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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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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익명 (미확인) | 목, 2017/10/26- 13:22

[인터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저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③·끝

2013년부터 <프레시안>에 연재됐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중 박정희 유신 체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단행본 9, 10, 11권이 발간됐다. 이번에 발간된 세 권은 1972년 10월 17일을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유신 쿠데타’와 관련 △유신을 왜 일으켰나(9권) △왜 유신 체제를 막지 못했나(10권) △유신의 뿌리, 일본 군국주의(11권) 등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는 1945년 해방 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 흐름을 짚어보는 기획으로 해방과 분단을 다룬 1권,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다룬 2권, 이승만 독재와 이에 맞선 조봉암의 비극을 그린 3권, 4월 혁명을 다룬 4권에 이어 5권부터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유신 체제를 해부하는 세 권의 단행본에 이어 향후 6월 항쟁에 이르는 과정도 다뤄질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촛불 시위 1주년이자 11월 14일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저자인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 촛불 시위의 의의를 되새김과 동시에 유신 체제와 한국의 앞날을 조망하는 인터뷰를 마련했다.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성대한 박정희 탄생 100주년 행사를 지켜봤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서 교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박정희 신드롬’이 만연해있다며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이번 인터뷰를 세 편에 나누어 소개한다. 마지막 편으로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는 주장의 맹점을 짚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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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유신’이라는 명칭은 메이지유신(1868년)에서 따온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1936년 2·26쿠데타를 일으킨 황도파 군인 등 군국주의자들이 쿠데타 등으로 강력히 요구한 쇼와 유신이 그 원형이라고 지적하셨다. (2·26쿠데타는 일본의 청년 장교들이 조선 총독을 지내기도 한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해 주요 인사를 살해하고 강력한 군부 통치를 요구했던 사건이었다. 토론과 협상에 의한 정치를 부정하고 강력한 군부 통치를 추구한 것이다.편집자) 박정희가 대구사범에서는 열등생이었다가 만주 군관학교 이후 우등생이 됐다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박정희의 국가 운영 방식이 일본 사관학교의 군대식 교육과 만주국 국가 운영에 그 원형이 있다고 했는데, 결국 일본 식민 시대의 국가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서중석 : 박정희가 메이지 유신을 중시했다는 것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회상을 통해 나온 말이다. 기시는 만주 침략의 핵심 인물이었고 연합국에 의해 A급 전범으로 지목됐는데도 두 번이나 일본 수상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그의 글에는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메이지 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게 사실이라면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에 쓴 글들, 특히 <우리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등의 책에 메이지 유신 지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장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언급이 전혀 없다. 특히 <국가와 혁명과 나> 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한 항목으로 다루고는 있는데도 이런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온다. 추측건대 메이지 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는 것은 박정희가 기시에게 외교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정희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는 1936년 젊은 군인들이 일으킨 2.26 사건에서 큰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쇼와 유신과 박정희 유신 체제가 닮은 점이 많다. 기성 민간 정치인에 대한 불신, 강력한 통치, 군대식의 능률적 사고 등이 그렇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박정희는 쇼와 유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가 만주 군관학교에 재학중일 때, 일본 육사에 있었을 때, 또 만주군 군인이었을 때 군인 사회를 풍미했던 것이 쇼와 유신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박정희가 이른바 국가개조 운동으로 재건 국민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데 그때 <조선일보>에는 재건 국민 운동은 일제 말기 군국주의 일본의 전시 동원 국민 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재건 체조는 일제 말기의 라디오 체조를, 신생활복은 국민복을, 국민가요는 말 그대로 일제 말기의 국민가요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이 쓴 글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등 국민 개조 운동, 국민 교육 헌장이 쇼와 유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교육 헌장은 메이지 교육칙어, 황국신민서사와 연관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조회, 국기 하강식 등 국가주의 맹세의 의례와 교련과 체육의 모의 수류탄 던지기 군사교육, 충효교육, 라디오 체조와 내 집 앞 쓸기 운동, 국민가요 부르기, 퇴폐풍조 일소와 미풍양속 고취, 반상회, 고도 국방 체제를 목표로 한 총력 안보 체제, 국가 통제형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이 일제가 식민지 조선과 만주국에서 실행했던 국가주의를 본 떠 되살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신 체제는 일본 극우가 꿈꿨던 쇼와 유신의 한국형 변조라는 지적인데 대체로 적절한 평가라고 본다.

유신 체제는 쇼와 유신의 군국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쇼와 유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만주 인맥이라고 평가되는데,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 중심 인물로 체포됐을 때 살아난 것도 국내 만주 인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박정희 정권과 경제적 관계를 포함해서 각별한 관계를 가졌던 자들이 아베의 외조부 기시를 비롯한 만주 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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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9, 10, 11권 (서중석 지음, 오월의 봄 펴냄, 2017)

프레시안 :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의 경제 개발 공로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정희의 경제 개발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나?

서중석 : 한국인 중 상당수가 1960~70년대의 경제발전을 박정희의 공으로 이해하고 있다. ‘개발 독재’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붙어있던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특히 유신체제가 경제 발전에 효율적이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래서 이 점을 특별히 유의해 검토하고 있다.

<현대사 이야기> 8권 전체가 박정희 집권기의 경제 발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9권에서 유신 쿠데타를 다룰 때도 이 문제를 포함했다. 앞으로 유신 붕괴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루려고 하는데, 경제가 유신 붕괴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예정이다.

일부 진보 세력의 ‘개발 독재’ 주장은 심각한 허점을 안고 있다. 우선 3공화국과 유신체제가 삼척동자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히 다른 정치체제인데도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박정희 유신 체제의 경제 정책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이 중화학 공업인데, 1970년대에 한국에 중화학 공업 시설들이 많이 세워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유신체제 붕괴에서 경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대만도 1972년 10대 건설 계획을 세우며 1970년대 내내 중화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우리의 경우 1972년 유신 체제 이전에 중화학 공업은 이미 포항제철이나 비료공장 등 중요한 시설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에서 76년까지 진행된 제3차 경제개발계획도 1971년에 구체적 계획이 다 세워졌다. 즉 이 개발 계획은 유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화를 1973년 1월에 선언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박정희는 1971년 7월 1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중화학 공업을 선언한다. 그는 앞으로 중화학 공업 시대의 막을 올리고 한강 변의 기적을 4대강에 재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즉 유신과 중화학 공업화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박정희 스스로도 중화학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신 체제 같은 강권 체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개발 독재론자나 중화학 공업 건설과 관련한 글 등에서 보면 1973년 정부의 각종 특혜 정책으로 중화학 공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1974~75년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는 두 해 다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화학 공업을 시작하려면 엄청난 자본이 투자돼야 하는데 당시까지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그 정도의 자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한국 경제에 기적이 출현했다.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74년부터 ‘중동 건설 특수’가 나타났다. 석유 폭등으로 떼돈을 번 산유국들이 대규모 건설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것은 다 알다시피 박정희와도, 유신체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중동특수에 맞춰 한국은 1975년부터 몇 십억 달러씩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현대를 포함해 몸집이 엄청나게 커진 업체들이 있었고, 1975년을 전후로 해서 부동산 투자와 투기가 벌어졌다.

여기서도 건설 업체들이 상당한 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즉 중화학 공업화의 발판은 유신 체제가 아니라 중동 건설 특수에 따른 막대한 외화 수입, 그리고 부동산 투자 투기에 따른 대기업의 막대한 이윤 창출이었다.

이런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국가가 보증해주는 차관을 가지고 중화학공업에 투자해서 누가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느냐가 당시 재벌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재벌로 성장하는데 중화학 공업처럼 좋은 게 없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중화학 공업에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과다 중복 투자 현상이 일어났다.

유신 체제 붕괴에는 경제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1978년 12.12 선거에서 여당이 심각한 패배를 당했는데 당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에게 경제통인 김정렴 비서실장, 남덕우 부총리 등을 포함해 경제 각료를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경제 문제가 심각해져서 선거에 패배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가 나온 것이다.

대통령은 처음에 말을 안 들었지만, 김정렴 회고록에 따르면 계속 이러한 요구가 나왔고 결국 김정렴은 9년여 만에 비서실장에서 물러났다. 남덕우 등 경제 각료를 다 바꿨다.

1979년 YH 여성 노동자 신민당 농성 사건과 10월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면서 시작된 부마항쟁 역시 유신 체제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문제가 있었고 이에 따라 유신 체제가 경제 파탄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재규 중정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겠다고 한 것도 부마항쟁 현장에 다녀오면서부터였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회고록에는 김재규가 경제 문제에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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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정권은 군사 작전을 하듯이 밀어붙여 수출을 늘렸다. 그 밑바탕에는 노동자들을 말 그대로 쥐어짠 병영 같은 공장이 있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1979년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는 YH 여성 노동자들. YH 여성 노동자들의 저항은 유신 체제의 몰락을 앞당겼다. ⓒ연합뉴스

유신체제에서는 특히 재벌 중심의 팽창 정책이 주조를 이뤘는데, 유신 체제를 지키기 위해 성장 경제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화학 공업 투자가 일어난 이유도 과도한 성장 위주 정책 때문이었다. 결국 박정희가 1979년 1차 조정을 했지만 이어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이 두 차례에 걸쳐서 대대적으로 조정을 했어야 할 정도였다. 1979, 80년에는 중화학 공장 가동률이 40~60%에 머물고 있었다.

박정희의 고도성장정책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피부로 느끼게 했고 너무나도 지독한 투기 광풍에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갔다. 1978년 한 해에 지가가 48%가 올랐다. 부마항쟁 때 낮에는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지만 밤에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샐러리맨도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 당하고 사는 사람들, 소외된 자,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등 20대 안팎이 시위 대열에 대거 합류했고, 세금 폭탄으로 불만이 컸던 상인들도 가세했다. 김재규는 이를 민란으로 규정했다.

물론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해에 중동 노동자 송금액이 11억 달러를 넘어서 기록적이었고, 현대의 총 매출액이 36억 달러로, 미국 종합경제지인 <포춘>이 집계하는 기업 총 매출액 순위에서 세계 98위에 올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1978년에는 노풍(통일벼 계열 신품종)벼 피해도 발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작물 시험장 책임자인 박노풍의 이름을 따서 노풍으로 불린 새 볍씨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볍씨가 나왔으면 실험 단계를 충분히 거쳐야 하는데 박정희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빨리, 많은 양을 수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장려했다. 박정희 정권은 12·12선거 나흘전인 12월 8일 이듬해부터는 노풍을 재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돌아선 농민들의 마음을 붙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농민들은 박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1978년 후반기부터 나빠진 경제는 1979년에 한층 악화되었고, 1980년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5.6%(전두환 회고록 등), -5.2% 등으로 나온다. 남한이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각에서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박정희가 얼마나 경제를 잘못 운영하고 있었는지가 막 드러나고 있었던 시점이었는데 김재규가 조급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박정희 유신 체제가 경제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지를 미처 깨닫게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미 동맹과 촛불 민심

프레시안 : <현대사 이야기>에는 유신 선포 하루 전 미국 대사관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국에서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인식은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1960년 4월 혁명이나 1987년 6월 항쟁 때는 미국이 강경 진압을 막았다는(그리하여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한미 동맹을 절대시하는 측과 자율성을 늘려야 한다는 측이 대립하고 있다. 촛불 민심을 받들어 자주적 외교를 하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핵 위협이 커지면서 남한 정부의 운신 공간이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민주화가 대외 관계의 민주화로 나아갈 길은 없을까

서중석 : 미국은 자신의 국익 범위 내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한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4월 혁명 때만 해도 미국은 4월 18일까지 3.15 부정선거를 용인하고 이승만-이기붕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 문제를 바라봤다. 그런데 4.19 시위를 보면서 달라졌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본다.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문제를 풀어가기가 어렵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한말에도 있었고, 그러면서 중립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중요성은 해방후 미·소 점령 아래서, 특히 좌우 합작 세력에 의해 강조됐다. 친미파로 미 군정 입법의원 의장이었던 김규식은 ‘친미 반소’나 ‘반미 친소’는 모두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건 자주적 입장을 망각하고 미·소 양국의 조선에 대한 진정한 협조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미 군정에서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도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중심을 바로잡고 ‘중앙당’으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길만이 통일 독립을 보장하고 국익을 최대화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이 친미파임에도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이들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울리고 있는 때가 지금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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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해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990년을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와해되는 가운데.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한반도가 여기서 벗어나려면 전략적 사고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김규식과 안재홍, 여운형 등이 활동할 때만 해도 미·소 두 나라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국은 4강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됐다. 21세기 들어오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세계 4강으로 부상했는데, 이 4강은 모두 한국을 둘러싸고 있다. 한반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4강시대를 맞게 되었다.

1990년 전후로 냉전이 와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경제 및 문화 관계가 강화되면서 굉장히 긴밀해졌다. 중국은 어차피 우리와 이웃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국가였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로 부상했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로서 남북 관계라든지 만주, 시베리아 등지로 진출해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한반도가 중·러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북핵 해결도 4강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처럼 한쪽에 따라다니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고, 우경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쟁국 가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중국과 협력해 대응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일본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일본을 중·러에 대한 대항마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런 차원에서 한·일 군사관계도 권고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는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해야 한다.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찾아온 4강 시대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4강에 대해 자주성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규식이나 여운형, 안재홍 등이 친미친소를 중요시했던 것은 두 나라로부터 강력한 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미친소만이 두 나라로부터 주체성 자주성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한반도를 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이 점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때를 전후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 이후 북한과 관계가 아주 심하게 틀어졌는데 이 때 북한에 대한 원조를 강화하고 김정일이 8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최상의 환영을 받고 장쩌민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해 7월 김정일은 평양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김정일과 포옹을 하고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을 속삭였다는 점이다. 미국 못지 않게 북에 적대적이었던 일본은 그해에 갑자기 북한에 대한 식량 원조를 크게 늘리고 2002년 고이즈미 수상의 평양 방문을 진행했다.

이 나라들이 김정일이 좋아서 그랬을까? 남북 협력시대가 열릴 때 북한에 일정한 관계를 갖는 것이 동아시아 또는 세계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북아 정세는 또다시 경색됐다.

2000년대에 사는 우리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안목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처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아무런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작스럽게 배치를 결정했다. 더군다나 탄핵을 받은 상황에서 이른바 사드 ‘알박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 문재인 정부가 전쟁 반대를 명확히 선언하고 그에 따르는 노력을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과연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비판도 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4강 시대에 얼마나 자주성,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데 관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대해 명료한 인식과 확고한 실천이 요구된다. (끝)

<2017-10-26> 프레시안 

☞기사원문: ‘박정희 신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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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IDS홀딩스 사건은 제2의 조희팔사건이라고 불리우며 피해자 1만2178명, 피해액 1조 969억원에 달하는 사건입니다.

현재 IDS  홀딩스 대표 김성훈은 2심 징역 15년 구형을 받았으며 현재는 대법원 상고 중입니다.

피해자들의 피해금을 변제해 주면 무죄를 증명할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텐데도 여전히 피해자의 피해금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할뿐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꼼수로 1년 5개월이나 변제를 미뤄오고 있으며 오직 자기 살길만은 모색하고 있는 사기꾼 입니다.

가짜 변제안, 자산가치도 증명 되지 않은 회사의 주식변제안 그리고 최근에는 파산신청까지 진행하며 여전히 피해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시대의 사기꾼 입니다.

김성훈의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1만여명의 피해자들은 끝없는 괴로움으로 힘들어 할것이며 사기꾼과 그 공범자들은 또다시 이런 유사한  사기를 치며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 것입니다.

왜 변호사님은 이런 일에 사기꾼 김성훈편이 되시려는지요?

이것은 그동안 민족문제연구소가 해온 업적에 막대한 누를 끼치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도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많은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로움을 꼭 돌아봐 주실것을 부탁 드리겠습니다.

화, 2017/12/0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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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IDS 홀딩스의 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는 2심에서 15년형을 받은 금융다단계로 37명이 목숨을 잃은 사기사건 입니다.

김성훈은 입으로만 피해자들한테 변제한다 변제한다를 외치고 있지만,
1년이상 긴 시간동안 피해자들에게는 단한푼도 변제 하지 않고,

구치소 안에서도 사기! 사기! 사기! 사기 생각만 하고 사는 쓰레기 입니다.

1년동안 쓰레기 변제안을 들이밀더니, 그 변제안 또한 감방동기와 함께 또 사기를 치고 있습니다.

 

15년형을 받은 IDS 홀딩스 대표 김성훈의 파산은 부당합니다!!

이런 파렴치한 사기꾼이 파산을 하겠다네요.. 이게 말이 됩니까? 범죄자가 파산이라니요.
피해자들에게 변제는 생각지도 않고, 지금도 피해자들을 두번 세번 죽이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오늘도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지점장들을 2심에서 유죄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곳에 집중하기에도 모자른 이 시간에 김성훈의 파산을 막기 위해 또 생업을 뒤로하고 진정서와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성훈의 파산은 김성훈의 파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공범자들.. 지점장과 본부장 모집책들도 파산 신청을 할겁니다.
그리고 사기를 진행 중인 많은 금융사기꾼들의 표본이 될것입니다.

소수의 피해자들과 파산을 진행중인 정만순 변호사님,
부디 부당한 파산으로 더이상의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IDS 홀딩스 사건 관련 내용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0&articleId=2569417

파산 반대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45021?navigation=petitions

화, 2017/12/0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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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Ids홀딩스는 1조 사기사건으로 15년형을 받은 전형적인 금융다단계 사기사건입니다

하지만 사기꾼 김성훈은 변제한다 변제한다 말뿐 1원 1장 변제하지않았습니다

ㅈ비상장주식으로 변제한다고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받더니 이제는 몇몇 몰지각한 피해자들이 자기돈 찾자고 신청한 파산에 적극 응하면서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ㅇ김성훈의 파산이 받아들여진다면 1만여명의 피해자들은 피멍으로 죽을때까지 괴로움을 당해야할것이고 사기꾼과 그 공범자들은 또다시 이런 유사한  사기를 치며 살아갈것입니다

왜 정만순 변호사님은 이런 일에 사기꾼 김성훈편에 서서 일을 하시는지요?

더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동안 해온 일에 먹칠을 하려고 하시는지요?

돈보다 명예와 정의로움을 꼭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화, 2017/12/0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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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S 피해자입니다
파산이라는 것은 적어도 37 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자는 해선 안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년 3개월 많은 이들이 이혼과 그리고 월세방으로 나 앉았고 그리고 37 명의 소중한 생명이 지병악화 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김성훈이 파산된다면 전 열심히 일하면 살려 하지 않을겁니다
똑같이 한탕 크게 해 먹고 파산 신청 할겁니다
법보다 국민정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조금이라도 빚은 갚아야 하는 것으로
공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아껴 사는 국민들이 억울하지 않더록 해 주십시요 꼭요

화, 2017/12/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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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

Ids피해자입니다.

김성훈의 사기로 저희 가정은 한순간에 경제적 몰락만이 아니라

가정의 평화도 깨졌습니다. Ids사건으로 37명이 목숨을 잃으신걸로 압니다

피해자들에게 김성훈 파산은 또 하나의 깊은 절망입니다

사기꾼을보호하는 법과 사회에 솔직히 환멸까지도 느낍니다

민족연구소에서는 불의를 위해 싸워주시는 걸로 압니다

이 사건은 불의가 아니던가요

법을 모르는무지로 당하기만하는데 법을 아시는 변호사님께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주시면 안되는걸까요

파산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도 받고

희망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20여명의 투자자가 채권자라며 신청한 파산에 저는 동의한적이 없습니다

1만2천명의 피해자들의 의견을 다 수렴하시고

현재 진행중인 파산을 멈춰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김성훈 파산만큼은 막아야 피해자들이 한줄기 희망울 가지고

김성훈을 상대로 끝까지 싸워볼수 있지 않을까요?

화, 2017/12/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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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변호사님

저는 Ids홀딩스 사기 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 김성훈은 1조원대 사기범이고 피해자가 1만2천명입니다

노후자금 전세금 노후연금등 피해자들은 자기에게 있어 소중한 자산을 사기당했고

현재 파산절차를 보면서 깊은 절망속에 있습니다

이 파산은 1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20여명이 신청하였고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써 김성훈에게 파산은 결코 용납할수

없습니다.

김성훈 파산이 이루어지면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게 공평한 재산 나눔일까요

파산이 이루어지면 김성훈과 동조했던 이들이 월급이라며 받아가고

직급자들도 투자사실있으면 받아가고.. 현재 피해자별지에

누락된 피해자들은 또 법정싸움을 해야합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 생각해주십시요.

민족문제연구소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곳이라 들었습니다

죄없다며 상고중에 있는 김성훈을 돕는 파산을멈춰주십시요

화, 2017/12/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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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 연구소가 어떤 일을 해온 곳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분들은 후원금이 끊이지 않는 것도요 왜그럴까요?

이연구소에서 하시는 일이 정당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하시는 않은 활동들 그리고 소속되어 계신분들께 응원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고문변호사이신 정만순 변호사님께서는 사기꾼에게 유리한 일을 앞서 하시려는지요?

김성훈에게 파산은 부당합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헤아려주세요

화, 2017/12/05-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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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그 동안 비뚤어진 기득권층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신 훌륭한 단체입니다.  잘못된 식민사관을 바로잡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생각하는 바른 생각을 하는 분들이 모인 단체로 늘 응원하고 감사드리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IDS홀딩스 김성훈의 채권자 파산신청을 검색하다가 대리인이 이 단체 고문으로 있는 정만순 변호사님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는 IDS홀딩스 김성훈의 유사수신. 사기 피해자입니다.

열심히 사는 소시민으로 우리 사회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사회이길 바라며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IDS홀딩스 사기사건으로  가정경제는 뿌리채 흔들려 앞날도 희망도 계획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에 맞닥뜨렸습니다.  사기사건은 곧 경제살인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절실히 느낀것은 법은 피해자 편이 아니었습니다. 사기꾼은 오히려 여러 변호사들에게  둘러쌓여  보호받는데 정작 피해자는 어떤 법적 보호 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고문으로 계신 정만순 변호사님!

부디 사기꾼의 파산을 돕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12000명의 피해자가 있는데  십여명의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하고 이에 사기꾼 김성훈은 파산시켜달라 판사에게 적극요청하고 있습니다.  사기꾼 공범들의 지휘와 선동으로  정보가 부족한 어르신들을 상대로  하루빨리  김성훈을  파산시켜달라  요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땅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정의로운 일입니다.

정의로움이  있어야 가치있는 일입니다.

지금 현재  우리사회는 IDS홀딩스 뿐만 아니라  유사수신 사기피해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고통속에  있습니다. 더이상 사기꾼이 이 사례로 답습하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도 이 사회의 정의를 지키는 일입니다.

사기사건은 경제살인입니다.

부디 정의가 아직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 2017/12/0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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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IDS홀딩스의 피해자이자 평범한 주부입니다.

IDS 홀딩스 김성훈은 1조원대 사기범이고 피해자가 1만2천천명이 됩니다.

이 파산은 1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김성훈 파산이 이루어지면 동의하지 않은 피해자는 어찌해야하는 건가요??..

공평한 나눔이 될수 없습니다.

 

파산이 이루어지면…

직급자들도 투자사실이 있으면 받아가고,

현재 피해자별지에 누락된 피해자들은 또 법정 싸움을 해야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피해자로서 가슴을 치면서 살아가야할까요??

제발..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주세요..

 

피해자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신다면 다시한번 생각 부탁드립니다.

 

평밤한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평밤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제 피눈물을 멈추고 싶습니다…

바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수, 2017/12/0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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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언니한테 가끔 민족연구소라는 곳이 나라를 바르게 잡는 일에 앞장서는 단체라며 국내외에서 후원도 많이 한다하는 얘기를 듣곤했습니다.

그런데그런곳이 IDS김성훈과 연관되어 검색되어서 깜짝놀랐습니다검색어와 연관되었길래 당연히 뭔가 이 사기사건에 도움을 주시려고 하시나보다..했는데파산을 돕고있는 변호사라니요ㅜㅜ

혹시라도 이 사건을 모르시고 파산을 맡으신거라면….사건검색해보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파산이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돈을 나누워지리라 진정보십니까? 사건을 자세히 알면 김성훈이 얼마나 꼼수를 부리고 있는지 아시게 되실겁니다. 그럼 이 파산이 김성훈에게 어떤의미인지도 아시게 될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양심이 전혀없는 사기꾼이 전적으로 파산을 돕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김성훈은 정말 머리좋은사기꾼입니다. 그런 사기꾼이 그토록 원하는 파산을 왜 도와주시려하십니까…?

만약 이 파산이 받아들여지면 사기꾼들의 좋은 본보기가 될것이며 너도 나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파산을 순차적으로 해나갈것입니다..그런일을 돕다니요..ㅜㅜ

 

지금까지는 30여명이 운명을 달리했고파산이 되면억울해서아마도 더 많은 인원이 운명을 달리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이런 바람직한곳의 고문변호사님이시면 제발 이 사건을 잘 돌아보시고 파산을 할수없도록 오히려 도와주세여..그게 바로 정의입니다…. 이 사기꾼에게 파산으로 끝을 가볍게 털게 하고싶지 않습니다. 제발 사건을 제대로 바라봐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화, 2017/12/05-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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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저는 IDS에 투자해서 사기당한 피해자입니다 평소 변호사님의 훌륭한 인품과 하신 일들에 존경과 감사함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번 김성훈의 파산을 돕는일을 하신다기에 글을 올립니다 변호사님 김성훈과 일부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또다른 사기로 투자들을 힘겹게 하고있습니나 변호사님 쌓아오셨던 훌륭한 일들에 이번 파산관련 시건이 오점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김성훈이 그동안 해왔던 거짓과 악어의 눈물을 바로 보신다면 절대 파산을 위한 일을 진행할 수 없을거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부디 파산을 막아주십시오

수, 2017/12/0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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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행복수업 겨울집중수련 안내

· · · · ·

 

 

명상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한 마음을 점검한지는 근 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내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단점은 얼른 수정해야지하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또 한편 진정한 마음의 허용은 하지 않아 상대방이나 주변인들을 힘들게 했다. 나는 나의 그러한 생각의 집착을 내려놓고 차분히 가만가만 지켜보려고 한다. 나를 바로 보고 가족을 바로 보고 나서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두려움 없이 고통 속에도 그것을 고통이라 여기지 않고 받아들일 것이다.”

지은(22차 선 수행 기본과정 참가자)

 

 

2017년도 바쁘게 보냈습니다!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지요.

사회적으로도, 또 우리 마음 속에서도 파도와 폭풍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제 또다른 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나이도 한 살 먹고 더 다양한 관계와 일이 일어날 것이고,

어떻게 마음을 챙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과 번뇌가 많아지겠지요.

바쁘고 분주한 시간을 보낸 여러분들께

행복수업의 겨울 안거 프로그램을 안내합니다.

여러분 모두 2018년을 깨어서 맞으실 수 있길 기원합니다.

 

 

프로그램 일정

1/1-1/7 24차 선 수행 기본과정 (명상 기본)

1/8-1/14 [특별수련] 10차 깨어있는 삶과 평화로운 죽음 (죽음 명상)

1/15-1/21 20차 청춘멘탈강화프로젝트 (청년 명상)

1/22-1/28 25차 선 수행 기본과정 (명상 기본)

1/29-2/4 [특별수련] 9차 만트라 관상 명상 (롱첸파의 명상 요결)

 

자세한 프로그램 소개 바로가기 : https://goo.gl/WJe3QL

 

 

안내자 소개

 

혜 봉

: 한국, 미얀마, 티벳의 여러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1994년부터 정토회 문경수련원에서 나눔의 장을 진행하며 마음공부를 안내하기 시작했으며, 1998년부터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마음공부를 나누기 위해 명상아카데미와 2000년 사단법인 밝은세상을 설립하여 선() 불교에 토대를 둔 마음공부법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 이후에는 명상수행학교 행복수업을 설립하여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세대에 맞는 명상 프로그램을 안내 및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불교 종파와 종교, 철학과 과학을 통합한 맞춤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5가지 명상법(불광출판)>이 있습니다.

 

 

주관 기관 소개

 

행복수업협동조합

: 불교의 마음 원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수행법들을 통합한 마음공부법을 함께 나누고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자 만들어진 수행공동체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멘토 양성 교육과 함께 대안적인 공동체 설립을 위한 멤버십 훈련 및 프로젝트 기획 등의 사회적 실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 주소 : 서울 서대문구 간호대로 11-30, 2

· 전화 : 010-4292-3578 / 070-7788-9808 (문자 수신 가능)

· 카카오톡 : @행복수업 (플러스친구)

· 블로그 : koreanseonschool.org

· 페이스북 : facebook.com/bigokhappy

 

 

 

 

수, 2017/12/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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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넘는 돈이 사기꾼에게 넘어갔습니다.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하죠. 많은 사람들의 계략과 침바름에 선량한 피해자들이 생겼고 더 당황스럽게 사법시스템을 더 잘 알고있는 사기꾼들이 어떻게든 쉽게 빠져 나가려고 여러 술수를 쓰면서 피해자에게 2번째 3번째 상처를 줍니다.

가짜변제안.. 몇개월만에 사기로 판정이 나니 이제는 파산을 해서 15년 형 후에 출소해서 숨겨둔 자산으로 왕 처럼 살려고 하는 술수 입니다!

정의로 움직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의 큰 보도가 없는 지금 저희 피해자들을 저희 피해자들은 횃불 앞의 불나방 같습니다. 1년3개월… 이리저리 뛰고. Ids 사측의 방해를 피해 큰소리로 외쳐보지만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든데 .. 앞에 고통과 심지어 죽음까지 보이는데 지금 뭐라도 해서 살려고 몸부림 칩니다…. 억울함과 고통이 사지를 찢는 고통입니다.. 부디 연민의 정을 느껴서 저희를 도와주세요… 제발요…

수, 2017/12/0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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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순 변호사님께

저는IDS피해자입니다

IDS홀딩스사건을 검색해보시면 제2의조희팔사건이라고 나옵니다.

김성훈은 무허가유사수신회사를 설립해 1만여명의 불특정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조원등을 챙긴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심 재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정만순변호사님

김성훈은 사기꾼입니다.

감방동기와 말도안되는 변제안을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현옥시키는 머리좋은 사기꾼입니다.

피해자들중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해자들을 도와주셔야죠.

IDS홀딩스사건을 제대로 봐주시고

파산사건을 다시한번 생각해주세요.

 

 

 

 

수, 2017/12/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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