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연공원을 다니면서 ‘경이롭다’거나 ‘아름답다’보다 더 많이 드는 생각은 그 안에 숨겨진 ‘안타까움’이다. 옛적부터 원주민들이 자연을 지키며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이 유럽인에 의해 파괴되면서 어머니 대자연이라는 원주민의 전통적 삶의 양식은 잊혀진지 오래고 외세에 의해 정복당한 아픈 흔적만이 국립공원의 역사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공원을 여행하면서 문득 미국 국립공원청의 엠블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앰블럼을 구성하는 내용물은 모두 미국 국립공원을 대표할만한 핵심적인 자연을 상징하는 것들로 1)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세콰이어국립공원의 자이언트세콰이어와 2)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대표 동물인 바이슨이 각각 동식물을 대표하며, 3) 글레이셔국립공원의 눈 쌓인 산과 호수는 아름다운 경관을 대표한다. 그리고 4) 역사문화가 있다. 미국에서 국립공원 엠블럼의 이름은 ‘화살촉’으로 불린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이 돌화살촉이 지니는 의미를 역사적 가치라고 말하면서 국립공원이 지향하는 자연경관, 동식물, 역사문화를 포괄하는 엠블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엠블럼1.jpg 미국 국립공원청 엠블럼

대표적인 동식물과 자연경관을 엠블럼에 사용한 것은 당연히 이해가 가는데, 이 자연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사냥을 위한 돌화살촉이라는 것에 단순히 역사문화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기에는 좀 형식적인 듯하다. 소설을 쓴 사람과는 달리 평론하는 사람은 뭔가 다른 상상을 하게 되는데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는 이방인에게 이 엠블럼은 마치 어설픈 평론가처럼 다른 상상을 펼칠 여지를 준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냥용 물건이 자연을 에워싸고 있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자연을 지키며 살아온 이곳의 원래 주인인 인디언들을 모두 잔인하게 쫓아내고 점령한 유럽인들이 다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인디언의 상징인 화살촉을 공원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 등이 그 속에 숨어있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발동케 한다. 별 의미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뭔가 다른 뜻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무슨 장치가 이 안에 녹아들어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 이 엠블럼을 만든 사람은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 따위로 말이다.

옐로우스톤국립공원 비지터센터에 전시된 돌화살촉을 보며 꽤나 깊은 상상을 해 봤다. 국립공원 엠블럼은 국립공원제도가 생긴 이후 한참 후인 1951년에야 만들어져 미국 국립공원 역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돌화살촉이라는 것이 형태가 대부분 유사하겠지만 이곳에 전시된 돌화살촉은 유독 이 엠블럼과 똑같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부분들이 모두 실제를 기반으로 한 것과 같이 화살촉은 꼭 이 화살촉을 모델로 그린 것 같다.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이 돌화살촉과 함께 초기 약탈자들의 사냥으로 인해 바이슨 해골이 산을 이룬 끔찍한 역사의 한 장면이 전시되어있는 비지터센터에 꼭 들르기를 바란다. 공원 북쪽에 위치한 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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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된 돌화살촉

많은 공원을 다니면서 잡다한 생각 끝에 내린 개인적 결론이다. 뒤늦게 제작된 이 엠블럼은 인디언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잔인하게 빼앗았던 미국 서부개척의 과거를 반성하고자 하는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디언의 돌화살촉은 버팔로를 사냥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온 인디언들과 자연이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 땅의 주인이 인디언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국립공원의 주인이 정부가, 신대륙 정착민이 아닌 인디언이라는 것임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지만 이곳을 경이롭고 아름답게 유지한 근본적 힘은 인디언들이며, 과거의 반성을 통해 상징적으로나마 인디언들의 땅임을 알려주는 장치를 국립공원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도 온갖 훼손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고, 더 많은 훼손을 하지 못해 안달인 우리나라 국립공원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다. 엠블럼을 만든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우리는 이 땅의 한 부분이며 땅 또한 우리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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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right Visitor Center 지하전시관에 전시된 1870년 바이슨 해골로 만들어진 산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