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혁1

 

대설주의보가 내린 빙판길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변호사. 민변 언론위원장 이강혁 변호사를 만나보았다. 9년 경력의 기자였던 그는 지금 법조인으로서 언론의 영역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7년 만에 파업에 마침표를 찍은 MBC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동시에 여전히 아픈 손가락인 KBS와 언론 생태계 전반을 걱정하는 그의 솔직한 생각을 알아볼 수 있었다. 반쪽짜리 성공으로 끝날 수 없는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파티의 아름다운 피날레를 위해 오늘도 이강혁 변호사는 달린다. 아이스 스케이팅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지킴이 이강혁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강혁최종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특히 언론위원장으로서 맡은 직무는 무엇인지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언론위원회는 영어로 대외적으로 소개할 때 ‘committee on media’, 즉 ‘언론매체에 관한 위원회’예요. 하지만 언론의 자유는 좁은 의미의 언론매체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표현의 자유 전반으로 이해되기도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잠재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역사적으로 언론위원회는 언론 매체 중심으로 활동을 해왔어요.
처음 언론위원회 조직을 만든 안상운 변호사님께서 언론매체의 문제, 그중에서도 언론의 왜곡·과장 보도로 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작했어요. 이걸 중심으로 오긴 했지만, 활동 영역을 넓혔어요. 언론보도 피해자 구제에서는 언론이 대상화되어있지만, 언론을 중심에 놓고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활동영역의 기본은 언론 보도의 피해자 구제 지원이에요. 그 유관분야로 우리 민변을 언론과의 관계에서 수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민변 회원들도 언론 보도의 피해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히 조·중·동에 의해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공격받기도 해요. 그때 언론위원회가 소송을 대리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언론매체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언론매체 내부에서의 개혁운동 같은 것을 지원하기도 해요. 대표적인 예로 현재 방송개혁을 위한 양대 공영방송 파업에 결합하여 지원하는 활동을 들 수 있고요. 조금 더 나아가서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의 자유 개념이 포괄적이기 때문에 더 폭넓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채 다양한 관심을 두고 추가의 활동 영역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분들이 오셔서 어떤 활동을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하는 위원회입니다.

9년 넘게 신문기자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신문기자가 된 것 자체가 투철한 계획이나 적성이라든가 장래 진로와 전망을 확실히 정리한 상태에서 되었다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불가피하게 된 면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만 해도 보편적으로 민주화운동·학생운동에 많이 참여하는 분위기였고, 저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에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감옥에도 다녀오다 보니 소위 말하는 블랙리스트 대상자가 되었고요. 그래서 다른 분야로 갈 수는 없었고요. 노동운동을 하거나, 언론사도 다른 언론사가 아닌 ‘한겨레신문’ 밖에 대안이 없었어요. 이 두 가지의 선택지 가운데에서 고민했는데, 나름대로 학생운동도 하고 그 당시에는 투철한 혁명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긴 했습니다만, 저는 백면서생 스타일이고 미국식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고 급진주의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여러모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한겨레신문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사실은 직업으로서의 기자 생활이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지는 않아요. 우리 언론사들에서는 제도의 틀에 맞서 소위 ‘곤조’, 즉 근성을 부리고 거칠게 싸우며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권장되는 분위기거든요. 그래야 특종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 중국 방문 과정에서 중국 경호원들과의 충돌과정에서도 (관련 기자님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편린이 드러났죠. 이것이 제 서생적인 기질과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 동료들이 인간으로서, 그리고 우리 시대에 살면서 품는 지향성 면에서 굉장히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직업적으로 안 맞는 부분들 때문에 계속 고민을 했죠.
그러다 정권 교체(김대중 대통령 당선)가 이루어지고 (표현이 왜곡되어 들릴 수 있고 한겨레에 계신 분들이 오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한겨레신문이 일종의 여당지가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굳이 그곳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고 개인적으로 더 하고 싶은 일, 더 맞는 것을 찾아도 될 것 같아서 다른 직업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퇴직하고 처음에는 사법시험을 준비했는데 건강 문제 등으로 실패했죠. 그 후 생계를 위해 고등학생 대상 논술학원 강사를 몇 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다 안정적인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변호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마무리 짓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로스쿨 1기로 들어가 변호사가 되었고, 이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직업으로서 맞지 않은 것 외에 구체적으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 그 점에 관해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안타깝고 아쉽게 생각했던 점이 있어요. 한겨레신문이 좋은 선·후배가 모인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한 구성원’이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사를 쓰기 싫은데도 써야 하는 것 등이요. 타사처럼 위에서 억압하거나 안 좋은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어요. 제가 워낙 개인주의적이고 못된 성미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면에서 ‘나 혼자 간섭받지 않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봤을 때 변호사가 떠올랐어요.
또, 언론사 기자 생활이 소모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자기계발을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학문 공부를 하는 것이 제일 좋겠습니다만, 생계에 대한 압박이 있어 도저히 그 나이에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법학을 다루는 변호사를 선택했는데, (신문사의 동료들에게 죄송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지금이 기자 때보다 더 맞는 것 같아서 후회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6

 

변호사가 된 후에 여러 소송을 수행하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소송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작년에 신문법시행령에 대해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얻어낸 헌법소원 사건(2015헌마1206)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미 드러난 공영방송 등에 대한 개입 외에) 인터넷언론 쪽에도 개입을 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5년 당시에도 이런 정황을 포착하여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요.
인터넷신문의 기준은 신문법과 신문법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는데, 기존에는 상시로 고용해야 하는 취재 및 편집 인력을 3인 이상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문체부에서 기업들 대상의 신뢰하기 어려운 설문조사 결과 등을 내세워 ‘인터넷신문들이 기업체를 공갈하고 안 좋은 쪽으로 쓴다, 언론계의 물을 흐리고 질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논리를 펴면서, 신문법시행령의 인터넷신문 인력 기준을 3인에서 5인으로 개정했어요. 인터넷신문 업계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인 미디어나 2인, 3인 미디어 수준이 많은 것이 인터넷신문의 현실이거든요. 당장 사람을 더 고용한다는 것은 인건비가 들어간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매체들은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인 셈이에요. 그때 당시 조사한 바로는 절반 이상의 기존 인터넷매체가 폐업을 고민했었고, 그래서 충격이 컸죠. 이 시행령 개정 배경으로는 앞서 언급한 나름 내세운 명분은 있었지만, 사실은 인터넷 언론을 완전히 장악해나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봤습니다. 신문 쪽에서는 ‘한경오 진영’이 있긴 합니다만 조·중·동이 꽉 잡고 있고, 공영방송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물론 종편에서도 JTBC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인터넷’ 언론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기준 요건 강화를 통해 많은 인터넷신문사들의 문을 닫게 하고 시장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1인 미디어가 가능한 시대잖아요. 소수의 인력으로 하더라도 특정 전문 분야를 성실하게 지속해서 취재하고 보도한다면 기존의 대형매체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룰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물론 영세한 업체 중 문제가 있는 업체도 있긴 하지만,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우면 안 되듯이 당시 개정한 시행령처럼 과도한 기준을 요구해서 이에 미치지 못하는 매체들은 모두 없어지게 하면 안 되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너무 획일적이고 지나친 입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어요.
사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기존 정권에서 임명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최소한의 자유주의적인 언론관에 입각해서 이건 너무 심하다고 인정한 것 같아요. 그래서 7:2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받았고, 덕분에 많은 인터넷신문들이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종사자 분들한테도 그렇고, 무엇보다 언론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칠 시도를 막아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현재까지 KBS는 파업 중이지만, MBC는 최근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고 해직된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내정됐습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남다른 감정을 느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저 자신도 그렇고, 많은 분이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언론인들에 대해서 많이 실망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2012 MBC 파업이라든가 열심히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방송이 엉망으로 왜곡돼 갈 때 무엇을 하셨는지, 더 적극적인 노력이나 저항을 할 수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서 의심이나 약간의 불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업을 MBC는 마무리했지만, KBS는 지금도 진행하고 있잖아요. 소위 무노동무임금 원칙에 의해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여러 달 파업을 하고 계시는데, 몇 달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요. KBS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사태의 분기점으로 강규형 이사 해임 사전통지가 되면서, 저도 파업을 이끄는 새노조 위원장께 “이젠 파업을 접으시라, 너무 힘드니까”라고 그렇게 권유를 많이 했는데 “힘들더라도 끝까지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 교훈이 남는다.”라며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들과 아울러,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 2012 MBC 파업 이후 지속해서 싸워오고 고통받아온 뜻 있는 방송인들의 노력을 생생하게 눈으로 보면서, 적어도 이런 움직임과 운동을 주도하는 분들은 나름대로 다시 기회를 가질 자격과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파업에 참여하는 분 중에는 대세를 따라서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꾸준하게 싸워오고 지금도 절절하게 실천하는 분들은 정말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이 개혁되고 제자리를 찾아갈 희망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5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동안 공영방송 장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무섭게 했죠. 국정원까지 동원해서요. 특히 노조가 저항하니까 플랜을 만들고 그 플랜에 맞춰 해바라기 언론인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노조 활동을 하거나 뜻있는 언론인들을 한직으로 부당인사를 하는 등의 식으로요. 물론 정권이란 가해자가 있고 이것이 핵심이지만, 이외에도, 주체적인 반성이란 면에서 본다면 결국 중요한 것은 언론사 내부에서 양지를 좇은 해바라기 언론인들의 문제이겠죠.
정권이나 자본 등 외부의 유혹이나 압력은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거든요. 그래서 내부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주체의식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타락한 해바라기 언론인들이 호응을 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악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결과적으로는 비슷했을지 모르겠지만, 많은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가지게 됐던 부분이 그런 것들 때문이었으리라는 면에서 굉장히 그 문제가 컸죠. 노조 파업 하시는 분들도 주목하고 있는 사안인데, 정권의 언론장악을 내부에서 협조해주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한 분들에 대해서 법적인 차원이든 도덕적이고 직업적인 차원이든 확실한 책임추궁과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고 중요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처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파업에 연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주 금요일에 불금파티라고 외부 지원 단체 연대 집회가 있습니다. 저나 위원님들이 참석하면서 연대를 꾸준히 했죠. 개별적인 법률 지원에 대해서는 대표적인 예로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해임통지를 한 KBS 강규형 이사 사안을 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애견 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KBS 법인카드로 동료 동호인들에게 밥을 사주는 등의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KBS 이사들 문제가 제기되니까, 애견 동호회 분들이 KBS 노조에다가 제보를 한 거죠. 그런데 그걸 알고 그분이 제보를 한 사람들에게 협박성 문자를 여러 날 보냈습니다. 모 유명 사립대 교수님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교수님의 말이라 생각하기 힘든 폭언적 내용이 가득한 채로요. 그래서 언론위 소속 위원이신 서창효 변호사님이 KBS노조를 대리해 강부영 이사를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파업에서 내용으로 봤을 때 제일 크게 쟁점으로 부각됐던 것은 ‘공공기관 경영진의 임기를 정권교체 과정에서 보장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2008년도에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KBS에 정연주 사장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을 이명박 정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보면 외형적으로는 지금과 비슷하게 KBS 이사를 바꾸고 이어 사장을 바꾸는 수순을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판결을 통해서 위법이라는 판단을 받긴 했습니다만, 이미 임기가 지난 뒤라 원상회복은 못 했죠. 당시 사태와 이번 투쟁이 외형적으로는 비슷하기 때문에 뒤집어서 보면 우리가 그 과오를 또 범하는 것이 아니냐, 안 좋은 전례를 남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언론단체들은 상대적으로 깊게 고민을 하지 않고, 적폐 세력이 말도 안 되는 얘기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우리는 어떤 논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지지한다는 식으로만 대부분 정리를 했죠.
하지만 우리 민변 언론위원회 같은 경우는, 특히 법률적인 문제도 많이 깔렸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죠. 역으로 저쪽에서 소송한다고 큰소리치며 이미 법정공방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고, 당장 정연주 사장님 판결 때 우리가 이겼던 것처럼 소송에서 우리가 질 수도 있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지게 된다면 역사적으로 그 과오에 대한 책임 문제, 또 나아가서 사회 전체의 적폐청산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그래서 그 부분을 나름대로 언론위원회에서 심도 있게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공영방송 경영진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예외적으로 해임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기 보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해임 절차 규정이 대통령 탄핵처럼 세부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이전의 판례나 일반적인 단체법 법리를 적용해 절차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는 등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정리해서, 가장 먼저 성명으로 발표했고 위원장 명의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해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당장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의 정당화 논거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4

 

공영방송 장악 금지와 관련한 여러 법률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독립된 언론을 위해 추진해야 할 법적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근혜 정권 말 즈음에 ‘언론 장악 방지법’이라고 당시에 야 3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국민의당이 같이 법안을 만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기존 KBS‧MBC 이사 구성이 일방적으로 여 쪽에 편향되어 있었다면, 이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7대 6으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자는 것입니다. 특히 사장 선출과 선임을 할 때는 편향성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사장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3분의 2 동의를 받는 ‘특별 다수제’가 있습니다. 결국엔 야 쪽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거죠. 이게 현 여권(옛 야권)의 기존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이 법안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여당 지위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 하는 압박감에 많이 시달리면서, 최소한의 보험용으로 이만큼의 견제선은 확보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정리되고 제시된 성격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 법안이 나온 이후에 촛불혁명이 일어났고, 촛불혁명에서 확인한 에너지와 요구는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지금 얘기한 언론장악방지법안은 여당이나 대통령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운 거리를 둘 수 있지만, 정치권 전반, 즉 기존 정당들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입법부의 각 교섭단체가 추천해서 이사들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 법안을 시행하면 각 당의 세력 구도에 따라 이사회가 구성되고 제어되는 구조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게 과연 정답이냐는 문제 제기가 쭉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뒤 그런 맥락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죠. 언론사 노조들, 언론 단체들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가 있었고요. 이런 맥락에서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 등을 정치권에만 맡길 게 아니라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여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도록 하자는 대안이 주장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사를 전부 선출한다는 것은 어렵더라도 일부나마 선출해서 민의를 직접 대변하는 이들 국민 선출 이사가 여·야 추천 이사 간에 의견이 갈릴 때 캐스팅 보트가 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이미 이런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고요. 대표적 언론단체인 민언련에서도 그런 방안을 낸 상태입니다. 심지어는 방송법 개정을 계속 반대하다가, 또 최근에는 언론장악방지법안 식으로 개정을 하자고 하던 자유한국당마저 지금 말한 새로운 근본적인 요구가 나오다 보니까 강효상 의원이 새로운 법안을 제출한 상태입니다. 이 강효상 의원 안은 직접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은 아닌데, 각 사회·직능단체들의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서, 정치권에 그냥 맡겨놓는 것보다는 나름 진전된 방식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안의 문제점은 명확한 기준 없이 추천 단체들을 아예 명시해놨는데, 속이 들여다보이게 교총이라든지 (조‧중‧동이 주도하는) 신문협회라든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우호적이라 생각하는 단체들을 여럿 포함시켜놨다는 점이죠.
따라서 걸러서 보기는 해야 합니다만, 어쨌건 결국 언론장악방지법안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쟁점 구도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롤 플레이어로서 안을 내놓아야 할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새로운 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 측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지금 막 자문기구를 통해서 안을 만들어 내고 있고요. 새해 1, 2월 정도에 그런 안들까지 나오게 되면, 정권에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언론 독립을 법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각 세력의 안을 토대로 본격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적인 방향은 여야 정치권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하는 것이겠죠.

 

추상적인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 도입을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인 형태로써 도입되어야 할 안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 민변 언론위원회에서는 결정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말하긴 그렇습니다. 다만, 얼마 전 운영됐던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처럼, 무작위로 국민들에게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 선출과정에 참여하겠는지 의사를 물어서 의사가 확인된 분들을 상대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선출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국민참여단’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세부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더 연구할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