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듐걸스

라듐걸스 – 빛나는 여인들의 어두운 이야기
케이트 모어 지음, 이지민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4월

무지, 은폐, 반복의 비극은 끝나야 한다
처음엔 몰랐다. 라듐을 처음 추출해 낸 퀴리부인도, 라듐의 스스로 빛나는 성질을 이용해서 야광시계를 만들 생각을 한 창업주도, 그리고 1917년부터 미국 뉴저지의 시계공장에서 라듐 분말을 숫자판에 칠하는 일을 시작한 노동자들도 라듐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지 못했다. 라듐은 신비한 능력을 가진 물질로 칭송되었고 화장품과 강장음료의 원료로 불티나게 팔리던 때였다. 시계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라듐분말 페인트를 작은 글자판에 깨끗하고 빠르게 칠하기 위해 붓 끝을 혀에 넣어 뾰족하게 다듬는 ‘립 포인팅’ 기술을 너나없이 익혔다. 높은 임금까지 받게 된 소녀들은 어두운 곳에 가면 몸 전체에서 반짝이는 신비한 라듐가루 빛을 보며 행복해 했다.

 

그러나 퀴리부인의 동료 과학자의 가슴에 종양을 만들었던 라듐의 방사능은 소녀들의 혀와 호흡기를 타고 신체 곳곳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녀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빈혈과 궤양의 이유를 의사들은 알 수 없었고, 몇 년 사이에 극심한 고통과 함께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는 소녀들의 질병과 작업장의 노동 사이의 연관성을 부인했고 관련 연구 결과를 은폐했다. 수개월에서 수년에 이르기도 하는 방사능 질환의 잠복기 때문에 몸이 아파 퇴직한 다음 몇 년의 투병 끝에 죽은 노동자들이 라듐 공정과 질병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라듐의 알파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의학자와 법률가들이 노동자들의 싸움을 도왔지만 법률 소송은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마침내 1938년, 싸움이 시작된 지 13년 만에 사측의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지만 많은 라듐 소녀들은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은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 책을 보며 최근 직업병의 원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다행스럽게도 보상 합의에까지 이른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업의 탐욕과 이윤 논리가 만드는 닮은 꼴의 희생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