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으로의 초대
화순이 고향인 임정태(사회 83) 동문의 제안으로 11월 산행은 2박3일 간의 화순의 백아산을 등반하기로 결정하고 시간이 허락하는데로 일정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6일 오전에 1진으로 출발한 남중현(사회 82) 동문과 조민재(사학 86) 동문은 보성차밭, 쌍봉사, 유마사를 들리고, 부용산에 올라 벌교 평야를 바라보며 남도의 숨결을 느끼고 숙소인 백아산 자연휴양림으로 향하고 2진인 임정태, 오세제(철학 81), 정선임(화학 83) 동문은 6일 1시경에 명동에서 만나, 여동생의 죽음이 애달파 만들어져 그 애달픔이 민중의 한으로 이어져 전라도 민중의 노래가 된 노래 부용산 을 음미 하며 긴 여행의 지루함을 달래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내장산 단풍의 화려함에 감탄하며 숙소로 합류하고, 전국이 좁다하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마을에서 노는 언니 민양운(독문 83) 동문이 밤늦게 합류하였다.
7일 새벽 6시에 윤정인 동문(화학 78)과 최원호 동문(물리 83)이 목동에서 만나 부평에 사는 이주섭 동문(불문 83)을 데리고 화순으로 향하였는데 선발대가 카톡에 올린 술상이 빈약하여 애달픈 마음에 바리바리 싸오셨다는 윤정인 동문 덕분에 화순 가는 내내 입에 먹을 것을 달고 갔다. 장정미 동문(영문 82)과 그 아들 민서는 서울 정릉에서 윤봉구 동문(물리 83)과 그 아내 황영숙은 부여에서 화순으로 출발하였다. 선발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김삿갓이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가지 아래에 있고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에 흐르는구나.”라고 읊은 물염적벽과 물염적벽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세상 어느것에도 물들지 않겠다”는 의미를 가진 정자 ‘물염정’과 400년된 느티나무를 둘러보고 아침으로 임정태 동문의 단골집에서 어탕을 먹고 나중에 출발한 일행들과 1시경에 운주사에서 합류하였다. 황석영이 그의 소설 ‘장길산’에서 진도와 전라도 일대의 섬들, 그리고 나주 영암 일대에서 일어난 노비들과 함께 도읍지가 바뀌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통한의 장소로 설정한 곳으로 와불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개벽하리라는 민중들의 해방의 염원이 천불천탑의 전설에 스며들어 있다. 마을이 있었을 듯한 긴 골짜기에 자리잡은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석공들의 연습장소였을까? 그들은 자신을 담은 불상을 새기며 미륵이 오시기를 기다렸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비속에 운주사를 뒤로하고 화개에서 있는 ‘우리밀 파종식탁 빵 워크숍’에 가야할 민양운 동문을 보내고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화순의 ‘굼터생선구이’집에서 점심으로 먹은 ‘병어’는 평소 보덭 병어와 달라 물어보니 이게 더 맛있는 병어로 이맘때가 아니면 먹을수 없는거란다. 점심 식사 후 일행은 조광조 유배지로 향하였다. 해설사가 설명을 마치고 사학과 출신인 조민재 동문이 추가로 해설하는데 해설사 선생님이 감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온천을 가자는 여성 동문들의 빗발치는 성화에 이후 일정을 바꿔 화순온천으로 향하고 여수에서 한의사로 살고 있는 이정우 동문(신방과 83)이 화순온천에서 합류하여 반가운 조우를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몇 십년 만에 회포를 즐기던 동문들은 오세제 동문의 부용산 노래에 한바탕 웃으며 어린날 즐겨부르던 노래도 부르며 둘쨋날 밤을 즐겼다.
8일날 아침에 일어나니 빗물에 더 선연해진 단풍이 반겨준다. 휴양림 입구까지 느긋하게 걸으며 형형색색의 단풍을 아쉬운 마음으로 진정시키고 창랑적벽을 향하였다.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인 최산두가 중국 양자강가의 적벽과 비교할 만큼 뛰어나다고 하여 적벽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상수원 보호를 이유로 출입이 금지되다 개방되었다는데 단풍이 적벽과 어우러지고 이를 안개가 감싸 안으니 그 아름다움에 눈이 감탄하고, 물염정과 물염적벽이 마주보는 옆에 있는 식당에서 먹는 어탕은 남중현 동문이 이 번 여행의 백미라 하던 말이 이해된다. 선약이 있었던 이정우 동문을 아쉬운 마음으로 먼저 보내고 백아산으로 이동하여 백아산을 오르다 일부는 중간에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하늘다리를 돌아 내려오기로 하고 올라간다. 위로 갈수록 길은 험해지고 빗물에 젖은 낙옆은 미끄럽고 안개는 자욱하여 시야는 답답하여 나오던 아우성은 하늘다리에 이르렀을 때 모두 환호로 바뀌며 이 번 여행의 백미는 단연코 백아산이라 하길 서슴치 않는다. 천상의 다리인 듯 구름위에 떠있는 하늘다리에 올라서니 계곡 아래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옅게 깔린 안개는 환상적인 느낌을 더하여 준다. 도당이 있었다는 마당바위에 나란히 앉으니 그 옛날 천혜의 요새였을 백아산에서의 그 치열했을 전투와 그 가운데 불리워졌을 부용산 노래의 애달픔이 더해져 남도 민중들의 염원이 환상과 함께 다가온다. 백아산 마당바위에서 오세제 동문의 부용산 노래를 들었어야 했다는 장정미 동문의 말이 새삼 되새겨진다. 백아산의 감흥을 뒤로하고 내려와 다슬기 수제비를 먹으려 했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 소쇄원 옆의 담양 떡갈비 집으로 점심을 먹으며 남도의 음식문화에 또 감탄한다. 식사후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길을 소쇄원으로 향하니 쉬어가기에 편안한 곳이다 싶다.
2박 3일의 화순 여행은 곳곳에 스며있는 남도 민중의 삶과 한을 가슴에 안고 노래부르고 남도의 음식을 맛보며 가을 단풍으로 절정에 다다른 화순의 절경을 눈에 담고 온천물로 세속의 때를 씻으며 오랜 벗들과 함께한 날들이었다. 안치환의 노랫말 ‘이제 우리 몇 번이나 볼수 있을까?’가 저절로 되뇌여지는 여행이었다. 이 모든 여행을 할수 있게 해준 임정태 동문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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