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이음센터에서 후원회원 정보를 관리하는 이규리 연구원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걱정하며 다가서니 놀란 눈으로 “고등학교 때 문학 가르쳐주셨던 담임 선생님이 저희 후원회원이세요.”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무려 이규리 연구원이 ‘은사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은사님은 오랜만의 연락에도 이 연구원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이규리 연구원이 고교시절 은사이자 희망제작소 후원회원인 최혜숙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이규리 연구원(이하 규리) : 선생님. 오랜만에 정말 반가워요. 잘 지내셨죠? 자주 연락을 못 드려 죄송했는데, 희망제작소에 후원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어요.
최혜숙 후원회원(이하 최혜숙) : 네 전화를 받고 나도 놀랐지. 2011년에 박원순 전 상임이사의 전교조 주최 강연을 듣고 후원을 시작했어. 당시 희망제작소 사업 중에 ‘은퇴한 시니어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는 강연 내용이 인상이 깊었거든. 네가 그곳에서 일 한다고 해서 신기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더라구. 규리 너는 ‘할 말은 하는 학생’이었달까.
규리 : 제가요? 어떤 면에서요.
최혜숙 : 그때만 해도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 등에 이의 제기를 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어. 반항하는 친구들도 단순히 ‘학교와 공부가 싫어서’ 그러는 경우가 많았지. 하지만 규리는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할 줄 아는 학생이었어. 학급회의 할 때는 ‘학생들 의견도 물어보셔야죠’라고 꼭 말하곤 했지.
규리 :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어요. (웃음) 제 기억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으시면서도 아이들을 잘 통제할 수 있는 분이셨어요. 저희와 말도 잘 통하셨죠. 어느 날에는 제 치마를 보고 ‘조금 더 짧으면 예쁘겠다’라고 하신 적도 있어요. 기억나세요?
최혜숙 : 그랬나. 하하. 교편 잡기 전에 사회생활을 했던 게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대학 안 가고 은행에 취업했거든.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일이 나와 잘 맞는지 의구심이 생겼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구. 그러다가 야간대학 국문과에 들어가게 됐어.
규리 : 공부 다시 하시면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최혜숙 : 글쎄. 난 재미있었어. 은행에 사표를 내고 전업학생(?)이 되어 낮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어. 말 그대로 종일 공부를 한 거지. 교수님들이 수업하시는 거 보면서 가르치는 직업도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교직 이수를 했고, 1년 재수한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했어.
규리 : 학생들과 처음 만났을 때 어떠셨어요.
최혜숙 : 은행에서는 고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별의 별 일이 다 있고, 때론 영업도 해야 하거든. 그러면서 많이 지쳤어. 그러다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만나니까 너무 천사 같은 거야. 하지만 사회생활을 학교에서 시작한 선생님들은 나와 좀 다르게 생각하시더라구. (웃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교 오기 전의 사회생활이 내겐 도움이 된 거지.
규리 : 선생님이 학생들을 항상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하지만 학교도 조직이니까 불합리한 일도 종종 발생할 것 같은데요.
최혜숙 : 아주 오래 전 일인데, 새학년 교과서를 보관한 교실에 비가 새는 바람에 쌓아둔 교과서가 젖는 일이 있었어. 당시 교장선생님이 숙직기사님이 배상을 해야하는데 우리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도와드리자고 했어. 그때 한 선생님(전교조 교사)이 손을 들고 학교의 관리 책임은 교장인데, 왜 숙직기사님께 책임을 전가하냐고 물었지. 그 사건을 계기로 전교조에 가입을 했고 교육 현장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어.
규리 : 선생님의 교육철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최혜숙 : 나는 학창시절에 철저히 주입식 교육을 받았거든.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는 운 좋게도 열의 있는 교수님들을 많이 만났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반복했지. 야간수업 이후에도 카페에 모여 열띤 토론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 전교조에서 기획한 다양한 국어수업 연수도 도움이 됐지. 연수 후에 모둠수업, 발표수업 등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교사인 내가 오히려 배우게 되더라구. 집단지성의 힘도 깨달았지. 희망제작소를 후원하고 응원하는 이유도 ‘다양한 시민의 참여’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만들고 실행하기 때문인 것 같아.
규리 : 모둠수업, 조별과제 등을 하다 보면 무임승차 문제도 생기지 않나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공정’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최혜숙 : 최근 5년 사이에 무임승차에 분노하고 못 견디는 친구들이 많아진 것 같아. 물론 무책임하게 아무 것도 안 하는 친구들은 문제가 되지. 하지만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잖아. ‘무조건 잘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함께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요즘 만나는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말하곤 해. 또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정의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대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것 같아.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어른들 탓이 클거야. 교육과 학교가 만든 것일 수도 있지. 높은 점수를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이 말은 친구가 내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잖아. 그러다 보니 공정함에 더 예민해지지. 한번은 10점 만점에 9점 받은 친구가 만점 중에서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즉 커트라인에 걸린 친구와 자신의 차이점을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라구. 이런 걸 보면 교육현장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도 같아.
규리 : 많이 힘드셨겠어요. 코로나19로 학교 풍경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최혜숙 : 역사의 물줄기가 꺾이는 순간을 목도했달까. 요즘 아이들 장래희망 1순위가 유튜버거든. 영상의 영향력이 커진 거지. 하지만 누구도 지금까지 영상으로 수업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한 거야. 지금은 안정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엄청 혼란스러웠어. 사실 선생님들보다 학부모님들이 더 힘드실 거야. 수업 틀어놓고 딴짓 하는 친구들도 많을 텐데 말이지.
규리 : 그러면 아이들 간에 학습 격차가 생길 것 같은데요.
최혜숙 : 그게 문제야. 못 따라 오는 아이들은 손을 놓게 되니까. 다행히 이번 온라인 수업 내용을 가지고선 평가를 못하게 되어 있어. 학교에 등교하게 되면 온라인 수업내용을 다시 정리해 주려고 해. 아직 직접 아이들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온라인 수업의 경험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야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다양한 변화, 학교 교육의 ‘뉴노멀’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규리 : 선생님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남은 기간에 해보시고 싶은 일은 없나요.
최혜숙 :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아름답게 퇴장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야. 일단은 지쳐서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어. 학교 밖에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야. 요즘 언론을 보면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 같아 걱정이 돼.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는 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분들이 많아진 덕분인 것 같아. 이런 걸 보면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 나도 그러고 싶구. 희망제작소가 이런 판을 더 많이 깔아주면 좋을 것 같아.
인터뷰 후, 이규리 연구원은 선생님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알게 되어 뭉클하다고 했습니다. 동행한 저 역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수록 선생님과 제자 사이를 넘어 더 넓고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망제작소에는 최혜숙 선생님을 포함하여 교사이신 후원회원분들이 많습니다. 고3을 시작으로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됐는데요. 여전한 혼란과 불안에 선생님들이 많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일선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인터뷰 진행 : 이규리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email protected]
– 사진 : 이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