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은 아지랑이 속에 가물거리며 사라지고 등이 뜨거워지는 여름에 덜컥 들어섰습니다. 야생조류 충돌 현장방문을 2017년 겨울부터 해왔으니 이제 두 번째 여름인 셈입니다. 현장방문이라 해봐야 다른 지역 갈 때 한번 씩 멈춰서 살펴보는 수준입니다. 해보니 겨울 조사가 춥긴 해도 한결 낫습니다. 여름은 아스팔트 열기가 숨을 막기도 하지만, 방음벽 아래 풀이 우거져 고생의 보람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작년 여름은 열기도 대단했거니와 비가 적어서 사체조차도 아스팔트 위에서 미라처럼 말라붙어 버렸지요.

간혹, 강의를 하며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현상인 로드킬의 경우 좋건 싫건 운전을 하다보면 처참한 모습으로 봐야만 합니다.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려니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죠. 만에 하나라도 직접 차로 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더욱 로드킬의 문제를 체감하게 됩니다. 문제는 투명창 충돌의 경우, 이런 느낌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류충돌로 인해 유리창이 깨지거나, 핏자국이 낭자했다면 전 이미 이 문제를 사회가 해결했을 것이라 봅니다. 차라리 새가 토마토와 같았다면 우리의 유리창엔 수많은 새의 흔적이 남았을 테고, 돌과 같았다면 경제적 이유를 들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마토나 돌과 같지 못한 새들의 죽음은 여전히 건물과 방음벽 그늘 아래 썩어가고 있을 뿐이었기에 우리는 이 문제가 이토록 큰 것인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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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인천 송도 한옥마을의 작은 유리창에 새겨진 새들의 흔적

자, 이제 문제는 제기되었습니다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해결에 앞서 어떤 문제를 우리가 더 인식해야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에는 다소 공간이 허용되니, 차근차근 말씀드려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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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Skyscraper라고 부르는 고층빌딩들은 단위건물 당 가장 많은 조류충돌을 일으킵니다


높이의 영향
먼저 건물의 높이를 말씀드려 봅니다. 외국의 안내서에는 12~18미터 구간이 제일 취약한 공간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도심 내 가로수 등의 높이가 대개 이 높이까지 자라기 때문에 충돌사고가 발생하는 주요 공간이라고 하죠. 4층 이하의 낮은 건물에서 충돌이 많이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나아에 4층 이하의 건물이 약 6백 7십만 채로서 전체 66% 가량 차지한다는 점도 중요하겠습니다. 

물론 고층 빌딩도 영향을 줍니다. 특히 인천 송도와 같이 인근에 갯벌이 있어 봄, 가을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수많은 조류들이 거쳐 가는 공간에 위치한 고층 빌딩들은 강남 빌딩과는 다르게 그 영향을 매우 거대합니다. 한 예로 2017년 미국 텍사스의 한 고층빌딩에서 하룻밤 사이에 거의 400여 마리의 새가 죽은 적이 있었습니다. 폭풍우 속에서 비행하던 새들은 낮게 날 수 밖에 없었고, 빌딩에서 나온 조명은 새들을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저번 편에서도 설명 드렸듯, 이동경로에 위치한 고층 빌딩의 인공조명은 엄청난 수의 이주성 조류를 죽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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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유리면에 반사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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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2017년 미국 텍사스 한 건물에서 발견된 거의 20종 400마리에 달한 새들의 죽음. Reuters

방음벽도 반드시 크고 거대한 방음벽만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지방도, 국도 확장에 따른 1~2단 투명방음벽이 도처에 설치되고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들 입장에서는 콘크리트 부위만 피해가면 된다는 생각합니다. 낮게 비행하는 조류들, 예들 들면 지빠귀류나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물총새, 참새들에게는 낮은 방음벽이라 할지라도 큰 위협이 되며, 동일비용으로 더 길게 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위치의 문제
위치도 문제입니다. 강남의 한복판에서는 조류 서식밀도가 워낙 낮기에 충돌사고는 많지 않지만, 시골의 펜션이나 단독주택은 단일 건물로서는 가장 많은 조류를 죽이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조류먹이통이 있는 시골집에서는 연간 3.1마리가 죽는데, 먹이통이 없는 도심 건물에서는 0.1-0.4마리가 영향을 받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도심 건축물의 수가 시골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이겠지요.

그렇다면, 전원주택, 펜션, 숲 인근의 다중 이용시설이나 휴양소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숲 안에 들어선 유리 온실은 실로 죽음의 건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멕시코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건물 주위에 식생이 잘 가꿔진 장소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녹색건축인증에는 에너지효율등급이나 친환경자재 사용에 대해 권장하고 생태환경조성에는 연계된 녹지축 조성, 자연지반 녹지율, 생태면적률과 비오톱 조성에 12점이나 평가 점수가 반영되어 있으나 충돌사고 예방에 관한 사항은 없습니다. 즉 건물 주변 환경을 잘 가꾸면 새는 더 많이 죽게 된다는 아이러니가 생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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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숲 안에 들어선 유리온실은 새들의 무덤이라 불러도 됩니다.
조명의 문제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조명도 문제가 됩니다.
대부분 조류 유리 충돌사고가 대낮에 발생하지만 야간에 사용하는 조명 역시 건물이 많은 지역에서 발생하는 조류 충돌사고 발생률에 한 몫 합니다. 충돌사고로 많이 폐사하는 참새 같은 명조류는 대부분 한낮에 활발히 활동하므로 다양한 색각과 밝은 빛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이런 조류들은 봄가을, 주로 밤에도 바다를 건너 장거리 이동을 하지만 야간 시력은 좋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지구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 자기장을 감지하여 날아갑니다. 이러한 감각인지 조직체는 안구 망막에 위치해 있으며 어두운 파란색 자연광을 인지해야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답니다. 많은 인공조명들이 내뿜는 붉은색 파장은 이러한 조류 자기장 인지 활동을 방해합니다. 이렇게 빛 공해가 심각한 지역에서는 새들은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날씨가 나쁘거나 안개가 자욱한 경우 새들이 도심 위로 낮게 날아가면서 조명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고 이때 충돌사고가 많아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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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안개가 끼는 날이면 새들은 도심 가까이 비행하며, 이때 충돌사고가 많아집니다.


시기의 문제
그렇다면 언제 많이 피해를 입을까요?
지금껏 북미권 연구에 따르면 봄가을 철새들의 이동시기에 사고가 빈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연구에 따르면 연중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민참여형 모니터링으로 수집한 자료를 보면 기록된 81종 1,222개체의 84%인 1,022개체가 멧비둘기, 물까치,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박새나 직박구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발표된 멕시코 논문에서도 연중 비슷한 경향을을 나타내는 것이 보고되었지요. 여름철 번식하게 되면 어린 개체들이 더 많이 나오면서 여전히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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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보면 많은 새들이 제 주위를 날아다닙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미생(未生)이 아닌 미사(未死)의 존재들이 아직도 죽음의 함정 주변에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을 완생(完生)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공존 노력이 참으로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어떻게 이 무분별한 죽음을 막을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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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수의사(국립생태원 동물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