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원천 주민투표를 하기 위한 근덕면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민중의 소리 옥기원 기자

살기가 참 팍팍한 세상이다. 먹고 사는 걱정도 만만치 않은데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방사능 오염 식품에 국내 원전 사고까지 걱정해야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 간 나오토 일본 전 총리는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하는 말이 원전사고가 나면 최악의 경우 반경 250km까지 피난을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본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그런 상황을 보고를 받아서 동경까지 포함한 5천만 명의 피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200km 떨어진 곳에 2012년에 결정된 신규 원전 부지가 있다. 바로 삼척시 근덕면이다. 이곳에 원전이 들어서면 원전 사고 발생 시 서울 전역의 피난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지난 9일, 삼척 시민들은 신규 원전유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서 68%(명부등재자 대비, 유권자 대비는 48%)의 투표율과 85%의 반대입장을 보여줬다. 탈핵발전소를 주장하는 무소속 시장을 당선시킨 지 넉 달만의 일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국내에서는 독일처럼 탈핵발전소 계획을 세우고 핵발전소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정책을 도입하라는 여론이 높아졌다. 원전으로 공급하는 발전량 비중 30%를 단시간에 재생에너지로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한 불안 때문에 당장 핵발전소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언제 사고가 발생할 지도 모르는 핵발전소를 줄여나가자는 것이 한국 사회의 주된 여론이다. 그렇다면 수명이 끝난 원전은 문을 닫고 신규원전은 더 이상 짓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앞으로 30년은 핵발전소가 더 가동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2012년에 삼척과 영덕에 신규 원전부지를 지정고시 해버렸다. 삼척시 의회의 동의를 받아 삼척시장이 신규원전 부지를 신청한 것인데 김대수 전 삼척시장이 신규원전 부지 유치 근거로 유권자 96.7%의 서명용지를 제출했다. 하지만 뒤늦게 공개된 서명용지는 한 사람의 필체로 여러 명의 서명을 대신했는가 하면 주민등록상 존재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도 나온다. 조작과 위조 흔적이다. 삼척시의회의는 부지 유치의 전제로 주민투표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전 김대수 시장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거짓 서명용지를 받아든 정부는 삼척시 근덕면 일대를 신규원전부지로 지정고시한 것이다.

억울한 삼척시민들이 행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전 삼척시장 김대수를 소환하는 주민투표를 했다. 하지만 유효투표를 33.3%를 넘지 못했다. 투표율 자체를 떨어뜨리려는 삼척시 방해작업의 결과다. 하지만 지난 6. 4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텃밭에서 탈핵발전소를 주장하는 무소속 시장을 김대수 전 시장과 두 배의 표 차이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지난 징검다리 연휴 첫날에 신규원전 유치 주민투표에서 85%의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원전부지 결정은 국가사무라고 하면서 주민투표 업무를 선거관리위원회가 거부해서 선거인 명부 작성을 위해 사전에 6만691명의 유권자들 중 4만2488명은 사전에 투표를 하겠다고 일일이 개인정보 동의서에 서명을 해서 이루어진 투표라서 더 값지다.

여론이나 서명과 달리 투표행동은 힘을 갖는다. 투표는 지자체장, 국회의원을 결정하며 대통령을 결정한다.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비용이 많이 드는 행동이다. 투표소를 찾아야 하고 찾아가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삼척시민은 현명하게도 투표행위를 통해서 직접 의사를 밝혔다.

신규원전 부지 지정과정이나 실시계획 승인, 건설허가 과정에서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의 의견을 묻는 법적 절차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이 싫다는데도 국책사업이라고 강행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미숙한 시대 때나 있었던 일이다. 지방정부가 싫다는 데 강행할 명분이 중앙정부에는 없다. 더구나 전력 설비예비율이 높아서 신규원전은 필요하지도 않다. 핵발전소 건설에서 지자체와 지역의회의 동의를 강조했던 중앙정부는 삼척시민들의 결정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고 나서 우리와 동일한 발전비중 30%를 담당했던 54기의 원전을 가동 중단했지만 전력수급이나 경제활동에 문제가 없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바꿨더니 2년 만에 원전 70기 분량(발전량으로 15기분량)의 재생에너지 설치 신청서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원전을 포기해야 대안이 보인다.

우리는 삼척시민들의 행동에 응답해야 한다. 삼척에 핵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것이 어디 삼척시민들만의 문제인가. 특히, 원전 사고 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수도권 시민들은 삼척시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이번 삼척 탈핵시장의 당선과 주민투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중앙정부가 포기하지 않는 한 여전히 신규원전 부지 지정고시는 살아있다. 원자력계는 끊임없이 삼척시를 못살게 굴고 삼척시민들의 새로운 선택을 방해할 것이다. 전국에 있는 시민들이 삼척시민들의 행동에 연대하고 응답해야 한다. 삼척시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현수막 하나씩이라도 보내는 운동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투표에서 핵발전소를 줄이겠다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삼척시민처럼 우리도 유권자의 행동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글 :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출처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