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정치의 장치裝置

 

무기력한 야당, 
무엇이 문제인가?

 

 

사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패널.     황미정 주부, 출판·교육업, 참여사회 편집위원
           박성민 민정치컨설팅 대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정리.     이선희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 기자
사진.     오유진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 질 녘 사물의 윤곽이 희미해지면서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유권자들, 특히 야당 지지자들에게 선거는 그런 시간이 되었다. 미니 총선이라 불리는 4.29 재·보궐 선거에서 야당은 4:0으로 참패했다. 여당이 잘 해서 승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도대체 야당은 무엇이 문제고, 다가오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무력한 정치판을 시민들이 바꿀 수는 없을까? 여러 가지 고민 속에서 시민과 정치평론가가 모여 야당의 문제와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황미정    선거에 졌다는 사실보다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났어요. 제가 지금 40대 중반인데, 저희 세대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부터 유권자였거든요. 공사장에서 번 돈으로 민주진영 후보 후원금도 냈던 세대인데, 20년이 흘러도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복경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안 드세요?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황미정    ‘야당’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어요. 적어도 2번(야당)이 1번(여당/새누리당)보다 도덕적이고 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이나 다를 게 없는데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오히려 그런 의식 때문에 한국정치가 발목 잡힌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2번을 없애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새정연이 없는 판에서 시작해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서복경    크게 실망을 하신 것 같아요. 도덕성도 없고 서민을 위하는 것 같지도 않고 1번이랑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생각이 드나요?

 

황미정    세월호만 봐도 자기 일처럼 열심히 안 하잖아요. 정책도 새누리당을 쫓아가는 거 같아요. 이번에 성완종 사태가 터지기 전에 재·보궐 선거에서 ‘책임 있는 경제정당’ 이런 슬로건을 걸었는데, 우리도 집권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이미지 메이킹 말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이 없어요. 정책이 새누리당과 구별이 안 될 뿐 아니라, 집회든 어디든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현장에도 없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야당이라고 하면 새로 정치인이 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지금은 없잖아요.

 

서복경    현장에 없다는 것과 새누리당과 정책적 차이가 없는 것, 새로운 인물이 없는 것을 포함해 세 가지 문제제기를 하셨어요. 이런 의견에 대해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집권 보다 중요한 공천권 나눠먹기?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김윤철    정당이 제대로 잘 되려면 목표와 인물, 조직의 세 가지 요소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해요. 그런데 새정연의 많은 의원들이 낡은 인물들이라는 거죠. 그들에게는 왜 계속 정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없어요. 안철수 의원한테 인재영입위원회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했죠. 지금 누가 새정연에 오겠냐는 뜻 아닙니까? 조직 기반이 무너져 있는 문제도 있고, 계파 갈등이나 리더십의 문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런 중에 새정연에 들어가서 순탄하게 클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죠. 단적으로 새누리당은 2004년 불법 선거자금 문제로 위기에 직면했을 때 천막당사 치고 김형오씨가 인재를 찾으러 다녔거든요. 새정연은 ‘전망 없음’ 속에서 그런 노력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난닝구(민주당 내 호남계)-빽바지(민주당 내 친노무현계) 갈등이 반복되는 거예요. 언론의 이미지 씌우기도 있지만 그 정당에 가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지요. 그러니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수 없고, 정당도 정체되는 거죠.

 

서복경    문제의 원인은 조직이고, 조직 문제의 핵심은 이질적이라는 건데….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김윤철    글쎄요. 문재인 대표가 당원들에게 쓴 편지가 실수로 공개됐다고 하는데, 다들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것이 어떤 파장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서로 다 양보할 수 없는 지점에 온 거 같아요. 한쪽에서는 호남 신당 얘기하고, 문재인 대표 쪽은 당을 흔드는 사람들을 묵과할 수 없다고 하는데, 국민들 눈에는 공천권 싸움으로 보이는 거죠. 문재인 대표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다고 하지만, 호남계 사람들에게 기득권이 갔을 때도 잘 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거죠. 이 기회에 정책이나 노선에 있어 동질성이 높은 사람들끼리 당 질서를 새로 세우든지, 분당이든 신당창당이든 야권 전체 차원에서의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어요.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박성민    분당할 정도의 힘이 있었으면 이 당은 벌써 혁신했어요. 이번에 또 혁신위원회 만든다고 하는데 지방선거 전이나 총선 패배 후, 대선 패배 후에 혁신이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없어요. 동력이 있어야 하니까 총·대선 앞둔 시기거나 대주주가 전면에 나섰을 때 혁신이 성공했어요. 박근혜가 2011년 비대위원장 할 때는 당명 바꾸고 사람만 바꿔도 혁신이 됐거든요. 야당은 대주주가 없는 상태잖아요. 가능한 시나리오가 세 개 있어요. 첫째 문재인 대표 체제가 조기에 붕괴하고 전당대회로 간다, 둘째 문재인 대표로 총선을 치른다, 셋째 지금은 문대표 체제로 가지만 겨울에 비대위로 간다. 현실적으로 3번이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정청래, 유승희, 오영식, 전병헌 의원 지역구가 다 서울이잖아요. 총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문재인 체제를 붕괴시키죠. 중요한건 누가 비대위원장되는 게 내 당선에 유리한가에요. 문재인 대표는 자기 당선을 우선시하는 국회의원들로 인해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 안 해요. 안철수한테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기려면, 누굴 데려와도 영입 하겠다는 게 조직적으로 담보가 되어야죠. 

 

김윤철    일각에서 제1야당 교체론 얘기가 나오는데 진보정당 포함해서 제1 야당을 이렇게 재편하자고 선언하고 잘 끌고나갈 세력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박성민    새로운 권력구도를 못 만들어 냈기 때문에 권위에 기대고 있죠. 새정연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정당이라고 해요. 이 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또 나서면서 김대중과 노무현과 김근태의 정신을 계승하는 정당, 이런 식으로 자꾸 늘어나죠.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이런 코미디처럼 김대중의 정신, 노무현의 정신, 김근태의 정신, 안철수의 무슨 정치, 안희정의 무슨 정치가 다 붙어요. 정통성 있으니 영역을 건들지 말라는 거예요.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이니까 온정주의가 판을 치는 거죠.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예요. 

 

유권자들은 왜 야당에 등을 돌렸나?

 

박성민    정치인에 대해서든 정당에 대해서든 유권자가 선택할 때는 세 가지 중 하나죠. 첫째 (정당이나 정치인을) 좋아하거나, 둘째 좋지는 않은데 필요하거나, 셋째 상대가 싫어서 찍는 거죠.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 될 때는 팬덤이 있었어요. 거기에 상대 정당이나 후보가 싫은 것이 더해졌죠. 근데 지금의 민주당은 상대가 싫어서 찍는 표에만 의지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됐을까? 
일차적으로는 시대가 바뀐 거 같아요. 김영삼, 김대중이 활동할 때는 독재시대였고, 적이 명확하니까 용기 있는 사람이 인기가 있는 거죠. 독재가 끝나고 3김이 패권을 잡았던 90년대에 노무현은 3김 지역주의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명분이 있었죠. 2000년대는 용기도, 명분도 없는 시대니까 싸워야 할 대상이 애매하죠. 군사독재 시절에는 재야에서 의제를 세팅했고, 90년대에도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경실련 같은 단체들이 국가개혁 의제를 설정했죠. 2000년대 들어서는 그걸 할 만 한 곳이 없어요. 대한민국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 진거예요. 
추상화된 국민들이 야당에 던지는 핵심 질문은 우리가 너희한테 나라를 맡겨도 되겠냐는 거예요. 안보, 경제성장, 남북관계에서 잘 할 수 있을까? 지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선거에서 이겼으면 좋겠다는 거죠. 근데 재·보궐 끝나고 나니 지는 정당이 되는 거 같고, 앞으로 더 질 거 같으니까 화나는 거죠. 근데 새정연은 이런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공천 문제로 돌렸죠. 국민들은 어떤 공천을 통해 후보가 됐는지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관심이 있죠. 정치인들은 자신이 아니라, 대중이나 적어도 지지자들이 분노하는 지점에서 분노해야죠. 근데 기득권 싸움에 그치니까 문제예요.

 

서복경    제가 남편하고 한판하고 시댁을 가도 화기애애한 것처럼 보여주고, 돌아와서 다시 싸우거든요. 민주당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집에서 싸우면 시댁 가서도 인상 쓰고…. 왜 안팎이 구분이 안 될까? 정치가 유권자의 지지를 먹고 사는 직업인데 안에서 할 얘기와 밖에서 할 얘기가 최소한 구분돼야 하는 거죠.

 

박성민    김대중, 김영삼은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가 강했는데 지금 새정연 국회의원들은 그렇지 않아요. 보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안 되더라도 집권해야 나눠먹을 수 있다는 의식이 있어요. 야당은 그게 아니니까 절박함이 없죠. 조폭들도 영역을 확장하려면 피를 보고 싸우는데,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으면 피를 안 보는 거죠.

 

김윤철    새정연이 평소 지지율은 낮은데 선거 때는 조금 올라가요. 국민들이 따로 정치학을 공부 안 해도 견제 세력이 있어야 여당도 야단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새정연이 좋다기보다 제 1야당이기 때문에 표를 주는 거예요. 
시대문제 얘기하셨는데, 예전에는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 때문에 고통 받다가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나타나 그것을 이겨낸다는 민주-진보 내러티브가 있었죠. 사람들이 보기에는 집권도 했었고, 야당 국회의원으로써 누릴 거 누리고 사는데 아직도 그런 서사를 바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얘기를 하는 거예요. 선거제도에 불합리성이 존재하지만 그걸 뛰어넘으라고 야당 뽑아준 건데…. 선수가 경기를 뛰는데 심판 탓하고, 경기장 탓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죠. 
민주화 변동을 겪고 30년이 지났어요. 한국 정치제도가 후졌다고 하는데, 착각이에요. 갖춰져야 할 게임의 규칙은 다 정해져 있어요. 이 자체를 바꾸는 건 큰 변동의 과정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바꾸기 어려워요. 기존 규칙 안에서 잘 해야 하는데 경제민주화, 복지, 안보 이런 문제를 차별성을 갖기 힘들죠. 공무원연금 개혁 같은 문제들은 어느 한쪽이 정의로울 수 없는 문제기 때문에 어떻게 합의하느냐가 중요한데, 이걸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죠.

 

박성민    지금 야당 국회의원들이 80~90년대에 국회의원 했으면 잘 어울렸을 거 같아요. 정의감은 있는데, 사회적 경험이 없어요. 자신의 지지기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르죠. 베이비부머 세대(55~63년생, 68~74년생) 여론조사를 하면 65:35로 새누리당 찍어요. 이 사람들이 일찍이 유신 때부터 사회활동 했잖아요. 동일방직, YH처럼 저임금 노동에 저항했어요. 약간 반정부 의식이 있고, 87년 6월 항쟁,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찍을 때도 주역이었던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 사람들이 2006년부터 다 새누리당 지지로 돌아섰어요. 경제적으로 IMF를 겪으면서 실직했는데 김대중 정부 시절 부동산, 카드 거품 피해를 이 사람들이 고스란히 입었어요.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의제에만 집중했죠. 김대중은 집권하자마자 남북문제 풀려고 했어요. 노무현이 된 다음에는 부동산값 폭등했는데 실생활과 상관없는 4대 입법을 추진했죠.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이 사람들이 이명박-박근혜한테 손 내민 건, 돈 버는 건 포기했는데 떨어지는 아파트 값이나 조금 회복될까 싶은 마음인 거죠. 야당은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손 내미는 게 몸에 배어 있어요. 

 

김윤철    성완종 리스트가 여당한테 불리할거 같은데 왜 선거에 지냐면, 성완종 리스트같은 걸로는 국민들의 관심이나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도덕성 없고 보수화된 게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하는 거죠. 정치야말로 우선순위의 선정이 중요한데, 정치개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걸 해결하는 것이죠. 노무현 대통령이 <유러피언 드림> 얘기한 게 복지국가로 못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쟎아요. 

 

박성민    대중들은 보수는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친구들 식사 대접하는데 ‘이 식당이 기본은 해’ 이런 거 있잖아요. 정말 맛있는 곳은 아니지만 기본은 한다는 거죠. 익숙한 곳에 투표하는 거예요. 이걸 엎으려면 김대중처럼 이인제, 김종필이랑 연합하든가 노무현처럼 정몽준이랑 단일화하든가 별걸 다해야 승부가 되는 거예요. 보통 상상력 가지고는 힘들죠. 
야당 문제는 내년(총선)에 또 당선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새누리당이 97년과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에서 지고 나서야 세상이 변했다는 걸 자각하고 수요모임, 푸른정책연구모임, 국가발전연구회 등 당내에 굉장히 다양한 그룹을 만들면서 혁신을 시작하죠. 지난번 총선에서는 새정연이 의석수를 제법 가져갔는데, 다음 총선에서 크게 져야 혁신을 할 거예요.

 

‘그래도’ 2번 투표, 이제는 그만하자?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황미정    TV에서 정치평론 프로그램도 많이 보고, 정치 팟캐스트도 많이 들으니까 정치가 정말 공학같이 됐어요. 전략이나 전술의 문제가 아니라 열정을 쏟았던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이제 야당이 내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새정연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어요. 사망선고 받은 사람을 두고 무슨 약이 좋은지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는 거죠.

 

박성민    선거라는 게 스포츠와 전쟁 중간에 있는 건데, 세 가지의 공통점은 전력과 전략과 정신력이죠. 좋은 지적을 하셨어요. 야당의 현재 문제는 전략이 아니에요. 전략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선수들이 뛸 체력이 준비돼 있고, 이기려고 하는 정신력도 있고, 감독은 선수단을 장악한 상황에서 나머지가 전략의 문제예요. 야당은 감독이 선수단 장악도 못했고, 체력은 개판인거죠. 여당은 언제 시합이 열려도 알아서 몸 만들고 뛸 준비가 돼 있는데, 야당은 몸 상태가 안 좋아요. 축구로 말하면 중국 국가대표 같죠. 국민들은 월드컵 나가고 싶어서 중동까지 가서 응원하는데 선수단은 경기를 대충하죠. 응원단과 선수의 괴리가 큰 거예요. 그런 점에서 지지자들이 열 받은 거죠. 

 

황미정    근데 사실은 2번을 항상 찍었어요. 새정연 당원이 국민의 40%가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은 새정연 당원이 아니지만 투표 때가 되면 ‘그래도’라는 마음에서 찍었는데, 이제는 ‘그래도’가 폐기돼야 새로운 희망이 있을 것 같아요. 

 

서복경    가령, 내년 총선이 있어요. 2번 버리면 어떤 선택이 남는 거예요?

 

황미정    우리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면, 사표라고 생각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서복경    제 3당든 무소속이든?

 

황미정    네. 그 밭을 키우는 것이 절망을 유예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요. 25년을 유예했잖아요. 20년 전에 지금까지 이렇게 실망할 줄 알았으면 지지 안했겠죠.

 

김윤철    2012년 대선 이후에 전통적 2번 지지자였던 분이 이제는 1번을 더 좋게 만드는 게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비용이 덜 들 거 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새누리당이 좋아지려고 해도 강한 견제 세력이 있어야죠. 3번이나 4번이 강해지면 필요에 따라 2,3,4번이 뭉치면서 진영투표를 통해 견제가 될 수 있는데, 한국 정당정치는 그렇게 되기 어려운 구조가 있죠. 새누리에 가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새정연에 있고, 새정연에 있어야 할 것 같은 혁신파들이 새누리에 있어요. 앞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연을 오가면서 투표하는 스윙보터들도 늘어날 거고, 지도부의 개혁이나 정책에 따라서 새누리당 찍는 게 뭐가 문제냐는 분위기로 갈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하면 야권은 2,3,4를 어떻게 묶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전망이 안 보이는 상황인 것 같아요.

 

박성민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4개 선거구가 다 다른 이유로 등을 돌려요. 성남 중원 같은 경우는 투표율이 떨어졌고, 김미희 표도 생각보다 적게 나왔어요. 지난 10년 동안  ‘정당은 민노당, 후보는 새정연’을 찍어온 유권자들이 투표장에 안 나온 거예요. 야당이 이기려면 자기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한 상태에서 상대방 표를 가져와야 해요. 

 

정체된 정치, 누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참여사회 2015년 6월호

 

서복경    많은 얘기들이 오갔는데, 이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패배하는 야당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윤철    새정연이 실제로 변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카드가 없는 건 아니라고 봐요. 허수이긴 합니다만, 박원순·안철수 이런 분들이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선 후보 지지율이 10% 정도 나와요. 새정연의 마지막 남은 돌파구는 새로운 인물이라는 정치적 자원이에요. 당을 쇄신하려면 새 인물들을 가지고 당을 새로 세워야죠. 근데 벌써 계파 간 담합구조로 가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새정연의 미래는 어둡다고 봐야죠. 문재인 대표가 해야 할 역할은 총선까지 가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을 세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박성민    야당은 정치를 사유화 하면 안돼요.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호남 정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화 정신이에요. 노무현 대통령도 봉하 마을이 아니라, 국립현충원으로 가시는 게 맞아요. 애플의 팀 쿡이 스티브 잡스 정신을 다 알죠. 스티브 잡스가 있었으면 식스 플러스 안 만들었겠지만, 그래도 혁신하는 사람들은 더 나은걸 향해 가야 하는 거죠. 야당은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 위임받아서 온 거라는 자각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 해야 여당보다 경쟁력 있는지 스스로 알거예요. 지금보다 더 척박할 때도 박정희, 전두환이랑 싸웠잖아요.

 

황미정    문재인 대표나 새정연에게 뭘 하라고 하거나 2번 찍는 걸 넘어서서, 사회와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행동할 수 있는 메시지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관련된 의제를 제시하고 만드는 것이 진보 진영이 할 역할인거죠. 예전에 낙천·낙선 운동 같은 게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상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윤철    야당이 세월호 문제에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들도 모르는 거예요. 2000년 총선 이후에 정당정치 수준도 높아졌으니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 역할은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는데, 15년 만에 다시 도달한 곳은 시민영역의 정치적 역할이 커진 것 아닌가 생각해요. 낙천·낙선이든 뭐든 정치에 구체적인 지침을 시민들이 공유한 가운데 선거를 맞아야 하는 거죠. ‘내가만드는복지국가’처럼 시민들이 정책 운동을 통해 새로운 역량과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서복경    좋은 말씀 해주셨네요. 이 말씀을 끝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