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2019년 3월 18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아픈곳이 중심이다] 인공혈관사태, 시장논리에 휘둘리는 생명권

   

강주성(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 만드는데 돈이 얼마나 들었은데 그런 가격에 팔라고 하면 떠나는게 당연한거 아냐?

  - 나 같아도 안 팔겠다

  - 이건 그 동안 수수방관해 온 정부의 잘못이다

  - 회사가 안 팔겠다고 하면 뭐 죽어도 할 수 없는거 아닌가?  

 

이번 고어사의 인공혈관 사태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이미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고 자라왔는데 이런 현실에서는 그리 이상한 생각도 아니지 싶다. 하긴 이윤과 돈을 위해 움직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가 그렇게 장사를 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가지게 된 일련의 우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니 어떤 것은 우려를 넘어서 사실 좀 무섭기까지 했다.

 

 

어찌할 것인가, 이 인식의 시장화를

약은 텔레비전이 아니다. 생활용품이 아니라는 말이다. 약은 아무 때나 마트에 가면 살 수 있고, 또 내가 보고 싶으면 보고, 안보고 싶으면 툭 꺼버릴 수 있는 텔레비전이 아니다. 어떤 약은 먹지 않으면 바로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약은 먹지 않으면 결국 환자는 죽는다. 안 봐도 죽지 않는 텔레비전과 다른 이유다. 이런 것은 약도 있고, 치료재료도 있고, 의료기기도 있다. 모두 사람의 생명과 관련한 의료 제품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치료재료인 인공혈관이다. 어린이 심장 수술에 쓰이는 이 치료재료를 고어사가 팔지 않겠다고 한국에서 회사를 철수했다. 그냥 철수를 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제품에 대한 허가를 반납하고 철수를 해버렸다. 이미 2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미 예상했던 대로 이번에 남아 있던 재료가 소진되자 심장 수술을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부랴부랴 나서서 미국시장 가격으로 가격을 인상하고 기타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선에서 다시 공급이 재개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둔 부모들로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이번에만 있었던 특이한 일은 아니다. 가까이는 작년 리피오돌 사태도 있었고, 멀리는 2001년에 글리벡 사태도 있었다. 그 사이에도 푸제온 같은 에이즈 약이나 다른 질환에 쓰는 약도 공급이 중단되는 유사한 일을 겪었다. 그래서 이런 경험 때문인지 사람들은 이미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해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뭐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을 더 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보험 의료수가를 인상해 협상을 끝내는 것으로 마무리 해온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말이 협상이지 이미 환자들의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후에 벌이는 협상은 일방의 요구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100대 0'의 일방적 협상일 뿐이다. 어찌 보면 아픈 아이들을 둔 부모들에게는 그것조차도 감지덕지일는지 모른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볼모로 잡아놓고 돈을 요구하면 대개의 부모들은 돈을 찍어서라도 만들어 주게 되어 있다. 내가 죽더라도 아이는 살려야 한다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닌가 말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유괴범을 나쁘다고 하고 벌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지만 정작 이런 일에는 해당 제약사나 업체를 제재해야 한다는 말은 잘하질 않는다. 급기야 어떤 이는 돈이 안 남아서 업체가 팔지를 않으면 ‘애들이 죽어도 그건 할 수 없는 일 아니냐’는 말까지 할 때는 오히려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인식은 의료와 교육을 시장에 내어줄 때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황폐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의약품 접근권을 강화하기 위한 논의 시작하자

사회의 가치와 철학을 세우는 것에는 정치와 교육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나라다운 나라,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런 시장과 이윤이 지배하는 현실과 인식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제주의 영리병원 문제도 의료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공공성을 저해하고 변질시키는 시장주의적 사상에 칼을 대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허구한 날 100대 0의 협상이 아니라, 적어도 협상이라면 50대 50 수준 정도까지는 가능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희귀필수의약품 관리체계의 재구축, 의약품 공공성 확보를 위한 컨트롤 타워 구축, 공공제약사 설립, 국가 공공의료 R&D센터 설립 그리고 강제실시까지, 그 방안이 무엇이 됐든 의약품 접근권을 높이는 게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이 또한 제주 영리병원만큼 중요한 문제로 고민해야 한다.

 

누누이 말하지만 제발 사회적 논의와 연구를 좀 해 달라. 적어도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고 논의와 실천을 할 수 있는 기본 조직이라도 만들자.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이 자꾸 반복되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