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인류세의 모험 – 우리가 만든 지구의 심장을 여행하다
가이아 빈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곰출판 / 2018년 4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인류의 힘을 돌아보라

 

‘인류세’라는 개념을 널리 알리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크다.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이상 현세인 신생대 충적세의 조건으로 볼 수 없는 새로운 지질시대, 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류세(Anthropocene)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명명의 과학적 타당성에 대해 여전히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거론되면서 이미 사회화된 것 같다.
인류세 개념에 동의하는 지질학자들은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 변화로 인한 기후와 자연 환경의 변화, 방사능 낙진의 존재 등을 기준으로 제시한다. 45억년의 지구 역사를 통틀어 몇 차례의 급격한 환경 변화와 생물종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인류의 산업 활동과 토지 이용이 가져온 변화라는 점에서 인류세라는 명칭은 인류의 어마어마한 힘을 증명한다. 정말 그 정도일까? 저자는 인류의 힘이 미친 커다란 흔적들을 찾기 위한 여행에 나선다. 다만 그것은 신나는 어드벤쳐라기 보다는 심각한 다큐멘터리 제작의 여정이다.

 

인간의 활동은 사바나의 초원과 아마존의 밀림 면적을 바꾸었으며 대기의 조성과 강의 흐름을 변화시켰다. 지난 수만 년, 짧게는 수십 년 사이에 인류가 펼쳐온 궤적들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런 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결과들, 즉 무너지는 산호초와 사라지는 빙하 그리고 댐으로 막힌 강물은 인간의 삶에도 매우 구체적인 영향을 되돌려주고 있다. 물론 급격한 변화에 취약한 집단과 국가들은 또한 매우 구체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
다행한 일은 저자가 찾는 장소와 사람이 비극의 대상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의 지질시대에 삶을 이어가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활동 역시 이 여행기의 한 부분이다. 저자는 지구공학에 포함되는 몇몇 첨단 기술과 프로젝트까지 두루 살피는데, 그런 인식이 일부는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인류가 스스로 풀어야만 할 과제들을 치열하게 대면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인류세를 만든 것도, 인류세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것도 인류의 몫이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