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인권위의 방송의 성평등권고, 방송계는 창피한줄 알아야

: 인권위의 성평등 제고를 위한 권고에 부쳐

 

방송과 관련된 정책결정과정에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방송통신위원회 및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과 공영방송사 이사 임명 시 특정 성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기 바람

방송평가 항목에 양성평등 항목을 신설하여 방송사 간부직의 성별 비율을 평가하고 방송사의 양성평등 실천 노력에 대하여 추가 점수를 부여하는 등 방송사 스스로 양성평등 수준을 평가해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갈 수 있도록 방송평가 항목을 개선하기 바람

 

국가인권위원회가 방송의 성평등 제고를 위해 방송통신위원장에 위와 같이 권고했다. 방통심의위원장에는 자문기구로 성평등특별위원회설치를 주문했다. 언론연대는 인권위의 권고를 환영하며, 권고에 따른 검토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감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번 권고배경에 대해 대중매체는 현실의 일부를 강조하거나 축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 공동체가 선호하는 지배적 가치를 재생산한다그 가운데서도 방송은 가장 일상적인 스트리텔러로서 사람들의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그만큼 방송이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성차별적 사고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났듯 그동안 방송은 드라마’, ‘뉴스’, ‘교양’, ‘시사토크’, ‘오락등 장르를 불문하고 진행자나 출연자, 그 내용에 있어서 성차별적 요소가 많았다. 드라마 속 남성들의 폭력적 행동은 남성적으로 평가받고 로맨스로 포장돼 왔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그런 행동들은 폭력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높아졌다. 시청자들은 뉴스는 왜 중년남성과 젊은 여성이 함께 진행하는가’, ‘전문적인 사안에 대한 인터뷰대상자들은 왜 대부분 남성인가라고 오랫동안 질문해왔다. ‘예능 속 여성의 실종시대라는 말도 있다. 이영자, 박나래, 김숙 등 몇몇 주요 여성 예능인들이 큰 인기를 끌고는 있지만 여전히 방송을 통해 더 많이 노출되고 그로 인해 기회를 얻는 쪽은 여성 예능인들이 아니다.

 

언론연대는 그동안 시청자들의 인권 감수성을 오히려 방송이 못 따라가고 있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해왔다. 그럼에도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MBC는 연초 <Target : Billboard - KILL BILL>이라는 신예능을 선보였다. 그런데, ‘여성혐오논란으로 물의를 빚었던 인물이 아무런 제약없이 출연하고 있다. 해당 논란은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닐뿐더러, 그 당사자 또한 반성이나 사과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공영방송을 통해 무대 위에 선다. 사회가 이미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비롯해 약자들을 조롱하고 희화해 논란을 빚었던 옹달샘 멤버들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결국, 방송을 둘러싼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인권위의 권고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많다. 방송정책과 방송심의를 담당하며 큰 영향을 가진 두 조직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가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 역시 두 집단 방통위와 방통심의위였다. 그들 스스로 성평등 기준에서 기울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방통위는 위원장 포함 5인 모두 남성으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 선임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방통위에 의해 선임된 KBS와 방송문회진흥회(MBC 대주주), EBS 등 공영방송 이사회 역시 성평등한 구도를 갖추지 못했다. 방통심의위 또한 위원장 포함 9명 중 6명이 남성이다.

 

인권위 권고와 별개로 아쉬운 점은 이 같은 방송계 스스로 개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투(나도 고발한다)’, ‘혜화역 시위’, ‘탈코르셋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등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도 방송이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인권위가 이번에 권고한 특별 성의 6/10 초과 금지역시 다양한 요구들 중 하나였다. 언론연대 또한 방통위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 시 다양성을 고려해 성·지역 대표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개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스스로 자정 노력을 보이지 않았던 방송계였다는 말이다.

 

이제 공은 다시 방송계로 넘어왔다.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는 인권위 권고사항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에 부응하는 대책을 내놓아야할 것이다. 방송사들 역시 스스로 개선의지를 보여야 한다. ‘성평등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구조적인 문제부터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시청자들의 인권감수성은 이미 한 참이나 올라와 있다. 그리고 방송은 시청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2019214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전규찬·최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