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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김성주 신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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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김성주 신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변화를 기대한다

익명 (미확인) | 금, 2017/11/10- 15:26

 

[논 평] 김성주 신임 이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변화를 기대한다.

7일 국민연금공단 신임 이사장으로 김성주 전 국회의원이 임명됐다. 김 신임 이사장은 국민연금 제도와 기금에 대해 폭넓고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19대 국회 내내 보건복지상임위에 있으면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하락 중단 및 가입자 중심의 기금운용체계 개편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노후빈곤 해소와 공적연금 강화를 위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김 이사장 임명으로 문형표 전 이사장 구속 이후 10개월에 걸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공백 상황은 일단락됐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제도와 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한 개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러 모로 신임 이사장에 대해 거는 기대와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국민연금공단은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한 세대가 지난 세월이지만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여전히 바닥이다. 공적연금 축소와 사적연금 활성화라는 과거 정부들의 정책 기조에서 국민연금은 성숙되기도 전에 만신창이가 됐다. 국민 노후 생활의 안정이라는 제도 본연의 목적인 아닌 기금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재정안정화가 최우선적인 목표가 됐다. OECD 국가 중에서 노인빈곤율은 압도적으로 1위이고,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과거 잘못된 정부 정책의 문제도 컸지만 정부 정책 집행기관이라는 무기력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국민연금공단의 책임도 있다.

김성주 신임 이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이 새롭게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단순히 법과 규정에 순응하기보다 국민들의 편에 서서 잘못된 정부 정책을 바꾸고, 제도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마침 기회도 좋다. 새 정부 역시 과거 잘못된 정책기조를 바꿔 국민 노후를 안정하기 위해 국민연금 강화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용체계의 민주성과 투명성 강화, 장기 재정 안정을 위한 국민연금기금의 공공인프라 투자 등 이 모든 것은 국민연금 강화와 신뢰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들이다. 대부분 국회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법 개정사항이지만 실질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하는 것은 공단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공단에 복지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제도개선 기구를 만드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재정추계에서 실질적인 지원을 맡는 공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재정추계위원회의 추계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어 제도발전위원회, 기금운용발전위원회에서 제도와 기금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를 거쳐, 2018년 하반기에 최종적으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과거 재정추계마다 국민연금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제도 본연의 목표인 적정한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수십 년 후의 ‘기금고갈’, ‘재정안정’, ‘보험료 인상’에 대한 얘기만 판을 쳤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제도에 대한 불신만 야기했다. 각 위원회가 오로지 재정안정에만 초점이 아니라 급여 적정성을 포함한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선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공단이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

끝으로 기금운용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정치와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공단은 기금운용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향후 정부의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이 발표되면 종합적인 논의가 있겠지만, 그 이전에라도 기금운용의 의사결정과 세부 투자내역 공시 강화, 주주권행사 및 사회책임투자 강화 등 규정 및 지침 개정만으로 가능한 것은 먼저 시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비난받더라도, 또 미덥지 못해도 국민의 노후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역할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국민연금이 불안하면 국민의 노후가 불안하다. 이제 다시 국민연금을 국민의 품에서, 신뢰 속에서 키워 가자. 김성주 새 이사장의 취임을 계기로 국민연금공단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한다.

2017년 11월 7일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www.pensionforall.kr)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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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화, 2015/11/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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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원래 영원히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상원의원이자 경제학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 영국 워릭대 교수는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해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성장의 중단’은 경제학자로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성장이 멈추면, 즉 생산과 소비가 끊임없이 늘어나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다.

나는 얼른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언제까지 성장해야 충분합니까?” 그의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Much is Enough?)를 떠올리며 던진 질문이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십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이하에서 3만달러에 육박하는 데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청년 일자리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라면 이제 저성장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설명을 덧붙였다.

“그것은 무엇을 위한 충분함인가에 달려 있습니다.”(Enough for What?) 그가 대답했다.

“올바른 질문은 성장함으로써 그 공동체가 갖고 있는 필요가 해결되는가에 있습니다. 성장만으로는 불평등 같은 여러 사회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판명이 났습니다. 다른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정말로 답하려면, 먼저 그 공동체가 원하는 필요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공동체가 함께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맞춰 그런 삶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를 떠올려야 하고, 그런 경제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경제성장 자체가 절대적인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를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성찰하고 토론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는 방향을 잃었다.

이 나라는 오랜 기간 경제성장이라는 단일한 과제를 놓고 씨름했다. 성장률이 높아지고 소득이 늘면 더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데로 생각이 모아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뒤돌아보니, 불과 수십년 만에 1인당 소득이 수십배, 수백배 늘었는데도 ‘헬조선’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회문제는 심각해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가경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잘 버텼는데도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 나라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싸워서 얻어내기도 했다. 민주주의 제도를 잘 만들어 두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는 공동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워서 얻어낸 민주주의 제도와 그렇게 선출한 대표자들은 증오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 나라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가지를 함께 달성한 거의 유일한 나라인데 그런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지금이야말로 삶의 목표, 사회의 목표를 놓고 근본적인 토론을 해야 할 시기다.

실은 이런 공론을 만들어야 하는 게 정치와 언론이다. 공동체가 무엇을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고 여기는지를 토론하도록 의제를 만들어가는 게 언론의 사명이고, 토론에 참여하며 국가의 새로운 목표를 도출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게 정치의 사명이다. 예컨대 국민들에게 무엇이 이 나라를 자랑스럽게 만드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라의 자랑스러움을 알려주는 교과서를 직접 쓰겠다고 나서는 대신 말이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 그 삶을 달성하려면 어떤 사회가 필요한가. 얼마나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며 성장 이외의 다른 가치들은 어떤 것이 필요한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정치가 우리에게 필요한가. 그 정치를 누가 하는 것이 맞는가.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 한겨레 / 2015.11.03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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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11/0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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