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단협 해지, 프로그램 퇴출, 무차별 해고

“사측은 (국정원 문건대로) 숙제하듯이 실행에 옮겨”

“공영방송 장악 증거가 이미 공개가 됐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다행이다. 다시 MBC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투쟁하는 것이 기적과 같다. 이들 문건에 따르면 저는 영구 퇴출될 사람이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피의 학살과 같았다.”

이근행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이 20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 로비에서 열린 파업 집회에 참석해 ‘국정원 공영방송 장악 문건’을 본 뒤 자신의 생각을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은 2010년 3월 2일 국정원이 작성해 청와대 등에 보고됐다. 당시 이근행 위원장은 MBC본부장으로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에 싸우고 있었다. 그해 3월 2일 취임한 김재철 사장은 대규모 인사 단행한다. MBC 19개 지역사와 9개 자회사 총 28곳 중 22곳의 사장을 갈아치운다. 그리고 국장 부장급 간부를 그리고 잘나가는 시사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퇴출됐다.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문건에 유추해보면 방송문화진흥회,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MBC내 공범자들은 MBC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추진된 것.

이근행 전 본부장은 당시 상황을 말했다.

“파업 투쟁 돌입 전에 MBC 상황은 한마디로 몰상식이었다.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김재철 사장의 ‘청와대 조인트’ 사건을 폭로했고, 이런 식의 비상식적 일 끝에 우리가 파업에 돌입했다. 우리가 법적 정당성, 도덕적 상식적 정당성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파업 이후에라도 회사측 징계와 탄압 수준을 높게 보지 않았다. 저 역시 해고가 현실화 될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회사는 저를 비롯해 정대균 당시 진주MBC지부장을 해고했고, 이후 줄줄이 해고했다. 학살이라 할 만큼이다.”

‘국정원 공영방송 장악 문건’은 MBC를 ‘노영방송’이라고 불렀고, ‘勞營방송’ 척결을 위한 근원적 해결책으로 △경영권 침해 독소조항 포함된 단협 개정 △노조 불응시 단협 해지 △노조 불법 파업과 업무방해 행위에 엄중 징계, 주동자에 대해 적극적 사법처리로 영구 퇴출을 계획했다.

 

   
 

39일 파업을 이끈 이근행 전 본부장은 해고됐고, 노조 집행부 등 47명이 중징계 당했고, 경찰은 이 전본부장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를 빌미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전방위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이 같은 노조 탄압 및 집행부 징계 해고는 2012년 파업 이후에는 더욱 잔인하고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2012년 제작거부에 나섰던 박성호 기자회장 해고를 시작으로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 정영하 본부장, 강지웅 사무처장,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 이상호 기자, 권성면 PD가 해고됐다. 국정원 문건대로 ‘영구퇴출’ 계획이 작동된 것이다.

이세훈 MBC본부 8기 교섭쟁의 국장은 “해고 10명, 216명이 대기발령 이상 징계를 받았다”며 “언론노조 MBC본부 조합원 2000명이라고 보면, 10명 중 1명이 대기발령 이상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무력화와 조직 개편으로 체질 변화 유도’한다는 국정원 문건처럼 MBC사측은 단체협약 중 공정보도 관련 내용 무력화를 시도했고, 결국 단협이 해지됐다.

2010년 단체협약 교섭 실무를 담당했던 안준식 민실위 간사는 “회사측은 단협 21조 방송의 독립성 유지와 관련 국장 책임제를 본부장 책임제로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더 이상 교섭은 없다는 식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바꾸려고 요구하는지 그대는 알 수 없었다. 전영배 당시 기조실장이 ‘다른 조항 모르겠다. 그거 바꿔야 한다. 이거 하나 관철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 문건 시나리오대로 그것을 바꾸라는 오더로 단협 개정에 나온 것이다. 이후 사측은 국정원 시나리오대로 공정방송 단협안을 무력화하지 못하면 해지 하는 게 낫다는 오더를 그대로 한 것이다. 또 무단협으로 부당해고에 대한 복직도 이뤄지지 않게 돼 사실상 ‘영구퇴출’이라는 국정원 문건처럼 됐다.”

당시 교섭을 한 노조측 간부들은 회사가 마치 ‘숙제’하듯이 교섭을 한 것으로 기억했다.

안 간사는 “시차를 두지만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숙제하듯이 했다”고 했고, 이근행 전 위원장 역시 “전영배시가 당시 단협 개정 총괄을 했는데 방문진 차기환, 김광동, 최홍재 등 앞에서 마치 숙제 안한 초등학생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이근행 본부장에 이어 2011년 본부장을 맡은 정영하 본부장은 “국정원 문건을 보고 복기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고 전했다. 국정원 문건에서 ‘이근행 노조위원장 임기 만료를 계기로 건전성향 노조위원장 당선을 측면 지원, 건전 노사질서 회복을 위한 단초 마련’이라는 내용이 있다.

정영하 전 본부장은 “2011년 3월 집행부를 맡았는데 저들 문건에 따르면 민영화와 단협 해지를 마지막 단계에 놓았다. 앞에 집행부가 파업 등 잘 싸워 이게 수순대로 안 된 것”이라며 “국정원 문건에 피해자는 명확하다. 노조와 조합원이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승호 PD는 “공범자 영화에서 빠진 내용을 드디어 찾게 됐다. 도대체 왜?라는 시나리오 찾고자 노력했고 그 내용이 마침내 나온 것”이라며 “엄기영 당시 MBC 사장은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온전하게 다 밝혀야 한다. 이는 MBC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업을 이끌고 있는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경영진이 왜 이렇게 노동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했는지 이제 문서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문서가 작성 시기는 2010년 3월이지만 효력은 그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도 추진됐고 여전히 MBC 짓누르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정원은 노조 파괴와 단체협약 해지 음모를 꾸민 것이고, 공정방송 단협이 파기된 채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가 총파업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이제 수사 대상은 김장겸 안광한 백종문은 물론 고영주 김광동 방문진 이사에게도 확대돼야 한다”며 “김광동 이사는 2010년에서부터 지금까지 방문진 이사로 MBC장악 과정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저들의 200억에 달하는 손배 소송 및 가압류가 있었고 10명 해고자가 생겼지만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이 노동조합을 지켜주셨다”며 “그렇게 지켜주신 노동조합이 다시 MBC를 재건할 수 있는 힘”이라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