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문규현 신부의 차는 낡았습니다. 2009년 이후 지금까지 46만 킬로미터를 달렸다고 합니다. 그 차를 타고 신부는 전주에서 부안으로, 다시 서울로, 성주로, 지리산으로 갔습니다. 신부는 그곳에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신부는 때론 온 몸을 던져 평화를 지키려 했습니다. 2005년, 65일 동안 삼보일배를 행합니다. 해창 갯벌에서 서울까지 걸었습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벌어진 새만금 사업에 맞서기 위해서였습니다.

▲ 새만금 생명평화운동 당시 문규현 신부

2009년에는 오체투지 순례를 시작합니다. 가톨릭 사제임에도 불교의식을 수행한 것입니다. 막 드러나기 시작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체투지는 이마와 양 팔꿈치, 양 무릎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대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입니다. 하루에 고작 3, 4킬로미터 정도밖에 걷지 못합니다. 발이 부르트고, 무릎에 피멍이 들지만, 신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명과 평화의 길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한 평도 안 되는 땅에 경배하고

그곳에 있는 온갖 생명에 존경을 표하고 일 배를 하고

일 배를 하는 순간에 눈앞에 보인 것은

풍뎅이 한 마리가 내 땀 한 방울에 푸드덕 날아서 기어가는데

이 땀이 너에게 힘이 됐다면, 너는 내가 또다시 가는 힘이구나.

문규현 신부

형 문정현 신부는 2005년 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평택 대추리에서 2년 2개월, 2009년에는 폐허가 된 용산 남일당에서 10개월을 보냅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지금까지 제주 강정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국가안보와 개발의 이름으로 벌어진 폭력에 맞섰습니다.

▲ 문정현 신부는 2011년 부터 현재까지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에 살고있다.

평화를 위해서 대추리를 갔고 용산을 갔고 강정에 왔어.

거기에 들어가서 고통당한 사람과 함께하고, 같이 고통을 당하고

매를 맞아도 같이 맞고 벌금을 물어도 같이 벌금을 물고

재판을 받더라도 똑같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그 아픈 곳을 함께하는 이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거죠.

문정현 신부

두 형제 신부는 입으로, 머리로, 글로만 싸우지 않았습니다. 거친 몸싸움도 감내했습니다. 그래서 격렬했고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때론 ‘깡패’ 신부로 불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습니다.

가끔 묻습니다. 왜 아직도 싸우나요? 그렇게 싸워 세상이 달라졌나요? 선뜻 답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평과 정의는 여전히 멀리 있어 보입니다. 두 신부에게 세상은 고통의 이유가 너무 많고 일상의 안녕이 깨져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일은 분명 오늘과 다를 것이라 말합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문정현, 문규현 두 신부의 50여 년 간 삶을 2부작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선보인 <목격자들>의 인물 다큐는 앞으로 계속됩니다.

※ 다시 보기 : 두 신부 이야기 : 1부 분단을 넘어라

취재작가: 오승아
촬영: 정용운
글 구성: 정영미
연출: 박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