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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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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익명 (미확인) | 목, 2018/01/25- 16:54

인터뷰

자랑스러운 아버님을 두었지만 내 아이에게는 미안한 아버지입니다
– 2017년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임국희 선생 자제 임병욱 회원

정리 : 이명숙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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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광복절 즈음이면 어김없이 회자되는 말이 있다. ‘친일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언급하며 이 말이 사라지게 하겠다고 했다. 나라와 민족을 우선했던 애국지사, 해방이 되고도 합당한 예우를 하지 않았던 국가, 오히려 친일파가 득세했던 세상이 있었다. 그 사이 애국지사의 가족 대부분은 3대가 망한다는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 호 인터뷰 주인공은 광주지부 임병욱 회원이다. 그가 들려주는 선대 이야기와 자신의 삶에는 동학농민운동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근현대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와 불의에 저항했던 선대가 남긴 건 가난이었지만 선대의 명예를 되찾고자 부단히 노력한 결과, 2017년에 아버지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문 : 고 임국희 선생께 지난해 11월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셨습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 : 먼저 묻힐 뻔 했던 아버님의 독립운동 공적을 국가가 인정해준 것이어서 정말 기쁘고, 아버님의 힘들고 어려웠던 한을 풀어드린 것 같아 그저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아버님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문 : 임국희 선생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사실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답 : 아버님이 1901년생이십니다. 제가 1960년생이니까 저희 아버님이 60세에 저를 낳으셨구요. 저는 집안의 막내입니다. 누나 다섯 분, 형님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현재 누이 두 분과 저만 남았습니다. 제가 8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당연히 아버님의 과거사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11년 전 보훈처 홈페이지에 아버님 함자를 넣어보니 독립운동가 번호가 있더라구요. 그때서부터 아버님의 흔적을 찾아다녔죠. 전국을 다 다녔습니다. 지금처럼 독립운동 자료들이 데이터베이스화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일 때 누나들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아버지는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에서 사회주의운동가 즉 빨갱이 취급을 받았다고, 그러다가 저까지 잡혀간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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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국희 선생의 사회활동과 예비검속 사실을 보도한 1930년대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

 

문 : 임국희 선생님이 어떤 독립운동을 하셨는지 알려주세요

답 : 저희 아버님은 부산에서 신간회의 청년부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부산 지역 노동자들의 부당한 대우와 당시의 한국 실정을 외신기자들에게 영어와 러시아로 설명하셨구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청년계몽운동을 하셨다고 독립운동사에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12[기록으로 전해지는 임국희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 : 부산지역에서 청년운동을 하였고, 주로 부산청년동맹에서 활약했다. 부산청년동맹은 조선청년총동맹 산하 단체로 부산에서 결성된 항일청년단체로 1927년 12월 창립 이후 부산지역의 청년운동 및 각종 사회운동을 지도하며 일제의 지배정책에 저항했다. 주요 활동은 당시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기반한 노동운동이었으며, 각종 강연회와 음악회·운동회 등을 열어 대중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임국희 선생은 부산청년동맹 집행위원 및 조사・연구부 부원, 부산청년동맹 서부지부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신간회·근우회 등 부산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개최하는 강연회와 연설회에서 연사로 활약하였다. 같은해 부산조선방직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노동자파업을 지지·후원했던 일본인 사회주의자 쓰지(辻登喜吏)와 나카무라(中村忠)와 협력하여 파업 전말을 알리기 위한 격문 수백 매를 인쇄하여 조선과 일본 각지로 우송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구금되었다. 석방 후에도 꾸준히 부산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1931~1932년 일제에 의해 수차례 예비 검속당했다.]

문 : 주로 청년동맹에서 활동하셨는데, 기록으로 드러난 사실 외에 직접 전해 들으신 독립운동 내용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답 : 직접 들은 이야기는 사실 거의 없습니다. 주위 친척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나 누나들에게 들은 후문으로는 가정은 잘 돌보지 않고 주로 외부활동만 많이 해서 좋은 가장은 아니었다고들 하셨습니다.

문 : 임국희 선생이 러시아어를 하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해외에서 활동하셨던 건가요?

답 :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 공부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이 충청도에서 대대로 대농을 하며 잘 사는 집이었답니다. 큰누이가 살아계시면 지금 아흔 살이 되는데, 소학교를 다닐 때 머슴을 두고 가마를 타고 다녔다고 하니 경제적으로 상당히 여유 있는 집이었을 것 같습니다. 유학파인 아버님은 일어뿐만 아니라 영어, 러시아어까지 4개 국어를 하셨다고 하네요. 이외에도 정치경제학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신문에 나와 있는 것으로는 아버님의 귀국 후 활동 중 외신기자들에게 우리나라 주변의 국제정세를 영어와 러시아어로 설명하시다가 체포되신 게 많더라구요.

문 : 원래 충청도 출신이신데, 활동은 주로 부산에서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답 : 물론 있지요. 제 증조부께서 동학혁명 가담자로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총살을 당하셨습니다. 그 울분을 못 참으신 할아버지께서 일본과 가까운 부산으로 가셔서 아버지를 유학 보내셨습니다. 배워야 한다구요. 당시 아버지는 꽤나 영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저희 집이 부농이라는 것을 숨기고 가족 전부가 부산으로 이사했구요. 할아버지는 농사지으며 아버지 유학비를 대셨고, 귀국 후 각종 사건으로 아버지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을 때마다 할아버지께서 돈으로 빼내셨다 하더라구요. 만약 아버지가 일제 때 독립운동을 안 하셨으면 아마 지금 저도 잘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저희 누나들은 그런 점에 있어 아버지를 살짝 원망하기도 하더라구요.

문 : 지난해 서훈 신청이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간 어떤 과정을 겪으셨나요?

답 : 네, 딱 10년 걸렸네요.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던 해에 처음 서훈 신청을 했고, 1년 후에 연락이 오더라구요. 결과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3번 더 신청서를 넣었지만 마찬가지 결과만 돌아왔습니다. 왜 우리 아버님의 독립운동이 인정받지 못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혹시 연구소에 자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했지요, 아버님의 공적을 확인해 주기를요.
그런데 연구소에서 저희 아버님의 공적에 대해 너무도 자세히 조사해주고, 잘 정리해주었습니다. 사실 그 양식 그대로 보훈처에 제출했는데 그로부터 2달 후 서훈이 결정되었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서훈 결정은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보통 10년 이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연구소에서 조사해주신 공적내용이 보훈처에 제출하는 ‘독립유공자평생이력서’에 잘 들어맞게 정리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연구소에 감사드립니다. 또 저와 같은 독립운동가 유족이 서훈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연구소가 힘써주시면 좋겠습니다.

문 : 아버님이 어릴 적 돌아가셨는데, 기억에 남는 아버님과의 추억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답 : 아버님은 늦게라도 아들 하나를 더 보시겠다고 저를 막내로 낳으셨어요. 남들에게는 구부정하신 할아버지였지만 저에게는 아버지였죠. 부산에 살고 있을 때 많은 분들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어요. 그분들이 모두 함께 독립운동을 하셨던 동지들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님은 제가 5살 때 부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하셨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 같이 3년을 살았습니다. 그때 아버님이 많이 힘들어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가난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숨어 사신 것 같아요. 부산에서는 항상 감시당하시고 조봉암 사건[1959년 이승만정권이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사건] 이후로 숨어사시다시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님에 대한 기억은 늘 우울해 하시던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8살 되던 해에 서러움과 가난으로 자진하셨습니다.

문 : 해방 후에도 아버님께서 감시당하고 숨어사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왜 그러셨는지, 또 조봉암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연관이 있었나요?

답 : 제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린 나이라 직접 듣거나 기억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로 주위 친척이나 누나들에게서 전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버님은 일제로부터 36년 만에 해방이 되었는데 또 다른 나라에 지배당할 수 없다고 하시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그 후 항상 ‘방첩대’의 감시 하에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희 아버님과 같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시가 심했고, 6·25전쟁이 일어나자 더더욱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이후 조봉암 사건이 있은 후에도 감시가 심해 사실상 가택연금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여서 집 밖 외출도 어려우셨습니다.
[방첩대 : 남한 내 공산주의자들의 활동 감시, 북한정권의 대남간첩활동 조사, 대북 첩보·정보수집 등 반공·방첩·정보업무 수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사기구이다. 실제적으로는 이승만정부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사찰·탄압 등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1949년 10월에 창설되어 1950년 10월까지 1년여 기간 동안 존재했지만, 이후 유사한 방첩업무를 담당했던 부대까지 통칭하여 ‘방첩대’라 불렀다.]

문 : 증조부 때부터 무려 4대에 걸친 가족사가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 나이에 아버님을 떠나보내신 후, 회원님의 삶도 순탄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기까지 생활은 어떠셨나요?

답 : 아버님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처음으로 청운동 근처 산골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1968년 김신조 사건이 일어난 후 청와대 인근 산속 마을을 전원 소거하면서 우리 가족들은 봉천동의 습지대로 강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천막 하나 내주며 살라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려서 그 상황이 나쁜지 어쩐지도 잘 몰랐었죠. 그곳에서 큰누나와 막내누나, 저 셋이 살던 중 큰 물난리를 겪어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홀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때가 고1 때였는데, 세검정에 자리를 잡고 구두닦이 등으로 품을 팔아 생활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려웠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죠.

문 : 서울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는지요. 또 어떤 계기로 지금의 광주에 오시게 되었나요?

답 : 가난의 대물림이란 것이 정말 무섭더라구요. 그 와중에도 대학에 가고 싶어 음대를 지원했습니다. 다행이 합격해서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수십 년의 서울살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포에 계시는 장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으로 가까운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연고가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오히려 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제 대통령표창을 받으신 아버지가 계서 너무나 자랑스러운데, 그간 어려운 생활들로 저는 제 자식에게 해준 게 없어서 많이 미안하기도 합니다.

문 : 연구소와는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답 : 저는 2012년 연구소에서 만든 〈백년전쟁〉 특히 ‘프레이저보고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명박 정권 하에서 이런 것을 제작해서 배포할까, 거긴 어딜까, 이런 궁금증으로 찾다보니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알게 되었구요. 연구소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런 단체라면 적은 돈이지만 후원해야 할 듯해서 회원이 되었습니다.

문 :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적폐청산 항일음악 토크콘서트’에서 광주지부 회원님, 상근자들을 처음 만나신 것으로 압니다.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답 : 마음 같아서는 항상 연구소 행사에 찾아가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통 못 가보다가 제가 있는 광주에서 그것도 항일음악콘서트를 한다고 하여 꼭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제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거든요. 처음 들어보는 ‘항일음악’이 어떤 것인지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콘서트를 본 후 쇼크가 더 컸어요. 이런 항일음악은 중고등학교에서 알아서 자체적으로 교육하고 콘서트도 진행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이런 내용을 연구소가 전국을 찾아가서 하고 있다니. 더 나아가 현재의 음악교육에 친일음악, 친일음악인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교육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충격 속에서도 콘서트 자체는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길어 나이 먹은 사람은 오래 있기 좀 힘들었습니다. 무릎이 아프더라구요.

문 :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답 : 하루빨리 아버님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리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 전에 신청했고,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또 아버님의 업적을 찾을 수 있는 만큼 더 찾고, 동학혁명으로 돌아가신 증조부의 행적도 더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서훈 이후 후손에 대한 예우보상을 일정 부분 받게 되었는데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꽤 있더라구요. 독립유공자 자녀의 평균 연령은 87세, 손자녀는 77세로 모두 상당한 고령이십니다. 집안 막내인 저는 60대로 독립유공자 손자녀보다도 젊은 편에 속하죠. 그런데 친일파의 후손 중 자녀도 제 나이 또래는 상당히 있습니다. 김무성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죠.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떵떵거리고 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에 “독립유공자의 자손들은 3대까지 국가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며 보훈 보상 체계 개선을 말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변화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령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조속한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또한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의 자손이란 긍지를 갖고 연구소 활동에 더욱 관심을 쏟으며 연구소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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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이준 열사 집터 표석 제막식 자료집]

 

이준 열사 순국일에 집터 표석 제막식 거행

 

▲ (좌) 이준 집터’ 표석 (시안), (우) 이준 열사의 집터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안국동 152번지 구역의 현재 모습

헤이그특사사건 11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준 열사가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될 당시에 거주했던 곳에 그를 기리는 집터 표석이 설치된다. 그간 이준 열사가 생전에 안국동에 살았던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주소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각종 문헌자료를 조사해 최초로 지번(안국동 152번지)을 확인한 결과, 덕성학원 재단 건물인 해영회관이 헤이그특사로 파견될 당시 이준 열사가 거주했던 집터임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표석 설치를 신청하였고,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이번에 집터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0713-2

▲ 지적도면 위에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자료이다. (『경성부일필매 지형명세도』,1929)

표석 문안에는 이곳이 1907년 당시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점 이외에 1905년 이준의 부인 이일정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명기하였다.

표석 제막식은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가 되는 7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덕성학원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리며, 제막행사는 1시 40분에 해영회관 1층(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전면에서 거행된다. 이번 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준 열사 유족대표로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명예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이에 앞서 낮 12시 3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준 열사의 생애와 이준 집터에 관한 사료 소개와 전시해설이 있을 예정이다. (재)리준만국평화재단(이사장 이양재)에서 제공하는 전시유물에는 이준 열사의 유묵(遺墨) 2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목, 2017/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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贈親朋末子

 

孰敢言多産(숙감언다산)

人波若蟻軍(인파약의군)

如何無子息(여하무자식)

老後必歡欣(노후필환흔)

 

친한 벗의 막내아들에게 지어 주다

 

뉘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 물결일랑 개미떼와 같구나

자식이 없음은 또한 어떻겠는가

늙은 후에는 반드시 기뻐하리라.

 

<時調로 改譯>

 

그 누구라서 감히 多産을 언급하는가

사람의 물결일랑 마치 개미떼 같구나

無子息 어떻겠는가, 老後에 기쁘리라.

 

*親朋: 친우(親友). 가까이하여 친한 사람 *末子: 막내아들 *多産: 아이나

새끼를  많이  낳음 *蟻軍: 개미떼  *無子息: 아들도  딸도 없음. 무자(無子)

*歡欣: 기뻐함.

 

<2017.7.13, 이우식 지음>

목, 2017/07/1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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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기로 하고 안 줬나 봅니다.





수, 2017/07/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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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옮겨는데책자가안오는데궁금합니다

수, 2017/07/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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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乙(갑을)

 

同人誰甲乙(동인수갑을)

貴賤亦如何(귀천역여하)

旣定因錢貨(기정인전화)

難期止不和(난기지불화)

 

甲과 乙

 

같은 사람인데 뉘 甲, 뉘 乙인가

귀함과 천함일랑 또한 어떠한가

돈으로 인하여 이미 정해졌으니

不和를 그침은 기약하기 어렵다.

 

<時調로 改譯>

 

甲과 乙 누구인가 貴賤 또한 어떠한가

저 돈 따위로 인하여 이미 정해졌으니

오호라! 不和를 그침 기약하기 어렵다.

 

*同人: 같은 사람. 바로  그 사람. 어떤  일에 뜻을  같이하여 모인 사람 *甲乙:

乙을 아울러  이르는  .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첫째와 둘째 *貴賤:

부귀(富貴)와 貧賤.  신분이나   따위귀함과 천함 *旣定: 이미 결정되어

있음 *錢貨: 돈 *不和: 서로 화합하지 못함. 또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함.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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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我國某名詩人之詩後

 

美人眞若此(미인진약차)

素面却佳容(소면각가용)

麗句雖盈滿(여구수영만)

全無動我胸(전무동아흉)

 

우리나라의 어떤 이름난 詩人의 詩를 읽고 나서

 

미인이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민낯이 되레 아름다운 모습이라

고운 글귀들로 비록 가득하지만

내 가슴 動搖 따위, 전혀 없구나.

 

<時調로 改譯>

 

미인 이와 같느니 민낯 되레 佳容이라

곱게 꾸민 글귀 따위 비록 가득하지만

어쩌랴! 나의 가슴은 動搖함이 없구나.

 

*我國: 아방(我邦). 우리나라 *若此: 이러함 *素面: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佳容: 아름다운 용모(容貌)  *麗句: 아름답게  꾸민  글귀  *盈滿: 가득하게

*全無: 전혀 없음.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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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某刹一柱門

 

無根寧滿發(무근녕만발)

坐食入多錢(좌식입다전)

佛泣登途久(불읍등도구)

僧徒夢老仙(승도몽노선)

 

어떤 절의 一柱門에 쓰다

 

뿌리가 없음에도 어찌하여 滿發

놀고먹는데 많은 돈이 들어오나

佛, 흐느끼며 길 떠난 지 오랜데

중들은 늙은 神仙을 꿈꾸는구나.

 

<時調로 改譯>

 

無根에 어찌 滿發 놀면서 多錢을 버나

부처는 흐느끼며 길 떠난 지 오래인데

중들은 늙은 신선의 꿈을 꾸고 있구나.

 

*無根: 뿌리가 없음. 근거가 없음 *滿發: 만개(滿開). 전개(全開). 꽃이 활짝

다 핌 *坐食: 와식(臥食). 도식(徒食). 일을 하지 않고 놀고먹음 *多錢: 돈이

많음.  또는      *登途:  등정(登程).  길을  떠남  *僧徒:  수행하는  승려 무리.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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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아이들, 한뼘 더 성장하다"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샤론 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서대문형무소. 한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 왁자지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울려 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0여명 남짓한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6월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운동 역사를 배워가는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보다 생생한 독립운동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광복절 즈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프로젝트 초기만 해도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던 아이들은 불과 두 달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삼점일절에서 ‘31독립운동 역사와 거리를 좁히다

 

 

“191931일 파고다 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칩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 명이었는데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200만 명이었다고 해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친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랍니다.”

독립운동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운동이었어요.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죠. 그걸 지키려고 애썼던 분들이 계셨고, 총칼로 싸우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각오하고 활동한 분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쓱 지나가며 곁눈질하는 것과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서대문형무소가 초행도 아니고, 독립운동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음에도 서대문형무소 도슨트(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윤명희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알고 있던 사실조차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설명을 듣고도 생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설명을 들으면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후손들을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여성 감옥이 따로 있었다는 건 자료조사 하면서 알고 있었는데, 임산부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임신한 몸으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기저귀도 구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저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인데 그 모든 것을 독립을 위해 견뎌내신 분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 배움과 깨달음 이어가는 역사탐험 프로젝트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샤론지역아동센터는 초중생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선생님은 큰 주제만 제시할 뿐, 그 어떤 설명도 자료도 일절 주지 않는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은 모두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오기 전에도 자료조사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또래와 비교해 이해의 범위가 남달랐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거나,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시큰둥한 표정을 보면서 아직 어려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재미가 없어서 지루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고 오해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무표정이 전부였지만, 그 뒤에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새로 알게 된 것 사이를 바삐 오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실 저 역시 아이들 표정만 보고 걱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종일 견학만 다닌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걸으니까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무리한 일정이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설렁설렁 다닌 줄 알았는데 설명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신문기사로 정리해내는가 하면, 그날 다닌 곳들을 그림지도로 만들기도 하고, 직접 대본을 써서 종이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보기엔 떠들고 장난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마음에 다 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확신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일보다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고요.”

 

최미란 샤론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2012년부터 매년 올해로 네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되고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단번에 잊게 만들만큼 아이들의 빛나는 성장을 매순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어루만지는 따뜻한 돌봄아름다운 동행 계속되길

 

샤론지역아동센터 최미란 센터장

 

샤론지역아동센터가 2010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어온 것도 아이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다. 아름다운재단이 문화소외지역 아동청소년들에게 문화체험 활동을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에 지원해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 레슨 기회를 연결한 것이다. 최미란 센터장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센터는 지역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많은데,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레슨을 받으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그중 한 아이는 3년간 피아노를 쳤는데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이겨냈고요.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성장했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과 더불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있는 샤론아동지역센터. 아이들을 향한 무한대의 사랑만큼 앞으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도 끝없이 진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파트너쉽을 맺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아름다운재단 꿈꾸는나무기금, 성도지엘삼더기금, 아름다운영화인기금, 효주기금, 행복한쉼표기금을 기반으로 전국 문화소외지역(농어촌, 광산촌, 섬지역 등)에서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나 아동청소년 이용시설 및 양육시설에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문화예술교육, 현장탐방 등)을 지원합니다. [지원사업 자세히 보기]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월, 2015/09/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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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富僧說夢

 

免罪祈三佛(면죄기삼불)

前宵現夢言(전소현몽언)

救靈眞不易(구령진불이)

速覺貨錢元(속각화전원)

 

부유한 중을 만나 꿈을 말함

 

免罪해 주십사 三佛께 빌었더니

간밤에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영혼을 구하기 참으로 어렵느니

돈이 으뜸임을 빨리 깨달을지라.

 

<時調로 改譯>

 

三佛께 免罪를 비니 간밤 現夢言하길

영혼을 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느니

금전이 으뜸이란 걸 빨리 깨달을지라.

 

*免罪: 지은 죄를  면함. 또는  면하여 줌  *三佛: 극락에 있다고 하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통틀어 이르는 말 *大勢至菩薩: 아미

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 지혜문(智慧門)을 대표해 중생을 삼악도(三惡道)

에서 지는 무상(無上)한 힘이 있다. 그 형상은 정수리에 보병(寶甁)을 이고

천관(天冠)을  썼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前宵: 전야(前夜). 어젯밤

*現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러한  꿈 *救靈: 신앙

  힘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不易: 쉽지  아니함.  어려움  *貨錢: 錢貨.  돈.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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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美國(고미국)

 

焉非羊面虎(언비양면호)

未覺爪牙衰(미각조아쇠)

促買新兵器(촉매신병기)

諸邦起大疑(제방기대의)

 

미국에 告함

 

어찌 羊 낯짝의 범이 아니겠는가

발톱과 어금니 쇠함 아직 모르네

새 兵器를 어서 사라고 재촉하니

여러 나라가 큰 의심을 일으킨다.

 

<時調로 改譯>

 

羊 낯짝 범이 아닌가 爪牙 쇠함 모르네

새로운 兵器 따위, 어서 사라 재촉하니

오호라! 여러 나라가 큰 의심 일으킨다.

 

*爪牙: 발톱과 어금니 *兵器: 전쟁에 쓰는 기구를 통틀어 이름 *諸邦:

제국(諸國).  여러  나라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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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邦態(탄방태)

 

僅僅成邦態(근근성방태)

時時不禁嘆(시시불금탄)

如居無法境(여거무법경)

未久恐衰殘(미구공쇠잔)

 

나라 꼴을 탄식하다

 

겨우 나라의 꼴 이루게 되었건만

때때로 탄식일랑 禁할 수 없다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 같으니

오래지 않아 衰殘할까 썩 두렵네.

 

<時調로 改譯>

 

나라 꼴은 이뤘건만 때때로 탄식하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과도 같으니

마침내 오래지 않아 쇠잔할까 두렵네.

 

*僅僅:  겨우  *時時: 가끔.  때때로  *不禁:  하거나  말리지  아니함.  찌할

없음 *無法: 법이나 제도가 확립되지 아니하고 질서가 문란함. 도리에

긋나고 예의가  없음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衰殘: 쇠하여  힘이나

세력이 점점 약해짐.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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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諸牧師與僧

 

誰耶蘇孰佛(수야소숙불)

未覺兩非神(미각양비신)

不信終無礙(불신종무애)

能分別假眞(능분별가진)

 

모든 목사와 중에게 告함

 

누가 예수이며 누가 부처이던가

둘 다 神이 아닌 걸 아직 모르네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無礙하여

거짓과 참, 분별할 수 있게 됐네.

 

<時調로 改譯>

 

예수와 佛 그 뉘인가, 둘 다 神이 아닐세

나는 믿지 아니하니 마침내 거침이 없어

참됨과 거짓일랑은 분별할 수 있게 됐네.

 

*耶蘇: ‘예수’의 음역어(音譯語) *不信: 믿지 아니함. 또는 믿지 못함 *無礙:

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 *分別: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구별해 가름.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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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는 친일매국노 집안으로 북한서 친일파를 처벌하자

남한으로 도망와서 만든 친일파 가족들 모임인 정치깡패단체 서북청년단 총무보다가
김구선생님이 미국에 왜 전범 독일처럼 일본을 갈라야지 죄없는 조선을 가르냐고 항의하여

 

국민여론에 쫏겨 북한서 쏘련군 철수와 미군도 철수를 할수없이 하려던때

미국앞잡이 이승만과 미국이 짜고 이승만이 조종하는 친일매국 정치깡패단체 서북청년단 총무보던 안두희를

갑자기 포병소위로 둔갑시키곤 김구선생에게 접근시킨후 김구선생을 암살 살해한지 67여년이 지나가지만

 

김구선생의 진정한 해방인 평화통일을 아직도 보지못해 안타까운 마음이고 위키리크스가 밝혔듯 우리가 통일되면

경제나 군사적 모두에서 강대국이 되는걸 반대해 평화통일을 반대하는 나라가 미국과 일본 또 중국이듯이

세계의 깡패국가인 더럽고 음흉한 미국과 일본의 속내를 파헤쳐보자

 

또 북한의 3대 독재세습은 나쁘지만 우리헌법정신의 평화통일위해 남북교류로 독일처럼

6.25같은 동족살생을 피하고 교류와 협력으로 북한과도 독재없는 한민족국가로 평화통일 돼길바라며 이글을 바친다

글이 좀 길어도 우리가 현재 지구상 유일하게  타국에 강제로 분단돼어 그나라들이 냉전조장 전쟁위기 만드는데

외세에 흔들리지말고 민족간 전쟁을막아 평화교류와 대화로 평화통일시켜  한민족국가를 후손에 넘겨줘야한다

 

1905년 일외무장관 가쓰라와 미외무장관 테프트협상처럼 조선을 일본식민지만들기에 일본에 적극 협조한 미국이

2차대전때도 강건너 불구경 하다가 일본이 미국본토 공격하자 마지못해 참전 원폭투하로 승리후

일본이 조선등지서 약탈한 엄청난 금괴와 731부대 인체 살상무기 정보받고 독일처럼 갈라야할 전범 일본대신

조선을 강제분단할때 쏘련은 일본을 가르자했으나 원폭투하로 유엔을 장악한 미국의 힘에 밀리었고
미국앞잡이 이승만은 일정시대때 독립운동에 훼방꾼같았고[독립운동 지도부와 마찰과 독립운동가들을 돕지않고 재판등에서 오히려 나쁘게하였음]

 

미국교포들이 후원한 독립운동자금도 빼돌려 외국여자와 돌아다니며 사치낭비와

하와이 교포들의 독립운동도 불법무기소지했다고 미국에 밀고한 더러운 미국앞잡이로
독립군이 조국분단 반대하자 처벌하려던 친일파를 경비서던 독립군을 죽이고 구출후 이승만의 군경과 내각에 기용해

조국분단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여운형등 애국자를 서북청년단등 정치깡패들과 친일파 군경시켜 암살하였고

강제분단 반대하던 독립군과 일반국민과 제주도민들을 빨갱이나 공비로 속이고 학살등 강제분단에 이용하였으니

당시 제주도민도 조국 강제분단에 반대했다고 친일파 서북청년단과 친일파 경찰시켜 제주도민을 학살한것이다

 

 

강제분단때문에 벌어진 6.25때도 파렴치한 이승만은 서울서 자신들만 먼저 도망가 살려고 한강다리 끊어

수많은 피난민들 숨지고 이승만 본인이 친일파라 일본으로 망명신청도 하였으나

지금 이승만 추종세력들은 아니라고 역사왜곡을 하고있으며

3.15부정선거 저질러 국민들 항의시위로 충성하던 미국으로 도망가 죽었으며

[3.15부정선거범 최인규등을 사형과 무기징역시키듯 원래 이명박과 박근혜도 부정선거 주범으로 처벌해야하는것임]

 

다시 올라가 미국과 일본의 조선 강제분단 때문에 우리 민족 삼백만명이 숨진 6.25비극을 만든 원인이 미국 일본때문으로

그래서 전주한미국대사가 미국의 강제분단이 한국인에 큰고통을 주었다고 한국인에 무릎꿇고 사죄하였으나
미국은 반성없이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허가하였듯이 한국내 친일파등 사대매국세력의 불법집권을 도우며

박근혜의 부정선거를 모른척하듯이 그불법세력들 이용해 남북냉전만들곤 미국서 퇴출 고물무기 비싸게 팔아먹고

미국세력확장용 미국이익 주둔인 한국에서 미군월급과 미군주둔 경비를 한국돈으로 펑펑쓰고있으며

 

 

이명박과도 BBK미국재판서 BBK가 자신회사란 동영상등 중요증거물 배제시켜줘 명박이에게 유리하게 재판해주곤

대신 미국인 않먹는 20개월이상 미국소 국민패며 강제수입과 미국서 퇴출하는 고물무기 세계최고 수입과

서해안 미군기지 건설비 엄청바치고 미군주둔비용 엄청올려주는둥 우리세금 뇌물바쳤듯이

당시 이명박 집권때 미국대통령인 음흉한 오바마가 수백조 우리세금 낭비한 이명박과 무슨 뒷거래가 또 남았는지

요번에 한국을 특별방문 이명박과 만나 비밀얘기 하였고

 

 

과거에도 박정희 일본군 상관 기시수상과 1963년 짜고 미군과 일본군과 박정희가 장악한 한국군과 북한을 침략

장악한후 한반도 전체를 일본식민지로 도로 만든다는 협정을 미국과 일본이 맺은 미쓰야작전으로

63년 박정희도 기시에 불려와 일본에 충성약속을 하였고

만약 6.25처럼 중국이나 쏘련이 개입해 실패하면 한반도 전체를 핵투하 생명체 못살게 초토화 시키려했으며

 

당시 기시 전수상 밑에서 충성하던 일본 관방장관이 고이즈미로 고이즈미 전수상 얘비였으며

일본사회당에 적발돼 전범국가가 타국을 침략할수없다고 일본 야당 전체 항의로 무산된 미쓰야작전으로

만약 미쓰야작전이 실행되었으면 우리민족이 엄청난 큰 불행을 또 겪었을것이며

그래서 일본 양심학자들이 기시와 박정희를 태어나선 않될 귀태 즉 악귀라고 하는것임

[미국 부르스 커밍스 교수가 미국무부 비밀문서에서 발췌]

 

 

세계에서 미국이 힘으로 파나마운하와 중동석유판매권까지 빼았듯 북한의 원자력발전소를 핵무기만든다 트집잡아

핵발전소 가동중단대신 중유발전소와 중유지원키로 제네바협정맺고는 북한이 발전소까지 파괴했어도

미국일본이 협정깨트리고 선제공격 위협해 북한이 핵발전소 다시 건설 가동 핵무기만들게 유도한후 핑계로

한반도에 냉전만들어 미국은 고물무기 세계최고로 팔아먹고 일본은 군사재무장을 노린것이다

 

그래서 과거 김대중 노무현정권때 유엔서 북한탄압 표결때 미국일본 잘못도있어 기권한것으로
지금 미국과 일본이짜고 한국에 배치할 사드역시 한국방어용이 아니라 일본내 미군기지와 괌을 보호키위한 배치로

미국일본으로 향할 핵무기를 설사 막는다해도 한국상공서 터트려 한국인 멸종시킬 계획이며

 

중국과 러시아까지 감시할 레이더시설로 과거 쿠바에 쏘련미사일기지 배치하려하자 미국이 폭격한다하여 무산되듯 중국 러시아가 집중타격 목표삼아 전쟁시 성주는 물론 한반도 초토화로 멸망이나 수천만명 살상될거고

또 운용중 실수하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위험물이라 그래서 다른 외국들도 사드를 자국에 설치못하게 막는것인데

 

친일매국노가 집권하여 무조건 반공주의와 숭미주의를 교육시켜 찬성하는 사대주의 일부 바보국민들도 걱정인데

중국과 러시아 폭격에 생명권과 전자파 걱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또 다시 친일매국단체인 서북청년단이 나타나

미국과 일본 이익위해 주민과 싸운다니 과연 그것들 정체가 무엇이고 지원금이 어디서 나오는지 기가막힐 노릇이며

 

 

또 독도를 일본땅으로 올리라고 일본에 충성발언한 일본인 여자에게 오사카서 태어난 반쪽일본인 이명박과 짜고

부정선거 저지른 박근혜도 마찬가지로 최순실과 세금으로 가야할 기업세금을 엄청나게 세금도둑질했듯이

우리세금 수백조원 낭비후 뇌물챙겨 수십조원 싱가폴로 빼돌리고도 떵떵거리는 이명박을 보호해주었고
지금 최악의 가뭄도 세금도둑질과 자갈모래 팔아먹으려 강바닥 깊이파 상류와 지천의 물이 빨리 빠져 물마르고 수질오염만든것이며

 

박정희가 일본요구대로 우리땅 독도앞바다를 한일협정서에 공해로 표기해 독도분쟁 만들엇듯이 박근혜도
과거 노무현정권때 일본함정이 독도를 침략 전국민이 항의하자 “울릉군만 떠들지 전국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일본위해 한국인에 망언 지껄인 박근혜로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발포명령에 일본함정 내쫏았으나
박근혜는 부정집권뒤 한국인들 반대해도 한일군사협정맺고 일본군이 수시로 독도와 바다속을 드나들어도

쉬쉬하며 용인해주고 일본인 소유 저축은행들 한국서 고금리 사채장사해도 오히려 사채업자들 유리하게

사채를 불법추심할수있게 법까지 고쳐준것이 이명박과 불법추심을 안고친 박근혜정권이며

 

외국도 수입 않하고 일본인 않먹는 후쿠시마산 핵오염된 농수산물 안전하다고 수입해

한국인 먹인 매국노 후예 박근혜와 이명박이며

일본의 조선침략을 미화하고 친일매국노 박정희의 불법쿠테타와 친일매국 행위를 감추고

박정희가 경제살렸다고 국민속이는 역사책 만들었지만

 

 

박정희 집권당시엔 발전된 서양문물을 동양이 받아들일때라 아시아 전체가 발전하였지만

최저임금 최고노동시간으로 기업과 짜고 국민들 착취하던 박정희가 경제살려야할 세금을 기업서 차떼기로 강탈해

스위스로 60억불 빼돌린걸 나중 미국청문회서 이후락아들이 증언했고 현재 최순실과 박근혜가 관리한다는 소문있으며

정경유착 원조인 박정희 집권당시 아시아에서 꼴찌수준으로 경제 못살린게 당시 세계경제발전도표에 잘 나와있고

국민들이 독재반대해도 빨갱이 월급올려달래도 기업과 짜고 빨갱이로 몰아 감옥가두었다

 

 

박정희 일본 만주군상관이었던 기시를 제일 존경한다는 외손자 아베가 침략헌법을 요번 새로 만들었듯이

이명박이 추진했던 한국인들 침략국이라 반대했던 한일군사협정을 매국노 딸 박근혜가 위안부할머님 굴욕협상처럼

아베와 무슨 뒷거래인지 한반도를 재침략할수있게 만들어 일본식민지만들려는 제2 미쓰야 침략작전인지 경계해야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이승만 정부가 6.25전쟁 직후인 6월 27일 일본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승만이나 정부각료는 이날 서울을 탈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저 인민군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달리던 시점이었다. 망명정부설이 나왔다면 아마 그 시점은 낙동강 전투에서 유엔군이 위기에 처한 8월 중순 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대구 북쪽에서 인민군 2개 사단이 낙동강을 건너 방어선 북서쪽을 무너트렸다. 심한 압박을 받은 한국군 1사단과 6사단은 미 1기병사단 뒤까지 후퇴했다. 할 수 없이 워커 장군은 8군 사령부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길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이 위기 상황에서 ‘정부를 일본으로 옮기자’고 주장을 했던 인물은 최악의 국방부장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신성모로 추정된다.

 

무초 미국 대사가 1950년 6월 27일에 국무부에 타전한 전문을 읽어보자.

“신성모가 아침 7시에 나를 찾아와 대통령은 새벽 3시에 진해를 향해, 그리고 내각은 아침 7시에 남쪽 지방을 향해 특별열차를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과 내각을 일본으로 보내 망명정부를 세울 수 있는지 여부를 내게 타진했다. 이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월, 2017/07/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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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10만원 이상)·후원회원 참여
우리은행 1006-401-235747 (시민역사관건립)

시민참여
우리은행 1005-703-038353 (시민역사관)

※발기인으로 참여하시려면 아래 첨부파일의 <동의서>를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표메일: [email protected]   팩스: 02-965-8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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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 동의서]  l  [한글 – 동의서]  l  [워드 – 동의서] 

 

 

목, 2016/09/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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