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19년 네 번째 희망편지를 드립니다.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며 지내고 계십니까.
길을 거닐 때 곳곳에서 스치는 봄꽃과 찬란한 여린 잎을 마음에 담길 바랍니다.

저는 지역 곳곳을 누비며 봄의 기운을 한껏 누리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새로운 ‘대한민국 희망찾기’ 프로젝트로 지방정부 대표(기초자치단체장)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단체장을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지방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다시 새기고 있습니다. 전남 화순에서는 사회적기업을 꿈꾸는 청년 대상 강의를 진행하며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봄이 움트는 순간에 사람들도 무언가를 준비하고,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 자체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봄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하 전태일기념관, 홈페이지 가기)에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전태일기념관’은 전태일 열사 분신 장소인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조성돼 이달 공식 개관했습니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자, 시민 누구나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청계천 평화상가에서 노동자들이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노동 현실을 직면했습니다.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기로 한 날 경찰에 의해 시위가 막히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1970년 11월 13일 분신했습니다. 이후 메디칼센터(현 국립의료원)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끝내 14일 오전 1시 30분 임종했습니다.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故 이소선 여사)와 친구들을 향해 다음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엄마, 내가 못다 이룬 소원들을 엄마가 제 대신 이루어 주세요.”
“엄마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뚫어 놓은 작은 바늘구멍을 자꾸 넓혀서 그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친구들아, 절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줘라.”

‘전태일기념관’이 찬란한 봄으로 다가온 이유는 단지 전태일 열사를 다시 만난 탓이 아닙니다. 새로운 전태일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열악한 노동 현실에 분노하는 전태일에 주목했지만, ‘전태일기념관’에서는 ‘인간 전태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5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며 고된 하루를 버티는 어린 여공에게 작은 도움을 주고자 했던 전태일, 자신의 일당으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고, 밤새 집으로 걸어간 전태일을 만났습니다.

자신도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바로 옆의 노동자를 지키고 싶어 했던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노동자들이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청계천 평화시장의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감행합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진정서를 내는가 하면,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 제조업 종업원 근로조건 개선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또 ‘모범회사 태일피복’을 창업할 계획도 세웁니다. 노동을 존중하고, 생산 혁신을 꾀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포부입니다. 손이 많이 가는 맞춤제작에서 벗어나 옷 크기를 표준화해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모색했습니다.

‘모범회사 태일피복’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전태일은 열사인 동시에 현실의 벽을 허물고 도전하는 혁신가였다는 점만큼은 분명합니다. 1960년대 근로기준법을 지키고도 살아남을 수도 있는 회사를 몸소 만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분노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애정, 같이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를 지키려는 전태일의 모습이 뭉클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투사 전태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여러분도 ‘전태일기념관’을 한 번쯤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전태일기념관’을 나오는 길에 오늘날의 노동 현실을 떠올랐습니다. 공유경제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길을 터는 방법으로 알려진 ‘플랫폼 경제’는 어떤 모습인가요.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의 몸집은 커지고 있지만, 긱노동자의 현실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노동시장에 유연하게 참여할 수 있다곤 하지만, 불완전고용으로 인한 고용과 삶의 질 저하에 관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 패러다임 아래 소수에게 부가 돌아가고, 노동자와 소상공인에게 생존의 위협을 안겨주는 현실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전태일을 만드는 플랫폼노동에 관한 대안연구를 희망제작소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봄의 끝자락 하고 싶은 일 중에 아직 못한 일도 있습니다. 영화 <생일>을 보는 것입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먼저 영화를 보신 분들이 짧게나마 감상을 전달해주신다면, 저뿐만 아니라 <희망편지> 독자들과 공감하고, 나누겠습니다. 이어 희망제작소는 4월 25일 시민이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을 짚어보는 프로그램(신청하기)을 준비했습니다. 사회적 참사와 그 일을 겪어낸 사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데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짧은 봄 강건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김제선 드림

* 두 번째 이미지는 전태일 열사의 사업계획을 담은 글입니다. 해당 이미지는 전태일재단의 사진자료로, 비영리 목적이라는 허락 아래 활용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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