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12월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문재인이 한 발언은 이미 실천해 오던 정부의 우경화를 공식 확인해 줬다.

장관만 해도 14명이 참석했으니 사실상 내년 경제 기조에 대한 정부의 공식 설명회였다. 이런 자리에서 대통령이 직접 ‘경제 활력을 위한 친기업 지원’을 강조했다. 방향성이 중요하다. 경제 위기에 직면해 이런 방향성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공격을 노골화하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 나서서 기업 투자의 걸림돌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포괄적인 규제 혁신뿐만 아니라 투자 건별, 제품별 투자 애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산 투자는 물론, 신산업의 제품을 정부가 사 줘야 한다고도 했다.

안전한 일자리를 요구하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고(故) 김용균 씨가 생각난다. 문재인 정부가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 나서서” 노동자의 안전과 조건 개선의 “걸림돌”을 해소해 준 적이 있었던가? 사업장별로 구석구석 저임금 노동자들의 “애로”를 살펴보자는 말조차 들은 기억이 없다. 태안화력발소에서 한 청년 노동자가 숨진 날은 문재인이 일자리의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로 그날이다.

올해 초에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생명·안전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첫 해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외주화를 중단하지도, 좋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도 않았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출발점이라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기업주들의 반발로) 크게 약화시킨 것도 문재인 정부 자신이었다. 그나마 제출된 개정안을 국회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에서 뭉개고 있었던 것도 여당 소속 환노위원장 홍영표였다. 그는 지금 여당 원내대표다.

그뿐인가. 정부·여당은 올 초부터 근로기준법 개악, 최저임금법 개악, 의료 영리화를 위한 규제 완화 등을 강행해 왔다. 기업주들이 제조업 대공장 고임금이 투자 걸림돌이라고 지목하니까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자동차 공장(‘광주형 일자리’)을 만들겠다고 요란법석을 떨었다.

이도 모자라 여당은 연말 임시국회 개원을 위해 보수 야당들의 요구 사항인 탄력근로제 확대 개악 처리에 합의했다. 임시국회 합의가 고(故) 김용균 씨 사망 나흘 후 이뤄졌는데도, 관련 법 개정은 개원 협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돌아보면,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을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것이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전교조·공무원 노조 인정,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인정 등.

기업주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관계없이 (최저임금을 포함한) 고임금, 강성 노조를 투자의 걸림돌로 지목해 왔다. 이 점에 비춰 보면,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문재인은 노동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기업주들 편에 서겠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문재인은 최저임금 인상 공약도 포기하겠다고 한 셈이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은] … 경제 사회의 수용성과 이해 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요한 경우 보완 조치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경제 사회”는 사용자를 뜻한다. 노동자 임금 인상에 사용자들의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저임금 적용 대상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해서!

문재인이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친기업 기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마당에, “공기업의 운영이 효율보다 공공성과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어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나.

게다가 이 말 바로 뒤에 강조한 내년 경제정책 16대 중점과제는 각종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 탄력근로 개악 같은 항목으로 가득하다.

이날 회의에서는 기업에 대한 정부 예산 투여와 지원만 나온 게 아니다. 공공기관의 (임금 삭감을 뜻하는) 호봉제 폐지와 직무급제 도입도 추진하기로 했다. 기존에 53개로 제한돼 있던 공공시설 민간투자를 모든 분야로 확대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가 못다 추진했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의 9호선 지하철이나 각종 민자 고속도로는 비싼 이용료와 부실한 서비스 때문에 불만이 팽배하다. 출퇴근 시간대의 9호선은 압사자가 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상황이다.

문재인은 지난해에 자신이 “친노동, 친기업”이라는 모순된 말을 했지만, 실천은 “친기업” 반노동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문재인이 공공시설 민간 투자와 공공성을 동시에 말하는 걸 보면, 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기조를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은 나빠지는 경제 상황에 직면한 사용자들의 요구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 투자를 이끌어 내면 일자리가 늘어 지지율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장기화되고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경제 침체 때문에 기업주들이 바라는 투자 조건은 최대한의 인건비 억제와 비용 절감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에 무임승차해 집권했으면서, 촛불 염원 실현에 거리를 두더니, 결국 촛불을 모욕하는 길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년 전 겨울에 촛불을 들어 박근혜를 쫓아냈던 사람들의 염원과 자부심이 단지 저질 일자리라도 감지덕지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문재인의 완전한 착각일 것이다.

2018년 12월 18일
노동자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