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대선 연속기획 - 새 정부를 위한 개혁과제 ⑥ 공공부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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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일 (시민행동 공동대표,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내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에 찬성하는 이유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싸고 편리한 서비스 체계에 감탄한다. 음식, 세탁, 청소, 쇼핑, 배송 등 수많은 서비스가 전화 한 통, 터치 한 번으로 해결된다. 골목마다 즐비한 24시간 편의점 그리고 새벽까지 문 여는 음식점과 주점들. 서비스 천국 대한민국. 우리는 워낙 싸고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에 익숙한지라 조금만 늦어도, 약간만 불편해도 못 참는다. 이사할 때는 손 하나 까딱 안 한다. 책상 위 먹다 남은 과자봉지까지 옮겨줘야 하고, 저녁에는 인터넷 방송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오전에 물건 주문하면 퇴근 때는 받아봐야 한다.   

 

외국과 비할 수 없이 싸고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종사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치킨 집들 덕에 외국선 듣도 보도 못하는 온갖 치킨을 느긋하게 집에서 즐긴다. 너무 많은 마트들 덕에 3만원어치만 구매해도 무료배달 서비스를 누리고, 너무 많은 대리기사 덕에 새벽에도 만 오천 원이면 집까지 나를 모셔가고 자동차는 주차장에 잘 대놓는다. 소비자는 좋지만 종사자는 고달프다. 게다가 우리나라 경제 문제의 고질 중 하나인 낮은 서비스 생산성도 이 때문에 발생한다(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서비스 생산성은 서비스 단가에 비례한다. 즉 서비스 가격이 내려가면 그만큼 생산성도 낮아진다). 

 

행정학자로서 기이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왜 우리는 민간 서비스에 대해서는 그토록 까다롭게 굴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무심할까. 예방 체계가 좀 더 강건했었다면, 발생 후 대응체계가 좀 더 튼튼했었다면 당하지 않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수많은 재난안전 사고들. 수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상징하는 구멍 뚫린 기초보장체계. 내 권리 내가 지키겠다고 알바생들 스스로 청년 알바당을 결성해야 할 만큼 부실한 근로보호체계 등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것. 불법·부당한 착취를 방지하는 것. 국가가 마땅히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다. 그런데 우리의 이 분야 공공 서비스 수준은 어떨까? 생명·안전 보호, 기본생계 보장, 불법·부당행위 방지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 고쳐야 할 것은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인력 보강이다. 일선에서 뛰는 교통·소방 공무원 숫자가 적은 탓에 업무량이 많고 그래서 충실한 업무수행도 힘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기초생활보장을 위해 제법 많은 돈을 쓰지만 정작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제공되지 못하는 까닭, 전국 각지에 노동청이 있지만 근로자 보호가 부실한 이유는, 마을과 상권 구석구석의 도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고 성심껏 상담해줄 사회복지사와 근로감독관의 절대 숫자가 너무 부족한 탓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요양원 등 공공과 민간이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임계비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서비스 질 보장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공공 비중을 뜻한다. 어린이집에 아이 맡기는 부모들은 국공립시설을 선호한다. 민간보다 서비스 질이 좋아서이다. 그렇다고 모든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국공립 비중이 제법 높아지면 민간 어린이집의 서비스 질도 좋아진다. 이웃한 국공립 시설과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국공립 시설은 이런 기능을 하기에는 너무 적다. 그저 요행이 국공립시설에 자리가 비길 바랄 뿐이고, 안 되면 불안해하면서 민간 어린이집에 보낼 뿐이다. 유치원이나 요양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제 자식 부당한 대우 받을까봐 부모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니 한결 낫지만, 요양원은 제 부모 부당한 대우 받을까봐 걱정하는 자식들이 적은 탓에 훨씬 열악하다.    

 

아프지 말자. 우리 사회는 아프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도 고달프다. 옆에서 수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간병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맞춤으로 구하기도 어렵다. 환자수발 책임을 온전히 가족에게 떠맡기는 국가는, 우리 정도 경제수준을 지닌 국가들 중에서는 찾기 어렵다. 

 

OECD 통계를 보면 식당·소매·배달·이미용·가사도우미 등 민간 서비스업종 종사자는 우리가 너무 많다. 그래서 경쟁이 박 터지고 서비스 단가는 낮고 종사자 처우는 열악하다. 반면에 안전·교육·복지·고용·의료 등 공공 서비스 종사자는 우리가 적어도 너무 적다. 

 

정부는 민간보다 비효율적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정부규모는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양과 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정부규모가 작은 것이 큰 것보다 백번 낫다. 그러나 정부규모가 작아서 마땅히 누려야 할 공공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다면?  

 

마트의 무료배달 서비스가 없어져도, 택배가 하루 이틀 늦게 와도, 치킨 값이 좀 올라도 우리  삶의 질이 그다지 나빠질 것 같지는 않다. 그 대신 안심하고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고 처자들이 밤길 다니고, 맘 놓고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편찮은 부모님 수발에 힘들지 않다면 우리 삶의 질은 훨씬 좋아질 것 같다. 게다가 국가가 어려운 사람들 빠짐없이 챙기고 알바생들 권익 철저히 보호해 준다면 또 청소·경비 일하시는 어르신들 형편이 조금 더 나아진다면, 세금을 좀 더 내더라도 내 맘은 훨씬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①교통·소방·노동·복지 분야 공무원 증원, ②국공립 돌봄서비스 시설 확대 및 민간시설의 국공립 전환, ③공공기관 청소·경비 민간위탁업체 의 공공부문 흡수로 구성된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 정책 패키지에 찬성한다.

 

사족 하나. 81만개는 상징적인 숫자일 테니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그보다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한 곳들을 채워간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사족 둘. 81만개 중 몇 자리는, 이렇게 창출되는 일자리가 방만해지지 않도록 평가하고 점검하는 업무에 배정하면 좋겠다. 사족 셋. 아무리 수십만 개의 민간일자리를 공공으로 전환하더라도 민간으로 남는 일자리가 훨씬 많을 테니, 여전히 남아있는 일자리 질에도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  

 

※ 이 칼럼은 서울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2017년 조기대선을 맞아 지난 3월부터 시민행동의 임원·회원들이 각 분야별로 필요한 개혁 과제들을 짚어보는 연속 기획 - '새 정부의 개혁과제'가 연재되었습니다. 대선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새 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김태일 공동대표님의 칼럼을 마지막 순서로 연재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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