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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기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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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독립운동가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기념해야

익명 (미확인) | 화, 2018/01/09- 10:10

– 신흥무관학교 교관을 지냈던 김경천 장군 증손녀 김올가 씨

 

독립투사의 후손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랑스러운 선조를 갖는다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우리 역사가 독립투사를 제대로 대우했던 역사가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제대로 기념하지 않은 역사였기에 더욱 그렇다.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김경천 장군의 증손녀 김올가 씨를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09

문 : 연구소 회원들을 위해 김경천 장군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주세요.

답 : 증조할아버지인 김경천 장군은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유명한 독립투사예요. 본명은 김광서였는데 무관가문 출신이었어요. 아버지 김정우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고위 장교로 대한제국 군대의 병참 분야 최고 직위인 군기창감을 지내셨어요. 형 김성은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공병대장을 지내셨구요.
아버지는 공업을 배우라고 권하는데 나폴레옹 전기를 탐독하던 할아버지가 결국 군인의 길을 선택하셨대요. 1904년 대한제국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일본으로 건너가셨어요. 일본육군유년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셨어요. 말 타고 싸우는 기병장교로 동경 제1사단 기병 제1연대에서 근무하다가 3·1운동 후인 1919년 6월 만주로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 교관이 되셨어요. 할아버지는 일본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이청천 장군, 중국 사관학교를 나온 이범석 장군과 함께 청년들을 가르치셨어요.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가셔서 독립군 대장이 되셨어요. 동포들을 괴롭히는 마적들을 소탕하셨고, 러시아 내전에 출병한 일본군과도 싸우셨어요. 그렇게 평생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셨어요.
한국이 독립된 뒤 할아버지의 동지인 이범석 장군님은 국무총리가 되시고 이청천 장군님도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내셨는데 할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행하게 돌아가셨어요.

문 : 1919년 6월이면 3·1운동 직후로군요. 일본군 장교로 복무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신 건데,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답 : 조국을 빼앗겼는데 당연히 되찾아야 된다고 생각하셨죠. 할아버지는 일본육사 생도 시절에 3년 후배인 홍사익, 이청천, 이응준과 함께 요코하마에 가서 맹세하셨다고 해요. 조국이 부르면 독립전쟁에 투신하자고 말이에요. 하지만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 맹세를 지키기가 쉽지 않게 되었어요. 육사 졸업 후 일본군 장교가 되기도 했고요. 결국 홍사익과 이응준은 망명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증조할아버지와 육사 후배인 이청천 두 분만 모든 걸 내던지고 독립투쟁에 나섰어요. 자기 같은 군사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었겠죠.
그리고 가장 큰 계기는 삼일만세였어요. 증조할아버지는 당시 종로의 만세시위 현장에 있었고 시위대 속으로 들어갔었어요. 이후 1919년 6월에 이청천과 탈출해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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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장교 시절 김경천 장군과 부인 유정화

 

문 : 김경천 장군은 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하셨어요. 연해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답 : 증조할아버지가 압록강을 건너 서간도 유하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찾아가셨어요. 그곳에서 교관이 되어 독립군 양성에 매진하셨구요. 여기서 구한국무관학교 출신인 신팔균 장군도 만나셨대요. 그래서 증조할아버지와 이청천, 신팔균 이렇게 세 분이 하늘 천(天)이 들어가는 별호를 나눠 가지셨는데, 증조할아버지는 경천(驚天), 지대형(이청천 장군의 본명)은 청천(靑天), 신팔균 장군은 동천(東天)이라고 했대요. 세 분을 일컬어 남만주 3천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증조할아버지는 이청천 장군과 의논해서 이청천 장군은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해, 증조할아버지는 연해주로 무기구입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각각 이동하셨어요. 연해주는 혁명전쟁(러시아내전) 중이었지만, 15만여 명에 달하는 한인 공동체가 있고, 소비에트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문 : 러시아 연해주에서 김경천 장군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다고 하는데, 그 활약상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세요.

답 :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데 일단 몇 가지 말씀드리자면, 스찬[水淸. 지금의 빨치산스크] 지역에서 동포들을 괴롭혔던 마적단 300여 명을 전멸시키고 말 300여 필과 소총 300여 정을 노획한 적도 있고요. 증조할아버지는 마적 퇴치 투쟁으로 시베리아지역에서 큰 명성을 얻었고, 이때부터 ‘김장군’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 후 증조할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군정을 펼쳐 동포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1922년에는 이만에서 러시아 백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의 활약상도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전투 중에 적군(赤軍)의 사령관이 백군에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조할아버지는 자신이 지휘하는 스찬의병대와 함께 적군 잔여 병력도 함께 지휘하며 백군을 물리치고 이만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연해주 혁명사에 길이 남을 큰 승리였어요. 당시 일본은 이 지역에 최대 병력을 출병시켜 백군을 돕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승리라 할 수 있어요.

문 : 그런데 김경천 장군은 1930년대 이후 소련 정부의 탄압을 받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그런 건가요?

답 : 증조할아버지에게 일본 간첩이라는 혐의를 씌워 체포한 거예요. 이것은 스탈린의 대숙청과 한인 강제이주 정책 등과 맞물려 벌어졌어요. 대숙청 과정에서 한인 공산당 간부들이 대거 숙청됐고, 증조할아버지는 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일본육사를 나왔으니 소련의 관점으로는 나쁜 성분이었어요. 게다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공산당원도 아니었어요. 이 무렵 한인 독립운동 지도자들, 오랫동안 민족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체포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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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증조할아버지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군사학과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체포되셨다고 해요. 1936년 9월 체포되셔서 3년형을 받으셨고 2년 반 정도 복역한 후 1939년 2월 석방되셨어요.
이후 가족들이 있는 카자흐공화국으로 이동하셨는데, 거기서 다시 인민의 적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8년형을 선고받고 카라간다에 있는 교정강제노동수용소에 갇히게 되셨어요. 1941년에는 시베리아로 이감되셨고, 1942년에는 꼬미자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으로 유배되셨는데, 거기서 결국 숨을 거두셨어요. 안타깝게도 스탈린독재의 횡포에 희생되신 거죠. 증조할아버지는 스탈린 사후인 1959년 2월 복권되셨어요. 증조할아버지 유해를 찾아 고향으로 모시려는 소망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어느 나라든 간에 자기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증조할아버지 같은 분들을 제대로 대우하면서 기념해야 하지요.

문 : 독립운동가의 가족은 흔히 힘겨운 삶을 살아가곤 합니다. 가족들의 생활은 어떠했나요? 특히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신 후의 삶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답 : 가장 많이 고생하신 분은 증조할머니인 유정화 할머니예요. 선비 가문에서 출생해서 고생을 모르고 곱게 자란 규수였는데 독립투사의 아내가 되어 힘든 삶을 사셨어요. 카자흐스탄에서의 삶은 유형지로 간 죄수의 아내로서 특히 힘드셨지요. 그 당시 청소 같은 궂은일을 했어야 되는 상황이었고 고생이 심했죠. 하지만 그런 일도 귀족처럼 꿋꿋이 하셨다고 합니다.

문 : 김올가 씨는 지금 전남대 대학원에 재학중이시죠? 전공은 무엇인가요?

답 : 전남대 대학원 디아스포라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입니다. 최근 수료했고요. 현재는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논문 주제는 국내 거주 동포의 지역 수용에 관련한 연구입니다. 주로 안산과 광주에 있는 고려마을을 비교하여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부담이 좀 돼요. 전공 자체가 저와 저의 가족들, 더 나아가 고려인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고, 제가 이런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은 저 혼자의 논문이라기보다는 고려인을 대표하여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 : 김올가 씨는 연구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특히 광주지부와 밀접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답 : 네. 한국에 온 지 약 4년 됐는데, 처음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어요. 카자흐스탄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왔으나 전남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이 문화와 언어 기타 문제나 그런 것 때문에 부담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학효 선생님을 통해서 광주대학교 김순흥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교수님을 통해서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구요. 한국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김순흥 교수님과 광주지부 식구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어요.

문 : 최근 서울 사직동에 김경천 장군의 생가 표지석을 세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 같은 건 없었나요?

답 :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몇 가지 소망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직동 집터에 증조할아버지의 표지석을 세우는 것이었어요. 신흥무관학교를 세우신 우당 이회영 선생님의 손자인 이종찬 선생님과 우당기념관 상임이사인 황원섭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서 다행히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일 것 같지 않더라구요.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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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마지막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답 : 방금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부터 몇 가지 소망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하나는 이미 이루어졌지만 몇 가지가 더 있어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본격적인 전기를 출간하는 일, 백마를 탄 형상의 증조할아버지 동상을 세우는 일,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는 일,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기념관을 세우는 일, 증조할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일이 그것입니다. 사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유해를 찾는 일이지만 이것은 DNA검사 등 복잡한 작업이 필요하고 필수적으로 한국 정부와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일이어서 가장 힘든 일이에요. 하지만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생각입니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구요.
다행스러운 건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셨었나 봐요. 하늘도 할아버지 편을 드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증조할아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설가 이원규 선생님이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평전을 쓰고 있어요. 거의 탈고 단계이구요, 늦어도 내년 내에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소 회원분들도 김경천 장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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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차 맞은 대전수요문화제


“굴욕적 한일합의 당장 무효화하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반대한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한다!”
“역사적폐 끝까지 청산하자!”

7월 12일, 20차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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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저녁 7시, 대전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 실현! 대전수요문화제”가 20차를 맞았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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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을 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첫 번째 발언에 나선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은 “사람이 살면서 3가지 만남이 필요하다”며, 이 3가지 만남을 ‘자기 자신과 냉철한 만남’,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의 권위도 살릴 수 있는 역사와의 만남’,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회와의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만남을 위해 여기 오신 분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적폐청산이고, 더불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통일이라며 ‘적폐청산, 민족통일’ 구호를 함께 외치자며 선창하기도 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카이스트 내에 작은 소녀상 건립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카이스트 소셜메이커의 정지윤 학생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저지른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할 줄 알이야 한다”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성노예 범죄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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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회원과 조합원들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 임재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피플큐브’의 최준호, 김관영 회원과 연리지 장애가족협동조합 백장현, 김요진 조합원도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최준호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SNS를 타고 퍼지는데도 일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 몇 푼이 아니라, 진정한 사과”라며 “일본은 고개를 숙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백장현씨는 “위안부 범죄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될 가혹한 일”이라며,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외쳤다.

김관영씨도 “일본이 용서를 구하고, 국가에서 사과문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요진씨는 ‘난 알아요’ 곡으로 노래공연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대전청년회 김원진 대표도 발언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강제징용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진 대표는 군함도로 대표되는 강제 징용의 사례를 들며,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강제징용과 관련한 사실과 끔찍했던 광경들을 알고 있는데, 당사자인 일본만 피하려고 한다”며 일본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청년회에서는 군함도 강제징용의 참혹했던 피해 상을 고발하는 전시물을 직접 만들어 문화제 주변에 전시했고, 올해 11월에는 군함도를 직접 다녀와 강제징용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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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는 참가자들과 시민들. ⓒ 임재근

보릿고개에 입 하나 덜자고 나선 길이었다.
떨어져 살아도 고향 쪽 하늘 바라보면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겠지
그렇게 떠난 길이었다.
한 줌 빛줄기 들지 않는 열차 속에서
겁먹은 표정의 앳된 얼굴의 마주 앉은 낯선 아이의 손을
꼬옥 쥐어주며
이제 공장 가면 돈 많이 벌어
고향 집에 흰 눈처럼 소복한 솜옷 보내자 말했을 때
그 아이는
자기는 이불 보내고 싶어요
수줍게 웃었지…

양보규 대전지역 희망노동조합 위원장은 ‘이 땅 위에’란 제목의 자작시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고,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에서는 독립영화 ‘우리 학교’ 삽입곡인 ‘우리’와 통일 노래인 ‘경의선 타고’를 부르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통일을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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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노래를 함께 부르고 있는 대전민중의힘 소속 단체 대표자들. 왼쪽부터 김원진 대전청년회 대표,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정선 공동대표, 대전장애인부모연대 최명진 대표,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 민주노총대전본부 이대식 본부장, 대전민중의꿈 김창근 상임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 임재근

수요문화제는 ‘평화나비대전행동’이 주최하는 데, ‘평화나비대전행동’ 소속 단체들이 돌아가며 주관을 해오고 있다. 이번 달 수요문화제는 대전민중의힘이 주관했고, 소속 단체 대표자들이 함께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며 마무리했다.

대전수요문화제는 매월 두 번째 수요일 저녁 7시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개최된다. 다음 수요문화제는 8월 9일에 개최된다.

임재근 기자

<2017-07-1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모두 가혹하고 끔찍.. 일본은 사과하라”

목, 2017/07/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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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1] 
팟캐스트 ‘역적’ 8화 – 2부 「이게 실화냐?」 
“연구소 단독-이준열사 집터 발굴”

팟빵에서 듣기
http://www.podbbang.com/ch/14024

목, 2017/07/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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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발행심의위, 재심의 끝에 ‘발행 취소’ 공식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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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기념 우표 (사진=자료사진)

박정희 탄생 100년을 기념해 찍어내기로 했던 이른바 ‘박정희 우표’ 발행이 결국 없던 일로 됐다.

우정사업본부 산하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박정희 우표를 발행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 냈다.

전체 17명 위원 가운데 12명이 참석해 8명의 찬성으로 이 같이 결정했다.

지난해 5월 ‘박정희 우표’ 발행 결정에 대한 번복인 셈이다. 이에따라 당초 9월에 발행하기로 돼 있던 박정희 우표는 발행 근거를 잃게 됐다.

앞서 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사전회의를 열고 박정희 우표 발행 결정을 재심의 하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우표 발행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날 결정이 심의위원회의 업무를 규정한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세칙’에 위배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심의위원회에서 이미 결정한 우표발행에 대한 재심의 규정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우정사업본부는 해당 세칙에 제17조 2항 2호(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우표발행 및 보급에 관한 사항에 관해 우정사업본부장의 자문에 응한다)를 근거로 들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김기덕 본부장이 이 규정에 따라 우표발행심의위원회에 재심의 문제에 대한 자문안건을 올렸고, 심의위원회가 재심의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CBS노컷뉴스는 지난달 23일 우표발행심의위원회의 지난해 박정희 우표 발행 결정 과정에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보좌관 출신 인사, 옛 새누리당 당직자,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등이 참여한 사실을 폭로하며 우표 발행 재심의를 촉구한 바 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우표가 19차례 이미 발행한 사실도 밝혀내기도 했다.

한편, 박정희 우표 발행에 반대해온 측은 이날 결정을 환영했다.

그 동안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미래창조과학부공무원노동조합(우정사업본부) 등과 함께 박정희 우표 발행을 반대해 온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은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선 새 정부에서 지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는 것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환영할 일이다”고 논평했다.

<2017-07-13> 노컷뉴스

☞기사원문: 박정희 우표, 발행 안하기로 최종 결정

※관련기사

연합뉴스: 우정본부,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계획 철회(종합2보)

한국일보: 박정희 100돌 기념우표 발행 ‘없던 일로’

서울신문: ‘박정희 100주년 우표’ 발행 안 한다

오마이뉴스: ‘박정희 우상화’ 논란에 우정사업본부도 손 들었다

SBS뉴스: ‘박정희 우표’ 발행 결국 백지화…구미시 반발

목, 2017/07/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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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이준 열사 집터 표석 제막식 자료집]

 

이준 열사 순국일에 집터 표석 제막식 거행

 

▲ (좌) 이준 집터’ 표석 (시안), (우) 이준 열사의 집터이자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안국동 152번지 구역의 현재 모습

헤이그특사사건 110주년과 이준 열사 순국 110주기를 맞아 이준 열사가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될 당시에 거주했던 곳에 그를 기리는 집터 표석이 설치된다. 그간 이준 열사가 생전에 안국동에 살았던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주소를 특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가 각종 문헌자료를 조사해 최초로 지번(안국동 152번지)을 확인한 결과, 덕성학원 재단 건물인 해영회관이 헤이그특사로 파견될 당시 이준 열사가 거주했던 집터임이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 표석 설치를 신청하였고, 표석분과의 심의를 거쳐 이번에 집터 표석을 설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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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도면 위에 이준 집터(안국동 152번지, 장송루 자리)와 주요 인접 공간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자료이다. (『경성부일필매 지형명세도』,1929)

표석 문안에는 이곳이 1907년 당시 헤이그특사의 출발지였다는 점 이외에 1905년 이준의 부인 이일정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부인상점을 개설하여 운영했던 곳이라는 사실도 함께 명기하였다.

표석 제막식은 이준 열사의 순국 110주기가 되는 7월 1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소재 덕성학원 해영회관 8층에서 열리며, 제막행사는 1시 40분에 해영회관 1층(하나은행 안국동지점) 전면에서 거행된다. 이번 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광 국사편찬위원장,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상임 덕성학원 재단이사장을 비롯하여 이준 열사 유족대표로 조근송 이준열사기념사업회명예회장이 내빈으로 참석한다.

이에 앞서 낮 12시 30분부터 식전행사로 이준 열사의 생애와 이준 집터에 관한 사료 소개와 전시해설이 있을 예정이다. (재)리준만국평화재단(이사장 이양재)에서 제공하는 전시유물에는 이준 열사의 유묵(遺墨) 2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목, 2017/07/1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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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아이들, 한뼘 더 성장하다"
 

샤론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샤론 지역아동센터 역사탐험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서대문형무소. 한여름 무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에 왁자지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울려 퍼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10여명 남짓한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6월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운동 역사를 배워가는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은 보다 생생한 독립운동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광복절 즈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았다. 프로젝트 초기만 해도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던 아이들은 불과 두 달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삼점일절에서 ‘31독립운동 역사와 거리를 좁히다

 

 

“191931일 파고다 공원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칩니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000만 명이었는데 이날 시위에 참여한 사람이 200만 명이었다고 해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목숨 걸고 독립만세를 외친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랍니다.”

독립운동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운동이었어요. 말과 글을 잃는다는 것은 마음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죠. 그걸 지키려고 애썼던 분들이 계셨고, 총칼로 싸우는 것 못지않게 죽음을 각오하고 활동한 분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쓱 지나가며 곁눈질하는 것과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서대문형무소가 초행도 아니고, 독립운동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음에도 서대문형무소 도슨트(전시해설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윤명희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알고 있던 사실조차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사전 자료조사를 통해 공부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

 

샤론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설명을 듣고도 생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늘 설명을 들으면서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 운동가 외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후손들을 위한 그분들의 희생이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여성 감옥이 따로 있었다는 건 자료조사 하면서 알고 있었는데, 임산부 독립 운동가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임신한 몸으로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기저귀도 구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저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인데 그 모든 것을 독립을 위해 견뎌내신 분들이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아이들 스스로 배움과 깨달음 이어가는 역사탐험 프로젝트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샤론지역아동센터는 초중생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역사탐험대 출동!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워가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선생님은 큰 주제만 제시할 뿐, 그 어떤 설명도 자료도 일절 주지 않는다.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한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은 모두가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다. 실제로 서대문형무소에 오기 전에도 자료조사를 이미 마친 상태였다. 또래와 비교해 이해의 범위가 남달랐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설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거나,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시큰둥한 표정을 보면서 아직 어려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재미가 없어서 지루해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고 오해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눈과 귀와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무표정이 전부였지만, 그 뒤에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새로 알게 된 것 사이를 바삐 오가며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사실 저 역시 아이들 표정만 보고 걱정하던 때가 있었어요. 한번은 종일 견학만 다닌 적이 있었는데 너무 오래 걸으니까 아이들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더라고요. 무리한 일정이었나 싶어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설렁설렁 다닌 줄 알았는데 설명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신문기사로 정리해내는가 하면, 그날 다닌 곳들을 그림지도로 만들기도 하고, 직접 대본을 써서 종이인형극을 선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보기엔 떠들고 장난치는 것 같아도 아이들은 마음에 다 담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확신해요.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일보다 마음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고요.”

 

최미란 샤론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2012년부터 매년 올해로 네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되고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단번에 잊게 만들만큼 아이들의 빛나는 성장을 매순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어루만지는 따뜻한 돌봄아름다운 동행 계속되길

 

샤론지역아동센터 최미란 센터장

 

샤론지역아동센터가 2010년부터 아름다운재단과 인연을 맺어온 것도 아이들을 향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다. 아름다운재단이 문화소외지역 아동청소년들에게 문화체험 활동을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에 지원해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피아노 레슨 기회를 연결한 것이다. 최미란 센터장은 지금도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센터는 지역 특성상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아요.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많은데, 다행히 아름다운재단 지원으로 레슨을 받으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그중 한 아이는 3년간 피아노를 쳤는데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이겨냈고요.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게 성장했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기댈 곳 하나 없는 아이들에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돌봄과 더불어, 역사탐험대 프로젝트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있는 샤론아동지역센터. 아이들을 향한 무한대의 사랑만큼 앞으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동행도 끝없이 진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글. 권지희 | 사진. 김흥구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 지원사업>은 아름다운재단과 한국아동단체협의회가 파트너쉽을 맺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아름다운재단 꿈꾸는나무기금, 성도지엘삼더기금, 아름다운영화인기금, 효주기금, 행복한쉼표기금을 기반으로 전국 문화소외지역(농어촌, 광산촌, 섬지역 등)에서 저소득가정 아동청소년을 위하여 활동하는 단체나 아동청소년 이용시설 및 양육시설에 아동청소년 문화체험활동(문화예술교육, 현장탐방 등)을 지원합니다. [지원사업 자세히 보기]




 

숨요 변화사업국 사업배분팀전서영

 

아이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꿈꾸는 다음세대' 영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월, 2015/09/0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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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기로 하고 안 줬나 봅니다.





수, 2017/07/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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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옮겨는데책자가안오는데궁금합니다

수, 2017/07/12-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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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乙(갑을)

 

同人誰甲乙(동인수갑을)

貴賤亦如何(귀천역여하)

旣定因錢貨(기정인전화)

難期止不和(난기지불화)

 

甲과 乙

 

같은 사람인데 뉘 甲, 뉘 乙인가

귀함과 천함일랑 또한 어떠한가

돈으로 인하여 이미 정해졌으니

不和를 그침은 기약하기 어렵다.

 

<時調로 改譯>

 

甲과 乙 누구인가 貴賤 또한 어떠한가

저 돈 따위로 인하여 이미 정해졌으니

오호라! 不和를 그침 기약하기 어렵다.

 

*同人: 같은 사람. 바로  그 사람. 어떤  일에 뜻을  같이하여 모인 사람 *甲乙:

乙을 아울러  이르는  .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첫째와 둘째 *貴賤:

부귀(富貴)와 貧賤.  신분이나   따위귀함과 천함 *旣定: 이미 결정되어

있음 *錢貨: 돈 *不和: 서로 화합하지 못함. 또는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함.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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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我國某名詩人之詩後

 

美人眞若此(미인진약차)

素面却佳容(소면각가용)

麗句雖盈滿(여구수영만)

全無動我胸(전무동아흉)

 

우리나라의 어떤 이름난 詩人의 詩를 읽고 나서

 

미인이란 참으로 이와도 같느니

민낯이 되레 아름다운 모습이라

고운 글귀들로 비록 가득하지만

내 가슴 動搖 따위, 전혀 없구나.

 

<時調로 改譯>

 

미인 이와 같느니 민낯 되레 佳容이라

곱게 꾸민 글귀 따위 비록 가득하지만

어쩌랴! 나의 가슴은 動搖함이 없구나.

 

*我國: 아방(我邦). 우리나라 *若此: 이러함 *素面: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

*佳容: 아름다운 용모(容貌)  *麗句: 아름답게  꾸민  글귀  *盈滿: 가득하게

*全無: 전혀 없음.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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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某刹一柱門

 

無根寧滿發(무근녕만발)

坐食入多錢(좌식입다전)

佛泣登途久(불읍등도구)

僧徒夢老仙(승도몽노선)

 

어떤 절의 一柱門에 쓰다

 

뿌리가 없음에도 어찌하여 滿發

놀고먹는데 많은 돈이 들어오나

佛, 흐느끼며 길 떠난 지 오랜데

중들은 늙은 神仙을 꿈꾸는구나.

 

<時調로 改譯>

 

無根에 어찌 滿發 놀면서 多錢을 버나

부처는 흐느끼며 길 떠난 지 오래인데

중들은 늙은 신선의 꿈을 꾸고 있구나.

 

*無根: 뿌리가 없음. 근거가 없음 *滿發: 만개(滿開). 전개(全開). 꽃이 활짝

다 핌 *坐食: 와식(臥食). 도식(徒食). 일을 하지 않고 놀고먹음 *多錢: 돈이

많음.  또는      *登途:  등정(登程).  길을  떠남  *僧徒:  수행하는  승려 무리.

 

<2017.7.12, 이우식 지음>

수, 2017/07/1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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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人君言我邦無力乃上疏

 

大韓衰弱國(대한쇠약국)

上疏我心欣(상소아심흔)

美日爲親父(미일위친부)

中俄事若君(중아사약군)

 

나라님이 우리나라는 힘이 없다고 말함을 듣고 上疏함

 

대한민국은 매우 쇠약한 나라이오니

上疏하는 저의 마음일랑 기쁘답니다

미국과 일본을 친아버지로 삼으시고

중국과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時調로 改譯>

 

우리나라 쇠약하니 제 마음 기쁘답니다

저 미국과 일본일랑 親父로 삼으시옵고

중국과 또 러시아를 임금같이 섬기소서.

 

*人君: 임금. 나라님 *我邦: 우리나라 *無力: 힘이 없음 *上疏: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 또는 그 글 *衰弱: 힘이 쇠하고 약함 *弱國: 힘 약한 나라 *親父:

친아버지 *俄: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의 약칭(略稱).

 

<2017.7.11, 이우식 지음>

화, 2017/07/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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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富僧說夢

 

免罪祈三佛(면죄기삼불)

前宵現夢言(전소현몽언)

救靈眞不易(구령진불이)

速覺貨錢元(속각화전원)

 

부유한 중을 만나 꿈을 말함

 

免罪해 주십사 三佛께 빌었더니

간밤에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영혼을 구하기 참으로 어렵느니

돈이 으뜸임을 빨리 깨달을지라.

 

<時調로 改譯>

 

三佛께 免罪를 비니 간밤 現夢言하길

영혼을 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느니

금전이 으뜸이란 걸 빨리 깨달을지라.

 

*免罪: 지은 죄를  면함. 또는  면하여 줌  *三佛: 극락에 있다고 하는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통틀어 이르는 말 *大勢至菩薩: 아미

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살. 지혜문(智慧門)을 대표해 중생을 삼악도(三惡道)

에서 지는 무상(無上)한 힘이 있다. 그 형상은 정수리에 보병(寶甁)을 이고

천관(天冠)을  썼으며, 왼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前宵: 전야(前夜). 어젯밤

*現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남. 또는 그러한  꿈 *救靈: 신앙

  힘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不易: 쉽지  아니함.  어려움  *貨錢: 錢貨.  돈.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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告美國(고미국)

 

焉非羊面虎(언비양면호)

未覺爪牙衰(미각조아쇠)

促買新兵器(촉매신병기)

諸邦起大疑(제방기대의)

 

미국에 告함

 

어찌 羊 낯짝의 범이 아니겠는가

발톱과 어금니 쇠함 아직 모르네

새 兵器를 어서 사라고 재촉하니

여러 나라가 큰 의심을 일으킨다.

 

<時調로 改譯>

 

羊 낯짝 범이 아닌가 爪牙 쇠함 모르네

새로운 兵器 따위, 어서 사라 재촉하니

오호라! 여러 나라가 큰 의심 일으킨다.

 

*爪牙: 발톱과 어금니 *兵器: 전쟁에 쓰는 기구를 통틀어 이름 *諸邦:

제국(諸國).  여러  나라  *大疑: 크게  의심함.  또는 큰 의심이나 의혹.

 

<2017.7.9, 이우식 지음>

일, 2017/07/09-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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嘆邦態(탄방태)

 

僅僅成邦態(근근성방태)

時時不禁嘆(시시불금탄)

如居無法境(여거무법경)

未久恐衰殘(미구공쇠잔)

 

나라 꼴을 탄식하다

 

겨우 나라의 꼴 이루게 되었건만

때때로 탄식일랑 禁할 수 없다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 같으니

오래지 않아 衰殘할까 썩 두렵네.

 

<時調로 改譯>

 

나라 꼴은 이뤘건만 때때로 탄식하네

무법천지 지경에 사는 것과도 같으니

마침내 오래지 않아 쇠잔할까 두렵네.

 

*僅僅:  겨우  *時時: 가끔.  때때로  *不禁:  하거나  말리지  아니함.  찌할

없음 *無法: 법이나 제도가 확립되지 아니하고 질서가 문란함. 도리에

긋나고 예의가  없음  *未久: 얼마  오래지  아니함 *衰殘: 쇠하여  힘이나

세력이 점점 약해짐.

 

<2017.7.10, 이우식 지음>

월, 2017/07/1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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