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만 
들어가면 사회주의인가?

 

글.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한미FTA 등 통상정책과 동아시아 공동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경제학자. 요즘은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 등 인간이 협동할 조건과 협동을 촉진하는 정책에 관심이 많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회학을 사회주의 연구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요.” ‘사회’라는 말만 나와도 기겁을 하던 시절, 내가 대학교 1학년 사회학개론 시간에 들은 얘기다. 1978년이니까 무려 37년 전이다. 

 

2015년에 부활한 사회주의 마녀사냥
“우리는 헌법을 통해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헌법소원을 당할 수 있다...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조직 원리와 흡사한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발의해서 새정치연합의 신계륜 사회적경제위원회 위원장과 조정안을 만든 <사회적경제기본법>에 관한 상임위원회 토론에서 나온 말이다. 도대체 사회적 경제의 어느 면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조직원리’란 말일까? 지난 몇 년간 만들어진 1,300개의 사회적 기업, 7,000개의 협동조합이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이란 말인가? 수 십 만의 생협 조합원들, 그 젊은 주부들의 얼굴, 어디에서 사회주의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사회=사회주의=악마?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심각한 양극화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갈수록 내부로부터의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지키는 것은 건전한 보수당의 책무입니다. (중략) 사회적 경제는 국가도, 시장도 아닌 제3의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으로, 복지와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역사적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유승민 의원의 정확한 지적이다. 사회적 경제는 자율과 자립의 조직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전 세계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장기침체에 시달리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에 발맞춰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고,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사회적경제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법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이다. 원리상으로 봐도 사회적 경제는 인간의 상호성에 입각해서 연대라는 가치를 달성하는 경제로, 재분배를 통해 평등이라는 가치를 달성하려는 공공경제와 구분되며, ‘명령경제’로 일컬어졌던 현실의 국가사회주의와는 상극에 가깝다.

 

‘사회’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세력
“폴라니연구소 자체를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서울시가 폴라니연구소를 지원한다면 하이에크연구소도 유치하고 지원해야 한다. 박 시장의 이념 정체성이 드러났다고 할 것인가. 서울을 사회주의 센터로 만들겠다니.”

- 한국경제신문 사설

 

내가 몸담고 있는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에 대한 공격이다. 폴라니는 ‘자기조정적 시장경제’는 유토피아이며 시장의 원리로 사회를 조직하면 사회는 찢어진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지만, 현재의 장기침체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는 시장경제와 함께 공공경제, 협동경제(사회적 경제)가 어우러지는 다원적 경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도대체 ‘사회’라는 낱말만 나오면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의 지적 수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협동조합 도시, 서울’을 ‘사회주의 센터’로 둔갑시키는 이 발상은 37년이 지났는데도 변함이 없다. 이들은 왜 ‘사회’를 앞세워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의 보수당 출신 캐머런수상을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하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