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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명의 조세도피처 신탁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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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명의 조세도피처 신탁 발견

익명 (미확인) | 화, 2017/11/14- 19:30

파라다이스페이퍼스 프로젝트 팀 기자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민주적 대통령인 고 넬슨 만델라 관련 자금 추적이 맨섬(Isle of Man)까지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일랜드 해의 작은 섬인 맨섬은 조세도피처로 악명높은 곳이다.

만델라 명의의 수상스러운 역외 계좌와 관련된 자료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자이퉁이 입수해 국제탐사언론인협회(ICIJ)와 공유한 1천340만여 건의 문서들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신탁에 대한 첫번째 단서는 버뮤다 로펌 애플비가 지난 2015년 5월 작성한 자료에서 발견됐다. 당시 애플비 측은 만델라의 유산을 집행하는 인사들로부터 “맨섬에 등록된 ‘매드 트러스트’(Mad Trust)라는 신탁이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지 법적 의견”을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만델라의 부족 ‘마디바(Madiba)’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이는 ‘매드 트러스트’가 정확하게 어떤 경로로 세계에서 가장 비밀보장이 용이한 조세도피처 중 한 곳인 맨섬에 설립됐는지에 대해 최근 몇 년간 법정에서는 열띤 토론이 오갔다.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며 27년 간의 수감생활에서 견뎌낸 후 석방돼, 1994년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의 철폐를 이끌었다. 때문에 사후 4년이 다 돼가는 현재 시점에도 남아공의 신적인 존재로 남아있다.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그러나 취재진은 이 ‘매드 트러스트’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델라의 전 변호사인 이스마일 아욥과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이 신탁에 예치된 1천780만 남아공 랜드 (한화 약 13억 6천400만원)를 두고 다툼을 벌인 방대한 뒷 이야기를 발견하게 됐다. 이들 유산 집행인단은 디캉 모세네케 전 남아공 부대법관이 이끌고 있다.

17쪽에 달하는 신탁 양도증서에는 아욥이 지난 1995년 1월 21일 만델라를 대신해 매드 트러스트를 설립한 것으로 나와있다. 만델라에 들어온 후원금을 모아 “교육, 자선 목적으로 지역사회가 실수혜자 (beneficiaries)로 등록”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신탁이었다. 증서에는 “신탁은 맨섬에 주소지를 두고 맨섬 현지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적혀있다.

아욥이 맨섬을 선정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국제 단체인 조세정의네트워크는 투명성 측면에서 맨섬에 낮은 순위를 매겼다. 신탁의 등기 문서를 등기소가 보유하지 않고, 신탁을 설립하려고 할때 설립자의 모국에 적절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델라의 신탁 증서는 1995년 1월에 작성되었다. 아욥이 1994년 9월 남아공 은행인 네드뱅크 런던지점에 매드 트러스트의 명의로 240만 파운드가 예치된 계좌를 개설한 이후 4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신탁의 설정자는 “만델라 부부(Mr. and Mrs. Mandela)”로 되어 있다. 즉, 해당 신탁을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1996년에 만델라와 이혼한 그의 전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가 설정자에 포함돼 있다는 얘기다.  

회계법인 딜로이트&투쉬가 만델라의 유산과 관련해 작성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0월 기준 그 런던 계좌에는 209만 6천220달러 (한화 약 23억원)가 예치돼 있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2009년 매드 트러스트 소유의 이 자금은 남아공 소재의 네드뱅크 지점으로 옮겨져 있었다.

현재 75세인 아욥은 만델라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살던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남아공 휴턴에서 여전히 로펌을 운영하고 있다. 아욥은 만델라와 1970년대부터 알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로, 만델라의 수감생활 중 면회가 허락된 몇 명 중 한 명이었다.

아욥의 사무실에는 여전히 인종차별 반대를 위한 투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만델라와 투쟁을 벌이던 모습이 담긴 빛바랜 사진들과 투쟁으로 인해 받은 체포영장, 그리고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들이 참여한 자유총선거 당시의 투표용지가 액자 안에 보관돼있다.

ICIJ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팀과의 인터뷰에서 아욥은 만델라가 “해외에서 ‘좋은’ 활동을 벌였거나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신탁을 만들고 싶어했다”며 “만델라는 언제나 넉넉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아욥은 만델라가 매드 트러스트에 들어있던 자금 중 일부를 동독의 마지막 서기장이었던 에릭 호네커의 부인인 마르고트 호네커를 지원하는데 사용했다고 전했다. 에릭 호네커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몇 주 전에 사임한 바 있다.

당시 공산국가였던 동독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여성이었던 마르고트 호네커는 남편이 러시아에서 독일로 인도돼오고 얼마 후 칠레로 망명했다. 호네커 전 서기장 또한 이후 부인을 따라 칠레 산티아고에 정착했고, 1994년 5월 칠레에서 사망했다.

▲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왼쪽)과 마르고트 호네커(출처 : imago)

▲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서기장(왼쪽)과 마르고트 호네커(출처 : imago)

아욥은 마르고트가 당시 힘든 상황에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그녀는 연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만델라는 그녀를 지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식으로 가끔 만델라는 [신탁 명의로 런던에 있던 자금]의 일부를 돈이 필요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신탁을 그런 용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주목할만한 증언이다. 마르고트 호네커가 가진 것 없는 미망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강렬한 담색 머리와 터프한 성격 때문에 동독의 ‘보라색 마녀’라는 별칭이 붙은 인물이었다. 수년간 교육부 장관 자리를 거치며 강경노선의 사회주의 교육이 수행되도록 교육 과정 개정에 나서기도 했다.

신탁에 맨섬의 현지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요청한 이유에 대해 묻자 아욥은 “당시에는 남아공 밖 외국으로 자금을 유출입하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라며 신탁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 생각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이 신탁은 남아공 중앙은행인 SARB에 신고된 상태였다. 이에 대해 아욥은 그런 이유에서 이 신탁이 “완전히 법률을 준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델라의 측근 중 일부는 만델라가 사망한 2013년 12월 전까지는 이 신탁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만델라의 자산 목록의 정리 작업이 사후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ICIJ가 접촉한 만델라의 측근 중 계좌의 존재를 몰랐던 일부 인물은 만델라가 이 같은 역외 계좌가 운용되는 원리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남아공 현지 로펌인 ‘에드워드 네이선 소넨버그(ENSafrica)’ 회장이자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의 변호인 마이클 캐츠는 “만델라가 만약 역외에 자산을 옮겨두라고 지시를 내렸거나 자신이 역외에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나는 매우 놀랄 것 같다”고 말했다.

캐츠 외 측근들은 해당 신탁이 아욥의 역외 계좌일 수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아욥이 지난 2004년 만델라와 공개적으로 결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욥은 수십년 간 만델라의 법적인 일을 도맡아온 인물이다. 그러나 2004년 만델라의 고문들은 아욥이 만델라의 명의를 팔아 미국에서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미술품을 판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만델라는 아욥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그에게 자신 명의의 모든 신탁의 이사직에서 사임하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통해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애플비는 고객 검증 과정에서 아욥에 대해 “2003년 1천500만 랜드 [11억5천만원] 규모의 만델라 트러스트에 로열티를 보내려다 실패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있으나 그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만델라의 친한 여성인사 중 한 명은 “난 만델라를 오래 알고 지냈는데 그는 아욥과 함께 할 때는 유독 화를 내거나 감정적이었다”고 증언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5년,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맨섬에 개설된 계좌를 발견한 이후 법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만델라의 권리 집행인단은 매드 트러스트의 은행 계좌에 들어간 자금이 마지막으로 산출된 시점 기준의 현금으로만 110만 유로에 22만 3천 랜드까지 합친 규모의 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오늘날의 1천980만 랜드 (한화 15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매드 트러스트의 유일한 이사로 이름이 올라있는 아욥은 요구를 거절했다. 이 때문에 이 진흙탕 법정 싸움은 요하네스버그 고등 법원으로 갔다. 법정 기록에 따르면 2003년 11월 만델라는 서면을 통해 아욥에게 매트 트러스트에 대해 문의한 적이 있다. 문의 내용은 신탁의 공식 서명인이 누구이며, 계좌의 입출금 내역서는 어디에 있고 어떤 성격의 자금이 이 계좌에 들어있는지 등이었다. 

아욥은 만델라가 신탁의 ‘소유권자’로 올라가 있었지만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법정 기록에는 아욥이 이후 자신의 변호인에게 만델라의 유언 집행권자들이 자신에게 “신탁 설립 시점부터 당시까지의 모든 거래 기록을 그들에게 설명”하라고 요구했지만 해당 정보가 없었다”고 증언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아욥은 “매드 트러스트에 들어있는 자금은 모두 해외에 있는 실수혜자들로부터 들어온 돈이고, 남아공 현지에서 유출된 자금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델라의 “수많은 해외 일정”을 통해 돈이 들어왔고,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 중 일부가 만델라의 새 부인 그라사 마셸을 포함한 그의 가족에게도 전달됐다고도 덧붙였다.

▲만델라 전 대통령을 수십년 간 변호해 온 이스마일 아욥 변호사

▲만델라 전 대통령을 수십년 간 변호해 온 이스마일 아욥 변호사

그러나 아욥이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을 만델라의 자산 집행인단에 넘기기를 꺼려하는 기색을 보이자 집행인단을 이끌고 있는 모세네케 판사는 크게 분노했다. 모세네케는 아욥을 “비협조적이며 방해가 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모세네케는 매드 트러스트가 적법하게 설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탁에 들어간 자금이 만델라의 개인적인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욥은 이 같은 주장에 반박했다. 아욥은 지난 2015년 5월 유산 집행인단에 쓴 서한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매드 트러스트가 맨섬의 현지법이 적용되는 적법한 신탁이라고 확실히 주장해온 바 있다”며 “신탁의 설립 목적 또한 주로 교육과 자선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서한에서 아욥은 “(만델라는) 자금을 적법한 신탁에 기부한 것”이라며 “그는 평생 자신이 한 후원을 철회한 적이 없는 인물이며, (나의 법적) 조언을 듣지 않은 적 또한 없다”고 주장했다.  

모세네케는 법정에 제출한 자료에서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만델라가 이미 2004년 아욥에게 이사로서 신탁관리 업무를 그만두기를 요구했으므로 그가 더 이상 매드 트러스트에 이름을 올려서는 안되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아욥은 2015년 9월 제출한 진술서에서 모세네케의 주장에 대해 “고 만델라 대통령을 법적으로 대행할 권한은 이미 종료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드 트러스트의 유일한 이사로서 신탁관리할 권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다시 반박했다.

모세네케는 이 같은 아욥의 주장에 대해 대부분 법적 효력이 없고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만델라의 요청에 의해 매드 트러스트를 설립했다는 주장이 좋은 예시”라며 “만델라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그와 같은 지시를 했으며, 왜 그가 신탁 양도증서에 사인하기도 전에 계좌를 미리 만들었는지, 왜 이 신탁이 정식으로 등록된 기록이 없는지 모두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유산 집행인단은 매드 트러스트가 맨섬에서 적법한 절차를 걸쳐 설립됐는지 여부에 대한 판정을 전문가에 의뢰했다.

그 중 한 로펌이 바로 애플비였던 것이다. 지난 2015년 낸 의견서에서 애플비는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맨섬에는 신탁에 대한 등기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플비는 그러나 “맨섬 법에서는 매드 트러스트가 [처음부터] 무효”라며 “신탁의 실수혜자를 규정대로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애플비 버뮤다 본사

▲ 애플비 버뮤다 본사

맨섬 소재 로펌인 ‘메이트랜드’는 “신탁을 설립하려고 했던 의도는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신탁에 맨섬 현지법이 적용되도록 한 것이 유효한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이트랜드 역시 이 신탁은 “불확실한 정보 때문에 무효”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마침내 2015년 11월 11일 최종 판결이 나왔다. 사건을 담당한 루시 마이룰라 판사는 만델라의 유산 집행인단이 매드 트러스트에 예치된 자금의 “실수혜자(beneficiary owner)”이며, 아욥은 이 자금에 대해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판결 당시 1천780만 랜드 규모였던 자금은 이후 집행인단에게로 넘어갔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통해 고 만델라 대통령의 자금 관련 수수께끼의 퍼즐 한조각이 맞춰졌지만, 그의 유산 집행인단은 아직도 이 자금의 미스터리한 행방을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만델라의 유산에 대한 분쟁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주 만델라의 전 부인 마디키젤라-만델라는 남아공 대법 상소법원에 만델라 소유였던 쿠누에 있는 농가를 그의 유산 집행인단이 아닌 그녀가 상속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남아공 경찰청의 범죄조사단 ‘호크’는 사라져버린 만델라의 수백만 달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 제이콥 주마 대통령 하에 경찰의 권한이 크게 약화됐기 때문이다.


취재: ICIJ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프로젝트 팀
번역, 정리: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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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모르쇠’, 김종 ‘거짓말’, 김재열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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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수첩(‘비망록’)과 관련돼 있는 추궁도 이어졌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이 비망록의 2014년 10월 27일자 기록에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X, 정부책임, 부담’이라는 메모와 함께 김 전 실장을 뜻하는 ‘장(長)’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김기춘 실장이 한 말을 받아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메모는 세월호를 인양했을 경우 그 책임과 부담이 정부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아이들이 빠졌는데 시신을 인양하지 말라고 했다면 죽어서도 천당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작성자(김영한 전 수석)의 주관적 생각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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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씨의 조카 장시호 씨가 실소유한 사단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하도록 삼성 측에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과 진술이 엇갈렸다. 김 전 차관은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 제안을 한 일 자체가 없다”며 “김 사장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김 사장은 “서울 프라자호텔 일식집에서 다른 제일기획 임원과 김종 차관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후원금 16억 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구체적인 만남 장소까지 밝혔다.

김종 전 차관과 진실공방을 벌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영재센터에 대한 후원을 결정한 주체가 어딘지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당초 자신이 후원 결정을 내렸다고 진술했지만, 추궁이 계속되자 제일기획이 아닌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팀이 후원을 결정했다고 번복했다.

차은택 “장관도, 연설문도 최순실에 주면 그대로 반영돼”

다른 증인들이 말 수를 아낀 데 반해 그간 드러나지 않던 내막을 적극적으로 밝힌 증인도 있었다.  

지난달 초 입국 기자회견 이후 처음으로 말문을 연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최순실 씨의 부탁을 받아 자신이 써준 글이 대통령 연설문에 포함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장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 정부 주요 보직에 후보자를 추천해달라는 최 씨의 요청을 받아 자신이 후보자를 추천했고, 곧 이들이 해당 보직에 임명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이 차 씨의 추천을 받아 임명된 인사로 직접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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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 씨는 자신에 대한 비위 의혹에 대해선 일체 부인했다. 각종 특혜 의혹을 받은 광고대행사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 관련 의혹에 대해 “플레이그라운드의 실소유주는 최순실 씨였고, 나는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포스코 계열의 광고회사 포레카 지분을 강탈하려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공소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최순실게이트’의 최초제보자인 고영태 씨 역시 최 씨와의 인연에 대해 진술했다. 고 씨는 최씨와 관련해 제기된’ 남녀관계설’을 부인하며 “대통령의 가방과 의상과 관련해 최 씨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방 3,40 개와 의상 100여 벌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최 씨로부터 4000만원 이상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고 씨는 직원들에 대한 최 씨의 부적절한 언행이 갈등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말, 고 씨가 TV조선을 찾아가 최 씨 관련 문건과 의상실 CCTV를 제공했지만 보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고 씨의 진술 과정에서 드러났다. 대통령연설문이 담긴 최순실 씨의 태블릿PC를 언론에 전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얼굴 드러낸 장시호 “최순실 이모를 거스를 수 없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누림기획, 더스포츠엠 등 차명법인을 소유하고 스포츠계 이권을 노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장시호 씨도 이날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 상의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던 장 씨는 국회의 동행 명령에 응해 최 씨 일가로서는 유일하게 청문회에 참석했다.

장 씨는 자신과 관련된 법인 모두가 최순실 씨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고, 자신은 이모인 최 씨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연세대 입학 관련 의혹에 대해선 승마특기생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입학한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취재 : 오대양, 홍여진, 조현미

수, 2016/12/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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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월 6일) 열린 재벌 총수 청문회에서 재벌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으로 주목받은 한화증권의 주진형 전 사장. 주 사장은 ‘그들만의 리그’인 자본시장 업계의 내부자로서 용기 있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뉴스타파는 삼성물산 합병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관한 문제점을 듣기 위해 지난 11월 29일 주진형 사장과 인터뷰를 했다. 주진형 사장은 인터뷰에서 삼성물산 합병 문제는 “(구)삼성물산이 갖고 있던 삼성전자의 지분을 이재용 일가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해 고안된 거래”라고 잘라 말했다. 또 이미 1년 전부터 청와대 개입설을 들어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으며, 리서치 기관들 역시 일제히 삼성에 입맛에 맞춘 편향된 보고서를 냈다며 자본시장 업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오랫동안 업계에 종사해 온 전문가로서, “재벌의 영향력은 독가스와 같다”며 정치,경제, 행정의 영역에서 지금같은 독점적 체제가 계속되는 한 제2, 제3의 최순실 게이트는 또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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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한상진, 심인보
촬영 : 김수영
편집 : 윤석민

수, 2016/12/0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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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이후 대한민국에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궁중정치와 촛불로 대표되는 광장민주주의의 역사적 대결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3차례 담화 등을 통해 거짓 해명과 눈물, 교란책 등을 내놓으며 줄기차게 국면전환과 반격을 시도했지만 촛불민심은 단호했다. 박근혜 즉각 퇴진과 처벌을 흔들림 없이 요구하며 우왕좌왕하던 정치권을 탄핵의 대오로 이끌었다.

촛불 vs. 박근혜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비리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제일 먼저 꺼낸 카드는 ‘개헌’, 그것도 본인이 주도하는 개헌이었다. 그러나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과 정부 비밀문건을 미리 받아 봤고, 수정까지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개헌 카드는 하루만에 좌절됐다. 대통령은 1차담화를 발표했지만 거짓말 해명 논란에 검찰 수사를 대비한 가이드라인 제시 성격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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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에 모인 2만 명 촛불의 민심은 허탈과 배심감, 그리고 분노였다. 전국에서 대통령 퇴진 요구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꺼낸 두번째 깜짝 카드는 일방적인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이었다. 새누리당이 제안하고 있었던 거국내각 취지에도 맞지 않고 야권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인데도 왜 일방적으로 총리를 지명했을까? 총리 지명을 강행함으로써 파행을 일으켜 총리 정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동시에 김병준 씨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던 국민의당을 회유해 야권 분열을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대통령이라는 진술이 나오는 등 게이트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자 대통령 지지율은 5%까지 추락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담화를 발표했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했나”로 대표되는 이날 담화의 핵심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닌 최순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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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촛불은 광장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서울 20만 명을 포함해 전국 30만 촛불 민심은 ‘박근혜는 물러나라’였다. 촛불에 놀란 야권은 탄핵이나 퇴진을 거론했을 때의 역풍에 대한 우려에서 벗어나서 촛불을 두려워하며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고, 새누리당도 친박과 비박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

정치권이 촛불을 의식하기 시작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번 반전을 시도했다. 본인의 거취나 총리의 권한 범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 없이 국회에 총리 추천 권한을 기습 제안한 것이다. 김병준 총리 지명자 카드는 결국 버리는 돌이 됐고, 당리당략이 복잡한 정치권은 흔들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끊임 없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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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감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기존 입장에서 180도 태도를 바꿨다. 퇴진이나 2선 후퇴는 없다고 못박으며 반격으로 돌아섰다. 우선 우선 검찰 수사에 적극 응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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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수사를 회피하면서 부산 엘씨티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엄단하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차관 인사와 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사드 배치,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등을 밀어붙였다. 친박계도 대통령의 행보에 발맞춰 각종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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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침묵했던 친박 중진들까지 전방위로 박근혜 호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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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친박의 반격에 촛불은 직접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을 포함해 전국에서 136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음날 검찰은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의 공범으로 박근혜를 지목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를 상상과 추측, 사상누각이라며 비판했고 국회에 제안했던 총리 추천권도 철회할 뜻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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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한파에도 최대 인파가 모였다. 190만 명 촛불 민심은 직접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며 청와대로 진격했다. 한달 만에 2만에서 190만 명으로 증가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새로 쓰여지고 있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회심의 한 수를 정치권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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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의 시기와 방법을 국회가 정해달라며 조기퇴진의 가능성을 비쳤지만 사실상 이간책이었고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우선 탄핵을 다짐했던 비박계가 돌아서면서 탄핵시계는 멈춰섰다. 친박과 비박계는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다시 합쳤고 청와대는 비박계를 설득하기 위해 면담을 추진했다.

비박이 이탈하자 야권은 우왕좌왕했다. 추미애 대표가 단독으로 김무성 의원을 만나 퇴진 일정을 논의한 것이 알려지자 다른 야당이 발끈했고 탄핵안 표결 시점을 놓고는 2일, 5일 또는 9일 등 오락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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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이간책과 이에 흔들리는 정치권의 모습은 촛불을 횃불로 만들었다. 236만 명의 민심은 청와대와 정치권, 특히 새누리당을 동시에 압박했다. 비박계는 민심 앞에 고개를 숙여 대통령의 4월 퇴진 여부와 관계 없이 9일 탄핵안 표결에 참여로 돌아섰다. 광장은 거대한 축제의 장인 동시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민주주의의 산실이 됐다.

목, 2016/12/0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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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탄핵안 가결을 앞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을 최대한 접촉해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9일 탄핵 표결에 참여할지, 또 민심과 박근혜 둘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해 찬,반을 결정할 것인지, 결정의 기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지난 4일 동안 뉴스타파가 문자메시지와 전화통화 그리고 국회 방문 등을 통해 접촉한 새누리당 의원은 80여 명에 이른다. 비상시국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비박계 의원뿐 아니라, 지난 총선에서 진정한 친박으로 불리던 ‘진박’ 곽상도 , 추경호 의원, 바람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던 김진태 의원도 만났다.

지난 4일간, 새누리 80명 접촉해, 탄핵 찬반 여부 물어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려면,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찬성하더라도 새누리당에서 최소 28명이 필요하다. 비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찬반 입장을 우선 물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혜훈 의원은 문자메시지를 보내, 탄핵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박인숙 의원도 “탄핵 찬성”이라는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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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원, 오신환, 김현아, 이은재 의원, 이철규, 정운천 의원 등은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초선인 신보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탄핵 표결에 찬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비박 김재경, “새누리당 내 탄핵 찬성 의원 40 플러스 알파”

비박계 김재경 의원은 새누리당 내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40 플러스 알파”라며, 탄핵 찬성 의원이 40명을 웃돌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최근 찬성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현재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탄핵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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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시국회의 간사를 맡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지난 4일 모임에 참여했던 29명 외에 더 많은 의원들이 탄핵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제원 의원은 “탄핵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일부 친박계 의원들도 저희가 알아본 결과, 탄핵에 찬성해야지 않느냐, 탄핵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의견에 동의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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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 촛불민심 크게 의식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대통령 탄핵 표결의 기준은 뭘까? “양심”, “소신” 등을 말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촛불 민심을 크게 의식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였다. 상당수 의원들이 촛불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민심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철규 의원은 지역구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여론 조사를 실시했고, 65.5%가 탄핵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오자 기꺼이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말했다.

‘진박’ 곽상도 “촛불민심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 민심도 있다.”

그러나 민심 특히 촛불민심에 대해 다른 시각도 존재했다. ‘진박’ 곽상도 의원은 “촛불민심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민심도 있다”며 230만 명이 아닌 4천, 5천만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했다. 민경욱 의원은 “촛불 민심이라는 게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래서요”라며 언짢아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고 했던 김진태 의원은 촛불 민심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채 “그만합시다”라는 말만 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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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주초 정치권이 다시 술렁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4차 담화를 통해 퇴진 시기 등을 밝힌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12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담화 대신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불렀다.

회동 3시간 뒤,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열렸고, 이정현 대표가 마지막까지 탄핵 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오히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 “이제는 탄핵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다.

친박계 등 일부 의원들은 얼굴이 굳은 채 의총장을 빠져나갔다. 리틀 박근혜로 알려진 최연혜 의원은 어떤 질문에도 답변하지 않았고 이장우 의원은 “물어보지 말라”고 했고, 전희경 의원은 탄핵 표결 여부와 찬반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답변을 거절했다. 이정현 대표 역시 탄핵 표결에 참여할 거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 없이 국회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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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안 통과 여부가 사실상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달린 가운데, 어제부터 전국에서 새누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8일에는 새누리당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도 탄핵 찬성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촛불 민심이 새누리당 의원들을 정조준하는 가운데, 역사적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취재 박중석, 송원근, 이유정, 강민수, 정재원
촬영 최형석, 김기철, 김수영, 김남범,
편집 정지성
CG 정동우

목, 2016/12/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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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주목해야 할 것은 탄핵안 가결 이후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할 총리 문제이다. 현 황교안 국무총리가 교체되지 않는 한 탄핵안 가결 이후 6개월, 탄핵 인용 이후 대선까지 2개월 등 최대 8개월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는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물로 대통령 업무를 대신하기엔 매우 부적절하다.

(총리와 법무부 장관은) 즉각 수사를 받아야 될 부역세력의 핵심이라고 봅니다.송영길 /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6.11.11

철저히 정치검찰로서 대통령에게 부역한 거 아니냐 근데 그 지휘 책임을 맡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국무총리로서 국정을 통할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이 크죠.심상정 / 정의당 대표 2016.11.25

황교안 총리에게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입니다. 황 총리가 이번 국정농단에 대해 몰랐다면 무능력이고 알았다면 공범입니다. 무능력자이거나 범죄자인 황 총리를 대통령권한대행으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주승용 /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 2016.11.28

황교안 총리 내각을 인정하겠어요? 황교안 총리하면 야당이 가만히 있겠어요? 국민이 가만히 있겠어요?서청원 / 새누리당 의원_2016.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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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2014년 말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에서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함께 국정농단 관련 사건의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라시 수준의 문건 내용”이라며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당시 주무 장관이었던 황교안은 수사를 직접 지휘했다.

이후 검찰은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설을 ‘지라시’로 치부하고 문건 유출자들만 처벌한 채 급히 사건을 마무리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건 유출과 관련해 수사를 받던 최모 경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청와대의 회유와 강압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황교안 법무 장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2년의 세월이 흘러 2016년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역사적, 사법적 책임으로부터 황교안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박영수 특별검사는 ‘2014년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알면서도 덮었다면 당시 수사팀뿐만 아니라 황교안 역시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가 불거지며 비선 실세 의혹이 다시 제기됐을 때도 황교안은 총리로서 박근혜 대통령 호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회 본회의(2016.09.22)에 출석해 “모금이 된 것 가지고 의심을 할 수는 없다.”, “기부한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는 발언을 반복하며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들이 왜곡되거나 과장돼 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이후에야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안타깝다”며 소극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가를 위한 의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국정농단이 벌어져 안타깝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해명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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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로서 국정농단의 핵심 부역자일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권 공안통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에서는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려 하자 공개적으로 거부해 이를 무산시켰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악용해 축소수사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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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 인물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돼 2년 3개월을 장관직에 있었으며,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이완구 총리가 물러나자 곧바로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됐다. 김병준 씨가 후임 총리로 지명되면서 황교안의 공직자 생활도 끝나는 듯했지만, 정치권의 혼선을 틈타 황교안은 조금씩 대통령 대행의 자리까지 눈 앞에 두고 있다.


취재 연다혜, 이보람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목, 2016/12/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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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으로써 이제 공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에게로 넘어갔다. 헌재 안팎에서는 탄핵은 인용될 것이며, 이정미 헌법재판관이 퇴임하는 내년 3월 13일 이전에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만난 법률전문가와 전 헌법재판관들은 모두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중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뇌물수수가 인정되면 탄핵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이번에는 탄핵 찬반에 대한 재판관들 개개인의 의견을 공개해야 하는 것도 탄핵 결정을 점치게 하는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재판관들은 소추의결서에 적시된 내용 하나하나를 검토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관건은 검찰과 특검, 법원의 수사와 재판 기록이 얼마나 빨리 헌재에 도착하느냐 달려 있다. 노무현 탄핵 심판은 결정까지 63일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사실 관계를 모두 인정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들을 모두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두변론에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며, 대통령의 변론권을 어디까지 보장할 지도 재판에 걸리는 시간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헌재 관계자들은 내년 1월 31일 퇴임하는 박한철 소장 임기 내에 재판이 끝나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보고 있다. 대신 이후 소장을 대행하게 되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이전에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정미 재판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지명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조기 퇴진하기 보다는 탄핵 절차를 택했다. 때문에 심리과정의 법리 다툼이나
현 헌법재판관 구성 측면에서 뭔가 기대하는 게 있지 않느냐는 추즉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탄핵 심판 당시 9명 재판관 중에 탄핵에 찬성한 재판관은 3명이었으며 이 중 두명은 탄핵을 추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천한 재판관이었다. 현재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 안창호 재판관은 새누리당이,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추천하거나 지명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탄핵심판에서 이들 3명의 입장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 2016/12/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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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벽 사라진 대통령…특검에 유리한 여건 조성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특검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수사해야하는 특검 입장에서 대통령의 직무 권한이 중지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모든 직무 권한이 중지된다. 정부 부처와 대통령 비서실 등의 국가조직과 구성원의 인사 등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을 더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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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를 받아야하는 피의자 신분이다. 정부 부처에 대한 자신의 직무 권한을 이용해 변호에 유리한 각종 증거를 수집하고 국가기관의 구성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특검 입장에서는 상대의 방어력이 현저히 약해지는 만큼 수사 진척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수사에는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대통령의 권한이 있으면 여러 정부 기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방어활동에 훨씬 유리하다”면서 “이제 그런 방어활동이 불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기간 동안은 박근혜 대통령도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사인(私人)으로서 자신이 선임한 변호인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탄핵으로 대통령의 권력에 누수가 생기면 검찰 수사에서 머뭇거리거나 비협조적이었던 여러 수사 관련 참고인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특검 수사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또 대통령이 이전처럼 검찰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강제 수사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헌법 제 84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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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면 소추하지 않음으로서 보호해야할 직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구속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압수수색이나 체포영장은 특검이 청구할 수 있다”면서 “그 판단은 영장을 발부하는 법원이 맡아서 하면 된다”고 해석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더라도 직위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특검 입장에서 볼 때 탄핵 이전보다 대통령을 압박할 수단이 넓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검이 내놓는 새로운 증거, 여론 환기…헌재 심판에 영향 미칠 수 있어

특검 수사의 진척은 헌법재판소의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질적으로 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특검 수사와 대통령직의 탄핵 사유를 정치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헌재의 탄핵 심판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특검 수사는 최장 내년 3월까지이고 헌재 심판은 최장 내년 5월까지로 활동 기간이 겹친다. 특검 수사로 새롭게 드러나는 증거와 진술들은 헌재의 심리 과정에서 탄핵소추 검사 측인 국회 쪽에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다.

민변 회장을 맡았던 백승헌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검찰의 수사에서 드러난 것은 일부이고 그 일부조차도 제대로 법적용이 안된 부분이 있다는 것인데 특검 수사에서 보다 더 많은 국정농단 사유가 밝혀지고 그에 따라서 엄정한 법적용이 이뤄진다면 탄핵의 정당성은 더욱 보강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의 심판이 여론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여론에 대한 특검의 영향도 주목할 부분이다.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의 새로운 혐의는 특검 기간 내내 여론의 관심을 증폭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특검법 제12조 (사건의 대국민보고)
특별검사 또는 특별검사의 명을 받은 특별검사보는 제2조 각 호의 사건에 대하여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하여 피의사실 외의 수사과정에 대하여 언론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

이번 특검법에는 ‘대국민보고’ 내용이 들어 있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과정에 대해 언론브리핑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조항을 마련한 것이다.

검찰이 놓친 뇌물죄, 특검이 밝힐 수 있을까?

특검의 성패는 검찰이 밝혀내지 못했던 사실을 밝혀내는 데 있다. 즉,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뇌물죄를 물을 수 있느냐, 세월호 7시간 동안의 직무유기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검찰과 다른 특검의 수사 대상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뇌물죄 적용에 대해선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예상이 많다.

검찰 출신의 양재택 변호사는 “초기에 수사 대상에 대한 압수수색이 늦었고, 최순실 씨 귀국 후에도 바로 체포하지 않는 등 검찰의 허술한 대처로 증거 인멸이 많이 이루어져 뇌물수수자와 공여자 사이의 대가성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례 없는 탄핵 대통령에 대한 특검 수사…압도적 민심도 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특검은 전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지금까지 11번의 특검과 가장 큰 차이다.

지난 1999년 ‘옷로비 특검’ 때 수석수사관으로 활약했던 문병호 국민의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번 특검처럼 강력한 민심의 응집 속에 진행된 특검은 없었다”면서 “특검도 국민의 명령에 부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여타 특검보다 성과를 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과연 특검이 국회에서 탄핵된 대통령에게 사법 정의의 칼을 제대로 겨눌 수 있을까? 특검도, 수사를 받는 대통령도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로 접어들었다.


취재:최기훈 한상진 오대양
영상:최형석 김수영
편집:박서영
CG : 정동우

금, 2016/12/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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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탄핵안 통과로 대통령직은 직무 정지가 됐지만 정치인 박근혜가 상황 반전을 위해 측근 및 친박 국회의원들과 정략적 꼼수를 진행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박근혜 씨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노림수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촛불 시민들의 대응은 무엇이 돼야 할까?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되고 민심이반이 극대화된 상황이라 표면적으론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니, 대통령이 쓸 수있는 정치적 카드는 별로 없다”거나(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자기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게 아니라 민심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는 분석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그러나 이들도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처럼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박근혜 씨가 아직 청와대에서 나간게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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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두어달을 돌이켜보면 또 다른 꼼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최순실 게이트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10월 24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뜬금없이 개헌론을 제기해 야권을 분열시키려 했다. 또 수백만 시민들의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등 정치적 포석이 담긴 발언(대국민3차담화,11.29)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 새누리당 수뇌부는 탄핵을 독려하는 시민들을 홍위병에 비유하거나(정진석 원내대표, 새누리당 의원총회.12.2) 탄핵이후 조기대선은 야당에게 정권을 그냥 헌납하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며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조원진 최고위원, 새누리당 최고위원회.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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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과 사과는 말뿐 끝까지 권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만 집중해 왔다는 말이다. 이런 대통령과 그 친위대 격인 친박 의원들이 탄핵 가결 이후에 그냥 손만 놓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정치블로거 아이엠피터는 박근혜 씨의 노림수는 “야권 분열을 꾀하는 이간질 형태가 될 것이라며 탄핵 가결 이후 한숨 돌리고 있을 국민에게 야권의 진흙탕 싸움을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의 분열을 유도하고 분노의 타깃을 다른 쪽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황교안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국회 사이의 갈등을 부추김으로써 국정을 불안하게 할 것”이란 분석도(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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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는 “(박근혜 씨가) 최순실 등의 형사재판이 끝날때까지는 헌재의 결정이 내려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동원 가능한 각종 법리적 논리를 들이대는 방법으로 재판을 지연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탄핵 후에 “헌재를 지켜보자는 태도는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국회는 탄핵안 의결과는 별개로 “국회 본회의 의결로 사임 권고안을 채택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정치적으로 더욱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는 강제수사가 가능하다는 게 헌법학계의 다수설인데다, 박근혜 씨가 꾀할지도 모르는 모든 정치적, 법적 지연전술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특검이 체포 등 강제수사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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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번 일을 계기로 오히려 “시민운동을 통한 부역자 청산도 해야 한다”(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는 주장도 대두된다.

그러나 국회 탄핵안 통과는 새 국면의 시작일뿐 앞으로가 더 어려울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박근혜 씨는 이제 잃을 게 거의 없지만 야권은 박근혜 체제 이후를 계산하다 분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는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른바 한국판 명예 시민혁명의 완성, 그리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며 촛불로 상징되는 피플파워가 끝까지 함께 해야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취재:최경영
촬영:정형민
편집:윤석민
C.G:하난희,정동우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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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메르스, 백남기.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늘 ‘창조’란 말을 반복했으나 오히려 ‘헬조선’을 탄생시켰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통합진보당 해산 등등, 박근혜 씨는 역사를 유신 시대로 되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현 직무정지)은 최순실 일당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게 나라냐”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됐습니다. 수백만 시민의 촛불이 이뤄낸 한국판 명예혁명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제 4년 만에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캄캄한 터널에서 가까스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4년 동안 박근혜 정권을 다룬 보도 영상을 통해 우리가 지나왔던 암흑의 세월을 돌아보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금, 2016/12/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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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9일) 오후 4시 10분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가 56명, 무효 7명, 기권 2명이었다. 이로써  201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3년 10개월만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42일만에 촛불의 힘이 국회를 압박해 탄핵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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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본회의장에 나타났지만,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의 투표 불참으로 의원 29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야당과 무소속 172표가 모두 찬성이었다고 한다면, 새누리당 128명 의원 중 절반 가까운 62명이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비박계 뿐 아니라 친박계로 분류된 의원들도 상당수 탄핵 찬성에 가세했다는 뜻이다. 예상을 웃도는 찬성표로 탄핵안이 가결된 뒤 친박계 의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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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민의 요구에 국회가 응답한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혀왔던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탄핵 가결에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장제원 의원은 “생각보다 찬성표가 많이 나왔다”며 “의원들이 빨리 국정을 수습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황영철 의원은 “국민들의 준엄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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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3당은 표결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한 날이라고 환영하는 한편, 탄핵안 가결이 끝이 아닌 시작임을 강조했다. 특히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야3당은 정국 수습을 위해 이달 중 임시국회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

탄핵을 사실상 이끌어낸 원동력인 촛불민심은 오늘도 정치권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주최측 추산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오후 2시부터 국회를 에워싸고 탄핵 가결을 촉구했다. 시민들은 탄핵안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일제히 ‘이겼다’고 외치며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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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를 주도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논평을 통해 탄핵안 가결은 “국민촛불의 위대한 힘이 이룬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 이뤄지지 않는 한 “탄핵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내일(10일) 토요일 7차 촛불 집회를 ‘박근혜 정권 끝장 내는 날’로 정하고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날까지 촛불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 송원근, 이유정, 김성수, 조현미, 홍여진
촬영 정형민, 최형석, 김기철, 김수영, 김남범
편집 윤석민

금, 2016/12/09-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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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 시킨 후 처음으로 열린 10일 촛불집회에 주최측 추산 서울 80만 명(경찰 추산 12만 명), 전국 104만 명의 시민들이 참가해 대규모 주말촛불을 이어갔다.

촛불 민심은 탄핵안 국회 통과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탄핵안 국회 통과 후에는 집회 규모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깨뜨린 것이다. 더구나 영하의 날씨를 감안하면, 이날 전국 104만 명의 촛불 참가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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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탄핵안 국회 통과를 축제분위기 속에 즐겼다. 흥겨운 사물놀이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청와대 100미터 앞에선 폭죽이 터졌다. 전남 여수의 거문도에서는 10척 어선이 해상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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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촛불민심은 탄핵이라는 승리를 넘어 더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헌법재판소 심판에 배수진을 친 박근혜 대통령의 노림수에 넘어가지 않고 탄핵이 최종 결정될 때까지 촛불 민심을 보여주겠다고 입을 모았다. 또 헌재 심판을 기다릴 것도 없이 “하루 속히 퇴진해 구속 수사를 받아야한다”는 ‘즉각 퇴진’ 목소리도 한결같았다.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드러난 재벌총수들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을 향한 분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 대통령 탄핵안 통과를 이끌어낸 대한민국의 시민들.

시민 명예 혁명의 촛불이 2016년 한겨울 찬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취재: 강민수
촬영: 최형석, 정형민, 신영철
편집: 박서영

토, 2016/12/10-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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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세력이 성신학원 이사들에게 외압을 행사, 각종 비리로 퇴진 요구에 시달리는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을 지난해 연임시킨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심 총장은 서울 운정캠퍼스 부지를 매입하면서 땅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아들 2명 명의로 각각 1억5천만 원씩 3억 원의 뒷돈을 받았다. 심 총장은 또 학생들의 등록금중 수억 원을 자신과 측근들의 소송비용으로 유용하는 등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았지만 아무런 문제없이 대학 총장으로 다시 선임돼 그 배경에 의혹이 일었다.

현삼원 성신학원 이사는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7월 송인준 성신학원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관련해 청와대 교문 수석의 지시를 따르라’며 외압을 가했다”고 13일 뉴스타파에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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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사는 지난 8월 정기 이사회가 열리던 날 송 이사장을 만나 “너무 섭섭하다. 황 장관이 당신을 믿었는데 심 총장을 연임시킬 수 있느냐”며 따져 묻자, 송 이사장이 “실은 말이야. 황 장관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황 장관 얘기가 교문 수석이 전화할 것이니까 거기에 따르면 된다. 사실 그렇게 된거야”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송인준 이사장은 처음에는 “청와대와 박백범 이사 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받지 않았다”고 외압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전화를 걸어 “황우여 전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성신여대 총장 선임과 교문수석이 전화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청와대 교문수석은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 중 한 명인 차은택의 외삼촌이다.

하지만 교문 수석이 직접 송인준 이사장에게 전화한 것은 아니고 대신 교육부에서 파견된 박백범 성신학원 이사가 교문수석의 의중을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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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전 수석은 진행 상황만 보고 받았을뿐이라며 자세한 이야기는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해당한다고 답변을 피했다.

심화진 총장은 지난 2012년 해임위기에 몰렸을 때 나경원 의원의 측근 2명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바 있다. 이 때문에 나경원 의원 딸의 부정 입학을 계기로 이른바 ‘상부상조’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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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률 전 교문수석과 성신여대 심화진 총장

김상률 전 교문수석이 성신여대 총장 임면에 왜 관여했는지 그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김 전 수석은 오는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화, 2016/12/1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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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청와대가 양승태 대법원장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전 춘천지방법원장) 등 사법부 주요 인사를 사찰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사장은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보도되지 않았던 8개의 파일이 굉장히 폭발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헌정질서를 파괴한 게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알려달라’는 질의에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상 생활을 사찰한 내용”이라고 답변했다.

조 전 사장은 청와대가 사법부 수장을 사찰한 것은 “3권 분립과 헌정질서를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이것만으로도 탄핵 사유가 분명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최성준 전 춘천지법원장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을 확인한 것은 부장판사 이상 사법부의 모든 간부들을 사찰한 명백한 증거로, 헌정질서를 문란한 중대사건”이라고 덧붙였다.

조 전 사장은 지난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과 관련된 비선실세 논란을 보도할 당시 사장으로 재직했다.

조 전 사장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등산 등 일과 생활을 낱낱이 사찰해서 청와대에 보고한 것과 2014년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던 현 방송통신위원장의 대법관 진출을 위한 운동, 관용차 사적 사용, 이외수 작가와의 만남 등의 내용이 포함된 두건의 사찰 문건으로 모두 대외비로 표시돼 있었다”며 해당 문건을 특위에 제출했다.

조 전 사장은 ‘어디에서 해당 문건이 작성됐느냐’는 질의에 “문건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정확히 작성한 기관은 알지 못하지만, 민정수석실에서 보관하면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왜 이런 문건이 작성된 것으로 보냐’는 질의에 “평상시에 끊임없이 사찰하다가 적절한 때에 활용하는 등 사법부를 콘트롤하기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국조위원들은 조 전 사장이 청문회장에 제출한 사찰 관련 문건을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건에 파기 시한이 적혀 있고, 일상적 사찰 내용이 담긴 점을 봤을 때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건이 아니라 국정원 문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도 “국정원 문건은 복사하면 가운데 글씨가 새겨져 나오는데, 조한규 전 사장이 가져온 문건을 복사했더니 가운데 글씨가 새겨져 나왔다”며 “실제로 이것이 국정원 문건이라면, 국정원이 국내 현안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국정원 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한규 전 사장은 또 최순실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가 공직자 임명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부총리급 공직자가 연루됐다는 점을 취재했다고 답변했다.

해당사안에 대한 특위 위원들의 구체적인 설명 요청에 대해 “보도 당시 ‘정윤회 문건’ 가운데 가장 센 것을 하나만 갖고 오라고 기자에게 지시하자 대법원장 사찰 문건을 가져왔고, 나머지는 구두로 들었다”며, ‘정윤회씨가 7억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냐’는 질의에 대해  “그렇게 들었고, 누구인지는 현직에 있는 분이라 밝히기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조 전 사장은 그러나 부총리급 인사가 누구냐는 거듭된 질문에는 “좀 더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장에서 해임됐고, 현재 공직에 있어 직접 거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문회 증인으로 참석한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안종범 청와대 수석 등이 관여됐다는 보고를 받았을때 마치 육영재단이나 일해재단이 연상됐다며 이는 나중에 재단의 소유권이나 운영등과 관련해 큰 논란이 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재: 현덕수,홍여진

목, 2016/12/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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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14일 열린 제 3차 청문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히는 자리였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이 헌법 8조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위해했다’고 명시돼 있다. 탄핵 사유에 세월호 참사에 대응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포함된 만큼 대통령의 7시간을 규명하는 것은 진실규명 차원에서도, 또 헌재의 심판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시각 세월호 안산합동분향소에서는 단원고 유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청문회를 지켜봤다. 유가족들은 계속되는 증인들의 ‘모르쇠’나 ‘떠넘기기’ 에 헛웃음 짓거나 한숨을 내뱉었다. 특히,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참사 당시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구조에 최선을 다했다’는 증언이 나오자 일부 유가족은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김 전 청장은 취재진의 이같은 발언의 의도를 묻는 질문에 ‘죄송하다’면서도 대통령과 10시 30분 통화한 것이 사실이냐는 추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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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김영재 원장…의문투성이 4.16 알리바이

이날 청문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이 미용시술을 받은 것이 아닌가에 대한 국조위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특히, 이날 관심을 끈 증인은 김영재 성형외과 의원 원장이었다. 김 원장은 청와대 관저에 신분확인 절차 없이 들어가 박근혜 대톨령을 만날 수 있는 이른바 ‘보안손님’이었다. 그는 이날 자신이 5회 이상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대통령을 만나서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그는 ‘아내와 함께 가서 가져간 색조 화장품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부에 트러블 상담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참사 당일 청와대 관저에서 대통령을 시술했는지 묻는 질문에 ‘절대 그렇지 않다’며 ‘그날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고 주장하며 증거를 제출했다. 그런데 그날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이 위조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제출한 영수증의 요금이 다르다. 톨게이트는 단일 요금제인데 갈 때는 7600원, 올 때는 6600원이다’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통행료 영수증의 발행일이 2014년과 2015년 두종류’라며 ‘세월호 참사는 2014년에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영재 원장은 ‘위증한 것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한사코 ‘그런 일 없다. 청문회장에서 증언한 것이 전부’라는 대답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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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밝혀지는 대통령의 7시간

대통령의 7시간 행적도 윤곽을 드러냈다. 김장수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사고 당일 대통령 서면보고를 할 때 집무실인지 관저인지 대통령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두군데 모두 보고서를 보냈다’면서 ‘당시 문서를 전달한 직원의 말로는 집무실에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즉, 대통령이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당시 의무동에 근무했던 전 간호장교 신보라 씨도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점심 시간 전에 의료용 가글을 관저에 가서 직원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오전 내내 청와대 관저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월호가 8시 52분 맹골수도에서 기울었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되고 30분 후 청와대에 긴급상황 문자가 전파됐다. 하지만 대통령은 이 긴급문자를 받지 못했다. 대통령에게 첫 보고가 이뤄진 것은 오전 10시 김장수 전 안보실장의 서면보고였다. 하지만 김 실장은 ‘대통령이 이를 확인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10시 30분 대통령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러 ‘모든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여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고 하지만, 이 시각 세월호는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바닷속에 잠긴 뒤였다. 그동안 제대로 된 청와대의 지시가 없었던 셈이다.

청와대의 이후 행적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세월호가 뱃머리만 남고 물에 잠긴 오전 11시 4분, 청와대 안보상황실은 해경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한다. 당시 해경은 ‘승객들이 남아있는 상태로 세월호가 바닷물에 잠겼다. 승객들은 바다에 있지 않고 배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청와대 직원에게 전했다. 오전 11시 23분,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대통령에게 이 내용을 보고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두시간 후인 오후 1시 13분,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대통령에게 ‘추가로 190명이 구조됐다’고 서면보고 한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지금보면 이해가 안되겠지만, 당시는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상황실이 직접 해경과 통화해 세월호 안에 승객이 갇힌 채 바다에 잠겼단 사실을 확인한 것을 번복한 것이 청와대의 대응을 무력화시킨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잘못 보고한 사람은 감사원이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만 얘기하자’는 말로 더이상의 답변은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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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를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들은 김장수 전 안보실장과 김석균 전 해경청장의 ‘최선을 다했다’는 답변에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청문회 종료 후 두 증인은 유가족들이 있는 자리를 찾아 고개숙여 사과했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참사 책임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 의무 위반했으면 탄핵 사유”

세월호 7시간에 대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될 책임을 지고 있는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을 하느라 세월호 7시간을 소홀히 했다면 헌법상 의무위반이고 탄핵사유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무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청와대는 16일 금요일로 예정된 국정조사 특위의 대통령실 현장조사를 국가기밀 보안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이에 국조특위는 현장조사를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 : 송원근, 박중석, 김성수, 이유정
촬영 : 김기철, 김수영, 최형석
편집 : 윤석민

목, 2016/12/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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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전국 닭, 오리 농가를 휩쓸고 있다. 지난 14일 자정기준으로 살처분한 가금류 수는 266개 농가에서 1,140만 마리다.

정부는 또 31개 농가 400만 마리의 가금류를 추가 살처분할 계획이다. 사상 최악이었던 지난 2014년의 피해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취재진은 AI로 쑥대밭이 된 경기도 일대의 양계 농가를 찾아 피해 상황을 살펴봤다.

빼앗긴 삶의 기반, 허탈한 농심

이번에 AI 피해가 가장 큰 지역 가운데 한 곳인 경기도 이천. 한 때 양계 농가가 밀집해 있던 이 마을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계사 담장은 곳곳이 부서져 있었고, 닭장은 녹슨 채 방치됐다.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떠나 해질녘에도 불 켜진 집을 찾기 어려웠다.

취재진이 만난 최윤수(가명) 씨는 키우던 닭을 살처분 하던 중이었다. 최씨는 거의 해마다 찾아오는 AI 때문에 마을 양계 농가가 하나 둘 문을 닫는 중에도 용케 버텨왔지만, 결국 올해 키우던 닭 전부를 매몰 처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씨는 “할 수 있는만큼 최대한 방역을 했는데 결국 어떻게 감염이 됐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키우던 닭 전부를 죽이게 됐다”면서 허탈한 마음을 토로했다.

최 씨는 가축 전염병에 대한 일본의 신속한 대응을 예로 들면서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늦었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번지지 않아야 방역이 효과가 있는 건데 초동 대응이 워낙 늦다보니 이제 아무리 방역을 해도 다 번져갈 정도로 바이러스가 퍼졌다”며 방역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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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AI 피해를 크게 겪지 않은 농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만 마리 규모의 양계 농장을 운영하는 장병일(가명) 씨는 매일 두 차례씩 농장 전체를 소독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가능한 최대 수준의 방역을 하는 농가들이 하나 둘 AI에 감염되는 것을 보면서 허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 씨는 “노력해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지 않나. 이건 마치 비행기에서 폭탄을 투하당하는 느낌이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적인 부담이 크다”며 언제 찾아올 지 모를 AI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무용지물 소독약, 효과없는 방역 대책

정부가 방역 효과가 떨어지는 소독제를 보급해 피해를 가중시킨 측면도 있다.

지난 7일 국회 농식품위 현안보고에서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여러 종류의 소독제 가운데 겨울철 저기온에서 효과가 없는 ‘산성제’가 농가에 보급돼 온 것이 사실인지 농식품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보급한 소독제에 문제가 있다는 생산자 단체의 지적에 따라 올해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27개 제품이 효력 미달로 밝혀졌다”고 인정했다. 게다가 이 제품들은 아직 전량 회수되지 않았고, 현재 6천리터 넘게 농가에 남아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4년 대규모 AI 피해를 겪은 이후 정부가 세운 방역 대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는 당시 ① AI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을 ‘방역 관리지구’로 지정하고 ② 방역 관리지구에 대해서는 세척 시설과 소독시설 등을 추가 설치하며 ③ 관심 지역에 대해 정부의 상시 예찰을 강화하는 등의 방역 대책 개선안을 내놨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정부가 지정한 ‘방역 관리 지구’ 내 AI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AI 방역 관리지구와 겹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AI 방역 관리지구를 지정해 특별히 관리했지만 AI 발생을 통제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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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만 마리

AI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살처분 되는 닭, 오리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살처분이 있었던 지난 2014년과 비교했을 때 3배 가까이 빠르게 피해 규모가 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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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 수의학과 서상희 교수는 앞으로 살처분 될 가금류의 수를 5천만 마리 정도로 예측했다. 이번에 발생한 AI의 유형은 ‘H5N6’ 형인데, 이 바이러스는 겨울철에 더욱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H5N6는 겨울철에 영상 4도 이하에서 6개월 이상 생존한다”면서 “겨울이 길기 때문에 방역만으로 잡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5천만 마리는 우리나라 닭, 오리 연간 소비량의 10퍼센트가 넘는 규모이다. 또한 이런 예측이 현실화될 경우, 2003년 이후 지금까지 발생했던 6차례의 AI 피해를 모두 합친 것(약 4600만 마리)보다 피해가 더 큰 대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취재 : 심인보, 김강민, 이보람, 정재원, 연다혜
촬영 : 정형민, 김남범, 신영철
편집 : 정지성

목, 2016/12/1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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