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밑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다 - 김현우 회원

 

밑빠진 독에서도 콩나물은 자란다

어느 보수주의자의 역사공부 - 김현우 회원

 

글. 김동환 오마이뉴스 기자, 참여사회 편집위원
사진. 이선미 

 

“사람은 보통 자기가 해왔던 대로, 익숙한 대로 살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죠. 저는 보수 성향인데, 참여연대 강의를 듣고 참여사회를 읽으면 생각의 폭이 넓어져서 좋더라고요.”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정갈하게 정리된 짧은 머리칼에 또렷한 눈빛. 의견을 물으니 경험을 답해온다. 해병대를 전역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단단해 보이는 제주도 출신의 이 남자.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뚱한 얼굴로 “국가와 사회, 가족과 내 직장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게 진짜 보수아니냐”고 반문한다. “진보에는 원래 관심이 없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참여연대 회원 김현우 씨다.  

참여연대 간사들은 김 씨를 ‘역사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어 오타쿠를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로 부른다. 지난 10년 가까이 참여연대에서 주최했던 주요 역사 강의들을 빠지지 않고 섭렵해왔기 때문이다. 각별히 좋아하는 구간은 한국의 근현대사다. 그는 한국 사회와 한민족이 역사를 통해 이 시기의 잘못을 앞으로는 반복하지 않게끔 만드는 방법에 관심이 많다. 대학 전공은 농학이었지만 이 때문에 북한학 대학원까지 다녔다. 
평범한 직장인 아저씨치고는 다소 특이한 이력이다. 무엇보다 ‘참여연대’를 후원하는 ‘역사 덕후’ ‘보수주의자’의 작동원리가 궁금했다. 이 사람,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하시는 일이 궁금합니다. 
현재는 농협에서 가공식품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식품 유통 쪽에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일단 태어난 곳이 농촌이고 대학 때 농학을 전공했어요. 제주도 서남쪽에 대정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가 제 고향이죠. 어렸을 때부터 한 필지(750평)씩 맡아서 밭농사하고 그랬어요. 농협에는 1994년에 입사했고 서울에는 2005년에 오게 됐죠.

 

    참여연대는 언제 알게 되셨나요?
처음 알게 된 건 2000년 낙선운동 때였죠. 그러다가 정식 회원가입은 천안함 가스통 사건 때 했어요. 보수단체 할아버지들이 가스통·시너를 들고 테러위협을 하는 걸 보고 ‘저렇게 하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여사회는 잘 보고 계신가요?
오면 항상 찬찬히 잘 읽어보죠. 특히 저랑 (성향이) 맞지 않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잘 안 맞으신다고요?
네. 사실 명확한 구분법은 모르지만. 저는 보수주의자거든요.(웃음)

    

    보수와 진보를 어떻게 구분하는데요?
보수는 국가와 사회, 내 직장을 위해서 자기희생을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죠. 진보는 그보다는 개인, ‘나’에 더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 같아요. 저는 진보 쪽에는 원래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럼 보수주의자라는 근거를 좀 들어주세요.(웃음)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하는 게 보수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저는 2007년부터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전공했어요. 직장인이 회사에서는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남북문제를 푸는 공부를 한다는 게 보수라 할 만한 부분이 아닐까요.

 

    논문도 쓰셨나요?
논문을 아직 못 써서 창피한데(웃음) 남북경제협력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농산물 유통 쪽이요. 지금 남측은 농산물이 남아돌아서 문제고 북측은 모자라서 문제이니 얼마든지 상호 협력을 통해서 ‘윈윈’할 수 있는 길이 많거든요. 

 

    참여연대 가입한 후에 근현대사 강좌를 많이 들으셨던데 그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네. 기본적으로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니까요. 조선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를 맞았잖아요. 그게 1945년 해방과 함께 끝나는데 그 후 1948년 8월까지 3년간의 해방정국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측면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상당수 문제가 거기서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벌어졌다고 생각해요. 

 

    어떤 점이 그렇나요?
일단 남과 북이 공존하는 게 아니고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난리잖아요. 특히 최근 우리사회의 모든 이슈의 저변에는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가 깔려있어요. 하다못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부에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북한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도 ‘종북세력’이냐 아니냐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저도 이상하게 보더군요. 저는 해병대 장교 출신인데 아마 그런 ‘확실한’ 전력이 없었다면 오해 많이 샀을 거예요.

 

    한국 역사에서 지금 우리가 참고해 볼 만한 ‘좋은 사례’는 없나요?
역사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근현대사에는 그런 게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사회 지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사례가 희귀하죠. 

 

    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잘못된 사건들이나 정책들에 대한 평가와 책임지우기가 이뤄지지 않았어요. 우리가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독재를 무너뜨린 건 인정하지만 독재에 부역했던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안하잖아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사회 기득권 세력이 됐지요. 이런 사례들이 쌓이면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려고 하지 않아요. 순간의 이익에 따라서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이게 되지요. 지금은 우리 사회에 ‘정직한 사람만 손해’라는 기조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박상옥 대법관 문제도 그렇잖아요.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거죠. 박종철 열사 사건 때 주임 검사했던 사람이 오늘날 대법관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사회에 모종의 신호를 줍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기회주의자는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보수주의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죠?
진정한 보수라면 그런 사람은 당연히 반대해야 해요. 누가 전두환 5공화국을 민주정권으로 인정하나요. 그렇다면 그 시기에 정권에 적극적으로 버팀목이 됐던 사람들은 지금 시대에 또 쓰면 안 되죠. 그건 국가와 민족에게 나쁜 짓이에요. 

 

    참여연대가 얼마 전 20주년을 맞았는데요. 역사적 관점에서 참여연대는 어떻게 보시나요?
얼마 전에 적절한 표현을 찾았어요. ‘사회의 호루라기.’ 참여연대는 그 정도 역할을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집에 도둑이 침입했을 때 짖어주는 역할이죠. 기회주의자들이 사회 지도층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계속 경고등을 깜빡여 줬으면 좋겠어요.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아내와 애들 3명 있어요. 고3, 고1, 중2. 요즘은 저출산이라고 나라에서 출산 장려하잖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3명이나 낳았으니까 보수가 확실합니다.(웃음)

 

    아이들도 역사를 좋아하나요?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유적지 같은 곳을 함께 가는데 아직 저처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학교에서 역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것 같더라고요. 역사를 맥락으로 가르쳐야 관심을 가지고 배울 텐데 단순 암기시키듯이 가르치니까 애들도 싫을 것 같아요. 큰애는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래도 꽤 아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 무슨 대화를 하다가 ‘역사를 망각한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얘기를 인용하는데 뿌듯하더라고요.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게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공무원 시험에도 역사과목이 없어졌잖아요. 수능이든 공무원 시험이든 그거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안타깝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요? 
콩나물 키워보셨어요? 콩나물 키우는 시루 보면 밑이 빠져있어요. 물을 줘도 물이 다 빠져버리죠. 그런데 나중에 보면 콩나물은 자라있거든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주변에 콩나물 물 주듯이 관심을 나눠준다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관심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지지 않을까요? 한강이 얼었다고 할 때 기준이 어디인지 아세요?

 

    어디인가요?
한강대교 북측 3번, 4번 교각 사이에요. 지금은 기상청 본청이 영등포구 대방동에 있지만 예전에는 종로구 서울교육청 뒤편에 있었거든요. 거기 공무원들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다리가 한강대교였대요. 그래서 그게 기준이 된 거죠. 이런 것도 다 재미있는 역사랍니다.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다녀본 역사 유적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좋은 유적지에 가면 그 시대의 전반적인 시대상이 한눈에 들어와요. 군산이 대표적인 곳이죠.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들어와서 살면서 호남 쪽을 쌀 생산지대로 돌렸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요.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까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은 제주도예요. 여담이지만 6.25때는 육군훈련소가 제주도에 있었답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때 한국 해병대 3기와 4기가 참전했는데 대부분 제주도 젊은이들이었어요. 정부가 부산으로 철수하는 바람에 징병을 제주도에서만 했었거든요. 

 

    끝으로 참여연대에 한마디 하신다면요.
우리 사회에 대해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에요.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데 지금은 너무 획일적인 부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소신 있는 생각과 다름이 인정되는, 다양성과 보편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회를 위해 참여연대가 호루라기 역할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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