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선’=‘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낮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 양산하는 노동자 하향평준화 정책
이창근 l 민주노총 정책실장
들어가며: 애초에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된 논의, 합의 결렬은 사필귀정.
지난 4월 9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해 온 노사정위원회 논의가 결렬되었다. 노사정위원회 논의는 애초에 불순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합의 결렬은 사필귀정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노동시장 구조개선)의 본질은 한국 경제의 저성장·불황 국면을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작년 말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는 노동부문 개혁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면서, 세부내용으로는 ‘임금·근로시간·근로계약 유연성 제고와 파견·기간제 사용규제 합리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노동정책이 경제정책의 하위 범주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재벌 배불리기를 위해 해고는 더 쉽게 하고, 임금은 깎고, 비정규직은 더 늘리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하향평준화 정책의 추진 의지를 분명히 표현한 것이다. 이미 정해 놓은 길에 정치적 명분을 덧칠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앞세운 것이 지난 노사정위원회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더 쉬운 해고·더 낮은 임금·더 많은 비정규직’=‘노동시장구조개선
박근혜 정부는 12월 22일 “2015년 경제정책 방향”발표, 12월 23일 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 합의문 채택, 12월 29일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발표 등 소위 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추진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낮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 양산하는 ‘노동시장 구조개악’ 대책에 다름 아니다. 아래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노동시장 구조개악’ 대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더 쉬운 해고 :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
정부는 “일반적인 고용해지 기준 및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 마련”하겠다고 한다. 표현은 그럴 듯하지만, 이는 노동자를 강제로 전직시키고 무리한 업무를 부과해 강제로 퇴직시키는 ‘학대 해고’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공정한 절차와 관련 내부규정”을 운영하겠다는 것은 통상해고 기준을 정부가 마련하여 사업장에 배포하여, 사용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평가’라는 것의 실체를 보면, 노동자의 업무가 계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결국 평가기준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직원들을 항시적으로 감시하고 회사의 영향력 하에 두는 체계를 공고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몇 가지 절차나 개선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저성과자 개별해고 요건 완화 가이드라인은 ‘경영상 사유로 인한 정리해고’를 우회하여, 사측이 자의적으로 퇴출 규모와 대상을 미리 정해 놓고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그만 두게 하는 불법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대책이다.
임금과 고용조건을 규율하는 취업규칙 변경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정부는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를 명확화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 시,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 혹은 과반수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는 취업규칙에 저성과자 퇴출제도 등 해고를 쉽게 하는 조항을 사용자 마음대로 수월하게 도입하고, 나아가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와 임금피크제 등 정부의 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속셈이다. 또한 정부는 법원 판례의 소수 견해인“사회통념상 합리성 요건”을 일반화시키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고 있다. 즉, 법원 해석상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불이익 변경은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변경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노동부가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 등을 통해, 호봉제를 폐지하고 직무·성과급을 도입하며,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사항이므로 과반수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으로 사업장을 지도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은 노동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조차도 과반수 노동조합 혹은 과반수 노동자들의 집단적 동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처리할 것이다. 이러한 행정지침 혹은 가이드라인의 제정은 종국에는 법정에서 법원의 해석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무노조·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이다. 이들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해 집단적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렵고, 심지어 백지날인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취업규칙은 노사교섭을 통해 결정되는 단체협약과 달리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하거나 개정한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임을 감안하면,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고, 취업규칙만 적용받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시 사용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집단적인 동의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 무노조·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조건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다. 일반 민사계약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는데, 하물며 지배·종속관계에 있는 근로계약의 내용을 사용자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주장은 일반상식에도 반한다.
고령노동자 임금 삭감: 임금피크제 도입
통계청 경제활동조사 부가조사(2014.8)에 따르면, 50∼59세 노동자는 371만이고, 60세 이상 노동자는 172만 6천 명임. 55세 이상 고령노동자는 328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17.4%에 달한다. 60세 이상 노동자 중 약 70%는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는 비율도 45%대에서 50% 초반이다. 고령노동자 2명 중 1명은 최저임금 또는 그 이하를 받고 있을 정도로 고령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대단히 열악하다. 정년 60세 연장을 대가로 고령 노동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고령노동자들을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수렁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과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임금피크제’는 가장 많은 가처분소득이 필요한 50대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을 강요하여, 생활적인 곤란함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 노동자들에게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퇴직하는 연령인 50대 초반은 자녀의 대학교육, 의료비, 노후준비 등으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시기임에도, 공적인 노후소득보장 체제는 열악하기 그지없다. 2014년 5월 기준으로, 55세∼79세 인구 1,137만 8천 명 중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을 모두 포함한 연금수령자는 519만 8천 명으로 46% 수준에 불과하다. 이중 월 평균 10만원 미만 수령자는 110만 5천 명으로 21%에 달하며, 평균 수령액도 월 42만원에 불과하다.
직무·성과급제 도입은 장기근속자 임금삭감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은 연공급을 마치 ‘절대 악’인 것처럼 호도하여,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연공성을 약화시켜 사실상 임금을 삭감시키려는 의도이며, 기업성과에 노동자 임금을 연동시켜 노동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책이다. 연공급 체계가 절대적으로 올바른 임금 체계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적폐’ 또한 아니다. 연공급은 노동자들의 생애주기에 맞춰 생계비 지출이 가장 높은 시기에 가장 많은 임금을 지급받도록 설계된 제도이며, 이는 노동자 생활 안정에 상당부분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승진 제도를 통해 직무·성과를 판단하는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 임금체계라는 점에서, 정부와 자본의 일방적인 연공급 체계에 대한 공격은 합리적 근거가 없다. 현재‘임금체계’ 개편의 초점은 연공성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장기근속 노동자의 임금삭감에 맞춰져 있다. 성과급은 기업의 자의적인 임금 하향조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신,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더 많은 비정규직 양산 –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는 35세 이상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사용기간 2년을 4년으로 연장하자는 주장은 기간제법 입법 취지, 즉 사용기간 2년이 넘는 업무는 상시·지속업무로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채용 여지를 더욱 줄어들 것이다. 4년 쓰고 해고한 뒤 다시 새로운 인력 충원해서 4년을 쓰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를 줄여서 계약직으로 충원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부는 파견노동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현행 파견법은 파견 허용 업종을 32개 업종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와 고소득전문직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업종으로의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로 “인력난이 심한 업종”을 대상으로 한 파견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자는 328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 17.4%이고, 관리전문직은 452만 명으로 24.1%에 달한다. 정부안(案)대로 55세 이상 고령자와 관리직·전문직에게 파견노동을 전면 허용하면, 중복을 제외하더라도 약 741만 명(39.5%), 전체 노동자 10명 중 4명을 새롭게 파견노동 대상에 추가하겠다는 것이다(김유선, 2015.1). 고소득전문직의 경우 표준직업분류표 상 대분류 1(관리직)과 대분류 2(전문직)에 대해 모두 파견을 허용하겠다는 계획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2개의 업종에 추가로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래 32개의 파견 허용 업종은 대분류가 아니라 세세분류 또는 중분류의 업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분류 1, 2에 포함된 세세분류 업종은 무려 400여 개에 이르며, 판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의 업종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초·중·고등학교 교사, 유치원 교사, 보험 및 금융 관리자, 자동차 부품 등 기술 영업원, 기자 등도 포함돼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 추가로 파견이 허용될 경우 기존 2년으로 제한되어 있던 사용기간의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에 대해서는 평생 파견이 허용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법을 합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이 아닌 연장
현행 근로기준법은 40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외 연장노동 한도를 12시간으로 제한(제53조 ①항)하고 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휴일근로는 연장근로 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1주 최장 68시간에 달하는 탈법적인 장시간 노동을 허용(40+12+16)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 1주 12시간의 연장노동 한도에 휴일노동이 포함된다는 점은 이미 법원이 판례로 확인한 사실이며, 이제 대법원의 최종 판결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휴일노동을 연장노동에 포함하는 것은 잘못된 정부 행정해석을 바로잡고 입법취지와 판례에 부합하도록 애초의 문구를 명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부, 사용자단체, 심지어 전문가그룹 조차 휴일노동을 연장근로에 포함할 경우 법과 현실이 괴리되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영구적 혹은 한시적으로 주 8시간까지 추가 특별연장노동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이는 탈법적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려는 재계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현행법과 판례를 대폭 개악하려는 것이다. 추가 특별연장노동은 ‘노사합의’를 조건으로 허용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정부 주장도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이 11%에 불과하고, 특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노사합의’라는 단서 조항의 실효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시행시기를 유예하고, 노동시간단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은 탈법 또는 불법의 범위에 있던 초과노동을 이참에 ‘합법’으로 둔갑시켜 세계 최장 수준의 살인적 장시간 노동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통상임금 범위 축소’
정부, 사용자단체, 노동시장구조개혁 특위 전문가 그룹은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법률에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내용에 ‘고정성’ 요건(재직자 요건, 최소근무일수 요건 등)까지 포함시켜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시키고자 한다. 또한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금품 범위는 시행령에서 규정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행령을 입안하는 주체가 정부이며, 그동안 정부가 보여준 통상임금 관련 편파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정부가 그동안 고수해 온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존 행정해석이 시행령에 그대로 포함될 여지가 크다. 노동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정기상여금을 퇴직자에 대한 일할규정 여부, 재직자 요건 규정 여부에 따라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지침을 발행하여 현장의 갈등을 악화시킨 바 있다. 한편, 2014년 국회 환노위 노사정소위 지원단이 언급한 개방조항(노사합의로 통상임금 산입범위 결정 허용)이 올해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전문가그룹 공익안(案)에서 다시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는 노조 조직률이 11%에 불과하고, 사용자들의 해태에 의해 산별교섭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적절한 방안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노동조건 불이익 변경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현장 상황을 감안하면, 통상임금 범위와 기준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정의하여 근기법에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임금 중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기타 수당이나 상여금·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왜곡된 방식으로 소정근로 시간당 임금과 초과근로에 대한 할증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장시간 노동을 부추겨온 것이 현재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이다. 따라서 각종 수당과 상여금을 기본급화하여 왜곡된 임금구성을 바로잡고 소정근로 시간당 임금보다 헐값으로 취급된 초과근로에 대한 할증임금을 제대로 받음으로써 장시간 노동 관행을 철폐하는 것이 통상임금 문제의 본질적 해법이다. 통상임금 정상화는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임금을 높임으로써 그간 값싼 할증임금을 지급하면서 신규고용 대신 장시간 노동을 선택해 온 자본의 위법하고 탈법적인 관행을 바꿔나간다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노사정위원회 전문가그룹 의견안(案) 비판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도는 노사정위원회에 지난 2월 27일과 3월 6일에 각각 보고된 전문가 1그룹(통상임금·노동시간·정년연장/임금피크제)과 2그룹(노동시장 이중구조·사회안전망) 의견안(案)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전문가 1그룹(통상임금/노동시간/정년연장)은 ‘통상임금’과 관련하여, ▽ 정의 규정에 정기성·일률성에 고정성 요건(재직자 요건)까지 포함시켜 통상임금 범위를 축소하고, ▽ 제외금품을 시행령에 열거할 수 있도록 하여 정부의 사용자 편향적 기존 행정해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고, ▽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범위 결정할 수 있는 개방조항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여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통상임금 범위 결정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 관련해서는 ▽ 연공급 해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개편,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장기근속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제대로 된 임금체계가 필요한 대다수 저임금·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관련해서도 ▽ 현행 1주 최장 52시간(40시간 + 12시간) 노동체제를 1주 60시간 체제로 확대하는 노동시간 연장을 제안하고 있고 ▽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재량근로 대상 업무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 2그룹(노동시장구조개선/사회안전망) 의견도 외형상으로는 추상적인 문구로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실내용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 기간제 사용기간 제한 예외 확대·파견 규제 완화·사내하도급 법안 제정 등 박근혜 정부의‘비정규직 양산 정책’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기간제 사용기간 2년 제한을 ‘고용불안의 요인’으로 지목하면서, ‘정부안(案)과 같이 35세 이상 근로자가 계속 근무를 희망하는 경우에 한하여’ 기간제한 예외 사유로 인정하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 ▽ 파견규제 완화·사내하도급 합법화에 관련해서도, ‘도급’보다는 ‘파견’이 상대적으로 근로조건과 고용안정을 규율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리로, ‘파견규제의 점진적 완화’를 향후 개선 방향으로 선언했다. 또한 청소·용역·시설관리 등에 대해서는 노무도급이란 이름으로 파견을 합법화시켜주자는 주장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대표적인 재벌특혜 법안으로 비판받았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법’의 제정도 주장하고 있다. ▽‘취업규칙 변경절차 요건 변경’과 관련해서, 전문가 그룹은 ‘정년연장에 따른 근로조건 조정의 합리적 적용을 위하여 취업규칙 변경의 적절한 해법을 모색’한다고 명시하면서, 향후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등은 마치 불이익변경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또한 취업규칙 개악에 대한 노동자 동의권과 관련해서도 ‘근로자 대표 관련 규정’ 개정, 즉‘근로자대표 또는 종업원대표제도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 결렬 이후, 드러나고 있는 진실.
노사정위원회 합의가 결렬된 이후, 박근혜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애초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잘 드러난다.
첫 번째로, 지난 4.14 노동부는 100인 이상 사업장 단체협약 시정지도계획을 발표했는데, 핵심 시정지도 대상은 ‘인사·경영권 관련 노동조합 동의(협의) 조항’이다. 노동부가 문제시 삼고 있는 소위 ‘인사·경영권 관련 사항’은 ‘전직, 전근, 배치전환, 정리해고, 합병양도 시 노조 동의를 얻도록 한 조항’ 등인데, 이러한 조항들은 사실상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고용보장 및 노동조건과 직결된 사항들이다. 이러한 사항들은 노사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체결된 단체협약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노동부가 나서서 이를 손보겠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더 쉬운 해고 권한을 부여하여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현장에서부터 강행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지난 4.17 이기권 노동부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정위원회 합의 결렬의 핵심적인 사항이었던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 가이드라인’은 5월쯤에 내놓고, ‘저성과 해고제도 도입을 위한 근로계약 해지 기준’은 6∼7월쯤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정부주도의 노동시장구조개악 플랜B를 보다 분명한 형태로 공식화한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는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60세 정년연장이 적용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관건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즉, 올해 상반기 임단협에서 장기근속자 임금삭감을 위한 임금체계개편과 임금피크제가 단협에 명시되지 않으면 엄청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조기에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위한 정부의 플랜B는 이미 가동되고 있다. 그 핵심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 과보호’로 지목하고, 이를 해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을 개악하라는 시정지도를 계획하고,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기준과 절차를 완화하고, ‘저성과’ 해고제도 도입을 위해 ‘근로계약 해지 기준·절차 명확화’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합의결렬 이후, 정부의 행보는 애초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문제,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고용 원칙과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법제화해야 한다. 또한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비정규직 차별문제의 근본 해법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진짜 사장’과 교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토대로 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김유선, 2014)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8월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는 852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45.4%에 달한다. 여기에 정부 통계에서 과소 집계되어 있는 △외주하청 등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을 고려하면, 실제 비정규직 규모는 50%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판단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불안’, ‘노동기본권 박탈’,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초단기계약이 비일비재하고, 하청업체 변경과정에서 해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노조가입을 이유로 해고되거나, 하청업체가 폐업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비정규직 조직률은 2.1%에 불과해, 비정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단결권 행사조차 현실에서는 녹녹치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2000년 이후, 지난 14년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73만원에서 2014년 8월 기준으로 145만원으로 거의 두 배로 악화되었고, 비정규직의 평균 근속년수는 2.39년으로 정규직(8.28년)에 비해 턱없이 짧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현행 비정규직법과 노동관계법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비정규직 권리보장과 정규직 전환, 차별철폐를 위한 노동관계법의 전면 재개정이 필요하다. 직접 정규직 고용 원칙 확립, 원청 사업주 사용자 책임 확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차별시정제도 전면적 개선, 특수고용노동자 노동 3권 보장, 인력공급사업과 도급의 구별기준 확립, 파견법 폐지 등 노동관계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
특히, 노조법 2조의 개정이 중요하다. 제2조 1항의 ‘근로자’ 개념을 확장하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제 2조 2항의 ‘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면, 근로계약 체결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원청과의 교섭이 가능해진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이미 대법원 판례로 확정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진다면 당연히 교섭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노조법 2조를 개정하는 것이 절실하다.
현재 청년실업 문제의 원인은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열정 페이 등으로 상징되는 저임금 나쁜 일자리로는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고용의 사다리’가 끊어져 있어, ‘저임금 덫’에 빠지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 노동시간 단축 ∇ 재벌들의 사내유보금 활용 ∇ 통상임금 정상화를 통한 장시간 노동 조장하는 경제적 유인 제거 등이 필수적이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일자리 창출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부가 지난 4월 13일에 발표한 ‘고용창출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정부 정책 23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용영향평가 결과’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 개선 사업이 규제개선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현행 불법적인 주당 68시간 체제를 주당 52시간으로 단축해도 시행 첫해 1만 8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누적으로는 14만~15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추산됐다.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인 장시간노동체제를 극복하면서도 청년실업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