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갑질 경쟁’, 아시아나 박삼구 회장 혼맥 분석

아시아나항공을 주력사로 둔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이 경쟁사이자 국적항공사인 대한한공 대주주 일가와 마치 ‘갑질 경쟁’이라도 하듯 국제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항공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는 두 그룹 대주주의 어처구니없는 각종 갑질과 비리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신뢰도에도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어 엄정한 사법처리와 함께 기업지배구조 차원에서 획기적인 변화나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박삼구 회장이 지주회사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호지분과 자금을 추가로 무리하게 확보하는 과정에서 ‘기내식 파동’을 일으켜 기내식 협력업체 대표의 자살을 초래하고, 여직원들에게 상식 이하의 ‘회장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성추행이나 다름없는 신체접촉을 상습적으로 자행해 국민적 분노와 함께 국제적 망신을 초래한 것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과 부인 및 자녀들의 온갖 비행들이 불러온 ‘오너 리스크’에 못지않은 심각한 사태다.

금호그룹은 누가 뭐래도 호남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기업이다. 금호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 인수라는 대형 M&A에 성공하면서 한 때 재계 서열 7위까지 오른 적이 있다.

그러나 건설경기 불황과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사태로 촉발된 미국 발 금융위기 여파로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가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5년 이상이 걸렸다.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지자 우애가 좋다던 박삼구(朴三求·73: 박인천의 3남) 회장과 동생 박찬구(朴贊求·70: 4남) 사이에 이른바 ‘형제의 난’까지 벌어졌다. 형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화학부문 회장직을 맡고 있던 동생 박찬구를 해임하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결국 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으로 쪼개졌다.

이후 구조조정 노력 끝에 2014년 금호산업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 조건부 워크아웃을 졸업한데 이어, 같은 해 12월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도 각각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의 굴레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이후 5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박삼구 회장은 위기 당시의 시련과 교훈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과 장남 조양호 회장 가족 못지않은 막강한 혼맥으로 형성된 쟁쟁한 가문을 배경으로 둔 탓에 자연스레 체득된 ‘갑질’ 성향이 이번에 터져나온 것일까?

박인천(朴仁天): 1901.07.05.-1984.06.16) 창업주가 지난 1946년, 1937년형 5인승 포드 자동차 2대로 전남 광주에서 시작한 택시 사업이 모태가 된 금호그룹 대주주 가문의 특징은 영남권의 명문세가와 사돈을 많이 맺었다는 점이다.

1901년 전남 나주군 죽포면 동산부락에서 출생한 박인천 창업주는 슬하에 5남3녀를 뒀다. 이들은 유력한 가문과 혼인관계를 맺으며 거대한 혼맥을 구성했다.

장남 박성용, 청와대 경제담당 보좌관 지내

박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용(朴晟容: 1932-2005) 씨는 미국 유학 중 만난 마거릿 박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마거릿 박은 전 벌링톤 저축은행 부총재였던 알버트 나이트 씨의 딸이다. 고 박성용 씨는 1955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일리노이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3년 동안 교수생활을 하다 귀국, 청와대 경제담담 보좌관과 경제기획원장관 특별보좌관을 지냈다. 이어 서강대 경제학 교수를 4년 동안 지내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금호실업 사장으로 경영진에 합류한다.

박성용 전 회장의 딸 박미영(53) 씨는 캐나다에서 불교 관련 일을 하고 있고,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아들 박재영(朴宰永·49)씨는 구자훈(具滋薰·71) LIG문화재단 이사장의 3녀 구문정(具文貞·43)씨와 결혼했다. 구자훈 이사장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1911-1975)씨의 아들이다. 박인천 가문은 이 결혼을 계기로 삼성·현대·한진·두산·대림·한일 등 국내 굴지의 재벌들의 혼맥 중심에 들어간 셈이다.

차남 박정구의 세 딸, 모두 재벌 가문으로 출가

박인천 창업주의 차남인 박정구(朴定求: 1937-2002) 전 회장의 부인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 씨의 딸 김형일(72) 씨다. 김익기 의원은 박병규 해태그룹 창업주와 사돈이고, 해태그룹 창업주 박씨는 민병권 전 교통장관과도 사돈이다.

고 박정구 회장은 3녀 1남을 뒀는데, 장녀 박은형(朴恩瑩·48) 씨는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의 차남 김선협(金善協·49) 포천아도니스 사장과 결혼했고, 차녀 박은경(朴恩慶·46) 씨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인 장세홍(52) 씨와 결혼했다. 장상돈 씨는 동국제강 창업주 장경호 회장의 6남 4녀중 6남이다. 박정구 전 회장의 3녀 박은혜(朴恩惠·42) 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許栽銘) 씨와 결혼했다.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의 매형은 김황식 전 국무총리이고, 영풍그룹 최창근 회장과도 사돈이다. 영풍그룹 최창근 회장은 조선일보 방우영 전 회장과도 사돈이다.

3남 박삼구의 장인은 한국은행 총재 지낸 이정환 전 재무장관

창업주의 3남 박삼구 씨의 장인은 부산 출신으로 재무부장관과 한국은행·산업은행 총재를 지낸 이정환 씨다. 관계로 진출하기 전 연세대 경제학 교수와 상경대 학장을 지낸 이정환 전 장관은 정종만 전 동양증권 사장 집안과 딸 혼사를 맺었고, 정 사장은 또 정인환 전 동양화재 사장 집안에서 며느리를 받아들여 겹사돈을 형성하고 있다.

창업주의 4남인 박찬구 씨는 마산 출신인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딸 위진영 씨와 결혼했다.

5남 종구 씨, 국무조정실 정책차장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지내기도

한편 다섯 아들 중 막내인 박종구(朴鍾九·60) 초당대 총장은 동갑내기인 이계옥 씨와 결혼했다. 박종구 총장은 미국 시라큐스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 귀국한 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기획예산처 산하 공공관리단 단장으로 관계에 진출하여,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과 국무조정실 정책차장을 거쳐 과기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과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을 차례로 지냈다. 이후 아주대 총장직무대행과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을 지냈다.

박종구 총장은 금호그룹의 기업경영과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박 창업주의 딸들도 대부분 유력한 가문으로 출가했다. 장녀 박경애(朴敬愛·84) 씨는 경상도 출신 배태성 전 제헌의원의 아들 배영환씨와 결혼했다. 둘째 딸인 박강자(朴康子·77) 씨의 남편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강대균(姜大均·77) 대한전자재료 회장이다.

3녀 박현주 씨의 딸 임세령 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했다가 이혼

박인천 창업주 셋째 딸 박현주(朴賢珠·65) 씨는 전북의 재벌기업인 미원그룹(현 대상그룹) 창업자인 임대홍 씨의 장남 임창욱(林昌郁·69: 대상그룹 명예회장) 씨와 결혼해 전남 재벌과 전북 재벌의 혼인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어 임창욱-박현주 부부의 장녀인 임세령 씨가 1998년 6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당시 상무와 결혼해 ‘미원과 미풍의 만남’으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2009년 이혼한 이재용-임세령 부부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남겼다.

네 아들 경영 뛰어들어 아버지 아호 딴 지주회사로 재벌 도약

박인천 창업주의 다섯 아들 중 막내인 박종구 초당대 총장을 제외한 네 아들 모두 아버지를 도와 금호그룹을 재벌의 반열에 오르는데 기여했으나 장남과 차남은 모두 폐암으로 작고하고 지금은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1972년 10월 박인천 창업주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그룹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지주회사를 설립하자고 제안하자, 박인천 회장은 흔쾌히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룹 전체를 대표할 지주회사의 이름이었다. 장남 박성용을 비롯한 아들들은 아버지 아호인 금호(錦湖)를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박인천 회장은 ‘아호도 이름인데 어떻게 자기 이름을 회사 이름에 갖다 붙이느냐’며 반대한다.

그러자 장남 박성용은 “아버님 호를 쓰게 되면 기업에 대한 저희들의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창업자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는 본능이 있거든요. 저희들이 아버님 성함이나 다름없는 호를 회사 이름으로 쓰게 되면 아버님 명예를 지키려고 더 열심히 노력하고 조심하지 않겠습니까?”

아들들이 이렇게 설득하자 박인천 회장은 마지못해 자신의 호를 지주회사의 이름으로 사용할 것을 허락한다.

셋째아들인 박삼구 현 회장은 어릴 때부터 다섯 아들 중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들어왔다고 한다. 게다가 수리(數理)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사례. 박정희 정부가 1967년부터 시작되는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2대 핵심사업의 하나로 석유화학공업을 선정했다고 발표한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석유화학의 계열공장 11개를 건설하고 각 공장의 실수요자를 모두 민간기업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신문기사를 보고, 박삼구는 이 계획에 맞춰 합성고무 공장 건설을 추진하자고 아버지에게 제안한다. 아들의 건의를 받은 아버지 박인천은 당시 장기영 경제기획원장관 겸 부총리를 만나 버스회사와 타이어공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합성고무 실수요자로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장기영 부총리는 그 자리에서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지금의 (주)금호석유화학이 탄생했다.

전남 나주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박인천 회장이 광주에서 주로 살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사업이 목화, 즉 실면(實綿)을 취급하는 장사였다. 이어 잡화상을 하다 여의치 않자, 8살 때 양자로 입적한 백부의 토지 20두락을 저당 잡히고 당시 돈 3천원을 마련하여 고리대금업까지 손대게 된다. 고리대금업은 한마디로 ‘돈이 돈장사’를 하는 것으로,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이 땅에 상륙해 가난한 이들에게 애환을 안겨준 전당포도 넓은 의미에서 고리대금업의 일종이었다.

고리대금업 등이 자신의 천성과 소질에 맞지 않음을 느낀 박인천은 목포로 내려가 쌀장사(미곡상)도 해보고, 볏짚으로 짠 가마니 장사와 무명 장사(白木商)도 하다 모두 실패하자, 아예 직업을 바꿔 순사(요즈음의 순경) 시험을 보기로 결심한다. 일제 식민지 통치 하의 순사는 ‘울던 아기도 그치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였다.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조선의 보통사람들에게 일제 순사는 한편으론 원망과 분노의 대상이기도 했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하던 현실에서 순사가 되는 것이 ‘출세’로까지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24세 청년 박인천이 순사가 된 것은 일제 식민지 통치가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원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일푼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며 한 때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던 금호그룹 창업주 박인천의 기업가 정신은 별도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금호그룹은 누가 뭐래도 호남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기업이다. 실제 박인천 회장은 1952년부터 무려 25년 동안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21세기 아태 시대 주역항공사 되겠다 다짐...오너 갑질로 위기 자초

금호그룹이 국제선 취항을 시작하며 국적 항공사로서 본격 출항한 것은 그룹 도약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90년 1월 10일. 이날 아시아나항공이 서울-도쿄 노선에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B737-400 9번기를 처음으로 취항해 국제선에도 복수민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 박인천 회장의 네 아들과 미망인 이순정 여사와 500여 명의 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 3층 대합실에서 열린 이날 취항식에서 황인성 아시아나항공 사장(나중에 김영삼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냄)은 인사말을 통해 “국제선에도 우리나라 복수민항의 새로운 장을 연 만큼 사회에 봉사하고, 국위선양에 기여하는 국민의 기업으로서 세계 최고수준의 서비스 체제를 구축,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주역 항공사로 성장해 나아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다짐과 달리, 박삼구 회장은 상상할 수 없는 갑질과 사실상의 성추행을 일삼아 유례없는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박인천 회장이 작고한 후 34년이 지난 7월 6일(금) 서울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집회와 행진을 통해 아시아나 직원들은 “박삼구 회장, 퇴진하라!”를 외치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8일(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열고, ‘박씨 일가와 부역자들의 퇴진’을 외쳤다.

박삼구 회장의 부친 박인천이 작고하기 바로 전 날인 1984년 6월 15일 파란만장했던 84년 생애 마지막 안간힘을 써가며 붓을 들고 쓰려고 했던 문구는 ‘대학(大學)’에 나오는 ‘덕자본야 재자말야(德者本也 財者末也)’였다고 한다.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맨 나중’이라는 뜻이다. 박삼구 회장의 모친 이순정(李順貞: 1910-2010) 보살의 법명은 ‘선행화(善行華)’였다.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맨 나중”...선친 유지는 간데없어

박삼구 회장은 왜 부모의 이 같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두 번째 집회를 연 8일(일) 저녁 9시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 미국 LA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타이어 문제로 3시간 동안 비행하다 기체결함(앞쪽 타이어 압력 감소)으로 태평양 상공에서 9일 밤 0시 40분경 회항해 새벽 4시에 인천공항으로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적기를 운행하는 대한항공 대주주 가족들의 각종 갑질과 기행에 이어 아시아나항공 회장의 갑질과 사고가 잇따르자 SNS에서 네티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 네티즌은“이제 해외로 가려면 배 타고 가야 하나?”라며 자조 섞인 분노를 표출했다.

먼지 나는 신작로에서 택시 2대로 시작해 고속버스 사업에 이어 5대양 6대주 하늘까지 누비는 아시아나항공과 박삼구 회장은 정녕 길(道)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항용유회(亢龍有悔), 너무 올라간 용이 추락하여 후회하는 일만 남은 것일까?

박삼구 회장이 맞고 있는 위기는 부실과 경기침체에 따른 위기와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 사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엄청나게 변화했고,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함께 국민들의 의식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특히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촛불혁명으로 99% 시민들은 불평등, 불공정, 특혜와 반칙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박인천 창업주 큰형 박성천 장손가족, 부산저축은행 분식회계·횡령 사태 일으켜

7년 전인 2011년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이 2005년부터 6년 동안 흑자 분식회계 등을 통해 대주주 가족에게 모두 329억 원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불법대출 및 횡령 등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파문의 주인공들은 바로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맏형인 박성천 씨의 장남(박상구)과 장손(박연호) 가족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이 1조6800억 원, 부산2저축은행이 8500억 원씩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었음에도 박연호(朴然號·68) 회장 형제와 가족 등이 2008년과 2009년 장부상 흑자가 난 것처럼 꾸민 뒤 각각 77억여 원, 25억8천만 원을 배당받았고, 2010년에는 25억8천만 원을 배당받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추가로 연봉과 상여금으로도 2005-2010년 6년 동안 모두 191억 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부산저축은행 회장을 맡고 있던 박연호 씨는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맏형인 박성천(朴聖天·작고)의 장손이다. 당시 박 회장의 두 딸도 부산상호저축은행의 대주주로 각각 2.35%와 1.95%(2010.12.31. 기준)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박 회장의 남동생 2명과 누이 2명도 부산상호저축은행의 대주주였다.

이들의 부친으로 0.97%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던 박상구(朴祥求·95) 명예회장은 박인천 창업주의 장조카로 1943년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숙부인 박인천 씨가 설립한 광주여객에서 1946년부터 근무해 삼양타이어(금호타이어의 전신) 사장 및 회장을 지냈고, 박인천 회장의 동생인 박동복(朴東福: 1906-1989)이 형님의 금호그룹과 결별, 도가산업을 설립하자, 그 회사의 회장도 지냈다. 그러다 부산으로 건너가 1989년 부산상호신용금고, 1999년 부산2상호신용금호 회장을 각각 지낸다. 이 두 개의 상호신용금고 회사가 각각 부산저축은행과 부산2저축은행으로 발전하여 박상구 씨는 2002년 두 저축은행의 회장까지 지낸다.

7년 전 부산저축은행그룹과 삼화저축은행 등 8개 부실 저축은행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수사 결과, 이들 저축은행 대주주들과 경영진은 금융감독원·금융위원회를 넘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살포하고, 감사나 사외이사 등에 평소 인맥을 쌓아온 정·관계 전·현직 인사와 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경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당시 부산저축은행그룹 등에서 압수해 온 대출기록을 분석한 결과, 부실 대출 규모가 수 조 원대로 드러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목포상고 동문인 박상구 전 회장은 1980년대 초 숙부인 박인천 회장을 도와 삼양타이어 회장으로 일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목포상고동창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의심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엄청난 정치적 압박을 받자,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금융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상구 전 회장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장소로 왜 부산을 선택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박삼구 현 금호그룹 회장의 장인 이정환(李廷煥: 1919-2008) 전 재무부장관이 부산 출신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이정환 장관은 부산 동래고등학교와 일본 동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수산대, 부산대, 연세대 교수를 거쳐, 농협중앙회 회장, 한국은행 총재,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상임위원, 재무부 장관,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을 차례로 거친 뒤, 1985년부터 7년 동안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는 등 학계·관계·재계를 두루 거친 거물이었다.

한편, 수 조 원대의 금융비리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박연호 회장은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2년, 김양(61) 부회장은 징역 10년의 중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박 회장은 (주)부산저축은행, (주)부산2저축은행, (주)중앙부산저축은행, (주)대전저축은행, (주)전주저축은행의 최대주주 겸 회장으로서 부산저축은행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었다.

참고자료:
= (금호 박인천 장편전기소설) 길 위의 길, 집념; 이창동 지음; 1996;
= 재벌의 뿌리(한국 최고경영인 20인); 박동순 편저; 1980;
= 재벌 25시(1982년 조선일보 연재; 1987년 전집으로 발행) 제1권;
= (야망의 25시) 한국의 재벌들; 박동순 저; 1987;

취재: 신학림 전문위원, 박중석 기자
인터랙티브 그래픽: 임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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