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은 제약 '미끼상품 마케팅' 부채질하지 마라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그 자체가 도움을 받는 자는 고마움을, 그것을 보는 주변인에게는 인간에 대한 따듯함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뒤로는 돈을 받고 겉으로는 도움을 주는 척 하는 행위라면 그건 위선이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아예 공공기관이 발 벗고 나서서 조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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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평원이 신약 등 협상대상 약제의 세부평가기준일부개정()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 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일부개정()을 공고한 게 그것이다. 이 개정안은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 개선방안(’16.7.7)에 따른 글로벌 혁신 신약 우대정책의 세부 기준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각각의 규정 이름조차 우리 국민과 환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들뿐이고, 사실 읽어도 이게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필자가 ...개정안의 내용과 의미를 뜯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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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의약품 무상공급의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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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용을 봐봐야 이런저런 말들을 너절하게 늘어놓으면서 눈속임을 하고 있지만 결국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비급여 의약품 무상공급 활동을 하는 제약사의 신약에 대해 약가를 우대한다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보험이 안 되는 약을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해주는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제약회사의 신약은 건강보험료에서 약값을 더 높게 쳐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약회사가 환자들에게 비급여 의약품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활동이라는 것인데 이게 뭘까?
이걸 파악하려면 일단 무상공급 프로그램의 효시인 2001년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약가투쟁과정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글리벡은 2001620일 허가를 받은 이후 약값을 한 캡슐에 25,005원을 신청했었다. 하루에 4알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이 하루 약값만 10만원을 부담해야 했으니 환자들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환자들의 저항을 무마하고 약가협상의 시간을 벌기 위해 한시적으로 약을 무상으로 환자들에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 무상공급의 이름은 동정적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그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자 노바티스는 돌연 약 공급을 중단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비난과 환자들이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것을 피해가기 위해 공급 중단 2주만에 다시 전체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공급하고 2차 약가협상을 시작했다. 결국 노바티스는 자신들의 약가를 관철시켰고, 이때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을 다시 돌려주어 환자들이 돈을 한 푼도 안내고 약을 먹게 하는 소위 환자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게 본격적인 환자지원 프로그램의 시작이고 심평원 개정안에 언급된 비급여 의약품 무상공급활동의 첫 번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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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위한 무상공급활동? 그건 그냥 미끼상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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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좀 살아보신 분들은 세상에 공짜란 없고, 공짜 좋아하다가 집안 거덜 낸다고 말씀들 하신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제약사 무상공급 약품은 무상도 아니고 공짜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럼 이토록 착한 표정을 짓는 제약사가 뒤에서 챙기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
이미 심평원은 작년 신약 신속 등재제도를 만들어서 신약의 시장진입을 용이하게 했고, 덤으로 약가 협상도 제약사에 유리하게 만들어준 바 있다. 이에 이번의 개정안 역시 편의점의 2+1 마케팅처럼 제약사의 마케팅을 지원해주는 역할에 충실한 개정안일 뿐이다. 이처럼 제약사의 소위 환자를 위한의약품의 무상공급활동은 그야말로 미끼상품으로 작용하여 시장의 확대를 노리고 시장진입을 용이하게 할 뿐 아니라 결국 특허에 대한 지위를 공고히 해서 최종적으로 신약의 약가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100%. 이때 덤으로 얻는 힘이 하나 있다. 바로 환자의 힘이다. 무상공급을 받는 환자들은 결국 제약사와 한목소리로 신속등재 및 보험적용을 요구할 것이다. 최근 신약의 등재 및 약가결정 과정에서 제약사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환자단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이를 반증하는 것들이다. 매우 위험하고 걱정스러운 일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말 그대로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는데 기실 이러한 미끼상품 마케팅을 통해 경쟁 제품의 시장진입과 점유율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의료분야에서 만큼은 불공정거래행위이며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아울러 비급여 의약품의 무상공급 행위는 약사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데 만약 이를 강행할 경우 아마 시민단체들은 약사법 위반으로 심평원을 고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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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 잘하면 적폐대상에 이름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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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심평원이 명분이랍시고 이야기하는 건 하나 있다. 바로 제약산업 육성이다. 이 조그만 땅덩이에는 700개가 넘는 제약사가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복제약만 찍어내서 먹고 사는 영세업체들이 태반인 상태를 생각하면 뭐 어떻든 산업육성은 해야 하지 싶다. 근데 문제는 그걸 왜 건강보험료로 기업 육성을 하느냐 말이다. 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지 국민들이 낸 사회보험료로 하는 건 아니다.
요새 심평원이 하는 일을 찬찬히 보면 그 불신이 날로 깊어진다. 심평원의 약평위와 약제관리실 이 한 부서만 보더라도 작년 필자가 세포치료제 케라힐-알로 문제를 지적한 이후에도 계속 여러 문제들이 불거졌다. 약평위 위원들이 뇌물수수로 구속을 당하는가 하면 검찰의 압수수색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이 외에도 현재 심평원에 대한 외부의 각종 지적과 문제점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이 정도면 새정부의 보건의료계 제도개혁대상 1번으로 지목될지도 모르겠다. 적폐란 외부의 것보다 이렇게 내부의 것이 훨씬 더 해악적이다. 권고하건데 개정안은 다시 세단기 속으로 집어넣길 바란다. 신약의 평가요소로 다른 것도 아닌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약값을 더 높게 쳐준다는 게 국민 보험료를 관리해야 할 심평원이 나서서 할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정신 나간 조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팜(17.06.23)에 특별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