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며칠 전 캐나다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식에서 아버지가 하객과 친지들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몇 자 준비했다가 읽어 본 글입니다. 참고로 사위가 된 마틴은 중국/체코 계통의 캐나다 사람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곳, 바다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베링해, 8월 9월이 되면 고등어와 청어가 번식하여 물반 고기반이 됩니다. 고래들이 이곳에 들어가려면 북태평양에서 알류산열도를 넘어 가야 하는데, 범고래들이 이 길목을 지키고 새끼고래들을 사냥합니다. 일단의 해양생물학자들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엄마를 잃고 홀로 된 귀신고래 한 마리가 이 지점을 통과하려하자 범고래들이 사냥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위기에 처한 새끼 앞에 그 때 근처를 지나던 혹등고래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큰 꼬리로 범고래를 쫓아내서 새끼 고래를 무사히 베링해에 진입하도록 도왔습니다. 혹등고래가 암컷이며 새끼를 키우다가 잃었거나 여러 이유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 ‘공감’을 발견한 사례로 보고되었습니다. 사람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면서 집단적 생활의 기초로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공감, 이타성을 아예 본능으로서 DNA속에 심어 놓았습니다. 실험에서 발견한 것은 인간의 뇌발달 과정 중에 2살이 채 안되는 시기에 공감능력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야 하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공감능력은 본능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결이는 자라면서 그 어떤 아이보다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높은 아이였습니다. 3~4학년 때는 학업이 미진한 친구를 돕느라 자신의 공부를 집중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함께 사는 언니를 위해서 그 나이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참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클럽활동을 하면서는 공감의 최고봉, 정의를 위해서 자기보다 힘쎈 상대와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아시안 학생을 무시하는 선생에 항의하여 해당 선생은 물론이고 교장에게도 사과를 받아낸 적이 있는 강단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마틴을 처음 본 순간, ‘이 친구는 부처가 들어있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전에 함께 경주도 가고, 부산도 가면서 가까이에서 관찰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청년이 정말 착하고 부지런하고, 소박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공감을 넘어 항상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마틴은 가족을 배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항상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고 남보다 먼저 나서서 몸을 움직이는, 요즘 보기드문 심성을 가진 청년입니다. (덧붙이자면 마틴이 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실로 눈부셔서 70억 인류가 배부르게 먹을 수는 정도가 아니라 전 인류가 모두 맛있는 음식을 항상 먹을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해 있습니다. 하지만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약탈적 시스템은 세계의 인구 반 이상이 하루에 1불을 마련하지 못하는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복합체는 이란을 압박하면서 중동에서의 전쟁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 어디인가에는 전쟁이 있고, 그로인해 난민이 생겨나고 있으며, 결코 원하지 않은 굶주림과 부상의 위험 앞에 노출된 아동과 여성이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누군가는 돈을 만들겠지만, 많은 인류는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나라, 전쟁이 있는 나라에 태어난 것은 불행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자나라에 태어나 잘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에 책임이 있습니다. 나만, 내 가족만, 내가 소속된 사회만 잘 살자고 하는 것은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것입니다. 전 인류가 하나이고 전 지구가 하나입니다.

북극곰의 30% 이상이 굶주리고 태어나는 새끼들의 몸무게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토론토의 여름에 비가 많아 진 것처럼, 한국의 동해 바다에 대구나 명태 등 한류성 어종이 사라지는 것처럼, 전세계적 차원의 온난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을 야자기름을 위한 농장으로 개발하는 자본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M&A 작업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여 우리 사위와 딸이 그런 사람이 되면 곤란하겠지요? 올리고당은 수수를 이용하여 만드는 인공의 당입니다. 이때 사용되는 옥수수는 대부분 GMO옥수수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스낵에 주로 올리고당이 사용됩니다. 여러분은 이를 알고서도 연인에게, 손자들에게 먹이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 딸과 사위가 여러 방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넘치게 경제적 활동을 잘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충분히 돈을 잘 벌 것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경제활동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사회적 활동이며 충분히 사회에 이로운 행동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직업을 가지는 것으로 사회를 이롭게 하는 정도로 만족할 수 없는 뛰어난 엘리트입니다. 이들에게는 인류 사회를 위해 공헌해야 할, 남들이 못하는 역할과 책무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공감에서 출발하는, 보다 특별한 이타적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에게 있습니다. 전 인류가 전쟁없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충분히 경제적으로 행복하게, 지속가능하며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후손들에게 복되게, 이웃과 공동체와 함께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이 두 사람에게 있습니다.

한결 엄마와 아빠는 지금의 한결이보다 젊어서부터 국가의 폭력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했었습니다.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서 두 사람 모두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엄마는 8년 넘게 노동조합위원장으로 복무한 적이 있으며 아빠는 독재에 맞서 동료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잠 안자는 고문을 견뎌 내었습니다. 지금도 아빠는 한국의 가난한 청년들과 시니어들을 위해 주거복지를 제공하는 협동조합 주택을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랑스러운 딸과 사위는 이미 계획해 놓은 일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 공부도 더 해야 하고 직업적 경험도 더 쌓아야 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면 엄마와 아빠는 실망할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공감의 본능에 충실하여 이웃과 사회에 이롭고 인류 전체에 이로운 활동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는 복잡하고 사회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한결이가 처음 글쓰기 공부를 할 때 아빠가 정해준 책 중에는 ‘신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신과 어떤 신이 유사하며 어떤 민족의 신이 어디서 파생되어 나왔는지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는 신앙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조차 복잡해서 우리 딸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2살 아이의 공감은 본능이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지만 한결이와 마틴이 직면하는 공감은 보다 어려운 사고작용을 통해야 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에세이 쓰기 과정을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생활방식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눈앞의 물질적 이익을 포기하기도 해야 하고, 많은 시간과 정력을 기울여 어려운 설득도 해야 하고, 신체적인 위험조차 무릅써야 하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족과 함께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아빠는 결혼하는 두 아이를 도발합니다. 그래 너희들이 잘 났으니 정말 잘 난 사람으로 살아라. 다시 말하자면 돈많이 벌고 아이도 많이 낳고 엄마, 아빠와도 잘 놀아주고, 그리고 나아가서 이웃과 인류사회에 이로운 일을 많이 해라는 말입니다. 신랑 신부, 약속하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신 친척과 친구, 지인 여러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 말처럼 잘 살아 가는지 계속 살펴보아 주십시오. 잘못하면 꾸짖어 주시고 잘 하면 더 잘 하도록 북돋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