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의 제정목적을 보면 “의료의 적정(適正)을 기하여 국민 건강의 보호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병원은 의료법상 비영리기관이어야 한다. 재벌대기업이 만든 사립병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는 달리, 비영리의료법인으로서 조세를 감면받는 세제혜택을 받는다. 그런 만큼, 사업목적 이외의 영리추구행위가 금지되어 있으며 수익이 발생되어도 목적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보건의료는 서비스산업으로서의 기능이 있다. 하지만 수익창출 등 보건의료서비스가 갖는 산업적 측면이 ‘꼬리’라면,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보편적인 건강권과 의료접근권 보장 등 국민 모두의 건강증진이라는 공공적 가치는 보건의료의 ‘몸통’이다. 의료법의 제정목적은 꼬리를 통제하여 몸통을 보전함에 있다.

비록 우리나라의 보건의료는 전 국민건강보험이란 공적 시스템의 외피를 가지고 있지만, 현실은 실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부구조 즉, 의료기관의 90% 이상이 민간사립병원이다. 공공의료부분은 10% 정도로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이들 민간병원들의 팽창과 경쟁을 적절히 조절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없어 병원 간의 무한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무정부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보건의료가 ‘wag the dog’* 현상을 막고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공공의료를 확충하여 의료기관 간의 공공 대 민간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병원 간의 무한경쟁을 통제하여 보건의료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막고, 국민의료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주치의제도 등 적절한 의료전달체계를 갖추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현실은 불행하게도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보건의료의 ‘wag the dog’ 현상

오히려 최근까지, 정부는 보건의료산업 선진화란 미명하에 다양한 방식의 의료영리화 정책을 펼쳐왔다. 2003년 경제자유구역 내에 영리병원 허용, 자본투자형 MSO 허용, 유헬스 정책 등 이윤추구를 노리는 자본이 보건의료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견제하는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현 정부 들어서는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아예 제쳐두고 병원의 영리적 부대사업 확대, 영리자회사 허용, 약국영리병원 허용, 병원의 인수합병 허용, 의료관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골적인 의료영리화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앞으로도 건강관리서비스의 민영화, 원격의료의 확대, 의료관광 및 수출, 국민 개개인의 의료정보 상업화 등이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보건의료환경에서는 ‘wag the dog’ 현상 즉, 국민건강이라는 공공적 목적은 구석으로 처박히고 수익을 위한 노골적인 병원경영 행태가 전면에 경쟁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다.

재벌의 보건의료산업 진출과 신경영전략의 뱀파이어 효과

1990년 이후 재벌·대기업이 대형병원을 설립하는 등,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재벌·대기업의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표면적으로는 재벌·대기업의 기업이익을 공익적 목적으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이윤추구를 위한 ‘신경영전략’이란 경영기법이 병원분야에 도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어 뱀파이어효과에 의해 타 병원들도 경쟁적으로 신경영전략을 도입하게 되었고, 사실상 영리병원과 다름없는 돈벌이 경영이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는 사립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서울대병원같은 국립병원들, 심지어 가톨릭교구와 같은 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도 영리적 목적으로 신경영전략을 도입해 수익창출에 몰두하고 있다.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경영전략이란 기존업무를 재계획하고 재조정해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지휘와 통제권을 획득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성과급제와 비정규직 노동인력의 확대가 있다.

병원들은 앞 다퉈 성과급제나 능력급제를 도입하고 직책과 직위를 분리해 승진단계를 확대한 다음, 이에 대한 경영자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 내부의 경쟁을 확대하고 있다. 또, 병원들은 새로운 경영전략에 따라 노동인력을 외주화하거나 사내하청을 확대한다. 이에 따라 임시직 파트타임 노동자, 계약직 등 비정규직 노동인력을 늘려 정규직을 축소시킴으로써 기존의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최근 가짜환자 유치로 문제가 된 인천 국제성모병원과 노조탄압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인천성모병원은 신경영전략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인천성모병원은 처음, 성모자애병원으로 시작해 6.25 전쟁 이후 전쟁고아 등 가난한 이들에게 선한 의술을 제공하는 자선적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2005년 무렵 천주교인천교구가 성모자애병원을 인수하고부터는 재벌병원 등의 영리적 목적을 가진 병원 경영방식이 도입됐고, 뒤늦게 재미(?)를 붙여 앞서서 신경영전략을 도입한 병원을 오히려 능가하며 노골적인 돈벌이에 나서고 있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영리병원의 문제점

병원이 영리에만 매몰되면 다양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우선 국민의료비가 폭등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병원 문턱이 높아져 의료접근에 대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된다.

그리고 의료의 본질도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과잉진료로 인해 의료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마치 환자를 유치하는 영업사원이 되어야 하고, 시티(CT), 엠알아이(MRI)가 환자에 대한 기본검사인 양 다루게 돼 문제가 될 수 있다. 갑상선질환의 과잉검진과 수술, 건강검진을 빙자한 과다한 시티촬영 등이 그 예다. 이로 인해 의료방사선 노출이 과다해지면 암 발병률이 높아지게 돼 의료의 질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병원의 지나친 영리추구는 의료서비스 전체의 질을 떨어뜨린다. 병원의 의료서비스는 의사, 간호사, 영양사, 의료기사 등 다양한 전문직종의 인력이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그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병원이 병을 만드는 의인성 질환 즉, 병원내 감염을 증가시킨다. 최근 메르스사태는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다. 병원들이 의료인력을 경시하고 시설과 장비에만 의존하다보니 병원이 병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그야말로 의학역사에도 길이 남을 병원성 감염질환의 폭발이라는 희귀한 사례까지 낳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의료기관 및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키우게 된다. 우리나라 병원의 고용구조는 극단적으로 의료인력을 최소화하고 필수인력을 외주화하도록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환자와 국민의 만족도는 낮다. 이는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의 벽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wag the dog: 주객전도 또는 본말의 전도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

 

김정범  (보건의료단체연합 상임대표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