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에 대한 국가의 도리

예방접종 후 뇌전증 호소하는 부모들

2017년 12월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한 글이 올라온다. ‘예방접종 부작용 뇌전증 환아의 처우 개선’을 호소하는 것으로, 국가필수예방접종인 디티피 - 소아마비 접종을 받은 뒤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았다는 사연이었다.

정부의 공식 답변 대상이 되지는 못했지만,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우리 아이도 예방접종을 한 뒤 경련을 시작했다’는 비슷한 경험을 고백하는 부모들도 잇따랐다.

접종 10만 건 당 1.7건 꼴로 이상반응

한 해 이루어지는 국가필수예방접종은 2천만 건이다. 그중 최근 5년간 한 해 평균 332건의 이상 반응이 신고되고 있다.  접종 10만 건당 약 1.7건 꼴이다. 예방접종 후에 이상반응에는  발열이나 염증 같은 경미한 증상부터, 뇌전증, 마비 등 중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쇼크에 의한 사망도 보고되기도 한다.

▲ 한 해 이루어지는 국가필수예방접종은 약 2천만 건. 영유아의 경우 접종 종류만 16종에 이른다.

한국은 1995년부터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를 시행 중이다. 1994년 일본뇌염 예방접종으로 영유아 4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도입했다. 이상반응과 예방접종과의 관련성을 심의해 인정받을 경우 국가가 진료비를 보상한다. 예방접종으로 인해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면 장애일시보상금, 사망에 이르렀다면 사망보상금을 지급한다, 국가필수예방접종이 늘어나고, 한 해 2천만 건의 필수 접종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대비하는 사회적 안전장치인 것이다.

매년 꾸준히 보상 신청의 사유가 되고 있는 질환이 있다. 뇌전증이다. 뇌전증은 과거 ‘간질’로 불리던 질환으로,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 이상을 일으켜 의식을 잃거나 발작을 하는 경련 증상이 만성적,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95년부터 2016년까지 뇌전증(소아뇌전증의 일종인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1건 포함)을 사유로 보상 신청을 한 건수는 23건이다. 그중 13건은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예방백신) 예방접종(또는 DTaP/소아마비 동시 접종) 후 뇌전증이 나타났다.

그러나 뇌전증의 발병과 예방접종과의 연관성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실제 2014년 이후, 뇌전증과 뇌전증의 대표적인 증상인 경련 증세로 보상 신청한 12건 모두 기각됐다.

5살 영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목격자들 제작진은 경북 울진을 찾았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의 당사자인 김영준(가명) 군  가족을 만났다. 영준이는 올해 5살이다. 현재 주기적으로 울진과 포항을 오가며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김영준(가명) 군. 올해 5살이다.

영준이가 생후 13개월이었던 2015년 11월 2일에 ‘DTaP/소아마비’ 복합백신 3차 예방접종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39.8도까지 열이 오르며 경련을 했다. 고열을 동반한 경련 증상이 보인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하는 경련이었다고 한다. 당시 영준 군의 진단서에서는 “전날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경련의 원인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 고열을 동반한 경련 증세로 입원한 김영준(가명) 군 (2016년 6월 촬영)

또 2016년 6월과 7월 진료기록을 보면, 상기도(위 목구멍) 감염과 기관지염, 수족구병 등의 증세와 함께 열성 경련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해 8월 일본뇌염 예방접종 직후에 경련을 했다는 의료기록이 있다. 영준 어머니는 “아들이 열성 경련과 열 없이 하는 경련을 수시로 반복했고, 심할 때는 한 달에 5번까지도 경련을 했다”고 말한다.

영준이 어머니는 아들의 열성 경련이 DTaP/소아마비 예방접종 직후 일어났다고 말한다. 예방접종 전에는 증세가 없었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열성, 비열성 경련은 뇌전증의 주요 증상이다.

영준 군은 2016년 5월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영준 어머니는 일본뇌염 접종 후 경련을 겪으면서, 경련의 원인이 예방접종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원인 규명과 함께 예방접종 피해 보상을 신청했다.

그러나 보상 신청은 기각됐다.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피해보상 심의전문위원회는 영준 군이 예방접종을 받기 이전에 이미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두 차례 기각 판정 후, 영준 어머니는 막막한 상황이다. 지난 1년여 동안 아들의 치료비로 들어간 돈이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예방접종 이후 아이가 아프게 됐는데, 나라에서 그걸 인정해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 김영준(가명) 군의 예방접종 피해보상신청 심의결과서, 연관성을 인정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뇌전증의 경우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정받아 보상받기가 쉽지 않았다.  의학적으로 인과성이 밝혀진 바 없다는 게 이유다. 그동안 대부분의 보상 신청은 기각됐다. 그런데, 2014년 사법부에서 뜻밖의 판단이 나왔다. 홍상진(가명) 군 가족이 제기한 ‘예방접종으로 인한 장애 인정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었다.

2014년 뇌전증 환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홍상진(가명) 군은 생후 7개월이었던 1998년에 DTaP 예방접종을 한 후 경련을 시작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홍 군의 경련과 예방접종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있는 의학적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홍 군 가족에게 보상금 240여만 원을 지급했다.

▲ 생후 7개월 때  DTaP 예방접종 이후 뇌전증 진단을 받은 홍상진(가명) 군

홍 군의 경련은 갈수록 더욱 심해졌고, 결국 난치성 뇌전증으로 이어졌다. 2008년 홍 군은 뇌전증으로 장애 2급 판정을 받게 된다. 홍군 부모는 예방접종 피해보상규정에 따라 질병관리본부에 장애일시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현시점에서 난치성 뇌전증과 백신과는 인과관계가 없고” “과거 판례들을 참고해보았을 때, 백신에 의한 가능성이 불명확한 경우”라는 이유로 장애일시보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 2008년 당시, 경련 증세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홍상진(가명)  군

결국 홍 군 가족은 마지막 방법으로 2009년 서울행정법원에 “예방접종으로 인한 장애인정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6년간 이어졌다. 소송의 쟁점은 예방접종과의 연관성 인정 여부,  재판부에 제출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세브란스병원장 명의의 사실조회 답변에서는 DTaP 백신에 들어있던 치메로살 같은 독소 물질이 난치성 뇌전증의 원인을 제공했거나, 홍 군이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를 뇌전증의 소인을 발현시키고 악화시켰을 수 있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또 항소심에서 한 전문심리위원은 “백신과 뇌전증 발병과의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조회 결과만으로는 둘 사이의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과학적, 의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는 없고, 그 결과를 보더라도 단지 관련성을 입증하는 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대한소아신경학회장 명의의 사실조회 답변에서는 “미국 질병통제국의 예방접종 심의위원회 및 한국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심의위원회 모두 DTaP 백신이 영구적인 뇌전증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확인을 한 바 없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6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대법원은 홍 군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예방접종 피해보상의 전제로서 요구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 인과관계일 필요는 없고,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으로 족하다고 밝혔다.

보상을 받기 위한 전제로서 요구되는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장애 등이 원인불명이거나 당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이 있으면 족하다. 예방접종으로 말미암아 원고에게 복합 부분 발작 장애가 발병하였고, 이와 같은 장애가 악화되어 결국 간질(뇌전증) 등의 후유 장애가 발병하였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이 사건 예방접종과 원고의 장애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한 원심의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다.
- 대법원 판결문 중 (2014년 5월)

2013년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전문 보기(PDF)

2014년 대법원 판결문 전문 보기(PDF)

DTaP 예방접종과 뇌전증 발병 간의 인과성을 의학적,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예방접종 후에 시작된 반복적인 경련이 뇌전증에 이르게 되었다는 개연성이 있으므로, 국가는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취지였다.

이 같은 대법원의 판결은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국가필수예방접종사업이 국민의 면역력 강화를 위해 진행하고 있지만, 만일에 발생할 부작용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지고 보상한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인과성이 불명확한 경우까지 폭넓게 보상할 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방접종 피해보상제도는 백신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 취지라면 (정부는) 인과 관계가 없다고 계속 부인할 것이 아니라 백신이 원인이 아니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100% 검증된 게 아니면, 국민을 설득하는 방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계환 변호사 / 홍상진(가명) 군 대리인

 

2016년에는 법원은 이 모 씨가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맞은 뒤 기면증(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장애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예방접종과 기면증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장애보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엄격한 의학적 증명이 없어도 피해보상 판결 잇따라

또 2017년에는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받고 안면마비 증상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80대 남성에게 의학적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시간적 밀접성이 인정되므로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엄격한 의학적 증명이 없더라도 개연성만으로도 예방접종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방접종피해 국가보상제도가 도입된 1995년부터 2017년까지 피해보상신청은 총 1,050건. 보상 결정은 595건. 기각 결정은 452건. 보류는 3건. 보상률은 56.7%이다.

▲ 질병관리본부

우리나라에서 보상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는 곳은 질병관리본부 “예방접종 피해보상심의 전문위원회”다. 심의전문위원회는 ▲ 인과성이 확실한 경우, ▲ 개연성이 있는 경우, ▲가능성이 있는 경우, ▲ 인과성이 불확실한 경우, ▲ 인과성이 명백히 없는 경우 등 5단계로 나눠 각각의 사안을 판단한다. 그런데 인과성이 불확실한 경우는 기각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인과성이 불확실한 증상들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보상체계 연구해야

질병관리본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는 “폭넓은 보상이, 인과성이 불확실한 증상들을 예방접종으로 인한 결과로 오인하게 만들어 예방접종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현상들이 빈발할 가능성 경계하고 있다” 밝혔다, 그러면서 “인과성이 불확실한 증상들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정부는 예방접종 백신별로 부작용 등 안내문을 일선 병원에 배포하고 있지만, 부모들은 이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손영모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전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인과성이 불확실한 경우에 대해 국가가 어디까지 인정하고 보상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하고, 국가보상제도 운용에 대해서 끊임없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방접종 10만 건당 약 1.7건의 이상반응. 0.0017%의 극히 드문 경우다. 그러나 예방접종 부작용을 겪은 사람들의 고통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뇌전증’과 ‘간질’은 동일한 질환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다만 ‘간질’이라는 명칭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낙인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을 따라,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뇌전증’으로 바꾸어 표기하였습니다.

취재작가 김지음
글 구성 이아미
촬영 권오정, 남태제
취재 연출 남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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