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성﹒김광일 독립PD 죽음에 “독립PD 생존권 보장” 한 목소리

독립PD들이 고(故) 박환성﹒김광일 독립PD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국과 외주제작사 간의 불공정한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한국독립PD협회 산하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 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방불특위)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9개 단체가 함께 참여한 가운데 16일 오후 5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박환성﹒김광일 독립PD의 추모와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를 열었다.

박환성﹒김광일 독립PD는 ‘야수와 방주’(EBS ‘다큐프라임’에서 10월 방송 예정)를 촬영하다 지난달 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두 사람은 비용 절감을 위해 운전사 없이 직접 운전을 하다 변을 당했다.

방불특위는 이날 공동선언문을 통해 “고 박환성 독립PD는 출국 전까지도 ‘야수와 방주’ 제작을 위한 국가지원금 일부를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부당하게 취득하려 한다면서 이를 불공정한 행위로 규정하고 강하게 대응하고 있었다”면서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PD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이 가시기도 전에 또 맞이한 방송 노동자의 죽음을 통해서 곪아 터진 방송 산업계의 민낯을 보았다”고 밝혔다.

또한 “1991년 도입한 외주 정책의 근본 취지는 ‘방송콘텐츠 다양화, 시청자 서비스 확충’이었고 그 취지를 일정부분 이뤘다고 볼 수 있다”면서 “현재 외주제작 편성 비율은 각 방송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50%를 상회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방송콘텐츠가 외주 편성 되고 있는 작금의 상태에서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는 반드시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국제 표준을 기준으로 외주 정책이 원점에서 재검토 돼야 한다”면서 “방송 외주제작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성과 노동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물거품일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방불특위는 향후 3단계의 활동계획과 목표도 제시했다.

1단계로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EBS에 대한 진상조사 후 EBS의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국정감사 과제로 전 방송사에 대한 심층 감사도 추진한다. 2단계로는 언론 유관단체﹒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방송 외주제작 생태계에 대한 토론회를 열어 담론을 형성하고 대안을 도출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3단계에서 새로운 외주정책을 수립하고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이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다. 방불특위는 목표의 달성까지 1년 2개월에서 1년 5개월까지 걸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송기혁 독립PD협회 회장은 “우리의 투쟁은 많은 임금을 받자는 목적에 그치지 않는다”면서 “시청자가 누려야 할 시청권을 돌려드리고 그것을 위해 불공정 행위를 없애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0년 전에 저는 프로그램 연출을 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그런데 예산에 대해 방송국 담당 CP나 선배와 얘기하면 ‘너 돈 벌려고 PD하니’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면서 “그럴 때 ‘맞아요. 돈 벌려고 시작한 게 아니죠’라고 말하며 바보 같이 살았다. 저희가 그렇게 제대로 못 했던 것이 이런 현실을 불러온 것”이라고 말했다. 

송기혁 회장은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고, 고인이 된 두 PD가 공론화 할 기회를 줬으니 이제 멈출 수가 없다”면서 “‘방송사PD’, ‘독립PD’ 이런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방송PD’로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23년간 경력의 A 독립PD가 나와 정부지원금으로 받은 제작비를 KBS가 ‘송출료’ 명목으로 많게는 40%까지 떼 갔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A 독립PD는 “제가 입찰을 통해 정부정책 홍보 프로그램을 따 내면, 제가 정부기관과 직접 계약할 수 없고 그때부터 직접 정부기관과 KBS를 연결해야 했다”면서 “제가 프로그램을 따도 제작비는 전액 방송국으로 입금이 된다. 그 후 내가 KBS와 외주계약을 맺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게 주어지는 제작비는 일방적으로 KBS가 정한다”면서 “내가 따온 프로그램인데 KBS가 송출료로 떼는 금액과 내가 받는 제작비에 내가 전혀 관여를 못한다. KBS가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A 독립PD는 KBS가 그런 식으로 떼 간 송출료가 한 번은 40%, 한 번은 25%라고 밝혔다.

또한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게 어떤 부메랑이 돼 날아올지 모른다”면서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며 익명으로 기사에 다뤄주기를 거듭 당부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B 독립PD는 EBS의 한 부장으로부터 감금과 협박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 B 독립PD는 지난 2015년 EBS ‘세계테마기행’을 외주 제작하던 중 외주제작국 Y부장과 K팀장이 자신을 불러 회의실에 가뒀다고 주장했다.

B 독립PD에 따르면 Y부장과 K팀장은 녹음을 하며 B 독립PD가 자신이 속한 외주제작사의 내부 문제에 대해 말하기를 강요했다. B 독립PD는 눈물을 흘리며 ‘나가게 해달라’, ‘대표에게 직접 물어보라’라고 사정했지만 Y부장과 K팀장은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B 독립PD는 풀려난 이후에도 4주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이날 그 진단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Y부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감금과 협박까지 하며 그들이 외주제작사 내부 사정을 물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B 독립PD는 “제가 있던 외주제작사가 시청률 면에서 최고였지만, Y부장은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제작사가 이 프로그램을 맡는 것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이날 방불특위의 결의대회에는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과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참석해 독립PD를 포함한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김경진 의원은 “방송 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거치면서 일선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비용도 지불하지 않아 이같은 일이 생겼다”면서 “두 명의 생명과 열정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혜선 의원은 “독립PD들의 문제를 갑을관계나, 불공정거래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며 “독립PD들의 생존권과 상생의 문제로 접근해야 고인의 유지를 잇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태계 차원의 대안을 마련하는 길을 뚫는 실질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언론단체와 시민사회단체도 연대의 뜻을 밝혔다.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2015년에 제가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공약 7가지 중 하나가 비정규직 조직화”라면서 “언론노조의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어려움의 순간들이 찾아오고 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환성 PD, 김광일 PD가 남긴 숙제를 우리는 이어받아 풀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해결할 문제”라면서 “그 중 하나는 독립PD들의 노조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언론노조는 비정규직 사업을 하며 누구에라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얼른 만들고 얼른 띄우자”고 강조했다.

이어 “무시 당한 우리 노동의 권리, 인간의 권리를 되찾자. 노조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라 인정 받는 것도 가시밭길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 빨리 목표에 도달하려면 빨리 시작해야 한다”면서 “언론노조는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도움을 청하면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가겠다. 저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쳐 지원하고 함께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두 독립PD가 남긴 숙제를 우리가 떠안겠다”고 덧붙였다.

박석운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는 “거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독립PD 간의 계약관계를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른바 ‘표준계약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생태계 전체가 통채로 재구조화 되도록 여러 복잡한 논의를 입체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언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독립PD들과 머리를 맞대고 담론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국장은 “시민사회단체에도 독립PD들의 목소리를 응원하고 함께하는 분들이 참 많다”면서 “참여연대도 구성원들과 머리를 모아 독립PD들과 함께 무엇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밝힌다”고 말했다.

오기현 PD연합회장은 “단순히 방송사 내 불공정 거래의 문제만이 아니”라면서 “방송사와 독립PD라는 구조적 갑을 관계로 인한 인권유린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지상파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방송시장 불공정 거래 관행에 관한 고발센터를 독립PD협회와 같이 운영하려 한다”면서 구조적 관행을 개선하는 문제를 떠나,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불합리를 걷어내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