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정봉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징을 ‘9988’로 언급하는 신문기사나 연구보고서를 종종 보게 된다. ‘9988’은 우리나라의 사업체 중 중소기업이 99%이고 노동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는 새로운 조어이다. 
 
노동전문가들은 ‘9988’은 통계적 착시현상이라고 계속해서 지적했다. 노동시장 연구에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는 2015년 3월 기준 300인 이상 업체 노동자의 규모를 230만 명으로(전체 노동자의 12.2%) 집계한다. ‘9988’이 말하듯 300인 미만 업체의 고용비중은 얼추 88%가 된다. 하지만 300인 이상 업체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업’과 다른 개념이다. 시중 은행을 예로 들어보면, K은행의 한 지점은 (대)기업의 일부로 조사되지 않는다.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사업체’ 단위는 K은행 점포를 하나의 사업체로 분류한다. 즉, K은행 지점은 규모에 따라 30인 미만이나 50인 미만 사업체로 분류되고, 지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중소업체 종사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규모가 88%가 아닌 것을 의미한다. 
 
기업체나 사업을 기준으로 조사한 정부의 다른 통계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더 크다. 통계청의 <일자리행정통계>에서 300인 이상 기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는 2015년 말 정부부문과 민간부문을 합쳐 758만 명(전체노동자의 39.4%)이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제>는 2015년 3월, 300인 이상 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454만 명으로 집계한다. 300인 미만의 공공부문까지 감안한다면 소위 ‘중소기업’에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더 줄어들게 된다. 
 
‘9988’을 이용한 재계의 주장은 다양하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은 중소기업에 큰 타격을 준다’, ‘대기업의 비정규직 문제가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와 같이 중소기업의 고용 비중이 크다는 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모습이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등으로 인해 어려운 경영여건의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만, 과장된 수치로 진단이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사업체 기준으로 2015년 3월 300인 이상 사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32만 9천 명(전체 노동자의 3.9%)으로 적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시기 사업 기준인 고용형태공시제에서 300인 이상 기업의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88만 명(전체 노동자의 10.5%)이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179만 명(전체 노동자의 21.4%)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 내 비정규직 노동자는 454만 6천 명 중 179만 6천 명(간접고용 포함)으로 39.5%에 이른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소기업에 많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거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대한 개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9988’을 이용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발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노동계 역시 사업체 규모에 따른 노동자 분포에 접근할 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노조 조직률이 30명 미만 사업체는 0.1%, 30∼99명은 2.7%, 100∼299명은 12.3%로 발표된다. 이 역시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사업체를 기준으로 업체 규모의 구간을 잡고 노조 조직률을 계산하고 있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 단위로 본다면 300인 미만의 구간별 노조 조직률은 높아질 것이다.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9988’을 이용하여 노조조직률을 나타낼 경우 양극화는 심화되어 보인다. 문제는 미조직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권익 향상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 중소기업 내 노조 조직화가 요원한 일로 비친다는 것이다. 많은 노조 활동가의 증언을 통해 드러나듯 영세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조 가입 및 설립이 쉽지 않지만, 자칫 왜곡된 수치가 미조직비정규 조직화 및 권익향상을 모색할 때 그릇된 방향설정을 낳을까 우려된다.   
 
‘9988’은 사업체로 조사하고 기업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중소기업 고용규모에 대한 왜곡을 낳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착오인지 의도가 있는지를 가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조금 더 정확히 진단하기 위한 조사가 마련될 필요성은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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