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그 죄책감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이 정부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232406" align="aligncenter" width="640"] ⓒ10.29참사 시민대책회의(2023)[/caption]
탄핵심판 유가족 대표 진술서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
지난 6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에 대한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탄핵 사건의 마지막 변론기일을 맞아 유가족들도 이상민 장관 파면에 대한 의견을 진술했습니다. 이정민 대표의 진술서 전문을 싣습니다.
제 딸은 결혼 준비 중이었고 29일 당일은 딸이 웨딩플래너를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딸이 오후에 나가는 것을 보고 저는 아내와 저녁 먹고 tv를 보고 있었는데 딸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딸 남자친구가 울면서 이태원역으로 와달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당시 12시 30분쯤 이태원역 쪽으로 갔을 때,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고 경찰들도 있었지만 현장 통제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폴리스라인을 무시하고 지나다녔고, 도로에서도 교통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부르며 통제하고 있었지만 사람과 차가 워낙 많아서 차들이 겨우 겨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태원역 주변 가게들은 그때까지도 음악을 크게 틀고 있었고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지나다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엄청 밀집해 있었고, 경찰과 시민들이 다투는 소리, 음악 소리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참사 발생 2시간이 지나도록 그런 아수라장일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인파를 뚫고 딸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면서 겨우 겨우 1번 출구 옆쪽에 해밀턴 호텔 골목길 그 바로 옆에 상가로 갔습니다. 상가로 들어가려는데 경찰이 못 가게 막아서 상가 통유리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 아이들이 많이 누워 있었는데, 딸 남자친구가 계속 CPR을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쫓겨 나오더니 계속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경찰이랑 소방이 모이더니 아이들을 하나씩 원효로 체육관으로 이송하였고 가족들에게 왜 이송하는지 등 설명은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까지 다목적체육관에 도착하지 못한 유가족들도 많았을텐데, 나중에 다른 유가족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같이 갔던 친구들이 아이들 곁에 있다가 희생자를 옮긴다고 하니 신원확인을 위해서 같이 가겠다, 가족들에게 어디로 이송됐는지 알려줘야 한다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소방은 신원확인도 안 하고, 이송되는 곳도 알려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다목적 체육관에 갔을 때에도 상황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기자들이 희생자가 이송되는 병원 등에 대해서 정보를 주고 있었습니다. 가족이 이미 와 있고 희생자가 안에 있는 것을 확인을 했는데도 공무원들은 우선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신고를 하라고 했고, 저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실종신고를 하고 6-7시쯤에 체육관을 떠나서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그후 거의 낮 12시가 넘어서야 의정부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왜 연고도 없는 의정부로 갔는지도 정말 납득이 안 갔지만 우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갔을 때에도 검시에 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때 희생자의 옷이 전부 탈의되어 있어서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유가족에게 부검 여부를 물었고, 일부 유가족에게는 마약의심이 되니 부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과 검찰이 마약의심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모욕감을 느끼며 부검을 거부했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제가 신원확인을 마친 후에 지역 병원으로 옮기겠다고 했더니 경찰은 그러려면 조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아들이 경찰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딸 주영이를 남양주병원으로 옮긴 후에도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현장상황을 파악해야 하니 다시 경찰조사를 받으라고 했씁니다. 아들과 생존자인 딸 남자친구도 함께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생존자 앞에서 아들한테 ‘남자친구인 애는 살아 돌아왔는데, 주영이는 왜 죽은 것 같냐’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유가족과 생존자를 참사직후 경찰조사하고 그런 질문들을 할 수가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딸 남자친구는 딸과 함께 골목에 있다가 딸이 선 채로 의식을 잃은 것을 목격하고 서서 계속 인공호흡을 했다고 합니다. 의식을 잃은 상태로 40-50분을 있었고, 그후 소방이 왔는데도 15분 이후에야 뒤쪽 구조가 시작되었고, 구조가 시작되고도 20분 가량이 지나서야 저희 딸 주영이가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딸을 108힙합클럽으로 옮겼는데 클럽에만 구조된 사람이 20-30명가까이 됨에도 구조인력은 6-7명밖에 되지 않아서 시민들이 CPR을 하고 딸에게도 그 친구가 계속 CPR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소방은 당시 현장에서 기계로 측정한 후에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구급처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상가 건물까지 가서 CPR을 했습니다. 그 친구도 서 있으면서 압박감에 한 번 의식을 잃었고, 참사의 모든 순간을 목격했음에도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엄청난 상태였습니다.
참사의 목격자인 그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에게 돌리고, 그 죄책감을 생존자에게 돌리는 이 정부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참사의 책임자인 이상민 장관은 무고한 생존자와 시민들이 희생자를 살리려고 온힘을 다할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이상민 장관은 자신의 집에서 일산에서 오는 운전기사를 기다리느라 참사를 인지하고도 1시간 40분이 걸려서야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미 골든타임을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서 놀고 있었겠습니까? 여기저기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라는 발언으로 유가족과 국민을 우롱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몇 통의 전화를 받고, 비서실장에게 상황을 확인하라는 전화를 했을 뿐이라는 게 국정조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1시간 40분 기다리는 그 시간에 중대본을 가동해 현장을 통제하고 경찰과 소방인력을 보내 줄 수는 없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정부는 부재했고, 정부가 없는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은 사경을 헤매거나 하늘로 떠났습니다. 어떤 유가족은 희생자의 애플워치에 심박수가 23시 35분까지 67을 유지하다가 줄이 풀어져서 측정이 끊긴 것을 확인했습니다. 골든타임이 지났다구요? 참사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은 행안부가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caption id="attachment_232407" align="aligncenter" width="640"] ⓒ10.29참사 시민대책회의(2023)[/caption]
이상민 장관은 참사 직후뿐만 아니라 그 이후 유가족에 대한 대응에서도 장관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공무원들이 왔지만, 장례를 빨리 치르도록 하려는 것 외에 어떠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어떤 가족은 1층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2층에 다른 유가족이 있다는 것을 듣고 올라가려고 했더니 경찰이 만날 수 없다면서 막았다고 합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될 때에도 행안부는 가족들의 동의 없이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설치했고, 분향소 설치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기 때문에 당시 분향소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참사 이후, 기사에 나온 이상민 장관의 발언들은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였습니다. 그의 어떠한 발언에도 유가족에 대한 예의와 배려, 존중이 없습니다. 이상민 장관은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행안부장관이라는 자신의 직무를 부정하고 개인 이상민의 안위에만 천착한, 철저한 책임회피의 발언입니다. 그리고 신자유연대의 수많은 2차 가해, 창원시의원 김미나의 망언 등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음으로써 2차 가해를 묵인했습니다. 행안부 장관의 2차 가해에 대한 묵인은 희생자들에게 놀러갔다 죽었다는 오명과, 유가족이 시체팔이한다는 오명을 씌우는데 일조했습니다. 지역시의원의 입에서 “시체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런 2차 가해가 쏟아질 때 행안부 장관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요. 관전하고 묵인하는 것이 행안부 장관의 역할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10만 인파가 모인다는 수많은 기사가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인파밀집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는 집회와 대통령 경비에만 온통 관심이 집중해 있었고, 이는 10.29 이태원 참사라는 결과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참사 당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행안부 장관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을 수호하고 지키는 대통령을 위한 행안부 장관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유남석 헌법 재판소장님
주심을 맡고 계신 이종석 재판관님, 그리고 김기영, 김형두, 문형배, 이미선, 이영진, 이은애, 정정미 재판관님
이상민 장관의 파면은 국민의 생명권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의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고통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유가족은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우리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참사의 관리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그 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참사에서 교훈을 얻고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사회적 재난과 단절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과 역사 앞에,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 대한민국의 마지막 참사로 기록될 수 있는 우리 세대의 다짐과 선언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