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안전 실태와 대안 연속기고-2] 궤도교통

 

한국 사회에서 위험의 빈도, 규모, 다양성은 이미 우리의 예측 범위를 넘어섰다. 지뢰 같은 위험이 발길 닿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복잡한 이론이 없어도 이제 우리는 위험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맨살에서부터 알아차린다. 그래서 묻는다.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가는 자신의 만능적 권력을 공공안전을 위해 쓰고 있는가. 여기에 답을 하기 위해 국가가 공공안전을 위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따져보려 한다.

 

먼저 공공안전과 관련된 국가의 행위는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시장화된 위험산업으로, 이것은 민간 자본에 의해 운영되며, 국가는 법적 규제를 통해 개입할 뿐이다. 항공, 해운, 화학, 정유, 도로교통, 건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항공은 공공(관제)과 민간(운송)이 결합된 특수 사례이다. 대다수는 민간이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시장화된 환경에 놓여 있기에, 국가가 안전을 위해 개입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제한적이다.

 

둘째는 국가가 관할하는 공공부문 내 위험산업이다. 원자력, 궤도, 전기, 가스, 에너지 발전, 항공 등이 해당된다. 이 영역에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으며, 그런 만큼 국가의 행위는 더욱 중요해진다. 국가 역할에 따라 안전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 개입이 제한적인 전자는 차치하고, 후자인 공공부문, 그 중에서도 궤도교통을 중심으로 국가의 안전 정책을 살펴보겠다.

 

공공부문 안전관리 양상: 규제와 탈규제의 이중주

 

공공부문 내 위험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리는 ‘규제’와 ‘산업 진흥’으로 대별된다.

 

산업 진흥이란 통상 해당 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 목표를 지니기에 시장화를 추구한다. 산업 진흥은 다른 말로 탈규제를 일컫는다. 국가는 공공부문 안전관리에도 탈규제 정책을 자주 구사해 왔다. 안전에 대한 탈규제는 공공안전을 시장에 내어주고, 자본의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와 더불어 공공부문에 민간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공기업을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하는 신자유주의적 관리 역시 탈규제의 중요한 유형이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위험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하며, 동시에 위험을 관리하는 새로운 산업영역이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는 국가가 앞장서 산업 진흥의 허울 아래 공공안전의 탈규제 정책을 수행하면서 ‘안전의 상품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탈규제만이 공공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철학이 없는 정부의 규제도 안전을 저해한다. 여기서의 규제에는 안전정책 외에도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기업 경영평가와 인사정책 등이 포함된다. 결국 안전 실태와 현장의 안전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무수한 법령과 관리 정책, 매뉴얼이 위험산업 현장을 잠식하게 되었다.

 

잘못된 규제로 인해 안전업무 위계화, 관료나 전문가 중심의 의사결정, 공식화된 규정 증가 등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안전의 관료화’라고 정의할 수 있다. 안전을 관료화시키는 정책이 전면화되면서 현장과의 소통은 부재한 통제 중심의 수직적 규제체계가 관철되고 있다.

 

나아가 안전에 관한 암묵지를 보유한 일선 노동자는 위에서 부과한 규정에 순응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에 불과하다. 이들은 안전 관리구조에서 배제되며, 이들이 안전을 자발적으로 ‘체화’할 조건은 훼손된다. 결국 안전의 관료화가 진행될수록 예측불가능한 위험에 유연하게 대처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사고는 늘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기존 매뉴얼을 붕괴시키며 발생하기에 틀에 박힌 관료적 시스템은 대응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전의 상품화를 추동하는 탈규제 정책

 

궤도안전을 위협하는 대표적 탈규제 정책으로 차량 노후화에 대한 방치와 차량 내구연한 폐지 법령을 들 수 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루었듯이 상대적으로 운행역사가 긴 서울메트로(전체 차량 중 41%가 21∼25년)와 부산교통공사(총 776량 중 25년 이상 132량, 21∼25년 84량)가 의 차량 노후화 문제는 심각하다. 이미 과거의 내구연한 기준 25년을 초과한 차량이 계속 운행 중에 있다.

 

궤도 공기업들이 차량 사용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된 제도적 배경에는 내구연한을 늘리고 종국엔 삭제한 철도안전법 개정이 자리잡고 있다. 25년으로 제한되던 내구연한은 2009년(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최대 40년까지 연장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관련 조항을 아예 삭제하였다. 노후 차량에 대한 잔존수명 평가를 통해 5년 단위로 무한정 차량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다른 탈규제 사례로는 신규 차량 검사체제의 시장화 정책을 들 수 있다. 서울도시철도의 7호선 SR 모델은 검사 시장개방으로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한 사례였다. 차량이 도입되던 2010년 당시에는 정부가 제3의 차량 제작검사기관을 지정하고, 궤도 공기업은 신규 차량 검사를 의뢰하였다. 이후 검사결과를 정부의 공증으로 여긴 채 차량을 납품받았다.

 

문제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규제요인 해소 명목으로, 철도안전법상 검사기관 지정 시 필수요건인 ‘수행실적’ 기준을 삭제하고 업무수행 능력을 완화시키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탈규제 정책 덕분에 수행실적이 전무했던 KRENC라는 신생업체가 검사기관에 지정된 것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KRENC의 검수를 받고 SR 차량을 도입하였는데, 이 모델은 실제 운행에 투입된 직후 무수히 많은 안전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규제 개혁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 정책이 결함 덩어리의 차량 도입으로 이어져 지하철의 안전을 크게 위협했던 것이다.

 

안전의 관료화를 심화시키는 규제 정책

 

안전 시스템에서 숙련된 현장 인력의 확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의 안전이론들은 고도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유인력과 예비설비가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재 궤도교통에서는 안전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장의 안전요구는 무시한 채, 관료적 규제 정책이 강력하게 실행되어 왔다.

 

대표적으로는 인원 감축의 기저 요인을 작동하는 중앙 및 지방공기업 경영평가가 있다. 한국철도공사에 대한 2014년 경영평가 지표에는, 특히 [노동생산성(부가가치/평균인원)],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인건비/매출액)] 등의 계량 지표가 있다. 경영관리 범주에 속하는 이러한 계량지표들의 공통점은 인력 규모가 작을수록, 그리고 인건비 비중이 낮을수록 높은 성과로 계측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도시철도공사에 적용되는 2014년 지방 공기업 경영평가에서도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안전을 도외시한 경영효율 중심의 관료적 규제 속에서, 궤도교통 분야의 현장안전 인력은 지속적으로 감축되어 왔다.

 

더불어 인건비 성과평가로 말미암아 각 궤도사업자들은 정규직 인력을 줄이고 대신 해당 업무를 민간위탁, 곧 외주화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현재 모든 궤도사업장에서는 인력 감축과 외주화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는데, 인력 감축 사태와 안전관리체계의 완화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즉 인력 구조조정을 위해 각종 검사 주기를 완화하고, 그에 대한 규정에 수립되면, 인력 감축이 이뤄진다. 이후 감축된 인력으로도 안전관리가 힘들어지면, 다시 검사주기를 후퇴시키는 양상이 궤도 사업장들에서 판박이처럼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안전의 관료화 양상으로는 사고 은폐를 조장하는 정책을 들 수 있다.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은 단순히 개인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특정부문이 취약해졌다는 신호이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는 조직에 보고되어야 하며, 보고 사례는 전체 안전 시스템 개선의 효과적 수단이 된다. 사고 보고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중앙 및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의 안전 성과지표는 오히려 이러한 안전패러다임에 역행한다. 현재 한국철도공사 경영평가에는 [고객피해건수(철도사고건수, 사망자수, 운행장애건수)]가, 지방공기업 경영평가 역시 [안전사고 발생건수]가 계량지표로 포함되어 있다. 특히 행정자치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안전사고 발생건수에 대한 계량지표 점수를 기존 4점에서 6점으로 확대하였다. 사고건수는 궤도공기업 평가와 성과급 산정을 위한 개인별 및 부서별 평가지표로서 활용된다.

 

이러한 평가체계에는, 사고건수 지표로 일선 노동자의 행위를 통제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언론 등에 노출되지 않는 상당수 사고가 현장단위에서 무마되고, 은폐되고 있다. 그 이유는 사고를 보고할수록 기관 및 개인, 팀 평가에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안전은 사회적으로 구축된다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먼저 할 일은 공공부문 위험산업에서부터 안전을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의 안전관리방식은 안전의 상품화를 추동하는 탈규제 정책과 안전의 관료화를 심화시키는 규제 정책이 긴밀하게 중첩되어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신자유주의적 지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국가의 관리정책 속에서 안전의 상품화와 관료화 경향은 강화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성이 공공부문 위험산업을 장악하면서 공공안전은 한층 위태로워졌다. 안전이 시장과 안전철학이 없는 관료에 포위당한 것이다.

 

공공안전은 단순히 위험을 다루는 일선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은 작업현장의 노동자 행위, 작업장의 규정 및 문화, 국가 정책 등 미시적 수준에서부터 거시적 수준까지 매 단계가 모두 중요하다. 안전은 기술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이 서로 결부되어 있는 사회적 구축물인 것이다.

 

안전이 사회적으로 구축된다는 점은, 결국 안전이란 전체 사회구성원이 함께 참여해야 할 민주주의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이 공공안전이 관료화된 구조 속에서 위협받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답은 정책 당국자와 공기업 경영진이 공공안전에 최우선적 가치를 부여하면서 정책을 수행하도록 이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다.

 

민주적 통제는 공공서비스의 이용자인 시민과 생산자인 노동자가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각 위험산업별로 구축하는 것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이러한 안전 거버넌스를 통해 국가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되어야 한다. 나아가 공공부문 내 위험산업에 대해서는 현행 경영평가 구조에서 제외하든가 아니면 안전 중심의 새로운 운영평가를 도입해야 한다. 또한 철도안전법 역시 현장의 안전요구를 반영하여 개정해야 할 것이다.

 

- 이승우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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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사회공공연구원과 함께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공공부문 안전 연속기고'를 주1회씩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회차로 레디앙(4.29)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