 구렁 속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Peter Koenig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지정학 분석가, 수자원 및 환경 전문가

그는 30년 이상 세계 은행 및 세계 곳곳에 있는 세계 보건 기구의 환경 및 물 분야의 전문가로서 일했다.

화, 2019/02/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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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재 정치구조와 실상은 완벽한 실패작이다

첫째 현존 정치지형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악질적인 이명박근혜 시대에 형성된 구질서의 산물이다.

둘째 여의도 국회는 촛불시민혁명이 요구하는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미래전향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입법은 고사하고,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위한 민생법안들을 외면하면서 친사업적(business friendly)이라는 핑계로 인터넷은행법과 규제프리존법 등 게걸스런 기득권을 강화하는 악법만을 양산하고 있다. 구질서 태생 집단이라는 한계에서 오는 예견된 사항이었다.

셋째 시민사회의 요구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자는 비례성 강화의 선거법 개정 요구에 대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밥그릇과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수구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거부의 입장을 노출하고 있다. 시민들의 요구는 안중에도 없고 제도 정치가 당신들이 밥먹고 사는 천박한 직업현장으로 전락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1700만 시민이 모인 광장의 민주주의로 탄생한 사실을 2년 만에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한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정치가 생물이고 변하는 현실 상황에 응동하는 주도적 유기체로 작동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과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신진대사가 활발히 이루어 져야 하는데, 현재의 주요 정당 구조는 외부 환경과 차단되어 스스로를 질식시키고 퇴화가 진행 중이다. 당연한 귀결로써 어렵고 힘든 시민들의 현실적 상황을 반영하고 이를 개선할 투쟁의 통로로서 정치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6월 민주화운동 이후 30년간 실패한 경험을 통하여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현안과 문제를 해결하는 주도성과 우선성이 제도정치의 영역에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위에 언급한 정치제도와 현황은 또다시 촛불혁명의 실패를 예고하는 매우 심각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하듯이 2년 뒤에 다가오는 미국대선을 기점으로 세계적 규모의 불황 그리고 뒤늦게 찾아오는 세기적 격변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측까지 감안한다면, 이를 대비해야 할 한국정치의 개혁이라는 주제는 단순히 선거법 개정과 개헌수준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접근과 구상을 논의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그간 시민사회에서 활발히 요구하여 왔듯이, 정치에 투입할 선량을 선출하는 절차인 선거법과 국가운영의 지침이 되는 헌법 사항의 개선작업에 더하여, 이제 정치가 지향해야 하는 공동체 윤리를 담아내면서 우리 시대를 고백하고 다가오는 시대를 준비하는 선언적 플랫홈 마련하고, 이를 실현하는 개혁 작업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그야말로 어느 시인이 노래하였듯이 ‘사회계약법을 다시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건데 제 2의 마그나카르타 같은 시대선언적 헌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루소가 이야기하였듯이 공민으로서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합의하여 일반의지가 관철되는 과정이 요구된다.

돌이켜 보면 지난 120여 년 한국의 근현대사는 서세동점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서양의 패권주의에 대응하여 민중 또는 시민들이 민족역사를 지켜오고 삶의 터전을 이룩해온 기록이다.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때로는 매관매직의 수단으로 쓰러져 가는 봉건 왕조을 방편 삼았고 때로는 근세사의 흐름이라는 핑계로 매국적인 친일행각을 일삼았고 때로는 민족의 장래를 망각하고 전일적 패권세력과 탐욕적 세계화에 편승해온 자기편애적 기득권 집단들에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새로운 장을 펼쳐온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은 항상 억압의 기제로서 공권력을 동원하는 국가기구를 방편으로 삼아 왔고 이에 민초들은 삶의 터전에 기반한 역동적인 변혁운동으로 대항하여 왔다. 다행히 419 혁명과 6월 민주화 운동 그리고 근래의 촛불혁명을 통하여 국가의 성격이 시민들과 대립항에서 시민들에 기초한 시민들을 위한 공생의 기반이라는 가능성으로 바뀌어 왔다.

한마디로 국가기구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억압적인 제로섬에서 탈구시켜 서로가 보완하고 필요로 하는 원-원 게임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쟁취해 온 과정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근대사의 피해자인 한국사회의 경로는 우리가 교육 과정에서 모범이라고 배워온 가해자로서 서구의 역사적 과정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구에서 형성되어온 민주주의의 형식논리적이고 절차적 보편성을 한국사회가 겪어온 체험적 맥락에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직관적 견해를 단순하게 표현해 보자면 근대사의 식민 지배자로서 서구사회는 한국헌법 전문에도 기술하여 있듯이 개인(자유)>민주(절차)>공화(내용)의 선차적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질서체계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천지인 합일의 오랜 전승 속에 동양사회는 인간(천명)=예의(관계)=상생(환경)이라는 터전 중심의 통섭적 맥락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본다.

앞서 나간 서구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복사하는 것보다는 상기에 언급한 역사적 체험으로서 양자간의 상호적 융합을 통하여 한국정치가 향후 전개 과정에서 형식적 절차 및 정합적 과정 그리고 실질적 내용을 공히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면서, 한국정치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모습으로 민본 민생 민락의 삼민적 지향을 되풀이하여 적어 본다. 전장前章에서 언급하였듯이 서구 민주주의가 개인에 기반하여 키워온 시장경제가 아니라, 상생에 기초하여 미래에 만들어갈 시민경제가 한국사회가 추구하여 나갈 대표적인 예시이다.

한편 경희대 김상준 교수가 지난 120년의 근대사를 30년 간격의 ‘악순환의 고리’라고 성찰적으로 지적하였듯이, 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지난 30 년간의 내용을 반성해보면 민중 또는 시민운동은 폭발적 고양기를 통해 기득권이 지배해온 국가의 성격에 변화를 이룬 후에는 불행하게도 공히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면서 영향력이 현저히 축소되어 왔고 이에 비례하여 민초들을 억압하는 기제들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면서 특혜와 기득권의 기반을 다양하게 재구축하여 왔다.

시대정합적 약속인 최저임금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공약을 방기한 채 이재용 석방과 조양호 면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촛불혁명 이후에도 비슷한 실패의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조루한 포스트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특히 탈법 불법 비법을 저지르며, 합의된 공권력과 법적 질서를 우롱해온 삼성의 이씨 가문과 이재용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촛불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무화 시키는 것에 다름없다. 이재용 구속과 처벌은 촛불혁명의 완성이다.

이러한 부정적 회귀 현상의 배경에는 수탈적이며 특혜적인 기득권 체계와 기반이 흔들리지 않고 강고하게 유지되어 온 반면에, 고점에 이른 이후에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동원정치가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 각자가 처한 사회적 현실과 경제적 입지에 따른 다양한 이해와 갈등의 노출로 조정이 어려운 현실, 특히 산업 내 노동자들과 현실세계 속 시민과의 단절 상황, 현실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직관과 즉흥에 의해서 이루어진 운동의 한계, 금융과 산업의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단위 국가로서 정부역할의 축소, 반공논리에 편승하여 지난 70년간 물적 기반이 강력해진 거대 교회집단들의 수구적 우익성향 그리고 끊임없는 역사적 공간과 국외적 지형의 변동 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정치, 변혁적 구상과 과감한 도전이 요구된다

여기서 우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하여 중요한 그리고 선택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로는 절망적인 한국정치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 그래도 전통적인 대의적 제도라는 방식으로 전업적인 정치인이 주도하는 정당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주력할 것인지, 지난 120여 년의 세월이 민중과 시민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열린 공간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고 감독하는 직접 민주제를 강력하게 도입할 것이지, 이와 관련하여 제도정치와 시민정치가 대립적으로 길항할 것이지 아니면 상보적으로 융합할 가능성이 있는 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미래 구상의 출발점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최근에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명확히 확인되었듯이 정치판과 행정기구가 거대한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자본그룹에 전적으로 포획되었고, 이들을 주군으로 모시는 관비官匪와 법비法匪들에 의해 완벽하게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있다.

이렇듯 부패하고 고착된 현실을 격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복잡계 이론에서 제시하듯이, 끊임없이 외부적 보충이 가능한 고에너지의 정치적 활력이 요구되지만 현존의 폐쇄적 정치 구조와 오염된 인적 구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현존 주류 정치세력들은 심하게 표현하자면 적폐대상들과 방조범 수준이다.

심각하게 훼손된 기존 제도정치와 정당구조의 개선에 대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로 전가한다. 다만 이미 구축된 제도정치를 해체하고 폐허 위에서 새로운 정치구도를 설계하고 도입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과 희생이 따른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반을 토대로 활용하되 새로움을 더하고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현시기 시민여론의 환경이 on-off의 결합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듯이 정치행위를 직업으로 정치인이라는 이름 속에 가두는 칸막이를 제거하고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가 안팎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충돌하고 상호적 융합이 가능한 절차적 접근을 제안한다. 촛불혁명을 공유한 대한민국 시민들은 과거처럼 억눌리고 조작되고 수동적인 군중이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자각하고 참여와 토론을 통하여 문제의 핵심을 깨뚫고 헌법적 주권자임을 선언하는 공민으로 인터넷 공간 등을 통해 조직되고 있는 행위주체이다. 임혁백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헤테라키 민주주의가 진행 중이며, 이는 퇴행하고 오염된 기존의 제도정치를 시민들이 직접 견제와 대안제시를 통하여 살려내는 활력적 방안이기도 하다.

현재 다층 다기적인 산업사회의 분화와 이에 따라 형성되는 사회적 계층적 연령적 유동성으로 인해 시민 각자가 취하는 입장과 이해 관계가 복잡해지고 분절화되면서 과거처럼 정권이 주도하는 노사정 또는 경노사위이라는 이름의 단순한 코포라티즘 방식만으로는 갈등적 현안을 심층적으로 해결해 갈 수 없다. 일부 제한적 집단들의 자기합리에 갇혀 있는 과거형의 되풀이 일뿐이다.

따라서 추가적으로 모든 시민들이 다양다층적인 방식으로 일상적인 참여가 가능한 직접 민주제를 도입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상황과 사안과 조건에 따라 직업정치인들에 대한 감시, 다양한 공간의 참여, 공론화, 시민의회, 민회적인 광장정치, 시민발안, 국민투표 그리고 상설적인 시민부 또는 직업대표제 기구까지 다층적이며 포괄적인 검토와 구상이 요구된다.

두 번째는 말 펀치와 할리우드 액션으로 포장된 야합적인 극장식 정치가 아니라 현실을 분명히 직시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갈등을 조직하고 절차적 투쟁을 전개하는 역동의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버니 샌더스의 표현에 따르면 0.1%와 99.9%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초超거대 부자와 월가의 탐욕을 거부하는 미국시민을 조직하는 것이 샌더스가 추구하는 진보정치의 근거지이자 목표이듯이, 이를 한국식으로 재구성하자면 0.1%의 자산가 계급과 이들과 이해를 같이하면서 공생하는 10%에 대한 대립항으로 90%의 소외된 시민들을 조직하기 위하여 진보 정치가 작동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과 해방이라는 정언명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치투쟁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 과정에서 획득한 사회적 법적 강제를 통하여 현재의 극심한 불균형 불평등의 수탈적 물적 기반을 모두를 위한 상생적 기반으로 재구성해 가는 것을 촛불 이후 진보적 정치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이에 새로운 정치가 지향해야 할 사회경제적 내용에 대해 저명한 정치학자 상탈 무페(Chantal Mouffe)의 제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1. 물적 기반과 서비스 생산을 위한 과학기술과 경영 능력의 진전에 따라 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확대적인 재분배와 이에 결합된 노동시간의 괄목한 만한 감소, 2 순수한 시장경제 대신에 다원주의적 경제를 위해 공적 영역과 사적 경제 모두와 상호작용하는 비영리적 공동체 활동의 대대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 3. 여타의 소득,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최저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것, 모든 경우의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안전망에 보완적으로(대체적인 것이 아닌) 제공될 것 – 인간사랑刊 이행飜譯 ‘민주주의의 역설’ P190-191. 참으로 한획, 한글자도 뺄 것이 없는 주옥 같은 조언이다.

세 번째, 미래를 준비하는 개혁작업이 시급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내는 못하는 무능한 정치현실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고에너지로 충전되는 정치활력과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신속한 응동성을 제도적으로 부여해야만 한다. 현재같이 국회의 입법과정이 모든 것을 정체시키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신속처리 방식의 도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예건데 무능한 의회구조(dead-locking)에 대해 대통령과 국민에게 해산할 권한을 부여하고, 동시에 막강한 권력을 지닌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회의 탄핵소추권뿐만 아니라 시민에게 직접 탄핵결정권을 부여하여야 한다. 이것이 시민주권주의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에서 오랫동안 실시해온 적극적인 시민발의와 국민투표 제도를 연구하여 한국사회에 맞도록 조정하여 적용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정치적 혼란을 염려하는 집단은 스스로 기득권이라고 자백하는 셈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지난 120여 년의 근대사 역정에서 오늘처럼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우뚝 세운 주역은 바로 민초들이고 시민군들 이었다.

한국사회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은, 이해관계에 얽혀 시대에 무감한 정치그룹이나 이해타산과 기회포착에 능한 공무원 집단과 시대에 영합하는 아류적 지식인 그룹 그리고 자기편애에 빠진 재벌가문의 후세들이 아니라, 각자의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오는 시민사회라는 바탕 위에서 제주의 강정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전개한 주민들의 평화를 위한 투쟁과 삼척지역의 공해 발전소 건설기획에 대항해온 환경보호의 기록들 그리고 백해무익한 사드의 배치를 반대하며 오늘도 투쟁하는 성주군민들 모습과 위대한 싸움을 주도해온 고故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에게 발견할 수 있다. 변혁에 따른 수구적 저항과 일시적 혼란을 두려워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과 선언대로 제도정치 내에서 핵심 현안이 고착될 때마다, 국회 위에 대통령 위에,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신속히 개입하는 정치트랙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시민의 직접 개입이 가져올 수 있는 비결정성을 걱정하지만, 우리가 정말 기피해야 하는 것은 온갖 이유로 기존의 잘못과 관행을 정당화하고 미래를 향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적 꼼수이다. 오늘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여의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네 번째는 3차 산업혁명을 넘어서 4차 산업으로 이행하는 문턱에 서있는 현재의 다기화되고 분절적으로 유동하는 사회경제적 현실 조건을 소선거구제라는 양당중심의 정치 구조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다. 마땅히 다층다양한 시민들의 복합적인 요구를 투명한 거울처럼 반영하도록 적극적인 연동형 비례제를 반드시 도입해야만 한다.

선도적인 시민사회 그룹에서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기도 하지만 필히 정치개혁의 시발점이자 최소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이명박근혜를 탄생시킨 준범죄집단 자유한국당과 과거를 망각하고 자폐성 자만에 갇혀 있는 민주당이 이를 거부하거나 온갖 구실로 지연시킨다면 이는 역사적 죄업을 짓는 일이다.

기어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다양한 시민집단들의 이해를 제도권으로 수렴해 낼 수 있는 연동형 비례제를 상기의 주요 정당들이 자신들만의 이해관계에 갇혀 끝내 좌절시킨다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들을 징치하고 거대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고 진보적 사회를 준비하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 그리고 시민사회는 분연히 일어나 강고한 연대로 대응하여야 한다. 상생과 개혁의 길목을 막아서는 소선거구의 악폐를 격파하는 유일한 통로는 함께 모여 힘을 합치는 일이다.

마치 87년 민주화대투쟁 당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듯이, 2016/7년 촛불광장에서 ‘이게 나라냐’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듯이, 상황에 합당하고 시민들이 환호할 수 있는 정치적 구호를 만들어 내야 하며, 함께해야 할 정당들은 과거의 구원舊怨을 떨쳐내면서 소아적 타산을 넘어 대국적인 입장에서 연합전선을 펼쳐 나가야 한다. 역사적 소명을 향해 헌신할 수 있는 시민에 의한 정치와 시민의 정부를 반드시 구성해 내야 한다.

정치와 제도는 시민을 위해서 작동해야 한다. 세계적 흐름 속에서 직접민주제 도입을 위해 투쟁하는 유럽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다음과 같이 전달하면서 이제 글을 맺고자 한다.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를 위해, 보다 많은 권력을 시민이 직접 행사하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작동하는 정치를 만들자”.

화, 2019/02/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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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호 대법정이 통일신학의 강연장이 되다

1991년 11월 1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대법정 417호실에서는 70을 바라보는 노령의 여신학자 박순경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1심 재판이 열렸다. 100여명의 방청객이 법정을 가득 메운 가운데 재판장 정호영 부장판사가 개정을 선언하자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기고 구치소 수감자들의 겨울용 회색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박순경 교수가 여교도관의 부축을 받으며 법정으로 들어왔다. 왼쪽 가슴에는 수인번호 ‘72’를 새긴 명찰을 달고, 까만 털실양말을 장갑으로 끼고 있었다. 여기저기 가벼운 탄식소리와 함께 방청석이 잠시 술렁거렸다. 박 교수는 방청석의 낯익은 얼굴들에게 잠시 고개를 돌려 눈인사를 나누고 교도관에 이끌려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사석에는 조영수 검사가, 변호인석에는 홍성우, 한승헌, 강철선, 백승헌 등 변호인단이 이미 나와 앉아 있었다.

재판장의 인정신문으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름, 직업, 주소를 묻는 간단한 확인이 끝나자 피고인의 모두진술 시간이 주어졌다. 박순경 교수는 구치소에서 공들여 작성한 장문의 모두진술서를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1시간 반에 걸친 모두진술에 이어 검사 심문, 변호인 반대심문, 판사 심문 순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박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은 크게 2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는 1990년 3월부터 정부가 불허하는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 참여하는 등 범민족대회추진본부(이하 범추본)에 간부로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이후 1991년 1월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이적단체인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를 결성하여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둘째 1991년 7월 일본 동경 재일 한국YMCA에서 개최된 ‘제2차 조국의 평화통일과 기독교선교에 관한 기독자 동경회의’에 참석하여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북한의 주체사상에 적극 동조하고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모두진술에서 박 교수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박 교수는 검찰이 현직 교수이며 신학자인 자신을 구속한 사유가 동경강연에 초점이 있었다고 보고 두 번째 공소 사실에 집중하였다. 반론의 요점을 요약하면 우선 자신의 동경 강연은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 시도이고, 내용상으로도 결코 ‘찬양’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강연에서 보인 주체사상에 대한 재해석 시도는 오히려 주체사상을 상대화시키고 따라서 그에 대한 비판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범민족대회와 범민련준비위 참여에 대해서는 자신의 활동내용을 검찰이 부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여 부당하게 확대해석한 점을 지적하였다.

박 교수의 모두진술은 250~260매에 달하는 장문으로 읽는 데만 2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것이었지만 백승헌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요약해서 낭독했다. 그런데도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 중에서도 동경 강연에 대한 신학적 변증은 거의 학술논문 수준으로 대법정을 신학강연장으로 바꿔놓은 듯했다. 그것은 박순경 교수가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이 날 재판은 5시간쯤 진행되었고, 재판장이 11월 8일 2차 공판을 선언하면서 폐정했다. 이 날 재판은 일반 언론에 크게 주목받지는 않았지만 한겨레신문에 죄수복을 입은 박순경 교수의 사진과 함께 보도되어 민주진영 안팎에 큰 감동을 던져 주었다.

11월 8일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박 교수에게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변호인 변론에서 변호인들은 박순경 교수가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학자로서 민족사의 정의를 대변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했다고 주장하면서 박 교수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변론했다.

마지막으로 최후진술에 나선 박 교수는 모두진술에서 밝힌 통일신학과 통일운동의 정당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역설하였다. 아울러 연약한 몸으로 겪는 철창 속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고통 속에서 ‘나는 홀로가 아니고’, ‘내 목숨이 내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백을 함으로써 방청객의 심금을 울렸다.

1991년 11월 22일 선고공판에서 박순경 교수는 징역 1년6월, 자격정지 1년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그날 저녁 9시경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된지 106일 만에 석방되었다.

이 재판과 수형생활을 겪으면서 박순경 교수는 8.15 해방과 분단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걸어온 고난과 희생의 길에 동참하고 민족통일운동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인물이 됐다. 그리고 박순경 교수가 법정에서 제기한 신학적 과제는 이후 통일신학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예견되었던 박순경 교수의 구속 – 범민족대회와 동경회의

박순경 교수는 1991년 8월 9일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로 서울지방경찰청 옥인동 대공분실로 소환되어 조사받고 8월 12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종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경찰 조사 3주 만인 8월 29일 검찰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약 한 달간의 검찰 조사 끝에 9월 27일 기소되었고, 11월 1일 첫 재판이 열린 것이다.

사실상 박 교수의 구속은 연초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었었다.

1991년 1월 23일 향린교회에서 계훈제, 이창복, 김희택, 김희선 등 60여명이 참석하여 ‘범민련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결성대회’를 개최, 준비위원장에 문익환 목사, 부위원장에 계훈제, 윤영규, 박순경, 권종대, 김종식 등 5명을 선임하고, 홍근수 목사, 이창복 등 12명의 준비위원을 임명했다. 이 회의 직후에 정부당국은 이창복 집행위원장, 김희택 사무처장, 권형택 사무차장 등 실행간부들을 전격적으로 구속하고, 범민련준비위를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일체의 활동을 불법화하였다. 문익환 위원장은 감옥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구속은 면했지만 부위원장, 준비위원과 더불어 일거수일투족 감시대상이 되었다. 준비위 부위원장 박순경 교수, 준비위원홍근수 목사, 김쾌상, 한충목 등은 결국 나중에 구속되었다.

이 회의는 1989년 1월 21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하 전민련) 창립 총회 결의에 의해 추진된 범민족대회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전민련은 연세대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3월 1일 남북 대표 각 10인씩 참여하는 ‘범민족대회 개최를 위한 예비회담’을 판문점에서 가질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이 수락하여 전민련은 3월 1일 계훈제 박형규 상임고문과 박순경 학계대표 오충일 대표단장, 이재오 조국통일위원장 등 28명의 대표단을 판문점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이 예비회담은 경찰이 대표단을 고양군 벽제검문소에서 전원 연행함으로써 무산되었다. 그해 7월 북측이 이듬해 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를 열 것을 다시 제안했다.

1990년 8월 15일 판문점 범민족대회도 남한 당국의 저지로 남측대표의 참가가 좌절되었고, 북측과 해외대표만으로 판문점 북측구역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방북 중이던 소설가 황석영 씨가 참가하긴 했으나 남측대표로서 공식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 대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중앙방송에서 이 대회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하 범민련)’ 결성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접한 범추본 남측본부는 격론 끝에 이 결정을 수용하기로 하고, 그러나 그 결정사항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 베를린에서 남,북, 해외 범추본 대표들의 3자회담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남측 대표로 조용술 목사, 이해학 목사, 조성우 평화연구소 대표를 파견했다. 1990년 11월 19일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베를린 3자회담에서는 “1995년을 통일 원년으로”라는 목표 하에 이를 추진할 민간차원의 상설적 통일운동체로서 범민련을 결성할 것과 남북 각각 범민련 지역본부를 건설할 것에 대해 최종 합의하였다. 베를린 3자회담 남측대표 3인은 11월 30일 귀국하자마자 김포공항에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합의한 범민련 결성은 예정대로 추진되었고, 이듬해 1월 23일의 향린교회 회의는 이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박순경 교수는 범추본 고문과 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90년 범민족대회 예비회의에 남측대표로 참석하려고 판문점으로 가다가 재야인사 27명과 함께 파주경찰서로 연행된 바 있었고, 이후에도 범추본 공동본부장, 범민련 남측본부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꾸준히 통일운동을 이어갔다. 그래서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후 공안정국으로 돌아선 노태우 정부가 90-91년 전민련과 범민련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구속할 당시에 이미 박순경 교수는 저들의 구속 대상에 올라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박순경 교수는 91년 8월 15일 서울에서 열기로 한 제2차 범민족대회에 남측본부 부위원장으로서 참가할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와 별도로 정부당국으로 하여금 박순경 교수의 구속을 결정하게 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구속 한달 전 7월 8일에 동경에서 있었던 제2차 기독자 동경회의에서의 박순경 교수의 발언이었다.

 

금단을 깨고 통일신학의 지평을 넓히다

동경회의는 조승혁 목사와 박순경 교수 등 남측 인사 30여명과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홍동근 목사 등 해외 인사 30여명,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서기장 고기준 등 북측인사 4명 등 60여명이 모여 평화통일과 기독교 선교에 관해 논의하는 기독자들의 모임이었다. 여기에서 박순경 교수는 2일째 회의에서 ⌜기독교와 민족통일의 전망⌟이라는 제목의 주제강연을 했다.

이 발표에서 그는 한국의 서양 기독교 선교의 유산을 물려 받는 반공기독교가 반통일세력으로 기능하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민족해방, 민족통일의 길임을 주장했다.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주장하는 인간개조론, 수령론 등도 민족복음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등 기존에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던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신학적 견해를 본격적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남한의 신학자로는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기독교사상과 주체사상의 대화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교계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 교수는 이 강연의 동기에 대해서 1991년 12월 28일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체사상을 언급한 것은 기독교 선교의 물꼬를 트기 위해 선교신학적 접근을 시도해 신학이 주체사상에 파고들지 않으면 기독교신앙과 선교가 북한에 뿌리내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체사상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의 ‘주체사상 찬양’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수령은 유한하므로 역사에서 퇴진하게 될 상대적 존재이며, 영생하는 집단의 주체, 즉 비어 있는 자리는 인간수령 이상의 신적인 자리, 하나님의 자리라고 강연에서 주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강연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당시 동경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보수적인 반공목사들과 공안당국에게는 박순경 교수가 ‘주체사상을 찬양했다’고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동경회의에 참석한 목사 중 15-6명이 검찰에서 박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고, 그 중 몇 명은 박순경이 주체사상·수령찬양자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박 교수의 강연은 결국 박 교수의 구속을 부르는 계기가 되었지만 어째든 금단의 영역을 깨고 통일신학의 지평을 넓혔고, 이후 통일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가톨릭신학대학 교수로서 신학생들과 함께 주체사상을 연구한 적이 있는 함세웅 신부는 박순경 교수의 강연을 읽은 소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저는 박 교수님의 동경 강연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이분을 통해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얻은 것입니다. 참으로 큰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신선한 시각을 지닌 이러한 신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희망입니다. 또한 이렇게 예리한, 그리고 용기있는 여성이 현존한다는 사실은 여성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이 가능하다는 여성해방적, 전인적 구원의 미래전망을 제시한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1991년 10월 24일 ‘박순경 교수 석방을 위한 기도회와 촉구대회’에서 함세웅 신부의 강연)

 

필생의 과제를 세우다 – 기독교와 민족과 공산주의의 대화

박순경은 1923년 여주에서 한학자 박용선 선생과 어머니 조원 사이에서 4남5녀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박순경의 부친은 선비로 인품은 학자이지만 생활 능력이 없었으며, 둘째 오라버니가 집안 살림을 지탱하게 했다. 박순경은 부모를 따라 서울, 인천 등지로 이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우 입에 풀칠하는 생활형편 때문에 학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10살이 넘어서야 겨우 인천에서 성냥공장에 다니면서 무료야학에서 공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학원에 어머니가 데려다 주면, 순경은 엎드려 잠만 잤다. 1935년 경 12살 무렵에 원주로 이사 가서야 비로소 간이학원 (초등학교 과정) 4학년에 입학했고, 반에서 1등을 하면서 아버지의 친구인 한학자 학원장이 순경을 4학년으로 월반시켰다. 그리고 봉산국민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학하였다.

졸업하고, 상명실천 전수과 2년을 거쳐 1933년 세브란스고등간호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 3학년 때 박순경은 친구 김옥선과 함께 1944년 좌파 민족운동가들을 만났다. 이 때 몽양 여운형 선생의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고, 용기를 내서 친구와 함께 혜화동 몽양의 집에 직접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당시 친구 김옥선의 오빠가 공산당 계열 독립운동가였는데, 그 오빠가 앓아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의주까지 가서 약병을 전하고 오기도 했다.

1945년 8.15 해방이 되자 간호학교 시절에 만난 민족운동가들의 영향으로 박순경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건준)과 인민공화국(인공)을 지지하였고, 해방공간에서는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항일독립의식과 함께 공산주의 운동이 깊이 의식 속에 남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에 어린 나이로 기독교와 민족과 공산주의와의 대화라는 필생의 과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1945년 봄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간 사이에 서울역에서 안국동까지 걸어서 한글학당에 다녔다. 그런데 해방 직후에 어머니와 아머지가 몇 달 사이에 작고하니, 박순경은 인생무상과 허무감에 빠졌다. 그래도 공부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우선 한글학원을 택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충격에다 끼니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무리하게 공부하던 박순경은 결국 허무감과 늑막염으로 쓰러졌다. 마산의 둘째 오빠 집에서 요양 중 병석에서 성경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구절을 묵상하다가 불현듯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고 허무의식을 극복하고, 신학공부를 해야겠다 결심하게 된다.

1946년 둘째 오빠의 도움으로 서울 감리교신학교 전수과에 입학했는데, 3년제 본과와 통합되어 1948년 졸업했다. 감리교신학교에 다닐 때에는 어느 정당에서 여론조사를 한다고 해서 박순경은 여운형계를 지지한다고 손을 들었다가, 하나님 동산에 붉은 마귀가 들어왔다고 학교에서 쫓겨날 뻔 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교수 한 분과 몇 명의 학생이 옹호해줘서 간신히 퇴학을 면했다. 1948년 봄 당시의 학제에 따라 박순경은 편입시험을 보고 서울대 철학과 2학년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신학에 몰두하였다.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에 심취하여 감신대 동기생들인 허혁, 이영빈과 칼 바르트 저작을 번역하기도 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박순경에게 민족 수난의 역사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하는 기회가 되었다. 6.25 발발 당시에는 서울에 남아 있다가 연합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비로소 거리에 나왔다가 서울대 병원 뒤에 켜켜이 쌓여 있는 시체들을 보았다.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과 피난민들의 처참한 모습들을 보면서 박순경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1951년 피난처 부산에서 서울대를 졸업하고 4년 정도 성신여고와 정신여고에서 영어와 독일어 교사로 봉직하였다. 그러나 박순경은 신학 공부의 꿈과 젊은 시절 세웠던 결심을 실현하기 위해 1955년 말 교사생활을 접고 미국 유학 길에 오른다.

1956년 초 에모리대학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여 1958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드류대학 박사과정에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지만 1년간 뉴욕 유니온신학교 에큐메니칼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1960년부터 드류대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고, 1966년에 철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여성으로서 조직신학을 전공한 한국 최초의 여성박사였다. 드류대학 시절 유니온신학교에 유학 중이었던 박형규 목사와 서광선 목사를 만났고, 이들의 도움으로 박순경은 1966년 귀국하여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이후 박순경은 이화대학에서 198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봉직하였으며, 1988-90년 까지 대전 목원대학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던 중 통일운동으로 1991년 구속되었다. 목원대학은 박순경을 즉각 해임하였다.

 

칼 바르트와 작별하고 한국신학으로 전환하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자 박순경은 ‘아이쿠! 내가 민족통일문제를 진작 취급했어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못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8.15 해방과 좌우이념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3년간의 해방공간, 그리고 6.25전쟁 당시 서울 시내에 나뒹굴던 시체들과 피난민의 참상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잠에서 깨어나듯이’ 이제까지 숙제로 남겨뒀던 민족통일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다. 이화대학에서 1974년부터 2년간 안식년 연구교수로 유럽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1974년 박순경은 민족문제 연구에 앞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만남’이라는 과제를 세우고 이념문제를 정리하기로 했다. 우선 칼 바르트의 고장 바젤 대학을 찾았다. 그 다음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튀빙겐대학으로 갔다. 거기에서 초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을 비롯해 많은 책들을 읽고 그들의 사상을 탐구했다.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마르크스 사상과 연관된 역사철학을 공부했다. 칼 바르트 신학을 비롯해서 그 계통의 1960년대 신좌파 운동의 대변자 헬무트 골비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이 2년간의 유럽에서의 공부 과정에서 박순경은 일찍부터 직관적으로 생각해왔던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만남’ 가능성을 재삼 확인했고, 그래서 이후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는 쌍둥이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 유럽 유학과정에서 박순경은 서양신학에서 한국 신학에로의 전환이라는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1975년 독일 동아시아 선교부가 주최한 ‘독일-한국 세미나’에서 강연하면서 박순경은 한국 신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민족분단과 통일문제를 한국 신학의 주제로 발표했다.

1975년 바젤에서 박순경은 바젤에서 유학 중이던 변선환 교수와 함께 칼 바르트 무덤에 찾아가 큰 절을 올리고, “이제는 끝입니다”라고 인사를 고한 사실이 한 때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순경은 단지 (옛 스승에 대한) 고별인사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하지 말기를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어쨌든 서양신학 에서 한민족의 신학, 한국 신학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귀국해서 이화대학으로 복귀한 후 박순경은 한편으로 민족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신채호, 박은식 등 민족사가들의 저작을 탐독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교회와 신학자들의 모임에서 통일문제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반공기독교를 비판하고 민족통일의 과제를 제시하는 통일신학의 글들도 연이어 발표했다. 귀국 후에 박순경은 남미 해방신학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여하였다. 그래서 1981년부터 제3세계 에큐메니칼 신학자협의회(EATWOT) 한국연락책임자를 맡고, EATWOT에서 발행하는 『Voices』라는 잡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는 여성신학을 개척하는 역할도 담당하여 1980년에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창립회장으로 선출되어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강단의 신학자에서 통일운동가로 – 6월항쟁과 조성만 열사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박순경을 서양신학에서 한국신학에로의 전환의 계기였다면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박순경은 민주주의 투쟁과 통일운동을 정치신학•통일신학의 주제로 설정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강화하게 하였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죽고, 6월민주항쟁이 활화산처럼 터지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박순경도 내가 민족사의 현장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6월항쟁 기간 동안에 이대 제자들이 학교 광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이대 정문 앞을 지나 신촌로터리로 향하면 박순경도 남몰래 그 뒤를 따라 시위대열에 합류하여 거리를 쏘다니곤 했다. 최루탄도 맞고, 거리의 군중들과 함께 경찰에 쫓겨 다니기도 했다. 언젠가는 전투경찰들이 이대 캠퍼스 안까지 들어와 학생들이 끌려가는 장면을 목격한 박순경은 쫓아가 울고 소리치며 연행을 막은 적도 있었으며 수배당한 학생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기도 하였다. 연세대에서 이한열 열사가 장례식이 있던 날은 감옥에서 막 나와서 장례위원장을 맡은 문익환 목사가 장례식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시청 앞까지 행진해 갈 때는 박순경도 신촌로터리부터 내내 눈물을 흘리며 그 뒤를 따라 갔다.

88년 이대 교수 은퇴를 며칠 앞둔 시점에 박순경의 영혼을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5월 15일 명동성당 문화관 옥상에서 서울대생 조성만 열사가 남북공동올림픽 개최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투신자살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5월 18일 이화대학 대강당, 은퇴를 앞둔 박순경의 마지막 채플 설교는 조성만 열사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자가 흐느껴 우는 바람에 학생들도 따라 울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은퇴설교의 일부분이다.

모든 피조물의 진통을 우리는 분단된 민족사회에서 체험하며, 더 구체화시키자면 5.18 피눈물 나는 광주사건에서 , 또한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부터 투신 살신(殺身)한 조성만군의 기막히는 사건에서 체험한다. 이 밖의 많은 사건들이 새로운 통일된 민족사회의 탄생을 외치는 소리들이다

은퇴 무렵에 이대 출신 여학생 한 사람이 찾아와 평화연구소 고문으로 참여해 주십사는 조성우 소장의 말을 전하고 간다. 그 여학생도 자기 학교 교수 중에 통일문제에 너무나 열심인 분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고 조성우 소장에게 소개했고, 조성우 소장도 너무나 뜻밖이고 놀라와 바로 그 여학생을 박순경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통일신학자, 조직신학자로서 학계에서는 이름을 날리던 박순경이지만 통일운동 진영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박순경은 조성우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고, 조성우는 박순경을 자신이 관여하고 있던 전민련 통일위원회 위원,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학계대표 등으로 추천했다. 이 때를 계기로 박순경은 통일운동 일선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통일신학자, 박순경

감옥에서 나온지 1년쯤 지난 1992년 11월 12일, 박순경은 그동안 걸어온 고난의 체험과 통일신학의 논문들을 한울출판사에서 두 권의 책으로 펴내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통일신학의 고통과 승리』와 『통일신학의 여정』이 그것이다. 이 출판기념회 소식을 듣고 옥중에 있던 문익환 목사가 무려 7차례에 걸쳐 연속해서 편지를 보내 축하와 함께 박순경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울러 박순경의 통일신학이 화해의 신학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책을 읽고 난 감동을 문 목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심도 있게 본격적으로 다룬 신학이 울창한 한 그루 상수리 나무로 자란 것을 보면서, 축하를 받아야 할 것은 한국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새 한국교회도 이만큼 자랐다는 것, 이만큼 깊어졌다는 게 그리도 자랑스럽군요.

박순경을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 곱고 단아한 모습에 감탄하면서,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 험난한 학문의 길을, 그리고 투옥까지 겪는 통일운동의 길을 걸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고운 자태 속에 숨어 있는 뜨거운 열정과 강인한 기백을 발견하면서 놀라곤 한다. 1962년 미국에서 박순경을 만난 박형규 목사에게도 그런 인상이 강력했던 것 같다. 1991년 8월 “박순경 교수 석방을 위한 기도회‘에서 ’내가 아는 박순경‘이라는 연설에서 박 목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박순경 박사 방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대접 받고 빵도 얻어 먹었는데… 놀랐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여잔가, 남잔가? 얼굴은 분명히 여잔데. 그분의 사는 방식은 남자로 하여금 굴복하게 만드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냐 하면, 보통 하나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남자를 상상하는데, 예컨대 예레미야, 이사야, 엘리야 같은 사람을 상상하는데, 내가 박순경 박사를 딱 보고는 ‘아! 여자도 하나님에게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구나’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박순경이 8순이 될 때까지도 설악산, 지리산, 관악산을 등산하고, 그 과정에서 5차례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71년 이대 기독교학과에 입학하면서 박순경을 만나 지금까지 스승으로, 어머니로 모시고 살고 있는 한신대 신학과 김애영 교수의 회고담이다.

내가 한신대 대학원에 다니던 1978년 가을 어느 날 연락이 오기를 당신이 이대 동료교수등과 내설악을 등반하던 중 마등령 정상에서 오른쪽 다리 골절을 당해 앰블런스로 이대병원에 이송되어왔는데, 내일 수술을 해야 하니 와 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로 짐을 싸들고 병원에서 선생님을 간호하기 시작했다. 퇴원 후에도 선생님 댁에서 몇개월를 간병했는데, 그 때 선생님과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제가 막연하게 느끼던 삶에 대한 회의와 방황을 모두 털어버리고, 일생을 바쳐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원초 박순경 박사 팔순기념문집 『과거를 되살려내는 사람들과 더불어』, 2003, ㈜사계절출판사)

범민련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나온 이후에도 박순경 교수의 통일운동 행보는 쉬지 않고 이어졌다. 1994년부터 6년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공동의장을 역임하였고, 이후에도 통일연대 명예대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2009년 6월에는 (사)통일맞이에서 수여하는 ‘늦봄 통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순경 교수는 올해 만 95세로 방배동 자택에서 박 교수의 저 구속사건이 계기가 되어 1991년 이래로 제자 한신대 신학과 김애영 교수와 함께 살고 있다. 2014년 11월 박순경 교수는 92세의 나이로 710페이지에 달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제1권 구약편』를 탈고하고 출판기념회를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인지 그 해 12월 빙판에서 낙상하여 척추압박골절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지금까지 잘 걷지 못한다. 또 2015년에는 대상포진이 발병하여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순경 교수는 굴하지 않고 집필계획대로 제2권 신약편의 총서론을 쓰고 있는 중이다. 제3권 성령편은 제자 김애영 교수의 몫으로 남겨두었는데, 박 교수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계획들이 다 이루어지기를 고대한다. 박순경 교수는 지금도 민족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쉼 없이 기도하고 있다.

 

공동선, 2018년 1-2월호 138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수, 2019/02/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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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근대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출발하여 자아의 주체성과 진리의 절대성, 즉 자아와 이성의 실체성(여기서 실체라함은 타자와 독립된 존재로서 단일한 속성을 지니며 고정불변의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로 대표적인 예로 플라톤의 이데아, 중세의 신, 근대의 자아 및 현대의 표상성을 들을 수있습니다)을 추구하였는데 그 근거는 자아는 이성적 존재이므로 이성과 과학에 의해 불변의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는 뉴튼의 근대물리학 성과를 철학적으로 반영한 것이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아와 진리의 실체성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자 칸트에 이르러서 선험적 주체와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진리를 주관화하면서 데카르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근대의 한계, 즉 자아와 이성의 실체성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플라톤도 인정하였듯이 자신이 제시한 실체 개념은 근원적으로 사유의 산물, 즉 관념이지 결코 현실적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여 근대의 자아와 이성은 중세의 신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복종 프레임을 벗어나기위해 초월적인 신을 우주밖으로 축출해버린 후 인간만의 자연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성적 존재인 자아를 실체로 인정하려했던 근대의 기획은 실패로 돌아가 버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해석해주는 실체론의 허구성을 버리지 못하고 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근대는 이성을 지닌 인간만이 감성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지배할 수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정당화하기위해 이성과 자아를 절대적인 실체로 간주하였으나 그러한 이성은 인간만이 지닌 실체도 아니며 또한 이성(분별지의 한계는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의 한계로 인해 다시 신을 보증인으로 호출해야하는 한계 나아가 칸트의 이율배반에서 보듯이 이성으로는 절대로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현대에 이르러서야 직접 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성의 한계를 파악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며 과감히 실체론을 해체하기 시작하였는데 그와 더불어 맑스는 기존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프로이트는 주체의 의식을 무의식의 산물에 불과 한 것으로 보며 근대의 주체와 진리의 실체성을 폐기하기 시작합니다.

니체는 서구철학의 뿌리인 플라톤의 정적이고 점적인 시간관을 영원회귀의 동적이고 선적인 시간관으로 전환시키면서 고정불변의 존재라는 것은 단지 인간이 만든 허상에 불과하며 모든 것은 영속적으로 변화, 생성하기에 고정불변인 실체는 이미 죽었으며 따라서 대표적 실체인 신 역시 죽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플라톤이 이데아를 인간의 사유에 의해 만든 허구의 관념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태동하여 니체를 계승한 푸코와 들레즈 그리고 데리다가 근대를 완전히 해체하게 되는데 이와는 별개로 하이데거와 화이트 헤드는 근대의 존재론을 바닥부터 의심하는 새로운 존재론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왔습니다.

한편 근대철학 입문서인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는 근대철학을 주체와 대상의 인식 그리고 진리라는 3가지 기준을 가지고 근대의 특징인 주체철학과 과학주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체와 인식과 진리라는 삼각점을 이어가면서 근대철학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다보니 서구 근대철학을 ‘인식론’의 측면에서만 파악하고 비판하는데 그쳤으며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근원적으로 비판, 해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게됩니다. 즉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서구의 존재론인 실체론을 현대과학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비판하다보면 서구 근대철학의 한계와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인식론적 관점에서만 비판하다보니 현대철학의 정수와 흐름을 존재론적으로 이해시키기가 다소 어렵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하여 필자는 근대물리학이 제시한 존재론인 실체론과 현대물리학이 제시하는 존재론인 비실체론(생성론,사건론,과정론,관계론)을 비교, 분석하는 차원에서 현대철학을 설명해야 현대철학의 흐름, 즉 포스트모더니즘과 과정철학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해보자면 푸코나 들레즈 및 데리다는 실체를 동일자라고 똑같이 호칭하고 있는데 다만 동일자에게 포섭되지 않거나 배제되어버린 ‘다름’을 푸코는 ‘타자’ 들레즈는 ‘차이’ 그리고 데리다는 ‘차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동일자, 즉 실체를 해체하고 ‘다름’의 고유성과 등가성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그 근거는 현대물리학은 고정불변의 실체를 부정하고 모든 존재는 시공간상 사건들의 인과적 과정이라는 과정론을 존재론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철학에 도입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게됩니다.

한편 동일자를 해체하는 방식으로 푸코는 동일자와 타자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없애자고 주장함으로써 비실체론 중에서 ‘관계론’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들레즈는 기존의 차이가 없는 동일성 개념을 해체하고 동일성의 의미를 차이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주장합니다. 이는 ‘차이가 없는 동일성’을 ‘차이가 있는 동일성’으로 대체함으로써 기존의 차이가 없는 동일성 즉 실체를 해체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비실체론 중에서 ‘과정론’의 측면을 부각시킨 관점이라 할 것입니다.

들레즈는 동일성이라는 개념을 폐기하지 않고 굳이 유지한 이유를 지식담론의 생산적 효과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푸코도 평생 동일성을 해체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으나 말년에 이르러 해체해야 할 지식담론이 오히려 개체가 사회화되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요악이기에 그나마 지식담론 즉 동일성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라는 태도로 변경한 것과 동일한 입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해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동일성’ 개념을 완전히 폐기해 버리고 ‘연속성’ 개념으로 대체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현대물리학에서는 존재는 시공간 사건들의 인과적 연속체이기에 들레즈가 언급한 차이의 반복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담아내는 개념으로서는 동일성보다 연속성이 훨씬 정합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써 지금의 내 몸은 태어나서 현재까지 차이의 반복 즉 현재의 몸은 태어날 때와 동일한 몸이 아닌 차이들이 연속된 몸이기에 동일성이 아닌 연속적 존재라는 개념이 더 실재와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연속성 개념은 생성과 연기의 일종인 윤회를 설명함에 있어서도 유용하다 할 것입니다.

한편 데리다는 서구문명을 실체와 비실체의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불평등의 계서적 문명으로 보았기에 아예 동일성 개념을 폐기함으로써 실체를 해체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사건과 사물은 모두 차연(차이의 연기라는 의미로 들레즈의 차이의 반복과 같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동일자 즉 실체란 인간이 만든 허상으로 실재 세계에는 있을 수 없으므로 소위 동일자인 텍스트를 직접 해체하여 동일자 뒤에 숨겨진 타자들의 진정한 차이 즉 타자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세상에 등가적으로 드러내어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 동일자와 타자로 가르는 서구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비실체론의 ‘사건론’의 측면을 부각시킨 관점이라 할 것이며 푸코나 들레즈와 달리 동일성의 유용성(개체를 사회화시키고 질서를 유지시키는 효과성으로서의 유용성)마저 인정하지 않고 철저하게 실체를 해체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대철학은 크게 생성론의 과정철학과 해체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별되고 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로지 해체만 언급하였기에 새로운 비실체론적 존재론을 재구성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들레즈는 자신이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하는 태도가 자신이 해체하고자하는 동일성을 재부활시키는 작업일지도 모르기에 이를 거부한다고 밝히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존재를 ‘동일성의 실체’가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으로 존재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된다면 우리는 세계를 전혀 새롭게 해석할 수있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차후 불교의 연기와 중도를 설명할 기회에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동일성, 즉 실체를 해체만하는 입장이기에 대안으로 현대물리학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비실체론적인 존재론, 즉 연속성의 생성론, 과정론의 존재론을 재구성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과정론의 존재론을 받아들여 현대과학에 부합하는 철학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자본은 고정불변의 동일자(실체)가 아니며 노동 또한 항상 타자가 아니다. 하여 자본과 노동의 경계를 없애 버리자.‘

목, 2019/02/2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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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개벽론>과 <근대론>을 구분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착할 수 있으니까요. 박맹수 교수님께서도 한국 근대의 탄생이 나올 때 개화에서 개벽으로를 제목으로 잡아야 한다고 충고해 주셨습니다. ‘근대’는 진부한 주제라고 하면서요. 아마 같은 역사학자라서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막상 책이 나오고 난 뒤에 일부 독자들이 “근대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후기를 써주셔서, 학계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근대’가 반드시 진부한 주제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근대’ 개념에 대한 재인식과 더불어 ‘개벽’이라는 말도 사회적으로 서서히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신비적인 이미지도 조금씩 걷히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지적하신 대로 꼭 ‘근대’라는 번역어에 기대지 않고 곧바로 ‘개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렇게 된 데에는 선생님의 “다른 백년, 다시 개벽”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많은 공헌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유라시아 견문이라는 ‘실증’을 통해서 나온 결론이 ‘개벽’이어서 종래와 같은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미래학으로서의 개벽학

“개벽학은 미래학이요 지구학이고 동서학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말씀에 개벽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한국학은 ‘미래학’이라기보다는 ‘해석학’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릅니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데 주력해 왔으니까요. 그것도 바깥에서 빌려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는,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항상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처방을 외국의 유명한 학자에게 구하려는 태도도 이러한 학문풍토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지난 이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의 DNA에 각인되어 온 관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19세기의 ‘개벽’은 우리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일종의 태도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전도 만들어 본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개척정신은 「삼일독립선언서」의 첫머리에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한다”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개벽학의 첫걸음은 100여 년 전의 미래지향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미래의 주인이라고 하는 ‘주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 이런 의식이 개벽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학으로서의 개벽학

‘지구학’은 전통적 개념으로 말하면 ‘천지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지난 2천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우주론을 지난 2백여 년 동안 상실한 것입니다. 한문고전을 보면 거의 모든 우주론이 원기(元氣)에서 시작해서 천지가 형성되고, 거기에서 음양과 오행이 분화되고, 여기에서 다시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순서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절대로 인간이 먼저 나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시대 학문은 기본적으로 ‘지구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지학에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는 네트워크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고 보는 세계관입니다. 그래서 요즘과 같이 인터넷이나 디지털로 만물이 연결되는 시대의 세계관과 더 잘 부합됩니다. ‘한울’이나 ‘한살림’이라는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개벽학은 이런 천지학적인 우주론, ‘한울학’적인 세계관을 회복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근대인’, ‘개화인’에서 ‘지구인’, ‘개벽인’으로 전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세계사상사적 의미

“<동서 문명의 회통과 신문명의 창조>라는 21세기의 과제가 이미 (동학의) ‘다시 개벽’의 외침과 깨침에 내장되어 있다”는 선생님의 지적은, 윤노빈 식으로 말하면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정확히 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아무도 동학을 이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혁명’이나 ‘일제에 대한 저항’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몇 년 전에 어느 학술대회에서 동학에 대해 발표하시는 선배 학자의 토론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라는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선생님은 동학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시는 것은 아닌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여전히 동학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못 보고 외국의 사례찾기에 급급합니다. 눈이 바깥으로만 향해 있으니까요. 물론 지나친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가 배제되니까요. 모두가 양극단입니다. 동학은 우리 것이라서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것이라서 좋은 것도 아닙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동서학을 회통시켜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려고 했기 때문에 세계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신생철학(1974)의 저자인 윤노빈 선생님도 이 점을 말하고 싶어서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를 썼을 것입니다.

 

회통과 창조의 정신

동학의 특징이라고 하신 ‘회통’과 ‘창조’는 개벽학의 기본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회통은 중화주의와 같은 중심주의나 제국주의와 같은 패권주의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발상입니다. 항상 자기가 중심이 되고 타자는 주변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니까요. 일종의 ‘본말’ 관계입니다.

반면에 회통은 본말을 설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려 하는 ‘포함’의 태도입니다. 최치원이 ‘포함삼교’(包含三敎)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타자를 맹목적으로 쫒아가는 ‘축물’(逐物)과는 다릅니다. 장자나 율곡 식으로 말하면 자기를 비우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허심응물’(虛心應物)에 가깝습니다.

창조는 이러한 비움과 회통의 태도에서 가능합니다. 어느 하나의 틀에 사로잡혀 있는 축물의 상태에서는 모방과 추종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에 ‘근대의 캐슬’과 ‘개화의 아성’으로부터의 탈출이 요구됩니다. ‘근대’라는 정신적 식민지상태, 영혼의 중독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개벽은 이러한 영혼의 해방을 도와주는 일종의 ‘역사적 도우미’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중화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개벽이 탄생했듯이, 지금의 근대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벽의 경험을 참고해야 합니다.

  

개벽교육과 교육개벽

선생님이 <개벽학당>을 구상하신 것도 이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시켜 다가올 개벽사를 개척할 ‘개벽의 일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개벽교육’이자 ‘교육개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취지로 저희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도 오는 3월부터 은덕문화원에서 매달 <개벽포럼>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한 달에 한 명씩 각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개벽하기 위해 실천하신 분들을 모셔다가 말씀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도법스님의 <생명평화와 개벽>을 비롯해서,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김경일 총장님의 <원불교와 개벽>, ‘다른 백년’ 이래경 이사장님의 <경제와 개벽>, 연찬문화연구소 이남곡 소장님의 <『논어』와 개벽>, 『역주 용비어천가』의 저자 박창희 선생님의 <세종과 개벽>, 한살림운동을 하신 이병철 선생님의 <살림과 개벽>, 인도에서 오신 원현장 교무님의 <동서융합과 개벽>, 하자센터와 로드스꼴라 김현아‧황지은 선생님의 <교육과 개벽>, ‘토착적 근대론’을 제창하신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종교와 개벽>, 그리고 선생님의 <유라시아와 개벽>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제가 ‘개벽학’을 구상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부딪힌 가장 큰 벽이 ‘실천’ 경험의 부족입니다. 개벽학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와 같이 엄밀한 형이상학체계이기보다는, 실학과 같이 현실에 밀착된 일종의 실천학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현장에서 실천하면서 이론적인 고민도 해 오신 분들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개벽사를 복원하는 것은 문헌공부나 현장답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미래의 개벽학은 실천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공허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벽포럼>은 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개벽이라는 역사적 경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제가 생각하기에 일본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근대기에 ‘개벽’ 경험의 유무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개벽’은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만들고, 그것에 입각해서 전국적인 사회운동을 전개한 역사적 경험을 말합니다. 한국은 동학개벽에서 삼일개벽을 거쳐 최근의 촛불개벽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요한 분수령에서 개벽의 경험을 해왔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이런 경험이 부재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오늘날 일본이 처한 사상적 곤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화가 저물어 가는 시기에 새로운 돌파구가 안 보이는 거지요. 150년간 개화의 틀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에요.

개화를 못해 식민지를 당했지만 개벽이 일어났던 한국과, 개화가 빨라서 산업화에는 앞섰지만 개벽의 경험이 없었던 일본. 이것이 두 나라의 근대기의 명암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님은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일본에서 도덕은 진부하고 한국에서 도덕은 풋풋하다”고 하셨는데, 이 말을 빌리면 “일본의 근대는 진부하고 한국의 개벽은 풋풋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본인이 본 동학

다나카 쇼조

작년 8월 22일자 《아사히신문》에 “메이지유신 150주년” 특집기사로 <근대 일본의 빛과 그림자>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일본 근대화 과정의 어두움을 말합니다. 150년이 지나서 비로소 일본 근대를 성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동학은 문명적”이라고 절찬한 일본 최초의 환경운동가 다나카 쇼조(1841~1913)를 ‘또 하나의 근대’를 지향한 사상가로 평가했습니다. 일본이 선택한 제국적 근대, 침략적 근대가 아닌 생명적 근대, 평화적 근대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박맹수교수와 죠마루 요이치 기자(한일시민동학시행)

이 기사를 쓴 죠마루 요이치(上丸洋一) 기자는 작년 10월에 <한일시민동학기행>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이 기행은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과 박맹수 교수님이 10년 넘게 진행해온 동학답사입니다. 이때 죠마루 기자는 다른 일본시민들과 함께 태안, 공주, 천안 등지의 동학전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님은 90이 가까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한국인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 죠마루 기자는 이때의 기행을 기사화해서 올해 1월에 5회에 걸쳐 《아사히신문》에 연재했습니다.

이 연재에서 동학을 ‘독자적 근대’를 추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다나카 쇼조를 (서구 근대와는 다른) ‘또 하나의 근대’를 추구한 사상가라고 평가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동학에 비하면 다나카 쇼조는 너무나 외롭습니다. 조직이나 공동체가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정부에 맞서 싸우다가 쓸쓸하게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벽의 차이입니다. 다나카 쇼조도 동학적으로 말하면 분명 개벽을 추구한 사상가이자 운동가임에 틀림없지만 그를 도와줄 개벽의 동지들이 없었습니다.

 

개벽학 센터의 꿈

마지막 부분에서 한국학과 관련해서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도학과 과학의 병진”이라는 문제제기입니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한국학으로서의 개벽학의 최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동학과 원불교의 개벽학이 도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홍대용과 최한기의 기학은 과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양자를 회통시키고 융합시키는 철학적 작업이 필요합니다. 실학과 개벽학이 만나야 합니다. ‘개벽실학’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개벽실학을 모델로 해서 21세기 개벽학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과학은 최신과학의 성과를 반영하고, 도학도 최근의 수양 프로그램을 반영해서 말입니다. 저는 이런 실험적 작업을 하는 ‘개벽학 센터’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도학과 철학과 과학이 어우러진 개벽학을 디자인하는 작업실 같은 곳 말입니다. 이곳에서 개벽사상을 담은 새로운 민주주의이론도 구상할 수 있을 수 있겠지요. 해원(解冤)의 수양과 경물(敬物)의 윤리와 신명(神明)의 도덕을 겸비한 ‘개벽민주주의.’

 

개벽의 역할분담

유상용선생님과 송지용연구원

마지막으로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번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에 공동체운동을 하시는 유상용 선생님이 원광대학교에 오셨습니다. 수덕호에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봉황각 커피숍에서 종교문제연구소의 김재익 연구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황명희 연구원, 송지용 연구원과 함께 2시간 가까이 개벽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유상용 선생님의 제도개벽론이었는데, 골자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뿐만 아니라 양자를 잇는 제도개벽도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우리는 모두 제도나 시스템의 영향 하에 살고 있습니다. 교육 커리큘럼에 따라 정신이 개벽되기도 하고 세뇌되기도 합니다. 개벽학당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개벽파가 주로 도덕개벽과 정신개벽에 치중했다면, 개화파는 제도개벽과 물질개벽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가 물질개벽을 강조했다면 민주화는 제도개벽을 강조했습니다. 1987년에 민주화투쟁으로 얻은 직선제가 그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개벽 서울선언

정치나 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제도개벽에, 종교나 철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정신개벽에, 과학이나 상업을 하는 분들은 주로 물질개벽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역할이 있고 서로 보완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있든 개벽의 마인드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무엇’을 개벽하느냐보다는 개벽을 ‘한다’는 의식이 중요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면, 그 ‘무엇’을 얻은 순간 개벽이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얻지 못하면 지쳐서 개벽을 포기하게 되고요. 공자는 “배우는데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았다”(學無常師)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말하면 “개벽에 일정한 대상을 두지 않는다”(開闢無常)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하노이에서 보내시는 「삼일개벽선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금, 2019/02/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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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반복적인 육체노동이 로봇으로 일상적인 관리업무가 AI 등으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기본소득의 현실적 시행 여부가 매우 중요한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때마침 미국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도시에서 조만간 월 500 달러를 지급하는 실험이 이루어 지는 시점에서, 아래 칼럼의 필자는 매우 비판적인 시각에서 기본소득으로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정확히 제기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만능적인 해결책이라 믿으면서 삶의 구체적 내용을 무시하고 기존 복지제도를 단순화하여 행정 편의성만 높이며 자본주의의 병폐를 감추고 자기조정에 실패한 시장에 응급조치와 같은 수준으로 소비를 진작하는 기능으로 전락할 위험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녀는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생활재의 구매/소비 수단이라는 기능을 넘어서 비인간적 자본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공동체적 규범 및 인간의 존엄과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드높이는 가능성과 역할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기 관점의 선상에서 복지로서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한국사회 역시 기본소득이라는 주제가 새로운 기회이자 매우 중요한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본소득은 점점 기술주도적으로 변해가는 사회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이는 코르테즈(AOC)부터 보수주의 집단의 씽크탱크인 카토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제안하는 정책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점점 사라져가는 직업들을 대체하고 미국인들이 받을 고통과 충격을 완화해 줄 것이다. 매달 모든 미국인들에게 정해진 만큼의 돈을 주는 것으로 보통 액수는 500달러에서 1,000 달러 선으로 제시되며 이런 수준에서 수혜자들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다.

현대사회는 기술계나 시민사회의 지도자들이 잘 알고 있는 대로 자율운전 우버, 더욱 스마트화 되어가는 유통망과 저장관리 기술, 그리고 AI가 생성하고 전달하는 뉴스 기사의 시대에 들어서기 직전이다. 작업장들의 노조 결성률에 목을 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일자리를 요구하는 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현재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은 예측 가능한 미래에 현재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리차드 브랜슨(영국 버진그룹 회장), 엘론 머스크(테슬라 회장), 그리고 마크 주커버그 (폐북 회장) 등이 기술이 모든 산업을 대체하는 현실에 대한 해답으로서 기본소득을 지목했다. “그린 뉴딜”의 한 갈래가 되는 것과 더불어 캘리포니아 주 조그만 스톡튼 시는 거주민 100명에게 한 달 500달러를 주는 실험을 2월에 시작한다.

1972년 기본 소득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 논의되던 금액이 1000 달러였음은 일단 접어두자. 인플레이션과 지난 45년간 대규모로 상승한 생활비를 고려할 때, 현재 의논되는 한달 500 달러를 지급하는 방안은 우선 말도 되지 않아 보았다.

그리고 모두에게 돈을 주어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다.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선 모두가 돈을 써야 한다.

해결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는 전통적 직업 구조의 소멸은 우리의 시간과 역할에 대한 재평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노동과 여가를 번갈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는 이 때, 사회가 가치 있게 생각하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활동들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한다면 비로소 미래의 소득에 관한 질문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미국 시민이 지니는 가장 큰 중요성은 이제 더 이상 시민으로서의 중요성이 아닌, 소비자로서의 중요성이다, 소비가 새로운 필수품이 되고 있다.” 이는 플린트 저널의 편집부가 1924년에 주창한 내용이다. 이러한 직설적인 의견은 충동적 감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 사이로 너무나 깊게 스며들었고, 깊은 사고나 표현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본소득이 할 일이란 결국 우리 사회의 소비를 지속시키는 것뿐이다. 그것이 핵심적인 문제라고 받아 들이는 것은 현대의 엄청난 부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다. 초자본주의는 너무나 많은 부를 사회의 아랫 단계에서부터 빨아들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계속 돈을 주는 것이 마치 경제 체제가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태우며 불완전 연소나마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이 불안한 상태는 점점 더 불투명해지는 미래로 향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실패하고 있으며 그에 맞서는 전략이란 모두에게 소비할 돈을 주는 것이다. 물론 브랜슨 이나 주커버그 같은 거부들이 돈 이야기의 대가로서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진보 좌파와 보수 우파들까지 나서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사회에 새로운 “전략”을 파는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물론 그들은 자세한 정보들을 최대한 줄였다.

폴 라이언이나 마르코 루비오 같은 공화당 우파 정치인사들은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을 하나의 “유연기금” 이나 “유니버설 크레딧”으로 통합하면 정부의 지출도 줄이는 동시에 시민들에게 자금에 대한 통제권 또한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인자 스타인 찰스 머레이 또한 기본소득에 대한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국민건강보험, 식품구입권, 그리고 주거 보조금에 의존하여(혹은 수십 가지에 이르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들이 한 달에 500 달러 또는 1,000달러로 가족은 고사하고 개인의 건강보험과 의식주도 해결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진 괜찮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마크 주커버그 같은 이들은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에 더해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을 추천하며, 그러한 정책이 창의성과 혁신을 조성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보호구역에 거주하며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몇 년째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자금의 부족을 겪고 있다. 유가가 갤런당 12달러에 이르고 우유 1리터가 16달러에 이르는 상황에선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론계의 많은 인사들 그리고 미디어 지형의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하는 일은 하버드대의 경제학자 제프리 마이런에 따르면,  “그들은 단순히 어감이 좋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용과 상관없이 그저 구호를 외칠 뿐이다.”

실리콘 밸리의 영웅들부터 워싱턴 정가, 그리고 신 진보세력에 이르기까지 기본소득에 대한 숱한 제안들이나 구호 속에서 사라진 것은 무너져가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돈을 쓰게 만들어야 한다고 솔직한 이야기, 딱 한 가지를 하는 것 외에 종합적인 계획을 찾아볼 수가 없다.

우파들부터 그린 뉴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은 기본소득과 더불어 무엇을 제안하는 것인지 놀라우리만치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마이런의 의견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자세한 사항들의 이야기가 함께 나와야 사람들이 기본소득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모든 사회복지의 기본소득화는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보충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이야기이며, 두 이야기 역시 일괄적인 계획, 예를 들어 제프 베조스(아마존 회장)부터 고속도로 고가도로 밑에 사는 노숙자까지 돈을 받는 계획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이다.

기본소득의 세부사항에 대한 관한 논의의 부재는 싱클레어 루이스의 예지적인 책인 “It Can’t Happen Here” 와 불길하리 만치 비슷하다. 1935년에 발간된 이 책은 미국이 급격하게 파시즘에 경도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베르젤리어 스윈드립은 트럼프를 연상케 하는 대통령 후보로써 모든 미국인이 매년 5,000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공약을 내세운다. 주인공이 집권에 성공한 뒤 지지자들 중 대부분은 노동캠프로 옮겨졌고, 그들은 매년 5000달러를 받는 날이 과연 올까 궁금해 하다가 그리고는 모두 죽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2016년 대선 캠페인 당시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직전까지 갔지만,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그리했듯 계산을 해 보고 나서 “도저히 수치를 맞출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 많은 미국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어떻게 지급할 것이냐는 문제는 분명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이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장애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쉽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껏 우리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기로 한 대형 정책 중 쉽게 해결된 일이 있었던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일괄적 기본소득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 다가올 십 년 혹은 이십 년 안에 중요한 논의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컴퓨터가 하기에 어려운 일이며 굉장히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후대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박봉으로 부려먹고 있습니다,” 그는 Wire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 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하는지를 재검토하고, 우리 모두가 얼마를 지불할 지 합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눠야 할 대화입니다.”

데이빗 그레이버는 가치의 재점검에 대한 필요성을 헛소리 직업이라는 그의 새 저서에서 드러냈다. 책에서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중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박봉에 시달리고 있으며, 반면에 의미 없거나 “헛소리”같은 일들을 하는 이들이 가장 높은 연봉과 함께 위신을 누린다는 점을 고려한다. 그레이버는 이러한 “헛소리” 직업들에 대한 필요성을 없애는 장치로서 기본소득을 추천하였다.

사회의 윤리기준이 무너져 버린 것이 가장 핵심적인 원인인 문제에 돈을 퍼붓는다고 해서 무너진 윤리기준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기본소득을 거꾸로 돌아가 버린 사회의 가치관을 되돌리는데 쓰는 것은 결국 사회를 자본주의의 늪으로 더 파고들게 만들 뿐이다, 병적이고 돈에 좌우되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아직 사람들의 계속되는 참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기본소득만이 필요한 것이 아닌,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람들이 결국 적응하여 살아야만 하는 시스템은 그들이 없는 돈마저 쓰게 만들고 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생존과 번창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 술 더 떠서, 마이런은 미국에서 기본소득을 포괄적이고, 의미있고, 실용성 있게 만다는 방법을 만들 “가능성은 없고”, “우리는 절대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다른 사회복지와] 복잡하게 얽힐 것이며, 정부 지출을 늘릴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마이런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의 모든 에너지는 정부 지출을 줄이는 데에 동원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전통적인 리버테리언적 사상과 일치하는 동시에 많은 미국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이 진술의 가치는 바로 지도자와 풀뿌리 활동가들이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들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바로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소규모 농업과 소상공업, 어업과 수렵,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 아래에서 인간의 기본적 생존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자본주의 체제의 환경적 결과들까지 미국에는 가공되지 않은 우유와 흡입기까지 망라하는 거대한 규모의 암시장이 있으며, 기본소득이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규제와 벌금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렇게 않은 사람들은 흐르는 물조차 마실 수 없고 공기조차 마음껏 마실 수 없는 오염된 지역에서 살고 있다. 인류가 수천 년간 스스로를 유지해 온 방식으로는 이제 그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현재의 규칙들이 분명 어떤 종류의 탐욕을 견제할 순 있지만, 법과 제도가 사람들을 자본주의 체제 안에 가두고 돈이나 “직업”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들었는가에 대한 면밀하고 완전한 현실 직시 또한 우리 사회의 현재 상태를 볼 때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답은 기본소득뿐 만이 아니다. 답은 사람들을 전통적인 삶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럴 수 없다면 사람들의 삶을 고되지 않게라도 해주는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건 부자건 간에 이런 아이디어들은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기술은 점점 대기업들이 직업을 없애가기 쉽도록 만들고 있으며, 돈의 수레바퀴를 계속해서 돌게 하느냐에 대한 우려는 실제로 점점 커져가고 있다.

모든 것은 우리 개개인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우리는 어떻게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모두에게 일괄적인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인가? 기본적인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그게 가능하도록 모든 규칙들을 재정립할 것인가? 혹은 두 방식을 조금씩 병행하거나, 혹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몫이며, 그리고 선택은 기본소득이 요즈음의 인기 슬로건이 된 지금 너무나도 중요해졌다.

 

Valerie Vande Panne

독립 미디어 협회의 프로젝트인 “지역 평화 경제”의 집필자이자 수석 특파원

그녀는 독립 언론인이며, 보스턴 글로브 선데이 매거진,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가디언, 폴리티코, 그리고 많은 언론출판물에 기고한다.

토, 2019/02/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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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서 베네수엘라 뉴스가 급격하게 전파를 타기 시작한 것은 몇몇 야당의 인사들이 이른바 ‘퍼주기 정책’이라는 포플리즘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은 국가로 베네수엘라를 거론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하기 위한 그럴듯한 ‘사례’로 인용되었다. 서방의 단편적인 외신을 통해 베네수엘라 소식을 접하는 국내 언론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극적인 사진과 짤막한 번역 기사들로 작금의 베네수엘라 사태를 마치 예견된 ‘불행’인 듯 전하고 있다. 급기야 한 나라의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베네수엘라 야당의 과이도 의원은 서방 국가들의 앞을 다투는 조력에 힘입어 어느새 베네수엘라의 또 다른 대통령이 되었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 과이도

지난 2018년 5월 베네수엘라에서는 야당의 요구로 조기 대선이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마두로 대통령은 68%에 가까운 득표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했고, 불과 약 두 달 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야당이 요구한 조기 대선이었음에도 정작 그들은 권력을 둘러싼 내부 분열로 인해 대선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한 채 선거를 치르는가 하면 일부 야당은 선거 보이콧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야당의 자기 분열적 행동들은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고, 최근 야당 과이도 의원의 ‘셀프임명’은 그를 베네수엘라의 또 다른 대통령으로 등극시키는 괴력을 발휘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두 가지 정도 상식적인 기준 위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 첫째, 과이도 의원의 셀프 대통령 선언은 명백한 헌정 유린이라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7개월이 흐른 뒤 결과를 불복하고 스스로 대통령으로 임명한 행위는 과연 무엇으로 설명되어야 하는가.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부정선거였다는 것이 과이도의 주장이다. 그러나 2018년 10월과 12월에 치러진 지방 총선거에서 여당은 거의 압승에 가까운 승리를 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현 정부를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기에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선거결과이다. 그럼에도 현재 야당은 지난 대통령 선거를 부정선거로 몰아감으로써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를 스스로 극대화하며 마치 이를 국민적 저항에 따른 위기로 조장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증폭시키고 있다. 비유하자면 마치 소수의 태극기 부대가 대한민국 정치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둘째, 과이도의 ‘광장선언’ 직후 이 같은 희극적인 대관식을 승인한 미국은 물론 대통령 재선거를 요구하는 유럽의 ‘오만’한 행동은 내정간섭이라는 점이다. 마치 아직도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 유럽의 식민지라도 되는 듯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이해하는 데 필요로 하는 것은 모든 국가는 동등한 주권을 가지며 국민들의 자기 결정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면 충분하다. 어느 나라의 국민들도 한 가지 정치 의견만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집권 정부를 지지할 수도 있고, 규탄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선거라는 것은 그래서 언제나 51대 49가 아니던가.

최근 프랑스 마크롱 정부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시위를 보고 그 누구도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라고 엄포를 놓지 않는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독립을 두고 혼란스러운 정국을 맞이하고 높은 청년 실업률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스스로 총리라고 임명하는 정치인은 없다.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상식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은 소위 서방의 몇몇 강대국들에만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베네수엘라는 엄연히 주권 국가이며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국제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한 국가의 경제위기가 내정간섭의 당연한 명분일 수는 없다. 지난 몇 년간 차근차근 진행된 미국의 경제봉쇄와 금융제재는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거론되지 않는다. 식료품과 물자, 의약품 등과 같은 기본적인 물품들조차 수입할 수 없도록 다각도로 제재를 가하고 있는 미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얼마 전 유엔 안보리를 통해 베네수엘라 내정간섭을 공식화하고자 했던 미국의 계획이 끝내 실패로 돌아가자, 이제 미국과 그 우방들은 베네수엘라의 인권과 경제위기로 고통을 받는 국민들을 위한 미국의 이른바 인도적 지원 구호 물품을 받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국경 지역인 타치라주의 쿠쿠타 지역에 도착해 있는 구호 물품이다. 현재 콜롬비아 영토 내 과이도를 비롯한 야당 정치인들은 이를 핑계로 베네수엘라 정부의 불허에도 불구하고 무력으로라도 국경을 넘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폭력시위를 조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베네수엘라에서 폭력시위를 조장한 혐의로 수배 중인 몇몇 인사들이 현재 대치 중인 국경지대에서 목격되는가 하면 방탄 차량으로 외신기자와 민간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진하여 부상자를 ‘고의로’ 내는 등 구호를 명분으로 한 폭력적인 행동으로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콜롬비아 국경에 있는 구호 물품은 이제 인도주의적 지원도 거부하는 폐쇄적이고 독재적인 정부라는 가공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구실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셀프 대통령’으로 더 유명해진 젊은 야당 정치인 과이도는 손수 구호 물품을 받겠다며 콜롬비아 국경으로 이동하였고, 이반 두께 대통령의 의전까지 받은 모양이다. 베네수엘라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야당이라면 외세 개입을 촉구하는 대신 현 여당 정부와 대화와 협상에 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정작 과이도를 위시한 야당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면 굳이 외세 개입을 촉구하는 극우적인 행태를 보이겠는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특정 세력이 정권을 찬탈하는 방식은 외세 개입을 통한 쿠데타였다. 1970-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단편적인 역사만을 보더라도 사례는 차고 넘친다. 현재 베네수엘라 야당이 미국과 콜롬비아의 지원은 물론 적극적인 공조로 베네수엘라 위기를 증폭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하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미 베네수엘라 사태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져 있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혼란스러워 보이는 형국이다. 야당의 요구대로 조기 대선을 실시하여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 대통령은 자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박탈하는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있으며, 과이도는 이 같은 정부에 당당히 맞서는 ‘의로운’ 정치인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최근 베네수엘라 소요사태로 발생한 사상자들은 희생이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레토릭과 인식수준이 오히려 공포스러울 뿐이다.

매해 수백 명의 NGO를 비롯한 사회활동가들이 암살되는 등 인권유린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콜롬비아의 이반 두께 대통령은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공공연히 지지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콜롬비아를 통한 군사개입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베네수엘라 국경에서 감지되는 위기는 심상치 않다. 무력으로라도 구호 물품을 전달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는 과연 고통받는 베네수엘라 국민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베네수엘라 내정간섭을 넘어 군사개입을 위한 명분 쌓기의 일부인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베네수엘라는 석유뿐만 아니라, 금을 비롯한 다양한 광물 매장량을 자랑하는 세계적 자원 보유국이다. 라틴아메리카와 미국의 지난 역사적 관계를 잠깐만 살펴보더라도 미국의 관심은 베네수엘라 국민의 인권이나 평화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수많은 민주정권을 전복시키고 독재정권을 수립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관심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이다. 현재 마두로 정부는 서방 외신과 야당의 주장과는 달리 독재정권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정권을 언제나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미국이 아니던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정이나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연구교수
현 쿠바 아바나 대학
정책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월, 2019/02/2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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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망언을 계속 주장하는 지만원을 국회까지 초대해서 강연을 듣고 자한당 국회의원들이 그의 주장을 옹호하는 인사말 하면서 또다시 수면에 오른 5.18 망언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이번 5.18망언사태를 각별히 주목하고 비상하게 대처해야 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5.18을 국가차원에서 민주화운동이라고 역사적으로 정리한 것을 부정하고 있고, 둘째, 한국사회의 오랜 패악인 이념프레임- 빨갱이, 종북, 종북좌빨 등으로 국민을 선동으로 갈라 치고 억압하며 정권을 유지해온 통치수단을 아직도 이용하는 집단이 제1야당 안에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셋째, 한국사회가 이런 극우정파를 용인하며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5.18 광주민주항쟁 역사풍속화> 한지에 붓그림, 2017년 5월에 그림, 김봉준 작

첫째 문제는 민주주의를 해치는 발언은 법적으로 처벌하는 법적 엄정성이 필요하고. 둘째 문제는 국회에서 발생한 망언에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들을 제명 조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극우적 정치발언을 용인하고 보호하고 확대 재생산하려는 일부 시민과 언론인이 있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5.18 망언뿐만 아니라 세월호 거짓보도 옹호, 청와대 주사파 점령설, 문재인대통령의 김정은과 내통 밀약설(비서), 북미대화와 북미평화협정으로 한국 붕괘설, 촛불혁명은 좌파가 선동해서 만든 가짜 민주화운동설, JTBC뉴스가 폭로한 태블리피씨 가짜설 등 무수한 가짜를 양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5.18 망언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극우적 선동선전을 계속하는 사회세력이 아직도 유권자의 10~20%를 점유하면서 한국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5.18진상을 재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헬기 기총사격이 있는지 조사하자니까 북한특수군 광주침입설도 조사하고 유공자 명단도 다 공개하라는 것이다. 정보 공개에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왜 하필  5.18 민주유공자만 공개해야 하나? 다른 유공자들을 공개한 전례도 없고 다 공개할 시 발생할 국가보훈체계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며 사생활 침해까지 주는 부담을 갖게 되며,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야기할 것이다. 이걸 노려 정치적으로 끝없이 선전에 악용하려는 의도이다.  북한 특수군 개입설은 너무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 반론조차 필 가치도 없지만 한마디만하면 1980년 5월은 신군부의 계엄치하이고 미군의 정보망이 시퍼렇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 북한 김일성의 특수부대가 그렇게 신출규몰한가. 특수군 600명이 들키지 않고 광주에 잠입하고 임무수행하고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니 귀신도 곡할 노릇이다. 지만원은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면서 600명을 사진대조를 해서 다 밝혔다고 사진증거까지 제출한다. 물론 이것은 법원에서 가짜로 판결까지 받아 유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아직도 그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18일 어제도 태극기부대에서도 또 그런 주장을 하며 이게 사실이 아니면 왜 나를 잡아 가두지 않느냐고 말한다. 전진 이상이 있는 사람 같다.

더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집고 싶은 것은 국론분열로 국가권력 집권 전략을 삼는 세력들이 제1야당 세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불법 극우 정파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챙기면 나라를 어지럽힌다. 이들은 두 국민국가로 여론을 갈라 놓고 극우가 우파를 견인하며 제1야당을 극우중심정당으로 바꾸려는 전략이다. 최근에 자한당의 여론지지율 상승도 태극기부대의 당 가입과 그들의 여론전 덕택인 걸 보면 극우 중심 정당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 기우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우파와 극우는 전혀 다른 종자다. 감기와 독감이 전혀 다른 병이듯이 극우는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다. 한국에서 아직도 폭력선동이 판치는 건 우파와 극우파쇼가 밀회 동거를 오랫동안 같이 해온 역사 때문이다. 이 식민지 유산이 권력으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다.

나부터 밝히련다. 나도 5.18민주유공자다. 나는 그 때 광주에 없었다. 그러나 5.18 과 연루된 사건에 있었기에 인정받았다. 5.18을 알리려고 서울에서 ‘5.18 사태’를 알리는 유인물 배포 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계엄포고령 위반자가 되었다. 첫 직장도 잃고 1년을 수배 당하고 계엄포고령이 해제 되고서야 한달 조사받고 겨우 풀려났다. 광주에 없었지만 5.18 민주 유공자가 된 경우다. 이런 경우도 많다. 이해찬 민주당대표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류되어 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1999년경 5.18유공자 대상신청자 마지막 접수를 받는다는 신문공고를 접하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암투병을 하던 병실에서 병원비 마련에 고심하다가 생각한 것이다. 힘든 생활고를 벗기 위해서도 이를 신청한 것이다. 이것으로 혜택을 받았다. 직장을 잃어서 받은 생계비 피해를 계산해 주니 나로선 큰돈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병원비 생계비 급한 것 쓰고 돈 관리를 하려고 백화점 점포 입점에 투자 했다가 분양사기에 걸렸다. 남의 말 듣고 결정한 것이다. 회사측과 입점자 사이 재판분쟁에 아직도 휘말려 이름뿐인 점주고 은행 빛만 갚아가는 신세가 되버렸다. 괜히 신청했다가 아직도 코가 낀 신세가 되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아직도 빚같으며 밥벌이에 허덕거리며 산다.

<3.1백주년맞이 만북울림 포스타> 디자인, 판화 김봉준 작

“5.18은 국가예산 축내는 괴물들이다”

“5.18은 북한군 600명이 침투해서 벌린 난동이다.”

이게 국회의원 입에서, 그들의 국회행사에 초대된 패널 입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유공자명단 공개를 마지노선처럼 내민다. 다른 건 사과하지만 투명한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꼬리로 얼굴을 덮어 버린다는 식이다. 조금이라도 문제를 잡아내서 5.18 전체의 명예와 가치를 훼손 시키겠다는 것이다. 여론에도 밀리니까 그거로라도 명분을 잡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5.18망언을 계속 방치하면 나라의 역사를 뒤집어버릴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박정희 정신 계승정권이 되고, 남북대화와 남북평화를 가로막고 전쟁불사를 선동하며 냉전시대로 되돌릴 것이다. 그뿐인가 일제침략을 정당화하며 위안부문제, 강제노역자 배상문제, 독도문제 등에서 친일협력으로 갈 것이며 한미일군사동맹을 추진하며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이다. 이번 5.18 망언으로 꼬리가 잡힌 것이니 지금 꼬리를 놓아버리면 다시 꼬리를 감추고 합법적 의회 정당활동이라며 이슈를 이유로 덮으며 대여공세를 늦추지 않은 것이다.

이제 3.1 대혁명이 발생한지 어느덧 100주년이 되는 3.1절이다. 범정부 차원이며 범시민적 차원에서 100주년을 자축하는 국민축제를 기획하고 준비 중입니다.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응 펼쳐 ‘한겨레 큰줄당기기’와 ‘민족예술열두마당’을 26일부터 펼치고 3월1일 당일에는 ‘만북울림’ 전국 풍물패들이 나라굿을 친다면서 몰려들어 문화패만 1만명 이상 참가할 것이다. 광장에 10만 국민이 모이기는 촛불 이후 처음일 것이다. 100년의 민족 수난을 딛고 이제 버젓한 정상적 민주시민사회로 가는 길을 여는 거대한 축제가 될 것입니다. 범국민대회에서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도 참여한다.

이때도 어김없이 소위 태극기부대도 참가할 것이고 극우적 발언과 몸짓으로 과격한 선동과 폭력적 언행을 불사하며 행사를 방해할 지도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하면 소외 되어서 인지 광화문 한 복판에서 대형 스피커 켜고 연설하고 심지어는 단식연좌농성도 한다 더이다. 이번에 그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불가피하게 접할 것입니다. 2년전 촛불집회에서도 그들의 세력은 거대한 시민대회에 밀려서 세력이 크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두고 볼 일입니다. 이번 3.1 100주년기념 축제는 태극기로 태극기를 덮을 것이며, 극우 폭력을 평화의 힘으로 압도할 것입니다. 이번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이 거듭나서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로 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포스타> 디자인과 그림, 김봉준 미술감독
화, 2019/02/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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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폭락 중인가?

단도직입으로 묻자.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는 폭락하고 있는가?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와 그래프다.

이 표와 그래프를 보면 13년 8월부터 19년 1월까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2010년 이후 최저점을 찍은 후 횡보하다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무력화하고 LTV 및 DTI를 완화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14년 가을부터 상승추세로 돌아선 후 상승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96.8이었는데 17년 11월에 이 지수의 기준점을 돌파한 후 18년 11월에 109.1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리고 9.13대책 등의 여파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9년 1월에 108.5로 극히 미미하게 하락했다.

정리하자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저점을 찍은 후 줄기차게 올라 18년 11월 109.1로 정점을 찍었고 지금 고작 0.6퍼센트 포인트 하락한 108.5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지난 5년간의 상승폭에 비해 지난 2개월의 하락폭은 하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의 추세는 어떨까?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다.

위의 표를 보면 2017년 11월 100을 돌파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가 18년 2월 100.7을 거쳐 18년 6월 99.5로 약간 떨어졌다 9.13대책 이후인 18년 10월 100.4로 오히려 반등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전세난 운운하는 미디어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19년 1월 현재 99.7에 머문다. 18년 2월의 정점인 100.7과 비교할 때 고작 1퍼센트 포인트 하락한데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주효했는가?

위의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서울 아파트는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상승을 멈추고 하락세에 돌입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작년 여름과 가을, 서울을 온통 불태웠던 투기열풍이 가라앉고 시장이 소강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든 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2014년 가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배경과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0년 이후 꼼짝도 하지 않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투기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올인한 덕분이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보유세 및 양도세 등의 불로소득환수장치를 무력화시켰다. 뒤이어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조치를 형해화시키고, 그래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자 LTV 및 DTI를 풀었다. 그런 정책들이 누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2014년 가을 무렵부터였다. 투기라는 괴물은 우리에서 풀려나면 잡기가 매우 어렵다. 2014년 가을 이후 우리에서 탈출한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은 계속 기승을 부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보유세 등이 강화될 거라는 시장의 예측이 빗나가자 투기심리가 더욱 창궐하여 2018년 여름 같은 대폭등 랠리가 일어난 것이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다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 없는 곡학아세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뛴다면 2010년 이후부터 2014년 가을까지 사실상 거래절벽 상태이던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2018년 11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서울에 아파트가 남아돌았나? 작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던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가 하락세로 반전된 게 공급 때문인가? 그렇다면 작년 11월 이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서울에 갑자기 아파트 수십만호가 들어서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상식에 비추어 봐도 공급부족론은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을 합리화해주는 사후적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투기적 가수요에 의한 것이라면 해법은 명확하다. 보유세를 높여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대출을 조여 레버리지를 없애는 것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대책은 9.13대책이 극명히 보여주듯 금융규제가 중심이다. 매우 미약하긴 하지만 공시가격 인상, 세율 인상 등을 통해 보유세도 높이고 있긴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울 아파트 시장이 2018년 11월을 정점으로 꺾인데에는, 비록 늦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강한 금융규제 + 약한 보유세 강화’조합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5년간의 대세상승 랠리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측면도 크다.

 

문재인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진정시킴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발등에 붙은 불을 끈 상황이다. 그렇다고 만족하거나 안심할 처지는 결코 아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해 해야 할 과제들이 무언지를 살펴보자.

우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려는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 최근의 예타면제 논란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들처럼 토건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지표에 매몰된 나머지 겨우 안정을 찾은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시도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기조를 투기에 친화적인 방식으로 퇴행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할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2005년 5·4대책을 통해 2017년까지 보유세 실효세율 1%달성을 천명한 것과 같은 수준의 담대한 보유세 개혁 로드맵을 문재인 정부가 설계해 발표한다면 만악의 근원 부동산 문제 해결의 영구적 실마리가 형성됨은 물론이고 공정경제와 공평과세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향안정화는 덤이다. 모쪼록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화국 혁파의 첩경인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하길 간절히 바란다.

수, 2019/02/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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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국내 주요 매스컴은 왕왕히 미국 워싱턴의 시각을 마치 자신들의 입장인 듯 포장해서 보도하며 이를 사실화 하려고 든다. 오는 27-8일 양일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두고 베트남이 북한에게 마치 준비되고 이행해야 하는 가나안의 땅인 듯 많은 시간을 투입해서 다낭 시의 발전 모습을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진즉 북한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의 전문가들과 미국 CNN 방송 등은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베트남 모델 세일즈가 북미정상 회담에 오히려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북한의 미래구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의 방식대로 개방하고 발전을 추구해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래의 글들은 중국방송 CGTN과 미국CNN에 실린 칼럼을 번역한 내용이다.


 

북한은 자신만의 발전모델을 따를 것(CGTN)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가 이번 달 말 있을 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낙점되면서,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베트남의 전철을 밟아 사회주의 경제를 개혁하고 건설해 나갈지에 대한 화제가 근래 들어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지난 7월 하노이를 방문했을 당시, 분명 북한이 베트남의 성장모델을 따르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의 시각에 베트남 모델은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향하는 개혁과 해당 지역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외교 전략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미국으로선 오해하고 있는 바가 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야심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협상을 방해할 것이다. 서로가 인정하는 부분들이 다르기에 더 많은 오해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의 모델이건, 북한은 해당 모델을 사회주의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해 배움의 대상으로 삼고, 가능성 있는 옵션으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모델”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한 공통적인 정의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서구의 기준에 따르면 정치 체계에서의 민주적 진보와 자유적이고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가 베트남 모델 체제의 근간을 이룬다.

작년 4월 조선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당시 나왔던 “건설 총력” 발언과, 미국과 세계를 향한 명확하고 협력적 태도는 분명 예상 밖이었으나, 우리는 북한이 세계의 주류 경제 방식을 무조건 모든 단계에서 받아들이리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현재 심각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장래의 경제-사회 모델에 대해 생각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관련된 북미간의 상당한 수준의 진전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평양으로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모델들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단 실용주의적인 접근이 정책 결정자들에게 있어서는 최선이다. 체제를 공부하고 배우기 위해 북한의 관료들이 베트남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도 그렇다. 같은 경험이 근래에 중국에서도 있었다. 많은 관료들이 중국의 공업지대와 기술단지들을 방문한 바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 일희일비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전통적인 평양의 준비작업일 뿐이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2019년 신년사에서 사회주의 국가들간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기는 하다..

스스로의 경제 개발을 위한 “프리미엄 옵션”을 찾으려면,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 국가들을 연구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하며, 스스로 사회주의 체제를 변화시킬 의도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은 그러한 형제국가들 중 하나일 뿐이며,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북한은 지난 건국 이래 70년간 특색있고 주체적인 체제를 건설해왔다. 이러한 체제는 확고한 주권의 주춧돌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들이 하룻밤 새에 극적인 변화를 겪기는 어려울 것이다. 평양과 다른 나라들간의 고립은 정보의 부재를 불러왔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오해는 필연적으로 뒤따르기 마련이다..

북한이 만들어 낸 현재의 커다란 변화들에 고무된 사람들은 평양이 스스로 하노이나 베이징처럼 크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있다. 이는 북한의 체제와 의도를 고려할 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북한이 실행할 변화나 개혁은 가장 먼저 국가의 안보와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 즉, 북한은 자신만의 성장모델을 따를 것이란 이야기이다.

 

Xu Fangqing

China News Week지의 선임 편집자
Center for China and Globalization의 비상임 연구원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들(CNN)

하노이, 베트남 (CNN): 지난 해 미 대통령 트럼프와의 역사적인 첫 회담이 있기 전날 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은 싱가포르 시내로 깜짝 외출을 하며 부유한 자본주의 도시의 광경을 눈에 담았습니다. 그의 외출 의도는 명확했습니다. 빈곤에 처한 평양이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 그리고 핵무기를 버린다면 – 이는 평양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더욱 상징적인 배경에서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베트남, 철전지 원수였던 미국과 50년도 안 되던 시간만에 평화로운 동반자가 된 나라입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에게 사회주의 베트남의 모델을 따르도록 설득할 것이며, 시장경제 도입 이후의 경제 번영과 워싱턴과의 관계를 부각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만 버리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석가들은 그러한 설득의 노력이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합니다 북한은 이미 자본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다만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난 몇 년 간,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방중할 때 마다 자본주의 기업을 견학시키며 북한이 경제 개혁을 받아들이기를 재촉해 왔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부 관료였던 반 잭슨의 말에 따르면, 같은 전술을 미국 내에서도 사용되어 왔다고 합니다.

“On the Brink: Trump, Kim, and the Threat of Nuclear War.” 의 저자인 그는, “역사적으로, 북한 고위 관료들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자본주의적 산업주의가 어떤지 보여준 경우가 많이, 개인적으로 대여섯 번은 직접 경험한 바 있다. 관료들은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증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혹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 연구소를 견학하기도 했다.” 고 밝혔습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는 보여주었다. 그들이 베트남에서 실제로 보게 될 무언가 북한이 변화를 포용할 만큼 색다른 것이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

미-베트남 관계에 관해서 워싱턴과 북한이 각각 방점을 두는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에게 있어서는, 일당독재 사회주의 국가가 민주화 없이 경제개혁을 이뤄낸 예시이며, 미국에게는 관계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돈을 벌어들인 예시입니다.

1995년은 베트남과 워싱턴이 관계를 정상화 한 해입니다. 당시 미국의 대 베트남 수출입은 각각 2.52억 달러와 1.99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조사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은 베트남에 80억 불을 수출하고 450억 불을 수입했습니다.

“베트남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변화해 왔던, 철전지 원수에서 우호적인 파트너로의 관계 변화는 북한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좋은 관계가 경제 개발을 위한 북한의 새로운 전략적 집중을 추진하기에 알맞은 환경과 필요한 조건을 조성하리라고 믿는다.” 베이징의 카네기-칭화 국제정책 센터 연구원인 통 자오의 말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무부 아시아 전문가 역을 역임했던 에반스 리비어는, 그가 재직하던 당시에도 북한과의 협상에서 베트남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베트남은 시장 개혁의 결과물을 얻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경제 발전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 줄 것이라는 약속이 북한 사람들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핵을 포기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조금 순진했던 것 같고, 우리는 결국 오해했던 겁니다.”

“이런 인센티브들, 혹은 인센티브에 기반한 접근으로 북한을 구슬려 새 길을 가게 하는 방식은 그들에게 핵무기가 없었을 때도 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북한이 없던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방법이 지금의 핵보유 국가에 통할까요?”

‘Dead people don’t need money’

‘죽은 자에겐 돈이 필요 없다’

미국 내 북한을 오래 경험한 몇몇 이들은 북한과 베트남을 지나치게 열심히 비교하는 것에 대해 걱정합니다. Jean Lee는 북한에서 꾸준히 일했던 몇 안 되는 서구권 기자들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정부와의 긴 실랑이 끝에 2012년 AP 통신 평양 지국을 개설했으며, 북한 내에서 총 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베트남이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보여 주고파 하는” 선택지로 언급하긴 하지만, 북한은 아직 스스로를 베트남보다 우월한 국가로 본다고 이야기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이런저런 논의를 하다가 정확히 이렇게 말 할 겁니다. 우리랑 베트남을 비교하면 안 된다, 우리는 핵보유국이 아니냐. 그리고 북한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핵 보유국으로서의 위상을 최대한 부각시키려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핵 보유국 북한이라는 위상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약소국일때보다 협상 테이블에서 훨씬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주니까요.”

Andrei Lankov 분석은 더 직설적입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와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은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외자를 유치하면, 중국이 했던 것처럼 북한은 부국이 될 것이며, 북한의 지도자는 지금 꿈조차 꾸지 못 할 윤택한 생활을 누린다는 말을 합니다만,” 그가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메시지가 내재한 문제는 간단합니다. 죽은 사람(카다피와 후세인을 비유)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Lankov는 북한의 가장 명망있는 고등교육 기관인 김일성 대학교에서 수학한 몇 안되는 외국인들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 그는 코리아 리스크 그룹을 운영하며, 서울의 국민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 내부에 대한 전문가로 손꼽히곤 합니다.

그는 김정은과 수석 보좌관들은 냉정하고, 현실적이며, 잔혹하리만치 이성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북한의 수뇌부는 무아마르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 우크라이나의 말로, 그리고 이란과의 핵협상을 파기한 트럼프의 결정으로 볼 때 핵무기를 쥐는 것이 생존의 열쇠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안보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핵무기 없이는 안보가 불완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핵무기를 줄이는 것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비핵화는 현재로서는 몽상입니다.”.

전 국방부 관료인 잭슨 또한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개혁가로서 김정은에 대한 기대를 믿지 않습니다. “김정은은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젊은 지도자이며 서구의 교육을 받았지만, 그는 권좌에 앉아 7년을 보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대에 있었던 미사일과 핵실험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실험들을 진행시켰으나,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의미있는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통제와 개방을 맞바꿔서 얻은 결과로 지난 30년 동안 북한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잭슨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협상을 향한 희망

트럼프 행정부의 이례적인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지난 해 6월의 싱가포르 회담 즉 북한의 지도자와 미국의 대통령이 한 자리에 마주앉은 첫 사례에서 북한으로부터 어떤 확답도 얻지 못한 점을 두고 맹비판을 합니다. 이에 대해 미국 행정부는 북미정상대화 덕에 전쟁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 속에서 협상을 이끌어 내는 전례없는 기회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분명 양측이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믿지만, 과연 어느 쪽이 타협하고 나설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미국 과학자 연맹의 핵억제 전문가인 아담 마운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껏 북미간 협상들이 1년이라는 기간 동안 긴장을 줄여주었으며,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켜 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억제 요소들을 영구적으로 유지하고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 AP 통신 평양 지국장인 Lee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다음 회담을 체스 경기에 비유합니다. 1차 회담은 “지도자 수준의 관계”를 확고히 하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오는 하노이 회담에서는 단순한 미소와 농담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들 (미국)은 준비된 상태로, 과제를 숙고한 다음 회담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인지 압니다. 북한 사람들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순간의 분위기나 선전술에 흔들리기 매우 쉽습니다.”

 

Hanoi, Vietnam (CNN) 특파원 특별기고

수, 2019/02/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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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은 박근혜 탄핵을 넘어 우리 사회에 수십 년 쌓여온 폐단의 전면적 청산과 미래를 향한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특히 경제에서의 기득권 고착과 구조적 문제로 발생하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는 것은 지체할 수 없는 절박한 민심의 외침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역사적 개혁 의지를 후퇴시키고 시급한 민생현안을 방기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편적인 입법을 진행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사태를 결코 용납할 수 없기에, 3.1서울민회는 상황을 직시하며 현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문제와 현안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3·1혁명 100년을 맞아 열린 3·1서울민회의 위원으로서 48명이 모여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의하였으며 의견을 종합하여 아래와 같이 선언한다.

 

1. 이재용을 구속하고 조양호에게서 경영권을 박탈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이씨 가문은 3대에 걸쳐 상속과정과 내부거래 그리고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였으며, 수십 년 간 대한민국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부패시킨 주역이다. 예건데 이재용 부회장은 상속과 내부거래로 3조 원 대의 이득을 본 것으로 추정되나 국가에 낸 세금은 겨우 16억 원뿐이었다고 한다. 특히 뇌물로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건넨 440억 원의 댓가로 국민연금의 편법적 지지를 얻어낸 것이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탈법 재산 불리기와 불법 경영권 승계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자 대다수 국민들이다.

재벌의 족벌가문 경영에 대한 개혁이야말로 적폐 청산의 핵심 중 핵심이다. 재벌의 가문은 정경유착과 언론, 사법, 행정과 결탁을 통해 공정 거래를 해치는 주범들이고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현하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가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대마불사 운운하며 상장을 유지하는 행태를 보라. 족벌가문 경영의 개혁은 시장을 정상화하고 공정거래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이다. 나아가서 70년간 고착화된 재벌 중심 경제체제와 그에 기반하여 편법적으로 형성된 막대한 기득권을 모든 국민을 위한 자산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강력한 조치와 규제가 필요하다.

첫째, 이재용을 구속하고 삼성 바이오로직스 상장을 즉각 폐지해야 한다. 이재용이 1심 재판부의 뇌물액수 축소로 집행유예 석방되었으나, 이후 드러난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는 명백하게 경영권 불법 승계의 추가적인 증거가 되었다. 이재용의 불법을 일시적인 경제의 어려움이란 핑계 삼아 관용하며 묵인하는 것은 촛불의 개혁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재용의 구속과 엄한 처벌로 무소불위 재벌 가문가 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보여줘야 한다.

둘째, 스튜워드십 코드의 원칙을 철저히 세우고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 한진 조양호 일가의 사례에서 보듯 재벌 총수 일가의 갑질로 기업의 대외신인도, 주가는 하락하고 국격까지 실추시키는 사태가 있었다. 국민연금 등 공적 투자기관들이 한진칼의 주주로서 스튜워드십 코드를 발동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조양호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동시에 일체의 경제사범이 상장기업의 경영자로 더 이상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배제하는 법안을 신속히 제정하여야 한다.

셋째,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강력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직사회, 공공기관, 기업의 불법, 불공정, 부패비리를 드러내는 공익적 고발자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법규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최저임금제도가 을과 을의 싸움으로 되어 방치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 등 갑의 위치에 있는 물적 재원이 저임금 노동자 에게 실질적으로 전환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제도적 정책적 조치를 강구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2. 토지공개념을 실현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며 장기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이 시대 최고의 복지는 모든 시민들에게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주거의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실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주거 불안정에 시달리는 ‘현대판 소작인’인 무주택자는 지주인 다주택자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2017년 현재 1,967만 가구 중 1,100만 가구만(55.9%) 주택을 소유했고 나머지 867만 가구는 집 없는 소작인이다. 그 중 146만 가구는 그나마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지만, 721만 가구는 전월세를 전전하며 2~3년에 한 번씩 이사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한편 주거불안에 가장 크게 시달리는 계층은 바로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이다. 주거불안 때문에 청년의 결혼 정년기는 점점 늦어지고 있고 출산도 포기하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주거문제는 결혼과 출산율 제고 등 나라의 존속 여부와 직결되어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우리는 이것의 원인이 주택투기에 있다고 단언한다. 서울에 공급된 신규주택 10채 중 9채는 이미 집을 보유한 유주택자가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주택투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보유세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주택자가 보유한 투기 목적의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되고 더 많은 가구가 제값으로 주택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반드시 대한민국 모든 토지에 토지공개념을 실현해야 한다. 토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이고, 이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토지 확보가 수월해지고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과 비효율이 사라진다. 이에 아래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촉구한다.

첫째,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토지공개념을 실현하여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과 비효율을 해소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토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와 후손이 함께 누려야 할 천부적 재화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부동산 전체에 보유세를 강화하여 부동산(주택)투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2016년 현재 0.16%인 보유세실효세율을 현 정부 임기 중에 0.5%로, 장기적으로 1%로 강화해야 한다.

셋째, 2017년 현재 전체 주택의 7.2%인 공공임대주택비율을 10년 안에 15%로 높여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5년, 10년 분양전환이 아니라 최소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하되 청년층이 최우선 대상이어야 한다. 또한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국민연금 등 가용가능한 공공기금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3. 지역 경제공동체를 활성화해 사회적 경제를 통한 대안을 만들어가야 한다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의 원인은 지역과 사람이 배제된 자본만의 세계화에 기인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로 인해 파생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고용불안에 대응하고 저항하는 근거지는 삶의 터전인 ‘지역’이다. 인간다운 삶이 실현되는 지역에 활력과 생기가 넘쳐나고 사람중심의 경제로 돌아갈 때 경제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고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협동과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의 원리에 기초한 지역단위의 경제공동체 운동이 필요하다. 생산자와 유통자, 소비자 등 경제주체의 상생을 위해서는 현안의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당경쟁을 극복하는 출구로써 호혜와 연대를 원리적으로 구현하는 협동조합 중심의 사회적 경제 영역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실천 방안임을 확인한다.

지역경제공동체를 위한 보편모델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에 대한 관의 접근방식이 지역민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공동체의 기금연대노력에 대해서도 관의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지역의 포괄적인 생활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주민참여를 도모함으로써 단순히 경제공동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지역공동체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다.

탐욕과 이해에 갇혀있는 천민적 사회경제 체제를 상생과 연대 그리고 호혜를 통한 선의적 경쟁과 협력방식으로 전환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촛불혁명으로 탄생하고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역사적 소명임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2019년 3월 1일

 

3·1서울민회 경제민주화분과위원회 위원 :

강대성 곽종록 권혁건 김귀숙 김덕자 김만곤 김명신 김병준 김봉수 김양순 김어기 김용호 김제완 김준영 김진택 김화식 민영수 박가윤 박종석 박준의 손성희 송기호 신동현 신미숙 신인수 양춘승 오경석 오정삼 유행철 윤성노 윤호창 이광찬 이래경 이명순 이용성 이재찬 이희관 전홍철 정칠화 조원휘 최낙범 최수동 한선희 한종훈 한희옥 홍수표 황종환 황지연

자문위원 : 김광기 남기업

 

목, 2019/02/2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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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트-웨스트(Post-West)

복병이 있었습니다. 하노이에 들르기 전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무척 좋아하는 곳입니다. ‘미래도시’에 가장 근접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다운타운을 걷노라면 수많은 언어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영어와 중국어, 힌디어와 아랍어, 독일어와 일본어, 말레이어에 한국어도 곧잘 들립니다. 그만큼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다문명 도시입니다. 지구촌을 축약시킨 듯한 이 글로벌 시티를 산책하노라면 뇌가 말랑말랑 활성화되어 풀가동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참새 방앗간, 단골 서점 또한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오차드(Orchard) 거리에 있는 키노쿠니야(紀伊國屋)입니다. 일본의 대형서점 체인이 동남아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방콕에도 자카르타에도 쿠알라룸푸르에도 키노쿠니야가 있지요. 하지만 단연 싱가포르가 빼어납니다. 구미는 물론이요 중화권과 일본까지 아울러 최신의 서적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의 정보와 지식이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세상의 변화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는 곳이 싱가포르이기 때문입니다. 베스트셀러를 진열해 둔 곳부터 단박에 시선을 끌었습니다. 『The Future is Asian』, 『The New Silk Roads』, 『Belt and Road : A Chinese World Order』. 세 권 모두 딱 제 취향입니다. 거시적이고 종합적이며 전망적입니다. 토막토막 일국학도 아니며, 꼬장꼬장 인문학도 아닙니다. 시원시원한 지구학이자 호쾌장쾌한 미래학입니다. 빅픽쳐를 그려가며 메가트렌드를 추적합니다. 공항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심지어 하노이에 도착해서도 틈나는 대로 탐독했습니다. 간만에 상하이와 뭄바이와 두바이에 이스탄불과 카불과 모스크바를 아우르는 저작들을 읽어가니 시야가 뻥뻥 뚫리는 쾌감이 입니다.

하노이 시민

싱가포르 직전에는 조호루에도 다녀왔습니다. 말레이시아와의 국경에 자리한 접경 도시입니다. CJ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사업본부에서 열린 전략회의에 초청받았습니다. 미얀마부터 파키스탄까지 16개국 주재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간 여러 자리에서 강연을 해왔지만 단연 생산적이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질문과 응답, 토론으로만 1시간 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역시나 현장감을 익힌 기업인들이기에 생동감 넘치는 대화가 오갈 수 있었습니다. 몇 차례는 도리어 제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일정을 다 마치고도 에너지를 소진했다기보다는 기운을 얻어간다고 느낀 적은 이 번이 두 번째입니다. 처음이 바로 작년 초여름 하자센터에서의 강연이었죠. 푸릇푸릇한 청년들과의 대화와 펄떡펄떡한 기업인들과의 소통 속에서 저 또한 신이 나고 흥이 돋습니다. 그에 견주자면 상아탑의 학술회의는 어쩐지 영 맥이 빠집니다. 형식적인 발표와 의례적인 토론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일쑤입니다. 저는 <개벽파 선언> 연재를 준비하면서부터 출간 이후의 북 콘서트를 줄곧 궁리해오고 있습니다. 미래세대와 소통하고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는 분들과의 결합으로 책 잔치와 말잔치 또한 풍성하게 이끌어보고 싶습니다.

19세기 수운과 해월은 전국 방방곳곳에 접(接)을 만들어 동학을 전파했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구촌 구석구석에 개벽학을 소개하고 ‘글로벌 개벽파’와 연대하는 거점(hub)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Think Global, Act Local)는 개벽파에 더욱 요청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천지만물과 천하를 숙고하면서, 가정과 마을에서부터 성심성의를 발휘해야 하겠습니다.

 

2. 다시 천하

공교롭게도 세 권의 책이 공히 포스트-웨스트를 논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아시아의 세기’라고도 하고 다른 이는 ‘유라시아의 세기’라고도 하지만, 서방세계 즉 유럽과 미국이 주도한 세계질서가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만은 일치합니다. 아니 끝나가고 있다, 도 아닙니다. 유라시아의 세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아시아의 세기의 초입에 진입했다, 가 공통된 서술입니다. 하긴 21세기도 벌써 19년차, 1/5을 지나고 있습니다. 20세기는 과거완료형, 21세기는 미래진행형이 더욱 어울리는 시점입니다.

다만 포스트-웨스트가 전혀 새로운 현상만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기시감이 없지 않습니다. 기해년으로부터 꼬박 일백년 전, 1919년 기미년도 그러했습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대반전의 분수령이 됩니다. 근대문명의 원조이자 총아라고 간주된 유럽에서 발발한 전대미문의 세계전쟁이 비서구의 맹목적 서구화에 급제동을 걸었습니다.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1권이 출간된 해가 바로 1918년입니다. 비유컨대 ‘개화의 몰락’을 목도한 것입니다.

량치차오

그 세계사적 전환의 기운을 가장 예리하게 흡입하여 사상적 회심을 단행한 이로 량치차오를 꼽을 수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경험한 인물입니다. 중국 근대 계몽주의의 기수이자 개화파의 선봉이었습니다. 양무운동에서 변법자강운동으로 진화할 때 그가 있었습니다. 변법으로도 모자라 다시 신해혁명을 추진할 때도 그가 자리했습니다. 양무에서 변법으로, 변법에서 혁명으로 반세기를 거쳐 서구화 노선이 더더욱 강화된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1919년을 기점으로 “탈서방화, 재동방화”의 사상적 회향을 감행합니다. 1918년부터 두 발로 직접 유럽을 방문하여 두 눈으로 몸소 유럽을 관찰했기 때문입니다. 그 체험과 체득을 기록으로 남긴 문헌이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에서 ‘동방문화 구세론’이 부상하고 있는 지적 풍경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유교와 불교, 도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던 대학생들이 <도덕경>을 들고 다니며 ‘유럽의 중국인’을 자처하는 ‘신청년’으로 변모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량치차오 또한 더 이상 중국의 서방 학습이 아니라 중국의 세계 구제를 골똘하게 궁리하게 됩니다. ‘과학만능의 꿈’(물질개벽?)이 초래한 폐허를 직시하고 중국은 신문명 재건의 길(정신개벽?)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그가 보건대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근원은 둘이었습니다. 첫째가 자본주의요, 둘째가 국민국가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처방전으로 사회주의가 흥기하고 있음을 면밀하게 학습했습니다.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국제연맹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논평을 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후자에서 중국의 사상과 역사적 경험이 일조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전후 신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주의 국가가 아니라 ‘세계주의 국가’(Cosmopolitan nation)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주의 국가를 만들어야만 일국의 발전을 넘어서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한 문명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이 인생의 최대 목적을 인류 전체를 위해 공헌하는 일에서 찾는 인생관도 공유해야 했습니다.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익숙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대학>의 현대적 의의를 확인한 것입니다. 중국은 일찍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지고의 이념으로 삼는 역사적 실천 경험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즉 국제연맹을 성공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사상적 자원으로 ‘천하’를 재발견했던 것입니다. 량치차오가 누굽니까. 앞장서서 ‘신민’(新民)을 만들자고 목청껏 외쳤던 사상가였습니다. 신민이란 곧 국민(國民)이었습니다. 중국인의 희박한 국가의식을 타박하며 국민 만들기에 노심초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새파란 국민 너머의 지긋한 천하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신문화운동 또한 극적으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신해혁명의 좌절 속에서 신세대들은 1915년 <신청년>(청년잡지>를 창간했습니다. 좌와 우의 차이는 있으되 대저 전반서화, 전면적 서구화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창간 1년 전에 이미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스승이자 선배였던 량치차오마저 탈서방화와 재동방화를 피력하게 된 것입니다. 하여 신/구 간에 동/서 간에 일대 논전이 벌어집니다. 1920년대의 대사상 논쟁, 동서문화논전이 격발된 것입니다. 허나 량치차오는 더 이상 전위가 될 수 없었습니다. 1873년생, 1929년에 숨을 거둡니다. 그의 말년 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동방문명의 가치를 사수하는 신성(新星)으로 부상한 인물이 바로 량수밍입니다. 제가 ‘중국의 개벽파’로서 아껴 부르는 바로 그 분입니다. 1893년생, <동서 문화와 그 철학>을 탈고한 1922년만 해도 여전히 파릇파릇할 시절입니다. 하기에 그를 ‘최후의 유학자’라고 일컫는 수사가 마땅치 않습니다. 20세기의 감각이 부여한 어긋난 별칭입니다. ‘개신유학의 원조’이자 ‘생태문명의 태두’라고 기려야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른 백년을 앞서 사셨던 분입니다. 선구자이자 선지자였습니다. 두어 달 후면 5.4운동 100주년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개벽파’ 량수밍 이야기는 그 무렵에 더욱 보태볼까 싶습니다.

 

3. 다시 개벽

5.4와 3.1은 긴밀합니다. 구태여 선후를 따질 것은 없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후폭풍, 전 지구적인 동시대 운동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헌데 3.1운동 전후로 불거진 공화정 논의가 신해혁명의 영향이라는 설이 없지 않습니다. 이웃나라의 대혁명이었으니 어찌 영향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피상적입니다.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공화춘(共和春), 공화의 봄은 짧디 짧았습니다. 곧바로 왕정복고, 반동의 시절로 접어듭니다. 그래서 신청년들이 신문화운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중국의 신해혁명은 반면교사에 더 가까웠을 법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거듭 강조하시는 것처럼 조선은 이미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중국으로부터 사상적 독립을 완수한 터였습니다. 독립문이 그 물질적 기표라면, ‘동학’이라는 말은 그 사상적 기호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기미년 3.1혁명 또한 포스트-동학의 장기 지속적 지평에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하겠습니다. 동학혁명의 환생이 3.1혁명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개벽의 부활절이 바로 3.1절이었습니다. 고로 ‘개벽절’이라 고쳐 부른다고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명(正名)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개화파(일본)과 척사파(조선왕조)의 협공에 처절하게/철저하게 패배했던 동학몽이 다시금 그 거대한 뿌리를 역사의 전면에 드러냈던 것입니다.

사진(좌): 3.1혁명의 주역, 손병희 선생(한국학중앙연구원), 사진(우): 손병희의 _준비시대

와신상담 반세기를 거치며 동학은 더더욱 단련되고 진화했습니다. 도전(道戰), 언전(言戰), 재전(財戰)을 태비한 손병희의 <준비시대>부터 이미 동학 2.0, 다시 개벽과 ‘도의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비폭력운동으로 대안 문명으로서의 합법성을 쟁취합니다. 서학을 거부하고 유학에 도전하며 동학만을 고수하는 배타성도 떨쳐냈습니다. 서학과의 합작에도 앞장섰습니다. 개화를 배타하지 않고 개벽과 개화의 공진화를 꾀합니다. 천도교가 선봉에 서되 기독교도 더불어 가는 득의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불교와 유교도 폭넓게 아우르고자 품을 넓혔습니다. 3.1운동이 이 땅에서 펼쳐지는 동서종교 화해운동, 동서문명 회통운동으로서 세계사적 장관을 연출할 수 있었던 기저입니다. 기미독립선언서가 일제에 맞선 일국의 민족주의 선언이 아니라, 신문명 건설을 촉구하는 온누리와 만천하의 헌장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미하고 완숙한 까닭입니다.

무엇보다 천도교 진영의 공화국 담론이 탁월합니다. 얼마 전 오상준이 지은 <초등교서>(1907)를 탄복하며 읽어갔습니다. 세속적 정치문명과 영성적 종교문명을 무 자르듯 가르지 않습니다. 성과 속의 공진화를 통한 도덕문명을 궁리합니다. 종교란 religion의 번역어가 아닙니다. 일신교의 배타성이라고는 한 움큼도 없습니다. 종교(宗敎)는 문자 그대로 종지가 되는 가르침일 뿐입니다. 개인과 국가의 근간을 떠받치는 정신적 힘이자 사상을 말합니다. <초등교서>에서 모색하는 공화국은 천인(天人) 정신에 입각한 합의체입니다. 천인의 마음을 통한 사회의 영성화를 지향합니다. 천인은 요즘말로 ‘호모 데우스’라 고쳐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모 데우스의 집합의지와 집합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공화국, 지상의 천국을 염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권이 아니라 ‘천권’(天權)이라 명명했음이 눈을 찌릅니다. 응당 천부인권과도 발상이 다릅니다. 인권은 그저 신으로부터 소여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늘과 하나로 합일된 사람, 그 천격(天格)을 이룬 천인으로서 천권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부단한 인성 도야로 천성(天性)을 발현할 것을 당부하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화국 인민의 의무라고 하겠습니다. 응당 인격을 천격에 부합하도록 부단하게 수양하고 수행하고 수련해야 합니다. 인격을 끊임없이 고양하는 근본적인 정치운동이자 근원적인 영성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고로 천직(天職)이라 함은 곧 천성을 따르는 삶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래야 이 세계는 천계(天界)가 될 것이요, 온누리 만인은 천인(天人)이요, 온천하 만물은 천물(天物)이 됩니다. 그래야만 개별나라들 또한 국격을 드높여 천국(天國)으로 환골탈태합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태평천국의 인류운명공동체, 태평천하도 완수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한울님/하느님/하는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다시 개벽과 다시 천하의 상호진화가 영구혁명과 영구평화의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천인공화국의 발상에 앞으로 우리가 모색해야 할 다종다양한 ‘제도개벽’의 단서 또한 무궁무진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4. 개조 : 다시 개화

그러나 일백년 전 개벽천하 운동은 좌초되었습니다. 개화의 새 바람이 불어 닥칩니다. 이번에는 북풍이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1922년에는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도 출범합니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참신한 대안이 등장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개화 신파’가 부상한 것입니다. 개화 좌파라고도 하겠습니다. 개화 구파, 개화 우파의 세속주의, 이성주의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부칩니다. 일체의 영성을 허용하지 않는 과학적 무신론 국가를 완성시킵니다. 때를 맞춤하여 서유럽의 몰락으로 수세에 몰렸던 신청년들이 대거 개화좌파로 갈아탑니다. 신상(품)을 좋아하고 유행을 쫓는 그 얄팍한 면모를 탈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동유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좌파의 언어로 동아시아의 전통을 타박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창당한 것이 1921년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논쟁의 방향도 일변합니다. 동서문명논쟁은 흐릿해지고 동서이념논쟁, 동서체제대결이 뾰족해집니다. 량수밍이 북경대 교수직을 내던지고 향촌건설운동에 투신한 것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이 한 몫 했음은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개화좌파의 약진은 개화우파의 소생에도 일조했습니다. 좌우투쟁이 격화될수록 동아시아 전통을 일신하여 신문명을 건설하자는 세력들은 ‘문화보수주의’로 기각되고 소외되어갔습니다. 1945년 이후 동서냉전의 먼 기원이라 하겠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특히나 치명적입니다. 북조선과 남한, 대륙과 대만,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분단의 씨앗이 바로 1920년대에 뿌려지기 때문입니다. 동서문명회통에서 좌우이념대결로의 퇴행, 돌아보면 볼수록 뼈가 아프고 피눈물이 나는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상적 분화로 말미암아 동아시아는 중국전쟁(국공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제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아웅다웅에 신물이 나다못해 진물이 흐른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수렁이고 구렁이라 하겠습니다.

 

5. 삼일절과 개벽절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그 동서냉전의 잔상이 마침내 종언을 구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흘째 온종일 하노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까닭입니다. 그 역사적 획기를 개화세에서 개벽세로 이행하는 터닝포인트로 기념하고파서 굳이 이 곳까지 찾았던 것입니다. 이 곳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깊이 음미해보겠노라는 약속은 지키지 못합니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회담에 온신경이 쏠려서 백년 전 문자가 영 눈에 들지 않았습니다. 호안끼엠 호수를 에둘러 멜리아 호텔과 메트로폴 호텔과 오페라하우스를 걷고 또 서성거렸습니다. 지금 이 글 전체가 하노이 시내를 오가며 짬짬이 떠오르는 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휘갈긴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뜻밖의 협상 결렬 소식에 망연자실, 무릎이 꺽입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책망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기차를 타고 삼일 동안이나 대륙을 주파했던 정은이와 여정이에게 토닥토닥 소주라도 한 잔 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싱가포르 서점의 베스트셀러

돌연 삼일혁명 백돌에 친일 잔재 청산만 운운해서는 한가로운 일이라는 냉철한 판단마저 일어납니다. 일백년 전에도 일본의 뒷배는 미국이었습니다. 제2의 동학운동, 다시 개벽 운동이 좌초한 데에도 그 심급에는 전후 세계의 리더로 부상한 미국이 자리했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는 더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1860년 중국으로부터 사상적 독립을 감행한 것처럼, 1919년 일본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선언했던 것처럼, 2019년에는 필히 ‘개화의 지존’ 미국으로부터의 자립과 자주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딴청을 피우는 미국에 연연하여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동시킬 것이 아니라, 남북이 선도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협조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을 견인하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시아 퍼스트, 아메리카 라스트, 그편이 목하 개창되고 있는 포스트-웨스트, 포스트-아메리카, 유라시아의 세기와도 정합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싱가포르의 그 베스트셀러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미래는 아시아입니다.(The Future is Asian.)

다소 거칠고 산만한 글을 정리되지 않은 채로 보냅니다. 그래도 되지 않을까 뻔뻔해 진 것은 요사이 강호와 재야의 ‘샤이 개벽파’들이 속속 커밍아웃하여 개진하고 있는 언설들이 워낙 빼어나서입니다. 이남곡 선생님, 박길수 선생님, 유상용 선생님, 강주영 선생님, 이은선 선생님 등등이 토해내고 계신 절창들이 휘황합니다. 더할 것도 없고 덜어낼 것도 없는 훌륭한 문장들로 빼곡합니다. 굳이 저 같은 풋내기가 설익은 말을 섞지 않아도 3.1절이 곧 ‘다시 개벽절’이라는 진의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울로 돌아가서 연구자의 자세로 올해 ‘범개벽파’의 집합지성이 쏟아낸 각종 3.1혁명론을 요령껏 갈무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제 3.1 백돌, 개벽절 100주년을 맞이하러 광화문으로 이동합니다. 인천행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막 시작되었습니다. 응답하라 1919, 기해년에서 기미년으로 이륙합니다.

금, 2019/03/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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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간까지도 우리민족은 아직도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으로 갈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0년에 이르는 이 시간, 우리 8,000만 겨레의 가슴에 맺힌 한은 터질 듯 미어지며 그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이 쌓여 가고 있다. 따라서 3.1절 100주년을 맞는 행사는 반드시 “자주 쟁취결의”를 주안점으로 하지 않는 그 어떤 행사도 결과적으로 외세의 이익에 영합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회 각계에서 대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차제에 우리정부도 촛불혁명속의 중심요구인 주권쟁취를 위한 첫 사업으로서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목하 진행되고 있는 4.27선언 후의 민족문제 앞에서는 단연코 민족공조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발맞추어 모든 계층, 계급의 투쟁도 민족자주와 민족의 이익에 복속되는 방향에서 자기 계급의 이익을 관철해야 할 것이다.
이 이로(理路)에서 주목해야 할 일이 목전에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 기업의 대북 투자가 한미동맹 국가보안법 5.24치 등과 충돌하면서 그 성장마저 저해되고 있다. 사내 유보금을 많이 가진 대기업일수록 더더욱 한미동맹 국가보안법 등이 그 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렇게 민족상생경제의 추진도 막혀있다. 여기에서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과 노동은 생리적으로 대립하는 것이지만 민족상생 경제 앞에 그 이해가 일치하는 사실이야 말로 우리민족 내부의 역사적 특성이다. 따라서 노사정의 협력문제도 이 관점에서 찾아야만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되돌아보면 동학농민혁명으로 시작된 새 시대 민족사 체재를 이루기 위한 거룩한 궐기는 부패한 봉건 조선조의 외세영합으로 차단되었다. 여기에서 이 땅에 발붙인 일본제국은 드디어 1905년 한일 수호조약에 이어 1910년 강제병합으로 우리는 국권이 소멸,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민족은 각성하고 분연히 일어섰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항거하여 나라를 빼앗긴지 10년을 넘기지 않은 1919년 3월 1일,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민족 대항쟁으로 일제에 맞섰다.
나라를 빼앗긴지 10년이 못되어서 기미년 3.1민족대항쟁(혁명)을 벌인 자랑스러운 민족적 기세를 세계만방에 과시한 것이다. 그 기세는 전국에 메아리 쳤다.
그 후로 더 해진 일제의 야만적 수탈과 탄압으로 민족적 분노와 한이 쌓여갔다. 역사의 시간이 흘러서 드디어 일제 패망과 퇴각에 이르렀으나 우리 힘으로 맞이한 해방이 아니었기에 미군정이 만들어 낸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분단의 역사가 시작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는 등 100년이 되는 이날 까지도 우리는 외세의 농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 이제 우리에게는 “자주”이것이 이 시대 우리민족에게는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 따라서 “민족자주”이것이야 말로 모든 계급의 이익에 선행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에 억매인 한미동맹도 민족자주에 앞설 수는 없다. 이과제가 실현되지 못하는 우리조국의 미래는 군 작전권도 갖지 못한 체 일제 당시의 내선일체와 다름없는 속앓이만 계속되고 말 것이다.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지구상에서 외세에 가장 많이 시달려 온 민족이면서 외세에 대한 연구와 관심조차 멀어진 어리석은 민족으로 전락되고 있으며, 저항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오늘의 사정이다. 이에 삼일혁명 100주년을 맞는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한다.
지난 날 항쟁에 나섰던 기세를 자랑하는 축제의 장이 아니라, 100년이 넘도록 통일된 자주 민족사를 쟁취하지 못한 한과 분노를 가지고 새로운 결의를 다짐하며 가열차게 나서야 한다.
이에 결연한 의지를 모아 기필코 자주.평화.통일의 민족적 소망을 달성하기 위해 온 국민이 총궐기 할 것을 8천만 겨레 앞에 촉구하며 선언하는 바이다.

2019년 3월 1일

 

배 다지

민족광장 상임의장

금, 2019/03/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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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삼일절날 광화문 광장 일부에서는 여전히 매국적인 수구개신 교단의 분탕질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여러 종교 단체에서 연대하여 시대를 고백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오늘 주일을 맞아 삼일절 소성리에서 있었던 미사의 강론을 소개합니다.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 입니다.


어제 조미정상 회담 결렬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인터넷 방송으로 두 정상이 회담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이제 정전선언만 남았구나 확신했는데, 합의문을 거부하고 퇴장해버린 미국의 태도를 보고 모멸감마저 들었습니다. 사전에 실무진들이 조율하고 서로 재차 삼차 합의문의 내용을 확인을 했을 터이고, 정상 회담이란 요식에 지나지 않았을텐데 어찌 저런 무례한 행동이 나왔을까. 순간 우리가 아직 독립하지 못했구나. 독립 만세 운동이 다시 필요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라진 겨레가 하나 되는데 강대국의 추인이 필요한 지경이니 아직도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약하고 못난 민족임을 절감했습니다. 한편 삼일운동 100년 주년 기념일에 좋은 선물을 선사하여 그간 자기들이 왜곡시킨 우리 민족의 과거사를 청산할 줄로 줄 기대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누구를 향하여 다시 한 번 독립 만세를 외쳐야 하는지 각인시켜주었으니 잘 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100년 전 오늘 우리 선조들이 벌인 독립 만세 운동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민중의 저항이었습니다. 외세에 저항하는 민중 운동은 대개 종교 결사 형태로 폭력성을 띠며 진행되는데 반해, 삼일 만세 운동은 비폭력 운동이라는 데서 차원을 달리 합니다. 조선총독부에서는 1919년 3월 1일부터 4월말까지 58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집계했지만, 박은식 선생의 조선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시위 건수 1,542회, 시위 참가자 2백여만 명, 사망 7,509명, 부상 15,961명, 체포 46,948명에 달하는 대규모 봉기였습니다. 대구에서만 2만 3천 명이 시위를 벌여 일본군에게 113명이 총살되었고, 87명이 부상당하였다. 당시 조선 땅에 사는 인민 중 열에 하나는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다는 말입니다.

그냥 외치는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부서져라 절규했습니다. 일본 헌병이 칼을 휘둘러 오른팔을 베어버리면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고, 왼팔마저 베어버리니 두 팔을 잃은 몸으로 뛰어가며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방금 말한 통계를 뒤집어 보면 열에 아홉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은 대놓고 독립 만세 운동을 방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완용 같은 작자는 신문에 이런 글을 써서 민중들을 회유합니다. “식민통치에 순응하면 죽을 고비에서도 살 길이 생기는데 왜들 저렇게 살 길을 놔두고 죽을 길을 찾아가는가.”, “처음에 무지하고 몰지각한 아이들이 망동을 벌이더니, 그 뒤 각 지방에서 뜬소문을 듣고 함께 일어나 치안을 방해하고 있다.” 매일신보에 세 차례나 경고문을 게재한 이완용은 “본인이 한마디 더 하고자 하는 것은, 독립론이 허망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각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독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라고 촉구했으며 “한일합병은 조선 민족의 유일한 활로”라고 망언을 일삼았습니다.

한편 소수의 매국노들을 제외한 열에 아홉은 방관자였습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사 전에 우리가 낭독한 독립선언서에는 천주교 대표 이름이 없고 천주교 신자들은 만세 운동에도 소극적이었습니다. “청천백일하에 숨길 수 없는 사실이, 천주교는 민중의 자유를 위해 해방 전까지 싸워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라를 세속주의에 내맡기는 값으로 교회 안에서 식민지적인 평안을 얻으려 했다. 그들은 일찍이 교황을 위하여는 순교한 일이 있어도 나라와 민중을 위하여서는 한 마디 공적 증언을 한 적이 없다. 삼일 운동에 가톨릭만은 들지 않았다. 가톨릭은 역시 현대 민중의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봉건 귀족조의 외로운 섬이다.” 이는 함석헌 선생의 날선 비판입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명의로 발표된 삼일 운동 백주년 기념 담화문에는 이에 대한 고백과 반성이 담겨 있습니다. “백 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조선 후기 한 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겪고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천주교회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런 까닭에 외국 선교사들로 이루어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일제의 강제 병합에 따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 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습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인류를 구원으로 선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종교의 본령이건만, 안타깝게도 교회는 때늦은 고백과 반성을 반복합니다. 인류에게 선익이 되는 거룩한 것과 인류에게 해악을 끼치는 상스러운 것을 식별하는 영적 시각을 제시하는 일이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이자 의무입니다. 이를 등한시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어둠에 동조하고 부패를 촉진하는 적폐 세력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나라 건설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힘을 가진 존재인 악령들과 한 패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악령은 하느님과 상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생명을 말살하고 평화를 깨트리는 모든 가치관이 악령입니다. 악령은 영적인 실체이므로 반드시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목적을 완수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 곳곳에 스며있는 악령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 하수인으로써 의도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치고 맙니다.

물질만능주의, 대량소비주의, 성공지상주의, 외모지상주의 같이 인간을 욕망에 충실한 노예로 만들어, 세상을 끔찍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신념들. 이것이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우리 시대의 악령들입니다. 이를 분별하고 몰아내지 않고서는 결코 하느님 나라는 우리 곁에 오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우상들도 우리에게서 복음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더러운 영에 속합니다. 핵발전, 군비경쟁, 민족주의, 국가주의, 개발지상주의 같이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단절시켜 버리고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이념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무엇과 대적해야 하는지 분별해내야 합니다.

이를 깨달은 그리스도인들은 방관자로 살지 않고 투사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투신의 현장을 찾아 떠나는 여정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는 참 그리스도인의 본보기가 나옵니다. 행복선언은 현실의 불합리한 상황이나 비참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과 조건들을 개선시키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이들이 복되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들은 인간이 하느님 앞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가난한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또한 그들은 이런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자기 이기심만을 내세우면서 서로 다투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비정한 세상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그들은 진정 온유한 사람들이며 한편 불의한 사회에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이런 용기는 억압받는 이웃들, 사람대접 받지 못하는 작은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정의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불의한 세상과 싸웁니다. 자신을 버렸으니 사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심이 없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는 사람들이며 설령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더라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더 아름다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몸소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복된 아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없는 이들, 아픈 이들, 못 배운 이들, 무시당하고 서럽던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보여주시려고 분투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사들과 그리고 로마제국과 맞서 싸우던 힘든 삶이었지만 마음 한가운데서부터 행복과 기쁨이 솟아올랐기에 예수님은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룩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던질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룩될 하느님 나라가 이런 이들의 몫이 될 것이므로 이들을 진정 복된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1 운동 백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를 사죄하고 반성하는 동시에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의 저항정신을 다시 발견하려고 이곳 소성리에 모였습니다. 소성리는 우리 시대의 당면과제가 무엇인지 가장 뚜렷이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곳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무엇과 싸워야 하는지 세상에 알리는 곳인 동시에, 거대한 어둠의 세력들과 투쟁하는 끈질긴 민중의 힘이 발산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악령과 대적하는 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면서 시대의 징표와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식별의 장소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식별되지 않은 악령은 끝까지 준동하며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악순환은 무한히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동학 농민들로부터 시작된 근세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다시 한 번 상기했으면 합니다. 이후 3.1 독립 만세 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온 저항의 불꽃은 다시 불타올라야 합니다. 아직도 탄핵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3.1 독립 만세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완성해야 하는지 김해자 시인의 시를 일부 차용하며 강론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가 탄핵하는 것은
해방 후 내내 심판도 단죄도 받지 않은 거짓과 비리.
민주주의를 짓밟고 고문하고 죽이고도 출세와 이권을 챙긴 불의한 관료.
우리가 탄핵하는 것은
해방 후 내내 국민들의 고혈을 짜낸 탐욕스런 재벌.

연민과 분배와 정의가 얼어붙은 사이,
농촌은 해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졌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동안 가난과 공포와 불안과 빚도 되물림되었다.
공부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도 미래는커녕 오늘 하루를 기약할 수 없다.
이 모든 세습을 탄핵하라.

먹고 사느라 나 몰라라 했던 통회의 눈물,
힘없는 자에게 힘 있는 자 적이 되는,
이 모든 억압과 불평등을 불 싸지르기 위하여.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 되고 분노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만인이 만인에게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이제 일어나라, 바로 행동하라. 힘껏 저항하라.)

 

소성리 삼일절 미사 강론

일, 2019/03/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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