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19년 5,6월호 – 시사포커스(1)]

패스트트랙 정국이 던진 화두

서휘원 정책실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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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정국

 

최근 국회는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추진하는 여야4당과 이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 사이의 충돌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달은 지난 4월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 원내대표가 선거법을 비롯한 4개 법안의 패스트트랙에 합의하고, 우여곡절 끝에 여야4당이 합의안을 각 당에서 추인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4월 25일, 자유한국당이 합의안을 담은 의안 발의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를 점거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인 4월 26일, 전자 발의 시스템으로 의안 발의가 완료되었고, 4월 29일에는 4개 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되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려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좌파 독재, 독재 타도”를 외치며 국회를 점거하고, 다른 의원을 감금하는 등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누구든지 국회의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그 부근에서 폭력행위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국회법 제165조 위반이었다. 패스트트랙 지정 완료 이후에는 원외 투쟁에 나섰다. 광화문 농성에서 “패스트트랙이 우리 대한민국, 우리 국민, 우리 헌법,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다. 국민은 정치의 개혁을 바라지, 정치의 퇴행을 바라지 않고 있음에도, 다시금 이념 공세를 펼치며 개혁의 반대편에 섰다. 이는 “개혁정신을 물리적으로 막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패스트트랙 전선

 

현재 국회 안팎으로 패스트트랙 전선이 형성되었다. 패스트트랙 전선이 형성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요인은 촛불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제20대 국회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촉발된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부정부패,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위임적 민주주의(delagative democracy)를 넘어서자고 함께 외쳤다.

 

하지만 촛불 이전 형성된 제20대 국회를 구성한 정치세력들이 모두 다 이러한 촛불정신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에 촛불이전에 형성된 제20대 국회와 촛불 사이의 간극이 더해졌다. 이로 인해 제20대 국회에서 촛불의 요구를 입법화하고자 하는 개혁 세력들은 촛불의 요구를 실제로 입법화하는 데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이들은 국회 밖에서 추동력을 찾던 중 패스트트랙이라는 출구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자유한국당의 ‘계속된 반대’와 ‘대화 거부’에서 비롯됐다. 사실 역설적이게도, 패스트트랙 정국을 불러온 것은 선거법, 공수처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여야4당이라기보다는, 자유한국당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계속해서 국민의 염원을 외면한 채, 개혁 법안 논의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정치개혁·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출범을 지연시키고자 했다. 어렵게 출범한 정개특위·사개특위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개혁법안을 논의하기는커녕 논의의 진척을 막아 시민사회로부터 “발목잡기 정당”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한편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월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데에 서명해놓고, 당리당략에 따라 협상을 원천무효로 돌렸으며, 시대에 역행하는 비례대표제 폐지, 공수처 반대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의원 총회에서 자유한국당은 급기야 개혁법안에 대한 색깔 입히기를 시작하고 나섰다. 선거법은 “좌파 독재를 위한 것”, 공수처법은 “청와대 직속 수사기관”이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세 번째 요인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건들에 대한 국민적 호응에 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 속에서 정치개혁, 사법개혁 등이 지지부진했음에도 국민들의 선거법 개혁과 공수처 설치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고 오히려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또 이러한 안건들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찬성 의견이 점점 더 커져갔다. 리얼미터 여론조사(3월 14일자)에 ‘여야 정쟁으로 막혀 있는 개혁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해 찬성한다’는 찬성 응답이 50.3%로, ‘여야 합의와 법안 심의 절차를 거치지 못하므로 반대한다’는 반대 응답(30.8%)보다 19.5%p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차 리얼미터 여론조사(3월 25일자)에서도 ‘여야 정쟁으로 막혀 있는 개혁법안의 신속처리를 위해 찬성한다’는 찬성 응답이 1차 조사 대비 4.0%p 증가한 54.3%로 증가했다. 또 국민들은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 다음 총선에서 표로써 심판하기로 기다리기보다는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향후 패스트트랙의 향방

 

패스트트랙이 지정되고 나서도 선거법·공수처법 등이 통과되려면 무려 330일의 시간이 걸린다. 패스트트랙 지정 후 절차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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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지정은 각 절차의 마감일(deadline)을 지정하는 것일 뿐이기에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들도 다른 법안들과 같이 표결에 필요한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향후 패스스트랙 정국의 향방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협상에 들어오는 시나리오, 330일 동안 지금 국회를 둘러싸고 형성된 전선(여야4당 대 자유한국당)이 계속되는 시나리오, 그리고 전선이 흐려지는 시나리오 등이다. 이 시나리오에 따른 경실련의 대응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패스트트랙 정국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우리에게 던진 화두

 

87년 민주화 이후로 30년 만에 패스트트랙을 추동력으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학계 내에서는 패스트트랙 정국을 바라보는 매우 상반된 시선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의 반대 속에서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법을 통과시킬 수 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다른 한편, 비례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일보 전진, 아니 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큰 전진이라고 평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다른 한편, 국회가 연동형도 아닌 ‘준연동형’, 그리고 기소권 없는 공수처안 등 후퇴된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정국으로 흘러갈 때까지 시민사회단체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 하는 비판도 있다.

 

패스트트랙 협상 과정에서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가 하나 있다. 그것은 “정당들 간에 합의가 안 된다면, 개혁을 포기해야 하는가?”이다. 이에 대해 비례민주주의연대의 하승수 대표는 정당 간 합의가 되지 않았어도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헌법 제49조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정당 간의 합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민심이고 표심이며, 패스트트랙은 최종 표결이 아니라 안건 상정을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패스트트랙 절차에 대한 정당성을 정당 간 합의를 무시하고, 국민의 표심과 민심에서 찾을 수만은 없는 측면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패스트트랙 절차에 대한 정당성은 정당 간 합의에 우선한 국민의 민심에서 찾기보다는, 오히려 자유한국당의 대화 거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내용상으로도 고민할 거리가 남아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들이 시민단체가 요구한 안과 100%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법은 100% 연동형이 아니라 50% 준연동형에 불과하며,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공수처법은 기소권이 없어 고위공직자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고, 검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앞으로의 방향

 

그동안 경실련이 참여한 <정치개혁공동행동>은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협상 과정에서 적절한 개입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은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는 ‘연동형’의 취지를 온 전히 담 아내는 방 안에 대해 소극적인태도를 보인 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공수처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상황이었던 터라 <공동행동>은 여야4당이 이해타산에 따라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묶어서 패스트트랙에 태우기로 합의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패스트트랙 전선이 형성된 이상 경실련은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맞춰 좀 더 면밀한 대응 전략을 짜나아가야 한다. 먼저,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협상 테이블에 들어오는 경우(시나리오1), 경실련은 자유한국당이 작년 2018년 12월 15일 합의에 기초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회의원 정수 확대 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둘째, 자유한국당이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할 경우(시나리오2), 4당이 추가 협상을 통해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의석수 확대 등을 포함해 수정안을 만들어 표결에 붙일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패스트트랙이 무산되는 경우(시나리오3), 형성된 선거제도 개혁의 추동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국민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정치체제의 개혁적 측면을 밝혀야 한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분단체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역사적 유산인 “좌파 낙인찍기” 등을 답습하며, 선거법, 공수처법에 대한 이념 공세를 펼치는 데에 대응해 합리적인 목소리로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개혁성을 알려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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